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 of Ockham (/ˈɒkəm/; also Occam, from LatinGulielmus Occamus;[9][10] c. 1287 – 1347) was an English Franciscan friarscholastic philosopher, and theologian, who is believed to have been born in Ockham, a small village in Surrey.[11] He is considered to be one of the major figures of medieval thought and was at the centre of the major intellectual and political controversies of the 14th century. He is commonly known for Occam's razor, the methodological principle that bears his name, and also produced significant works on logicphysics, and theology. In the Church of England, his day of commemoration is 10 April.  

 

오컴의 윌리엄. 굴리엘무스 옥카무스. 스코투스 보다 21세 어려. 똑같은 프란시스칸. 옥스포드 유니버시티. 오컴 이란 땅이 런던 아래고. 이사람에겐 지쩍 인간 과 함께 정치적 논쟁 당사자걸랑. 오캄의 면도날 로 알려지고. 논리, 물리학 신학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 

 

이 오컴.이 유명론의 시작이야 중세에. 관념론의 시작이고. 관념론의 먼저는 아벨라르 였고. 여기서 논리학이 더 들어가서 오컴이 만든 논리기법이 지금 SQL 에스큐엘 디비 원리의 기본개념으로 쓰이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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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of Baskerville (ItalianGuglielmo da Baskerville) is a fictional Franciscan friar from the 1980 historical mystery novel The Name of the Rose (Il nome della rosa) by Umberto Eco.  

 

움베르토 에코.의 주인공 캐릭이 바스커빌.의 윌리엄 인데. 코난도일의 셜록에 바스커빌 가문의 개.의 바스커빌 갖고 오고, 셜록 캐릭터를 갖고 오고, 윌리엄은 오컴의 윌리엄 을 갖고 와.

 

장미의 이름.은 오컴의 윌리엄 시대의 이야기야. 정확하게 오컴 의 당시 상황 을 서술한 이야기가 장미의 이름 시대야. 이건 20세기 에 쓰여진 최고 책들 탑백에 넣어야 하고, 에코의 다른 소설책들도 다 탑백에 넣어야 해. 푸코의 진자.에 프라하의 묘지. 전날의 섬. 바우돌리노.

 

저당시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섰던 오캄 의 이야기 시대.가 장미의 이름이야. 이게 단지 머 살인사건 추리소설로 재미느끼란게 아니라, 저걸 통해서 저시대 교황과 세속황제의 대립과 당시 이단의 절정 이걸렁 13세기 넘어서는 시대가. 그 중심에 있던 인물 오컴 을 갖고 온겨. 셜록 캐릭을 더해서. 

 

내 이야길 주욱 본 이들은,  재밌고 아주 쉽게 저걸 볼 수가 있을껴. 바우돌리노 는 성배에 십자군 4차 이야기인듯 한데 아 저거 졸 봐야하는데, 여건이 안되네 이거. 니덜은 꼭 보도록 해.

 

Peter Lombard (also Peter the Lombard,[6][7] Pierre Lombard or Petrus Lombardus;[8] c. 1096, Novara[7][9][10] – 21/22 July 1160, Paris),[7][9][10] was a scholastic theologianBishop of Paris, and author of Four Books of Sentences, which became the standard textbook of theology, for which he earned the accolade Magister Sententiarum.  

 

피에트로 롬바르도. 피터 롬바르드. 롬바르디아땅의 피터.인데. 토마스 랑 로저 베이컨 보다 앞세대야. 1096년생. 파리 주교였고. 스콜라 닉이 마기스터 센텐티아룸. 이사람 책이 센턴스들 의 네권. 

 

The Four Books of Sentences (Libri Quattuor Sententiarum) is a book of theology written by Peter Lombard in the 12th century. It is a systematic compilation of theology, written around 1150; it derives its name from the sententiae or authoritative statements on biblical passages that it gathered together.  

 

리브리 쿠아투오르 센텐티아룸. 센턴스 라는 판결문에 문장 어쩌구는. 센티엔스.가 느낌 이고 감지된 생각.이야. 글이 이건 강렬한겨. 그래서 판결문 할때 쓰는 단어가 돼. 저때 피터 롬바르드.의 센턴스들은 강렬한 느낌의 경구들이야. 그리스도 이야기의 성서에서 축약된 경구들 교훈들 을 벨췌한 책들이고 설명을 단 거야.

 

이게 교재가 된거야 당시 수도사들, 유니버시티 학생들의. 볼로냐 1088 이지만 이미 베네딕트 수도원에 오거스틴 수도원도 저걸 배워 익히는거고. 중세대학 교육과정을 수도원에서 다들 받는겨 끼리끼리. 이걸 보고 자기들 생각을 또 책으로들 내는거고, 돌려 보는거고. 

 

할때 저 책은 15세기까지 전공필수 야. 신학하는 이들에겐.

 

the book was widely adopted as a theological textbook in the high and late Middle Ages (the 13th, 14th, and 15th centuries). A commentary on the Sentences was required of every master of theology, and was part of the examination system. At the end of lectures on Lombard's work, a student could apply for bachelor status within the theology faculty.  

 

하이미들과 레이트 미들까지 교과서로 넓게 채택되다. 저것에 대한 의견 제출은 모든 신학 수료자에게 필수였고 시험과목이었다. 이걸 수료해야 마스터 를 받고 다음 신학의 배철러 과정에 입학할 수 있었다.

 

오컴이 정치적으로 문제가 된건, 수도사로 배우면서 저때 제출한 피터의 센턴스 에 대한 자기 의견.이 반신학적이라며 호출당한겨 학주한테. 교황에게. 아 참 얘들 졸 피곤하게 사는데 증말. 

 

During the Middle Ages, theologian Peter Lombard's Sentences (1150) had become a standard work of theology, and many ambitious theological scholars wrote commentaries on it.[17] William of Ockham was among these scholarly commentators. However, William's commentary was not well received by his colleagues,[citation needed] or by the Church authorities. In 1324, his commentary was condemned as unorthodox by a synod of bishops,[citation needed] and he was ordered to Avignon, France, to defend himself before a papal court  

 

1287년생 오컴.이 1324년. 37세에 주교들의 모임에서 자기의 답안지가 문제낙인 찍히고. 즉 저때 마스터 과정 의 마지막 시험 코스의 답안지를 낸겨. 이게 수도원장.에서 주교 에서 주교들 모임까지 간거야. 옥스포드 여 지금. 이걸 아비뇽 교황도 알게 되고, 바다 건너 아비뇽 으로 오라는겨 와서 니 의견 말하라고. 

 

Edward II (25 April 1284 – 21 September 1327), also called Edward of Carnarvon, was King of England from 1307 until he was deposed in January 1327.  

 

Charles IV[note 1] (18/19 June 1294 – 1 February 1328), called the Fair (le Bel) in France and the Bald (el Calvo) in Navarre, was last king of the direct line of the House of CapetKing of France and King of Navarre (as Charles I) from 1322 to 1328.

 

Louis IV (GermanLudwig; 1 April 1282 – 11 October 1347), called the Bavarian, of the house of Wittelsbach, was King of the Romans from 1314, King of Italy from 1327, and Holy Roman Emperor from 1328.

 

Pope John XXII (LatinIoannes XXII; 1244[1] – 4 December 1334), born Jacques Duèze (or d'Euse), was Pope from 7 August 1316 to his death in 1334.  

 

1324년. 에 아비뇽으로 호출을 당해. 장미의 이름이 1327년 이야. 오컴이 아비뇽에 갔다가 탈출해서 바바리아로 가서 황제 보호하에 수도원 살인사건에 파견나간거야 장미의 이름이. 오컴은 당시 바바리아 루트비히 4세 황제 바바리아 더치에서 20년 더 살다가 뮌헨땅에서 죽는겨. 

 

당시 잉글랜드는 에드워드2세.고 프랑스는 필립4세 가 아비뇽 교황정 시작한 클레멘스 5세 랑 1314년에 같이 죽어. 템플기사단장의 저주가 시작이 된겨. 그리곤 세자식 줄줄이 킹 하는거야. 루이10세. 애기 장1세. 필립5세 죽고 카페 마지막 샤를 4세 때야. 이 다음 발루아 시작 필립6세 로 백년전쟁 시작하는거고. 이 샤를4세의 여동생이 암늑대 이사벨라.이고 이 이사벨라의 남편이 잉글랜드 에드워드 2세.야. 이 에드워드 2세.가 어릴때 왕자 코트의 가베스톤.이 문제였고 얠 배런들이 죽이고, 다른 집사가 데스펜서.인데 똑같이 문제가 돼. 정을 주고. 얘가 동성애 끼가 있는지. 이사벨라 가 보다 못해서 꼬마 에드워드 3세.를 데리고 프랑스로 갔다가 병력 갖고 와서 남편 에드워드2세.를 쫓아내고 에드워드3세.를 올리고 섭정하다가 이여자 애인이 로저 모티머.이고, 에드워드3세가 커서 저 모티머 를 죽이고 백년전쟁을 하는건데. 

 

잉글랜드 내부상황도 에드워드 2세.가 자기 아들 데려간 마눌이랑 막 내전하기 직전이고, 1324년이. 데스펜서 때문에 정치판이 개판이 되었고, 프랑스는 줄줄이 죽고 마지막 샤를 4세고 잉글랜드가 쳐들어오고 여동생이 아들델꼬 오고. 

 

신성로마황제는 바바리아 공작 비텔스바흐의 루드비히4세 인데, 대관식을 못한겨. 십년이 지났는데. 이전 룩셈부르크의 하인리히7세가 죽었어. 필립4세의 꼬붕이걸랑. 먼저 죽어. 다음에 필립죽고 교황죽고. 교황 공백기.에  루트비히4세.가 게르만의 킹이 되서 아헨 가서 게르만 킹의 대관식을 해. 그리고 10년동안 황제 대관식을 못하는겨 1324년 현재. 

 

열받는겨 니 왜 감히 니멋대로 게르만 킹을 하고 킹 대관식을 하는거냐며, 이게 교황자리를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너는 게르만의 킹이 아니고, 황제 대관식 못해줘. 하면서 이사람이 밀은 게르만 킹이 합스부르크야. 세속에 게르만 킹이 두명인겨. 요한 22세 때에. 저때 프란시스칸에서 나온 프라티첼리.가 이전에 이단선고 받은 상태에서 계속 아비뇽 교황을 비난하는거고.

 

교황이 아비뇽에 드가서 황제진영의 세속권력을 휘두르는거야. 프란시스칸 의 교황파는 교황지지하고 다른 프란시스칸들은 교황의 세속권에 강하게 이의제기하는거고, 이때 교황의 세속권에 강한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 오컴 이야. 루트비히 4세 의 보호속에서. 

 

Michael of Cesena (Michele di Cesena or Michele Fuschi) (c. 1270 – 29 November 1342) was an Italian Franciscan, minister-general of that Order, and theologian. His advocacy of Evangelical poverty brought him into conflict with Pope John XXII.  

 

이때 오컴의 편을 든 프란시스칸 수도원장이 체제나.의 미켈레.야. 이 미켈레.도 아비뇽에 가서 자기변론하고, 나중에 파문당해서 역시 뮌헨에서 죽어. 장미의 이름에도 서술되는거고. 미켈레 가 죽고 이쪽 진영의 대표가 오컴이 되는겨. 

 

Venerabilis Inceptor, or "Venerable Beginner" (an inceptor was a student formally admitted to the ranks of teachers by the university authorities) 

 

오컴.은 스콜라 닉.이 베너라빌리스 인켑토르. 덕망있는 초보자.여. 즉 이사람은, 마지막 시험지.가 퇴짜 당한거고. 마스터 를 못받은겨. 학생이야. 가르칠 자격이 되는데 교수가 아닌 학생.이 인켑토르.야.

 

William of Ockham is also increasingly being recognized as an important contributor to the development of Western constitutional ideas, especially those of government with limited responsibility.[33] He was one of the first medieval authors to advocate a form of church/state separation,[33] and was important for the early development of the notion of property rights. His political ideas are regarded as "natural" or "secular", holding for a secular absolutism.[33] The views on monarchical accountability espoused in his Dialogus (written between 1332 and 1347)[34] greatly influenced the Conciliar movement and assisted in the emergence of liberal democratic ideologies.  

 

오컴.이 저때 나온, 파도바의 마르실리오.가 쓴 평화의 수호.가 정치학의 시작이걸랑. 마르실리오 1275년생이고 오컴보다 12년 빠르고. 미켈레보다 후배고. 마르실리오 와 함께, 요한22세랑 논쟁하면서, 교회의 세속권에 대한 강한 문제제기를 하는거고, 이게 중세 정치학의 시작이 된겨. 이후 서양의 콘스티튜셔널. 같이 참여하는 법체계의 이슈를 만든겨 이들이. 교회와 세속의 분리를 강력하게 주장한 첫 주자의 한사람. 마르실리오 와 오컴 이야. 더하여 재산권 에 대한 개념이 이때 본격적으로 시작한겨. 재산권이란게 어떤거고, 교회는 재산권을 갖아야 하느냐 소유하여야 하느냐 사용만 하는거냐. 재산권. 소유권. 사용권. 에 대한 논쟁을 시작하면서 이게 법사상에 스미는거야. 

 

신권과 세속권의 분리.는 30만년 만에 인류가 처음 겪는 사건이야 이건. 유럽애들이 유일하게 한겨. 반복되는 역사속에서. 저때 나온거야. 하이미디벌이 끝나고 나서. 체제나의 미켈레. 파도바의 마르실리오. 오컴의 윌리엄. 

 

저 셋.이 유럽을 만든거야. 지금 문명을 만들고. 

 

William argued for complete separation of spiritual rule and earthly rule.[35] He thought that the pope and churchmen have no right or grounds at all for secular rule like having property, citing 2 Tim. 2:4. That belongs solely to earthly rulers, who may also accuse the pope of crimes, if need be.[36]

After the Fall God had given men, including non-Christians, two powers: private ownership and the right to set their rulers, who should serve the interest of the people, not some special interests. Thus he preceded Thomas Hobbes in formulating social contract theory along with earlier scholars.  

 

윌리엄은 교회의 영적 지배와 땅 세속의 지배를 완벽하게 분리하라고 주장했다. 교황과 성직자들은 세속의 지배, 재산을 갖는 것 등.에 대한 어떤 권리나 근거도, 없다. 재산 소유는 오직 세속 지배자들의 것이다. 그들은 교황을 기소할 수도 있어야 한다 교황이 범죄를 지었다면.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나고 신은 인간들에게, 비그리스도포함, 두가지 권력을 주었다. 사적 소유권과 그들의 지배자들을 세울 권리. 그 세속 지배자들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거지 다른 특별한 이익을 위함이 없어야 한다. 토마스 홉스의 사회계약설 이론을 오컴은 먼저 말한다. 

 

William of Ockham said that the Franciscans avoided both private and common ownership by using commodities, including food and clothes, without any rights, with mere usus facti, the ownership still belonging to the donor of the item or to the pope. Their opponents such as pope John XXII wrote that use without any ownership cannot be justified: "It is impossible that an external deed could be just if the person has no right to do it."  

 

오컴의 윌리엄은 말했다. 프란시스칸들은 사적 소유권과 공통의 소유권을 버렸다 외면했다, 음식과 옷들을 포함한 상품들을 쓸때는. 어떤 권리도 없다. 단지 우수스 팍티. 만들어진것의 사용.만 갖고 있을 뿐. 그 사용에 관련한 소유권은 여전히 그 물건의 기부자, 즉 교황에게 속하지만. 교황 22세 는 반론을 한다, 소유권 없는 어떠한 사용도 정당화 될 수 없는거 아니냐? 사람이 그걸 할 권리가 없는데 그런 먹고자고의 행위들이 정당화된다는건 불가능 하다. 

 

오컴 의 논리도 애매한거야 저건. 자기들은 소유를 하는게 아니라 단지 사용 만 한다는거걸랑. 저게 usus 우수스 여. 자기들은 소유권은 없고 단지 사용권만 누리고 있다는겨. 교황이 반박해. 야 그게 말이 되는거니? 소유가 없고 사용만 하다니? 그게 뭔말이야 대체? 

 

Thus the disputes on the heresy of Franciscans led William of Ockham and others to formulate some fundamentals of economic theory and the theory of ownership.[36]  

 

이 논쟁이, 뒤에 계속 이어져서 경제학 이론의 근본 법칙과 소유권 이론의 기본 개념을 만들게 되었다. 

 

William of Ockham espoused fideism, stating that "only faith gives us access to theological truths. The ways of God are not open to reason, for God has freely chosen to create a world and establish a way of salvation within it apart from any necessary laws that human logic or rationality can uncover."[23] He believed that science was a matter of discovery and saw God as the only ontological necessity.[15] His importance is as a theologian with a strongly developed interest in logical method, and whose approach was critical rather than system building.[13]

 

철학적 측면에서, 이사람은 스코투스 를 이어가. 스코투스의 애매함을 분명하게 해. 아예 확장을 해버려. 이 프란시스칸은 우리가 인상에 무척 좋고 개방되고 막 이런 이미지인데. 절대 그게 아니야. 더 고리타분? 할 수 있어. 철저한 신앙론자들이야 이들이. 오거스틴을 너무나 좋아해. 자유의지 싫어. 신에 대한 믿음이 중요해. 

 

온니 페이뜨. 솔라 피데.야. 신에 대한 접근은 이성에 방법이 전혀 없어. 토마스 랑 달라. 토마스는 이성도 필요하다 했어. 아니라는겨 오직 믿음이야. 신의 자유의지가 세상을 창조를 한거고, 그래서 신의 그레이스 은총만이 구원의 방법이야. 

 

그러면서 싸이언스 라는, 이성을 통한 지식.은 매터를 발견하는 것에 있어. 이건 따로 인정을 한겨. 만물의 매터 는 이성을 통해 발견 해야 하는거야. 그건 신의 범주를 벗어나는 게 아냐. 가만히 있어라 오직 믿기만 해라 가 절대 아냐. 지식은 지식대로 세상을 드러내야 한다. 허나 신이란 존재는 존재론적으로 니네시티 네시서리, 필수불가결 한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존재.란거야.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이성의 작동은 무의미하단겨. 스코투스의 신의 존재 증명 조차 의미없다는겨 이건. 그의 신학자로서의 자세가 논리적 방법을 발전시켰다 는 아주 잘못된 풀이야. 신학의 입장에서 저사람의 논리학 이 나온건 아냐. 잘못 봤어 저건. 

 

In scholasticism, William of Ockham advocated reform in both method and content, the aim of which was simplification. William incorporated much of the work of some previous theologians, especially Duns Scotus. From Duns Scotus, William of Ockham derived his view of divine omnipotence, his view of grace and justification, much of his epistemology[citation needed] and ethical convictions.[24] However, he also reacted to and against Scotus in the areas of predestination, penance, his understanding of universals, his formal distinction ex parte rei (that is, "as applied to created things"), and his view of parsimony which became known as Occam's Razor.  

 

William of Ockham was a pioneer of nominalism, and some consider him the father of modern epistemology, because of his strongly argued position that only individuals exist, rather than supra-individual universals, essences, or forms, and that universals are the products of abstraction from individuals by the human mind and have no extra-mental existence.[25]

 

오컴 은. 유명론자의 시작이야. 이건 관념론이야. 다시말해서, 리얼리스트 가 아녀. 세상을 오직 추상으로 바라봐. 스코투스의 애매한 중간자적 입장인 개별성을 아예 걷어내 이사람이. 스코투스 의 주장 중에 중요한게 존재 라는 거야. 하나 로서의 존재. 여기서 인디비주얼.이라는 개체 가 나오고 개인 이 등장하는겨 이게. 데카르트 가 여기서 나오게 돼.

 

 

해부하지는 말아라. 전체의 합친 하나 가 존재 라는 것이다. 그 존재 에 대해 서술 하지 말아라 에센스 라면서. 이건 신 에 대한 입장이야. 여기서 전체 의 합 인 서브젝트 는 신 이야 신. 스코투스 가 말하고자 했던건. 토마스 때문에.

 

신 외의 띵즈 라는 만물에 대해서 애매한겨. 저런 개념 정의대로의 존재들이 있긴 해요 만물에. 그러나, 진짜 리얼한, 만져지는 것과 추상적인 것의 사이의 기준의 애매한 존재들도 있어요. 이건 스코투스의 정확한 표현이야. 

 

이걸 말이지, 오컴이 신에 대한 스코투스의 저 입장을, 만물에 다 적용을 하는거야. 각각의 띵 들은 모두 각각들이 유니보시티 오브 빙.으로서의 인디비주얼.들로써 존재한다. 라고 아주 명확히 주장해. only individuals exist 이게 그 말이야. 중간자적인 관점의 애매함을 다 잘라버려. 자기의 면도날을 이런식으로도 써먹는겨. 명쾌하게.

 

유명론 이라는 관념론과 구분을 하던 안하던 추상의 관념론이 여기서 시작하는겨. 만물은 각각 명쾌한 존재의 인디비주얼들이야. 이 각각들은 저마다의 아이덴티티 정체성을 갖고 있는 독립적인 애들이야. 허나 중요한건 머냐면, 똑같이, 스코투스 가 신에 대해 에센스류의 강력한 서술어들을 말하지 말라. 에센스들을 파고들지 말라. 그걸 파고들고 해부해버리는 순간 존재란건 사라진다. 를 여기 모두 각각 띵즈들에 적용을 하는거야. 

 

만물의 각각의 해부를 하지 말라는겨 이게. 그 자체 의 존재 들이 있다 라는 것에서 멈추는거야. 

 

그런 에센스들이라는 서술어. 즉 개체별 본질 어쩌고 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실재적으로. 그 개체 의 본질 이 아냐. 그런 서술어 들은. 

 

그건. 단지. 추상적인거야. 

 

that universals are the products of abstraction from individuals by the human mind and have no extra-mental existence.[25]  

 

저게 그거야. 단지 인간 마음의 작용에서 응축된 추상의 산물 이란것이. 에센스니 유니버설즈 니 하는 것들입니다. 

 

당연히 저런건 리얼한게 아냐. 플라톤의 리얼리즘이란건 헛소리야 이데아의 리얼리 존재는. 하물며 에센스 니 헛 소리란거고. 애브스트랙션 이란 애브스트랙트 는 고대 그리스 부터의, 만져지지 않은 추상 의 의미야 이건. 실재가 아녀. 쟤들 용법이.

 

모든건 오직 인간 마음속에서 발생하는 놀이란거야. 

 

마음껏 상상하세요. 이게 유명론 의 시작이고, 이게 관념론 의 제대로 된 시작이고. 여기서 이사람의 논리학 이 마음껏 시작하는겨. 

 

아벨라르 를 관념론의 시작으로 봐. 긍정부정 논리 라는 논리 라는게 생각 놀이야 이건. 이건 관념론이야. 인간 마음에서만 노는게 논리학이야 또한. 리얼한게 아냐. 마음속에서 맞니 틀리니를 따지는겨 논리적으로. 공리 를 바탕으로한 기하학이니 수학이니 마찬가지야 이게.

 

이 유명론 관념론 에서, 수학이 날라 다니는거야. 이거로 자연과학에서 써먹는거고. 

 

우왕 엄청난 해석인데 나만의. 절대 저렇게 해석 할 수 잇는 사람이 흔치 않은건데 이건. 

 

저기서 오컴부터 마음껏 수학이 날라 다니는거야. 

 

신과 분리해서 이성을 마음껏 쓰라고 했어 세상 만물의 매터를 발견하라면서. 

 

위대한 인간이야. 모든 면에서. 유럽애들이 저런 생각을 이어서 계속 나아간겨 이게. 

 

움베르토 에코가 저 인간을 주인공 캐릭으로 만들어서 저시대 이야기를 써야만 했던겨. 더하여 푸코의 진자로 한번 더 저 시대의 이단의 역사를 풀어야 했고. 이단이란게 결국 문명을 만든겨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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