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보면 먼 재야학자, 재야학자는 머가? 직업이 있는거냐?


진령군 무당얘기, 또 좋다고 퍼나르고 찬양질하고

역사얘길 할라면, 응? 출처나 밝혀라 응?


.

민비 하대시 얘기, 모두 다~~ 황현의 매천야록 얘기.

그거 다 맞냐????



민씨일가가 모든 중앙요직이나 벼슬을 다 꿰찼어? 민씨들이 몇명이냐? 당시에? 근거있냐?




야, 대체 한 사람이, 황현이란 유생과 그 당시 유생들과 개화파 간에, 개화파 내의 저 여자 민비간의 인간적인 그 집단무의식 적인 관계는 좀 고민해 보고서 , 그딴 말들 인용하냐???




명종실록 31권, 명종 20년 4월 6일 임신 2번째기사 1565년 명 가정(嘉靖) 44년 대왕 대비가 승하하다
《書》曰: ‘牝雞之晨, 惟家之索’ 尹氏之謂也。" 서 왈, 빈계지신, 유가지삭, 윤씨지위야
《서경(書經)》 목서(牧誓)에 ‘암탉이 새벽에 우는 것은 집안의 다함이다.’ 하였으니, 윤씨(尹氏)를 이르는 말이라 '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가 죽었다. 명종때 섭정하던. 사관이 이따위로 실록에서 써. 암탉이 새벽에 울어서 집안에 망조가 들었다. 암탉이 울면 집안 망한다는게 저기서 나온 말이다.



조선시대 여자에 대한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이야.


하물며 말이다.

구한말에, 민자영에 대한 시선, 한번 생각해 봤냐??


그 꼰대들 유교 꼰대들의 절정이 구한말이야. 응?


흥선대원군과 안동김씨 세력 쎄면, 고종이랑 민씨는 당근 민씨들 등용할거고, 그건 당연한 정치력이야. 응? 임오군란이 민씨 때문이라는 둥, 야 그딴 편파적 해석을 그래 그리 그대로 주입하는 들은 대체 머냐??



야 조선시대 태조때 부터, 여편네덜은 소격서니 머니, 굿하러 다녔어. 지네 왕가들, 잘 되게 해달라고. 그 소격서 없앤 조광조, 따 당하고 중종한테, 혼자 게기다가. 그 아녀자들 굿하고 불재 다 지냈어. 그거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고 신하들이 연산군한테 시비거는거거든, 수륙재 따위 불제사 지내지 말라니까, 연산이 그러걸랑, 아니 왜 그 이전엔 다 지냈는데 왜 내 애비 성종 불제사를 왕비님들이 지내겠다고 하는데 왜 나한테는 하지말라고 하냐 하는거야. 저때부터 연산이 삐딱하게 나가



야 저 궁내 여자들이 굿하는것도 해오던거야. 머 굿하는걸로 먼년이니 할라면, 조선 왕비들 모두한테 다 먼년하고





저 유교꼰대들이, 민자영이란 여자를 어찌 생각했겠냐? 암탉 주제에 고종 뒤에서 치마속으로 부리네 했겄지?




그 당시 다른 외교관들이 민비 평하는거 봐, 네덜 처럼 민비 어저고 해대는지.




민비가 어떻게 죽었냐. 엉아가 얘기해줬잖냐. 그때 일본 애들이 십대 걍 뒷골목 양아치들부터 군바리까지. 그딴애들이 얼매나 끔찍한 짓을 했는지 아냐

고종은 지 애비 죽은거 장례식도 안갔어.



계사년(1893) 10월 27일 맑음.
익준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저녁을 먹은 뒤 가서 보고 서울 소식을 대강 들었다. 정원경(鄭元京)이 내방하여 말하기를 “양근읍에 우거하는 김 낭자는 진령군(眞靈君)과 친분이 있다. 지금 이 여인을 거간으로 하여 충청ㆍ전라ㆍ경상 3도 대동미 화륜선(火輪船)의 도선주(都船主) 임명 받는 일을 청탁하려고 전인하여 불러왔다. 김 낭자가 관성묘에 배알하고 추첨하여 그 길흉을 점치려고 하는데, 나와 함께 가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내가 익준과 함께 갔더니 홍천실(洪川室)이 김 낭자를 불러서 만나보았다. 인사를 마치고 나는 김 낭자와 함께 내곡(內谷)으로 가서 관성묘에 배알하고 추첨하여 중평괘(中平卦)를 얻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할 듯하였다. 돌아와서 김 낭자는 홍천실로 들어가고, 나는 돌아오는 길에 춘헌에 들러 잠시 이야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구가 독서를 게을리하여 종아리를 호되게 수십 대 때린 후 공소(貢所)에 들어갔다.

하재일기(荷齋日記)
.

저 일기에 유일하게 직접 진령군 만난 이야기가 나온다. 일기 작성자가, 진령군 소문이 나서 청탁하려고, 진령군과 친분이 있는 김낭자와 함께 갔다. 직접 가서 배알하고, 즉 보고, 점괘도 받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할 듯하였다.
.


뜻을 이루지 못했대. 소문 듣고 갔는데.






저게 유일한 기록. 진령군을 만난.







실록기록을 보자


고종 30년 8월 21일 경오 3번째기사 1893년 조선 개국(開國) 502년
전 정언 안효제가 상소를 올려 부당한 제사를 지내기를 좋아하는 자들의 처벌을 아뢰다

전 정언(前正言) 안효제(安孝濟)가 올린 상소의 대략에,

"...
요사이 일종의 괴이한 귀신이 몰래 여우같은 생각을 품고 성제(聖帝)의 딸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스스로 북관왕묘의 주인이 되어 요사스럽고 황당하며 허망한 말로써 중앙과 지방의 사람들을 속이고 함부로 ‘군(君)’ 칭호를 부르며 감히 임금의 총애를 가로채려 하였습니다.
또한 잇속을 늘이기 즐겨하며 염치가 없는 사대부들을 널리 끌어들여서 아우요, 아들이요 하면서 서로 칭찬하고 감춰 주며 가늠할 수 없이 권세를 부려 위엄을 보이거나 생색을 내니, 왕왕 수령(守令)이나 감사(監司)들도 많은 경우 그의 손에서 나옵니다.
아! 신령을 모독하고 사당을 더럽히는 것이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더구나 지금은 나라에 큰 변고나 하늘의 재난도 없고 또한 은탕(殷湯) 때와 같은 큰 가뭄도 없는데, 기도하는 일은 무엇 때문에 자주 하는 것입니까?
겉은 마치 잡신을 모신 사당이나 성황당 같은데, 부처를 위해 둔 제단에서 무당의 염불 소리는 거의 없는 날이 없고, 걸핏하면 수만금의 재정을 소비하여 대궐 안에서의 재계(齋戒)와 제사와 관련한 일들을 마치 불교행사를 하듯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소경 점쟁이와 무당이 이 때문에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중들의 요망스러운 교리가 이 때문에 제멋대로 퍼지며, 하인과 광대들이 이 때문에 떠들썩하게 지껄여 대고, 창고의 재정은 이 때문에 궁색하며, 관청 준칙과 관리 추천은 이 때문에 난잡하게 되고, 대궐 안은 이 때문에 엄숙하지 못하며, 형벌과 표창은 이 때문에 공명정대하지 못하고, 백성은 이 때문에 곤궁에 빠지며, 조정의 정사는 이 때문에 문란하게 되는데, 그 근원을 따지면 모두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숭상하기 때문입니다.
아! 부당한 제사를 지내기 좋아하며 귀신을 모독하면서 복을 구하니 도리어 이런 죄를 짓는 것은 멸망하는 길입니다. 비록 일반 백성들 중에서 사리를 좀 아는 사람인 경우에도 이런 무리들에게 속지 않을 것인데 더구나 총명한 전하가 오히려 깨닫지 못하겠습니까?"
하였다.



안효제는 전 정언, 현직이 아니다. 이전 직책이 임금에 간 하는 사간원의 정언. 정언의 지위

조선시대 사간원(司諫院)의 정육품(正六品) 관직으로 정원은 2원이다. 위로 대사간(大司諫: 正三品 堂上), 사간(司諫: 從三品), 헌납(獻納: 正五品) 각 1원씩 있다.

사간원 중에 제일 말단이었다.


왕왕 수령(守令)이나 감사(監司)들도 많은 경우 그의 손에서 나옵니다..


뭘 그럼 어디 수령이나 누구 감사가 구체적으로 진령군이란 한테 사바사바했다해서 자리를 받았다거나 하던가. 왕왕 은 또 머여? 한문찾기  귀찮음. 걍 어디서 듣고 본 소문.

감히 유교나라에서, 지들이 편협하게 해석한 공자님께서 자기들만의 해석인 괴력난신 경이원지라. 자로에게 굿한지 오래되었다 해서 굿같은거 점치는거 비는거 왜 하냐. 이 숭고한 땅 유교의 나라에서, 사대부님들이 왕이고 사대부님들이 꼭두각시로 모시는 임금님있는나라에서, 굿을 했으면 대체 며칠을 한거래? 일년 365일 굿을 했대?


걸핏하면 수만금의 재정을 소비하여


조선조정에 그따위 수만금의 재정을 소비할 만한 돈이 있었는줄 아니? 임오군란이 왜 일어났니?

.

상소올린 해가 1893년

그 십년전 1882 임오군란에


홍순목: 올해는 흉년인데, 나라 곳간도 다 비었어요. 당장 어제만 해도 군인들이 월급 때문에 고지기를 두들겨 팼답니다. 월급이 13개월이나 밀렸고 1개월치 월급을 줬는데 그 양조차도 개판이랍니다.

고종: 월급 13개월을 안준것도 쪽팔린 일인데 그나마 준 한달치도 제대로 못 주었다니 이게 말이 되냐?

홍순목: 군인은 하루를 위해 10년 훈련하는 애들이잖아요. 월급 1년이나 넘게 안 받고 스스로 의식 해결하면서 군령을 안 어겼으니 오히려 군기가 제대로 잡혀있습니다.

고종: 그러게나 말이야. (그동안 반란 안 일으킨게 신기하구만.)

https://namu.wiki/w/%EC%9E%84%EC%98%A4%EA%B5%B0%EB%9E%80


나무위키 퍼옴. 실록에 있는 걸 누가 요약.

임오군란을  먼 민비 어쩌고 민씨들이 빼돌려서리 저쩌고 소리들.


야 나라 후진 걸 왜 니네가 후지게 취급하는 계집년한테 화살질이니? 쪽팔리지도 않니? 저 계집년과 진령군년이 굿하고 뒤에서 매관매직해서 조선이 망했니?



나도 팩트가 궁금하걸랑?




헌데 팩트라는게 저 안효제 상소. 저거 하나 하고.


다음에 저 상소 후 1년 지나 지석영 참의 의 상소


고종 31년 7월 5일 기묘 3번째기사 1894년 조선 개국(開國) 503년
지석영이 백성의 마음을 치료하고 우수한 인재를 등용하자는 내용의 상소를 올리다

신이 전국의 억만 백성의 입을 대신하여 자세히 진술하겠습니다. 정사를 전횡하고 임금의 총명을 가리며 백성을 수탈하여 소요를 초래하고 원병(援兵)을 불러들이게 만들며 난이 일어나자 먼저 도망친 간신(奸臣) 민영준(閔泳駿)과 신령의 힘을 빙자하여 임금을 현혹시키고 기도한다는 구실로 재물을 축내며 요직을 차지하고 농간을 부린 요사스러운 계집 진령군(眞靈君)에 대하여 온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살점을 씹어 먹으려고 합니다. 아! 저들의 극악한 행위가 아주 큰 데도 한 사람은 귀양을 보내고 한 사람은 문책하지 않으며 마치 아끼고 비호하는 것처럼 하니 백성들의 마음이 어찌 풀리겠습니까....
하니, 비답하기를,
"원래 참작한 것이 있다."
하였다.


저 임오군란의 민영준 이란 간신. 민영휘다 그 조선시대 제일의 갑부. 민영휘가 저때는 민영준. 이후 개명해서 민영휘. 인듯. 확신안섬. 맞을듯. 저기에 진령군 또 나옴.

실록에 나오는 진령군은 저렇게 두번.

고종의 답은. 참작한 것이 있다. 알고 있다. 이다 자기 나름으로.




참의는 지금 과장급, 판서 다음 참판 다음의 참의.

.


안효제. 는 저 상소 전에 9년전 한번 상소를 올린 적이 있다.

고종실록 21권, 고종 21년 6월 6일 무인 5번째기사 1884년 조선 개국(開國) 493년
의복 제도 변경에 관하여 안효제가 상소하다

승문원 부정자(承文院副正字) 안효제(安孝濟)가 올린 상소의 대략에,


하며, 의복을 왜 개정하느냐, 날렵한 의복은 무관들만 하면 되었지. 기자도 극찬한 동방의 예의 지국인 조선에서 문관들마저 그 충과 신의 사상이 옷에도 배어있는걸, 이 위대한 유교의 나라에서 그런 원숭이 차림의 옷을 우리들 까지 입으라니요 하는거다



부정자. 副正字. 면 직위가 보면

조선시대 교서관(校書館)과 승문원(承文院)에 두었던 종구품(從九品) 관직으로 정원은 모두 2원씩이다.


종구품이면 조선 품계 중에 제일 말단. 저 말단에서 저 진령군 상소올릴때 9년후가 정언. 그것도 전직 정언. 정육품. 현직이 먼지 몰겄다. 아주 말단이라. 걍 9급공무원에서 8급공무원된거라. 그리고 상소한거고 그리고 유배를 갔다.




저 안효제의 말을 인용한 것이


소호당집(韶濩堂集) 암서집(巖棲集) 만구집(晩求集) 사미헌집(四未軒集)

이런 네 개 고문에 전하고, 제일 많이 인용하는게 황현의 매천야록.







내 야사 하~~나~~~도 안믿는다.

이건 유자광 정리 하며 확신이 섰다. 야사 걍 전설의 고향수준.



특히 여자들 보는 시선의 유교 꼰대들의 과거 얘기들.



황현의 매천야록 봐라. 우선 오~ 황현은 거짓말 할 사람이 아닙니다. 이리 전제를 깔고 간다. 그리고 자 봅시다~ 황현 이 민비를 이렇게 얘기하네요~ 오 진실입니다~~



.


거 보면 민씨들이 조선팔도 요직을 다 차지했다는 식 비슷하게. 먼 민씨가 씨를 다 뿌렸나? 여흥민씨가? 여흥민씨믄 세종 엄마 아니가?

일본군은 매너있고 청나라 군대는 개차반이고. 라는 매천야록.







유일하게 진령군 만났다는 야사 기록은 저 맨 처음 저 하재일기.

소문듣고 찾아갔는데, 뜻을 이루지 못할 것 같았다. 1893년 10월 27일 기록.

안효제의 상소날짜가 같은 해 8월 21일.
.






고종한테 머라 해. 고종이 다 참작했다잖아~~~~







모~든 신문들 인용하는 것 보면, 모~~든 이름있는 애들 인용하는 거 보면 신문에서, 저놈의 진령군 이야기 . 민비욕질.



민영휘가 해쳐먹은게 민비 죽기 이전이니 이후니. 확실한 팩트 있냐? 민비 죽고 나서 헤쳐먹은 거 까지 민비 탓하믄 좀 억울하지 않겠어?



민승호가 폭사하고 민씨들도 뭉치지 않겟어? 대원군에 안당할라고?


임오군란에 쌀 없는 거, 그게 민씨들 탓이냐? 나라에 돈이 없어 쌀이 없는거 화풀이 민비한테 하게끔 하는 그 속은 또 머고.


.



진령군 얘기. 다 ~~~~ 야사다.



유일하게 진령군 만난 누구 이야기. 저거 맨처음 단 하나!




상소문도 9급 8급 말단 공무원이. 꼰대 유교의 정신에 입까카야 왜 굿질 하느냐? 조선왕비들 그딴 굿질 다~~했다.

매관매직했다느니 수만금을 들여서 굿을 한다느니 과장법. 말단 주제에, 그럼 팩트를 까던가 제대로 믿게.





그래도 욕질을 할라믄, 고종에게 욕질을 해. 고종이 다 참작한 바가 있다잖냐?

왜, 민비의 치맛자락에 놀아난 거 같아?

그럼 그것도 고종ㅅㄲ 잘못이지.





아~~무것도 모른다.





단, 확실한 거 하나.


명성황후든 민비든, 졸~~라게 끔찍하게 죽었다는 것.









이 땅에 xxx들은



지들 남자xxx들이 못나 터진 것 같고,



여자에게 그 탓을 돌린다는 것.



아~~ 민비만 없었으면~~, 진령군이란 무당만 좀 없었으면~~ 조선이 안 넘어갔을려나???



ㅋㅋㅋ x소리







야, 그 책임은 고종에 있잖냐? 그렇게 해석해도?



정말 씨x 해석해서 지들 편한대로 끼워맞추는 거 보면. z~~라게 g때리는 sk들이얌.













저딴 글들 개탄하며 트윗질 하고, 트윗 공유하고, 한숨 쉬며 시대들 한탄하고






아, 증말 z~~라게 웃겨 z~~~라게 웃겨. 먼 코메디도 저따위 코메디가 있냐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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