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이 원래 좋고 훌륭한 경전 공부였다는 시선, 공자가 공교화된 유교에 대한 인간들이 시선.
어떤 누구가 테레비에서
니체가 19세기에 신은 죽었다! 했잖아요? 웃긴 얘기죠, 우리 조선시대는 이미 그 사오백년전에 벌써 신은 죽였어요. 우리 조선시대 유교는 성리학은 이성주의에 의한 합리적 사람들이었어요
참 한심한 소리를 공중파에서 듣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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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니체를, 칼융이 심리적으로 분석을 한다. 이거 명문이다.
인간의 의식에 접한건 대게 무의식의 이불 밑에 숨어있다. 이게 오래 숨어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자기 생각인양 자기꺼인양 짖어댈때가 있다.
니체가 1844 1900이다 내 이사람 생몰은 외운다. 칼융이 1875 1961이다. 칼융할배 생몰도 외우시라.
칼융할배가, 죽은 니체의 누이에게 연락을 한다. 니체 병상을 누이가 지켰다.
혹시 니체 오래비께서, 어릴때 이 책을 본 적이 있지 않냐고?
니체 누이가 답장을 하는거야? 어머? 어찌 아셨어요? 그거 우리 오빠랑 나랑 어릴때 보던 책인데, 내용이 하도 특이해서 제가 기억나욤
그 어릴때 보고 무의식에 오래 숨어서 튀어나온 글 모음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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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이란게 그거다. 의도적인지 아닌지 모르나, 대부분, 어릴때 접한 것들이 무의식에 숨어서 나중에 자기 창작물인양 세상에 내논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1895년도 헨리 새비지 랜더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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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플랭크 워크. 저 헨리 새비지 랜더. 정말 관찰력 졸 뛰어나다. 인류학자에 화가다. 사람들 조선민들에 대한 시선 애처롭고 따뜻하다.
저 챕터는, 작가가 이 장은 심장약하신 분은 읽지 마세요 한다. 비참하걸랑. 참 불쌍해 조선민들.
화가잖냐? 작가가. 자기가 그림을 그린다 본것을.
사대문에서, 자기 유럽인들은 경찰을 구분못할거라 한다. 왜냐면 옷을 민들과 똑같이 입고 잠복을 하걸랑.
도둑같은 범인도, 저놈잡아라~ 하고 도망가고 잡히는 광경은 못봤댄다. 왜냐면, 몰래 탐정수사하다가, 범행이나 권력험담을 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바로 그냥 줘패서 잡아가는 거라. 폴리스가 없고 마치 detective 탐정이란 표현을 쓴다.
저렇게 합판을 목에 걸고 죄인을 조리돌림을 한다.
조선사람들은 고통에 익숙해있다고 한다. 처형 챕터가 있다. 그 이름들 다 나열되어있다. 실록에서 당시 이름들 찾아 대조해보면 된다.
사람들이 표정이 없다. 저런거 흔한건가?
그 외모 골격에 대한, 표정에 대한 모양 근육 움직임을 또 자세히 표현한다.
저 고통이 없는 이유가 생리학적 근거를 자기가 막막 그냥 쓴다. ㅋㅋ. 개소리지만 물론. 머 유럽사람은 태생적으로 고통을 더 느끼고 조선인은 유전적으로 골격이 더 달라서 고통을 안느끼나? 하는 식이다 . 참 슬픈 이야기다
왜냐면, 저 시청에, 군기시. 라고 시청 새청사 건물짓다가 나온 유적들 자랑스레 전시하던데
왜 쟤들은, 그 안내판에다가, 여기 심심하면 죄인들 목자르고 사지짤라서 전시하던 곳이 또한 군기시입니다~ 란 문구를 왜 안 넣는다니?
저기가 사람들 많이 돌아다니는 곳이걸랑? 협박질 하는거걸랑? 우리 임금님, 우리 조선왕조, 에 충하지 않으면, 저리 찢어죽인다는 거걸랑. 실록에 심심하면 보인다.
사람들이 저걸 삼사백년동안 보아온거라.
놀라지도 않지. 이제. 외국인이 이상하게 볼만도 하지. 마치 고통도 없는양. 사람들이 처형장에 모여있는데 아무 감정없는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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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처형당한 애비인듯, 울면서 시체를 갖고 갈라 한다. 그 머리짤리 시체 모습도 이사람이 그렸다.
도와주면 안되니, 법에 걸리니 다들 피하는데, 이 외국인 작가가 도와준다 너무 불쌍해서.
저거 보면 눈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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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여자들 이야기,
비참하다.
이땅 여자들이, 조선이여 민족이여 하는거 , 이거 참 끔찍한거다 진짜. 조선이 당신들 여자들에게 한 짓들을, 여자여, 당신은 모르는가?
아래 L H 언더우드, 릴리아스 언더우드. 가, 유교꼰대의 상징 상투 속에서의 15년간의 삶. 을 번역한 상투의 나라. 로 번역한 책. 1999년도에 나왔다 보니까.
이건 시카고에서 온 여자간호사가 쓴 여인의 관점 이야기.
저기 보믄, 예전에도 저거 한번 인용한 적 있는데, 동학도는 도둑으로 깡패으로 변한 이들이 많다 는 거 보면, 동학이 해월 죽고 이미 저때 무너진거라. 동학이 그리 쎈 영감 inspiration을 사람들에게 줄 정도가 못된다 보면.
고종이 1907년, 일본때메 폐위되기 직전에 한 일이 먼지 아니? 해월선생 신원 회복한 거다. 해월선생 신원 해달라고 주청한이가 이완용이다. 최명길을 보니 이완용도 쉴드 쳐줄까 말까 졸 고민할까 말까 .
어느 진보자연 이름짜 인간이 해월을 비난하던데.
김상헌 졸기 다시 보니 골때린다 진짜. 최명길은 조선시대 내내 역적이고 간신이었다. 김상헌은 너무나 충신이고.
선조가 명에 충성해서 임진란을 헤쳐나왔다는 김상헌 ㅋㅋㅋ
백 년 후에 자기 마음을 알아줄 이들이 있다고? ㅋㅋㅋ. 하늘에서 니가 그리 위대하게 경배하는 선조랑 니 임금 인조랑, 그 위 공자님이랑 주나라애들에게 만배절이나 맨날 드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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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죽었다잖냐? 기생 논개가.
그럼, 나라에서 상을 줘야하냐 말아야 하냐? 지들 충성 충에 대단한 충을 한건데.
저 삼강오륜을 뿌리는 조선문명. 저 유학을, 권력체제를 사람들 머리에 심어줘야 하는데 어드래 심을까 하다가 하는 짓. 그게 세종때 삼강행실도. 1434년. 한글 창제 그믐달 그믐일 몇줄 나오는게 9년후 1443년.
저 삼강행실도. 라는 것은, 어마어마한거다. 세종은 정말 머라 해야 할까? 아 내 세종 별로 안땡낀다.
세종이 음악도 정비하잖냐? 아악 정리하고 편경 편종 같은 악기 만들었다 하고.
그 지배이념을, 책으로 뿌리고 음악으로 심는거다 저게. 책도 그냥 글자책이 아니고, 도, 그림 도. 그림으로, 즉 아무나 쉽게 접하게 하는거다. 나중 성종때 언해본으로 충/효/정절 세 부분중에 여자 정절 먼저 언해본으로 만들어뿌린다. 어우동 사건때문에 뒤집어졌걸랑.
이념으로 그리고 음악으로, 자기 지배이념을 머리에 의식과 무의식으로 심는거다. 저게 본격적 씨뿌림인거라 지금 이땅바닥에 그 씨들이다 현재.
유신때 그 새마음 운동. 거기 문구가 먼지 아냐? 충효예. 박정희 정말 골때리는 사람이다. 박정희를 모른다 인간들이. 저기 삼강행실도에서, 삼강에서, 정절을 예의 로 바꾼거다. 니들 부모에게 충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해서, 충성해라, 누구에게? 나라에게, 나라의 대명사가 누구? 나 박정희.
음악도 맹그시잖냐? 잘살아보세~ 직접 풍금도 치면서. 유행가를 국민가요로 바꾼다. 나중에 왜색풍이라 건전가요로 다시 바꾸고, 건전가요 제전도 한단다 전국적으로. 지금 그래서 가요 가요 하는거라 한국 노래를.
박정희 골때리는 사람이다.
세종이 노비들, 여자가 임신하면 그 남편도 휴가를 줬다고, 오매 씨바 세종때도 남자 육아 휴가가 있었어~ 조선시대 위대한겨 세종같은 분도 있고 ~
노비종모법 으로 노비천국을 만든 세종
남자들이 부역을 나가잖냐 군역도 나가고, 세종 초기때, 태종이 상왕일때, 사대문 둘러싼 성벽들이 무너지는겨 태조때 흙으로 쌓아서, 재보수 해야 하는걸, 세종이 머뭇머뭇, 태종이 물려주기전에 자기가 욕먹을거 각오하고 태종이름으로 한다 저걸. 30만인가 모은다 장정들을 전국에서. 그것도 겨울에, 농사 안 지을때 해야하니. 몇달을 모아서 하는거라, 밥도 다 지들이 싸갖고 온다. 조정에서 밥한술 주나? 돈이라도 주고 일시키나? 부역질이니 공짜로 인간들 모아서 일시킨다. 저때 백여명 그냥 죽었다 춥고 배고프고 길거리에 거지들 시체들 널렸단다.
저때 남자 보내고, 여자가 혼자 집안구석에서, 배부른 상태로 있는거라. 아무도 없는데, 애는 누가 받아주나.
퍽이나 복지다. 존경하고 찬양해라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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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가 죽었다. 임란이 끝났다. 나라에서 저 삼강행실도를 개편한다. 임란때 훈늉한 인물들이 배출되었을꺼 아닌가? 그들을 넣어서 추모하라~ 그래서 다들 배워서 우리 이씨왕조들에 충하라~
저 삼강행실도 가 조선시대때 그래서 매우 중요한 책인거라. 저걸 그냥 아 삼강행실도가 있었네? 하며 넘기지 마라.
중종때 저 세종의 삼강행실도의 속편인 속삼강행실도. 가 나온다. 그리고 임란 후, 사람들 더 넣어서, 신속삼강행실도, 그리고 동국여지승람에서 몇개 발췌한거 더해서 동국신속삼강행실도. 를 만든다.
이때, 저 논개. 안 처준다. 충으로 넣어줘야 하걸랑. 거들떠나 보겠니? 여자인데? 더군다나 기생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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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초만 해도 여자들은 쎘다 기운이. 아직 유교의 그 철저한 계급놀이, 꼰대들에 짓눌리지 않았다.
고려때만해도, 장가간다 한다. 남자들이 여자집에 가서 사는게 흔했다. 이게 아직 지금 남아서 결혼할때 장가간다 란 표현을 쓴다.
조선시대, 유학이 성경이 되잖나. 조선시대는 신정일치다. 공자님이 신이고 주나라가 신이고 그래서 명나라가 신이다. ㅋㅋㅋ.
삼강에서 부부유별이라. 남자가 최고다. 지애비가 신이다 집에선. 그 지애비에 충하고, 그 충받은 지애비는 왕한테 충해라.
결혼해서 여자집에 오래 있는 건 말이 안되는거라. 장가가지 마라, 시집와라. 시집간다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여야 한다.
그 오만원짜리 유교문명에 찌든 돈, 이나라 화폐봐라, 다 유학자 유교의 왕. 왜 이나라는 조선시대 밖에 인간들이 없었냐?
그렇게 조선이 좋았냐?? 좋냐??? 유교가 그리 좋냐???? 그리 굽신굽신 대는 유교가 그리 좋냐???
친영. 이라고 한다. 신랑이 신부집에서 예를 올리고 신랑집으로 데려오는거
신사임당이 1504-1551. 조선건국 후 1백년이 지나서 살은 여인.
강릉사람. 남편 웬수 이원수와 1522년 결혼. 저때도 아직 친영기간이 긴 때라. 친정아버지가 죽어서 삼년상도 친정에서 치룬다. 서울 한성으로 간 때가 1537년. 친정 뜬게 15년.
저 친영기간이 삼일로 준때가 저때부터 일이백년 후까지라.
저게 이 유교꼰대들의 질기디 질긴 힘의 결과지. 현대는 결혼식하고 걍 친정 부모 인사하고 호텔가 디비자고 신혼여행가서 지들끼리 살던 시댁가서 살던, 남자가 친정 위해준답시고 가끔 한두가지 해주면, 여자들은 그냥 감지 덕지
저게 당연한 지들의 권리고 하늘에서 떨어진 잣대 인줄안다. 하늘에서 떨어진 권리 인줄 안다.
나는 마누라에게 존대말 써 "준다" 하면 마누라 감지덕지 잘해준다. 해서 지가 개방적이고 잘난 놈인 줄 알지. 시혜 부리는 대단한 앤줄 알지. 수백년 집단무의식의 무서운 힘이다 저게.
청나라가 명나라 치기 전에, 조선을 밟아주고, 뒤끝 안구리게. 그리고 명나라를 친다.
양주성 전투가 1645년. 그 당시를 기록한 일기 중 하나. 왕수초가 쓴 양주십일기 王秀楚 扬州十日记., 청나라 애들이 명나라를 접수하는거다. 누구가 번역을 했다 검색하면 한글번역 보인다. 아주 리얼. 거기에 이런얘기가 나온다
왕수초. 란 사람은 사가법史可法 이라는 명나라 관료의 막료. 참모다. 이 사가법 이란 사람의 호를 보니 충열 충정 보면 유학자 냄새 난다. 즉 왕수초도 유교꼰대다. 이걸 먼저 깔고 가라.
청 애들이 여자들을 겁탈을 할거 아닌가? 헌데 명나라 여자들이 몸을 쉽게 주는거라. 이거에 이 청나라 애들이 하던 말을, 이 왕수초가 기록을 한다.
아니 고려여인들은 겁탈을 해도 정절에 목숨걸며 옷을 안벗던데, 오잉 중국 한족녀들은 이리 쉽게 몸을 주나?
얘들이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하고 온 애들이라. 조선여인들을 고려여인들이라고 말을 한거라. 이를 유교꼰대 왕수초가 들어서 쓰며 한탄하는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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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건국이 되고, 250년이 지나고. 삼강행실도가 1434. 정절이 1/3. 삼강행실도 이후도 200여년.
저게 뿌리깊이 각인이 된거라 이제. 이 조선의 여인들이.
저런거 보고 남자들은, 역시 우리 조선여자들. 하겠지. 여자들은 정절 지킨 선조들이 뿌듯 자랑스럽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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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해 주면 머하니? 저 남자들이, 대접해주는 줄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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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자들은, 그래도 초기엔 그 기운이 아직 죽지 않았다
세종 때 세자, 향후 문종. 그 세자빈들인 휘빈 김씨, 순빈 봉씨, 둘을 음란이니 투기니 욕질하지만, 그건 유교에 쪄든 애들 해석이고,
여자들이 자기 표현하는 기운이 아직 펄 펄 살아있는거라.
세종때 유감동. 양반 출신 여자, 뒤 성종때 어우동 못지않게 남자들 따먹다가 적발이 되었다.
성종때 그 어우동, 그리고 연산군의 그 애미 폐비윤씨. 그여자도 달리 보면, 자기 억눌러진 여자들에 대한 반감을 표현할 뿐인거라.
유교 애들이, 저 여자들을 투기하는 년 음란한 년 이렇게 지금도 해석을 한단다.
조선 중기,저런 여자들은 궁내에선 안보이는거라.
철저하게 철저하게, 삼강행실도 그림들 보면서, 유학경전들 속에, 꼰대들 속에서, 철저하게 어두운 삶 살아가는 여자들.
연산군 마지막날. 실록 기록봐라.
거기 장녹수의 마지막 장면이 나온다 그날 기록 끝부분에.
음호, 그래 거기. 그 음호에다가 사람들이 돌이랑 기왓장을 던졌단다. 자기들 고혈이 저 음호 구멍때문이라고.
야 , 연산한텐 한마디도 못 하고, 당시 같이 굽신대던 대신 대간들한텐 한마디도 못하고,
그래 기껏, 여자한테 화풀이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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