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ann or Hans Georg von Arnim-Boitzenburg (1583 in Boitzenburger Land – 28 April 1641, in Dresden) was a German general. At different times during the Thirty Years' War, he was a Field Marshal for the Holy Roman Empire and its opponent the Electorate of Saxony. He also pursued various diplomatic tasks.  ]

 

한스 게오르크 폰 아르님-보이첸부르크. 1583-1641. 30년 전쟁 때 사람인데. 요한 이 존 이고 덴마크쪽 위로 독일 북쪽으로 가면 한스.여. 

 

아르님 Arnim 으로 부르는데 이사람을. 보이첸부르크. 에서 태어났어. 아르님 씨가 보에첸부르크 에서 패밀리를 이룬거고. 이들의 성씨는, 땅이야 땅. 땅이 자기들 이름이야. 이 이름 이란 것이 이 씨족 이란 것이 동서를 보면 재밌는건데.

 

저런걸 보더라도, 조선 땅 이름이 참  후지는게 느껴져. 세계사에서 가장 이름이 단순 무식한게 이 조선과 중국이야. 내가 이게 편협한 인식이 들어가서 나오는게 아니라, 얘들은 어찌 이렇게 모든 면이 근본적으로 후져졌냐 말이지. 나중에 정리하고. 참 이름이 단순 무식한거야. 그래서 쟤들 이름 긴게 대갈빡에 안 들어오고, 하물며 일본 이름도 길잖니. 이해가 안되고 암기가 안되는겨 ㅋㅋㅋ.  단순한 뇌가 된겨 이게. 이 이름 석자 만 외우는 지능으로 익숙한 지능으로 추락한거야 이름 자체만 봐도. 이것들이 지들 동무들인 중국을 이 차이나 바이러스 시대에  빨아대는거고, 쟤들 중국들 이름조차 지들보다 약간 길걸랑. 그래서, 발음은 힘들어도, 동질감이 생기는겨 이 개무식한 조선은. 

 

참 너무나 미개해져 버린건데. 이 조선 오백년 이란건 정 말 너무나 끔찍한 비참한 식민 시대야 조선식민지 5백년 이란건. 이게 이어져서 조선 식민지 칠백년째 접어드는건데. 

 

아르님. 을 가만 보니, 그냥 지나갔는데 말이야. 쟤들 조차 저 아르님.은 대게 아는 이가 없어. 

 

저 사람도, 웃겨 저 전쟁시절에. 프로테스탄트여 태생이. 머 저때 프로테스탄트라고 프로테스탄트편에서 전쟁하는것도 아니고, 카톨릭이라고 카톨릭편 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머 딱히 나의 중앙 코트 를 정체성으로 갖는 것도 아니여. 16세기 이후는, 집단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시기지, 확립된 시기가 아녀. 집단 정체성은 월드워 때 야 구축이 된겨 저게. 오백년 지나면서야. 

 

반민족주의자 란게 대체  얼마나 개소리냐 이게. 이 반민족주의자 란건, 미개한 애들이나 떠벌리는 말이야 이게. 

 

유럽사를 보면, 민족 이란건, 로마 이전의 시기가 민족 이야. 게르만 족. 갈리안 족. 게일 족. 슬라브 족. 민족 이란건 핏줄이고, 부락이고, 야만이야. 얘들은 5세기에 게르만 갈리안은 정착하면서, 민족 이란건 지워지는겨. 슬라브도 이 후 자리잡으면서 지워지는거고 저놈의 민족이란건.

 

어떻게  21세기 대명천지에도 여전히 반민족주의자, 민족, 아무리 미개해도, 아무리 정의놀이를 하고싶어 미쳐도. 

 

Peter Ernst, count of Mansfeld (GermanPeter Ernst Graf von Mansfeld;[1] c. 1580 – 29 November 1626), or simply Ernst von Mansfeld, was a German military commander who, despite being a Catholic, fought for the Protestants during the early years of the Thirty Years' War.  

예전에, 만스펠트 의 에른스트.를 봤었는데, 이사람은 유명한 사람이야. 브레다 전투 때 낫사우 모리스.의 배스타드 큰형과 함께 브레다.를 지키다가 모리스 죽고 항복하고 뎃사우 다리 전투 패하고, 쫓기다가 크로아티아 남부해변에서 죽었는데. 이 사람은 아빠가 카를5세때 황금시기단원 받고, 펠리페2세 때 알바공작 페르네이즈 랑 같이 하다 다음 대표주자였걸랑. 합스부르크의 완전한 오른팔이야. 헌데 에른스트.는 배스타드여. 그래도 합스부르크에서 13년 롱투르크 전쟁에, 윌리히 베르크 후계자 전쟁을 한 사람이야. 로마 카톨릭이고, 그러다 황제 동생 레오폴트가 놀려서리, 30년 전쟁때 프로테스탄트로 돌아선거걸랑. 완전한 배신이야 이건. 자기 코트도 배신, 자기 종교도 배신. 

 

저 아르님.은 만스펠트 의 에른스트 와 반대야. 프로테스탄트 였다가, 카톨릭 황제편 으로 돌아서고, 작센에 회의느껴 은퇴했다가 독일 정체성을 띠고 스위든 프랑스와 싸우다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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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 유럽인간들을 보면 말이야. 대게들 조선들 시선으론 반민족주의자 변절자 악마들이걸랑. 

 

그랑콩데 도, 프랑스 애들 입장에선 개야. 감히 프랑스에 등동리고 스페인과 손잡아서 프랑스를 친겨. 그랑콩데는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간 탑텐 에 넣는거고. 넣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겄지만. 

 

쟤들 다 ~ 그래, 유럽 인물사를 보면. 심심하면 상대 손잡아. 헌데 걔들을 반민족이라며 역사평가질 하는 애 없어 없어. 어떻게  반민족 주의자 해대냐. 먼 5세기 게르만 부락 시대를 사는것도 아니고. 어떻게 저런 2천년 이전의 지능 인식 수준의 것들이  21세기에 권력에 앉아서 마이크를 독점해서 잘난 척 을 해 대는지. 

 

일본사도 마찬가지야. 역적에 반민족주의자란게  대체 머여?

 

메이지때 덴노를 반항한 이들은 반민족주의자여? 하코다테 가서 일년 정부세운 막부들과 신센구미들은 반민족주의자여? 

 

조선 같으면 아주 구족에 십족을 멸하걸랑. 여자들은 노예에 첩으로 삼고. 이 조선들은 정말 너무나 추악한데 저런걸 비교해보면. 일본들은, 안죽여. 저때 신정부 세운 애들도, 모~~두 다 메이지때 살려줘서 쟤들로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하걸랑. 

 

이 조선들은, 상대는 적폐고, 일가를 전부 몰살해 쳐죽여. 나중엔  인물이 없어. 그게 임진란 병자란 에 구한말 조선이야. 얼마나 쳐죽였으면, 사람이 없어 사람이. 

 

 

 

이 조선들. 그래서 반민족주의 해대면서, 여자들을 강간 해댄 오백년 조선들이, 여자들 선동해대고,  조선 오백년 강간당한건 당연한거고 일본한테 강간당한건 반민족이냐. 사과하라 사과하라, 절대 위대한 인민군 북조선엔 사과말며 짱게엔 사과 말며, 병란 수십만 노예 잡혀간 거 사과요구 말며. 38년 만에 탈출한 안단 이란 사람도 잡아 보내고. 강간 오백년 당한 여자들 조차 저런 짓을 해대니. 

 

저게  사람 뇌냐 저게. 

 

Arnim was born in Boitzenburger LandBrandenburg. After studies at Frankfurt (Oder)Leipzig, and Rostock, he entered into service at the Prussian court at Königsberg in 1612, a post he had to leave the next year because of a duel.[citation needed] He aided the Swedish army under Gustavus Adolphus against Russia from 1613 to 1617. During a number of years he was sent on secret mission between Gustav Adolph of Sweden and the Elector of Brandenburg to arrange the marriage to Maria Eleonora of Brandenburg, then 1621-22 with his German regiment[1] aided the king of Poland-Lithuania in action against the Ottoman Empire.  

 

아르님. 은 브란덴 부르크.의 보이첸부르크 에서 태어났어. 브란덴부르크 라는건, 아스카니아 가문의 곰 알베르트.가 개척한거잖오. 라우엔부르크.에 작센에. 이 작센 받은 애들이 끊겨서 베틴가문이 갖고가고, 이 베틴이 형 에른스트.와 동생 알베르트로 나뉘어서 카를5세때 슈말칼덴 종교전쟁으로 갈리고, 둘다 프로테스탄트여. 동생쪽 모리스가 1차때 형쪽 에른스트 이기고 선제후권과 땅을 더 갖고가고, 2차때는 카를에 반대해서 진압하고 아우크스부르크 평화조약 하는 일등공신이 되고. 이 작센들은 프로테스탄트여. 브란덴부르크.는 아스카니아에서 비텔스바흐에서 신성로마황제했던 룩셈부르크 에서 호헨졸레른 으로 가서리, 이 호헨졸레른 자식 튜튼기사단장 알베르트.가 폴란드에서 킹에 하미지 하고 더치.를 받으면서 프러시아 더치.를 만들고, 브란덴부르크 와 프러시아 더치.가 합쳐지는겨. 30년 전쟁 시작할때인 1618년 에. 얘들은 프로테스탄트여.

 

원래 작센들과 위 브란덴부르크 는 프로테스탄트여. 이 위 메클렌부르크 도 프로테스탄트여. 덴마크도 프로테스탄트고. 이 30년 전쟁은, 프로테스탄트가 패할 수가 없는겨 이건. 헌데, 너무나 인물이 없었어. 그나마 있던 인물이, 레오폴트한테 배스타드 라며 놀림당해서 여기로 온 만스펠트의 에른스트여. 

 

그리고, 저 아르님.이야. 오데르강의 프랑크푸르트(헷세 마인강이 아니라), 라이프치히, 로스토크 에서 공부하고, 프러시아 더치 수도 쾨니히스페르크.에서 일을 한겨. 서기 1612년. 29세. 다음해 듀얼. 기분나쁘면 결투하는 일대일 법적 전투여. 감정상하고 떠나고, 다음해 30세에 스위든 구스타부스 아돌푸스 군대로 들어가. 여기서 잉그리아 전쟁 러시아 상대를 해. 이때 러시아는 위기의 시기 지나서 막 로마노프 시작하는 미하일.이 자기 땅 회복하려는거고. 1613-17. 나이 30세-34세. 그러면서, 구스타부스 아돌푸스.의 부인이 브란덴부르크 여자여. 이 결혼 비밀 사절이 이 아르님.이고, 프러시아 더치에서 일년 일했고 여긴 브란덴부르크 핏줄이고, 아르님은 브란덴부르크 태생이고. 그리고 1621-22 에, 폴란스 오스만 전쟁. 이건 둘이 직접 처음 부딪히는겨, 이전엔 몰도바 를 사이에 두고 간접적으로 부딪힌거고. 이건 이전 썰했던, 오스만이 트랜실베니아 베뜰렌이 중재해서, 1618년 30년 전쟁 시작할때, 보헤미아 한테 돈받기로 하고 오스만이 쳐들어간겨 합스부르크 상대한다고, 이때 합스부르크 대변인은 폴란드가 되는거고. 

 

저때는, 프러시아 더치.라는게 프로테스탄트 지만 폴란드에 하미지를 한거고, 이때 폴란드 지기스문트는 합스부르크에 완벽히 기운거고 얜 로마카톨릭에 미친거고 폴란드를 카톨릭으로 만드려는게 깔리고, 그래도 오스만이 오니까, 아르님.은 자기 병력들 데리고, 폴란드에 편에서 오스만과 싸운거야. 이때는 폴란드는 30년 전쟁 입장에서 저걸 하는게 아냐. 이건 나중에야 알게 되는거고 이런 스킴으로 전쟁이 난건. 걍 오스만이 기어코 쳐 올라오는걸 코트 차원에서 막는거고. 

 

In 1626, although a Protestant, he was persuaded by Wallenstein to enter into the army of the Holy Roman Empire. He quickly rose to the rank of field marshal, and won the esteem of his soldiers as well as that of his commander, whose close friend and faithful ally he became. This attachment to Wallenstein, and a spirit of religious toleration, were the leading motives of a strange career of military and political inconstancy.    

 

1626년. 43세. 프로테스탄트 지만, 발렌슈타인에 설득이 되서, 합스부르크로 들어가. 저때는 스위든 도 참전 안할때고, 작센이나 브란덴부르크 나 우왕좌왕 할때야. 여긴 인물이 없어. 요때 쓸만한 인간 아르님.을 발렌슈타인 이 꼬신겨. 이 인간도 원래 훗사이트였어, 카톨릭 한겨. 머 그따위 종교가 머라고. 야 나도 바꿨어 너도 바꿔. 잘 살자 그냥 서로. 내가 나중 한자리 주께. 그랴 그랴. 바로 캐스팅 되서, 필드 마샬 로 가는겨. 이건, 하나의 전쟁터 에서 총괄 지휘하는 자리야 필드 마샬 이란건. 이때는 발렌슈타인 이 전쟁만 하면 이기는 시대고, 이때 한 축이 이 아르님. 이라는 브란덴부르크 태생, 프러시아 더치 코트 1년에 스위든 코트 4년에 뒤에 오스만과 2년 전쟁했던, 이미 10년 이상을 전쟁에서 전투력 상승한 이 프로테스탄트여. 

 

발렌슈타인도 전향한 인간, 이 인간도 전향한 인간, 머 그렇다고 프로테스탄트 악마 하겄어? 오히려 더 넓어 폭이. 헌데 하튼 이상한 커리어를 갖고, 정치적으론 비일관 되었다는거지.

 

비 일관적으로 사는겨 인생은. 인생은 변절하면서 사는거고. 

 

三法印梵語:Trilakṣaṇā dharmamudrā 或 Tri-dṛṣṭi-nimitta-mudrā),佛教術語,即「诸行无常、诸法无我涅槃寂靜」三項標準,大乘佛教認為可以用這三項標準來驗證教說是否屬於佛教正法,有如世间印信,用为证明,故名法印。其內容可見於《雜阿含經》,但將這三種教說並列,稱為三法印,可最早追溯至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

 

삼법인, 이라고 하잖냐. 제행무상, 무아, 열반숙정. 3항 표준. 대승불교에서 이 세개표준 잣대를 갖고 정법에 속하는가 아닌가를 검증한다고 해서, 검증되면 참잘햇어요 라며 찍힌 도장 이라 법인. 이라 이름을 지어. 세개가 다 찍혀야 하는 삼법인.이야. 

 

In Buddhism, the three marks of existence are three characteristics (PalitilakkhaaSanskritत्रिलक्षण, trilakaa) of all existence and beings, namely impermanence (aniccā), unsatisfactoriness or suffering (duḥkha),[1] and non-self (anattā).[2][3][4] These three characteristics are mentioned in verses 277, 278 and 279 of the Dhammapada.[5] That humans are subject to delusion about the three marks, that this delusion results in suffering, and that removal of that delusion results in the end of suffering, is a central theme in the Buddhist Four Noble Truths and Noble Eightfold Path.  

 

이걸 영어로, 뜨리 마크스 오브 이그지스턴스. 라고 해. 존재 에 대한 세 징표 도장. 이라는게, 이 불교 이야기 존재.라는 것과, 서양 철학에서 나오는 이그지스턴스.는 이게 개념이 시작이 다른겨. 저걸 무아론과 윤회론 논쟁  해대는거 보면 정말 코메디야. 그것도 칸트애들이 저런 걸 해. 이땅 애들은 참 아 말을 말자고. 조선땅은 기본적으로, 논쟁 이란걸 해본 적이 없어. 해봤자 상복 몇년 입어야 하나, 대명률에 의하면요, 에 호락논쟁. 개에게 불성이 있나. 참 불쌍해 여긴. 

 

아니카, 두카, 아나타. 아니카 라는게 임퍼머넌스.야. 퍼머넌트.라는건 찌꺼기라도 남은거야. 끝까지 살아남은겨 이건. 라틴어야. 임퍼머넌트 는 안남어. 지속되는게 아냐. 사라지는거고 순간이야. 세상은 순간 이란겨. 인컨시스턴스. 는 비일관됨 인거고. 어감이 달라 이게. 니카. 에 아. 라는 부정이야. 퍼머넌트 도 아니고, 컨스턴트 도 아닌겨. 변한다는거에 방점이 있는거고, 영원한건 절대없어고 순간 이야. 

 

저게, 존재 라는 세가지 옳음 의 도장이야. 여기서 존재 란건, 아리스토형의 빙쿠아빙 온토스온 이 아녀. 저걸 서양철학 하는애들이 존재 모든걸 번역해대고 뜬굼없는 피상적 단어로 속은 전혀 다른 내용들로 논쟁을 해대는건 정말 코메디인데. 칸트 이야기 하면서, 스코투스 오컴 이야기 비교할 줄 아는 애, 아비세나 이야기 로 대입해 보는 애 단 하나 없을텐데. 저건 아리스토의 변주여 칸트 라는건. 칸트 의 마지막 결론으로 가는건 그래서 떨림 인겨 이건. 세상은 나만의 안경으로 보는 선글라스 세상이야. 얜 이말 하려는 거걸랑 일차적으로. 얘도, 저 세상은 자체가 허상인겨, 철저한 관념론자야, 얘가 어떻게 관념론을 허상으로 취급을 하냐. 이걸 다시 꺼내서 칸트말을 도장 찍는게 쇼펜하우어의 월드 는 나의 레프리젠테이션 이다 라는거고, 이게 프로이트의 이드 에 칼융의 무의식이야. 이 시작은 칸트이고, 칸트 는 데카르트 의 아류이고. 아 이 얘길 나중에 정리해야 하는데 말이지. 

 

불교의 존재 는 저건 피상적인 거야. 우시아 가 아니라, 우시아 에 붙은 아이엔지,라는 아홉카테고리들이야. 저건 모두 허상이란겨 싯달타는. 허상 때문에 두카, 고통인거고, 아나타 라는게 그래서 원래 나 라는건 없는거야, 나 라는 게 생겨서 윤회가 되는거걸랑. 열반 해야 하는겨. 해탈 이 아냐. 해탈 은 나 를 인정하는겨 이건. 해탈은 아나타 가 아냐. 열반 이라는 니르바나 가 정법 이여. 이게 힌두교와 불교가 다른 , 단, 하나 야. 아나타 라는 개념이.

 

세상은 일관되게 사는게 아냐. 아니카. 제법 무상. 이야. 변절 해대며 사는겨. 세상 이란 존재 는, 아니카 야. 제법 무상 이야. 세상은 일관되요 변하지 맙시다. 완전한 완벽한 사이비야 이건. 

 

어라 말해보니까 완전 내가 사이비 교주가 된 걸세 이거. 

 

인컨시스턴시. 좋은 말이야. 비일관되게 변절하면서 살어. 스트레인지 해보일 지언정 ㅋㅋㅋ.

 

 

위키.에 아르님이 내용이 없어. 

 

Arnim, a devoted Lutheran himself, was sent with his imperial troops by the emperor Ferdinand II to aid Swedish-Polish King Sigismund III in the battle against the Lutheran Gustavus Adolphus of Sweden on 17 June 1629 at Stuhm. Arnim and his troops carried out this task very reluctantly. When the Polish did not pay the troops they mutinied or went over to the Swedish side.[citation needed]  

 

Moksha. 모크샤 라는건 불교 단어가 아녀 이건. 이건 힌두교 자이나교 주제어야. 이 모크샤 가 해탈인데, 불교는 니르바나 라는 열반.이여. 아트만 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불교와 힌두교를 갈라.

 

아르님.은 독실한 루터파여. 그럼에도 1629년에, 스춤(스툼) 에 황제 군대로 가서 프로테스탄트랑 싸우라는겨 스위든의. 여긴 비스와강 하류여. 아 하기 싫은거지. 스위든이 여까지 들어온겨 본격 참전 전에. 폴란드가 돈을 안줘, 아르님 병력이 오히려 스위든 쪽으로 전향했거나 명령불복종 하다. 돈이라도 주던가.

 

Arnim left the imperial service on account of the Edict of Restitution and Wallenstein's dismissal. He entered that of the Elector John George of Saxony, and was in command of the left wing of the army of Gustavus Adolphus at Breitenfeld (1631); indeed the alliance of Sweden and Saxony, two Protestant powers, in the cause of their common religion was largely his work.[2] He then invaded Bohemia, took Prague, and was victorious at Nimburg (today Nymburk), and in 1632 returned to Saxony, then fought in Brandenburg and Silesia. He was one of the principal agents in the negotiations between John George and Wallenstein, which were terminated by the latter's death in 1634.[2] After this, he defeated the imperial army at Liegnitz and operated in conjunction with Bauer in Bohemia.  

 

리스티튜션 칙령.이라는 복구령이 1629년 3월 인데. 이걸로 발렌슈타인도 기분나쁜거고, 황제가 카톨릭을 쎄게 심으려는 시도이고 프로테스탄트 를 허용 안하려는거고. 이 이후 아르님은 기분 나쁜 상태에서 스춤.을 간거고. 아예 작센 선제후 쪽으로 돌아선거고. 다음에 스위든이 본격적으로 들어와서 이쪽 부대로 들어와. 헌데 작센 선제후 게오르크 가 정말 무의미한 존재지만. 어쨌거나 이 두 부대의 결합의 역할을 이 아르님.이 대부분 했다는거지. 그리고 보헤미아로 쳐들어가서 프라하도 취하고, 님부르크 도 이기고, 작센으로 돌아와서 브란덴부르크에 실레시아에서도 전투하고. 그는 작센 선제후와 발렌슈타인 사이에서 제일의 협상가로 중재하였다, 아 헌데 발렌슈타인 이 죽었어 암살당해서 황제한테. 다시 전쟁하고, 리크니츠 에서 황제군을 격파하고

 

In protest at the Peace of Prague, Arnim left the Saxon forces in 1635 and retired from active life.[2] He was kidnapped by Axel Oxenstierna, for alleged intrigues against Sweden, and was taken to Stockholm in 1637, but escaped to Hamburg in November 1638 and thereafter devoted himself to freeing Germany from foreign domination. He was carrying on a campaign, as lieutenant general of the imperial and Saxon forces against the French and Swedes, when he died in Dresden.  

 

프라하 평화조약이 1635년. 황제 페르디난트2세.가 발렌슈타인 암살시키고 좋아했지만 바로 수세로 몰리고, 작센선제후 요한 게오르크.한테 너 땅 줄테니까 마무리하자. 아르님이 작센을 떠나 저해에, 그리고 은퇴해. 악셀 옥센흐아나.에게 납치가 되고, 스위든 나중 최고 카운슬러고 이사람은. 스위든이 당연히 열받아서 작정하고 체호한거고, 스톡홀롬으로 잡혀와. 1637년. 54세. 탈출하고 함부르크로 와서, 독일땅을 외세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헌신하다. 다시 황제군과 작센 병력의 사령관으로 프랑스와 스위든을 상대로 전쟁하다. 이젠 프랑스까지 왔으니. 

 

드레스덴에서 죽다. 1641. 5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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