호남의 여노비출신 열등감 갑이지만, 자기나름의 세상관 인간관이 확실한 유자광.

애비는 무관이라 그 핏줄로 몸이 좋고 날렵했다. 머리가, 잔머리가 졸 좋다. 그리고 기운이 졸 쎄다. 기운이라하면 내공이다. 걸리면 뒈진다.

 

유자광 1439 - 1512,

 

이시애의 난 1467. 나이 28 살에 상소를 올려, 아부의 시작을 세상에 알린다. 조선은 그딴면에선 민주적이라, 임금께 할말있으면 서얼출신이지만 직접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다!

 

두살 아래 남이. 를, 자기가 듣본거에 살 부쳐서 역모사건을 만들고, 일등 공신이 된다. 

 

남이, 아 잘 나갈때 조심하자. 항상 시기하는 무리가 있다. 이땅에서 막막 준다고 덥석 받으면 안된다. 국방부장관자리 너무 쎘다. 세상은 유자광이라. 그 어린나이에 사지 찢어죽은 이유라.

 

이땅에선, 잘 나가면 뒈진다. 권력에 졸라 아부질 하며 설설 기야 제 수명을 다한다. 그게 역사다 역사.

 

.

유자광이 저 일 이후 잘나가다가. 세조가 죽고 1467년 9월에. 다음 예종, 세조 둘째 아들이 즉위 후 그 다음해 죽고, 

세조의 죽은 장남 의경세자 덕종의 둘째 아들 잘산대군이 성종. 이 즉위한다. 형 월산대군을 제치고, 한명회의 딸이 마누라라. 그 빽.

 

정당성이 약한거라 성종은, 졸 설설 긴다. 

성종 1457 - 1495. 즉위원년 1469. 12 세다. 38세에 죽다. 26년여간 재위. 형 월산대군이 세살 위다. 말이 안되는거라. 

어릴때 부터 설설 기고, 시키는 데로 하는거다. 말이 좋아 성군이지. 조선왕중에 밤낮으로 맨날 책만 본 왕. 졸 불쌍한 왕이다. 내가보기엔 그렇다

 

정당성도 없고, 세조때 그 훈구파들 이주 드세다. 먼 힘이 있간. 시키는데로 하다가, 나이좀 들고, 사림등용하면서 , 신하덜 간볼 줄 알게 되고, 그럴만 하다 죽었다. 어릴 때부터 그 쫄림에 의한 압박으로 죽었을거라 그게 병이 되었을거라

 

연산군은 어찌보면 당연한거라.

 

연산은 성질있다. 천성이. 아니 한 나라왕이 뭔 저리 맨날 공부니 머니, 밤이고 낮이고, 신하들은 맨날 이래라 저래라, 아버지 쪽도 못쓰고. 

연산이 1476년 생. 18세즈음에 왕이 된다. 나중 동생 중종이 될때와 같다.

중종과는 천성이, 성격이 다르다 연산은. 아니 중종이 나중 하는거 보면 성종 더하기 연산이다. 성질있다 중종은

 

 

 

 

성종이 1494년 12월에 죽고, 그 첫날 실록이 나에겐 아주 묘하게 다가온다

 

 

연산군일기 1권, 연산 즉위년 12월 25일 경진 3번째기사 1494년 명 홍치(弘治) 7년 
습을 마치고 제사가 끝나지 않아 세자가 나가자 신승선·노사신 등이 말리다


습을 마치고 전(奠)하려 하여 채 모든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세자가 먼저 밖에 나가 기다렸다. 우의정(右議政) 신승선(愼承善)이 아뢰기를,

"도로 안에 들어가시어, 일이 끝나거든 나오소서."

하였으나, 세자가 듣지 않았다. 좌의정 노사신(盧思愼)이 아뢰기를,

"임금의 일은 일반 사람과 다르오니, 안으로 들어가소서."
 

 

 

성종을 염습을 하고 제사를 하려 하자, 세자, 연산이다. 저땐 아직 세자라 썼다. 세자가 나갔다. 그러자 신승선, 연산의 장인이다. 나중 신수근 그 삼형제의 아버지고. 이 신승선이 들어가라 하니까. 세자 불허, 허하지 않다. 

 

야~ 요거 참 묘하더란 말이지.

 

 

 

연산 성질 있는거다.

 

 

내 우리 아빠 성종 처럼, 니네들한테 그리 만만하게 네~네~ 할줄 알지? 하는거다.

 

 

 

 

 

연산을 해석하는 거 보면, 먼 미친놈 싸이코 패스 처럼 해석하는 역사학자가 대부분이고, 영화든 드라마든 다 그따위인데, 참 얄팍한거다.

 

 

 

 

그리고 한두달인가? 내전에서 성종 수륙재. 절에가서 제사 지내는 걸로

 

매~~앤날, 실록 보면 매~~일. 

 

신하들은 

 

 

하지마세요~ 하지마세요~

 

그러다 유생들까지 집단으로 떼지어서

 

하지마라~ 하지마라~

 

 

 

 

 

야 태정태세문단세예성. 까지 다 해온 걸, 왜 나한텐 하지 말라하냐? 하는 연산의 논리가 틀린게 있냐 없냐?

 

 

 

연산이 저 졸라 일대 몇만의 싸움을 이긴다!

 

 

나이 18세에.

 

 

 

연산 대단한 깡다구의 인간이다.    이때 연산이 이가 갈린거다.    이 이가 갈린건 그 이전 애비 성종의 신하들에게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그거의 쌓임. 아, 그리 생각하는 연산인거고 내 해석이 아니라. 

 

 

난 우리 아빠 성종 처럼, 그딴 왕 안한다 그딴 왕노릇 안한다. 왕이 니네들 밑이냐? 왕이 니네들 위다! 하면서. 

 

 

 

저 연산 즉위때 부터, 수륙재는 시작인거고. 맨날 하지마 그러시면 안된다, 이건 신하들 입버릇이고. 

 

 

이 감정싸움이 극에 달한게 팔년 후 갑자사화다.  이전 무오사화는 걍 맛보기고.

 

 

 

 

 

 

 

 

김종직 1431 - 1492

 

 

함양군수에 내려간게 성종 초 1471-1475 5년간. 성종이 꼬마거니와, 김종직이 노모가 편찮으시다고 고향에 내려가겠다고 하니 그러라.

 

김종직이 선산 김씨다. 선산하면 구미 선산. 박정희가 태어난 곳, 고령 박씨에 난곳이 선산. 

 

김종직이 엄마 아빠 집안이 좋다. 함양군수 내려간게 나이 40. 

 

세조 비판 쎄게 해대고, 단종 아낀 척 슬퍼하지만, 세조때 세조 즉위년인가 축하 시험도 보고 합격하고, 나중 식년 과거 봐서 벼슬하고, 

 

혹자의 남들이 보기엔 위선인거라.

 

 

어쨌거나, 하튼. 그러다가, 성종 즉위하고 바로 내려가서 군수한다. 저때 유자광의 학사루라는 누각에 걸린 글자판을 보게 되고,

 

떼어 내어서 불에 태웠다. 정확한 연도는 없으니 1475년이라 하자. 마지막 부임해.

 

 

 

 

 

 

무오사화가 1498. 이다. 저 일이 있고 25년 정도 흘렀다. 

 

 

유자광, 대단하지 않냐? ㅋㅋㅋ

 

 

 

 

아빠는 무관이고 엄마는 노비. 출세할 수 없는 신분이나, 말도 안되는 상소와 , 어떻게든 이름 알리겠다는 의지. 그걸로 출세를 하고, 거기에 만족않고 남이까지 찍어내어 그 공을 또 얻고, 그러다 성종때 눈밖에 나서 잠시 쫓겨나다시피했지만

 

 

 

이 인간이, 내가 미천한 신분이라고 날 만만히 봐? 머? 남이 사건으로 날 쓰레기 취급해?

 

니는 대체 얼마나 잘났냐? 부모 잘 만나서 글질좀 한다매? 가끔 세조한테 잡학한다고 비판 뻘쭘 하는 체 하지만, 그리고 충절 어쩌고 하지만 씌바 니도 니가 보기엔 역적인 세조밑에서 벼슬한 주제에. 머? 니가 나를 쓰레기 취급하미 내 가 쓴 글판을 떼내서 태웠어?

 

 

 

 

그래도, 자긴 이미 성종한테 찍혔고, 김종직은 이름이 알려졌고 세가 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굽신굽신 하는거라 김종직 살아생전에. 

그러다가 죽었다 1492. 61세에. 김종직은. 유자광보다 8살 많다. 김종직이 죽고 2년 후에 연산이 즉위하다.

 

 

 

 

 

 

 

 

 

김종직이 학사루 누각에 유자광의 글판을 떼다 불태운 후, 25년여가 지난 1498년 7월

 

 

연산군일기 30권, 연산 4년 7월 11일 을사 1번째기사 1498년 명 홍치(弘治) 11년 
김일손의 사초를 들여올 것을 명하니 이극돈 등이 일부를 절취하여 올리다
 

 

실록에 처음 등장하는 기사. 이극돈이 유자광에게 사전 문의를 하고 어쩌까 잉~ 하니, 시나리오 작가 유자광 이 몇몇과 함께 연산군에게 꼰지른다.

 

할아버지 세조가 글쎄 죽은아들인 장남의 후궁에게 찝쩍댔다고 김일손이 썼대유~

 

 

 

 

하니, 연산군이 사초를 갖고 오라는 기사다.

 

 

 

다음날 12일

 

 


"네가 《성종실록(成宗實錄)》에 세조조의 일을 기록했다는데, 바른 대로 말하라."

하니, 일손이 아뢰기를,

"신이 어찌 감히 숨기오리까. 신이 듣자오니 ‘권 귀인(權貴人)은 바로 덕종(德宗)의 후궁(後宮)이온데, 세조께서 일찍이 부르셨는데도 권씨가 분부를 받들지 아니했다.’ 하옵기로, 신은 이 사실을 썼습니다."

하니, 그 말을 따랐다.

그 들은 곳은 바로 귀인(貴人)의 조카 허반(許磐)이옵니다."
"네가 또 덕종(德宗)의 소훈 윤씨(昭訓尹氏) 사실을 썼다는데, 그것은 어디에서 들었느냐?"
 

 

 

 

 

귀인의 조카 허반. 일때 귀인은 그 찝쩍댔다는, 죽은 의경세자의 첩이다. 

 

세조가 자기 아들 첩들인 권귀인과 윤소훈 에게 오입을 했는지 시도를 했는지 하튼 그런거다. 귀인과 소훈은 여자들 직위.

 

 

허반은 모른다 했다. 하튼 그리고 그러다 걍 흐지부지 별일 아닌 것으로 될 것이

 

 

 

 

 

 

 

 

연산군일기 30권, 연산 4년 7월 15일 기유 4번째기사 1498년 명 홍치(弘治) 11년 
유자광이 조의제문을 지은 김종직을 논죄할 것을 청하다
柳子光句解金宗直 《弔義帝文》以啓曰: "此人敢爲如此不道之語, 請依法治罪。 此《文集》及其板本, 請悉焚之, 其刊行人, 亦幷治罪。"
유자광(柳子光)이 김종직(金宗直)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구절마다 풀이해서 아뢰기를,
"이 사람이 감히 이러한 부도(不道)한 말을 했다니, 청컨대 법에 의하여 죄를 다스리시옵소서. 이 문집(文集) 및 판본을 다 불태워버리고 간행(刊行)한 사람까지 아울러 죄를 다스리시기를 청하옵니다."
 

 

 

 

7월 11일 이 첫 시작이고, 4일 후다.

 

유자광, 졸 대단하다 진짜.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을 어디서 주워갖고 ㅋㅋㅋ , 저게 초한지의 그 항우 유방 쌈질할때 얘기. 저때보다 1600년전 쯤 이야기를, 저걸 아마 김종직이 서울 가는길 익산인가 거기 지나가다가 꿈을 꾸어서 쓴 이야기인데, 왜 난데없이 아무런 관계없는, 항우 한테 죽은 의제가 꿈에 나타났다니? 그것도 웃기고, 단종이 물에 빠져죽었다느니, 길바닥에 그냥 죽은체 방치되었다느니 하는데, 아마 물에 빠져 죽은걸로 생각해서 연상을 했다는 건지.

 

 

 

쓴 사람은 죽어서 알길없고. 

 

저걸, 죽은 단종을 안타까와하는 거다, 연산할배 세조님 모독하는 거다. 하시는 거라 유자광께서. 저기 보면 유자광 구 해 김종직 하며 구 해 . 구구절절하게 일일이 다 풀어서 말했다는 거다 연산한테. 

 

 

야 유자광 졸 대단하단 말이지.

 

 

 

 

 

 

다음 6일 후 기사

 

연산군일기 30권, 연산 4년 7월 17일 신해 4번째기사 1498년 명 홍치(弘治) 11년 
김종직이 도연명의 술주시를 화답한 내용과 이에 대한 대신들의 논의


宗直和陶淵明 《述酒詩》, 其序曰:
김종직이 도연명(陶淵明)의 술주시(述酒詩)를 화답하였는데, 그 서문에 이르기를,

"나는 젊어서 술주(述酒)를 읽고 그 뜻을 살피지 못했는데, 도연명의 시에 화답한 탕동간(湯東磵)의 주소(註疏)를 보고서야 소상히 영릉(零陵)079) 을 애도하는 시임을 알게 되었다. 아아, 탕공(湯公)이 아니었다면 유유(劉裕)의 찬시(纂弑)의 죄와 연명의 충분(忠憤)의 뜻이 거의 숨어버릴 뻔하였도다.
 

 

김종직이 자기의 글 어디에 서문을 썼나 보다, 도연명의 술주시. 에 관련한 글. 저걸 또 단종과 세조에 비유했다 고 해석하고 대신들이 연산과 대화하다.

 

저것도 보면, 유자광이 단서를 주었을거라 대신들에게. 저기에 유자광은 없지만. 대신들이 저 술주시 서문을 저리 끄잡아 낼 잔머리가 없다 ㅋㅋㅋ

 

 

 

 

 

 

 

 

 

 

 

저때 아마 6명인가 죽이는 거 같은데, 나머지는 곤장에 유배에 노비로 보내고 겄지.

 

 

 

 

 

 

 

유자광의 25년만의 복수.

 

 

 

유자광 졸 재밌는 인간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