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ttle of Getaria or the Battle of Guetaria are the names given to a battle in the Franco-Spanish War (1635–59), which took place on 22 August 1638 at Getaria, northern Spain, when a French fleet under de Sourdis attacked and destroyed a Spanish fleet under Lope de Hoces.  

 

게타리아 전투. 1638년. 8월 22일. 스페인 북부 비스케이만 의 게타리아 해변이야. 이보다 먼저 두달 전에 오른쪽 에서 육지전이 벌어지고 있었어. 피레네 왼쪽 구석탱이에 프랑스군이 온거고. 이 와중에 바다로 왼쪽 게타리아 해변으로 온겨 프랑스가.

 

The Siege of Fuenterrabía of 1638 took place in June – September 1638, between Spain and France during the Thirty Years' War and the Franco-Spanish War (1635-1659).

The French army commanded by Henri de Bourbon, Prince of CondéBernard de La Valette, Duke d'Épernon and Henri d'Escoubleau de Sourdis[3] composed of 27,000 men and several warships besieged the city for two months, firing 16,000 shells into the walled city, leaving only 300 survivors, most of them women and children. The city was virtually destroyed, but nevertheless did not surrender. 

 

푸엔테라비아 포위 1638년. 6월 부터 9월 인데. 게타리아 해전 이 프랑스 승리로 끝나고도, 여길 끝내 못뺏어. 이 푸엔테라비아.에 사령관이 그랑콩데 의 아빠 부르봉의 앙리.이고, 에페르농 공작 베르나르. 인데. 여기도 해변이고, 바다에 전함들이 있고, 이 전함들은 게타리아 해전때 참전하면서 여기도 오는거고. 16,000 발의 대포를 쐈는데도 저 도시를 못 갖고와. 저 도시에 300명이 살아남고 대부분 여자와 아이들만. 스페인은 지금 이 도시는 이걸로 축제 하는거고. 

 

게타리아 해전도 앙리 데스크블로 데 수르디스. 데 수르디스 가 사령관이고, 여길 이기고 푸엔테라비아 로 가는건데, 이때 에페르농 의 베르나르 가 참전을 적극적으로 안해. 어차피 못뺐을거 라며. 

 

데 수르디스.는 보르도 의 대주교여. 대주교 이면서, 이사람은 포병부대 장.인겨. 라로셸 위그노 전투로 잉글랜드에 싸울때도 여기 포병대장이고, 배 타고 해전할때도 이제 포병이 해전의 중심인겨. 

 

게타리아.가 구석 해변이고, 오른쪽에 바스크어로 혼다리비아.인 푸엔테라비아.인데. 여긴 바스크여,  쎄 원래. 이때 못뺏어서 저긴 프랑스 접경인 스페인땅이여 지금. 

 

In June 1638 a large French army crossed the Pyrenees to besiege Fuenterrabía. The French army was accompanied by a fleet between 27 and 44 French warships under Henri de Sourdis, who had to stop any help reaching Fuenterrabia over the sea.

De Hoces was ordered to attack the French fleet, but had only 12 galleons and some smaller ships at his disposal. 

 

두달전에 콩데 아빠 앙리.가 피레네를 넘어서 푸엔테라비아.를 포위중이고, 프랑스는 삼사십여척의 전함 을 갖고 간겨. 즉 저때 해전은, 푸엔테라비아 를 뺏기 위해서 지원군 못오게 막는 해군인겨. 결국 목적은 못 이뤄도, 저거 막는 해전은 이긴건데. 

 

바다에선 데 수르디스.가 지휘하는거고, 스페인은 데호세스. 12척의 갤리온.이야. 이게 화력으로도 상대가 안되는겨 스페인이. 프랑스 도 배를 몰라, 잉글랜드 보다. 그런 프랑스 에게, 스페인 갤리온 의 화력이 상대를 못한거야. 아무리 반 정도의 배라지만. 해전은 무조건 화력 싸움이야 특히나. 

 

1638년 저 해전.이 프랑스가 1635년 개입하고 나서, 최초의 의미있는 승리여 이게. 이 프랑스가 스페인을 이긴다는건 말도 안되는겨 저때. 이 프랑스는 어떻게 보면, 1635년 에 전쟁 개입하면서 한단계 업그레이드가 되는겨. 비록 허섭한 중세영지제도를 못벗어나지만, 아니 업그레이드 보다는, 걍 쥐어짜는겨 그동안의 문명이 쌓아 온걸. 이 프랑스는 최고의 나라였어여해. 헌데 스페인이 아메리카 와 멀러커즈 의 아시아를 갖고 오면서, 이런 스페인을 상대한다는건 무모한겨 이건. 

 

잉글랜드 네덜란드 프랑스 는, 그동안 자기들이 쌓은 문명의 사유를 저때 총 동원한겨 저게. 스페인을 상대한다는건. 

 

전쟁은 이때부터는, 돈이야 돈. 금은이여. 그 금은으로 총을 만들고 대포를 만들 수가 있어. 당연히 이때부터, 광물 을 캐내는거야 이게. 제조업이 살아나는겨. 배를 만들어야 하고. 군수장비를 개발해야 하고. 그 질과 양은 웬만한 돈으로 안되는겨 이건. 이미 그걸 만들어낼 사유는 이탈리아에서 배우면서 유럽애들이 해온거고, 서로 공유를 하는거고, 결국 돈 의 문제걸랑 이건.

 

이걸 프랑스 잉글랜드 네덜란드 가 상대한건 어마어마한 저력인겨 이건. 이건 스페인이 쌓아온 사유의 문명 을 압도 했다는거야. 스페인의 금과 은의 규모를 이길 만큼 저들은 그보다 다른 차원으로 스스로 성장을 한겨. 헌데, 프랑스는 오직 대갈빡만 굴린 즙을 짜낸거고, 잉글랜드는 정치사회경제적으로 활발하게 스스로 작동이 된 걸 써먹은거고, 계속 이걸 써먹어 간거여. 프랑스는 더이상 짜낼 즙이 없어진거고. 이게 1789 프랑스 대학살 까지 온겨. 

 

네덜란드는 1568년 부터 정체성의 시작이야 얘들은. 

 

가장 중요한건, 정체성이여 정체성. 이 정체성 이란게 개인의 힘 이고 국가의 힘이야.

 

잉글랜드 라는 나라의 정체성은, 내전을 통한 정체성이여. 헨리2세 가 자식들이 대들면서부터 얘들은 사오백년간 쌓인겨 이게. 배론들이 들이데고 킹을 상대로 마그나카르타 를 만들어내는 팔리어먼트에, 프랑스를 상대로 백년전쟁하면서 잉글리쉬 를 공식어로 채택하고, 장미전쟁으로 인물들이 다 죽어나갈 정도로 내전하고나서 헨리7세의 튜더가 잡고, 스튜어트 제임스 찰스 가서는 킹 모가지 짜르는 내전까지 가는겨 이게. 헌데 이걸 조지 몽크가 찰스2세를 옹립하면서야 정리가 되면서 이때까지의 영국이란 정체성은 세계최고인겨 이게. 이 단단함은 갓 들어선 네덜란드 조차 상대가 안돼 이건. 

 

정체성 이란건 처절한 외부와의 전쟁과 내전으로 다지기가 된겨 쟤들은. 

 

잉글랜드 와 이 네덜란드는 이런 정체성 다지기 하면서 쌓인 컴퍼니의 힘으로, 시작은 미미했지만, 저 엄청난 스페인의 재력의 전쟁을 버티고 이겨낸겨 이게. 프랑스는 기존의 것들로 쥐어 짜서 이긴거고 더이상 짤게 없어진거고. 이게 이 후의 잉글랜드 프랑스 가 달리 간 이유야. 

 

1638년 게타리아 해전.으로 처음 이겨본겨 프랑스가 스페인을. 허나 육지의 푸엔테라비아 는 못가져와. 그만큼 이게 성이 견고한거야. 수많은 대포질을 버틴거고. 그 와중에 지원군 와서 살아난겨. 

 

이 프랑스 란 나라는, 기존 갈리안들이 배운 로마. 이건 독보적이야 유럽에서. 이탈리아 빼고. 더하여 이탈리안 전쟁하면서 알프스 넘나들면서 갖고오면서 가장 독보적이어야 해. 헌데 얘들은 바다.를 모른겨. 컴퍼니 를 모른거고. 

 

Prior to the 1660s, France lacked a powerful navy of its own, and instead relied on the Dutch, who ceased to provide this after 1648. Since 1654, Spain had been involved in a naval conflict with the English Commonwealth, and in 1657, Mazarin negotiated an Anglo-French alliance. France was required to end its backing for the exiled Charles II, some of whose supporters joined the Spanish as a result  

 

프랑스는 1660년대 이전에는, 자체로 해군이 부족했다. 대신 네덜란드에 의지했다, 얘드른 1648년 이후 프랑스를 지원하다. 1654년 부터 스페인은 잉글랜드와 해전으로 부딪히고, 1657년에는 마자랭이 잉글랜드와 연합했다. 프랑스는 찰스2세 망명으로 잉글랜드와 끊을 필요가 생기고, 몇몇은 스페인과 손잡다. 

 

얘들은 해군이 약해. 게타리아 해전은 걍 지들 배들 모아서 대포들 실어서 이걸로 스페인 해전을 이긴겨 저기 얼마 되도 않는. 이 프랑스와 스페인은 바다가 약해. 그만큼, 컴퍼니 가 없는겨 여긴. 세상은 컴퍼니가 만든거야. 지금도 마찬가지고.  컴퍼니를 적폐 취급하는 나라는 미개해 질 수 밖에 없어. 컴퍼니를 적폐시하는게 사회주의 공산주의 애들이야. 트럼프 연설이 멋진겨 그게, 샌더스  겨냥하면서, 저 사회주의자들은 오직 거짓말, 그리고 듣기좋은 말들로 선동질 할 뿐, 인류 역사를 죽인 애들이요 저딴 애들은. 그만 좀 속읍시다 그만좀 저딴 애들의 거짓말에.

 

프랑스 가 저때 피레네 에 비스코이 만 쪽으로도 쳐들어가는데. 얘들이 1635년 부터 개입하는 30년 전쟁이 1648년 끝나고도 1659년 까지 가서 요건 따로 프랑스-스페인 전쟁 1635-59. 로 나누걸랑. 이건 프랑스가 쳐들어가는거고, 얘들이 사방으로 쳐들어가는겨 이게. 이건 로타르 가운데 땅의 연속이고. 플랑드르, 로렌, 알자스, 에 부르고뉴 백작령도 갖고 오려는거고, 피레네노 넘는겨. 저 나바라.도 지들꺼란거여. 하물며 카탈로니아도. 

 

프랑스의 1552년, 앙리2세의 이탈리안 전쟁 부터 1798년 프랑스 대학살 직후까지의 그림인데. 메스 베르됭 툴.을 1552년 이탈리안 전쟁 막바지때야 갖고온거고, 1618년 30년 전쟁 터지고, 1635년 개입하면서부터 저 플랑드르 를 우선 갖고 오련겨. 이걸 네덜란드와 반띵하기로 한거고. 1638년 푸엔테라비아.를 갖고 오려다 실패한겨, 피레네 넘어서, 이 옆의 게타리아 해전 은 이겼지만 푸엔테라비아.를 못갖고와. 이게 저 스페인과 프랑스의 왼쪽 경계선이야. 그래도 게타리아 해전이 거의 최초여 이게. 3년 만에 이겨본겨 프랑스가 스페인으로. 그리고 나서, 1640년에 아라스.에서 이겨보는거고. 그리고 1643년 때 로콰 Rocroi, 1648년 때 Lens 랑스. 에서 이겨보는겨, 이건 전적으로 그랑콩데.의 힘이여. 프랑스가 스페인을 이긴다는건 말이 안되는겨 이게. 돈 이 상대가 안돼. 돈 을 통한 군수장비.가 비교가 안되고. 

 

헌데 프랑스는, 대포여 대포. 이 대포 기술은 잉글랜드 백년전쟁 하면서 프랑스만의 독보적 기술이고, 그동안의 독보적인 문명의 힘으로 스페인에 맞선겨 이건. 얘들은 이전의 사유를 쥐어짠 거고, 더하여 악착같이 세금을 걷은겨. 세금 걷을 땅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한거고. 이게 루이 14세때야. 컴퍼니를 몰라. 저게 악순환이 된겨. 스페인을 이기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자기 영지에서 돈을 쥐어 짜야 했고, 이게 세금제도 를 바꾼겨. 이게 근대의 세금제도 를 만든거야. 이건 머냐면, 납세자 가, 영주 에서 시민 들로 바뀐거야 이게. 프롱드 란 내전은, 영지의 영주 가 내는 세금에 대한 반기여. 영주의 재산이 푹푹 날라가는겨. 리슐리외 와 마자랭 이 이 영주들의 돈을 건드린거걸랑. 이걸, 영주 를 건너뛰고, 영주가 걷어서 내는 세금에서, 직접 로얄 왕정이 시민들한테 세금을 거둔게 이게 근대의 세금제도여. 더 많은 세금을 걷기 위해서. 얘들은 스페인을 이기기 위한 돈은 오직 자기땅에서 밖에 안나오는거고, 그래서, 땅을 더 늘려야 해. 

 

스페인의 돈 에 맞서기 위한, 리슐리외 와 마자랭 의 마스터플랜인겨 이게. 중세 체제 에서 벗어나지를 못한거야 프랑스의 정치 두뇌들이. 이게 프랑스가 망쪼가 든 이유야. 이 짓이 그대로, 스웨덴.이 하는겨. 그래서 얘들도 러시아 에 맥을 못추게 되는겨 뒤에. 

 

나만의 이야기야 이건. 엄청난데. 뒤에 풀고 말이지. 

 

저때 프랑스,가 1635년 부터 시작하는게 플랑드르.에 피레네 이고, 저기선 개략적 표기지만, 다시 로렌 에 알자스 로 쳐들어가. 앙리2세가 갖고 왔다고 해도, 프랑스께 아냐 이게. 기존의 오육백년의 정체성이 이 가운데 땅에 있는겨. 저게 쉽게 프랑스께 못 돼. 더하여, 이탈리아 북쪽도 수시로 쳐들어가는거고, 왜냐면 여긴 스페니쉬 로드 로 가는 플랑드르 군대 막으려는게 입구에서. 이게 몬토바 후계자 전쟁하면서 토리노 왼쪽 수사 에 아래 와 주변 도시 몇개를 갖고오는거고. 뒤에도 여길 사보이 시켜서 쑤시는거고. 루이 13세는 카테리아 해전.에 사라스 전투 에서 스페인 이겨보고 죽은겨. 그리고 1643년에 꼬마 루이14세가 다섯에 오르고서 바로 승리한게 로콰 전투여. 1643. 대승은 아니지만, 이건 말야 기적이야 기적. 스페인 플랑드르 군대를 이긴다는건. 이건 이전 리슐리외 의 그나마의 전략이 먹힌겨 이게. 프랑스는 컴퍼니 와 바다 를 못 키운 것 자체가 패착이야 얘들은. 이게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야말로 사회주의 에 쩔고 쩔은 나라가 저 프랑스여 지금도. 

 

저때를 중상주의 어쩌고 해대는데, 천만의 말씀이야.

 

중상주의를 프랑스는 저때 루이 태양왕은, 중세 영지 체제를 확장 하는 개념 에만 충실한겨. 자기 땅을 넓혀서 돈을 취하려 한겨. 이게 실패한 이유야.

 

세상은, 수메르 때부터, 지금까지, 중상주의야. 수메르의 문헌들, 법령들은, 처벌이 돈이여 돈. 바빌로니아 텍스트도, 저게 모두 뭔 죄를 지으면 얼마 해대는 벌금 목록이여 저게. 저 바닥은 쟤들도 철저한 중상주의의 나라인거고, 고대 로마도 철저한 중상주의고, 고대 그리스 해변국가도, 페니키아도 중상주의 애들이여. 

 

지금은 중상주의 아니니?

 

프랑스는 땅, 그것도 오직 유럽 대륙의 땅에만 집착한겨. 부의 원천을. 

 

스페인도, 오직 저땅에서 금은 을 캐오는 것.으로만 신대륙을 활용해서 망한거고. 

 

영국만이 오직 컴퍼니야. 얘들은 위대한겨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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