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is II de Bourbon, Prince of Condé (8 September 1621 – 11 December 1686) was a French general and the most famous representative of the Condé branch of the House of Bourbon. Prior to his father's death in 1646, he was styled the Duc d'Enghien. For his military prowess he was known as le Grand Condé.  

 

부르봉의 루이2세. 콩데 의 프린스. 일명 그랑 콩데. 뒥 덩걍. 엉걍. 이란게 더치로 edingen 에이딩엔.이고, 에노 에 있는 도시여. 그랑콩데가 플랑드르 군대와 싸워서 받은 타이틀인데. 이름뿐인. 저기 공작 이라며. 그래서 당시 뒥 덩컁.으로 불린겨. 엉걍의 공작 으로. 그랑 콩데 로 사람들은 쓰는거고. 

 

Henri de La Tour d'Auvergne, vicomte de Turenne (11 September 1611 – 27 July 1675), often called simply Turenne, was a French Marshal General and the most illustrious member of the La Tour d'Auvergne family. His military exploits over his five-decade career earned him a reputation as one of the greatest generals in modern history.  

 

라투르 도베르뉴 가문의 앙리. 투렌의 후작. 해서 투렌 으로 부르는데. 그랑콩데 보다 10살 많은 1611년 생이야.

 

새삼 이 두 인간이 찐한데. 이전 잠깐 언급했지만, 그리 언급하며 지나치기엔, 무게감이 남달라 저 둘이.

 

어린 그랑콩데는 천재여. 10년 연상인 투렌은 둔재여. 헌데 둔재인 투렌이 저 높이 평가가 돼. 투렌 능력이 더 보다 탁월했어. 

 

투렌.은 1675년 자스바흐 Sasbach 전투에서 대포맞아 죽어. 여긴 알자스 쪽 독일땅 라인강 상류고. 프랑스-네덜란드 전쟁 초반에, 네덜란드 지원하는 신성로마 랑 싸우러 여기가서 죽은겨 7월에.

 

그랑콩데.는 투렌의 부대를 받아서 라인강에서 저 합스부르크 군대랑 마저 싸우다가 진압하고 저 1675년에. 그리고 은퇴를 해. 지칠대로 지쳐서. 10년 후 1786년 에 죽어. 투렌은 54세. 그랑콩데는 55세. 같은 나이로 죽은겨. 

 

투렌은 거의 전승이야. 그랑콩데가 프랑스에 배신감 느끼고 적이 되었을때 그랑콩데는 투렌을 못이겼어. 둘이 싸운 대표적인게 프롱드때와 프랑스-스페인전쟁때 의 더둔스 전투걸랑. 이걸로 비교하긴 솔직히 무리야 그랑콩데의 입지 면에서. 어쨌거나 단순 비교시 그랑콩데는 투렌에 졌어 두번 다. 그래도 둘은 이전에 전장에서 같이 전투도 한 찌인한 사이였고, 이후에도 그랑콩데는 투렌이 죽고서 저 부대를 이끌만큼, 둘 사이는 이게 남다른거야. 투렌이 죽고, 그랑콩데가 복수 비슷하게 투렌부대를 이끌어서 라인강 전투하고, 바로 은퇴한겨, 아파서. 

 

그랑콩데는, 투렌에 비교를 할 수가 없는 인간이야. 투렌은 어릴때부터 전장에 있던 사람이야. 낫사우 모리스 말년에 직접 근위대 서면서 모리스의 군사학을 직접 체험한 인간이야 투렌은. 그리고 그 동생 프레데릭 헨리 밑에서 실전을 경험하고, 십대부터. 이 배움은 저때 가장 탁월한겨 어느누구보다. 모리스 의 군사학으로 유럽 애들이 배워서 전쟁을 한겨 스위든도. 최강이야 이건. 투렌은 저런 네덜란드에서 십대 때부터 직접 몸소 익힌겨.

 

그랑콩데는, 인문학을 익혔을 뿐이야. 골때리는 인간이야 이 그랑콩데. 이사람은 진짜 천재여 이건. 책상에서 공부만 하다가, 그리고 십대에 아빠 자리비울때 영지 다스린 경험이 다여. 그리곤 갓 20 때부터 전쟁 참여해서 직접 배우고 익혀서 전쟁이 먼가를 습한거걸랑. 그랑콩데 를 가만 보믄 기가막혀. 이런 인간은 없어. 드물어. 이와 비슷한 인간이 나폴레옹 이야. 아니, 나폴레옹보다 더 천재여. 나폴레옹은 인문학이 만든 인간이야. 인문학과 수학이. 나폴레옹은 포병이라 수학 을 학자 수준으로 익혀야만 했던 사관학교 생도여. 이인간은 그랑콩데 에 더하여, 전쟁학 을 배운겨 학교에서. 

 

헌데 그랑콩데.는 달러. 이 사람땐 사관학교란건 없어. 걸어다니는 모리스 가 사관학교고 이걸 경험한건 투렌 이걸랑. 그랑콩데는 제수이트 학교에서 걍 일반적인 학문들을 익혔을 뿐이야. 법학 수학 역사학 을 배웠을 뿐이고. 헌데 이런 책상 지식을 갖고 전쟁에서 바로 활용한 인간이 그랑콩데야. 나폴레옹 보다 전쟁학 밑천이 없어 그랑콩데는.

 

이런 인간은 말이지, 역사에서 유이한 두 인간이 있어. 알렉산드로스 와 카이사르.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는 아빠 필리포스2세.가 다 만든걸 취한 사람일 뿐이야. 필리포스 가 만든 군대와 전법을 동방원정할때 써먹었을 뿐이고. 인문학을 아리스토 포함 당대 최고의 사람들에게서 배운게 바탕이 된거고. 필리포스의 바닥에서 알렉산드로스 는 단지 그 연장선일 뿐이걸랑.

 

카이사르.는 태생이 율리우스 씨족이고. 로마 최고의 파트리쿠스.이자 파트로누스 집안이야. 어릴때부터 전쟁 기술을 습한 사람이고, 말 탈때도 고삐 안잡고, 오토바이 탈때 두손 놓고 타이타닉 놀이 하듯이 말타면서 놀던 인간이야. 

 

그랑콩데 는 아녀 저런것도. 이 인간은 볼 수록 특이한겨 이게. 경력을 보면.

 

프로디지 라는 신동. 천재 는, 단지 두뇌 좋은건 사례가 많아. 음악 에도 많이 출현하는게 이 신동 천재 이고.

 

헌데, 사람들 간의 부닥침 의 문제, 사람들을 이끌고, 상대의 무리들을 상대하는 건, 이건 전혀 다른겨. 이 분야는, 타고난 천재 란건 있을 수가 없어. 역사적 으로.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조차 저런 이유 가 있었어. 

 

노부나가 가 통일의 발판을 만들었지만, 이 인간도 어릴때 전패 만 한 인간이야. 얘도 우에스기 겐신, 다케다 신겐, 장인 사이토 도산 에게  배우고, 패하고 패하고 나서야 승리자 가 되기 시작한거걸랑. 이에야스 조차 마찬가지야. 노부나가 따라서 일부러 앞장선겨 전쟁 을 익히려고. 히데요시 라는 그야말로 이건 말단 무사도 아닌, 하치리 중에 하치리 시중이 히데요시가 된건 저런 노부나가를 직접 옆에서 익혔기 때문에 히데요시 일 뿐이걸랑. 

 

그런면에서, 저 그랑콩데,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인간이여. 

 

헌데,  반대로, 10년 형님이신 투렌.은 전혀 달라 그랑콩데와. 출생도 다르거니와, 이 사람은, 어릴때 바보인줄 알고 부모가 포기한 아이야. 말을 못했어 버버버버. 아 얘 바보구나. 

 

쉼. 아 지친다 요즘 또. 

 

단지 생각만 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적어둔다는 것은 다르더라구요.

 

칼의 노래.에 문득문득 걸리는 문장들이 몇개 되던데. 저것도 그렇고. 

 

적다보면, 막막 다른게 생각이나, 그래서 그걸 적다보면, 또다른 게 적어져. 

 

내가 이걸 내 생각이  세계역사상 유일무이하게 탁월함을 자랑하려는게 아니라, 이런 벌레들의 땅에서 자랑해 본들 먼 의미가 있겄으며, 벌레들이 알아준다고 먼 의미가 있겄으며, 단지 나를 위해 적어나가는건데. 

 

나이가 들면 대부분, 운명론에 절절하게 되걸랑. 나도 나이 이십이 되니까, 운명론적 사고에 푸욱 빠질 수 밖에 없더라고 지금 이십좀 넘어가니까. 그러다가 말이지, 이 역사를 디다보면서, 아니, 유럽사를 더 정리를 직접 해보면서, 이게 다른 비유럽과 비교가 되면서, 완전히 이 운명론에서 탈피를 하게 되었어. 

 

난 운명론을 철저히 안믿어. 머 그렇다고 인간이 슈퍼맨으로 내맘대로 되는 거다 라고 말할 수 없지만.

 

지구 라는 행성이 존재한다는건 불가능한 가능태여 이건. 

 

헌데 말이지, 지구라는 생성으로 탄생된 생명창조 의 가능태 못지 않게 불가능한 확률은, 유럽 역사여. 16세기에 터진 근대라는겨. 이건 불가능한 가능이여 이건. 어떤면에서? 다른 땅과 비교를 해보면. 

 

조선 오백년의 모습은, 오천년 이전의 그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아. 

 

유럽의 근대가 없었으면, 우리는 여전히 저런 조선 을 사는거걸랑. 물론 조선에 환장한 애들은 조선을 그리워 하겠지만.

 

불가능한겨 유럽애들이 없었으면 지금 문명이란건. 

 

저런 유럽의 근대가 16세기에 만들어진 건, 그야말로 저건 기가막힌 경우의 수들의 연속이었걸랑. 수메르 이후 칠천년만의 성과야. 지금 문명은 저런 이전 수천년의 것들을 이어서 만든 유럽 천년중세의 산물이걸랑. 이건  희박한 경우의 수들의 조합의 결과야. 16세기 이후 계몽주의니 산업혁명이니 그딴건 터질 수 밖에 없는겨. 

 

저건 운명이 아녀 유럽애들의 문명은. 피터지는 역사의 결과물이야. 저 속에서 터진 사유의 산출물이고. 이건, 신이 개입한게 아냐. 저들 수천년의 인간들이 적극적으로 만들어낸 상품일 뿐이야.

 

그외의 땅들은, 운명이여 운명. 걍 저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의 벌레들일 뿐인건데.

 

저런 생각을, 아 적어보니까 적다보니까 닥아오는거더라고. 

 

꼭지에 숫자들 늘어나는건, 원래 의도가 없었어. 헌데 막 적다보면 말이지, 막막 터지는겨. 대게 모든 글들이, 계획은 이십 삼십만 생각하고 적다보니 나온 또다른 생각들이걸랑. 

 

화폐 이야기. 화약 이야기. 저런 글들 조차도 세상 어디에도 없어 저게. 저것도 적다보니 늘어난겨. 그리스도 이야기 도 저게 적다보니 늘어난거고. 

 

교회와 세속의 분리 라는 제목 과 주제도, 저게 뜬굼포로 적다보니 탁 티나온 단어와 주제여 저게. 내 저거 적다가 희열을 느꼈다니까? 저걸 내가 미리 갖고 쓴 제목이 아녀 ㅋㅋㅋ. 저게 맞아 저게. 어 헌데 말이지, 마의 산. 이라는 토마스 만.의 소설책을 보니까, 저따위 논쟁을 하는겨 제수이트와 프리메이슨이. 저 마의산 이란건 토마스 만,이 당시까지의 문명사 사유사 를 종합하는 의도의 책이여 저게. 저건 철학사 를 소설로 저 인간이 쓴거걸랑. 나한텐 너무나 쉽지만, 니덜에겐 대단한 듯 보이는 거일테고. 

 

유치해 마의산.

 

저게 자기 책을 저걸 두번 읽어야 맛을 느낄꺼래. 걍 한번 다 보니, 별거 없더라  재미도 없고 별 같잖은 얘기 나 잘났소 식으로. 

 

쟤들 19세기 20세기 초반까지의 저때 소설이란게, 애들이 살롱 애들이고 사교 모임 의 인간들이야 저때 모두가. 

 

잘난 척 하는겨 쟤들이. 저런 소설 쓰고 논문 쓰고 그걸로 모임가면 스타가 되는겨. 그래서 유식한척 팩트 베이스로  뒤져서 삽입하는거고. 

 

저게 소설이 아니라, 대부분, 논설문이고 논문이야 그래서 18세기 19세기 소설이라는게. 이후 20세기 지나는 소설들이란게. 

 

그래서  어려운겨. 역사를 알아도 이해할까 말까인데. 저걸 번역하는 애 조차도 몰라 저게 무슨 의미인지. 하물며 저걸 읽는 한글러 독자들이 멀 알겠니. 저런 책 하나 읽으면 걍 뿌듯하고 어머 책 잘 썼어  해대는거고. 

 

지나보면,  유치해. 대부분 찬양 받는 작가들 저 유럽애들조차, 지금 시대의 내가 보면, 못봐줘 그 수준이. 헌데 저런 글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시대가 온거야. 하물며 저런 수준의 글들을 넘을 글들이 안나오는거고. 

 

저런걸 써야 해. 적어야 해. 쟤들이 저리 적으면서 사유가 확장이 되면서, 지금 문명을 만들어 온거고, 만들어 나가는겨.

 

보기만 하면 안돼. 써야 해. 적어야 해. 

 

내가 적는 이유야. 적으니까 다른 생각이 나고, 그래서 더 적으니까 더 생각이 나고. 아니 샹 세상 모든 리터러쳐 중에 그야말로 나의 글이 최고일 수 밖에 없는겨. 적어야 찐하게 새겨져. 내가 적은 글들은, 내가 다 기억을 하고 있걸랑. 

 

적는 버릇을 들여 니덜도. 이 조선에서 탈출하려면. 

 

그러면, 운명을 벗어날, 먼가 희망이 발판이 보이는 거걸랑. 아 보이네 보이나 하다가 죽을 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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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콩데.는 콩데의 프린스여. 부르봉의 앙리4세가 시작할때 앙리의 아빠 앙트완.의 동생이 콩데 시작 루이고 이 핏줄이야. 이 콩데의 부르봉에 대한 의리는 1789까지 가는겨 가장 부르봉을 적극지지해 끝까지. 교육도 부르봉 이고 콩데 라서 최고로 받은겨. 아빠가 1638년에 푸엔테라비아 전투.에 참전해. 피레네 넘어서. 이때 바다에서 데 수르디스, 보르도 대주교가 게타리아 해전으로 지원하는거고, 30년 전쟁때야. 이때 그랑콩데 는 17세여. 아빠가 비운 영지를 이때 얘가 다스리는겨. 이게 사회경험 시작이야. 공부만 하다가. 

 

투렌.은 달라. 라투르 도베르뉴 집안. 오베르뉴 의 투르 가문이고. 여기서 왼쪽 아래 투렌.의 후작이 된건데. 

 

Henri de La Tour d'Auvergne (titular Duke of Bouillonjure uxoriscomte de Montfort et Negrepelisse, vicomte de Turenne, Castillon, et Lanquais) (28 September 1555 – 25 March 1623)  

 

투렌의 아빠 같은 이름 앙리. 얘들은 대개 이름을 그대로 쓰는겨. 정체성은 퍼스트 네임 에 있는게 아녀, 뒤의 성, 가문에 잇어. 데라투르, 데라투르도베르뉴 라는 성이 얘들 정체성이야. 얘들은 철저한 가문의 사람들이야. 이게 일본애들이었고. 

 

투렌은 원래 오베르뉴 의 투르 에서 시작한 가문이야. 헌데 투렌의 아빠가, 부용 공작녀 와 결혼하면서, 부용공작 타이틀을 취하는겨 이때부터. 부용 이라는 건 십자군때 부용의 곳프리였고, 플랑드르 가문꺼였고, 이 곳프리가 십자군 가려고 이걸 리에주 주교에게 팔어. 자금 마련하려고. 리에주 주교가 이걸 또 팔고, La Marck 라 마르크 가문 이 갖았다가, 이 라마르크 는 라인강 하류 베르크 Berg. 율리히 베르크 할때, 베르크 의 방계여. 이 라마르크 여자가 마지막이고, 이걸 신랑이 취하면서, 투렌 아빠부터 부용 공작이야. 저 부용 조차, 앙리2세 가 갖고 온거지만 저기 정체성은 여전히 신성로마야. 이걸 오베르뉴 가 갖고오면서 프랑스를 심는겨. 

 

투렌의 엄마 는 부용의 라마르크 여자가 아냐. 죽어 이여자가. 아빠가 두번째 결혼하는 여자가, 하필이면, 침묵 오렌지.의 딸이야. 침묵 오렌지가 네번 결혼해서 자식들이 16명이여. 이 여자 엘리자벳.은 낫사우 모리스 와 배가 다른 여동생.이야.

 

이 투렌의 엄마 엘리자벳.이 침묵 오렌지의 딸이고. 당연히 칼뱅이고. 투렌은 위그노여 그래서. 

 

헌데 이 엄마 의 정체성이 또한, 반은 프랑스여. 아빠는 오렌지 시작 침묵이 지만, 엄마가 부르봉-몽펜시에.의 샬롯데.야. 

 

몽펜시에.는 부르봉의 방계고. 부르봉 샬롯데.가 오빠가 몽펜시에 공작.이야. 이 몽펜시에 공작.의 딸이, 부르봉의 가스통이랑 결혼해서 우리언니 마드모아젤 을 낳는겨. 투렌과 마드모아젤 이 세컨드 커즌이야 엄마들 쪽으로. 

 

투렌은 엄마쪽으로 오렌지와 부르봉이 겹치는겨. 

 

아빠가 1623년에 죽어. 투렌 12세에. 아빠는 부인이 두번째인 오렌지 딸이고, 1595년에, 낭트칙령 다음해 앙리2세 밑에서 스페인에 전쟁하다 패해. 프랑스 종교전쟁 막판이야. 그리고 잉글랜드 제노바 로 갔다가 돌아와서, 어린 루이13세 있을때 프랑스 코트로 와서, 저때 실세인 엄마 메디치의 마리.에 반대했다가 같은편이 돼. 이때는 루이13세가 막 성인 되서 엄마 메디치랑 싸울때고. 그러다 투렌 12세에 죽은겨.

 

투렌이 14세. 1625년.에 낫사우 모리스에게 가는겨. 전쟁 배우려고. 보디가드로 있는겨. 걍 페이지 보이 여. 외삼촌이걸랑. 헌데 모리스가 저해에 죽어. 작은 외삼촌인 프레데릭 헨리.밑에서 계속 있는겨. 

 

Frederick Henry of Nassau, who succeeded his brother Maurice as Stadtholder and Prince of Orange in 1625, granted Turenne a captaincy in 1626.[2][7] He personally drilled his troops, as was the custom in that time, and won their respect with his charity and simple lifestyle.[10]  

 

프레데릭 헨리.가 투렌.에게 다음해 1626년, 투렌 나이 15세에 병력 일부를 주고, 캡틴을 시켜. 중대장 정도. 얘가 이걸 스스로 자기부대원들을 훈련시키는겨 15세에. 그러면서 모랄. 베풀고 리더자상을 보여주면서 존경을 받아 자기 부대원들로 부터. 15세 짜리가. 

 

In 1630 Turenne left the Netherlands and entered the service of France, motivated both by the prospect of military advancement[4][6] but also because of his mother's desire to display loyalty to the French crown  

 

1630년. 19세에 프랑스로 간겨. 14세 1625년 부터 1630년 은 네덜란드 80년 전쟁 후반전이자 30년 전쟁 시작한거고, 이때까진 프랑스는 참전 안한거고, 네덜란드에서 전쟁을 한건데, 얜 15세 갓 넘은 애가, 낫사우 가 쟤 스스로 교육 경험 하란 거걸랑 저건. 전쟁도 참여해. 성과는 없어. 배우는겨 패하면서 앤. 저기서 5년 을 익힌겨. 14세에서 19세 까지. 

 

 

엄마가 오렌지딸이고, 얘도 오렌지고, 저때 리슐리외 있었을때고, 리슐리외가 싫어서 엄마쪽 네덜란드를 간겨. 14세에. 

 

헌데, 엄마가, 반은 오렌지 지만, 반은 부르봉이야. 죽은 신랑도 오베르뉴 가문이고, 부용도 당시 프랑스 코트에 하미지 하는거야. 엄마가 투렌을 프랑스 코트에 충성하라고 보낸거야. 투렌이 19세 부터인 1630년 부터 프랑스 리슐리외에 갔는데, 리슐리외.도 위대한 인간이야. 종교 안가려. 능력을 안겨. 저 나이의 투렌에게, 커널. 중대급 이상의 부대를 맡긴겨. 그리고는 오렌지쪽 네덜란드 지원하러 보낸겨 이때부터. 프랑스에서 1635년 참전 전에 이미 이렇게 지원을 하는겨 네덜란드를. 

 

투렌은 저 1630년 부터, 19세 부터, 죽을때까지 말이야, 완전히 프랑스 쪽에서 전쟁만 하던 사람이야. 저 전쟁 목록을 보면 아마, 프랑스 뿐 아니라 전 세계 군인들 중에 독보적 일듯해. 

 

 It is said that much of his money found its way to the poor during his early life.[4][6] He received a Huguenot education and the usual training of a young noble of the time, but physical infirmity,[2][4][6] and particularly an impediment of speech (which he never lost), hampered his progress, though he showed a marked partiality for history and geography, and was greatly impressed by the exploits of Alexander the Great and Caesar.[2][4] At first he was a lazy student.[6] After his father began claiming that his intellectual laziness would be as great a barrier to joining the army as his physical weakness he began to study on his own accord.[6] After his father's death in 1623, he devoted himself to bodily exercises and in a great measure overcame his natural weakness.[4]  

 

투렌.이 성격 자체가, 어릴때부터, 좀 달러 이게. 어릴때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준겨. 저 표현은, 몰래 주는겨. 위그노 교육을 받았고 당시 젊은 귀족들이 받는 훈련을 했는데, 신체적으로 약해 근본적으로. 특히나, 언어 장애 가 있는겨. 언어 능력이 거의 없던겨 어릴때. 이건  심각한 문제야. 언어 라는 능력 저하는. 이게 발전을 막아. 그런데 역사 와 지리 는 잘했대. 더하여, 알렉산드로스 와 카이사르 를 보면서 깊이 감명을 받았다. 어릴때.  

 

헌데 느려. 진도가 안나가. 지체장애여. 얜 막내여. 위에 누나들 형들이 예닐곱 돼. 아빠가 이걸 알고, 얘 지쩍으로 늦으니까, 몸도 허약해.  문제야. 아빠가 막 꾸짖다 시피 한거야. 헌데 얘가 좋아하는 사람이 알렉산더와 카이사르야. 군인 이 되고싶은걸 알아. 아빠가, 너 몸도 약하고 지쩍으로 남들보다 늦어 그건 군인 되는데 큰 장애야. 이 소리에 얘가 자기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한겨. 너만의 방법으로 너의 수준에 맞게 공부 하란거야 너의 의지대로.

 

아빠가 죽고. 12세에. 얘가 혼자서 스스로 신체 훈련을 하고 자기 스스로 태생적 약점을 극복하려고 스스로 하기 시작한겨 아빠 죽고 12세에. 

 

저런거 에 또 불교쟁이들은. 근기 가 있으니 저런겨 해대며 운명론 들이대걸랑. 

 

Turenne's most eloquent countrymen wrote his éloges, and Montecucculi himself exclaimed, "II est mort aujourd'hui un homme qui faisait honneur à l'homme" (A man is dead today who did honour to Man). His body, taken to St Denis, was buried with the Kings of France. Even the extreme revolutionists of 1793 respected it, and, while they ignominiously reburied the bodies of the monarchs in a mass grave, they preserved the remains of Turenne at the Jardin des Plantes until 22 September 1800, when Napoleon had them removed to the church of the Invalides at Paris, where they still rest.[29]  

 

투렌.이 죽고 가장 유명한 추도사. 오늘 한 사람이 죽었다, 사람에게 아너.를 뿜었던. 아너 라는게 유럽애들 최고의 가치야. 모랄의 극치가 아너 를 남에게 보여주는 인간 이걸랑. 투렌이 대포맞아 죽고 라인강상류에서 생드니로 와서 묻혀. 킹들과 같이. 1793년 프랑스 대폭독 학살때, 교회들 뽀개고 킹 무덤들 파내고 같이 파묻걸랑. 이때도 이 미개했던 프랜치 애들도 저당시 투렌 꺼는 따로 챙겨서 파리식물원 에 묻은겨. 저 와중에 남은 애들이 챙긴거지. 그걸 다시 나폴레옹이 챙긴거고. 

 

Napoleon recommended all soldiers to "read and re-read" the campaigns of Turenne as one of the great captains. His fame as a general rivalled that of any other in Europe at a period when the populace studied war more critically than ever before, for his military character epitomized the art of war of his time (Prince de Ligne). Strategic caution and logistic accuracy, combined with brilliant dash in small combats and constancy under all circumstances—of success or failure—perhaps emerge as the salient points of Turenne's genius for war. Great battles he avoided. "Few sieges and many combats" he used as his own maxim. And, unlike his great rival Condé, who appeared as brilliant in his first battle as in his last, Turenne improved day by day. Napoleon said of him that, his genius grew bolder as it grew older, and a later author, the Duke of Aumale (Histoire des princes de la maison de Condé), took the same view when he wrote: "To know him, you must follow him up to Salzbach. In his case, every day signaled some progress”  

 

나폴레옹이 모든 군인들에게 추천했어 투렌을 가장 위대한 부대장 중 하나라고, 읽고 읽어라 투렌을. 당대에도 투렌이 최고의 교본 인겨. 전략, 병참의 정확성, 과감한 대쉬, 작은 병력들로. 어떤 상황이든 일관되게, 실패했던 성공했던. 이게 특출났었고, 큰 전투들은 피했다. 포위는 적게, 전투는 많이. 머냐 이건 먼뜻인지 몰겄다. 이걸 신조로 삼다. 콩데 가 가장 위대한 라이벌인데, 이 콩데는 시작 부터 끝까지, 브릴리언트 했어. 이 그랑콩데 란 인간은 정말  싕기한 인간이야. 허나, 투렌은 하루하루 향상 진보 진화 발전 하는 스타일이었다. 나폴레옹은 그에대해 말한다, 그의 천재성은 나이가 들면서 더 찐해졌다. 뒤에 오말 공작도 똑같은 말을 했다. 투렌을 알고 싶다면, 너는 그를 자스바흐 죽는 전투까지 따라가야 한다. 그의 경우에선, 매일 매일이 발전의 징표였다. 

 

가장 무서운 인간, 가장 엄청난 인간이 저런 투렌 같은 인간이야. 흔치 않아 이런 사람은. 

 

그랑콩데 는 천재여 얜. 인류사에 아주 독특한 인간이 10세 어린 그랑콩데 지만, 인간의 아너, HONOR 측면과 함께 그야말로 위대한 인간은 저 투렌 이야. 그랑콩데 라는 천재도, 투렌이라는 둔재 에게 안된겨. 저 천재 도 둔재 를 존경했을껴 당대에. 

 

당대에 흔치 않은 동시대 두인간이야. 그랑콩데 와 투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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