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mwell is one of the most controversial figures in the history of the British Isles, considered a regicidal dictator by historians such as David Sharp,[5] a military dictator by Winston Churchill,[6] and a hero of liberty by John Milton, Thomas Carlyle, and Samuel Rawson Gardiner. His tolerance of Protestant sects did not extend to Catholics; his measures against them in Ireland have been characterised by some as genocidal or near-genocidal,[7] and his record is harshly criticised in Ireland.[8] He was selected as one of the ten greatest Britons of all time in a 2002 BBC poll.
크롬웰. 에 대한 평가가 상극인데, 저것도 말이지, 최근에야 크롬웰은 쓰레기 였다고 평하는겨. 데이빗 샤프 가 지금 사가여. 걍 국왕 시해한 독재자여 요즘 애들 눈에는. 쟤를 자유의 영웅 이니 위인 취급하는게 존 밀턴, 같은 동시대 인간에 토마스 칼라일, 새뮤얼 가드너.가 19세기 역사가들인데, 이들은 퓨리튼 이걸랑. 이 프로테스탄트 들이 19세기에 역사를 장악하면서, 완전히 중세는 쓰레기가 되고, 지들의 역사가 근대를 만든거걸랑. 토마스 칼라일이 프랑스혁명 쓴거로 유명해진 애고, 위대한겨 로베스피에르.가 얘들은 똑같애, 로베스피에르 랑 올리버 크롬웰 은 같은겨 이게. 위인이고 영웅이여.
얘가, 이 가장 추악한 애가, 최근 비비시 투표에서 가장 위대한 인간 백명중 10위여. 이게 모두 저런 사가 애들의 역사 주작질 거짓질의 힘이걸랑. 아일랜드인들이 쟤를 히틀러보다 더한 개로 보기 이전에, 쟨 걍 킹 살해하고 지가 킹 한 애여 저건.
정말 말년까지 편하게 지내다 간 애고. 걍 얜, 사이비 교주여.
저걸 퓨리튼 애들이 청교도 혁명이란 번역으로 위대해 짓 해대는거고. 얘들이 미국사를 또한 쓴거야 머 퓨리튼들이 미국을 만든양. 얘들이 민주당 애들이여 지금. 여기서 샌더스 나 워렌 같은 그야말로 위선적인 년놈들이 조오올라게 떼부자로 사는겨 선동질하면서 사회주의 심으면서. 그래도 미국의 힘은 저런 애들을 가릴 만한 애들은 되는겨 민주당 애들 조차.
저게 모두 거짓말 사료를 보고 이들이 역사 주작질 거짓말 질들을 하는거거든. 이들은 학자가 아니라, 그냥 소설가야 소설가. 존 밀턴 이란 실락원 쓴 애는 당대 인간이여 저때. 크롬웰 정부에서 일한 애고, 렬렬하게 크롬웰 빨던 놈이고. 유명한 시인님께서 크롬웰 위대해 하셔요. 자유의 화신 존 밀턴께서 크롬웰 짱이래요. 크롬웰 위인이예요 자유의 영웅이예요 ㅋㅋㅋ. 코메딘데.
All eyes are on Robespierre's Tumbril, where he, his jaw bound in dirty linen, with his half-dead Brother and half-dead Henriot, lie shattered, their "seventeen hours" of agony about to end. The Gendarmes point their swords at him, to show the people which is he. A woman springs on the Tumbril; clutching the side of it with one hand, waving the other Sibyl-like; and exclaims: "The death of thee gladdens my very heart, m'enivre de joi"; Robespierre opened his eyes; "Scélérat, go down to Hell, with the curses of all wives and mothers!" -- At the foot of the scaffold, they stretched him on the ground till his turn came. Lifted aloft, his eyes again opened; caught the bloody axe. Samson wrenched the coat off him; wrenched the dirty linen from his jaw: the jaw fell powerless, there burst from him a cry; — hideous to hear and see. Samson, thou canst not be too quick![8]
토마스 칼라일.의 프랑스 혁명사. 얜 역사를 소설로 쓰는 애가, 드라마 기법을 얘가 도입을 하걸랑. 로베스피에르 처형장면이야.
모든 눈들은 로베스피에르의 호송차에 있다, 거기에 그의 턱은 더러운 리넨으로 감싸고, 그의 동생 오귀스탱, 그리고 앙리오 는 반죽음 상태고, 흩어진체 누워있어, 그들의 분노의 17시간은 곧 끝이나는거야. 장다르메(경찰)은 그들의 칼들로 그를 가리켰다, 사람들에게 그가 누구인지 알려주려고. 한 여자가 호송차로 뛰어와서, 한손으론 차 짐칸 살을 부여잡고, 키벨레 여신처럼 주문을 걸며 외친다, 너의 죽음은 나를 기쁘게 할지니. 로베스피에르는 눈을 뜨고, 지옥으로 떨어져라, 모든 여인들과 엄마들의 저주와 함께!. 발수갑 찬채 그들은 그를 땅에 펴서 그의 차례를 기다렸다. 높이 올리고, 그의 두 눈은 다시 떴고 피흐르는 칼날을 보다. 사형수 상송은 그의 움켜쥐고 그의 턱에서 더러운 리넨을 뜯어내다. 턱은 힘없이 떨거쥐고 괴성이 터졌다. 듣고 보기 기괴하더라, 상송 너 빨리!
쟨 저때, 자살 실패해서, 턱이 아작이 났어. 자기도 쓰잖오? 아래턱이 툭 떨어져 리넨 헝겊을 빼내니까. 야, 턱뼈 나간 놈이 뭔 말을 저리 하냐. 어떻게 이따위 애가 역사학자냐 그래.
저따위 토마스 칼라일 애들이, 저 업계에선, 19세기에 위대한 사학자야. ㅋㅋㅋ. 얘도 프랑스 대학살을 혁명으로 포장해대는거고.
걍 거짓말이여 저건. 지가 먼 말을 저리 해, 모든 여인들과 엄마들은 이새꺄 너한테 저주를 하는겨. 너때문에, 니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그냥 쳐 죽였냐 적폐라면서 니가. 헌데 저런말을 또 턱뼈나간 애가 했다미 소설을 써대고. 얘 감정선이걸랑, 우리 위대한 로베스피에르를 처형하는 니덜은 다 저주받을지니.
정말 개미친 애들인데. 이 19세기 역사학자 애들 저 유럽 애들 저때.
우리넨 고대로 저따위 애들 이야길 듣고 배운거고. 머 우리네가 스스로 듣고 배웠겠니? 당연히 일본들이 쟤들 번역한걸 지들이 번역한듯 고대로 소리발음 빼껴서 갈키는거고 지금도.
He described the Scots as a people "fearing His [God's] name, though deceived".[98] He made a famous appeal to the General Assembly of the Church of Scotland, urging them to see the error of the royal alliance—"I beseech you, in the bowels of Christ, think it possible you may be mistaken."[99] The Scots' reply was robust: "would you have us to be sceptics in our religion?" This decision to negotiate with Charles II led Cromwell to believe that war was necessary
크롬웰.이 찰스 죽이고, 스콧이 돌아서고, 스콧인들은, 신의 이름을 걱정시키는 이들, 비록 속고 있지만. 으로 묘사해. 스콧에 촉구하길 킹과 연대하는 건 잘못이라며, 내가 지저스의 깊은 창자에서 우려내서 생각해보고자 해, 내가 니덜을 잘못 알고 있을지도 몰라. 니덜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고, 내가 혹시 잘못 듣보는거 아니니? 스콧이 대답하다 강경하게, 너는 우리가 우리 종교를 잘못 믿는다고 생각하니? 크롬웰은 전쟁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다.
쟨 쓰는 표현이, 지가 지저스여.
Cromwell had two key objectives as Lord Protector. The first was "healing and settling" the nation after the chaos of the civil wars and the regicide, which meant establishing a stable form for the new government to take.[117] Although Cromwell declared to the first Protectorate Parliament that, "Government by one man and a parliament is fundamental," in practice social priorities took precedence over forms of government. Such forms were, he said, "but ... dross and dung in comparison of Christ".[118] The social priorities did not, despite the revolutionary nature of the government, include any meaningful attempt to reform the social order. Cromwell declared, "A nobleman, a gentleman, a yeoman; the distinction of these: that is a good interest of the nation, and a great one!",[119] Small-scale reform such as that carried out on the judicial system were outweighed by attempts to restore order to English politics. Direct taxation was reduced slightly and peace was made with the Dutch, ending the First Anglo-Dutch War
호국경이 되고, 두가지 목표를 세워. 하나는 내전과 킹살해의 혼돈 후에, 나라를 치료하고 안정화 시키는 것. 호국경이 되고, 의회를 다시 소집해. 럼프 베어본즈 의회 다 해산한겨. 한 사람과 한 의회 의 정부.야. 상원 이라는 고급귀족 의회는 지운거고. 카운슬 오브 스테이트 가 있고, 얘가 배후인 아미 카운슬, 군대 회의체가 있어. 명목상은 한 사람과 한 의회.가 가장 우위라 하는거지. 크롬웰 왈, 지저스 와 비교하면 그래봤자 드로스 와 덩, 쓰레기 와 똥 수준이란겨. 그야말로 퓨리튼 수준 다운 인식구조여 얜.
그러나, 사회적 질서를 개혁하려는 의미있는 시도는, 없었다. 크롬웰은 선언하길, 귀족. 젠틀맨. 요우맨. 이 특징적인 셋 이 나라에 선한 가치이고, 가장 큰 가치이다.
사법제도에 자잘한 개혁이 있었지만 잉글랜드 정치에 밀렸다 사법개혁은. 직접세는 조금 줄어들고, 네덜란드 전쟁을 끝내면서 타협했다.
The Battle of Dunbar occurred on 3 September 1650, and is traditionally considered one of the major battles of the Third English Civil War, part of the Wars of the Three Kingdoms as the competing claims of the new Commonwealth of England and of Charles II to the throne of England were at stake.
던바 전투. 찰스2세.가 헤이그에 있다가, 아빠 죽고, 다음해인 1650년 6월에 에딘버러 로 들어가. 크롬웰이 9월에 쳐 올라가는겨. 베릭 지나서 에딘버러 를 점령하러 가는거야. 이게 잉글랜드 1만 대 스콧 2만 의 전투여. 던바.가 해변이고 돌아 들어가면 에딘버러야. 여길 기지로 두고 쳐들어가는데. 이 스콧은 추워, 잉글랜드애들이 환경이 안맞아. 병에 걸리고 기세 꺾이고 던바로 물러나다가, 이걸 후퇴로 느낀 스콧 레슬리.가 쳐내려 가다가 역공을 당해서 대패를 해.
he is said to have exclaimed, perhaps referring to Joshua 10:8, "The Lord hath delivered them into our hands!"
스콧 애들이 막 닥아올때 크롬웰의 말. 얜 조슈아 를 인용해. 신은 그들을 우리 손에 넘겼다. 쟤들이 수성하다가 판단착오로 쳐나온거걸랑.
Cromwell described the victory as "...one of the most signal mercies God hath done for England and His people..."
하원의장에게 쓴 글. 승리하고. 잉글랜드와 그의 사람들을 위해 신이 행한 가장 중요한 은총중 하나의 일이요.
The Battle of Worcester took place on 3 September 1651 at Worcester, England, and was the final battle of the English Civil War. Oliver Cromwell's Parliamentarian New Model Army, 28,000 strong, defeated King Charles II's 16,000 Royalists, of whom the vast majority were Scottish.
우스터 전투 1651년 9월 3일. 던바전투 딱 일년 후여. 이때는 찰스2세가 직접 스콧부대를 이끌고 잉글랜드 쭉 내려가서 우스터 까지간겨. 16000명. 아주 작정을 한겨. 헌데 이땐 이미 크롬웰 부대는 3만 가까운 병력이고. 여기서 찰스2세가 대패를 하고, 도망을 가 위로. Boscobel, Shropshire. 슈랍셔.의 보스코벨 참나무 숲에서 숨다가, 프랑스로 도망가는겨. 크롬웰이 찰스 모가지에 1천파운드 현상금을 걸어. 스콧과의 내전이 3차 잉글랜드 내전이고. 우스터 전투.로 종지부를 찍는겨.
크롬웰.이 호국경에 오르는게 1653년 12월 인데, 얘가 이렇게 늦게 되는 이유는, 저 찰스2세 때문이여 이게. 쟤를 살려둔 채로는 자기가 권력 자리에 오르는게 떨떠름한거걸랑.
얜, 찰스1세 모가지 짜를때 부터 이미, 킹 자리를 하려 한겨 얜. 찰스2세 가 문제였던겨 얘 한텐.
The First Anglo-Dutch War, or, simply, the First Dutch War, (Dutch: Eerste Engelse (zee-)oorlog, "First English (Sea) War") (1652–1654) was a conflict fought entirely at sea between the navies of the Commonwealth of England and the United Provinces of the Netherlands.
그리고 터지는게. 1차 잉글랜드 네덜란드 전쟁.이야. 1652-54. 이것도 찰스1세 목 짜르고나서 찰스2세 가 던바, 우스터 전투에서 패하고 도망가서 프랑스 와 헤이그 로 가면서 벌어지는겨. 이것도 가장 큰 이유는, 바닥에, 찰스1세 의 처형이야. 잉글랜드 내전의 연장선인겨 이게.
1652-54 라고 하지만, 잉글랜드가 전쟁 선포를 한게 1652년 6월 이야.
The Battle of Scheveningen (also known as the Battle of Ter Heijde) was the final naval battle of the First Anglo-Dutch War. It took place on 31 July 1653 (10 August Gregorian calendar) [a] between the fleets of the Commonwealth of England and the United Provinces. The Dutch fleet suffered a heavy defeat, but achieved their strategic goal in the short term, as the battle led to the raising of the English blockade of the Dutch coast.
저 전쟁 마지막 전투가 1653년 스헤베닝엔 전투.여. 7월 31일 이야. 얘들이 딱 1년 전쟁한겨. 뒤는 자잘한 거고. 다음해 휴전을 한거고. 이 전투로 서로 이겼다고 해대면서. 크롬웰 이 연말에 로어드 프로텍터, 호국경 이 되는거야. 그리고서 네덜란드와 악수를 한거고. 찰스2세 가 완전히 떨거지 신세가 된겨 이게.
크롬웰 은 찰스 1세 목 짜르고 1649년 1월. 만 5년 만에 호국경 이란 이름으로 자리에 앉은겨. 이건 오직, 찰스2세 때문인겨. 얘가 머 마음 선해서리 하기 싫은 자리 억지로 한게 아니라. 아주 노골적으로 헌법을 만들어서 호국경 자리를 만들고, 걍 자기가 호국경을 하고, 찌꺼기 의회는 지들이 투표해서 민주적으로 해산하고. 그리고 자기 체제 하에 새로운 의회를 만들고. 아주 골때리는 인간인데.
저때, 찰스2세.는 1630년 생이고, 엄마 헨리에타 는 앙리4세 딸이고, 루이13세 여동생이고 파리로 가는겨. 찰스2세는 시칠리아섬에 갔다가 Jersey 저지섬 제지섬 이 노르망디 앞바다의 잉글랜드꺼여. 여기있다가 엄마 있는 파리 갔다가, 여기도 프롱드가 터지잖오. 찰스1세가 죽을때 프랑스는 30년전쟁 막바지에 프롱드 터져서 서둘러 끝낸, 이 프롱드야. 헤이그 로 가는겨. 헤이그에 여동생 마리.가 열살에 프레데릭 헨리.의 아들 윌리엄2세에 시집을 가, 윌리엄2세가 1650년에 죽어 24세에. 이 아들이 1688 명예혁명 잉글랜드 킹 하는거고. 여동생 마리가 나중 오렌지 윌리엄의 엄마로 지금 여기 있는겨. 프레데릭 헨리 와 찰스1세 는 사돈간인겨. 프레데릭 헨리는 망명온 엘리자벳 스튜어트.의 레이디인 아말리아 와 결혼한거고. 찰스1세 목 짤리고 네덜란드 도 열받는겨 이게. 얘들은 중립 이었걸랑. 프랑스는 당시 태양왕 루이 꼬마의 고모부 가 죽은거고. 프랑스 네덜란드 가 같이 열받는겨 이 상황이.
이 상황에서, 찰스2세 가 본토에서 대패하고 대륙으로 전전하면서, 잉글랜드 팔리어먼트 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밖에 없는겨. 프랑스 와 네덜란드 가 문제가 되는겨 이게. 당시 프랑스 는 스페인과 계속 전쟁인거고. 이건 1659년 에야 끝나는겨. 프랑스는 저때 잉글랜드문제는 여력이 없어. 프롱드 에, 태양왕 루이는 아직 십대고. 네덜란드는 스페인과 친해졌고.
잉글랜드는 저상황에서, 네덜란드 와 부딪히게 될 수 밖에 없는 판이 된거야. 저기에 찰스2세가 있는거고. 얜 9년을 떠돌아 다녀. 잉글랜드가 네덜란드와 손 잡고, 프랑스와도 손잡을땐 완전히 외톨이가 되서리, 스페인에 구걸해서 플랑드르에 있게 되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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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라는 나라는 저당시 잉글랜드 가 만들어준겨 저건. 1588 아르마다 이후로. 이전에 레스터 백작 더들리도 사령관을 해서 패했지만 이후 여긴 잉글랜드가 코트차원에서 개입하면서 스페인에 맞선거야. 잉글랜드가 있어서 네덜란드가 저만큼이라도 가진겨 저당시. 얘들은 바다에서 한몸이었어. 서로 무역으로 서로 먹고 사는 애들이고.
헌데 이들이 부딪히는 곳이, 아메리카 가 생기고 부터야.
특히나, 북미,는 유럽인들이 본격적으로 정착을 하기 시작한거야. 여기가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 된겨 상인들에겐. 저 정착민들을 대상으로 수요가 폭발하는거걸랑. 저긴 거지여 거지. 다 갖고 와야해 유럽에서.
헌데, 잉글랜드 상인들이, 네덜란드 에게 밀리는겨. 가격이 비싸 훨.
잉글랜드는 에드워드2세 부터 관세 란게 생겼다 했잖오. 톤이지 앤드 파운디지. Tonnage and poundage 이 세목을 찰스1세 가 취하다가 뺏기는거고. 의회와 관련 없는 걸. 더하여 쉽머니 란 것도 생겼어 찰스1세가 돈 없어서. 얘들이 상품가격이 높아진겨. 이게 신 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해지는거야.
백년전쟁은 Wool 울 전쟁 이란 말이 있어. 잉글랜드가 울 을 플랑드르 에 뿌리고 프랑스에 뿌리다가, 이게 잉글랜드의 특산물 이었다가, 스페인에 네덜란드에 이게 대륙으로 퍼지걸랑. 잉글랜드는 저 이후 직조를 늘리는겨. 원단을 파는겨 백년전쟁 이후로. 얘들이 백년전쟁하면서 이 직조 기술을 갖고 온겨 이게. 얘들은 거지중에 쌩거지여 에드워드3세때는.
울을 수출하면 플랑드르에서 원단을 만드는거걸랑. 제조 는 플랑드르였던거고 백년전쟁 이전에는.
For example, an English wool trader, who dealt largely with ports in English-speaking America, complained in 1651 that although his English ships would take wool cloth to America to be sold, they could expect to leave American ports with 4000 to 5000 bags of wool cloth unsold. Dutch ships, on the other hand, would leave American ports with barely 1000 bags of wool cloth unsold.
1651년에, 잉글랜드 배가 아메리카 를 다녀 오면, 4천 5천 울 원단이 안팔린 채 갖고오는데, 네덜란드 배는 1천 박스만 못판겨. 아메리카 영어 쓰는 지역에서도 네덜란드 원단이 더 팔리는겨 이게. 하물며 다른 지역은.
저게 세금이여. 잉글랜드는 원래부터 관세 등 세목이 막 생기고, 헨리 7세 가 상업을 일으키면서 상품에 세금을 붙일 줄 알게 된거고. 네덜란드 는 막 생긴 나라야. 저런거 없어. 완전히 자유무역이야. 가격 경쟁력이 월등한거야.
미국 이란 나라는. 로어노크 월터 롤리.가 처음 시작하고 엘리자벳 때. 다음 1607 제임스타운 부터 본격적인겨. 제임스1세가 오르고 한겨. 그리고 두 개의 컴퍼니.가 위 와 아래 로 가는겨. 위에 메사추세츠 플리머스 있는 플리머스 컴퍼니 가 위로 실어나르고, 런던 버지니아 컴퍼니.가 버지니아로 실어나르기 시작하는겨.
플리머스 쪽인 뉴잉글랜드가 빨라. 이게 퓨리튼의 메이플라워호 1620년 이야. 플리머스에서 출발한 플리머스 컴퍼니야. 이들이 1620년대 부터 이리로 들어오고,
아래는 버지니아 컴퍼니.가 버지니아 제임스타운 1607 이후에, 계속 여기로 넣고, 메릴랜드도 1630년 직후부터 들어가는겨.
가운데.는 네덜란드여. 헨리허드슨 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으로 아시아길 뚫다가 뉴욕엘 온겨. 이게 1609년 이고. 1614년에 뉴 네덜란드 컴퍼니가 생기서리 이리로 들어오는겨 네덜란드가. 이게 잉글랜드가 개입하는게 1664여 이 가운데는. 즉 찰스2세 때야 이 가운데는. 그래도 여기로 유럽인들이 들어오는거고.
찰스1세가 1625년 에 즉위하는거고. 이미 제임스1세 부터 아메리카 로 막 들어가기 시작한거야. 찰스1세도 저걸 한겨.
저들이 본토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의 상인들에게 새로운 시장이 된거야 이삼십년 지나면서. 저게 1648년 30년 전쟁 끝나고서 문제가 되는겨 이게. 네덜란드는 전쟁 때문에 저기 못 가. 전쟁 하느라. 그러다가 네덜란드가 독립 인정받고 스페인과 화해를 하고, 배를 전함 에서 상선 으로 바꾸는거야. 큰 배가 필요가 없고, 전함은 대포 쏘는 배고 설계가 다른거야 이건. 보다 작은 배들로 바꾸고 오히려 전함을 줄여나가고 저때 북미로 가는겨 이 상인들이.
하필 저때가, 잉글랜드는 내전 일때인겨. 찰스 목아지 짤리고. 저때 네덜란드가 아주 활발한겨 상인들이.
헌데 잉글랜드 애들이 영어 쓰는 북미지역조차도 가격경쟁력이 안되는겨. 세금 때문에. 자기들 물건은 이미 관세가 붙어 물건 나가면서. 더하여 쉽머니 돈도 가격에 반영을 하는겨. 네덜란드는 이런게 없어.
The Navigation Act 1651, long titled An Act for increase of Shipping, and Encouragement of the Navigation of this Nation was passed on 9 October 1651
내비게이션 액트. 라는 항해법.이 1651년 10월 9일에 처음 나오는겨 이게.
이 날이 언제냐? 한달 전에, 우스터 전투 로 찰스2세 가 완전히 대패하고 도망가서 브리튼을 떠난 직후인겨 이 항해법이란게.
The Act banned foreign ships from transporting goods from Asia, Africa or America to England or its colonies; only ships with an English owner, master and a majority English crew would be accepted. It allowed European ships to import their own products, but banned foreign ships from transporting goods to England from a third country elsewhere in the European sphere. The Act also prohibited the import and export of salted fish in foreign ships, and penalized foreign ships carrying fish and wares between English posts. Breaking the terms of the act would result in the forfeiture of the ship and its cargo
잉글랜드와 잉글랜드의 식민지에 들어오는,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물건 실은 외국상선들은 금지야. 오직 잉글랜드 선주에 잉글랜드선원이 많은 배여야만 해. 자기들 유럽땅의 물건들 갖고 오는 건 괜찮아. 헌데 유럽외 다른 땅의 물건을 잉글랜드로 수출하면 안되는겨. 또한, 외국상선의 소금절인 생선의 수출입도 금지해. 타겟 은 네덜란드여.
네덜란드 와 잉글랜드 는 서로 간의 무역규모가 아주 작아. 얘들이 수출입 품목이 겹치고. 밖에서 둘이 경쟁자가 되는거고, 경쟁력이 네덜란드가 훨 앞선거고. 그래서 겹치는 소금절인 생선 은 팔지 마라는겨 ㅋㅋㅋ 더가서.
북미 식민지 라는게, 저게 잉글랜드 꺼여? 지들이 차터 발행해서 컴퍼니로 가서 먼저 눌러 앉으면 다여? 저기에 머 잉글리만 있능겨? 이런 소리는 둘째치고 말이지. 저런 거래는 유럽 인간들이 그동안 한 적이 없는거야.
시장에 대한 개념이 저때 잉글랜드가 가장 독보적인겨 이게. 좋게 보면.
얘들은 인클로우져 를 13세기에 한 애들이야. 배론들이 등장하는 내전때부터 시장 개념이 니꺼 내꺼가 등장한겨 바닥에서.
저때도, 벌써 일자리 창출.이야. 자기들 잉글리 선원이 많으면 또 괜찮은겨 외국상선은. 승무원에 잉글리가 몇명이냐 도 뒤에 붙는거고. 저걸로 미국독립혁명으로 가는겨 2백년 이상 이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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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우스터 전투 9월에 바로 한달 후 나오는건데. 이건 이미 감정이 쌓인 거란 거걸랑. 이건, 잉글랜드 팔리어먼트.가 찰스 1세 죽이고, 역시나, 외교적으로 인정을 받고자 하는거야. 네덜란드 에 특사를 파견하는데, 장인 이여. 당시 윌리엄2세.가 1647년 에 스타트하울더.여. 21세에 막 아빠죽고 짱이 되고. 2년 후에 장인이 죽은겨 쟤들이. 부글부글 한겨 이건. 비록 30년 전쟁때는 직접 자기들 안도와줬지만 간접적으로 도와준거고, 초반엔 자기들 도와준 엘리자벳에 제임스고.
헌데 1650년.에 마리 부인 윌리엄2세 가 천연두로 죽어. 오렌지 윌리엄 3세 가 1주일 후에 태어나. 얘가 1650년 생이야. 나중 명예혁명으로 잉글랜드 킹 되는. 이때 코트 의 섭정 중 한명이 마리. 인거고. 자기 아빠 찰스1세 죽인 애들이 팔리어먼트 인정해 달라며 온거야. 타이밍이 안좋은겨.
저걸 팽 시키고, 돌아와서 열받은 상태에서 우스터 전투 에 이전 던바전투를 이기고. 기세 등등하고 항해법 을 통과를 시켜.
그리고, 네덜란드가 준비를 하는겨. 잉글랜드 선원들을 고용하고, 배를 전함으로 개조하고.
이걸 알고 팔리어먼트에서 전쟁 선포하고. 딱 일년 한겨. 그 다음해 손 잡고. 마리. 의 시엄마 아말리아 도 아직 살아있고, 네덜란드가 팔리어먼트 를 인정하는거야 이건. 1차 전쟁 마무리는.
프랑스 도, 잉글랜드가 필요해 지금 스페인 전쟁 중이야. . 이게 1658년 둔스 전투. 됭케르크 근처. 그랑 콩데.가 프롱드 때 삐쳐서 스페인에 붙고, 태양왕 루이.가 찰스2세 를 내 쫓고, 크롬웰 과 손잡고 전쟁하는겨. 투렌 이 그랑 콩데 를 상대하는거고 다시. 이때 크롬웰이 6천명을 지원해줘. 찰스 는 저때 스페인 편 드는거고. 찰스가 네덜란드에서 팽당하고 프랑스에서 팽당하고 스페인만 남은겨 이게. 이 둔스 전투 에서 프랑스 와 잉글랜드 팔리어먼트.가 이기고, 이때 됭케르크 를 잉글랜드에 준겨 루이가. 이걸 나중 왕정 복권된 찰스2세가 다시 루이한테 돈받고 팔아.
네덜란드와의 전쟁.을 스헤베닝엔 전투.로 마무리를 하고, 크롬웰.이 호국경에 정식으로 오른거야. 거리낄게 없는겨 이제.
저 스헤베닝엔.이 헤이그 권역 오른쪽 해변인데. 1660년 에 찰스2세가 복권될때 잉글랜드로 가는 항구가 이 스헤베닝엔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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