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ce Rupert of the Rhine, Duke of Cumberland, KG, PC, FRS (17 December 1619 (O.S.) / 27 December (N.S)[1] – 29 November 1682) was a German-English army officer, admiral, scientist and colonial governor. He first came to prominence as a Cavalier cavalry commander during the English Civil War.

인치킨 못지않게 재밌는 캐릭인데, 라인의 루퍼트. 컴버랜드 공작. 컴버랜드 카운티가 스콧 접경 잉글랜드 북서쪽이고. 찰스2세가 준겨. 1619년 12월 생이야. 팔츠그라프 프레데릭5세와 엘리자벳 스튜어트 의 자식이고, 프라하 에서 태어난겨 둘이 겨울킹퀸 일때.

찰스1세.의 누나야 엘리자벳 스튜어트.는. 팔츠그라프 는 장남 샤를 루이. 카를 루트비히 가 잇는거고. 이 앤 잉글랜드 킹 욕심나서, 자기 작은삼촌 찰스1세 체포될때 잉글랜드로 와서, 팔리어먼트가 킹 자리 준다고 들뜨다가, 삼촌 목짤리는거 보고 시껍하고 돌아가서 팔츠그라프 잇고. 이 동생이 루퍼트.야. 루퍼트의 동생이 모리스.고. 루퍼트 와 모리스 가 찰스1세 가 잉글랜드 내전할때 갓 스물 넘어서 같이 한겨. 찰스2세는 1630년 생이야. 열살 어려.

루퍼트.가 캐나다 루퍼트 랜드.의 루퍼트.야. 허드슨만 지역의 4백만제곱 거대한 땅. 허드슨 베이 컴퍼니.를 세운 사람이고. 1670년. 여기 땅의 첫 거버너.야. 나이 50 되서.

허드슨 만.은 헨리 허드슨 의 이름을 딴거고.

Henry Hudson (c. 1565 – disappeared 23 June 1611) was an English sea explorer and navigator during the early 17th century, best known for his explorations of present-day Canada and parts of the northeastern United States.

엘리자벳 시절 사람이여. 제임스 1세때 허드슨만 가서 찍고 실종되었어. 헨리 허드슨.은 이전 북동 북서 항로 이야기의 사람이야. 아시아 가는 길 찾는게 이사람 인생 목표여. 모스크바 컴퍼니.의 배를 탄건 북동항로 찾으려는거고. 다음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배를 타는겨. 이 배로 북서항로 를 찾으려다가, 뉴욕엘 닿고 허드슨 강.이란 이름을 남겨. 그래서 이건 네덜란드 땅이 된거야 저때. 이게 1609년 이고, 다음해 잉글랜드 배를 탄겨. 모스크바 컴퍼니도 잉글랜드꺼고. 버지니아 컴퍼니 와 잉글랜드 동인도 회사의 펀딩으로 디스커버리.호의 캡틴이 돼. 이걸로 래보라도 바다를 지나 허드슨 해협 이름 남기고 허드슨 만.이름 남긴 곳으로 들어간거야. 이게 1610년 이야. 이때 선상 반란 이 나. 선상 반란이란건 뮤티니.라고 해. 이건 명령 불복종 이야. 이때 허드슨의 십대 아들.도 같이 한겨. 일곱명 선원이랑. 병들고 아프고 힘들고. 허드슨에겐 자기 자식 조차 저런게 짜증난거고. 보트 하나 줘서 보내. 물자랑 총이랑 주고. 이들도 실종 되었어.

얼음이라, 디스커버리호가 못가서, 작은 배 샬롭 shallop 에 갈아타고 떠났는데, 이들이 안돌아온거야. 디스커버리호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그냥 온거고.

그리고나서, 1670년 에 찰스2세 가 차터 를 발행하고, 허드슨 베이 컴퍼니를 세우고. 이 컴퍼니 대표가 루퍼트 고, 루퍼트 이름따서 저 지역이 루퍼트 랜드 가 된거야. 캐나다 독립하기 전까지.

이 루퍼트.는 팔츠그라프 태생이고, 형이 저자릴 갖는거고. 30년 전쟁중인거고, 할때 삼촌의 내전 땅 잉글랜드로 와서 적극적으로 같이 한겨 동생 모리스랑. 헌데 갓 20 넘은 나이고, 조오올라 혈기 왕성하고 생각 없이 갹 즉자적이고.

30년 전쟁 터지고, Vlotho 플로토 전투 1638년. 19세여. 형 샤를루이.랑 베스트팔렌땅에서 왜 얘들 엄마 엘리자벳 스튜어트 사모하는 크레이븐.이 있다 했잖오. 이때 같이 싸우다가 패했걸랑. 크레이븐 이랑 루퍼트 가 포로가 돼. 이 인연으로 나중에 크레이븐 이 백작 되는거고. 루퍼트.가 린츠 로 가. 여기서 합스부르크가 얘를 카톨릭으로 전향시키려 해. 엄마도 쟤 카톨릭으로 바뀔까봐 걱정졸 하고. 저때 황제는 페르디난트2세 의 아들 3세.고. 너 카톨릭하면 풀어주고 제국에 영지도 주께, 어차피 팔츠그라프는 이제 우리땅이얌. 이걸 거절해. 그리고 린츠 에서 페르디난트3세 의 동생 레오폴트 대공작 이랑 노는겨. 레오폴트 가 만나보곤 졸 친해진겨 서로 사냥 다니고, 푸들을 선물해. 루퍼트 는 이 강아지를 잉글랜드 내전할때 항상 끼고 살아. 그러다 스위든과 프랑스가 들어오고, 합스부르크 마리아 엠프리스.가 풀어줘. 대신 절대 신성로마를 상대로 총을 겨누지는 마세요. 약속을 해.

얘들은 약속 의 인간들이걸랑. 이게 있잖니 아시아 애들과 달라 이게.

프라미스 라는거. 기사도 소설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이 프라미스 인데. 돈키호테 도 숱하게 나오는 단어가 저놈의 프라미스야. 프로메사. 이전 썰했지만.

우리네 정치판 을 보면, 정말 그야말로, 말이  의미가 없고, 드러워진겨 이게. 아무리  거짓말 하양. 어쩌고 변명을 하지만 말이지.

말이란게, 의미가 없는겨 이 조선 땅에선.

저 슨상님 의 가장~~ 가장~~~ 이땅에서의 역행 한건 말야. 거짓말이야 거짓말.

대 국민적으로, 나는 절대 정치를 안하겠소. 하면, 하지 말아야해. 아무리 어떤 벼락이 떨어져도. 저건 공개적으로 공식적으로 선언한거야. 아무리 위대하다 자뻑타뻑을 하든 말든.

오죽하면 그 상대 경쟁자 가, 너 정말 거짓말좀 하지 마라, 라고 우스개를 했지만.

저런건, 유럽사 이야길 보면 정말, 저런게 생각이 나는데 말야.

약속 이란게 의미가 없는겨 우리들에겐.

저게 비례정당 어쩌고 도 마찬가지고. 자기들의 위대한 위인도 그런 사람이고 그랬는데, 우리가 머 어때서.

말에 의미가 없는겨. 인간들에게 신뢰 라는게 없는 게 그래서 조선땅인거야 이게.

이게 우리네 모든 정서를 지배하는거야. 쟤도 저랬는데 머. 즉 이땅에서 추앙받는 인간의 모습이 거짓말 이걸랑. 그걸 그 바닥의 사람들이 하는건 죄든 머든, 아무 의미가 없어. 해도 돼. 저런 인간이 이땅에선 위인이야. 이념에 미친걸 떠나서 감정 바닥이 유치한거고, 저런 감정으로 땅의 모든 인간들이 정당화 되는겨 저런 애를 위인 취급하면서, 거짓말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게 되는거지.

그래서, 조선땅에선, 믿지말라는겨 인간을. 이게 중국 땅이고 역시나. 이게 역사의 힘이야 이게. 인간은 의지의 표상일 뿐이야. 제어할 수 없는. 자기들 의식을 여기에 구태여 개입을 시키지 않아. 역사적으로 정당하걸랑 거짓말이란게 ㅋㅋㅋ.

루퍼트.가 프로메사 를 하고, 잉글랜드로 가는겨 그래서.

그래서 루퍼트는. 잉글랜드에서 삼촌편에서 싸우고, 이사람은 철저한 잉글랜드인이 되어서, 잉글랜드 네덜란드 전쟁 들에 잉글랜드 해군 제독으로 네덜란드를 상대하는겨.

Rupert arrived in England following his period of imprisonment and final release from captivity in Germany. In August 1642, Rupert, along with his brother Prince Maurice and a number of professional soldiers, ran the gauntlet across the sea from the United Provinces, and after one initial failure,[32] evaded the pro-Parliamentary navy and landed in Newcastle.[33]

엄마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고, 자기 동생 모리스.와 함께 델꼬 다니던 병력들 데리고, 뉴캐슬 에 도착을 해. 1642년 8월 이야. 저해 1월에 찰스는 런던을 떠난거고. 레스터의 수도원에 작은 부대의 찰스 를 수소문 해서 만난거야.

Riding across country, he found the King with a tiny army at Leicester Abbey, and was promptly appointed General of Horse, a coveted appointment at the time in European warfare.[28] Rupert set about recruiting and training: with great effort he had put together a partially trained mounted force of 3,000 cavalry by the end of September.[34] Rupert's reputation continued to rise and, leading a sudden, courageous charge, he routed a Parliamentarian force at Powick Bridge, the first military engagement of the war. Although a small engagement, this had a propaganda value far exceeding the importance of the battle itself, and Rupert became an heroic figure for many young men in the Royalist camp

루퍼트가 막 돌아댕김서 삼촌 킹 어딨어 해댐시롱. 찾았어. 저때가 23세여. 얘한테 찰스가  제너럴. 마스터 오브 호스. 말의 짱. 서열 3위여 코트에서. 군수권은 찰스 다음인거고. 저때 찰스가 허섭한 겨 저당시. 저때 대부분은 중립인겨 잉글랜드 모든 카운티는. 막 서로 눈치볼때걸랑. 저런 아이 한테 군사권 최고를 줄만큼 한편으로는 찰스가 몰린 상태여. 헌데  힘이 된겨 루퍼트 형제가 온게. 얜 이미 전쟁 경험이 있어 포로도 되고. 3천 기병대를 훈련시키다.  멀안다고 꼬맹이가. 이게 9월이여 한달후인. 유명해지기 시작하고, 이때 킹 쪽으로 민심이 들썩이는겨 이게. 포윅 브리지 전투.에서 천명씩의 기병대 전투에서 이겨. 기병 천명씩이면 대규모 전투여 이건. 이런 초반 전쟁이 중요하걸랑. 기세 잡는데. 루퍼트가 이때 영웅이 되고, 왕정파 에 힘이 실려.

The Battle of Powick Bridge, fought on 23 September 1642, was the first major cavalry engagement of the English Civil War. It was a Royalist victory. According to Hugh Peters it was "where England's sorrows began".[2]

포윅 다리 전투.는 9월 말이고. 이건 루퍼트.가 필드 총 사령관이야 저 23세 짜리가. 여긴 우스터셔.야

The Battle of Edgehill (or Edge Hill) was a pitched battle of the First English Civil War. It was fought near Edge Hill and Kineton in southern Warwickshire on Sunday, 23 October 1642.

다음이 엣지 힐. 그다음달인겨. 이건 찰스가 직접 참전하고 루퍼트가 맡은거고. 이것도 이겨. 여긴 워릭셔.야. 우스터셔 오른쪽 이고, 이 워릭셔 가 셰익스피어 고향이야.

When he quarrelled with his fellow infantry commander, Lindsey, however, some of the weaknesses of Rupert's character began to display themselves. Rupert vigorously interjected—probably correctly, but certainly tactlessly—that Lindsey should deploy his men in the modern Swedish fashion that Rupert was used to in Europe, which would have maximised their available firepower.[37] The result was an argument in front of the troops and Lindsey's resignation and replacement by Sir Jacob Astley.

엣지 힐.때. 보병 사령관이 린지 백작.인데 20대 쟤랑 의견이 안맞어. 루퍼트는 유럽과 네덜란드를 습한 애야. 헌데 이게 나이 차에 섬과 대륙의 차이에 머가 안맞는겨. 린지가 40대여. 사임으로 하고 더 연상인 제이콥 애슬리.가 사령을 해. 린지 는 저전투에서 죽어. 승리했지만, 시작부터 먼가 어그러지는겨 이 군사 지도부가.

In the subsequent battle Rupert's men made a dramatic cavalry charge, but despite his best efforts a subsequent scattering and loss of discipline turned a potential victory into a stalemate

루퍼트는 기병이고, 기병대가 다 했다 하는거고. 헌데 먼가 군기가 흐트러지면서 안좋아져. 이와중에 얜 바로 런던 쳐들어가자는거고. 기병대에 힘 더 주심둥 해대는거고. 옆사람들이 말리는거고. 하튼 흥겨운 인간이야.

In November 1644 Rupert was appointed General of the entire Royalist army, which increased already marked tensions between him and a number of the King's councillors.

왕정파에선 루퍼트 가 제일 두드러진겨 저 젊은 애가. 얘가 전체 총 사령관을 맡는겨. 호스 마스터 는 근위대장이고 킹의 왕실 관리하는 자리야. 이건 체임벌린 같은 집사자리인겨. 코트에도 관여하지만. 헌데 진짜 직접 필드의 마샬 이 된겨. 1644년 11월. 오자마자 2년여 만에 실력을 인정받은거야


The Battle of Naseby was a decisive engagement of the First English Civil War, fought on 14 June 1645

그러다 다음해 1645년 6월 14일 이 네이즈비 전투.가 결정적인겨. 루퍼트 와 애슬리 가 이때까지 같이 간거걸랑. 여기 참전한거고. 이전까지는 패할 줄 모르던 분위기야 찰스가. 엇비슷에 약간 우위였걸랑.

네이즈비 패배에서 루퍼트.가 킹 삼촌한테 따당하는겨. 9월에 브리스톨 전투에서 의회에 포위되서 항복하다시피하고 찰스가 해임시켜. 루퍼트는 뚫고 돌아오고 찰스는 얘가 쿠데타 하려나 의심하고, 사이가 틀어진겨 이미. 이런것도 네이즈비 전투 하나의 사건이 빌미가 아니라, 이전부터 쌓여온게 터지는거야 인간의 감정싸움이란.

그리고, 옥스포드 포위 하면서, 찰스는 변장해 탈출해서 스콧에 자수하고. 옥스포드는 함락이 되서 루퍼트와 모리스.는 쫓아내. 이들은 프랑스로 간겨. 그래서 프랑스가 30년 전쟁 막바지에 프랑스 스페인 전쟁 일때 스페인 부대를 상대로 싸우는거고 프랑스애들 밑에서. 그러다가, 찰스 구출하러 잉글랜드로 가.

The Parliamentary navy mutinied in favour of the King and sailed for Holland, providing the Royalists with a major fleet for the first time since the start of the civil conflict; Rupert joined the fleet under the command of the Duke of York, who assumed the rank of Lord High Admiral.[78] Rupert argued that the fleet should be used to rescue the King, then being held prisoner on the Isle of Wight, while others advised sailing in support of the fighting in the north.

1648년 이고. 팔리어먼트 해군애들이 킹편으로 돌아서서 홀란드로 가. 찰스 잡히고 다들 홀란드로 망명을 한겨. 잉글랜드 내전할때 해군은 팔리어먼트가 장악한거였고. 요크 공작이 해군 제독이야 킹파의. 루퍼트가 와이어트 섬에 갇힌 킹 구하러 가자고 해. 서로 막 싸워. 하튼 킹파에 처음으로 바다에 힘이 생긴건데 저들의 배반으로.

The fleet itself rapidly lost discipline, with many vessels' crews focussing on seizing local ships and cargoes.[78] This underlined a major problem for the Royalists—the cost of maintaining the new fleet was well beyond their means. Discipline continued to deteriorate and Rupert had to intervene personally several times, including defusing one group of mutinous sailors by suddenly dangling the ringleader over the side of his vessel and threatening to drop him into the sea.[79] Most of the fleet finally switched sides once more, returning to England in late 1648.[80]

이 해군은, 자기들이 스스로 병참을 해결해야해. 규율이 사라지고, 선상반란들이 일어나고, 루퍼트도 이들 진압하면서 목매달아 바다에 빠트린다 협박해 보기도 하고. 이 해군애들이 의회파 킹파 로 변덕이 죽끓면서 바꾸는겨 서로서로. 그러면서 이들은, 팔리어먼트 의 배들을 사략질 하는거야. 더하여, 포르투갈쪽의 배들을.

포르투갈 이 1640년 부터 독립운동하는겨. 30년 전쟁 후반부에. 그러면서 리스본 을 가서 여기 지원군이 되고. 드나드는 스페인배들을 사략질 하는거고. 루퍼트 가 저때 주동자가 되는겨 이게.

1648년 부터는 루퍼트 가 바다맛을 안거야. 아 골때리 이인간. 이때부터, 지중해 와 캐리비언의 해적이 되는겨. 삼촌 목짤리기 직전 아일랜드 인치킨 쪽도 잠시 갔다가 걍 온거고.

General at Sea Robert Blake (27 September 1598 – 17 August 1657[1]) was an important naval commander of the Commonwealth of England and one of the most famous English admirals of the 17th century.

저 루퍼트 를 쫓는 팔리어먼트 해군이 유명한 로버트 블레이크 야.

In 1654, Rupert appears to have been involved in a plot to assassinate Oliver Cromwell, an event that would then have been followed by a coup, the landing of a small army in Sussex, and the restoration of Charles II. Charles himself is understood to have rejected the assassination proposal, but three conspirators—who implicated Rupert in the plan—were arrested and confessed in London.

루퍼트 가 1654년 에 올리버 크롬웰 암살음모에 관여된 것으로 보이다. 크롬웰 암살 음모는 몇개가 되고, 젝스비 음모 가 뒤에 터지고 인치킨도 가담을 한듯. 헌데 찰스2세 는 암살 은 반대야. 이게 맞아. 암살해서 죽인다고 해결이 되니. 암살로 바뀌는 건 없어. 침묵 오렌지를 암살 했다고 해서 네덜란드 독립전쟁이 끝났니?  의미없는게 테러 암살이야 이런게 숭상 되는게 또한 역사를 실패한 애들의 이야기고. 슬람이들이 암살 테러 에 환호하는거고. 저게 다를게 없어 이 세계사를 보면. 찰스2세가 저런건 아는겨.

팔리어먼트에서 쫓겨나서, 신성로마땅으로 가는겨. 이미 30년전쟁 끝났고. 하이델베르크 에서 형이 팔츠그라프.야. 헌데 땅이 반이 줄었어. 형이 랑 루퍼트 가 사이가 안좋아. 이때는 더 안좋아 너 줄 땅 없다며. 아 짜증 지대로고. 헌데 여기저기 콜들어와, 교황령에 싸워줘 스페인에 싸워줘 이탈리아에서.

이 루퍼트.가 하이델베르크 에 와서, 형 코트에 있으면서, 골때리는 사건이 벌어져.

Luise von Degenfeld (28 November 1634 – 18 March 1677) was the morganatic second wife of Charles I Louis, Elector Palatine.

루이즈 폰 데겐펠트. 당시 22세 여자여. 1656년에.

In 1656 relations between Rupert and Charles Louis deteriorated badly. Rupert had fallen in love with Louise von Degenfeld, one of his sister-in-law's maids of honour.[105] One of Rupert's notes proffering his affections accidentally fell into the possession of Charles Louis' wife Charlotte, who believed it was written to her. Charlotte was keen to engage in an affair with Rupert and became unhappy when she was declined and the mistake explained. Unfortunately, von Degenfeld was uninterested in Rupert, but was engaged in an affair with Charles Louis—this was discovered in due course, leading to the annulment of the marriage.[106] Rupert, for his part, was unhappy that Charles Louis could not endow him with a suitable estate, and the two parted on bad terms in 1657, Rupert refusing to ever return to the Palatinate again and taking up employment under Ferdinand III in Hungary.

형 샤를루이(카를 루트비히)랑 안좋은 사이가 더 안좋아진게. 루이즈 폰 데겐펠트.는 가난한 배론의 딸이야. 팔츠그라프의 레이디 코트.의 메이드.야. 메이드 라는게 하녀 시녀 가 아녀. 걍 레이디 랑 놀아주는 여인이야. 귀족이야 이들도. 샤를 루이의 부인 샬롯데.의 메이드 오브 아너.야. 정식 존칭.이. 레이디 코트 별로, 자리마다 둘 수 있는 메이드 가 달라. 여덟명 네명 등. 귀족이여, 낮은 귀족이 메이드 오브 아너야. 루퍼트 가 형수의 레이디 코트의 메이드 에 꽂힌겨. 헌데 이 루이즈 는 루퍼트에 관심이 없고 오히려 샤를 루이가 좋은겨. 어긋난 사각관계냐.

헌데 웃기게도, 형수인 샬롯데.는 도련님 루퍼트 에 꽂힌겨. 샬롯데 가 샤를루이보다 열살 어려. 이 샬롯데 는 핫세 가문 여자고, 샤를루이의 여동생 하노버 소피아 랑 친해. 소피아가 너 틀딱 우리 오빠랑 결혼 하지마러 한걸 거부해서 결혼하고 둘이 어긋나.


샬롯데.가 온갖 이야길 겪은 루퍼트 를 깡촌 하이델베르크에서 보고는 뿅 간겨.

헌데 루퍼트는 샬롯데의 메이드 루이즈 를 보고 뿅간겨.

샤를 루이.가 이걸 눈치를 채고, 동생 쫓아내고 ㅋㅋㅋ. 샬롯데를 감금하고, 저 루이즈 폰 데겐펠트 랑 결혼을 해. 이 루이즈 는 샤를 을 좋아했걸랑. 샤를이 동생에 대한 열등감이 있는건지, 어쨌거나 졸 어리고. 샬롯데와 이혼하고 루이즈와 재혼을 해. 하노버의 소피아는 너  늙은이 내오빠랑 결혼하더니 함시롱.

아 형한테 쫓겨났오. 메이드 좋아했다기 보다는 형수가 자기 좋아했다고. 그리곤 옛날 포로생활했던, 합스부르크 코트로 드가는거야.

그러다가, 찰스2세 가 복위되고, 잉글랜드 가서 잘먹고 잘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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