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es I (19 November 1600 – 30 January 1649)[a] was King of England, King of Scotland, and King of Ireland from 27 March 1625 until his execution in 1649.
찰스1세.가 49세. 1월 30일날 처형을 당하는데 공개적으로. 이들 처형장면이 항상 드라마틱 하고, 절정 이고, 여기서 진짜 들이 꺼내지걸랑. 특히나 잉글랜드는 이런게 유럽대륙과 전혀 다른거야. 대륙은 상대적으로 이런 일들이 거의 없어. 백오십년후 루이16세때나 벌어지는 일이고. 이게 또한 전혀 달라. 찰스1세 처형장면과 루이16세의 장면은.
이런걸 비교할 줄 아는 애 단 하나 없는데 유럽애들도.
프랑스는 대륙에서 독보적인 애들이고, 즉 저게 유럽대륙의 모습이야. 루이16세 처형 장면이. 저때까지 왔던. 게르만 갈리안의 대륙애들의 1700년 쌓여온 모습을 저때 보는겨. 저게 잉글랜드의 차이고, 잉글랜드는 정말 위대한 애들이야. 인물들이 너무나 많아 얘들은. 유럽 대륙과 비교하면. 어떻게 저 야만의 잉글랜드가 저리 압도적이 되었는가.
보면 볼수록, 앤불린 레이디제인그레이 스콧마리 는 위대한 여자들인겨. 잉글랜드의 감정선은 이 세여자가 바닥을 다져준겨 이게. 뒤이어 엘리자벳.이 감싸주고. 이걸 받아간게 제임스1세.야.
쟤들은 저때, 찰스1세 목아지 짤르고 마는겨. 옥스포드 포위할때도 찰스2세와 동생 헨리에게 도시락 갖다줬어 포위군들은.
프랑스 애들은, 루이의 마누라 앙트와네트 도 목아지짤라 죽이고, 꼬마 아들도 말이지, 감옥에 격리해서 완전히 굶겨 죽여. 얘들 무지하게 잔인한데. 잔인한건 둘째치고, 미개한건데 저건.
어차피 혁명 이란 이름으로 킹 이 독재 라며 지들이 소위 이른바 민주 와 자유 를 부르짖는 건 똑같애 크롬웰 애들이나 프랑스 반란한 애들은.
킹 체제 를 사탄 으로 취급하는것도 똑같고.
그렇다고, 그래서, 민주 와 자유 가 와? ㅋㅋㅋ.
저것들이 자기들만의 독재 를 할 뿐이야. 존 밀턴 이란 허섭한 애가 자유의 상징이 되는건 자기만의 자유가 왔을 뿐이고. 적폐는 당연히 죽여야 하는거야. 찰스1세는 적폐고 당연히 죽을 놈 죽인거고, 크롬웰은 위대하신 거걸랑 이런 애들 한텐. 이게 현대 모든 소위 저따위 애들의 공통점이고.
저 과정과 처형장면을 보기전에 말이야. 쟤들 짓들을 더 보고, 찰스 처형 때까지의 이야기를 더 볼 필요가 있어.
England's overseas possessions in this period included Newfoundland,[121] the New England Confederation, the Providence Plantation, the Virginia Colony, the Maryland Colony, and islands in the West Indies. Cromwell soon secured the submission of these and largely left them to their own affairs, intervening only to curb his fellow Puritans who were usurping control over the Maryland Colony at the Battle of the Severn, by his confirming the former Roman Catholic proprietorship and edict of tolerance there. Of all the English dominions, Virginia was the most resentful of Cromwell's rule, and Cavalier emigration there mushroomed during the Protectorate
크롬웰이 역시나 비전 을 세워. 앤 두개야. 하나가 치유와 통합 이여. 이때 분열되었던 잉글랜드 본토 뿐만이 아니라, 북미 도 분열이 되는겨 이게. 싱숭생숭 해지는겨. 이때 플리머스 컴퍼니의 뉴잉글랜드로 1620년 부터 퓨리튼 들이 메이플라워로 오기 시작하고, 제임스1세 때 이 퓨리튼들이 말기에 오는겨 윗쪽은. 바로 아래 버지니아 도 1607년에 제임스타운 들어서고, 바로 들어와. 이게 1620년 을 기점으로 보면 돼 본격적인 정착이. 특히나 버지니아 위 매릴랜드. 에는 카톨릭이 오는겨 이게.
매릴랜드.가 찰스1세 부인, 앙리4세의 딸 헨리에타 마리아 의 마리아를 딴겨 나중. 여기도 제임스1세 때 정착이 들어간거야. 제임스1세의 핵심비서 가 권력에 밀리고, 이리 오는겨. 이사람이 볼티모어.고 그래서 볼티모어 가 매릴랜드에 있는건데. 이사람은 카톨릭으로 전향해서 이리오는겨 카톨릭들 데리고. 여기에서 카톨릭과 퓨리튼 들이 섞여 산겨 이게.
뉴펀들랜드.는 엘리자벳때 험프리 길버트.가 깃발꽂고 잉글랜드 가다 죽고. 이걸 시작으로, 월터 롤리.가 로어노크 만들고, 제임스때 버지니아,에 매릴랜드 에 정착시작하고, 프로비던스 플랜테이션.은 로드아일랜드.야. 로드 아일랜드 주.의 정식 이름이, 로드 아일랜드 와 프로비던스 플랜테이션 의 스테이트.야. 수도가 프로비던스.야. 퓨리튼 이 1636년, 찰스1세 때 내전 전에 시작한겨. 이쪽 뉴잉글랜드의 초기 연합이 뉴잉글랜드 콘페더레이션.이야. 인디언 상대하기 위해 만들다가, 아래 네덜란드 도 상대하게 돼. 잉글랜드 네덜란드 1차 전쟁 나면서.
크롬웰 이전에 이미 저긴 제임스1세와 찰스1세 가 1620년 부터 정착 시작을 제대로 하는겨. 크롬웰이 여기게 퓨리튼들을 더 지원한 걸 갖고, 업적질 할 것은 없어.
George Calvert, 1st Baron Baltimore (/ˈbɔːltɪmɔːr/; 1580 – 15 April 1632), was an English politician and coloniser. He achieved domestic political success as a member of parliament and later Secretary of State under King James I.
조지 캘버트. 볼티모어 배런. 남작. 이 남작 자리는 아일랜드 볼티모어.의 남작 이고. 엘리자벳 최측근 비서가 세실 부자여. 아들 세실.이 이어 제임스1세 를 보좌하다가 죽어. 최측근 비서 중 한명이 조지 캘버트.야. 버킹엄 공작 과 함께 제임스가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야.
제임스1세.가 1603년 즉위하고. 바로 끝맺는게 아일랜드 9년 전쟁이야. 엘리자벳. 말년에 터진 반란이고. 이건 스페인이 적극적으로 지원을 한거고 아일랜드를. 1588 아르마다 이후에 완전히 스페인에게 잉글랜드는 악의 축이야. 잉글랜드는 스페인배 사략질로 먹고 살았던거고.
제임스의 비전.은 스페인과의 평화여. 아일랜드 수습 이고. 아일랜드는 엘리자벳 시절 내내 독립전쟁이었어. 엘리자벳 의 재임시절은 아일랜드 반란에 스페인과의 전쟁인겨. 아일랜드 애들이 그래서 지금 가장 싫어하는 킹 중 한명도 이 엘리자벳.이야. 사치스럽고 자기 욕심만 챙긴 나쁜년 이란 평은 이 아일랜드 애들의 입장에서 나오는 평가야. 지금. 제임스 조이스 의 율리시스 에서도, 엘리자벳은 나쁜년이고. 이 앤 정말 찌질이 중에 상찌질인데.
정말 세계 문학계 에서 가장 찌질이가, 저 제임스 조이스여. 헌데 얜 좀 특별난게, 많이 대갈빡에 심은게 많아 얜. 인문학의 자랑 이 된겨 아일랜드의.
많이 안다고 대단한게 아냐.
나보다 더 많이 알아 저 유럽 저 애들이.
헌데, 나보다 잘 못 알고 있는거지.
리얼하게 아는게 아녀. 허상 을 파기만 한겨 쟤들이. 이게 지금 유럽 미국 애들에 숱한겨 이런 허상이.
에이, 이 조선 애들은, 허상 조차 모르고, 이 조선 애들은, 정말 대갈빡에 든게 없어 든게. 허상 조차도 든게 없어. 얘들은 이 지능 수준 자체가 호모 사피엔스 이전이야.
제임스의 비전이 그래서 또한, 통합 인거야. 스콧과의 통합 은 물론이거니와, 아일랜드 문제 와 스페인 문제야.
이건, 엘리자벳.이 남긴겨 훈수 둔거고. 너 너의 문제가 이거였다. 너는 저걸 다 포용하라우. 엄마 스콧마리 죽은거 너 담지 말아라. 넌 디바인 라이트, 신성한 옮음의 법이 스민 군주란다. 개인의 원한을 푸는 자리가 아냐 킹이란건. 신이 준 자리야.
분명히 이리 계속 주지를 햇어. 제임스는 저 두가지 문제를 푸는게 자기할 일이야. 이렇게 한거고.
아일랜드에 카톨릭 사람들의 현황분석 과 문제점 파악.을 맡은 이가. 이 조지 캘버트.야. 이사람은 요크셔 출생이고, 더하여, 스페인과 손잡기 위해. 제임스가 아들 찰스1세 를 펠리페3세의 딸 과 결혼시키려는겨. 이것도 전담해.
제임스는 카톨릭이 어쩌고 관심이 없어. 엄마 스콧마리와 똑같아. 얘 품이 좋아. 종교보다는 이념보다는 같이 평화롭게 사는거야. 화약음모사건 이 바로 터지고 자기 가족들 자식들까지 다 죽을 뻔 한 카톨릭애들의 음모였지만, 그래도 카톨릭을 품으로 한겨
Penal Laws (Irish: Na Péindlíthe) were a series of laws imposed in an attempt to force Irish Catholics and Protestant dissenters to accept the established Church of Ireland.
From 1607, Catholics were barred from holding public office or serving in the Irish Army. This meant that the Irish Privy Council and the Lords Justice who, along with the Lord Deputy of Ireland, constituted the government of the country, would in future be Anglicans. In 1613, the constituencies of the Irish House of Commons were altered to give plantation settlers a majority. In addition, Catholics in all three Kingdoms had to pay 'recusant fines' for non-attendance at Anglican services. Catholic churches were transferred to the Anglican Church of Ireland. Catholic services, however, were generally tacitly tolerated as long as they were conducted in private
페널 로. 가 아일랜드 카톨릭 들이 앵글리칸으로 전향시키기 위한 패널티 법.이야. 이건 9년전쟁 후 게일 리더들이 대륙으로 떠나고, 화약음모 터지고 나서, 아일랜드 공직 제한하는 거로 시작을 해. 아이리쉬 군대에 공직을 못해 카톨릭은. 더하여, 하원의 아이리쉬는 프로테스탄트로 전향해야 정착민들을 더 많이 확보하고, 세금 감면 혜택도 주는겨. 저걸 감수하고 다들 카톨릭 믿을 애들은 믿는거고.
이 와중에, 자기 아들을 나중 펠리페4세의 여동생.과 결혼시키려는겨. 펠리페4세의 누나 는 나중에 태양왕 루이에 시집을 가는거고 스페인-프랑스 전쟁 종결 기념품으로.
The Spanish match[1] was a proposed marriage between Prince Charles, the son of King James I of Great Britain, and Infanta Maria Anna of Spain, the daughter of Philip III of Spain. Negotiations took place over the period 1614 to 1623, and during this time became closely related to aspects of British foreign and religious policy, before breaking down completely.
이게. 스페니쉬 매치.야. 1614-23년. 찰스1세는 14세고, 결혼할 마리인지 안나인지. 이때 여자들 이름은 마리. 안나(앤). 마리안나. 대부분 이래. 1614년 부터 시작한겨. 이 중매쟁이 핵심도, 볼티모어 남작 조지 캘버트.야.
이건, 펠리페3세.가 먼저 제안을 한거야. 1614년 이면, 곧 30년 전쟁 터지는 1618년 이고. 네덜란드와는 휴전중이고, 펠리페는 네덜란드를 다시 치러 갈 준비 하는거고, 스페인 로드 다시 준비하는거고.
이전에 먼저, 잉글랜드를 외교적으로 풀려는겨. 잉글랜드 마저 적으로 돌리면 안되걸랑. 얘들 관심은 오직 네덜란드야. 저걸 갖고 와야해. 더하여 잉글랜드 사략질이 만만치 않아. 잉글랜드의 이 해군력은 막강한겨 얘들에겐. 9년전쟁때 아일랜드를 적극적으로 지원을 한거고. 이 9년전쟁은 80년 전쟁때 나온거고 잉글랜드 눈길 돌리려고 동시에 아일랜드 지원한거야 얘들이.
카톨릭인 애들이, 자기딸 주면서, 다우리로 오육십만 파운드를 준다고 해. 얘들이, 제임스의 엄마 스콧마리 를 알아. 엄마는 카톨릭이야. 제임스는 저 정서가 있어. 쟨 꼴통 프로테스탄트가 아닐거야 라는 겐또가 들어간겨. 머뭇하는걸 다우리를 더 올리는겨 얘들이. 이걸 제임스가 도장을 찍어. 하기로.
헌데 잉글랜드 팔리어먼트.가 결사 반대야. 카톨릭 여자를 어드래 퀸에 올라. 팔리어먼트를 해체해.
헌데, 이와중에. 펠리페3세 가 죽은겨. 1621년. 이미 30년 전쟁은 터진거고. 이 시작에 죽은겨. 아들 펠리페4세는 1605년 생이야. 찰스1세는 1600년. 태양왕 루이는 1638년. 찰스2세는 1625년.
스페인 펠리페4세 코트가 바뀐겨 이게. Olivares 올리바레스 가, 스페인의 리슐리외에 마자랭 급이걸랑. 더하여 펠리페 여동생도 거부해. 아빠 죽었걸랑. 특히나 저 페널 로. 를 문제삼아. 아일랜드의 카톨릭 탄압이라며 저거 없애라고. 이때 찰스1세.가 스페인 코트 에 직접 가서 저런 말들으면서 직접 들으면서 푸대접을 당한겨.
아들 찰스 1세 와 동행한 사람이 버킹엄 공작 조지 빌러즈.이고. 이 조지 빌러즈.와 조지 캘버트 가 최측근이었고, 이때 아들 찰스가 열받아서 스페인이랑 전쟁합시다, 하면서 결혼이 깨진거야. 그리고 바로 결혼 발표 된 여자가 루이13세 여동생 헨리에타 마리.고, 이걸 주도한게 조지 빌러즈.이고, 하원이 열받아 하는걸 만회하려고 리슐리외 상대로 라로셸 전투 위그노 돕다가 패하고, 조지 빌러즈 는 마음 쫓기고., 그래도 뒤에 찰스1세가 가장 신임하는게 이 버킹엄 공작 조지빌러즈.이고, 조지 빌러즈 를 의회가 탄핵하라고 연일 주장해서 해산하고 이때 권리청원 나오는 의회고, 그리고 조지빌러즈 는 암살을 당하고, 스트랫포드 백작이 찰스의 머리로 등장하고, 이 스트랫포드 가 아일랜드와 손잡아서 의회 눌러라 가 새나가서 의회가 처형시키라 하고, 이걸 찰스가 사인을 해주고 스트랫포드 는 죽고. 그러면서 잉글랜드 내전 이 시작이 된건데.
나중에, 찰스 처형 당할때. 자기의 잘못은, 스트랫포드 백작 을 못지켜준것이라며, 스트랫포드를 죽게해서 나도 죽는다. 이 부패의 세상에서 안부패의 세상으로 나는간다. 하는거걸랑.
할때, 조지 캘버트 볼티모어 남작.은 스페인결혼 껀이 흐트러지고, 권력에서 밀려나서, 아메리카 로 가기로 한거야. 원래 신세계 관심이 있었고, 버지니아 컴퍼니, 동인도 회사.에 투자도 했고, 1620년 부터 사람 보내서 정착지를 찾아 뉴펀들랜드부터 주욱. 그리고 1629년에 카톨릭 사람들을 데리고 아예 간겨, 제임스타운에 도착해서, 위로 가는겨. 1632년 에 매릴랜드 차터 를 받는겨 찰스1세 한테. 이 볼티모어 남작 캘버트 가 매릴랜드 첫 거버너여. 이 볼티모어 들이 여길 만든겨 백년이상을.
William Maximillian Stone, 3rd Proprietary Governor of Province of Maryland (c. 1603 – c. 1660) was an early, English settler in Maryland. He was governor of the colony of Maryland from 1649 to 1655.
윌리엄 스톤. 1649-55년.에 세번째 매릴랜드 거버너.여 매릴랜드 Proprietor 소유주 는 볼티모어 애들이고, 이 윌리엄 스톤.은 퓨리튼 이야.
찰스1세가 죽고, 이 북미도 쇼킹 한겨. 이때 프린스 루퍼트.가 대서양과 캐리비언해 에서 사략질 할때, 이 사람의 근거지도 킹 파야. 팔리어먼트는 북미 식민지 지역도 충성을 요구하는거고, 찰스 지지하면 역적이 되는겨.
이때 볼티모어 쪽에서 거버너 로 내세운게 윌리엄 스톤 이야. 퓨리튼 이니까 너가 좀 챙겨라. 매릴랜드 는 카톨릭 헨리에타 마리아 이름으로 북미 카톨릭 중심인데, 퓨리튼 이랑 섞어서 같이 산겨 이들은. 서로 인정하면서. 헌데 팔리어먼트냐 찰스냐 에 대한 답을 하라고 해. 이들은 퓨리튼 들도 볼티모어 남작 을 지지하는거고, 이 땅 차터 소유자야. 이들은 킹을 지지해 퓨리튼 일 지언정.
During the period of Parliamentary rule, Virginia remained faithful to then King Charles II, though Parliament, which had declared England a Commonwealth under their rule, had decreed that support for Charles II was treason.[3] Baltimore and Stone stayed mute on the subject, but almost immediately after taking office, Stone allowed a group of persecuted Virginian Puritans into the colony, who then settled at Providence, present-day Annapolis. The issue of which side Maryland stood was finally settled, at least in appearance, when Thomas Greene, deputy to Stone and a Catholic, declared on November 15, 1649 that Charles II was the "undoubted rightfull heire to all his father's dominions". All acts taken by the Maryland Assembly would further require an oath of fidelity to Baltimore as "Lord Proprietor"
선택하라.에 볼티모어.와 저 거버너 퓨리튼 스톤 조차 침묵을 해. 쌩까기 시작해. 버지니안 퓨리튼 들이, 올라오면서, 지금 매릴랜드 수도 어내폴리스. 당시 또한 프로비던스.로 옮겨 정책해 들어오고. 그러다가,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찰스2세 를 우리 선조의 후계자라 생각한다. 의회에서 여기로 관료를 파견하면서 애들이 아래 버지니아 지사로 가서 여기도 갖고 오는겨. ,스톤은 짤리고, 팔리어먼트 애들이 약탈해대고, 쫓겨난 스톤이 돌아와서, 전쟁을 하는겨. 저 버지니아로 온 의회파 애들이랑.
The Battle of the Severn was a skirmish fought on March 25, 1655,
이게 세번강 전투. 1655년.이야. 퓨리튼들이 카톨릭과 함께 팔리어먼트 지지하는 애들과 전쟁하는겨. 저때 어내폴리스 의 카톨릭땅이 약탈 당한 직후고. 퓨리튼 인 스톤 이 카톨릭과 함께 치는겨 쟤들을. 이때 네명이 처형당하지만, 스톤은 퓨리튼 사람들이 탄원해서 살려주고. 여기 어쎔블리 라는 회의체.는 퓨리튼들이 주도를 하는데, 이들이 크롬웰 말년에, 소유권을 다시 볼티모어 에 돌려줘. 퓨리튼 들이 돌려준겨. 권리를 돌려주고. 거버너 는 이 차터 받은 소유주 가 시키는거야. 그러다가 크롬웰이 죽은거고.
통합 이니 화해 니, 걍 그 민들 이 스스로 한거야. 그것도 이전에 원래 카톨릭 이든 퓨리튼 이든 같이 서로 섞여 살은 지역에서 저렇게 할 수 있었던거고. 적폐놀이 하는 애들진영은 상상을 못하는겨 이런건.
After some initial gestures approving appointments previously made by Cromwell, the Parliament began to work on a radical programme of constitutional reform. Rather than opposing Parliament's bill, Cromwell dissolved them on 22 January 1655. The First Protectorate Parliament had a property franchise of £200 per annum in real or personal property value set as the minimum value in which a male adult was to possess before he was eligible to vote for the representatives from the counties or shires in the House of Commons. The House of Commons representatives from the boroughs were elected by the burgesses or those borough residents who had the right to vote in municipal elections, and by the aldermen and councilors of the boroughs.
얜 화해와 통합 어쩌고, 민주적 인듯 해댔지만, 항상, 사기야 이런건. 이건 역사가 증명해. 완벽한 사깃꾼 애들이 말로는 좋은 말하면서 선동질하다가, 권력 잡으면 딸딸이 치면서 즐기고, 상대는 가짜뉴스 해대면서, 쾌락을 즐기는겨.
의회가 개혁적인 일을 시작할때, 크롬웰은 반대 하기 보다는, 아예 의회를 해산했다. ㅋㅋㅋ. 의원은 자격이 연2백 파운드 재산 소유자 여야했어. 이전엔 머여? 걍 냄비랑 불피울 난로 있으면 선거권에 피선거권을 줬어.
걍, 사기야 사기. 오히려 킹 때 보다 못해.
두가지 목표 중 두번째.는, 자기의 사이비 종교를 심는겨 ㅋㅋㅋ. 말이 퓨리튼 이지. 얜 걍 사이비 교주여. 아 대체 퓨리튼 이랍시고 같이 빨아대는것도 참 싕기해 지식인 애들이란게.
저게 내가 내 맛에 드는것만 갖고 오는게 아니라, 전부 를 갖고 오는겨 지금. 모든 논제 들을 다 갖고 오는겨.
대체 저리 정리하고나서, 그래서 크롬웰 위대해.는 대체 머냐 저 위키영어도. 먼 평가가 상극이야. 글만 보면 완전히 쓰레기 구만.
Cromwell's second objective was spiritual and moral reform. He aimed to restore liberty of conscience and promote both outward and inward godliness throughout England.[125] During the early months of the Protectorate, a set of "triers" was established to assess the suitability of future parish ministers, and a related set of "ejectors" was set up to dismiss ministers and schoolmasters who were deemed unsuitable for office. The triers and the ejectors were intended to be at the vanguard of Cromwell's reform of parish worship. This second objective is also the context in which to see the constitutional experiment of the Major Generals that followed the dissolution of the first Protectorate Parliament
두번째 목표란건, 정신적 모랄적 개혁. 얜 이걸 하려고 권력을 잡았다는 거지. 소위 양심의 자유와 외적 내적 신성.을 증진 시키는겨. 자기가 생각하는 제대로 된 신성을 심는겨. 카톨릭이 스민 하이처치.는 사탄인겨 얘한텐. 그래서, 제대로된 교구의 미니스터들, 목사들을 심고, 적폐 목사들과 학계를 해고 하는겨. 그리고 여기서 중심은, 군대여 군대. 군대의 리더급들이 얘 권력의 핵심이야.
The 15 major generals and deputy major generals—called "godly governors"—were central not only to national security, but Cromwell's crusade to reform the nation's morals. The generals not only supervised militia forces and security commissions, but collected taxes and ensured support for the government in the English and Welsh provinces.
15명의 군 사령관들이, 신과 같은 거버너들 이란 이름으로, 안보 공안 에 더해, 모랄 개혁의 크롬웰 십자군 의 중심이 되었다. 군사력과 안보 위원회 총괄 뿐 아니라, 세금 걷고 행정을 지원하다.
얜, 상비군을 둔거야. 이 상비군 으로 정치를 한거고 또한. 완전히 이건 걍 군정 이야. 국세청에 행정부 까지 얘들이 다하는겨 이게.
얘가 만든 군대가 아이언사이드즈. 라는건데
The Ironsides were troopers in the Parliamentarian cavalry formed by English political leader Oliver Cromwell in the 17th century, during the English Civil War. The name came from "Old Ironsides", one of Cromwell's nicknames.
이걸 일본애들이 철기군 으로 번역한거지만.
Cromwell first mustered a troop of cavalry (then referred to as "horse") at Huntingdon in Huntingdonshire, on 29 August 1642, early in the Civil War. John Desborough was quartermaster. The troop was late in being organised, and arrived too late to participate in the Battle of Edgehill, the first pitched battle of the war. Cromwell however did witness the defeat of the Parliamentarian horse at the battle and wrote to fellow Parliamentarian leader John Hampden,
크롬웰.이 내전 시작하고, 1642년 8월 29일 에 만든 자기 부대야. 옛 헌팅던 고향.에서 만든 기병부대야. 1월에 찰스가 런던을 떠나고, 서로 초반기엔 지지받고 군대 동원하기 바빠. 이게 서로들 육칠개월이 걸린겨. 찰스쪽도 군대를 모아야 해
A commission of array was a commission given by English sovereigns to officers or gentry in a given territory to muster and array the inhabitants and to see them in a condition for war, or to put soldiers of a country in a condition for military service
커미션 오브 어레이. 미션이 보내는거고, 컴.이 같이.여. 몇몇이 같이 움직이면서, 어레이. 모으는거야. 잉글랜드의 병력 모으는 방법이야. 상비군 이란건 둘 수가 없어, 돈 이 들어. 전쟁할때만 두는겨 이건. 돌아다니면서, 전쟁입니다 군인할 사람들 오세요. 저건 킹 이 용병 외에 다른 병사들 모으는 행위야.
The Militia Ordinance was a piece of legislation passed by the Long Parliament of England in March 1642, which was a major step towards the Civil War between the King and Parliament of England.
팔리어먼트.는 이게 애매한겨. 법 이란건, 킹이 승인하는게 법이야. 의회가 법을 적용해도 사후에 반드시 승인을 받아야 해. 얘들이 밀리티어 오어디넌스 라는 군사법.을 처음 만든겨 이때. 이건 킹의 승인을 받지 않아, 받을 수도 없고. 최초로 킹의 승인없이 발동된 법이 이때 밀리티어 오어디넌스.야. 그러면서 얘들은 하원애들이 지들끼리 모으는겨. 얘들은 무조건 법이야 법.
저때 서로들 개판인겨 이게. 하원도 개판이고. 하원애들끼리 각각 모으는겨. 당연히 어떤 일이 발생해? 자기 거주지 이상은 벗어나지 않으려는겨 병사로 온 사람들이.
이때, 크롬웰이 옛 고향 헌팅던 가서 자기만의 기병대를 모은거야.
It is evident that Cromwell's answer to his own question lay in religious conviction. Early in 1643, he was given a commission as colonel and expanded his troop into a full regiment in the newly formed Army of the Eastern Association,
이 하원의 군대가 초기에. 동쪽연합.과 서쪽연합 이고, 특히 이 동쪽연합.이 가장 많이 모이고, 가장 반찰스야. 이게 찰스의 간척사업 문제가 걸려. 동쪽 링컨 쪽의 만 의 해수면 아래 지역을 찰스가 간척사업을 하걸랑. 이걸로 민심을 잃어 이 동쪽에서. 찰스는 해야했고. 이게 결국 2백년 지나서야 가능해져. 저건 국가 차원에서 해야만 했던 사업이야. 헌데 민들에겐 인기가 없는겨. 자기들 낙시터가 뺏기고 어업을 못하고. 누가 좋아해.
여기 총 사령관이 맨체스터 백작 몬터규.야. 크롬웰이 여기 밑으로 들어가는겨.
크롬웰이 이미 신들린 애고, 저때 얘 기병대가 모랄 로 하나가 된 애들이야. 신들린 크롬웰에 뿅간겨. 아이언사이드 라는 말은, 상대인 루퍼트 프린스가 붙인 말이야. 철갑옷 입은 기병애들이 사이드에 딱 붙어서 움직이는 걸 보고.
이 크롬웰 부대 만 군기가 바짝 들고, 다른 하원쪽 애들은 변변찮은겨 이게. 하원애들이 전쟁능력없는 애들이 사령들을 하는거고, 군기는 엉망이고, 이건 처음이야, 킹 허락없이 지역들에서 사람들이 제각각 모인겨. 이건, 반역이야 병사들 입장에선, 제대로 작동을 못하는겨 이게.
그래서 바로 만든게 뉴모델 아미 라는거야.
The New Model Army of England was formed in 1645 by the Parliamentarians in the English Civil War, and was disbanded in 1660 after the Restoration.
이게 1645년 에 만든 군대야. 3년 지나서. 개판이걸랑 하원들 부대가. 군기 잡고 제대로 정체성을 다진 애들로 재편을 하면서, 리더들도 삭 바꿔. 하원 의원 은 무조건 제외야. 능력없는애들이 의원이랍시고. 정치와 군사 를 이때 분리한겨.
이때 크롬웰 도 자기 부대 아이언사이드 를 준겨 여기에. 이 아이언사이드 가 두 부대로 나뉘어 들어가서, 그 한 부대의 장이 페어폭스 야. 최고 군수권자 하원의. 이 페어폭스 와 맨체스터 몬터규.도 나중에 크롬웰에 밀려서 은퇴하고, 찰스를 죽이고 싶지않어 이들은, 그리곤 찰스2세 올리는데 이들이 앞장선겨.
뉴모델아미.는 하원에서 만든거지, 크롬웰이 만든게 아냐. 크롬웰은 자기부대를 뺏긴겨. 그런데 하원에서, 하원들은 모두 군사권 제외 시키지만, 네명은 군사권을 쥐어 예외로. 실력자들. 그중 두명이 크롬웰 과 나중 사위 헨리 이어튼.이야. 이 둘이 핵심이 되는겨. 크롬웰이 독보적이었던겨 이전에. 얜 이때서야 등장한겨 저 아이언사이드.로.
크롬웰이 이 뉴모델아미.를 쥐면서, 여기서 소위 볼세비키 의 우두머리가 된겨. 그란디즈.라는 다수파.
의회.는 자기들이 만든 뉴모델아미 를 해산해야 해. 이건 당연한거야. 전쟁 끝났어 이제. 찰스도 잡히고.
이걸로 분열이 되고, 이 부대에 반대하는 애들을 프라이드 시켜서 숙청하고, 나머지로 찌꺼기 의회 럼프 팔리어먼트 만들어서, 이 부대를 유지하고, 이 의회로 찰스 처형.을 주도를 한거야.
그리고서, 크롬웰.은 이 뉴모델아미.를 상비군으로 끝까지 두면서, 완전히 완벽하게 군정을 한겨 얜. 잉글랜드 전역에 자기 군대를 쫘악 깐거야.
그럴려면 어드래 해야하니. 쟤들을 운영하는 돈이 필요한겨. 돈이여 돈. 중세에 이걸 어느 누가 안하고 싶겄어. 헌데 중세 유럽 체제는 상비군을 운영할 수 없어 그 킹덤 구조가. 영지 조차도. 상비군을 운영할 만큼의 돈 이 없어.
이걸 유념해야 해. 이걸 간과하는 애들이 대부분이야 저 유럽 사가 애들 보면.
돈이 없어요 돈이. 상비군을 운영할 바엔 그돈으로 딴 짓 하겄다 주의야.
돈이 없어. 이게 일본애들 사무라이 가신체제와 비교해봐야해. 저 도쿠가와 때 애들도, 돈이 없어 이게. 얘들은 땅 주의. 민들의 농사 지은걸 연공을 받아서 봉록을 나눠주는 애들이야. 여긴 깝깝한겨. 헌데 더 깝깝한게 조선이야.
유럽은 작위 받은 애들이, 자기 땅 받아서 농노 랑 계약을 해서 유지하는 애들이야 자기 영지를.
킹에 세금을 내는 사람들은, 민 이 아녀. 영주여 영주. 영주는 민들이 수확한 것들을 나눠서 받아서 그걸로 자기 영지 코트에서 뿌리면서 여기서 군주한테 세금을 주는겨. 그래서 유럽애들이 코트 가 중심이 되고 사롱이 중심이 되는겨 이게.
직접세 라는게 없어. 직접세 라는건 킹 이 민들을 상대로 세금 걷는겨. 직접세 간접세를 지금식으로 이해를 하면 안돼.
이게, 유일하게, 잉글랜드 에서 시작한겨 이런건. 파운디지 톤이지 라는 관세도 그렇고. 부르즈와 들한테 직접 세금을 걷는게 잉글랜드여. 인두세니 머니 이런건 나중에야 생기는거고 이것도 영주 가 지들 영지 머리 계산해서 얘가 자기 것에서 주는겨 이게. 민들을 쪼든 말든. 프랑스도 이게 17세기 후반부터야 직접세로 가는겨. 영주가 오히려 홀가분해진겨.
이건 중요한겨. 물론 이런 말하는사람은 나 혼자일테고.
돈이란게 없어 쟤들은. 상비군 둘 돈 으로 코트에서 후원하면서 자기 영지 를 남들보다 더 멋지게 꾸미는 시절이 이게 중세 유럽이야. 그래서 중세 건물들이 그렇게 조오오올라게 화려한겨.
저 건물은, 영주들이 자기돈, 군주가 킹이 자기 돈으로 세우는거야. 저런 구조로 남은 자기 돈으로. 저건 채리티 라는 기부여 저건.
내가 중세유럽을 편협한 긍정의 시선으로 봐서 이런 말 하는게 아니라, 이게 그래서 유럽과 비유럽의 차이라는겨 이런게.
이런게 서로 역사가 달리 간거고, 쟤들은 하늘로 갈때 아시아는 땅밑으로 파고든거야.
그래서 쟤들은 저 상비군.을 유지하기 위해서, 악착같이 세금을 걷어야 하고, 그래서 경제 에 신경써야 해. 잉글랜드 상인 을 위해서 네덜란드와 전쟁을 한게 아녀. 항해법 을 민들 위해서 만든게 아녀. 그걸 통해서 돈을 걷는겨 저 상비군을 유지하려고. 총잡이 에게 자리를 직접 앉히는거고.
While a few of these commissioners were career politicians, most were zealous puritans who welcomed the major-generals with open arms and embraced their work with enthusiasm. However, the major-generals lasted less than a year. Many feared they threatened their reform efforts and authority. Their position was further harmed by a tax proposal by Major General John Desborough to provide financial backing for their work, which the second Protectorate parliament—instated in September 1656—voted down for fear of a permanent military state. Ultimately, however, Cromwell's failure to support his men, sacrificing them to his opponents, caused their demise. Their activities between November 1655 and September 1656 had, however, reopened the wounds of the 1640s and deepened antipathies to the regime.[126] In late 1654, Cromwell launched the Western Design armada against the Spanish West Indies, and in May 1655 captured Jamaica.
이 군부애들이 인사권을 다 쥔겨 이게. 렬렬한 퓨리튼 들을 환영하는거고, 경력도 없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게 지금 조선 민국인거고. 아~~무것도 모르고 걍 지들 이념에만 동의된 애들, 회사의 사원 대리 수준 애들이 ㅋㅋㅋ 수석에 장관에 참 끔찍한건데 이건. 오직 열정만 있어. 이런애들이 타락하기 쉽고, 남은 적폐가 되고, 살벌해 지는거야. 정의놀이하면서 협박하는거고. 군부애들이 직접 세금을 거둬. 자기들 세상이 된겨 이게. 돈이 더필요해져. 정벌하러 가는겨.
말로는, 크롬웰은 강력한 브리튼을 추구하려했다. ㅋㅋㅋ. 왜? 킹 죽인 이유가, 쟨 안강력한 브리튼 이라서?
개소리야 개소리.
As Lord Protector, Cromwell was aware of the Jewish community's involvement in the economics of the Netherlands, now England's leading commercial rival. It was this—allied to Cromwell's tolerance of the right to private worship of those who fell outside Puritanism—that led to his encouraging Jews to return to England in 1657, over 350 years after their banishment by Edward I, in the hope that they would help speed up the recovery of the country after the disruption of the Civil Wars
크롬웰이 하는게 쫓겨난 유대인들 허용하는겨. 돈이 필요해 얘가. 저 뉴모델아미 가 얘의 힘 그 자체여. 엄청난 돈이 필요해. 돈을 누가 잘벌어? 유대인들이 잘벌어. 유대인 고리대금업 이란것도 사기야 사기. 천만에 말씀이다. 저건 나중 이야기 하고. 그리스도는 대부업 못하고 유대인들이 그 시장을 취해? ㅋㅋㅋ. 야 그럼 전쟁날때 저때 은행애들은 돈을 무이자로 빌려주고, 용병 쓸때 무이자로 돈꿔주고 했대? 채권 발행하는건 머냐, 그건 무이자냐? 채권은 대부업이 아니니? ㅋㅋㅋ.
완벽한 개소리야. 이 사학계가, 정말 무지한겨 내 요즘 보면. 이 역사란건 말야. 지식의 총체야 이건. 정말 무시기들이 역사를 정리를 해오는건데.
고대 그리스인들 다음으로 가장 돈벌이 잘하는 애들이 유대인들이야. 게르만애들은 이제 갓 배우는겨. 유대인들한테 이게 안돼. 저 수메르 이후 쌓여온 힘은 엄청난겨 저게. 유대인애들이 이 정체성이 안 끊긴거고, 그리스인들은 저게 끊긴겨. 지금 유대인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몫을 담당하는 이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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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롬웰.이 사이비 교주가 되서, 자기만의 환타지의 신을 만들고나서, 현실의 힘은 저 상비군 이 된 뉴모델아미.를 취한 것일 뿐이야. 얜 이게 다야.
권력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가. 군대 를 내 옆에 두는거야. 나만의 근위대를 두고, 더해서, 나만의 군대를 전국에 까는겨. 얜 이게 다야. 거기서 자기랑 이념같은 애들 퓨리튼들 더 쑤셔 넣어서 자기 인생 일평생은 편안히 살았을 뿐이야.
이 짓을 하려고. 찰스1세 를 죽인겨. 온갖 사탄 단어들을 판결문에 넣고서 ㅋㅋㅋ.
헌데, 저런 애가, 지금 영국애들한테는 위대한 인간 열번째야.
이 역사가 들은, 내 요즘 보면, 참 정말 무지한 것들이, 유럽에도 널린거야. 헌데 쟤들은 요즘 보면 다시 저리 정리를 해. 저것도 최근의 일이야 저리 정리하는게.
찰스1세 도 개무시 당하는데 지금 조차. 제임스1세도 그렇고.
전혀 그렇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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