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셉숑 뒤 그랑 콩데 아 베르사이. 베르사이유 궁에서 그랑 콩데.를 맞이하는 루이14세.야. 장 레온 제롬.의 1878년 그림이고. 아주 유명한 그림인데. 

 

Reception of the Grand Condé at Versailles following his victory at Seneffe. The Grand Condé advances towards Louis XIV in a respectful manner with laurel wreaths on his path, while captured enemy flags are displayed on both sides of the stairs. It marked the end of Condé's exile, following his participation to the Fronde.  

 

시네프(제네퍼 시네퍼) Seneffe 전투.가 1674년.이야. 프랑스-네덜란드 전쟁이 1672-78 이었고. 이건 프랑스가 이긴 전쟁이고. 태양왕 루이 세상이 된건데. 태양왕 루이.가 1638-1715여. 얘가 1635년 이후 3년지나서 태어난건 기억을 하도록해. 저때는 이미 태양왕이 36세여. 계단을 오르는 그랑 콩데.는 1621-86. 53세이고. 같은 부르봉이고, 그랑콩데가 루이보다 17년 많아. 

 

시네프 전투 를 그랑콩데.가 승리하고 직접 베르사유 궁전에서 환영을 받은거야 저건. 역사적 사실이야. 좌우에 그랑콩데.가 뺏은 네덜란드 스페인 오스트리아의 헤럴드리 휘장들이 정열된거고, 그랑콩데가 고개숙이며 올라가는겨. 그리고 그랑콩데는 다음해 라인강 한번 더가고 바로 은퇴를해. 54밖에 안되었는데 이미 지칠대로 지친겨 사람이. 십여년을 은퇴하고 요양하다가 걍 죽어. 역시나 통풍 에  고문받고. 저 통풍 저거 세상에 저런 고문도 없어 저거. 답이 없어 이놈의 통풍. 진통제 외엔. 

 

술많이 처먹지 마로. 아  아포 저거 통풍. 

 

이 그랑 콩데.라는 콩데의 프린스 부르봉의 루이2세.는 엄청난 인간이야. 세계 전쟁사 에서 탑 텐에서 빠지면 섭해. 

 

Louis II de Bourbon, Prince of Condé (8 September 1621 – 11 December 1686) was a French general and the most famous representative of the Condé branch of the House of Bourbon. Prior to his father's death in 1646, he was styled the Duc d'Enghien. For his military prowess he was known as le Grand Condé.  

 

부르봉의 루이2세. 콩데 의 프린스. 일명 그랑 콩데.

 

Henri de La Tour d'Auvergne, vicomte de Turenne (11 September 1611 – 27 July 1675), often called simply Turenne, was a French Marshal General and the most illustrious member of the La Tour d'Auvergne family. His military exploits over his five-decade career earned him a reputation as one of the greatest generals in modern history.  

 

앙리 드 라 투르 도브로뉴, 비콩 드 투렌. 그랑 콩데 보다 10세 많아. 투렌. 이라고 통칭해. 이사람 역시 그랑콩데 와 같은 최고의 전사여. 프랑스-네덜란드 전쟁 중 Sasbach 자스바흐 전투에서 합스부르크에 죽어. 알자스 접한 라인강 독일땅이고. 시네프 전투 승리로 영접받고 온 그랑 콩데 가 투렌이 죽고 이부대를 데리고 전투하다가 은퇴하는거고. 투렌 은 부르봉이 아냐. 

 

Anne Marie Louise d'Orléans, Duchess of Montpensier, (29 May 1627 – 5 April 1693) known as La Grande Mademoiselle, was the only daughter of Gaston d'Orléans with his first wife Marie de Bourbon, Duchess of Montpensier

 

앤 마리 루이즈 도를레앙, 몽펜시에 공작녀. 그랑콩데 보다 6세 어려. 그란드 마드모아젤. 마드모아젤 로 불려. 당시 유럽 결혼시장에서 나온 최고 상속녀 이고, 공식적으론 미혼이고. 오를레앙 의 가스통.의 첫부인 딸이고. 이여잔 부르봉 이여.

 

저 세사람이 프랑스 17세.의 세 사람인데. 저들이 프롱드 Fronde 에 나오는 이들이고. 

 

저들의 인생 이야길 보면, 참 프랑스 란 나라는 한편으로는 멋져 저게. 감히 조선사 에서는 볼수 없는 이야기들인데. 지 조선사는 유럽애들 보다가 다시 반추하면 말이지. 걍 벌레사여 벌레사 조선사. 어떡하면 죽일까 약자를. 어떡하면 적폐로 만들어 저 가문을 쳐없애서 내가 처먹을까. 참 세상에 이런 더러운 것들도 드문게 아니라, 없어 없어. 이런 조선 사 가 조선 건국이래 7백년을 접어드는건데. 참 슬프지 진짜. 

 

그랑 콩데.와 투렌.은 프롱드에서 루이의 반대편에 선 이들이야. 둘이 친해. 그랑 콩데.가 열살 어리지만, 초울트라 파워들의 사령관들이야. 프롱드 에서 같이 있다가, 투렌 이 킹편으로 돌아서서 둘이 전쟁을 하는거고, 저기서 마드모아젤 은 역시나 그랑콩데 편이야. 태양왕 루이의 반대여. 파리를 그랑 콩데 와 마드모아젤 이 쥐고 있었고, 그 파리를 루이에게 돌려주고 도망가. 조선 같으면 말이지, 구족 십족을 멸하걸랑. 걍 루이가 나중 청년이 되서 용서를 해줘. 얜 꼬마때 저 프롱드로 도망다닌 애걸랑. 그랑 콩데는 스페인 군대를 이끌고 프랑스랑 전쟁을 꾸준히 했던 인간이여. 저런 인간을 받아들여 프랑스 중앙 코트.가. 그 그랑 콩데.가 네덜란드 를 시

네프 에서 대승하고, 1674년 에 베르사이유 궁의 루이의 환대를 받는겨 저게. 

 

조선사 에서는 그야말로 상상을 못하는 그림이 저 그림이야. 

 

프롱드 Fronde 가 1648-53 , 5년간 이라지만, 진짜 프롱드.의 종지부는 저 그림이야. 1674년. 프롱드 라는게 26년 만에 그랑콩데.가 베르사이유 의 태양왕 루이 를 만나면서 끝나는겨. 태양왕 루이가 10세에서 15세까지 프롱드 직접 겪고. 얜 15세면 다 큰거야. 이후 21년 만에, 36세에 그랑콩데 를 렬렬하게 환영해 주는겨. 

 

콩데 영주 부르봉의 루이2세. 그랑 콩데. 이 콩데 는 앙리4세의 작은삼촌 루이.가 시작이야. 백여년 지나서 얘가 루이2세여. 부르봉이 킹 할때부터 콩데는 부르봉의 대명사여 이게. 창업자 콩데 루이.의 증손자.이고. 촌수로 따지면 태양왕 루이 14세.가 삼촌뻘이야. 루이 13세가 9세에 올라서 33년 통치하다가 늦게 낳은게 루이14세걸랑. 

 

마드모아젤 의 아빠 오를레앙의 가스통. 이 인간이 문제가 많은데. 

 

Gaston, Duke of Orléans (24 April 1608 – 2 February 1660), was the third son of King Henry IV of France and his wife Marie de' Medici. As a son of the king, he was born a Fils de France. He later acquired the title Duke of Orléans, by which he was generally known during his adulthood. As the eldest surviving brother of King Louis XIII, he was known at court by the traditional honorific Monsieur.   

 

오를레앙 공작 가스통. 앙리4세의 세번째 아들이야. 루이13세 가 1601년생이고, 일곱살 어린 동생인겨. 태양왕 루이14세가 1638년에 태어나. 얘가 안 태어났으면 가스통.이 킹을 했어. 가스통이 30세 때에 태양왕이 태어나면서 얘가 김이 팍 샌거야. 가스통의 딸 마드모아젤.이 1627년 생이여. 태양왕 루이와 사촌인거고. 11세 많아 마드모아젤.이. 

 

루이13세 동생인 이 가스통.이 형 있을때부터도 권력에 욕심이 있던 인간이야. 엄마 가 쫓겨났고, 리슐리외 가 싫은겨 가스통은. 형도 싫은겨 이건. 저때 프랑스는 라로셸 의 잉글랜드와 위그노 진압하고, 요때 가스통 도 지휘관이었고, 프랑스는 만토바 후계자 전쟁에 개입하면서 알프스도 넘걸랑. 이때  사령관 중에.

 

Henri II de Montmorency (30 April 1595 – 30 October 1632) was a French nobleman and military commander. 

 

몽모랑시.의 앙리2세. 몽모랑시는 파리 위.이고. 가스통이 이사람을 부추겨서 랑그도크 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해. 랑그도크 는 툴루즈 가 있는 상트할마시프 의 해변지역이고. 결국 리슐리외가 보낸 부대에 진압이 돼. 

 

가스통.의 부인 몽펜시에 공작부인이 마드모아젤을 낳고 죽어. 1627년. 얘가 로렌 여자와 비밀 결혼을 해. 로렌은 프랑스랑 적이여. 형 루이13세가 당연히 허락을 안하고. 몰래 결혼을 한겨. 그리고는 반역을 꿈꾸는거야 이래저래. 리슐리외 싫고 형도 싫은겨 얜. 몽모랑시 앙리를 시켰는데, 이때 가스통이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나몰라라 하면서 몽모랑시.는 잡혀서 사형대에 올라. 이게 서기 1632년.이야. 이때 열받은 몽모랑시 가 저 가스통  로렌 여자랑 몰래 결혼했슴둥! 저애가 반란하라 했슴둥!! 

 

형루이 13세가 열받아서, 결혼을 무효화 시키고. 가스통은 도망다니는겨. 그리고 나서 화해 를 해. 루이13세가 1643년에 죽어, 죽으면서 동생 가스통의 로렌여자 결혼도 인정을 해줘. 여기서 애들이 두명인가 낳았걸랑. 딸인가 그래. 얘들도 호적이 생긴겨 루이13세가 허락해줘서. 

 

조선사 같으면 상상을 못하는겨 저건. 저건 칼 들고 직접 뎀빈거걸랑. 을사사화 에서 봉성군 계림군 죽이는겨. 봉성군은 인종 아들이고, 계림군은 성종의 아들이 연산군 과 중종.에  많아. 연산군 다음이 계성군.이고. 이 계성군에 입양된 월산대군 핏줄이 계림군이걸랑. 명종이랑 핏줄이 멀어 이게. 지아들 복성군 도 죽여 중종은. 쥐사건으로. 말도 안되는겨 저런 오컬트 도. 계림군 은 걍 도망다녀 쟨. 그러다 잡혀 죽어. 머 칼이라도 들고 뎀볐으면 말을 안해. 걍 모든게 카더라여 카더라. 지 핏줄은 다 죽여. 저놈이 그랬슈 이놈이 그랫슈 조선팔도가 다 알아유.

 

걍 뒈지는겨 걍. 

 

조선 사 를 보다가 유럽애들 이야길 보면, 야 이건 정말 차원이 달라 이게. 

 

 

Henri Coiffier de Ruzé, Marquis of Cinq-Mars (1620 – 12 September 1642) was a favourite of King Louis XIII of France, who led the last and most nearly successful of many conspiracies against the Cardinal Richelieu, the king's powerful first minister.  

 

앙리 콰이에 드 루지, 셍크마스 후작. 셍크마스 의 아빠가 리슐리외와 절친.이야. 아빠가 죽고 리슐리외.가 얘의 후견인이 되서 적극적으로 키워주고 코트에 자리잡게 해줘. 헌데 얘가 리슐리외를 또 너무 싫어하는겨 젊은애가. 이미 리슐리외 와 뒤의 마자랭은 프랑스 전체의 웬수여 웬수. 그냥 사탄이여. 리슐리외를 암살하려 해. 이때 역시나 가스통 이 끼는거고. 얘가 몽모랑시 사건 지나 딱 십년 된거걸랑. 얘가 막판에 배신을 하고, 생크마스 는 들통나고, 역시나 처형당하는겨. 목짤려. 

 

The French writer, Tallemant, relates that the king showed no emotions concerning the execution: he said "Je voudrais bien voir la grimace qu'il fait à cette heure sur cet échafaud" ('I would like to see the grimace he is now making on this scaffold'). The Marquis of Cinq-Mars' last words were, "Mon Dieu! Qu’est-ce que ce monde".[1]  

 

쟤가 22세때 처형당하는건데, 루이13세가 처형장면을 보는겨. 이 처형대위에서 셍크마스 가 찡그린 표정 짓는 걸 보고싶다. 셍크마스 후작의 마지막 말들, 몽 듀! 케스케세 몬드. 나의 신아! 이 세상은 머냐?

 

저 다음해 루이13세가 죽고. 이때 가스통이 비밀결혼한거 허락해주고. 다섯살 조카 태양왕 루리14세 가 킹이 되고, 마자랭.이 실세가 되는건데.

 

가스통 이가 조카보다 30살 많걸랑. 자기가 킹 할 뻔 했다가 놓친겨 이게. 형 살아있을때도 한번 들키고 한번은 막판에 포기하고. 이게 프롱드 때는 왔다리 갔다리 하는겨 이노마가. 

 

 

After the death of Gaston's brother Louis XIII in 1643, his nephew Philippe, brother of the new king Louis XIV, became the new Monsieur. To differentiate the older Monsieur from the younger, Gaston, the uncle, was called Le Grand Monsieur and Philippe, the nephew, was called Le Petit Monsieur.

After the Fronde, Gaston was exiled by Cardinal Mazarin to Blois in 1652, and remained there until his death. All of his Orléans titles then went to his nephew, now the only Monsieur.  

 

므슈 monsieur 므셔 라는 존칭.이 이 가스통 때 부터 나온거야. 루이13세 있을때 킹의 동생이라고 얘를 므슈.라고 부르기 시작하고. 루이14세가 킹이 되면서 동생 필립이 므슈 가 돼. 사람들이 구분하려고 삼촌 가스통은 큰 므슈 그랑 므슈. 어린 조카는 쁘띠 므슈. 가스통 죽고 그냥 므슈. 

 

그러면서 저 므슈 라는게 중세에 모두 다 쓰는겨 프랑스애들이. 다른 유럽애들도 므슈 므슈 해대고. 데카르트 전기도 데카르트 죽고 바로 나오면서 제목이 므슈 데카르트. 여. 왕족 호칭들을 다들 써 그냥. 가스통이 조선식 대군.이야. 

 

므슈 란게. 마이 시뇨르.야. 나의 님.이여. 

 

여자에게 쓰는게 마드모아젤. 이야. 마 드모아젤.이여. 나의 드모아젤. demoiselle 드모아젤.이란게 도무니수 dominus 지배자.의 여성형의 파생어 불어야. 여자 지배자.여 원래는. 이게 결혼안한 여자 귀족.으로 쓰고. 영어로 damsel 담젤 댐젤 하는겨. maiden 메이든 이란 처녀 여자 나 하녀 는 게르만어고. 

 

이 마드모아젤 이랄것도 가스통의 딸 부터 본격적으로 써대면서 퍼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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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ace of Rueil lasted until the end of 1649. The princes, received at court once more, renewed their intrigues against Mazarin. On 14 January 1650, Cardinal Mazarin, having come to an understanding with Monsieur Gondi and Madame de Chevreuse, suddenly arrested Condé, Conti, and Longueville  

 

프롱드 2차.는 바로 시작해. 1650년. 이전 뤼에이 평화.가 끝나고, 마자랭. 이 뒷조사해서, 프롱드의 배후들이 콩데 세남매들과 슈브르즈 마담.인걸 파악하고 이들을 체포하는겨. 

 

Anne-Geneviève de Bourbon (28 August 1619 – 5 April 1679) was a French princess who is remembered for her beauty and amours, her influence during the civil wars of the Fronde, and her final conversion to Jansenism.  

 

부르봉의 앤-제느비에브. 그랑콩데.의 누나야. Longueville 롱게빌 공작과 결혼하면서 롱게빌 마담.으로 불리고. 막내동생이 콩데의 아르망.이야. 이 세남매가 1차 프롱드의 중심인데. 이중에서 배후는 이 큰누나 롱게빌. 마담이여. 

 

이여자는 동생 그랑 콩데 때문에, 코트에서 어깨에 힘들어 가는겨. 특히나 1643년 로콰 전투.는 이후 전쟁사에서 필수 과목이야. 그랑콩데.가 완벽하게 플랑드르 부대의 데르띠오 를 이긴겨 말도 안되게. 신랑 롱게빌 공작도 신임있는 자이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할때 마자랭이 보낸 외교관 부부역할도 해. 헌데 이여자가 프롱드 의 핵심이 돼. 

 

사랑 때문에. 이 프랑스 여자들의 에로스.가 재밌는건데. 

 

François VI, Duc de La Rochefoucauld, Prince de Marcillac (French: [fʁɑ̃swa d(ə) la ʁɔʃfuko]; 15 September 1613 – 17 March 1680) was a noted French author of maxims and memoirs. It is said[by whom?] that his world-view was clear-eyed and urbane, and that he neither condemned human conduct nor sentimentally celebrated it. Born in Paris on the Rue des Petits Champs, at a time when the royal court was vacillating between aiding the nobility and threatening it, he was considered an exemplar of the accomplished 17th-century nobleman. Until 1650, he bore the title of Prince de Marcillac.  

 

그랑콩데 누나 롱게빌 마담.이 홀딱 반한 남자가, 라로슈푸코.여. 6세 많은 남자인데. 얘도 유부남이고. 막심 과 회상록 의 저자여. 이 프랑스 애들은 특히나 기사도에 미친 애들이고, 멋져 보이고 싶고, 전쟁나서 영웅되고 싶고, 코트의 유명인사가 되고 싶은 애들이야 그 바닥이. 여자들도 마찬가지여 이게. 이 대표적 여자가 이때 여자들이고, 마드모아젤 도 이런 여자야. 아주 골때리 이 사람들. 저 당시 남녀를 적나라 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프롱드 여. 

 

마르시아크.의 프린스 지만 이건 걍 이름뿐인 명함이고. 얜 그냥 이름없는 귀족이 부단이 노력해서 코트에 얼굴 내밀고 픈 인간이여. 그러다가 저 롱게빌 마담.이 반한겨. 이 라로슈푸코 가 롱게빌.을 이용해서 코트에 이름을 알리게 되고.  따로 여기서 먼저 스폰을 얻었어.

 

Marie de Rohan (Marie Aimée; December 1600 – 12 August 1679) was a French courtier and political activist, famed for being the center of many of the intrigues of the first half of the 17th century in France. In various sources, she is often known simply as Madame de Chevreuse.

 

슈브르즈 마담. 마리 드 로한. 마리 애미. 애이미 애미 는 사랑스러운 여자.이고. 슈브르즈 공작 부인.인데. 첫 신랑이 Luynes 륀 공작이고 프랑스 로얄코트의 그랜드 콘스타블. 마굿간지기여. 최고의 로얄 하우스의 사령관이야. 후광이 졸 쎄. 륀 공작이 죽고 재혼해서 슈브르즈 마담이 된건데. 이 슈브르즈 마담.은 레이디 코트.의 집사여. 레이디 코트의 권력을 마음껏 누리다가, 루이13세의 부인 오스트리아의 앤.이 여전히 아들을 못낳은겨. 1638년에야 낳걸랑. 이전에 임신을 했는데, 슈브르즈 마담이 신나게 게임하며 놀다가 퀸 이 유산을 한거야. 이때부터 완전히 레이디 코트에서 버림받으면서, 반역자 놀이에만 가담하는겨. 이여자가 또한 모든 음모놀이의 핵심이 돼 이때부터. 

 

라로슈푸코.가 이 아줌마의 스폰을 받으면서 코트에 등장하고, 여기서 알게 된게 롱게빌 마담.이야. 롱게빌 마담은 그랑콩데의 누나고. 라로슈코프 는 뭔가 를 해서 자리 하나 얻고 싶은 욕망이 부글부글 한겨. 

 

프롱드 의 핵심은 롱게빌 마담이여. 이게 웃긴겨. 이여자가 자기 동생들과 신랑을 꼬시는거야. 이거 마자랭 문제많다 함시롱. 막내 아르망 은 넘어왔어. 신랑 롱게빌 도 넘어왔어. 헌데 그랑콩데 는 안넘어와. 이 상태에서 터진게 파리 파를레망 프롱드.야. 이게 평화롭게 끝난거야. 그리고 나서 마자랭 이 뒷조사를 한거고 저 삼남매를 잡아들인거걸랑. 

 

 

바닥 민심은 원래 안좋은거고, 슬링 이라는 프롱드는 민들이 하는겨. 중요한건 귀족들이 일어나는거야. 유럽의 민란이든 반란이든, 귀족이 하는겨 귀족이. 이게 또한 조선사 와 전혀 달라. 조선사 에서 민란을 거들어 주는 귀족, 들어봤니?

 

어머 일본 에도 민란 삼천여건은요, 귀족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걍 해결하는 민란이예요 그건 민란이 아니예요 위대한 조선 민란과 비교해보면요. 

 

얼마나 한심한지 말야. 

 

정말 조선 귀족들은 저건. 헌데 저딴 짓도 저렇게 서민들 위하는 마냥 포장질을 해 이 조선사를 위대하다며 포장질하는 역사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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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e power vacuum following Richelieu's death in 1642, La Rochefoucauld among others took an active role in urging the queen and Condé to act together against Gaston, Duke of Orléans. However, the growing reputation of Mazarin impeded the ambition of the plotters, and La Rochefoucauld's 1645 liaison with Duchess of Longueville made him irrevocably a frondeur (aristocratic rebel)  

 

리슐리외가 1642년에 죽고 다음해 루이13세 죽는데. 이때 라로슈푸코.가 저 가스통 이 반란한다며 부추기걸랑. 얜 역적놀이 하면서 권력을 잡고싶은 인간이야. 조선에 태어났으면 부귀영화를 누렸을 놈인데. 그리고 롱게빌 마담이 얘를 보고 빠진겨. 이게 1645년 이고. 프롱데어. 프롱드 들이 된건데. 

 

이게 애매한겨. 롱게빌 마담이 라로슈푸코 를 끌어들인거냐. 저기선 머스마가 엮인듯이 썼는데.

 

그랑 콩데 누나인 롱게빌 마담도 그렇고, 슈브르즈 마담도 그렇고, 레이디 코트 에서 가장 가깝게 코트 이야길 들으면서 뒷담화 하면서 리슐리외 마자랭 욕을 할 수도 있어. 개인적 자각으로. 헌데 아니라고 봐. 슈브르즈 는 퀸 유산 시켜서 팽 당한게 기분 나쁜거고, 롱게빌 은 말이지, 자기 동생이 위대한 전사여. 자기 동생 꼬드겨서 반란 할 마음이 앞설거냐고. 안 그래도 코트에서 가장 힘이 쎈데 남동생과 신랑의 빽으로. 자기는 부르봉 핏줄이고. 

 

이여자가 저 라로슈푸코 를 출세를 시켜주고 픈겨 이게. 라로슈푸코 가 그랑콩데 와 친하고 픈데, 저거 머여, 하는겨 그랑콩데는. 이 마음 바닥에서 저 여자가 프롱드 를 주도해. 자기 막내동생이랑 신랑을 꼬시고. 그러면서 파를레망 도 반기를 드는거야. 그러다가 이게 흐지부지 된거야. 

 

롱게빌 마담 이랑, 슈브르즈 마담 은 너무 슬펐어. 전쟁이 안 나서. 그와중에 체포가 돼. 

 

 

그랑 콩데.는 기분이 너무 나쁜겨. 단지 누나 와 동생 때문에 체포가 된거야. 그러면서 어떻게 나한테 이럴수 있나. 더하여 우리 콩데 들에게 어떻게 이러나. 

 

더 열받은게 투렌이야. 

 

Henri de La Tour d'Auvergne, vicomte de Turenne (11 September 1611 – 27 July 1675)  

 

투렌.은 그랑 콩데.보다 열살 많은, 30년전쟁 속에서 완전히 그랑콩데와 같이 후반에 전장에서 죽음을 같이하면서 승리를 거머쥔 친구걸랑. 어떻게 저 조카 같은 그랑콩데 를  잡아가는겨 이거. 

 

이 투렌.은 위그노.여. La Tour d'Auvergne 라투르 도베르뉴 가문.이야. 오베르뉴.의 투르 라는 곳.이고. 투렌.은 오베르뉴의 왼쪽 서남이야 여기의 비콩크. 자작이고. 아빠가 부용 공작이야. Bouillon 이 부용.이 부용의 곳프리 십자군때, 플랑드르 가문의 부용꺼였고, 아르덴 지역에 프랑스 접경지역이야. 이 부용 이란 곳도, 1789년 때나 프랑스께 되는겨. 이탈리아 전쟁때 앙리2세가 갖고 오지만, 원적지는 신성로마야. 여긴 프랑스가 아녀. 바로 독립하고, 형제들은 부용쪽 받는거고, 이사람은 80년 전쟁 때 네덜란드 가서 네덜란드편에서 싸운겨. 

 

At the age of fourteen he went to learn war, as he and his mother were devout Calvinists and were suspicious of Cardinal Richelieu, in the camp of his uncle, Maurice of Nassau the Stadtholder of Holland and Prince of Orange[6] He began his military career as a private soldier[6][7][8] in Maurice's bodyguard during the Eighty Years' War.[6][9]  

 

아빠가 주고, 14세인 1625년에 전쟁술을 배우고,  칼뱅이야. 리슐리외 싫어해. 십대일때 모리스 밑에서 모리스의 군사학을 익히고, 모리스 근위대 생활을 한겨. 모리스 가 바로 죽고 모리스 동생 프레데릭 헨리 밑에서 있다가 프랑스 코트로 와. 

 

In 1630 Turenne left the Netherlands and entered the service of France, motivated both by the prospect of military advancement[4][6] but also because of his mother's desire to display loyalty to the French crown.  

 

1630년.에 프랑스로 가. 엄마 때문에. 이 정체성이 애매한겨 이들은. 진짜 웃겨 저런게. 조선사 중국사 로는 저런걸 이해를 못해. 쟤들은 저런게 차원이 달라. 파릇파릇 15세에서 20세 까지 모리스 한테 짧게, 그리고 동생 프레데릭 헨리.옆에서 군사기술 을 몸으로 직접 본겨 근위대 생활 하면서. 

 

Cardinal Richelieu immediately made him colonel of an infantry regiment.[8] He still continued to serve at short intervals with the prince of Orange, who at the time had an alliance with France.[2][13]  

 

리슐리외 도 웃긴 인간이야. 카톨릭 추기경이. 20세 안 된 애한테, 보병의 커널. 중대 혹 대대장을 맡긴겨 저건. 쟨 독실한 칼뱅이야. 쟤한테 몰래 프랑스 병력 줘서 몰래 네덜란드를 거들라는겨 이게. 

 

이 투렌.은 아주 전쟁속에서 산 인간이야. 저 20세 부터 본격적으로. 특히 라인강 너머 신성로마제국땅에서 전투를 한거고.

 

Enghien took part with distinction in the siege of Arras.[2] He also won Richelieu's favor when he was present with the Cardinal during the plot of Cinq Mars, and afterwards fought in the Siege of Perpignan (1642)

 

그랑 콩데.를 엥이엥. 엉걍 공작 이라 하걸랑. 여긴 벨기에 땅이고. 이인간은 아라스 전투부터 눈에 띈건데. 얜 1621년 생이야. 저 아라스 전투가 처음으로 플랑드르 군대를 이겨본 전투야. 이때 갓 19세여. 아라스 전투가 1640년 이야. 레스아베 전투 1635년 이후 5년만에 프랑스가 이긴거걸랑. 로콰 전투.가 1643년 이야. 그랑 콩데.가 이때 프랑스 필드 마샬이야. 얘가 22세때여 이게. 

 

내가 지금까지 본 전쟁사 인간들 중에서, 이런 인간은 정말 듣보잡인데 이거. 

 

Condé's father saw to it that his son received a thorough education – Louis studied historylaw, and mathematics during six years at the Jesuits' school at Bourges.[2] After that he entered the Royal Academy at Paris. At seventeen, in the absence of his father, he governed Burgundy

 

콩데 의 아빠가 교육을 철저히 시켰네. 역사 법 수학.을 제수이트 학교. 부르즈 프랑스에서. 6년 공부하고, 파리의 로얄 아카데미에 가서 또 공부시키고. 17세에 부르고뉴를 다스리다. 이들 교육이 저게 아마 대여섯살 에 입한한걸꺼야  얘들 개인 커리어 보면 다 저래. 

 

완전히 수업으로 군사기술을 체득하고 인문학을 체득한거고, 학교에서 배운걸로 전쟁에서 바로 써먹은겨. 

 

플랑드르 군대를 원래 저건 이길수가 없는겨. 돈의 규모로 볼때. 저건 완전히, 머리 로 이긴겨. 이건 고차원의 사유의 문명으로 이긴겨 재들을.

 

이 그랑콩데 는 엄청난 인간이다 진짜. 

 

투렌 은 신성로마땅에서 전쟁하던 인간이고, 그랑콩데 는 플랑드르 에서 플랑드르 군대와 스페인 접경의 스페인 애들과 싸운 인간이고, 전장터가 다르지만, 프랑스에서 두 핵심이야. 이 둘이 전쟁사 에서 최고로 치는 두 인간이고. 태양왕 루이긔 40대 이전은 이 두 인간이 만든 승리여. 

 

This time it was Turenne, before and afterwards the most loyal soldier of his day, who headed the armed rebellion. Listening to the promptings of Madame de Longueville, he resolved to rescue her brothers, particularly Condé, his old comrade in the battles of Freiburg and Nördlingen

 

투렌 이 그랑콩데 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거야. 말도 안되는겨 이건. 전장들 돌아다니면서 같이 한 전쟁이 그랑콩데랑 프라이부르크, 뇌르틀링엔 이야. 플랑드르 이기고 그랑콩데가 저길 같이 간거야. 뇌르틀링엔 은 이전 의 전투와 다른 거고, 하나는 비기고 하나는 이겨. 

 

투렌.이 스페인에게 오히려 지원 요청을 하고, 전쟁을 하는겨, 저 콩데들 석방하라고. 

 

마자랭은, 잘못 생각한거야. 투렌을 어찌 이기고, 민심도 반 마자랭 이걸랑. 반 로얄 이야. 풀어줄 수 밖에 없어.

 

그리곤, 투렌 은 마자랭의 킹편으로 돌아서면서, 둘이 적이 되는겨. 

 

그랑콩데.는 기분이 조오오오올라게 나쁠 수 밖에 없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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