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ex librorum prohibitorum ("List of Prohibited Books") was a list of publications deemed heretical or contrary to morality by the Sacred Congregation of the Index (a former Dicastery of the Roman Curia), and Catholics were forbidden to read them without permission.[1]

 

인덱스 리브로룸 프로히비토룸. 금지된 책들의 목록. 로마교황정.의 세이크리드 콩그리게이션. 신성한 모임. 로마교황정의 간부급 회의체.야. 서기 1542년.에 교황 파울루스 3세.가 세운 심의회야. 여전히 이탈리안 전쟁이고, 1517년 루터 대자보에 1527년 루터 용병들로 로마약탈 당하고, 그 다음 교황이여. 알프스 넘어는 루터파가 득세하고 기사들의 전쟁에 농민전쟁 터지고 로마는 약탈당하고, 생긴 심의회.야. 

 

여기서 만든 금지 목록 이야. 

 

There were attempts to censor individual books before the sixteenth century, notably the ninth-century Decretum Glasianum, but none of these were either official or widespread.[2] In 1559, Pope Paul IV promulgated the Pauline Index, which Paul F. Grendler believed marked "the turning-point for the freedom of enquiry in the Catholic world". After less than a year, it was replaced by the Tridentine Index which relaxed aspects of the Pauline Index that had been criticized and had prevented its acceptance.[1] The 20th and final edition appeared in 1948, and the Index was formally abolished on 14 June 1966 by Pope Paul VI.  

 

교황 파울루스4세.때인 서기 1559년 에 나온겨. 이때가 이탈리안 전쟁 이 끝나는 해야. 이해에 저교황도 죽어. 

 

서기 1559년에 처음 나온겨 금서 목록이란게. 이건 중세도 아니고, 근대여 얘들 16세기는. 

 

9세기에 데크레툼 글라시아눔. 이 있었는데. 저건 잘못된 설명이고. 글라시아눔.이 아니고 Gelasianum 5세기 목록이야. 교황도 아니고 저때는, 로마주교인 겔라시우스1세.가 아포크리파. 정경이 아닌 외경 이니 위경이라며 거부된 성경들이야. 즉 저때까지는 공식적이거나 넓게 퍼진 금서 목록 이란 없어.

 

이 중세유럽에는. 금서 라는게 없어. 아리스토텔레스 를 적극적으로 읽는 애들이야 얘들이. 비판을 하면 했지. 대체 왜 못읽게 하냐는겨. 이건 말이 안돼. 금서란건. 

 

서기 1559년의 저 교황 파울루스 4세의 저 금서 리스트는 쇼킹한겨. 카톨릭 세계 에서 조차. 

 

너무 자잘자잘 맣아서, 1년이 지나서 느슨하게 개편이 돼 목록이. 너무하다 이거야. 저게 계속 개정되어서 1948년 까지 나와. 서기 1966년에야 폐기가 돼. 

 

케플러. 데카르트.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도 저 목록에 들어가고. 

 

Raymond of Sabunde's Liber Naturae Sive Creaturarum, Etc. (or Theologia Naturalis), written 1434–1436, marks an important stage in the history of natural theology.  

 

사분다 의 레이몬드.가 쓴 내추럴한 신학. 15세기 책이야. 

 

Natural theology, once also termed physico-theology, is a type of theology that provides arguments for the existence of God based on reason and ordinary experience of nature.  

 

네추럴 띠올로지. 신의 존재를 이성과 네이쳐에 대한 경험들에 기초를 두고 존재증명하는 책이야. 몽테뉴 가 이걸 번역도 해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나서 금서가 돼. 몽테뉴가 1592년에 죽어. 죽고나서 금서가 되는겨. 몽테뉴는 금서의 시대를 안 겪은겨. 

 

저 1559년의 교황 파울루스 4세.가 저때 저 이전해에 잉글랜드 엘리자벳1세.가 취임하는겨. 이때 잉글랜드는 다시 앵글리칸 이라는 프로테스탄트 로 돌아가는거고. 이에 대한 로마교황정의 강력한 반발이 금서목록을 만들게 돼. 

 

의미가 없어 이제. 저런짓은. 

 

이탈리안 전쟁 의 끝 과 함께 1559년 로마교황정 이름으로 금서목록이 나오지만, 이미 로마카톨릭을 대변하는 신성로마제국은 절반이 프로테스탄트고. 이런 신성로마제국도 30년 전쟁으로 이름만 남고 힘이 없어. 끽해야 프랑스와 스페인땅에서만 득세하는 로마카톨릭인거고. 걍 다들 읽게 돼. 

 

결국 금서 라는건. 자기 시대를 종언 하는 발악인거야. 자기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게 남을 적폐라며 남의 이야기는 금기 시키는거야. 

 

Giordano Bruno (/dʒɔːrˈdɑːnoʊ ˈbruːnoʊ/, Italian: [dʒorˈdaːno ˈbruːno]LatinIordanus Brunus Nolanus; born Filippo Bruno, 1548 – 17 February 1600) was an Italian Dominican friar, philosopher, mathematician, poet, cosmological theorist, and Hermetic occultist.[3][4] He is known for his cosmological theories, which conceptually extended the then-novel Copernican model. He proposed that the stars were distant suns surrounded by their own planets, and he raised the possibility that these planets might foster life of their own, a philosophical position known as cosmic pluralism. He also insisted that the universe is infinite and could have no "centre".  

 

조르다노 브루노. 서기 1600년.에 나이 52세. 도미니칸 수도사야. 철학자 수학자 시인 우주학자에 헤르메틱 오컬리스트.

 

코페르니쿠스 의 코멘터리.가 1514년에 나와. 지구가 중심이 아니라 태양이 중심이야. 이십년 지나서 유럽인들이 다 알게돼. 로마교황정에 추기경과 교황을 앉혀놓고 저걸로 강의를 하고, 추기경이 코페르니쿠스에게 당신 대단하다 관련된 이야기 더 해달라.가 서기 1533년 이여. 코페르니쿠스는 저이후 1543년에 죽어. 

 

막 저런 이야기 해도 되는 시대가 중세 유럽이여 한편으론. 교황이나 추기경이 흥미로와 해. 저러다가 프로테스탄트와 정의놀이 하면서 갈릴레오 는 말을 못하게 된거야. 이것도 카톨릭 진영에서 보호해준겨. 당신 집에만 가만히 있으라고. 갈릴레오는 로마카톨릭이 카운터 리포메이션 하면서 직접 키운 과학자야. 

 

헌데. 그 이전에 조르다노 브루노.는 화형시켜 죽여. 로마 광장에서. 이사람도 코페르니쿠스 의 지동설 이야길 해. 헌데 이것때문에 화형당한게 아냐. 카톨릭 중심 교리들을 대부분 부정해. 

 

Starting in 1593, Bruno was tried for heresy by the Roman Inquisition on charges of denial of several core Catholic doctrines, including eternal damnation, the Trinity, the divinity of Christ, the virginity of Mary, and transubstantiation.  

 

프랑스와 잉글랜드를 돌아다니면서, 전혀 다른 이야길 듣보게 되걸랑. 특히 저당시 프랑스는 이게 전혀 달라. 얘들이 이탈리안 전쟁을 65년 하면서 완전히 유럽의 선진국이 되는겨 이게. 이탈리아의 것을 알프스 넘나들면서 갖고오면서 완전히 업그레이드가 된게 프랑스야. 여긴 아주 17세기 지나면서 지식인들이 귀족들이 차원이 달라. 프랑스의 멋 이란건, 프랑스인의 온갖 자유로움 자만 멋 풍기는 이야긴 이 17세기 에서야 나오는겨. 

 

그리곤. 원죄. 삼위일체. 지저스의 정체성. 성모마리아의 처녀성. 유카리스트의 실체변화론.을 다 부정하면서. 화형을 당해. 서기 1600년에. 지구가 태양 을 돈다 는 기본이고, 우주 다원설이야. 우주는 무한하고, 태양같은 항성들도 무한개고, 어디에도 분명 태양같은 항성 주위에 행성들이 있을꺼고 지구같은 행성도 있을꺼야. 이건 지금 외계인존재론 이야. 고등문명의 외계인이 어딘가있을꺼라는. 증명이 되면  지구는 망하는겨 이 이론은. 

 

On the 400th anniversary of Bruno's death, in 2000, Cardinal Angelo Sodano declared Bruno's death to be a "sad episode" but, despite his regret, he defended Bruno's prosecutors, maintaining that the Inquisitors "had the desire to serve freedom and promote the common good and did everything possible to save his life".[63] In the same year, Pope John Paul II made a general apology for "the use of violence that some have committed in the service of truth". 

 

브루노가 화형당한 후 400년 되는 서기 2000년에, 추기경이 브루노의 죽음은 슬픈 에피소드 라며 유감을 표했지만 기소자들도 변호를 하는 말도 하고. 같은해에 성 바오로2세.가 일반적인 어투의 유감을 표해. 그 화형당한 광장에 동상이 세워져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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