걍 되도않는 질문이 생겨, 걍 실록 띄엄띄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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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은 만 3년을 왕의 자리에 있었다.

 

 

단종 즉위년 5월 14일 병오 1번째기사 1452년 명 경태(景泰) 3년 
빈전 도감을 설치하다

 

 

1452년 5월 14일. 아버지 문종의 장례를 시작으로 등장하고

 

 

세조 1년 윤6월 11일 을묘 1번째기사 1455년 명 경태(景泰) 6년 
혜빈 양씨·상궁 박씨 등을 귀양보내다. 노산군이 세조에게 선위하다

 

 

 

1455년 윤달 6월 11일에 세조에게 왕 자리를 넘긴다. 정확히는 3년하고 두달에 3일을 못채우넹.

 

 

 

 

 

 

계유정난이 언제냐? 김종서를 죽이는 날.

 

 

 

단종 1년 10월 10일 계사 1번째기사 1453년 명 경태(景泰) 4년 
세조가 이용과 결탁하여 반역하고자 했던 김종서·황보인·이양·조극관 등을 효수하다

 

 

단종이 즉위하고 그 다음해 1453년 10월 10일. 그러니까 대충 단종의 왕 임기의 중간에 일어났다. 이후는 그냥 꼭두각시로 1년 반을 앉은거라.

 

 

 

다시 , 세조의 즉위년월일

 

세조 1년 윤6월 11일 을묘 1번째기사 1455년 명 경태(景泰) 6년 
혜빈 양씨·상궁 박씨 등을 귀양보내다. 노산군이 세조에게 선위하다

 

 

그리고, 이른바 사육신으로 알려진, 단종 복위를 하려다 발각되어 실록에 나오는 최초로 등장하는 날

 

 

 

 

세조 2년 6월 2일 경자 2번째기사 1456년 명 경태(景泰) 7년 
성균 사예 김질과 우찬성 정창손이 성삼문의 불궤를 고하다
 

 

세조 즉위하고 만 1년되는 즈음에 발생한다. 김질. 이 밀고하는 거라, 자기 장인 정창손은 그냥 병풍이고. 김질이 성상문에 들은 내용을 세조한테 꼬지르면서 드러난 사건.

 

나이를 보자. 성상문 1418년생. 김질 1422년생. 김질의 장인 정창손 1402년생. 당시 나이는 각각 38세, 34세, 54세

 

 

김질은 성균관 사예. 사예 는 뭐냐?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의 정사품(正四品) 관직으로 정원은 2원이다. 유생들에게 음악(音樂) 지도를 맡은 벼슬로 처음에 악정(樂正)이라고 하였다. 위로 지사(知事: 正二品)가 1원으로 대제학(大提學)이 정례대로 겸직하며, 동지사(同知事: 從二品) 2원, 대사성(大司成: 正三品), 좨주(祭酒: 正三品), 사성(司成: 從三品) 각 1원이 있고...

 

성균관에서 음악선생. 정사품이면, 지금 한 4급 서기관 정도? 좀 아랜가? 5급 사무관 하자.

 

김질의 장인 정창손은 우찬성 직위. 우찬성 좌찬성은 우의정좌의정영의정 삼정승의 자문이다 이들의 비서실장들정도. 종일품. 졸 높다. 정일품바로아래.

 

 

 

이때 다들들 죽는다. 그 비참하게 고문하는 장면은 남효온의 육신전에 자세히 언급되어있으나, 좀 과한 듯. 일례로 팔 다리를 지져 끊어도 떳떳이 말하는 장면등은 각색이 많이 된 인상.

 

 

 

단종 때 김종서를 죽이는 계유정난 1453년 때, 더하기 세조 즉위하고 단종복위사건 1456년, 3년 걸러 다 합해서 죽은 사람들이 어딜보면 6백명, 어딜보면 8백명 한다. 정확한 숫자는 깊이 안뒤져봐서 모르겠다.

 

 

연산군때 무오사화 별로 안죽었다 6명인가? 갑자사화때 많이 죽어서리 다합해 일백여명 된다고 한다. 

 

 

계유정난때 엄청 죽인 거다. 중종반정때나 인조반정때도 그리 죽이지 않다

 

 

 

계유정난의 정난靖難, 난을 다스려 평안하게 했다의 정.靖.  이단어는 대체 어디서 왔나?

 

 

 

 

실록에 처음 등장하는게 

태종 5년 6월 27일 신묘 1번째기사 1405년 명 영락(永樂) 3년 
영의정부사 평양 부원군 조준의 졸기

 

이때 정난공신 어쩌고 하며 이 정난 이란 말이 나온다. 저기보면 명나라 영락제 3년.

 

 

 

영락제가 자기 조카 건문제를 죽이고 황제가 되었다. 일명 정난의 변. 정난지변.이라고 한다. 그때 쓴 말이 저 정난. 靖難. 영락제는 이때 건문제의 스승 방효유의 집안 구족에 지인까지 죽였다하여 십족을 멸하다. 란 말을 만들다. 지인들을 열번째 일족. 해서 지인들이 십족.

 

 

 

실록에 계유정난은 정난일 10월 10일 이전인 9월 27일에 나온다. 단종 1년 9월 27일 경진 1번째기사 1453년 . 사관이 누구 얘기하며 자기관점 얘기를 후에 하다가. 아, 김문기. 김문기가 나중 계유정난 후에 어쩌고. 자기 딸얘기. 김문기도 나중에 단종복위운동껀으로 죽다. 

계유정난은 당시에 지들이 이미 규정한말.

 

 

 

.

 

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으로 김종서 황보인 들을 죽이고 집권한건, 가만보면 참으로 황당한거다.

 

 

 

수양대군은 자기들 사병외엔 군사력이 없던이들. 감히 상대도 안되고 엄두도 못낼일이다. 

 

 

이 뒤엔 한명회. 라는 전직 궁지기가 있었다. 사대문을 밤에 여닫는 일이 제 1차적인 핵심이라 힘을 잡는. 그것에 대한 냄새를 제일 잘 맡은 이가 한명회다. 걍 쉽게 말하면 건물 수위아저씨가 국무총리가 된거다 그 건물의 속성 권력의 속성을 안 내공이라. 

 

 

김종서를 치는 것도 웃긴거다. 그 사병 몇몇 데려가서 김종서 집에 가서, 그리 나오라 하고, 편지보게 해서 그틈을 타 죽이다. 이거 황당한거다. 그리고 나중 다시 사대문 들락날락 하고 궁궐의 문을 지키면서 대신들을 야밤에 들어오게 해서 죽이다. 이건 내금위 등 걔들을 이미 몇몇이든 포섭을 한거라 이미. 

 

 

 

헌데 저거 하튼 황당한거다.  되도않는 힘의 크기로, 겉으로 보기엔 말도 안되는 무모한 짓을, 해낸게 수양대군 세조인거라.

 

 

어떻게 저리 말도 안되게 당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저거 보면.

 

연산군 칠때 중종반정당시 그 권력 측근인 신씨 3형제랑 임사홍 죽이고 그냥 무혈입성했다 반란군은. 

 

광해군 칠땐 지금 비원, 광해 술처먹고 있는걸 야밤에 반란군들이 그냥 들이닥친거고, 궁궐 몇몇 금군들 매수해서 문열라하고, 술 처먹다가 광해군은 내빼고.

 

 

 

 

헌데 수양은 그 정말 같지도 않은 사병 몇몇 델꼬, 맨주먹이랑 지들 철퇴 들고, 유치하게 쉽게 권력을 먹은거다 저게.

 

 

 

그건 수양의 내적인 엄청난 권력욕이란 에너지, 힘의 쎄기일거라. 그 의지!. 야욕! 거침이 없는거라. 거기에 그냥 김종서든 황보인이든 나오라 하면 괜히 나가서 철퇴맞고, 궁궐 드가다가 철퇴맞고. 그 에너지에 그냥 빨려 드가는거지.

 

 

수양은 엄청난 사람이라.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 이따위말 전에.

 

 

 

 

 

저 단종복위 껀으로 다들 잡혔을때, 연려실 기술 육신 관련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같이 잡혀 고문당하는 유응부가, 옆에 처참하게 고문당해 있는 성삼문에게 되려 욕질을 한다

 

 

 

세조가 유응부에게 묻기를, “너는 무엇을 하려 하였느냐.” 하니, 유응부가 말하기를, “잔칫날을 당하여 한 칼로 족하(足下)를 폐하고 본 임금을 복위하려 하였더니, 불행히도 간인이 고발하였으니, 다시 무엇을 하랴. 족하는 빨리 나를 죽이라.” 하였다.세조가 노하여 말하기를, “네가 상왕의 이름을 내걸고 사직을 도모하려 하였구나” 하고, 무사로 하여금 살가죽을 벗기며 물으니, 유응부가 성삼문 등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람들이 말하되 서생과는 같이 일을 꾀할 수 없다 하더니 과연 그렇도다. 지난번 잔치를 하던 날에 내가 칼을 시험하려 하니, 너희들이 굳이 말하기를, ‘만전의 계책이 아니라’ 하여 오늘의 화를 당하게 되었으니,너희들은 사람이라도 꾀가 없으니 짐승과 무엇이 다르랴.” 하며, “만약 실정 밖의 일을 물으려거든 저 어리석은 선비에게 물으라.” 하고, 즉시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연려실기술 > 연려실기술 제4권 > 단종조 고사본말(端宗朝故事本末) >육신의 상왕 복위 모의

 

 

저 꼭지에 야사집에서 세세히 관련 내용이 나오는데, 유응부 입장에선 저 서생들이 너무 재는거라. 유응부는 무신이다. 계속 만전의 계책만 찾는 서생들. 

 

세상에 만전의 계책이란 게 어딨냐? 권력을 칠라면, 핵심이 어디고, 어디를 언제 잡고 치자 . 해서 그 다음은 기싸움인거라. 저들은 그딴 힘. 에너지가 없던거라. 

 

 

성공한 쿠데타와 실패한 쿠데타의 차이다. 올해 터키 쿠데타가 실패한 이유고. 잔인?하지 못했다. 아 쿠데타가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 이따위 말하는게 아니다.

 

.

 

 

 

 

김질이 꼰지르고, 인간들 엮인이들 죽이다. 그리고 . 김질이 6월2일 몰래 불고, 석달 후인 9월 7일. 상으로 여자들을 대신들에게 나눠준다. 그 역적들의 처와 첩과 딸들

 

 

 

세조 2년 9월 7일 갑술 4번째기사 1456년 명 경태(景泰) 7년 
의금부에 난신에 연좌된 부녀를 대신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다

 

의금부(義禁府)에 전지하기를,

"난신(亂臣)에 연좌(緣坐)된 부녀(婦女) 내에 이소동(李小童)의 아내 천비(千非), 이공회(李公澮)의 아내 동이(同伊), 심상좌(沈上佐)의 아내 미비을개(彌飛乙介)·딸 계금(繼今)은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에게 주고, 이담(李湛)의 아내 소사(召史), 박기년(朴耆年)의 아내 무작지(無作只), 이오(李午)의 딸 평동(平同), 이유기(李裕基)의 누이 효전(孝全)은 익현군(翼峴君) 이관(李璭)에게 주고, 박팽년(朴彭年)의 아내 옥금(玉今), 김승규(金承珪)의 아내 내은비(內隱非)·딸 내은금(內隱今)·첩의 딸 한금(閑今)은 영의정(領議政) 정인지(鄭麟趾)에게 주고, 조청로(趙淸老)의 어미 덕경(德敬)·아내 노비(老非), 최득지(崔得池)의 아내 막덕(莫德), 이현로(李賢老)의 첩의 딸 이생(李生)은 좌의정(左議政) 한확(韓確)에게 주고, 이현로(李賢老)의 아내 소사(召史), 민보창(閔甫昌)의 아내 두다비(豆多非), 김유덕(金有德)의 아내 금음이(今音伊)·딸 옥시(玉時)는 우의정(右議政) 이사철(李思哲)에게 주고, 성삼문(成三問)의 아내 차산(次山)·딸 효옥(孝玉), 이승로(李承老)의 누이 자근아지(者斤阿只)는 운성 부원군(雲城府院君) 박종우(朴從愚)에게 주고, 황보흠(皇甫欽)의 아내 석을금(石乙今), 박쟁(朴崝)의 아내 오덕(吳德)·딸 효비(孝非)는 좌찬성(左贊成) 윤사로(尹師路)에게 주고, 이유기(李裕基)의 아내 설비(雪非)·딸 가구지(加仇之)·말비(末非)·막금(莫今), 성삼고(成三顧)의 아내 사금(四今) 및 한살 된 딸은 우찬성(右贊成) 정창손(鄭昌孫)에게 주고, 이승윤(李承胤)의 아내 가은비(加隱非), 지화(池和)의 아내 막금(莫今)은 파평군(坡平君) 윤암(尹巖)에게 주고, 이휘(李徽)의 아내 열비(列非), 허조(許慥)의 아내 안비(安非)·딸 의덕(義德)은 전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이계전(李季甸)에게 주고, 이자원(李滋源)의 아내 유나매(維那妹), 이개(李塏)의 아내 가지(加知)는 우참찬(右參贊) 강맹경(姜孟卿)에게 주고, 이윤원(李潤源)의 첩 분비(粉非), 이경유(李耕㽥)의 아내 효생(孝生)은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이징석(李澄石)에게 주고, 박인년(朴引年)의 아내 내은비(內隱非), 정효강(鄭孝康)의 아내 보배(寶背)는 화천군(花川君) 권공(權恭)에게 주고, 원구(元矩)의 아내 소사(召史), 고덕칭(高德稱)의 아내 보금(甫今)·딸 신금(信今)은 우참찬(右參贊) 황수신(黃守身)에게 주고, 이해(李諧)의 아내 종금(終今)·딸 불덕(佛德)·불비(佛非), 김유덕(金有德)의 누이 막장(莫莊)은 예조 판서(禮曹判書) 박중손(朴仲孫)에게 주고, 최면(崔沔)의 누이 선비(善非), 조완규(趙完圭)의 아내 소사(召史)·딸 요문(要文)은 병조 판서(兵曹判書) 신숙주(申叔舟)에게 주고, 이석정(李石貞)의 아내 소사(召史), 권자신(權自愼)의 아내 어둔(於屯)·딸 구덕(仇德)은 중추원 사(中樞院使) 권준(權蹲)에게 주고, 우직(友直)의 아내 오대(五臺), 김현석(金玄錫)의 아내 영금(英今)은 이조 판서(吏曹判書) 권남(權擥)에게 주고, 윤영손(尹令孫)의 아내 탑이(塔伊)·딸 효도(孝道), 이반경(李反敬)의 첩 막생(莫生)은 중추원 사(中樞院使) 박강(朴薑)에게 주고, 김문기(金文起)의 딸 종산(終山), 최득지(崔得池)의 첩 지장비(地莊非)는 대사헌(大司憲) 최항(崔恒)에게 주고, 성삼성(成三省)의 아내 명수(命守), 정효강(鄭孝康)의 아내 효도(孝道)·딸 산비(山非)는 병조 참판(兵曹參判) 홍달손(洪達孫)에게 주고, 성맹첨(成孟瞻)의 아내 현비(現非), 최사우(崔斯友)의 첩 옥금(玉今)은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 전균(田畇)에게 주고, 심신(沈愼)의 아내 석정(石貞)·딸 금정(金正)·은정(銀正), 성승(成勝)의 아내 미치(未致)는 계림군(雞林君) 이흥상(李興商)에게 주고, 이의영(李義英)의 아내 효생(孝生), 조극관(趙克寬)의 아내 현이(現伊)는 도절제사(都節制使) 양정(楊汀)에게 주고, 박순(朴詢)의 아내 옥덕(玉德), 박헌(朴憲)의 아내 경비(敬非)는 이조 참판(吏曹參判) 구치관(具致寬)에게 주고, 송창(宋昌)의 아내 소앙지(召央知), 황보석(皇甫錫)의 아내 소사(召史)는 전 예문 제학(藝文提學) 윤사윤(尹士昀)에게 주고, 이말생(李末生)의 아내 관저(關雎)·딸 경비(敬非), 김문기(金文起)의 아내 봉비(奉非)는 도절제사(都節制使) 유수(柳洙)에게 주고, 박대년(朴大年)의 아내 정수(貞守), 송석동(宋石同)의 아내 소사(召史)는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봉석주(奉石柱)에게 주고, 김승규(金承珪)의 딸 숙희(叔熙), 권저(權著)의 어미 보음미(甫音未)는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강곤(康袞)에게 주고, 박계우(朴季愚)의 아내 소비(小非), 김승벽(金承壁)의 아내 효의(孝義)는 예조 참판(禮曹參判) 홍윤성(洪允成)에게 주고, 유성원(柳誠源)의 아내 미치(未致)·딸 백대(百代), 이명민(李命敏)의 아내 맹비(孟非)는 좌승지(左承旨) 한명회(韓明澮)에게 주고, 황선보(黃善寶)의 아내 복중(福中)·딸 덕비(德非)는 우승지(右承旨) 조석문(曹錫文)에게 주고, 이호(李昊)의 아내 개질지(介叱知)·딸 목금(木今)은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유하(柳河)에게 주고, 윤처공(尹處恭)의 딸 숙비(叔非), 정원석(鄭元碩)의 아내 만금(萬今)은 이조 참의(吏曹參議) 원효연(元孝然)에게 주고, 최치지(崔致池)의 아내 미치(未致), 최윤석(崔閏石)의 아내 봉비(奉非)는 단천 군수(端川郡守) 최유(崔濡)에게 주고, 황선보(黃善寶)의 누이 소사(召史), 이유기(李裕基)의 딸 소근소사(小斤召史)는 형조 참의(刑曹參議) 황효원(黃孝源)에게 주고, 조번(趙蕃)의 아내 소사(召史)·딸 의정(義貞), 황의헌(黃義軒)의 아내 복비(卜非)는 병조 참의(兵曹參議) 한종손(韓終孫)에게 주고, 원구(元矩)의 누이 심이(心伊), 조완규(趙完圭)의 딸 가이(加伊)는 좌부승지(左副承旨) 윤자운(尹子雲)에게 주고, 윤위(尹渭)의 아내 소사(召史), 정관(鄭冠)의 아내 신경(信敬)은 우부승지(右副承旨) 한계미(韓繼美)에게 주고, 이의산(李義山)의 딸 소사(召史)·막금(莫今)은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조효문(曺孝門)에게 주고, 이정상(李禎祥)의 아내 삼비(三非)·딸 현비(現非)·정비(貞非), 최득지(崔得池)의 아내 마배(磨杯)는 겸 판통례문사(兼判通禮門事) 이극배(李克培)에게 주고, 윤경(尹涇)의 아내 소사(召史), 성삼빙(成三聘)의 아내 의정(義貞)은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 권개(權愷)에게 주고, 봉여해(奉汝諧)의 어미 소비(小非)·아내 정순(丁順)은 상호군(上護軍) 유서(柳溆)에게 주고, 민보흥(閔甫興)의 아내 석비(石非), 이윤원(李潤源)의 아내 대비(大非)는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 김질(金礩)에게 주고, 대정(大丁)의 아내 자근(者斤), 하위지(河緯地)의 아내 귀금(貴今)·딸 목금(木今)은 지병조사(知兵曹事) 권언(權躽)에게 주고, 이보인(李保仁)의 아내 물재(勿才)·딸 옥석(玉石)은 성균 사성(成均司成) 정수충(鄭守忠)에게 주고, 조완규(趙完圭)의 누이 정정(精正), 최사우(崔斯友)의 어미 소사(召史)는 상호군(上護軍) 유사(柳泗)에게 주고, 식배(植培)의 딸 귀비(貴非)·귀장(貴莊)·귀금(貴今)·소근비(小斤非), 유응부(兪應孚)의 아내 약비(若非)는 예빈시 윤(禮賓寺尹) 권반(權攀)에게 주고, 민신(閔伸)의 아내 우비(禹非)·딸 산비(山非)는 대호군(大護軍) 안경손(安慶孫)에게 주고, 이지영(李智英)의 어미 석을금(石乙今)·아내 종비(終非)·딸 은비(銀非)는 대호군(大護軍) 홍순로(洪純老)에게 주고, 송녕(宋寧)의 아내 소사(召史), 권저(權著)의 첩 복가이(卜加伊)는 대호군(大護軍) 조득림(趙得琳)에게 주고, 김감(金堪)의 첩 귀덕(貴德)·딸 소비(小非), 이양(李穰)의 아내 월비(月非)는 대호군(大護軍) 이극감(李克堪)에게 주고, 중은(仲銀)의 누이 귀덕(貴德)·딸 귀비(貴非), 장귀남(張貴男)의 누이 말비(末非)는 직예문관(直藝文館) 유자황(柳子滉)에게 주고, 정분(鄭笨)의 아내 순비(順非), 이석정(李石貞)의 첩 말생(末生)·딸 감물(甘勿)은 대호군(大護軍) 임자번(林自蕃)에게 주고, 대정(大丁)의 어미 내은이(內隱伊), 김감(金堪)의 아내 소사(召史)·딸 복금(卜今)·말금(末今)·아지(阿只)는 전 호군(護軍) 김처의(金處義)에게 주고, 최면(崔沔)의 어미 소사(召史)·아내 점물아지(占勿阿只)·딸 부허비(夫虛非)는 사복 소윤(司僕少尹) 한서귀(韓瑞龜)에게 주고, 최치지(崔致池)의 아내 덕비(德非)·딸 백이(白伊)는 전농 소윤(典農少尹) 송익손(宋益孫)에게 주고, 이승로(李承老)의 아내 효정(孝貞)·딸 숙화(叔和), 이오(李午)의 아내 소질지(少叱知)는 군기 부정(軍器副正) 설계조(薛繼祖)에게 주고, 이의산(李義山)의 아내 참군(參軍)·딸 아을금(阿乙今)은 사재 부정(司宰副正) 권경(權擎)에게 주고, 정관(鄭冠)의 어미 소사(召史), 장귀남(張貴男)의 누이 학비(鶴非)는 군기 부정(軍器副正) 홍순손(洪順孫)에게 주고, 허조(許慥)의 어미 화산(花山)·누이 소근소사(小斤召史)는 겸 군기부정(兼軍器副正) 곽연성(郭連城)에게 주고, 권저(權著)의 아내 계비(季非)·딸 순비(順非)는 호군(護軍) 최윤(崔閏)에게 주고, 조순생(趙順生)의 아내 가질비(加叱非), 김선지(金善之)의 아내 내은이(內隱伊)·딸 가야지(加也之)는 전 부사직(副司直) 이몽가(李蒙哥)에게 주고, 이석정(李石貞)의 딸 감상(甘尙), 최면(崔沔)의 누이 막비(莫非)는 도승지(都承旨) 박원형(朴元亨)에게 주라."

하였다.
 

 

 

 

을메나 좋았을까? 이전엔 자기들 상관의 아내 혹은 동료의 딸들을, 나눠받으며

 

 

 

저게  유교다 유교.

 

저런게 유자들의 본색이다.

 

연산군은 개인이 아니다

 

연산군은 조선 그 자체다

 

 

 

 

 

 

해서 심심하면 역모다 반역이다 꼰지르는거지. 저 집안 재산에 여자들이 자기꺼가 될 로또.

.

 

 

 

 

 

 

계유정난 당일의 기록이 실록에 자세히 기록되어있는 날의 기록 아래.

 

 

단종 1년 10월 10일 계사 1번째기사 1453년 명 경태(景泰) 4년 
세조가 이용과 결탁하여 반역하고자 했던 김종서·황보인·이양·조극관 등을 효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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