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isca raft (Balsa Muisca in Spanish), sometimes referred to as the El Dorado Raft, is an artistic figure of pre-Colombian gold votive, drafted by the Muisca who established one of the four grand civilisations in the Americas on the Altiplano Cundiboyacense in the Eastern Ranges of the Colombian Andes. The piece is exhibited at the Gold Museum in Bogota. It is estimated that the figure was drawn between 600 and 1600 AD by lost-wax casting in gold with a small amount of copper.  

 

무이스카 래프트. 뗏목 모형이야. 19.5 cm x 10.1 cm 가로세로 일이십센치씩이고. 금에 동이 조금 섞이고, 뗏목위에 가운데 추장에 주위 인간들이 노젓는거고. 1969년 에 농부들이 발견해서 지금 보고타 박물관에 있는거고. 이 보고타 쪽이 엘도라도 이야기야. 여기 문명이 무이스카.야. 중남미의 네 개가 아즈텍 마야 잉카 에 이 보고타 부근의 콜롬비아 의 무이스카.야. 

 

The Muisca raft weighs 287.5 grams. 전체 288 그램에 금이 80퍼 은이 10퍼 동이 나머지고. 대략 10온스 만 치고 걍 녹이면 끽해야 1만5천불 하겄나. 2천만원 주면 팔라나 박물관에서. 

 

지파. 가 무이스카 의 킹.이고, 잉카 는 사파 이고. 지파 가 금가루를 몸에 발라서, 과타비타 호수로 뛰어드는겨 여신에게 제물 바친다면서. 이게 엘도라도 의 시작이야. 

 

코르테스.의 아즈텍이 1519년. 잉카의 금이야긴 피사로.가 듣는게 1522년. 시볼라 도시 금이야긴 1530년 이고. 이거로 코르도바 원정 가고, 동시에 데소토 는 바다로 가고. 

 

이 엘도라도 이야긴, 1530년 전후.에 나와. 이건 무이스카 있는 보고타 지역이야. 콜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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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책으로 전해지는건, 저 무이스카 뗏목 이야기 전설 그대로가, 17세기에 쓰여지고 19세기에나 출판이 된겨 의외로.

 

El Carnero (English: The Sheep) is the colloquial name of a Spanish language colonial chronicle whose title was Conquista i descubrimiento del nuevo reino de Granada de las Indias Occidentales del mar oceano, i fundacion de la ciudad de Santa Fe de Bogotá, ... [also known as El Carnero de Bogotá] (English: Conquest and discovery of the New Kingdom of Granada of the West Indies sea, and foundation of the city of Holy Faith of Bogota). It is a chronicle of history and customs written in 1636-1638 (but not published until 1859) by Bogota-born Juan Rodríguez Freyle  

 

엘 카르네로. 양 이란 책인데 줄여서. 뉴그라나다 킹덤 정복과 발견, 보고타 라는 도시 설립.이란 연대기여. 뉴그라나다 킹덤.은 티에라 피르메 다음에, 페루 바이스로얄티 있고 위에 파나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는 뉴그라나다 킹덤.이 되고 이게 18세기에 바이스로이.가 되는겨. 서기 1638년 에 쓰여진건데. 2백년 지나고서야 출판이 되었어. 이건 보고타 태생 후안 로드리게스 프레일레.가 쓴 책이야. 

 

엘도라도 라는건 저당시 입소문 으로 역시나 유럽을 들썩인겨. 1530년 즈음. 이게 북미의 시볼라.와 동시에 터진겨. 이 전에 아즈텍과 잉카 가 먼저 알려진거고, 잉카 는 이 직후인 1532년에 직접 확인한거고. 

 

보고타 란 도시는 역시나 안데스 산맥 에 있는건데. 여기도 요새여 자체가

 

보고타.가 2640 미터 의 도시인데. 안데스가 콜롬비아 해변따라 길게 시작이 되고, 이게 떨어져서 가운데 길게 북동부로 있는 안데스 줄기여. 여기 자체도 고지대여 이게. 여기 접수하는게 쉽지 않은겨 찾는것도 어렵고. 

 

 

이게, 두쪽에서 오는거야. 하나는 대서양 상륙해서 위에서 오는 애들이고, 하나는 태평양 쪽의 애들이야. 이 태평양 쪽 애들이, 또한 피사로 애들이야. 피사로가 페루 잉카 점령하러 가는길에, 쿠스코 먹고나서 이 위에 있던 애들은 키토 를 점령하고 죽 위로 가는겨. 엘도라도 가 있다는 소문듣고 보고타로 향해. 

 

Sebastián de Belalcázar (Spanish pronunciation: [seβasˈtjan ðe βelalˈkaθaɾ]; 1479/1480 – 1551) was a Spanish conquistador. De Belalcázar, also written as de Benalcázar, is known as the founder of important early colonial cities in the northwestern part of South America; Quito in 1534 and CaliPasto and Popayán in 1537. De Belalcázar led expeditions in present-day Ecuador and Colombia and died of natural causes after being sentenced to death in Cartagena, at the Caribbean coast in 1551. 

 

세바스티안 데 베랄카사르. 피사로 쪽에 좀 늦게 합류해서, 쿠스코 를 함락한 이후에 이사람은 위에서 키토 로 가는겨. 포파얀.이 콜롬비아 남부여. 이사람은 보고타 까지 못가고 돌아와. 포파얀 자리를 두고, 잉카 를 알린 파스칼 안다고야 와 다투다 이인간이 먹고, 대서양해변의 카르타헤나 까지 욕심내다가 죽은겨. 

 

Diego de Ordaz also Diego de Ordás (Spanish: [ˈdjeɣo ðe oɾˈðaθ]; 1480 in Castroverde de CamposZamora province, Spain – 1532 in Venezuela) was a Spanish explorer and soldier.  

 

디에고 데 오르다스. 이사람이 최초로 엘도라도 찾으러 가는 사람이야. 

 

Juan Martinez. 오르다스 밑에 군수담당이 후안 마르티네스.여. 이사람이 화약관리인데, 실수로 불이 나. 오르다스가 열받아서 사형선고를 내리고 가둬. 친구가 꺼내줘서 탈출하고, 원주민을 만난겨 마르티네스가. 엘도라도 이야길 죽기전에 얘기하고, 이 이야길 전해들은 사람이 오르다스.여. 

 

오르다스.는 코르테스 에 껴서 아즈텍 먹을때 참전한 사람이야. 자기도 뭘 하고 싶어 독자적으로. 스페인 갔다가 다시 오는겨 

 

이 오르다스.가 코르테스 원정길에, 뽀뽀까또뻬뗄 이라는 유에프오님들이 드나드는 화산을 처음 등반한 유럽인이야.

 

 In Venezuela, he learned from the natives of an El Dorado-like kingdom known as Manõa said to exist beyond a mountain on left bank of the Orinoco River.[2] After failing to find Manõa, he decided to return to Spain but died in 1532 on the Venezuelan Paria Peninsula.  

 

마노아.에 있다고 했어. 마르티네스가. 이 마노아.가 보고타 동북쪽이여 같은 안데스 동쪽 줄기 고원산맥이여. 베네수엘라에서 가는겨. 실패하고 스페인가서 죽어. 이게 1532년 이전이고. 이 다음이 피사로 부대에 낑겨서 태평양쪽에서 온 벨라카사르.야 . 

 

다들 실패해. 

 

Gonzalo Jiménez de Quesada y Rivera, also spelled as De Quezada and Ximénez, (Spanish: [gonˈθalo xiˈmeneθ ðe keˈsaða]; 1496[1] – other sources state 1506 or 1509[2][3] – Suesca, 16 February 1579 was a Spanish explorer and conquistador in northern South America, territories currently known as Colombia. He explored the northern part of South America. As a well-educated lawyer he was one of the intellectuals of the Spanish conquest. He was an effective organizer and leader, designed the first legislation for the government of the area, and was its historian. After 1569 he undertook explorations toward the east, searching for the elusive El Dorado, but returned to New Granada in 1573. He has been suggested as a possible model for Cervantes' Don Quixote.[4]

 

 

곤살로 히메네스 데 케사다. 이사람이 보고타 로 처음 들어가는 사람이야.

 

(March 1537) and the valley of the Suárez River. Passing Lake Fúquene and Lake Suesca, they reached Nemocón and Zipaquirá and finally entered the Muisca Confederation (ruled from Bacatá, present day Bogotá and Hunza, today known as Tunja).

Only 166 men out of 900 survived, suffering terribly in the jungle: they were forced to eat snakes, lizards, frogs, and even the leather torn from their harnesses and the scabbards of their swords.  

 

서기 1537년.이야 산타마리아.가 콜롬비아 북쪽 대서양 해변이고. 여기서 강줄기타고 올라오는겨. 다 밀림이여 저긴. 9백명 중에 166명만이 살아남아. 보고타 지역의 당시 무이스카 지역으로 갔는데. 엘도라도는 못찾아. 이 사람이 보고타 를 세운 사람이고. 행정적으로 들어오는거로만 만족하는겨. 머 저당시 다들 돈키호테 모델이라며. 저 인간만이 아니라 머 다들 돈키호테 모델이라 쎄우는데. 몰라 저건. 

 

Gonzalo Pizarro y Alonso (Spanish: [gonˈθalo piˈθaro]; 1510 – April 10, 1548) 

 

곤살로 피사로.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이복동생이야 나이 졸 차이나는. 이사람도 잉카에서 위로 가는겨 엘도라도 찾으러. 못찾아

 

Conquistadores Lázaro Fonte and Hernán Perez de Quesada attempted (unsuccessfully) to drain the lake in 1545 using a "bucket chain" of labourers. After 3 months, the water level had been reduced by 3 metres, and only a small amount of gold was recovered, with a value of 3000–4000 pesos (approx. US$100,000 today; a peso or piece of eight of the 15th century weighs 0.88 oz of 93% pure silver) 

 

무이스카 의 추장 지파.가 헤엄치러 들어간 호수를 찾은건 데 케사다.여. 뒤에 온 사람이 저 호수의 물을 다 뽑아내서 금을 얻으려는겨. 인부들 동원해서 3개월동안. 3미터 로 줄었대. 금이 조금은 있더래. 지금 돈으로 10만불. 1억원. . 

 

From the verb dorar (“gild, give a golden color”).  

 

엘도라도.의 엘.은 정관사고. 도라도.는 도라르 라는 버브.에서 온 형용사인데. 금박을 입힌거고. golden. 도금된. 이란거고. 도금된 것. 이란 뜻이야. 사람이 생략된겨 저 추장 무이스카 지파.

 

Sir Walter Raleigh (/ˈrɔːli, ˈræli, ˈrɑːli/; c. 1552 (or 1554) – 29 October 1618

 

이 엘도라도.에서 가장 유명한 인간이 잉글랜드의 월터 롤리.여. 

 

나중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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