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6월 9일 을묘 2번째기사 1403년 명 영락(永樂) 1년 
처음으로 벼슬하는 사람들에게 주문공의 《가례》를 시험하다
처음으로 입사(入仕)한 사람에게 모두 주문공(朱文公)의 《가례(家禮)》를 시험하게 하였으니, 이조(吏曹)에서 청한 것이다. 비록 이미 입사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7품 이하는 역시 시험하게 하였다.

 

태종실록 6권, 태종 3년 8월 29일 갑술 1번째기사 1403년 명 영락(永樂) 1년 
《가례》 1백 50부를 평양에서 인쇄해서 각사에 나누어 주다
《주문공가례(朱文公家禮)》를 각사(各司)에 나누어 주었다. 《가례(家禮)》 1백 50부를 평양부(平壤府)에서 인쇄하여 반사(頒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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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 주자가례, 문공가례, 주문공가례. 

 

주희. 주자. 1130-1200

 

 

조선건국 후, 10년 지나고, 태종 3년. 본격적으로 지배이념을 민들 머리에 심기 시작하다. 그중 가장 핵심 저 가례.를 통해 예의란 이름으로 집안의 질서를 쎄팅한다. 부자유친 부부유별 장유유서. 삼강오륜은 정말 무서운 거다 이거.

 

 

중국은 문혁때 저거 싸그리 엎었다.

 

 

 

 

 

최근 반기문. 그 선친묘소에 퇴주잔 사건. 내 그거 보고 존나 한심하지도 웃기지도 않다. 

 

그거 욕질 비아냥질도 소위 진보.

 

 

 

 

 

 

이 나라를 보수와 진보, 이리 구분을 해서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게 있다. 보수가 전통을 지키고 진보가 개방적인 문화로 미래를 보다. 이리 오해를 대부분이 한다.

 

 

보수. 산업화의 성과. 를 보수 하겠다는 거다. 전통을 보수 한다는 개념이 전혀 아니다.

 

진보. 는 민주화를 지향한다. 이 민주화는 산업화에 대한 반감이 크다, 그리고 서구 민주개념이 얹혔다. 이땅의 기반과는 상관이 없는. 바바리안이 민주라는 비단옷을 입으려는 열망.

 

 

친일청산 역사청산 하면서 내세우는 조선사, 조선유교문명. 이것의 주체가 소위 진보다 진보. 일제문화를 친일잔재를 벗어내고 우리것을 회복하자 할때 이들의 관심은 , 조선이다 조선유교 문명.

 

예의를 지키세요. 예의란 말이 저들의 키워드다. 

 

 

저 반기문 퇴주잔도 마찬가지. 

 

 

아 어찌 우리것을 모른다니? 가례에 어찌 없는 저딴 짓을 한다니? 우리것도 잃어버린 놈 하며 킥킥댄다.

 

 

조선유교문명을 제대로 해석해서 다시 복구하자는게 저들의 무의식이다. 

 

 

.

 

 

 

저 주자가례. 주희가 유교경전에서 가례에 쓸 만한 것을 추리다. 그 많은 레퍼런스가 예기

 

 

이거 존나 무서운 책이다 예기. 이 예기 안에 여러 편들 중에, 중용과 대학이 있다. 그리고 악기. 란 것도 있다.

 

 

좋은 글들 간혹잏다. 11.에서 말한듯이, self-realization 자기실현, 내적탐구용으로 지금 읽어도 영감 inspiration 주는 글들도 널렸다.

 

 

허나 정치사회적으로, 저건 고대사회의 글들이다. 전근대 사회까지의 치자, 왕을 위한, 중앙집중적 권력자들을 위한 글이다.

 

 

이걸 분리해서 해석해서 가르치고 알려주어야 한다 애들에겐. 이걸 애들이 지금 그냥 그대로, 유교 원래 좋아요 하며 막막 테레비 나와서 성인군자인척. 

 

그리 좋으면, 니나 봐라 니나, 왜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들에게 까지 

 

 

 

저건 정치사회적으로 배우면, 완전히 인간 그림자 만들어, 정신병자 생산하는 글이다 지금은.

 

 

 

 

특히, 피해자는 여자다 여자

 

 

 

 

예기 글 몇개 보자

 

20 曲禮上:    
為人子者:父母存,冠衣不純素。孤子當室,冠衣不純采
사람이라면, 부모가 있으면 갓과 옷을 희게 하지 않는다. 孤子로서 아버지의 뒤를 계승하는 자는 갓과 옷에 채색을 하지 않는다

 

ctext.org. 넘버링. 애비가 살아있으면 모자와 옷은 흰옷 입지 말라. 고아가 애비 계승하는 자는, 즉 장자는 모자와 옷에 색을 넣지 말라

 

 

21
...童子不衣裘裳. 立必正方. 不傾聽. 長者與之提携, 則兩手奉長者之手....
 

아이는 갖옷과 치마 입지 마라. 서있을때 바르게, 남의 말 들을 땐 머리 삐딱하게 기울이고 듣지 말라(not incline his head in hearing), 어른이 옆에 있어 이끌어줄땐 두손으로 그 어른의 손을 떠받들어야 한다.

 

 

22    
從於先生,不越路而與人言。遭先生於道,趨而進,正立拱手。先生與之言則對;不與之言則趨而退。    

선생을 따라갈때는 그 길을 추월해서 남과 말하지 말아라. 선생을 길에서 보면 얼렁 뛰어 가서 바르게 서서 손을 공손히 앞에 모은체 인사해라. 등등

 

27 ...上於東階, 則先右足, 上於西階, 則先左足.

(손님을 맞아 같이 들어갈땐).... 오른계단으로 올라갈때는 오른 발을 먼저 하고, 서쪽 계단으로 올라갈 때는 왼발 먼저 내밀어 가거라

 

38
,,姑姉妹女子, 已嫁而反, 兄弟弗與同席而坐, 弗與同器而食. 父子不同席. 男女非有行媒, 不相知名, 非受幣不交不親. 故日月以告君, 齊戒以告鬼神, 為酒食以召鄕党僚友, 以厚其別也. 取妻不取同姓, 故買妾不知其姓, 則卜之. 寡婦之子非有見焉, 弗與爲友
 

고모나 윗누이 아래누이 여자가 시집 가서 친정오면, 남자형제는 자리 같이 하지마라. 같은 그릇으로 밥처먹지마라. ...

 

 

이런게 예기다. 물론 군데군데 예란 먼가 추상명사론 좋은게 있으나, 정치사회적으론 철저한 계급놀이로, 하급계급과 여자들을 가정에서, 질서를 빙자해서 예의를 빙자해서 지배하고, 이를 그대로 국가에 충성하라는 것이

 

저놈의 유교다 유교

 

 

82 曲禮下:    
國君不名卿老世婦,大夫不名世臣侄娣,士不名家相長妾。君大夫之子,不敢自稱曰「余小子」;大夫士之子,不敢自稱曰「嗣子某」,不敢與世子同名。
84
侍於君子,不顧望而對,非禮也
 

 

왕은, 대부는, 선비는, 그 각각 밑의 계급애들의 이름은 부르지 말아라. 임금과 그 귀족들 자식은, 저 소자가, 같은 말따위 하지말아라.

 

권력을 옆에서 모실때는 주위를 살피며 생각하지않고 without looking round to see 대하면, 그따윈 예가 안니다

.

 

등등 이따위 예법이 아주 세세하다.

 

 

 

철저한 계급놀이, 철저한 지배논리가 저 예기. 이다. 저 예기. 가 유교문명의 예에 대한 교범 범전이고, 이를 압축 축약한것이

 

 

주자가 만든 가례다.

 

 

 

 

 

 

 

고려말부터, 이땅에 저따위 주자가 만든 가례. 가지고, 집요하게 조선시대 부터 본격적으로 머리에 심고 생활에 옮기게 하는거다

 

 

 

책으로 뿌리고, 상을 주고 벌을 준다. 삼강행실도가 그래서 그림이야기로 그린 그 얘기가  칼보다 엄청난 위력인거다.

 

태종실록 2권, 태종 1년 12월 5일 기미 1번째기사 1401년 명 건문(建文) 3년 
가묘·특사 등에 관한 대사헌 이지의 건의를 의정부에 내리다


사헌부 대사헌 이지(李至) 등이 두어 가지 조목을 상소로 진달하였는데, 소(疏)는 이러하였다.

"1. 가묘(家廟)의 법은 엄하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전에 부모를 섬기는 자는 살아서는 효도를 다하고, 죽으면 살아서 봉양하던 것보다 후하게 하여 섬기기를 생존한 것같이 하되, 종신토록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그 부모를 죽은 것으로 여기지 않는 뜻입니다. ...
모든 제의(祭儀)를 한결같이 《문공가례(文公家禮)》에 의하여 아랫사람에게 보이면, 권면하지 않고도 자연히 교화가 백성에게 미칠 것입니다. 비록 본래부터 사당을 세우지 않은 자라도 반드시 이로부터 흥기(興起)할 것입니다. 서울에서는 명년 정월부터, 외방에서는 2월부터 시작하여 거행하게 하고, 따르지 않는 자는 헌사(憲司)에서 규리(糾理)하여 파직한 연후에 계문(啓聞)하게 하소서.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6월 9일 을묘 2번째기사 1403년 명 영락(永樂) 1년 
처음으로 벼슬하는 사람들에게 주문공의 《가례》를 시험하다
처음으로 입사(入仕)한 사람에게 모두 주문공(朱文公)의 《가례(家禮)》를 시험하게 하였으니, 이조(吏曹)에서 청한 것이다. 비록 이미 입사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7품 이하는 역시 시험하게 하였다.

 

 

 

세종실록 37권, 세종 9년 9월 17일 임인 1번째기사 1427년 명 선덕(宣德) 2년 예조에서 여자의 혼인 연령을 14세에서 20세까지로 정하고 이를 어기지 말게 할 것을 건의하다
지금부터는 한결같이 《문공가례(文公家禮)》에 의거하여 여자는 나이 14세로부터 20세 안까지 모두 혼인을 하도록 하고, 만약에 부득이하여 기한을 넘기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유를 갖추어 서울은 한성부(漢城府)에 알리고 외방(外方)은 그 고을에 알리게 하고, 서울과 외방(外方)의 맡은 관사(官司)에서는 다시 사실을 조사하여 만약에 까닭도 없이 기한을 넘기는 사람이 있으면 그 혼주(婚主)되는 사람은 형률에 의거하여 논죄할 것입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

 

 

저런 글들 외에.

 

생원 자격증 시험에 가례를 넣다 소학과 함께. 세종때. 태종때는 초기 벼슬자리에게도 저 가례 시험 패스해야 한다.

 

정문. 깃발정. 정려문. 정려각. 등 탁월한 실천자들 마을엔 홍살문 모양의 문이나 현판을 하사한다. 마을 세금도 깎아준다. 서로 지들 마을에 가례 잘 지킨 이들 있다고 막막 난리다 그래서. 

 

 

 

 

 

 

 

귀신은, 과학적으론 칼융의 유에프오 식으로, 낮에 이상현상 보듯이, 의식이 빛을 잃어 자기 무의식이 튀어나오는 현상. 이 가장 과학적인 해석이다 현재론.

 

 

 

 

제사가 특히 핵심이다. 제사가 권력이다. 효의 핵심이다. 관혼상제의 제.

 

 

맏아들이 제사 갖고 오려는 노력이, 친영제도의 그 여자집에서 남자집으로 오는 기간 줄이려는 노력과 함께, 그거 이루려는 조선왕들의 치자들의 힘은 음청난거다 그거.

 

거의 삼사백년 후인 조선 후기에 그게 셋팅이 된다.

 

 

 

 

 

지금 제사지내는 그따위꺼. 의  잣대는. 쟤들이 만든거다 쟤들이. 

 

 

원래 이땅에 저딴 거로 남자 권력 쥐고, 여자들 피곤하게 했던, 저따위 제사짓이 있었을까 없었을까

 

 

 

 

친일청산을 빙자로, 우리꺼 회복 한답시고, 저따위꺼 하고 싶어하는게,  조선 왕조 싸랑하는 애들의 바닥에 깔린 무의식이다. 

 

여자들이여, 옛날같이 그리 안할께, 도와는 줄께. 

 

 

이짓 하는거다.

 

 

 

 

1897년 4월 5일 이천군 앵산동에서 해월선생이 밤에 호롱불 키고 몇몇 사람들과의 대화. 일명 향아설위. 그 중에서.

 

又問曰 「祭需喪服如何可也」
神師曰 「萬般陣需 非爲精誠 但淸水一器 極誠致誠可也
또 묻기를 「제물 차리는 것과 상복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습니까.」 신사 대답하시기를 「만가지를 차리어 벌려 놓는 것이 정성이 되는 것이 아니요, 다 만 청수 한 그릇이라도 지극한 정성을 다하는 것이 옳으니라

趙在壁問曰 「喪期如何而可也」神師曰 「心喪百年可也 天地父母爲之食告曰 心喪百年 人之居生時 不忘父母之念 此是 永世不忘也 天地父母四字守之 謂其萬古事蹟分明也」
조재벽이 묻기를 「상기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옳습니까」 신사 대답하시기를 「마음으로 백년상이 옳으니라. 천지부모를 위하는 식고가 마음 의 백년상이니, 사람이 살아있을 때에 부모의 생각을 잊지않는 것이 영세불망이요, 천 지부모 네 글자를 지키는 것이 만고사적 분명하다라고 말하는 것이니라.」
 

.

 

청수. 물한그릇 정성스레 떠놓고 올려라. 마음으로만 모셔도 충분하다.

 

 

그다음해 잡히셔서 교수형 당하셨다. 조병갑이가, 그 조병갑이가 해월선생 재판당시 재판관이었다 ㅋㅋㅋ 저 해월선생 신원해준 이가 이완용이다. 그래서, 해월이 적폐라는  애들도 있더라. 기가막히더라. 

 

 

저런게 원래 우리 제사양식이면 안되냐? 마음만 취하고 물한그릇 떠놓고.

 

제삿날 되면 그냥 돌아가신이들 생각하면서, 가족끼리 모여서 밥만 처먹으면 안되냐? 그 머같은 제사 맘에도 없는거 마치 절대자 상제님이 지켜보시는 두려움이라도 있냐?

 

증자의 민덕귀후의? 논어에 그글? 민덕이 귀해지고 후해지긴. 그따위 말도 제사 열심히 지내란 주작이다 주작. 제사 열심히 지내는 그 마음으로 남자에 충성 꼰대에 충성 그래서 나라에 충성.

 

.

 

 

 

저따위 지들 지배체제 공고히 위한 제사를 위해, 또 여자들 계급놀이질 시킨다.

 

 

 

 

 

 

 

제삿상을 엎어라. 문화차이니 다양성 이니, 웃기는 소리다

 

 

양놈들이 제사상 맨날 차려서 저런 문명을 만든거냐? 양놈들이 아버님 어머님 형님 님님 해서 저런 문명 만든거냐? 

 

그따위 말들 행동들 안하면 쌍놈이냐?

 

 

 

 

 

 

제삿상을 엎어라 여자들은 특히. 남자들 집안에 관심꺼라. 걔들꺼 지들이 알아서 하라해라. 니덜이 걔들 종이니?

 

 

 

우리 엄마들이 말이다. 울면서 듣는 노래, 니네 아니?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 이거 예전 엄마들이 이 노래 들으면, 다들 그냥 운다 울어. 왜 울었을까 그래?

 

 

 

 

 

 여자들이라도, 저따위 유교 예찬 하는, 조선왕조 좋았다는 짓들 하는 것들 보면, 아 당신들이라도 좀 아 그러지 말라. 남자들이 그러면야 꼰대들이야 좋다고 지들이 그러는거 먼 상관이겠냐만

 

 

 

여자의 일생

작사 한산도
작곡 백영호
노래 이미자

참을수가 없도록
이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한마디 못하고

헤아릴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견딜수가 없도록
외로워도 슬퍼도

여자이기 때문에
참아야만 한다고

내스스로 내마음을
달래어 가며

비탈진 언덕길을
허덕이면서

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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