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ttle off Lizard Point was a naval action which took place on 18 February 1637 off the coast of Cornwall, England, during the Eighty Years' War. The Spanish admiral Miguel de Horna, commander of the Armada of Flanders, intercepted an important Anglo-Dutch merchant convoy of 44 vessels escorted by six warships, destroying or capturing 20 of them, and returned safely to his base in Dunkirk.  

 

리자드 포인트 전투 1637. 80년 전쟁의 전투.인데, 잉글랜드 콘월 아래해변 리자드 포인트 의 해전이야. 스페인 플랑드르 해군이 앵글로-더치 상선들 44척과 6척의 전함을 상대하는겨 스페인이. 20척을 파괴하거나 나포하는겨. 스페인 해군의 승리 인데. 스페인 플랑드르 해군의 기지가 됭케르크.여. 

 

During the Dutch Revolt (1568–1648), the Dunkirkers or Dunkirk Privateers were commerce raiders in the service of the Spanish monarchy. They were also part of the Dunkirk fleet, which consequently was a part of the Spanish monarchy's Flemish fleet (Armada de Flandes). The Dunkirkers operated from the ports of the Flemish coastNieuwpoortOstend, and Dunkirk.  

 

됭케르크(영어 던커크). 뉴포르트. 오스텐드. 의 친스페인 해군? 사략선들 무리.를 됭케르커들. 던커커스.라고 해. 됭케르크 는 지금 프랑스 땅이고. 뉴포트 와 오스텐드 는 벨기에고. 이때 프라이빗티어 를 사략 해적들 이라지만, 이들은 지중해 해적이 아녀. 번역의 문제인데, 저때는 다들 전쟁 중인겨. 쟤들은 전쟁하는겨. 저때 해군 이란건 없어. 쟤들이 해군이여. 저러다가 로얄 킹덤 차원의 해군이 근대이후에 만들어진 것일 뿐이고. 쟤들을 아시아 쪽 번역의 문화로 이해해선 안돼. 

 

잉글랜드 도버 에서 프랑스 칼레 Calai 까지가 35키로여 직선. 칼레 아래 불론뉴.가 나폴레옹이 대기타던 곳이고. 저때 나폴레옹이 건너갔으믄 잉글랜드가 프랑스께 되었을틴데, 넬슨 때메 못갔어 트라팔가르에서 묶여서.

 

스페인의 바다 병력이 됭케르크들 이야. 됭케르크 뉴포트 오스텐드 가 얘들 기지고. 80년 전쟁 때. 

 

이 스페인은 원래 바다를 몰라 얘들은. 스페인 무적함대 아르마다,는 완전 역사에 무지한 스페니쉬가 쓴 역사의 단어이고, 이걸 영국애들이 비웃으면서 그래 니덜 무적함대 라 해라 낄낄 대는거고. 

 

리자드 포인트.가 콘월 끝쪽에 있는겨. 됭케르크 에서 여기까지 직선 550 키로여. 스페인애들이 얼마나 열받았으믄 저기까지가서리 네덜란드 애들을 조졌냐는거지. 저 44개의 배들과 전함은 대게 과반이 네덜란드 배들이고, 전함도 네덜란드고 잉글랜드는 장소만 제공해준거고. 

 

 

Geuzen (Dutch pronunciation: [ˈɣøːzə(n)]FrenchLes GueuxEnglish: the Beggars) was a name assumed by the confederacy of Calvinist Dutch nobles, who from 1566 opposed Spanish rule in the Netherlands.  

 

네덜란드 독립전쟁 80년이 1568년 부터인데. 이건 알바공작 페르난도 알바레스.가 에그몬트 백작 라모랄.과 호른 백작 필립.을 처형하면서 시작 되는겨. 1568년이란건. 이미 이전에 정치적으로 등장을 하고 절정에 터진게 1568년인겨. 이전에 에그몬트 라모랄 등 귀족들의 연합이, 일명 Geuzen 케우제(회우제. 게우제. 거우전) 이여. 이 덧치 발음이, 아 이건 내가 언어 발음 하는걸 말해줘야하는데, 나중에 할때 되면 하고. 

 

⟨ɣ⟩. G 지 발음이, 감마 와 비슷한데. 이건 The voiced velar fricative 보이스, 성대를 울리면서, 벨러. 벨러 의 반대가 팰리스 팰라트 라는 경구개여. 치아 를 버티는 잇몸. 이 뒤의 연한 잇몸이라 연구개여. 이걸 벨룸.이라해. 여기에 혀를 대고 프리커티브. 혀를 부딪혀서 성대를 울리는겨. 이게 크. 흐. 의 중간발음이야. 크 에 가까와. 저지대.가 지. 발음이 크 에 가깝고 이게 불어도 비슷해. 독일 고지대가면 시작은 그 가 되고 발음은 크 가 되는거고, 잉글랜드 가서 그.가 되고 즈.가 되는겨. 이런 소리들 변화가 재밌는겨 쟤들이. 같은 게르만 애들이. 이게 역시나 중국어 발음과 한국어 발음과 일본어 발음 을 보면 재밌는겨 이게. 이 발음 이 곧 단어 여 단어. 언어 라는게 이게 별게 아녀. 이걸 거국적으로 전체적인 시야에서 보는 언어학자가 우리나라에 단 하나 없는게, 당연한겨,  미개한 지능의 애들이 이땅에선 학자걸랑. 

 

케우제.란게. 거지여 거지. 거지들. 1566년 에 등장한 말이고 단체여. 아  네덜란드 독립하겠다는 귀족들 연합 이름이, 거지들 이란겨. 베토벤의 에그몬트 가 저 거지들 의 일인 일 뿐인겨 이게. 

 

거지들이란 말이 생기기 전에, 저때 네덜란드 땅 귀족들이 모인겨. 

 

The Compromise[1] of Nobles (DutchEedverbond der EdelenFrenchCompromis des Nobles) was a covenant of members of the lesser nobility in the Habsburg Netherlands who came together to submit a petition to the Regent Margaret of Parma on 5 April 1566, with the objective of obtaining a moderation of the placards against heresy in the Netherlands. This petition played a crucial role in the events leading up to the Dutch Revolt and the Eighty Years' War.  

 

에이트퍼본트 데어 에이델렌. 본트 라는 뽄드 가 붙으면 접착 묶인 거고 약속 맹세여. 자잘한 귀족들이 모여서 커버넌트. 란건. 동의 야. 의견일치. 동의 를 문서로 남기고 서약하거나 맹세 하건말건. 콤프러마이즈.는 프라미스 를 컴. 한겨. 프라미스 란건 프로미테레. 미테레 가 내가 보내는거에서 온겨. 앞서서 적극적으로 보내겠다고 나서는겨 이건. 적극적 의지 의 말이 프라미스 라는 약속 이라 번역한 거고. 콤. 서로 모여서 프라미스 한겨. 적극적 집단의 의지표명들이 콤, 합쳐진겨. 

 

저때 플래카드 placard 전법을 쓴겨 펠리페2세.가 여기서 플래카드 는, 저지대에 프로테스탄트들이 성상 파괴 한다는 둥 카톨릭을 버린다는 둥 하는데, 니덜은 이단이다. 라면서 대자보를 공시를 하는겨. 법적으로. 플래카드 여 이게. 플래카드 를 막막 써 붙인겨 저지대에.

 

저지대 귀족들이, 우리는 이단이 아니다, 저 플래카드 에서 우릴 이단이라 하는데, 모더레이트. 마던 이란게 이걸 일본애들이 근대, 얼리 마던 을 근세. 이리 번역해서 근대화  하면 아 닌 증말 어쩌냐. 아 이 일본들 천장에 놀아나는 역시나 조선 애들때메 참 피곤한데 진짜.

 

마더레이트. 란건

 

From Middle English moderat, from Latin moderātus, perfect active participle of moderor (“regulate, restrain, moderate”), from moder-modes-, a stem appearing also in modestus (“moderate, discreet, modest”), from modus (“measure”); see mode and modest.  

 

모데라투스.인데 모데로.의 퍼펙트 액티브 파티시플. 이란 단어 하나하나를 정확히 이해를 해. 이 멍청이들아. 하도 해서 넘어가고. 이건 법 안으로 들어오는겨. 이건 중간 이여. 중간 이란건 적당한거고. 합법이여. 

 

From Middle French moderne, from Late Latin modernus; from Latin modo (“just now”), originally ablative of modus (“measure”); hence, by measure, "just now". See also mode

 

모던 이란건, 지금이여. 이건 모도. 에 형용접사가 붙은겨. 지금 관련된 모든 것.이여. 아 넘어가고. 

 

스페인 왕정이 플래카드 써붙이면서 이단 이라고 하는데, 합법이라고 정정해 달라는겨. 이 요구를 하러 귀족들이 모인거고, 여기서 나온게 귀족들의 연맹 약속.이야

 

This unrest motivated the Brussels government to send Lamoral, Count of Egmont, to Spain to plead for relaxation of the ordinances. Philip replied negatively in his Letters from the Segovia Woods of October 1565. That led to a gathering of some members of the lesser nobility at the house of Floris, Count of Culemborg, in December 1565.  

 

에그몬트 백작 라모랄.이 원래 펠리페2세의 측근이야. 브뤼셀에서 이런 의견을 먼저 전달해서 너 킹이랑 친하니까 플래카드 좀 내려줘 부탁해봐. 이걸 뺀지 먹고 에그몬트가. 이게 1565년 10월이야. 그래서 12월에 헬더란트 의 굴렘부르크 백작의 집에 몇몇이 모이면서 저게 시작이 된겨. 

 

The leaders of the nobles who signed a solemn league known as the Compromise of Nobles, by which they bound themselves to assist in defending the rights and liberties of the Netherlands against the civil and religious despotism of Philip II of Spain were Louis of Nassau, and Hendrick van Brederode. On 5 April 1566, permission was obtained for the confederates to present a petition of grievances, called the Request, to the regent, Margaret, Duchess of Parma. About 250 nobles marched to the palace accompanied by Louis of Nassau and Brederode.  

 

그리고 다음해 1566년 4월 5일.에, 청원하는 허락을 받아서 파르마의 마가렛.을 만나러 가는겨 저 귀족들이. 이때 네덜란드의 거버너.가 펠리페2세의 배다른 누나 마가렛.이야. 이 네덜란드.는 합스부르크 애들이, 거버너.를 여자를 뒀어 대대로.

 

이 마가렛.은 카를5세 황제가, 결혼전에 저지대 배런 의 서번트, 하녀와 교미해서 낳은 딸이야. 서얼이란게 없어 얘들은, 합스부르크 에서 키우는겨. 이여자가 애기때 네덜란드 거버너.가 미친년 후아나 와 결혼한 미남왕 펠리페.의 여동생.이야. 같은 마가렛. 이여자때 앤불린 이 꼬마때 놀러온거고, 다음 거버너.가 후아나 와 펠리페 의 딸 안나.여. 헝가리 브와디스와프의 두 남매와 결혼한 후아나 펠리페의 두 남매가 페르디난트 나중 황제에, 이 여동생 안나.여. 

 

이 마가렛.이 고모할머니.와 고모. 한테서 자라는겨. 그리고 펠리페 2세.가 임명한겨 네덜란드 거버너.로, 배다른 자기 누나를. 조선에선 상상을 못하는 거지 이런건. 

 

저지대 귀족들이, 에그몬트 통해서 펠리페2세에게 의견 전달한게 무시당하고, 그 누나 인 마가렛.에게 직접 가는겨. 다음해인 1566년에. 마가렛이, 쟤들 머여, 해대면서 오라는겨. 이들이 갈때, 거창하게 사열을 해서 가, 250명이, 기사도 행군을 하는겨 말타고. 이때 선두에 나선 사람이 둘.이야. 낫사우의 루트비히.와 브레더로드의 헨리.여. 루트비히 는 침묵 오렌지의 동생이고 침묵오렌지보다 먼저 죽어. 브레더로드 헨리도 제일먼저 죽고. 

 

The regent was at first alarmed at the appearance of so large a body, but one of her councillors, Berlaymont, allegedly remarked "N'ayez pas peur Madame, ce ne sont que des gueux" (Fear not madam, they are only beggars)  

 

마가렛.이 저들 오는걸 보고 놀란겨, 저리 몰려서 올줄도 모른거고, 저때 옆의 카운슬러 인 베를레몽.의 샤를이, 두려워 마세요 마담, 그들은 단지 거지들이예요. 

 

마가렛 에게 자기들 이야길 전달하고 돌아간겨. 그리고, 자기들을 거지들.이라고 말한걸 이들이 들은겨.

 

The appellation was not forgotten. In a speech at a great feast held by some 300 confederates at the Hotel Culemburg three days later, Brederode declared that if need be they were all ready to become beggars in their country's cause. Henceforward the name became a party title. The patriot party adopted the emblems of beggary, the wallet and the bowl, as trinkets to be worn on their hats or their girdles, and a medal was struck having on one side the head of Philip II, on the other two clasped hands with the motto Fidèle au roy, jusqu'à porter la besace ("Loyal to the King, up to carrying the beggar's pouch"). The original league of Beggars was short-lived, crushed by Alva, but its principles survived and were to be ultimately triumphant.  

 

이때는 1566년 이야. 아직 1568년 이 아녀. 이 귀족들은 나름 뿌듯한겨. 3백명이 다시 모였어 헬더란트의 쿨렘부르크 백작 집에. 3일 후에 모인겨. 저때 대변인 역할 했던 브레더로드 헨리.가, 필요하다면 우리는 우리 땅의 이익을 위해 거지들.이 될 준비가 되있다. 이때부터 이들이 일명 거지들.이 된겨. 자조적으로 쓰면서. 그래도 이때는 자기들은 스페인 킹에 하미지를 하는겨. 자기들 엠블럼.이 두 손이 맞잡고, 거기 쓰인 문구가, (스페인의) 킹에 충성, 거지의 가방을 찬 채로. 

 

비베 레 귀유. 거지들을 위하여! 하면서 저런 글을 쓴 겨 옆에다가. 그래도 자기들은 스케인 킹에 충성, 거지 주머니를 찰 지언정. 

 

그리곤 바로 진압이 된겨 저들이. 1568년에. 에그몬트 와 호렌 백작이 죽고. 도망간 침묵 오렌지.가 리더를 하고

 

In 1569 William of Orange, who had now openly placed himself at the head of the party of revolt, granted letters of marque to a number of vessels manned by crews of desperadoes drawn from all nationalities. Eighteen ships received letters of marque, which were equipped by Louis of Nassau in the French Huguenot port of La Rochelle, which they continued to use as a base.[3][4] By the end of 1569, already 84 Sea Beggars ships were in action.  

 

이때 바다 쪽에, 침묵 오렌지가 마크. 차터를 주는겨 18개의 배에. 이제 전쟁이여. 여긴 오렌지 동생 루트비히.가 맡은거고. 1569년에 84척의 시 배거들 이 있었다. 저때 네덜란드 사략 선들이, 일명 바다의 거지들.이야. 저걸 계승을 한겨 이들이. 이들이 네덜란드 초창기 해전을 담당한거고. 이 바다 거지들.을 막는게 됭케르커들.이라는 스페인 플랑드르 해군 사략배들이야. 

 

잉글랜드 가 저 네덜란드를 편들때, 초창기 레스터 백작 더들리가 가기전에, 개인들이 저길 갔다와. 험프리 길버트 도 저길 가서 참전하기도 해. 

 

저들이 네덜란드 해군이 되는겨. 네덜란드 상선들을 가드하며 다니는거고. 이건 모든 저당시 상선들의 풍경이여. 지중해도 상선들 은 지들끼리 못다녀, 선단을 이루고 주위에 전함이 붙어야해. 

 

리자드 포인트 전투 1637년. 때 스페인은 갤리온 선이고. 영국 네덜란드.는 Man-of-war 맨 오브 워.라는 전함이야. 

 

이 배.라는게, 차원이 다르게 진화하는겨 저때. 특히나 이제 머가 중요하니? 대포여 대포. 이전에 배 이야기 한거 복습하고 와. 배와 해전. 해전이란게 이게 골때리는겨. 학익진 따위는 정말 헛소리여 그게. 말이 되니 학익진 어쩌고로  포위해서 멀 어째. 

 

해전 이란건 아시아 역사에 없는겨 이게. 일본도 해전이란건 없어. 이전 임진왜란 썰. 해전이란건 이 아시아에서 임란때 처음 벌어진겨. 이것도 해전이 아녀 이게. 일본은 대포를 저때 못갖고와. 얘들은 대포를 몰러 저당시. 못 싣고 와. 포르투갈 스페인 애들이 안줘 대포를. 이 대포는 나중 이에야스 가 히데요리 조질때 써먹는게 대포여. 저 오사카 성은 엄청난 요새여 저게. 저걸 함락한건 대포여 유럽애들한테서 받은. 

 

해전이, 멀레 멜레이 라는 백병전.에서, 이 대포 로 확실하게 가는게 근대야. 

 

이 배라는 것도, 포르투갈.이 바다에 비전을 미리 두면서, 제노바 인간을 섭외하면서 해군 을 만들고 조선 기술이 급발달한게 이 포르투갈이야. 포르투갈 데니스 가 1317년 최초의 해군.을 만들면서, 뒤에 주앙 1세의 걸출한 자식들이 등장하고 헨리 네비게이터 가 사그리스 학파 만든건 절대 로망 소설 허구가 아녀. 이 포르투갈은 아까운 나라여. 

 

carrack (PortuguesenauSpanishnao) was a three- or four-masted ocean-going sailing ship that was developed in the 14th to 15th centuries in Europe (mainly Portugal

 

The caravel (Portuguesecaravela, IPA: [kɐɾɐˈvɛlɐ]) was a small, highly manoeuvrable sailing ship developed in the 15th century by the Portuguese to explore along the West African coast and into the Atlantic Ocean

 

Galleons were large, multi-decked sailing ships first used by the Spanish as armed cargo carriers and later adopted by other European states from the 16th to 18th centuries during the age of sail and were the principal fleet units drafted for use as warships until the Anglo-Dutch Wars of the mid-1600s.  

 

캐럭. 카라벨라. 이게 포르투갈에서 14세기에 시작하는거고, 스페인이 갤리온 을 만들어. 원래 지중해에서 배는 베네치아 제노바 인거고. 이때 갤리 라는건 빠르다 할때, 노잡이여. 갤리온 은 큰 갤리.란 뜻인데 이건 그렇다고 노 잡이겸용이 아녀. 이미 노잡이 할 만한 배가 못돼 배가 커져서. 갤리온 은 갤리 란 말만 차용한거지 오직 범선, 돛들을 이용하는겨. 

 

배가 덩치가 커지고, 돛의 구조와 조작술이 발달하는겨 저게. 이게 서기 1600년 을 지나는겨. 

 

barquebarc, or bark is a type of sailing vessel with three or more masts having the fore- and mainmasts rigged square and only the mizzen (the aftmost mast) rigged fore and aft. Sometimes, the mizzen is only partly fore-and-aft rigged, bearing a square-rigged sail above. 

 

바크 선.이란건 18세기에 등장하는 영국 배야. 이것도 돛의 문제야. 이게 삼각 돛대들을 졸로리 세우고 헝겁 세일을 자잘하게 쪼개고 방향을 약간 앞뒤로 해대고, 선미 선두에도 보조 돛을 다는 이 돛 의 기술이 달라진겨 점점.

 

The man-of-war (pl. men-of-war; also man-o'-war, or simply man)[1][2] was a British Royal Navy expression for a powerful warship or frigate from the 16th to the 19th century. Although the term never acquired a specific meaning, it was usually reserved for a ship armed with cannon and propelled primarily by sails, as opposed to a galley which is propelled primarily by oars.  

 

맨오브워.라는 배는 영국 로얄 소속 전함이야. 16세기 부터 쓰인거고. 이건 존 호킨스.가 디자인을 한겨. 이제 갤리 라는 노잡이 배는 사라진겨 바다에서. 

 

왜 노잡이 배가 사라진걸까? 

 

과거보다 배를 더 크게 만들수 있어서? 머 예전에는 배를 못 크게 만들었대? 고대 그리스에 고대 이집트 배가 얼마나 어마어마 하냐. 

 

왜냐면 말야, 노 저을 공간 대신에, 대포를 실어야 해. 대포는 갑판에서 쏘는게 아녀. 갑판 밑에서 쏘는겨. 

 

이 대포기술이 발달하면서, 노잡이들 공간에 대포가 들어서면서 오직 돛으로만 배의 프로펠러 를 이용하면서, 이 돛과 바람의 힘의 상관관계 가  연구가 된겨 저때부터. 저 돛 들의 구조를 보면 저게 디다보면 니덜은 대가리 뽀개져.

 

The man-of-war design developed by Sir John Hawkins, had three masts, each with three to four sails. The ship could be up to 60 metres long and could have up to 124 guns: four at the bow, eight at the stern, and 56 in each broadside. All these cannons required three gun decks to hold them, one more than any earlier ship. It had a maximum sailing speed of eight or nine knots.  

 

존호킨스가 디잔인을 해. 마스트 세개 세우고. 각각에 네개의 세일을 할당하고. 배는 60미터 길이에. 건 이란게 대포여. 이걸 124개 까지 실어. 배대가리 이물에 네개. 고물에 8개. 양쪽에 56개 씩. 저때가 1588전후야. 임란때 거북선이라며 싣는 대포가 14개포야. 이건 말야, 비교 조차를 못해 동과 서는. 헌데 일본애들 조차, 해전이란걸 몰라. 얘들은 전적으로 대포가 없어서 당했을 뿐이야. 헌데 저런 조선 배 조차, 당시 유럽 배와 이건 비교를 할 수가 없어 이게. 이순신 이야  이 거지들의 땅이니까 이순신이지, 유럽에 어떻게 비교를 하냐고. 

 

저 판옥선 거북선 따위는 지중해 고대 앗시리아 기원전 1천년때 배보다 나을라나. 

 

야 작년에 반일놀이 한담시 거북선을 당당히 배경으로 양키 접대하는거 보고  웃겼는데. 

 

정말 말이지. 창피 란걸 조선 애들은 몰라.

 

.

저때 스페인 애들은 존 호킨스.가 설계한 맨오브워 에 진겨. 이 존 호킨스 는 정말 위대한 인간이야 영국애들 입장에선. 영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두 인간을 꼽으라면, 단연코 프란시스 드레이크 와 존 호킨스 여. 이 영국사 애들이 정말 개 그지처럼 미개해져서 쟤들 역사 정리하는거 보면 화딱지 .

 

Henry Grace à Dieu ("Henry, Thanks be to God"), also known as Great Harry, was an English carrack or "great ship" of the King's Fleet in the 16th century. Contemporary with Mary RoseHenry Grace à Dieu was even larger. Henry Grace à Dieu was Henry VIII's flagship. She had a large forecastle four decks high, and a stern castle two decks high. She was 165 feet (50 m) long, weighing 1,000–1,500 tons and having a complement of 700–1,000 men

 

앙리 그라시아 듀. 헨리 8세.가 신에 감사하며. 라는 배여. 서기 1514년 에 론칭한 배여. 1천명 까지 태워. 캐럭선을 개조해서 대포를 붙이는겨. 길이 50미터. 43 cannons, 141 swivel guns. 대포 총 43개.에 141개의 스위블 건. 회전포에 총이여. 이들 수준이 미친겨 이게. 

 

그러면서, 배에 포를 누가 더 제대로 장착하고 포를 위한 데크를 잘 설계해서 제대로 배에서 대포를 쏘게 하는가 가 해전의 핵심이 되는겨. 

 

ship of the line was a type of naval warship constructed from the 17th century to the mid-19th century. The ship of the line was designed for the naval tactic known as the line of battle, which depended on the two columns of opposing warships maneuvering to fire with the cannons along their broadsides.  

 

스페인 갤리선.도 그래서 바꾸는겨 이제. 이전껄 개조를 하면서 쓴거걸랑. 전함 이란게 대포를 위한 설계 자체 여야해 이건. 이게 쉽 오브 더 라인.이야. 맨 오브 워.라는 게 시작인거고, 이런 타입의 배.가 쉽 오브 더 라인.이야. 이게 17세기 에서 19세기 까지 오는겨. 이게 80년 전쟁 하면서 해전 하면서 배가 업그레이드 하는겨. 이걸 위한 무게 가 해결 이 되어야 하고. 저런 무게들을 실어도 배가 더 빨리 가야 하고. 돛대와 돛들 을 어떻게 설계하는가에 머리를 쓰게 되는겨. 

 

이 중심에, 영국과 네덜란드 애들이 선도를 하는겨 저게. 영국의 맨 오브 워.를 네덜란드 애들이 그대로 카피를 하는거고. 스페인은 배를 몰라 얘들은. 얘들은 재수좋게 포르투갈 하나 먹고, 재수좋게 콜럼버스 한테 펀딩하면서 얻어 먹은겨 얘들은. 그 재수좋은 로또를 유럽 전장에 모두 쏟아붓고 거지가 된거고, 이 스페인은 내쩍으로 쌓인게 없는겨 이게. 

 

 

An Anglo-Dutch convoy of 28 Dutch merchantmen and 16 English merchantmen, escorted by six Dutch warships, was sighted off Lizard Point,[1] on the coast of Cornwall.  

 

저 리자드포인트 1637년.은 네덜란드 산선 28척 잉글랜드 상선 16척.에 네덜란드 전함 6척인데. 이때 네덜란드 전함이 맨오브워 유형인듯해도, 얘들이 대포 와 화기에서 완전히 압도를 당한겨 같은 6척의 스페인 갤리온 한테. 이때 네덜란드 애들은 준비가 허섭한거여. 스페인 갤리온 애들이 대포를 졸 실은거고.

 

이제 해전은 누가 더 많이 대포를 제대로 실어서 그 무게를 갖고도 배를 잘 작동시키는가의 싸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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