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5KOU894dA5k



인조 15년 1월 30일 경오 2번째기사 1637년 명 숭정(崇禎) 10년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를 행하다. 서울 창경궁으로 나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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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被擄子女望見, 號哭皆曰: "吾君、吾君, 捨我而去乎?" 挾路啼號者, 以萬數。
 
병자호란, 인조가 삼배구고두례 하는 며~엉장면이 나오는 챕터다. 거의 마지막 부분, 인조가 항복의례 다 하고 창경궁가는길
 
저거 번역한 게 우리임금 어쩌고 하는데  맘에 안들어 원문 가꼬온다
 
청나라 잡혀가는 민들이 피로인. 이라 한다. 피로인들이 망견. 고개를 꺾어 올려, 너무나 황당하고 어이없는 눈으로 보는거다. 이제 잡혀가는거다 청나라로.
 
"내 임금아!! 야 이...! 임금이란 ....!! 공자님 맹자님 찾으며 충효절 강요하는 이 ...!! 대체 나를 버리고 어딜가누??"
 
그 좁은길에 제호, 엉엉 울며 임금 명호 가족들 이름 부르는 자가, 만수, 수만이었다. 헤아릴 수 없는 숫자였다. (만은 매우 많은 수. 의 대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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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혀간다 저들이. 1637년 1월 그믐이고, 다음날에 소현세자 데리고 , 역관 정수윤지 정유수인지 기억도 안난다. 소현세자한테 욕질알했을꺼라 주위사람들이 착악 했다 했으니까, 깜짝 황당 놀란거라. 얜 효종때 암살당한다.
 
 
 
잡혀간 사람들 어찌되었누?
 
 
 
도환인逃還人 , 주회인走回人, 이란 단어로 나온다. 도망쳐 돌아온 사람. 인조때 자주 등장한다. 다 잡아서 청나라로 돌려보낸다.
 
 
도망쳐도, 죽는거라. 조선 강토 바라보민서리, 그 압록강변에서 그냥 죽는거라 다들 도망쳐온, 운좋게 도망친 민들이 말이다
 
 
인조 20년 2월 2일 임인 2번째기사 1642년 명 숭정(崇禎) 15년
국가의 기강, 국경의 수비, 인심의 이반, 상벌 시행에 관한 정언 하진의 상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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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잡혀 간 사람이 고향이 그리워서 산넘고 물건너 천신만고 끝에 도망해 돌아와 그 부모 처자를 만나는데 슬픈 마음으로 위로하는 소리가 채 멎기도 전에 잡아 보내는 일이 곧 뒤따릅니다. 그런데도 죽음을 아끼지 않고 부모가 계시는 나라라서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 하고 서로 뒤를 이어 돌아오는데, 압록강가에 당도하면 변방의 장수는 국법을 꺼리고 그곳에 사는 백성들은 죄를 받을까 두려워서 주야로 막고 지키면서 그들이 강을 건너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면 이들은 강가에서 통곡하며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강물에 뛰어들어 죽거나 목을 매어 죽거나 혹은 굶어서 죽기도 합니다. 이리하여 창성(昌城)과 삭주(朔州) 지방의 강줄기 위아래에 백골이 널려 있으니, 이를 보고 들은 사람이면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으며, 그 부모와 처자들이 길거리에서 소리쳐 통곡하며 가슴이 막혀 허둥대는 모습을 어찌 차마 말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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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날 사간원 정언, 육품짜리 말단직 정언. 하진의 상소문 아주 길다. 저기 중에 나오는 말.
 
압록강 조선위병소 애들은 조선왕조 국법이 무서워서리, 그 도망나온 우리 민들이 건너오지 못하게 합니다. 건너오면 다시 잡아 압송하걸랑요 어차피. 
 
강가에서, 그래서요 이들은, 통곡하며 ,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거기서 그냥 죽습디다. 압록강 강줄기 위아래 저 죽은이들의 백골이 널렸습디다. 이를 보고 들은 조선 민들은 기가막히고 코가막히고 통곡하고 어찌하지도 못하고 허둥지둥 , 차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때가 1642년. 5년째다 피로인들 잡혀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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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9년 6월 18일 을유 2번째기사 1668년 청 강희(康熙) 7년 주회인을 청나라로 압송하다
이때에 주회인(走回人)이 있었는데, 평안 감사가 장계를 올려 아뢰었다. 비국이 병조로 하여금 별도로 금군을 정하여 청나라로 압송하게 하기를 청하니, 상이 따랐다.
時有走回人, 平安監司狀聞之。 備局請令兵曹, 別定禁軍, 押送于淸, 上從之。
 
 
인조죽고 효종죽고 현종 9년인, 30년 된 저 해에도 주회인, 도망온자, 압록강을 건넜으나, 잡아 보낸다.
 
30년 30년
 
 
 
헌데 더 기가막힌 사람도 있더라
 
 
숙종 1년 4월 6일 갑오 2번째기사 1675년 청 강희(康熙) 14년
의주 부윤 조성보가 달아났다가 돌아온 자를 봉황성으로 압송했음을 아뢰다
 
 
38년후다. 숙종때. 38년 있다가 도망온 사람이 있단다. 이름이 안단. 외우자. 
 
"청(淸)나라 사람 한 명이 스스로 주회인(走回人) 이라 일컬으며 중강(中江)을 건너와 강을 건너오기를 청하기에 빈신(儐臣)들과 의논하고서 통관(通官)으로 하여금 칙사(勅使)에게 말하였더니, 칙사가 장관(將官)을 시켜 급히 잡아오라고 하므로 그를 결박(結縛)하여 봉황성(鳳凰城)으로 압송(押送)하였습니다. 그의 이름을 물으니, ‘이름은 안단(安端)이고 강화 천총(江華千摠) 안몽열(安夢說)의 아들이며, 경기 도사(京畿都事) 정복길(鄭復吉)의 처형제(妻兄弟)로서 병자년292) 에 청(淸)나라에 붙잡혀 가서 갑군(甲軍)의 집 종이 되어 북경(北京)에 있었으며....
 
 
중강, 압록강 딱 중간부분, 그 한반도 지도 가운데 톡 튀어난 지역의 강이 중강. 칙사는 청나라에서 온 사신. 장관을 시켜 의 장관은 조선 군대 장수.
 
38년 만에 도망온 안단.을 다시 잡아서 청나라로 보낸다. 
 
안단의 기가막힌 말
 
 
....안단이 관(館)의 문밖을 겨우 나가자마자 크게 통곡(痛哭)하여 말하기를, ‘고국 땅을 그리는 정이 늙을수록 더욱 간절한데도 죽을 곳으로 보낸다.’고 했습니다."
 
 
 
 
 
저따위 나라가, 나라냐??
 
그리고 이어서 하는 저 의주부윤의 계속되는 말, 저 사이의 말도 마찬가지로, 안단얘기가 주가 아니다, 안단 입을 통해 청나라 정세, 주변지역과의 전난 등을 상세히 보고 하는게 이인간 글이다. 안단.이 어찌되든 관시미가 있는 티가 그리 안난다. 임금님 임금님 지금 안단 말하는거 보니 청나라 주변정세가 이래유~ 안단이유? 가서 맞아 뒈지던지 말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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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주화파였던 최명길, 화냥녀 라고 돌아온 여자들 이혼 시키지 말라는 최명길. 
 
사관이 졸기 기록하는거 보자
 
인조 25년 5월 17일 정사 2번째기사 1647년 청 순치(順治) 4년 완성 부원군 최명길의 졸기
완성 부원군(完城府院君) 최명길(崔鳴吉)이 졸하였다.
명길은 사람됨이 기민하고 권모 술수가 많았는데, 자기의 재능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일찍부터 세상일을 담당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광해 때에 배척을 받아 쓰이지 않다가 반정할 때에 대계(大計)를 협찬하였는데 명길의 공이 많아 드디어 정사 원훈(靖社元勳)에 녹훈되었고, 몇 년이 안 되어 차서를 뛰어 넘어 경상(卿相)의 지위에 이르렀다. 그러나 추숭(追崇)017) 과 화의론을 힘써 주장함으로써 청의(淸議)에 버림을 받았다. 남한 산성의 변란 때에는 척화(斥和)를 주장한 대신을 협박하여 보냄으로써 사감(私感)을 풀었고 환도한 뒤에는 그른 사람들을 등용하여 사류와 알력이 생겼는데 모두들 소인으로 지목하였다. 그러나 위급한 경우를 만나면 앞장서서 피하지 않았고 일에 임하면 칼로 쪼개듯 분명히 처리하여 미칠 사람이 없었으니, 역시 한 시대를 구제한 재상이라 하겠다. 졸하자 상이 조회에 나와 탄식하기를 "최상(崔相)은 재주가 많고 진심으로 국사를 보필했는데 불행하게도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진실로 애석하다." 하였다.
 
저게 전부. 사관 참 얍삽하지. 사관이 유자들의 시선이다. 시작이 사람됨이 기민하고 권모술수가 많았는데, 요걸 말하고 픈거다. 척화를 주장한 대신을 협박해 보내다, 모두가 최명길을 소인으로 지목했다.
 
 
이 유자들은, 척화파, 가 영웅이고 독립운동가다. 주화파 개화파는 적폐들인거라.
 
 
지금 시대는 그럴까~ 안그럴까? ㅋㅋㅋ
 
 
 
척화파, 김상헌의 졸기.
 
매우 길다. 머 위인전도 이따위 위인전이 없다.
 
 
코메디다 코메디. 
 
 
 
 
 
 
 

 
 
 
신사임당 오만원짜리.
 
 
주나라, 아래서 썰 풀은 그 주나라. 동방예의지국.의 이땅 조선왕조의 거대한 하늘나라 천국 이상향 주나라, 위대한 공자님이 사모하는 나라 주나라
 
그 주나라 주문왕의 어머니 태임. 그 태임을 스승으로 삼는다 해서 사임. 그래서 신사임당이다
 
 
 
어떻게 말이냐, 저 신사임당을, 오만원짜리 화폐에 넣었을까?
 
이따위 문제인식 없을거다
 
 
유교의 나라 대한민국
 
위대한 조선문명 위대한 유교, 님님님 동방예의지국의 나라 대한민국.
 
 
 
코메디다 코메디.
 
 
 
 
위대하신 척화파 김상헌의 졸기. 보던말던해라 최명길과 비교해서.
 
아 지금도 김상헌 빠는 인간들 많니?
 
 
 
 
효종 3년 6월 25일 을축 1번째기사 1652년 청 순치(順治) 9년 좌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 세자부 김상헌의 졸기

대광 보국 숭록 대부 의정부 좌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 세자부 김상헌(金尙憲)이 양주(楊州)의 석실(石室) 별장에서 죽었다. 죽음에 임해서 상소하기를,
"신은 본래 용렬한 자질로 여러 조정에서 다행히도 은혜를 입어 지위가 숭반(崇班)에 이르렀는데도 작은 공효도 이루지 못하고 한갓 죄만 쌓아 왔습니다. 병자년 정축년 난리 이후로는 벼슬에 뜻을 끊었는데 중간에 다시 화를 ....너무길어 생략...
지성은 금석에 맹서했고
대의는 일월처럼 걸렸네
천지가 굽어보고
귀신도 알고 있네
옛것에 합하기를 바라다가
오늘날 도리어 어그러졌구나

백년 뒤에
사람들 내 마음을 알 것이네
하였다. 죽을 때의 나이는 여든 셋이요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사신은 논한다. 옛 사람이 "문천상(文天祥)이 송(宋)나라 삼백 년의 정기(正氣)를 거두었다." 고 했는데, 세상의 논자들은 "문천상 뒤에 동방에 오직 김상헌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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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머 어디 종교의 종정 찬양문이 저리 휘황찬란할까
 
 
 
 
온갖 거짖과 위선이 점철된 나라, 이놈의 대한민국의 현주소. 
 
저 조선문명이 너무나 그립다는 대한민국
말만 유교를 버렸다 버려졌다하며 끈끈이 유교의 나라에 미친 대한민국
 
동방의 예의가 지극지극하다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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