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rs of the Three Kingdoms,[b] sometimes known as the British Civil Wars,[c][d] formed an intertwined series of conflicts that took place in the kingdoms of England, Scotland and Ireland between 1639 and 1651
잉글랜드 내전.이 1642-51. 9년이고, 이전에 1639에 스콧의 비숍전쟁. 2년후 1641 아일랜드 반란.이고 직후에 잉글랜드 내전이 1642.에 시작해서 아일랜드와 함께 가는건데. 1639-51. 12년간. 올리버 크롬웰.이 1653년.에 로어드 프로텍터.가 되고. 5년후 1658년에 죽고. 크롬웰 자식이 1년도 안되서 내려오고, 조지몽크 의 힘으로 찰스2세.의 왕정이 복귀 되는게 1660년 Restoration 리스토어레이션.이야. 1639년에 시작해서 결국 1660년 에야 끝나는겨 이게. 21년 만에.
이게 조올라게 복잡한듯 보여. 헌데 저 내면에, 아일랜드의 내전의 역사. 더하기 아일랜드의 종교. 더하기 스콧 이라는 변수여. 이 스콧 은 프레스비테리언.이라는 프로테스탄트여. 아일랜드는 골수 로마 카톨릭이야. 스콧에 카톨릭을 심은건 아일랜드고, 작센족이 잉글랜드올때 교회를 다 파괴하고 캔터베리로 다시 시작한게 서기 597년.이고. 아일랜드는 5세기 시작한겨. 2백년이 빨러 캔터베리보다도. 성패트릭 이 5세기고, 이어 성콜럼바.여. 잉글랜드는 카톨릭을 버리고. 이 카톨릭에 대한 자부심은 엄청난겨 아일랜드가. 더하여 그리스도 자체가, 잉글랜드보다 아일랜드가 먼저여 해댈수도 있는겨 저게.
결국 종교 와 정치. 교회권력과 세속권력 의 문제인데.
아일랜드 라는 나라는 1169년에. 코노트 하이킹이 렌스터 리틀킹 짤라서 이 렌스터 킹이 헨리2세를 부르면서 시작한거걸랑. 이게 헨리8세 때 거의 아일랜드가 들어온겨.
헨리 8세가
Henry VIII (28 June 1491 – 28 January 1547) was King of England from 1509 until his death in 1547
1509-1547.이고 얘가 아일랜드 킹 선언한게 1542년.이야. 이때 오닐 오도넬 들의 얼스터쪽이 하미지를 하고 얼. 백작이 된겨. 정식으로 작위를 받는겨. 3백년 만에 아일랜드가 잉글랜드로 거의 전부 들어온거야. 비록 이후도 반란의 역사지만.
아일랜드 봉기.의 시작이 1534년 실큰 토마스.여. 얜 제럴드여. 아이리쉬화된 앵글랜드여. 얘도 헨리랑 핏줄이고. 저 실큰 토마스 가 아일랜드 애들의 독립혁명가 시조님이여. 그리고 엘리자벳 때 터진게 데스몬드 반란.이고. 역시나 제럴드고. 위에서는 맥도날드 가 봉기하고 래뜰린섬 학살 이 1575년.이야. 이 북쪽의 맥도날드 애들은 스콧 애들이여.
아일랜드는 독립할때까지, 실큰토마스 1534년 부터 5백년 가까이 저걸 한거야. 이 아일랜드란건 엄청난겨 진짜. 이건 인정해줘야해. 이건 전무후무여. 허나, 북아일랜드 먹겠다며 테러 하는것 부터는 그냥 후짐들의 역사고.
이 아일랜드 라는 나라가 재밌는건데. 나중에 하고. 저 힘의 원인이 머냐는겨 저게.
조선이란건 이해가 가. 조올라게 미개한 이 벌레들 역사는 이해가 가. 아 헌데 저 아일랜드 는, 물론, 후지지만, 그래도 후진 애들 중에서 대단한겨 저게. 후진 애들도 많고, 대단한 애들도 많고. 얘들이 그래서, 탁월한 선택을 한거야, 세금 확 내린거. 아 증말 대단해 얘들은. 유로는 아일랜드를 표준으로 따를 수 밖에 없어. 지금 상속세를 다 없애는 이유야 재들이.
저게 먼말인지, 민족애들은 전혀 몰라. 걍 적폐들의 농간 인줄만 아는거지.
The Nine Years' War, sometimes called Tyrone's Rebellion,[1][2] took place in Ireland from 1593 to 1603. It was fought between an Irish alliance—led mainly by Hugh O'Neill of Tír Eoghain and Hugh Roe O'Donnell of Tyrconnell—against English rule in Ireland, and was a response to the then-ongoing Tudor conquest of Ireland.
9년 전쟁, 티론의 반란. 1593-1603. 데스몬드 반란.에 위에선 맥도널드 반란에 래뜰린 학살이 끝나고. 스페인 아르마다 1588 하고. 엘리자벳 죽는 1603년 까지여. 오닐 과 오도넬 들이 중심으로 일어선겨.
오닐 은 Tir Eoghian. 티르 오엔. 이고 오도넬 은 티어코넬.이야. 티르 오엔.이 티론 Tyrone.이고 북쪽 얼스터.에서 요 티론.이 중심이고. 이게 티르 오엔.이고. 왼쪽 위에 접한게 오도넬.이야. 둘다 아이리쉬 게일.이야. 이들이 작위를 받고, 맥도날드 라는 스페인애들이 반란을 할때 오닐 오도넬은 잉글랜드 편이고. 그리고 맥도날드 라는 스콧 지고, 얘들이 일어난거야.
티르 오엔.이 오닐 의 시조급 이름에서 따온겨. 5세기야. 얘들이 이때부터 킹덤인겨 이 위에서. 지들 말로는 백작 받을때 까지 저기서 천년이 된겨.
9년 전쟁 티론반란때는 잉글랜드가 본격적으로 네덜란드 에 개입하는거고. 그래서 잉글랜드는 동원할 병력이 적어.
Elizabethan England did not have a standing army, nor could it force its Parliament to pass enough taxation to pay for long wars. Moreover, it was already involved in a war in the Spanish Netherlands. As it was, the war in Ireland (which cost over £2 million) came very close to bankrupting the English exchequer by its close in 1603.
엘리자벳.의 잉글랜드는 드레이크 들의 사략질로 버틴겨 저때. 이 잉글랜드는 거지여 거지. 스페인 아르마다 1588 이긴건 그야말로 기적이고. 이건 상상을 못한겨. 존 호킨스 와 드레이크의 전적인 힘이야 이건. 그리고 네덜란드 바로 들어가고, 그러다 티론 반란이 나. 그렇다고 세금을 충분히 올릴 수 없어. 왜? 여긴 팔리어먼트 라는 게 있걸랑. 서기 1603년에 아일랜드 반란 비용만 2백만 파운드고. 거의 파산인겨 킹덤이. 그리고 죽은겨 엘리자벳.이
Although O'Neill and his allies received good terms at the end of the war, they were never trusted by the English authorities and the distrust was mutual. O'Neill, O'Donnell and the other Gaelic lords from Ulster left Ireland in 1607 in what is known as the "Flight of the Earls".
저때 스페인은 아일랜드 9년 반란을 지원하는거고. 제임스가 잉글랜드 킹에 오르고, 조약 맺으면서, 니덜 권리 그대로 인정해주마. 이걸 오닐 오도넬 들이 못믿어. 이들이 얼스터 에서 떠나는겨 저지역 게일들이. 서기 1607년. 이게 백작들의 이주. 야. 프랑스에 알프스 넘어 이탈리아로 가. 카톨릭 세력을 업으려는겨 다시 전쟁하려고.
The Plantation of Ulster (Irish: Plandáil Uladh; Ulster-Scots: Plantin o Ulstèr)[1] was the organised colonisation (plantation) of Ulster – a province of Ireland – by people from Great Britain during the reign of King James VI & I. Most of the colonists came from Scotland, the majority having a different culture to the natives. Small private plantations by wealthy landowners began in 1606,[2] while the official plantation began in 1609.
아일랜드 봉기의 핵심은 이 얼스터.여. 동북쪽. 지금 북아일랜드 라는 영국 땅이고. 실큰 토마스, 데스몬드 반란은 아이리쉬화된 잉글랜드 애들인거고. 얼스터 는 아이리쉬 와 스콧 애들이 여전히 반란한겨. 여길 플랜테이션 을 해.
헨리8세 부터, 플랜테이션. 을 하는겨. 얘가 앵글리칸 을 하면서, 아일랜드도 킹덤 선언하고, 자기들에 충성하는 이들에게 땅을 다시 배분하는 임대차 계약을 맺으면서 잉글랜드인들을 이주시키는겨. 이걸로 험프리 길버트.에 월터 롤리.가 땅을 받은거고, 반란 진압하면서. 이건 기존의 제럴드 애들을 갈아치우려는 의도야. 이게 먼스터 지역의 플랜테이션 이야.
얼스터.에 게일 리더들이 나가고, 9년 반란으로. 제임스 가 여길 플랜테이션 하는거야. 이때, 제임스는 스콧 에서 온 프레스비테리언.이여. 이때부터 앵글리칸 과 장로교 는 동급인겨 제임스때부터는. 그래서 프로테스탄트 에 킹덤에 충실한 이들로 이리 들어오는겨. 얼스터로. 서기 1606년 부터. 이때 명분은 머냐면, 문명화여 문명화, 저 아이리쉬들 너무 야만이다 라는거야 이게. 당연히 잉글랜드는 로마 를 겪은 이들이여. 아일랜드는 로마를 모르고. 이게 훨 늦어 이 아일랜드는. 지들은 킹덤 이라고 고대사를 쓰지만, 걍 클랜 부락 이여 아일랜드는. 헨리8세 때에야 킹덤 일 뿐이야. 당근 아일랜드애들은 이런말 하면 적폐소리 듣는거고. 허나 고고학적 으로도 이건 사실이고.
아무것도 없는 애들이, 지들은 위대한겨.
이 대표적 인간이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여. 야 내 저거 보고 학을 띠었다. 삼분의 일. 읽고 도저히 못 읽겠어서 버렸다 저거. 샹 읽어줄라캐도 도저히 도저히 못봐주겄다 열불나더만 저딴 걸.
대체 저걸 삼분의 일까지 내가 왜 읽어댔는지.
아 저놈의 징징이. 한심하다 한심해. 조오오온나게 찐한 열등감 그 자체가 저 제임스 조이스여. 온갖 표현으로 잉글랜드를 어찌 까볼까 함시롱. 셰익스피어 분석하는거 보믄 재밌지만 골때리는겨 저게. 셰익스피어의 본질을 지 나름 프로이트 랑 친하다고 그걸 써먹으면서 혼자 통쾌하게 낄낄 대는겨.
야, 닌 니넨 그런 세익스피어 반의 반의 반만한 인간이 그때 있었니?
아무것도 없는 애들이, 남의 것은 똥이요 해대는겨 저게.
얼스터 지역에. 스콧인간들이 오는겨. 이들은 프레스비테리안 장로교여. 여기에 잉글랜드들이 오는거고. 킹이 스콧 킹이라고 스콧이랑 친해진겨 이게. 더 페일 이라는 더블린 지역은 1169 초기 들어올때 아래 먼스터 부터 해서 저긴 잉글랜드가 많이 들어간거고.
기존 아이리쉬 게일들에. 기존에 여기 온 잉글랜드인들이, 새로오는 세력들에 밀리는겨 이게. 1169부터 왔던 잉글랜드인들도 이미 아이리쉬화 된겨. Hiberniores Hibernis ipsis ("More Irish than the Irish themselves"). 히베르니오레스 히베르니스 입시스. 아이리쉬 보다 더 아이리쉬 가 된게 아일랜드 정착한 잉글랜드인인겨. 헌데 9년 반란때 기근 오고, 이전에도 반란에 아래 데스몬드도 반란에, 이들이 빚도 지고 파산을 많이 하면서, 이걸 저때 플랜테이션 세력들이 갖고 가는거야.
저들이 다 뭉친겨 이게. 이때 저들의 적은, 잉글랜드에 더하여, 스콧이여 스콧.
아이리쉬는 카톨릭이야. 스콧은 앵글리칸이 아니지만 프레스비테리안 이야. 프레스비테리안 은 앵글리칸보다 카톨릭을 훨 증오해 이 리더집단은.
저게 초기에는, 스콧 애들과 잉글랜드가 연합해서, 아이리쉬를 치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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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때의 양상이 웃긴겨 이게.
아일랜드 반란이 1641년 이야. 이건 얼스터 플랜테이션 에 반발하는 기존 아이리쉬 와 아이리쉬화된 잉글랜드인 들의 반란이야. 아주 걍 약탈에 살인에, 끔찍해 이들이. 그래서 이에 대한 분노로 올리버 크롬웰이 아일랜드인을 대학살 했다.라고도 하는겨. 허나 또 누구는, 저때 아일랜드 반란의 악행은 과장되었다 라며 반박하는 사가도 있는거고.
아일랜드는 2년 뒤에 터진겨. 먼저 터진게 스콧 주교들 전쟁이라는 비숍 전쟁이야. 1639년.
이때는 스콧과 잉글랜드 킹덤은 적이여. 이게 흐지부지 끝나고, 아일랜드에서는 스콧과 잉글랜드가 바로 한편인겨 이게.
The Bishops' Wars of 1639 and 1640 are generally viewed as the starting point of the 1639–1652 Wars of the Three Kingdoms that ultimately involved the whole of the British Isles
The Irish Rebellion of 1641 (Irish: Éirí Amach 1641) began as an attempted coup d'état by Irish Catholic gentry, who tried to seize control of the English administration in Ireland to force concessions for Catholics. The coup failed and the rebellion developed into an ethnic conflict between Irish Catholics on one side, and English and Scottish Protestants on the other. The rebellion followed the Plantation of Ulster by Protestant settlers from Britain. It began a conflict known as the Irish Confederate Wars (or Eleven Years' War), which was part of the Wars of the Three Kingdoms.
The Irish Confederate Wars, also called the Eleven Years' War (derived from the Irish language name Cogadh na hAon Bhliana Déag), took place in Ireland between 1642 and 1653.
비숍전쟁.이 스콧에서 시작하고, 이어서 아이리쉬 반란.이야. 저게 모두 종교 문제인데. 아일랜드는 이전 9년전쟁의 여파로 얼스터 사람들이 피폐해진거고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비숍 전쟁의 여파가 아일랜드 반란 1641이 된겨. 이어서 아이리쉬 콘페더레이트 전쟁. 11년 전쟁이 터져. 잉글랜드 내전과 함께 터지는겨 이건.
비숍 전쟁은 찰스1세가 주도를 한거고, 다음 아이리쉬 내전에 아이리쉬 컨페더레이트 전쟁에 잉글랜드 내전.은 찰스1세가 쫓겨는겨, 잉글랜드 팔리어먼트와 스콧 장로교 애들한테, 아일랜드와 잉글랜드 킹파.가 하나가 되고, 잉글랜드 팔리어먼트 와 스콧이 하나가 된겨. 그러다가 찰스1세 목짤리는 것에 분노한 스콧.이 아일랜드와 손잡고 왕정파.로 돌아선겨.
Charles I (19 November 1600 – 30 January 1649)[a] was King of England, King of Scotland, and King of Ireland from 27 March 1625 until his execution in 1649.
문제는 이 찰스1세.인데. 1625년 25세 에 킹에 올라서 24년 후 1649년 49세로 목짤리는건데.
Concerns were reinforced by Charles marrying a French Catholic, Henrietta Maria, employing senior Catholic advisors like the Earl of Portland and accepting the first Papal envoy since the Reformation.
찰스가 1612년 에 웨일즈 프린스.가 돼. 형이 죽고 받는겨 이자릴. 즉 12세에 이미 킹 승계자가 된거고. 25세에 결혼하는겨. 부르봉의 앙리에트 마리.와. 매릴랜드의 매리여. 앙리4세의 딸이야. 엄마는 메디치의 안나.고 아들 루이13세랑 싸우던. 독실한 카톨릭이여.
제임스1세가 웃긴겨 이게. 찰스1세가 이전에 결혼 상대자가 펠리페3세의 딸이여. 이걸 성사하려다 못한겨, 이여잔 페르디난트3세 황제의 부인이 되고. 찰스1세 다음 상대로 카톨릭 프랑스 여자를 선택한겨 이게.
제임스1세 란 인간이 애매한거야. 쟤들 사가들은 바보 멍청이에 카톨릭 탄압 해대걸랑.
The Gunpowder Plot of 1605, in earlier centuries often called the Gunpowder Treason Plot or the Jesuit Treason, was a failed assassination attempt against King James I by a group of provincial English Catholics led by Robert Catesby.
화약음모 1605년. 이게 카톨릭 애들이, 팔리어먼트 회기 시작할때 킹 시정연설 하는 웨스트민스터 를 다 날리려고 한거야. 저때 킹의 모든 가족들도 다 참석하는거고. 찰스들도. 저때 제임스가 갓 2년도 안된겨 잉글랜드 킹 된지. 헌데 먼놈의 카톨릭 탄압이여. 제임스가 멀 했다고. 팔리어먼트가 득실대는 땅에서. 그래서 얘들이 팔리어먼트 를 다 날리려는 거였지만. 헌데 킹도 날리련거야 저게.
Robert Catesby (c. 3 March 1572 – 8 November 1605) was the leader of a group of English Catholics who planned the failed Gunpowder Plot of 1605.
이때 주도자가 로버트 캐츠비.야. 저 음모가 발각이 되서 처형되는거고.
Recusancy, from the Latin recusare (to refuse or make an objection),[2] was the state of those who refused to attend Anglican services during the history of England, Wales and Ireland. The term was first used to refer to people, known as recusants,[3] who remained loyal to the pope and the Roman Catholic Church and did not attend Church of England services.[4]
레큐전시. 앵글리칸 을 엘리자벳.이 다시 세우고, 앵글리칸 을 거부하는 이들을 레큐전트 라고 해. 라틴어 레쿠소.가 나는 거부하다.여. 저들만을 위해 만든 영어야. 로버트 캐츠비는 할수없이 앵글리칸이 되었지만 집안이 레규전트 카톨릭이야.
The Act of Uniformity 1558 (1 Eliz 1 c 2) was an Act of the Parliament of England passed in 1559.[nb 1] It set the order of prayer to be used in the English Book of Common Prayer. All persons had to go to church once a week or be fined 12 pence (equivalent to just over £11 in 2007[4]), a considerable sum for the poor.
레큐전트 법.이라고도 하는 1558 유니포미티 법. 이때부터 국교일치라는 콘포미스트. 라는게 나오는겨. 예배할때 카먼 프레어 라는 앵글리칸 예배서를 따르란 거걸랑. 이걸 안지키면 벌금12펜스. 지금돈 11파운드 이만원이고. 이게 더해져서 징역형도 하는거고. 존 버니언 천로역정 작가가 이법에 걸린겨. 이게 고정법으로 1888년까지야.
이법에 대한 불만이 많은거고, 제임스가 엄마 마리가 억울하게 죽은 카톨릭이고. 저걸 어찌 해줄줄 알았는데, 얜 아무 힘도 없어 이 제임스는. 더하여 복수 를 생각 안해. 조선들 뇌도 아니고 연산군이란 허섭한 지능도 아닌데 먼 복수여. 복수 란건 조선 에만 쓰는 단어야.
제임스가 특히나 자기 자식들까지 있는데 저걸 시도했다는것에 화가 나는겨. 이때 카톨릭에 대한 거부감이 든거야 이사람은. 헌데 그래도 자기 아들은 시안하게 카톨릭 여자를 맞는거야. 물론 정치적 이슈가 앞선거야 제임스는. 더하여 부인 덴마크의 안나.도 카톨릭에 호의적이여.
저게, 잉글랜드나 스콧애들이 가장 열받아하는겨. 대체 왜 카톨릭 여자를 부인으로 맞는가. 킹 이 되는 사람이.
In 1618, the General Assembly reluctantly approved the Five Articles of Perth; these included forms retained in England but largely abolished in Scotland and were widely resented.[6] When Charles I succeeded his father in 1625, unfamiliarity with Scotland made him even more reliant on the bishops, especially John Spottiswoode, the Archbishop of St Andrews, and prone to sudden decisions. The 1625 Act of Revocation cancelled all grants of land made by the Crown since 1540 without consultation, alienating much of the Scottish nobility and clergy.
제임스1세.는 혼자서 브리튼의 킹.이라고 자처한 사람이야. 스콧과 잉글랜드는 하나인겨. 양쪽 팔리어먼트가 모두 거부해 저런 호칭은. 제임스는 국교를 통일하려는겨. 앵글리칸 과 프레스비테리안 을. 이건, 예배식 을 통일하면 돼. 어차피 성경은 같이 보는거걸랑. 1618년에 스콧의 장로교 애들 예배식에 관한 권고사항 다섯개를 제시해. 카톨릭 냄새가 열라 나는겨 스콧 장로교애들에겐. 거부해. 찰스1세가 오르고, 얘도 아빠 유지가 이거여. 하나로 묶는거. 그중 첫째가 종교여. 예배이름이 다르지만 저게 다를게 없어. 예배식만 어드래 비스무레 하면 되는겨. 결국 로마 카톨릭 껄 더하는거고. 이게 하이처치. 라는겨. 이때 중요한건 자기 사람을 심는거걸랑. 세인트 앤드류 대주교 자리가 비었어. 법을 제정하고 자기 사람을 심으려는겨. 예배식 을 넘어서, 교회 조직 도 통일 시키려는 의도여 저건.
장로교는 엘더.가 비숍.이야. 두 용어를 지금 같이써. 헌데 조직이 수평적 인거고. 카톨릭은 좀 탄탄한 피라미드 구조고. 앵글리칸 도 그대로 카톨릭 용어를 대부분 쓰는거고 조직은.
저런 분위기.에 더하여, 찰스 가 스콧 킹덤 대관식 할때 앵글리칸 으로 식을 한거야.
더하여. 부인을 카톨릭 여자 를 들인겨.
Against this background, a new Book of Canons in 1636 replaced John Knox's Book of Discipline and excommunicated anyone who denied the King's supremacy in church matters.[10] When this was followed in 1637 by a new Book of Common Prayer, the result was anger and widespread rioting, said to have been set off with the throwing of a stool by Jenny Geddes during a service in St Giles Cathedral.
1625년 취임하면서 부터, 스콧이랑 이 종교문제로 부딪힌거야. 그러다 1636년 에. 존녹스.의 교리서를 캐논즈 북.으로 대체하고 이를 거부하면 파문이야. 뒤이어 카먼 프레어 라는 앵글리칸 예배서 를 쓰라는거야. 12년동안 쌓인게 결정적으로 이걸로 터진거야.
The kirk itself seemed under threat and in February 1638, representatives from all sections of Scottish society agreed a National Covenant, pledging resistance to liturgical 'innovations.'[12] Support for the Covenant was widespread except in Aberdeen and Banff, heartland of Royalist and Episcopalian resistance for the next 60 years.[13] The Marquess of Argyll and six members of Charles' Scottish Privy Council backed the Covenant and in December the General Assembly expelled bishops from the kirk, putting it on a full Presbyterian basis.
커크 라는건 스콧 장로교의 용어고. 네셔널 커버넌트.를 만드는겨. 모든 대표들이. 스콧의 전국적인 동의서. 예배를 바꾸는 것을 거부함.을 맹세하는겨. 애버딘.과 밴프 등 은 킹덤파고 저기 참여를 안해. 스콧의 프리비 카운슬. 추밀원 이라는 핵심 위원회도 참여해. 그리고 비숍들을 모두 내쫓은겨. 저 비숍은 앵글리칸 이야.
지금은 비숍 과 엘더 를 같이 쓰고. 저때는 비숍 이란 말을 스콧 장로교는 안쓴거야.
즉 비숍 들 다 쫓아낸게 결정적 이벤트고. 그래서 비숍들의 전쟁 이야.
찰스1세.가 군대를 꾸리고 스콧에 쳐들어가는거고 스콧에 있는 왕정지지파 가 찰스편에 서는겨.
헌데. 팔리어먼트 를 소집 안해. 팔리어먼트 소집해서 예산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팔리어먼트가 싫어. 독자적으로 자기 킹덤 직할지에 킹 지지파 애들만을 활용하는거야.
큰전투 한두개 하고 진거야 저건. 완벽한 찰스1세의 굴욕.이야.
팔리어먼트 가 싫어. 아 쪽팔려 근데. 그래서 이때 찰스가 손빌리는게 아일랜드의 카톨릭.이야.
너들 나 도와주면 너희들의 권리를 신장 어쩌고 플랜테이션 문제 저쩌고 하면서 니들 입지를 키워주겠고, 카톨릭 종교문제에 우대해주겠다는 약속을 해주는겨.
이 찰스 1세 가 애매한겨. 종교 문제가. 이사람은 바닥이 카톨릭 이어도 상관이 없는겨 이게. 종교보다는 저놈의 팔리어먼트이고. 또한 스콧 의 프레스비테리언 이란 장로교에 저리 노골적으로 예배서를 앵글리칸으로 바꾸라는건, 저 들이 스콧 마리.를 더 무시했걸랑. 스콧마리는 스콧 의 장로교 들한테 당한겨 제임스 부자 입장에선. 잉글랜드는 도끼질만 한거고. 저 마음이 바닥에 있어 저게.
카톨릭 이어도 상관이 없어. 그래서 하이처치.가 이때 된겨. 국교 통일하겠다는 명분으로 앵글리칸을 완화하는겨 카톨릭 을 심으면서. 그래서, 저때 스콧애들은 앵글리칸을 카톨릭과 다르지 않다고 본거야.
Habeas corpus (/ˈheɪbiəs ˈkɔːrpəs/ Medieval Latin meaning "[we, a Court, command] that you have the body [of the detainee brought before us]")[1] is a recourse in law through which a person can report an unlawful detention or imprisonment to a court and request that the court order the custodian of the person, usually a prison official, to bring the prisoner to court, to determine whether the detention is lawful.[2]
영어 헤이비어스 코어퍼스. 라틴어 하베아스 코르푸스. 코르푸스 가 몸 이고. 하베아스 가 하베오 habeo 라는 해브 갖다 의 미래 시제인데. 줄임말이야. 코트는 인신.을 우리 앞에서 데려 가야 한다.
인신보호법.의 시작이고. 저걸 인신보호청원. 인신보호영장 이라고 하는데.
인신보호청원(人身保護令狀, 라틴어: habeas corpus 너는 몸이 있다)은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는 영미법의 한 제도이다. 원어 발음대로 헤비어스 코퍼스라고도 한다. 1679년의 영국에서 인신보호율(Habeas Corpus Act)에서 규정했으며,[1] 이유없이 구금되었을 때 인신보호영장을 신청해 구금에서 풀려날 수 있게 되었다.
한글 설명보면 저런게 다인데.
코트에서 용의자를 구속 하는걸 맘대로 하지 말라. 불법적 구속 구금을 막는거야. 요청하는거야. 코트는 구금하는 자. 즉 공무원이여. 얘가 구속이 합법적인가를 코트로 불러서 물어보라 라는겨.
이 영국 애들이 엄청난겨 이게. 이런거만 보면. 헌데 저게 단지 인권 신장 어쩌고 가 아냐.
The Petition of Right is a major English constitutional document that sets out specific liberties of the subject that the king is prohibited from infringing. Passed on 7 June 1628, the Petition contains restrictions on non-Parliamentary taxation, forced billeting of soldiers, imprisonment without cause, and the use of martial law. Following disputes between Parliament and King Charles I over the execution of the Thirty Years' War, Parliament refused to grant subsidies to support the war effort, leading to Charles gathering "forced loans" without Parliamentary approval and arbitrarily imprisoning those who refused to pay. Moreover, the war footing of the nation led to the forced billeting of soldiers within the homes of private citizens, and the declaration of martial law over large swathes of the country.
퍼티션 오브 라이트.가 흔히 권리청원. 이라고 하걸랑. 1628년 이야 이것도. 저 인신보호청원이 칼스때 1640년이야. 1628 권리청원은, 킹이 함부로 병사 소집말고 이유없이 구금말고, 팔리어먼트 를 벗어나는 세금 도 못걷게 하는겨. 이걸 머 대단한 인권 혁명 이런 분석을 하는데. 물론 대단한거지만.
저건, 드세진 팔리어먼트.가 스튜어트 애들, 제임스와 아들 찰스1세 를 완벽하게 옥죄는겨 저게.
A previous law (the Habeas Corpus Act 1640) had been passed forty years earlier to overturn a ruling that the command of the King was a sufficient answer to a petition of habeas corpus.[14][15] The cornerstone purpose of the writ of habeas corpus was to limit the King's Chancery's ability to undermine the surety of law by allowing courts of justice decisions to be overturned in favor and application of equity, a process managed by the Chancellor (a bishop) with the King's authority.
인신 구속하는 것 함부로 하지 말라.는 1215 마그나카르타 부터 나와. 이걸 1640년에 더 강화한겨. 이건 머냐면, 킹이 팔리어먼트에 복수 못하게 하는겨.
찰스가 아주 끝까지 화가 난 상태야. 아~무것도 못하는겨. 돈 이란것도 킹 행세하려면 건물도 세우고, 행차하면서 돈좀 풀고 해야해. 이걸 사치 어쩌고 보는것도 야박한겨. 돈이 없는겨. 대갈에 왕관만 쓴거지. 저 튜더 때 킹 퀸 은 거지여 거지. 먼놈의 사치 어쩌고 엘리자벳도 막 욕질하지만, 그건 품위 유지를 위해 해야만 하는거고. 특히나 제임스 부터는, 완전히 이건 팔리어먼트 세상이 된거야.
너, 우리 하원 의원들 함부로 구속 하지 말란겨 저게. 하베아스 코르푸스.가. 이전에 1628년, 즉위하고 3년 후엔 더 단단히 박는겨 킹한테. 너 팔리어먼트 허락없이는 세금 뿐만이 아니라, 군사 소집도 말고 함부로 구금도 말고, 다른 세금 추징도 우리 허락을 받어.
아 얘들 모땠어.
찰스가 불쌍해진겨.
스콧 주교 전쟁 때 완전히 존심 구기고, 아일랜드 카톨릭에 손내밀고, 이건 스콧과 잉글랜드 애들이 눈치를 까고, 아일랜드를 침입하려하고, 이걸 먼저 눈치챈 얼스터 게일들이, 더블린을 먹으려는거야. 이게 발각이 되고, 이때 안 잡힌 게일의 오닐 자손이 시작하면서, 얼스터에 대학살이 일어나면서, 이게 아일랜드 본격 내전에 잉글랜드 내전이 터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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