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실록은, 사람의 심리를 읽는데 좋다
조선만 실록이 있는게 아니고, 고려때도 있었고, 저 중국에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에도 실록이 각 왕조별로 조선실록의 양 못지 않게 있어. 헌데 저기는 사관의 관점이 약한가지. 조선실록은 가끔 사관이 평을 하걸랑. 당시 분위기 얼굴등도 대화의 곳곳에 담고.
남북조때 양나라에도 실록이 있었다고 해 안 전해질뿐. 신라왕조 백제 왕조 고구려 왕조에도 없었을까? 우리가 아는 고구려는 그게 고구려도 아니야.
양나라 하믄 양무제. 달마가 만났다는 양무제. 양무제가 꿈에 죽은 마누라가 나타났는데 뱀의 형상을 한겨. 죄를 많이 지어서리 이리 축생의 몸으로 있다고 하며 울었나봐. 양무제가 신원을 해줄라고 명을 해서 만든 불경이 자비도량참법. 이라고 있어. 불경을 이거저거 짜집기 편집하고 해원바랍니다 하고 끝날때마다 여러 부처명호들을 말하며 절을 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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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실록은 왕들의 그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을 정말 찐하게 볼 수 있어. 역사도 그 관점에서 해야 해. 역사학자들이 해석하는 조선사는 그래서 낵아 보기엔 좀 약해. 머 낵아 머라고. 그래도 이건 사실이야. 학문들은 그래서 서로 만나야 해. 온전하지 않아. 보다 온전하려면 인문학은 서로서로 격자들 떼고 만나야해 그래야 자기 분야가 더 온전한 관점으로 더 제대로 해석이 가능하걸랑. 물 자체는 정보를 일백을 쏴주지만, 해석은 십만큼만 하는게 문제걸랑. 일백 전체를 다 해석할 수 는 없어도 일백을 다 본 관점으로 보다 해석을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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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들을 보면. 회사랑 같아 우리 지금 사는 거랑. 어느 조직이랑 다를 바가 없지.
일개 신입사원은 그 시선밖에 회사업무를 모르지. 대리는 대리 만큼만 보는거지. 부장도 그 시선의 폭만 보고, 부서도 자기 부서 업무만 보는거지.
전체를 다 볼 수 있는 보다 온전함의 시선은 그래서 임원이야 소위. 임원이 연봉이 쎈 이유야. 그 위의 오너, 사장이나 회장이 단연 그 조직의 최상의 온전함의 시선으로 보는거지.
폴리실리콘 그거 폭등할때도 4백불선에서 투자 결정해서 망한 기업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있어. 어디는 그룹이 날라가고. 온전하지 않앗걸랑 그 오너의 시선 기획자들의 시선이. 저때 외신들은 벌써 폭락을 예언했었걸랑. 눈귀에 안들어오지.
오너나 위 기획자는 그래서 위험한 자리야. 밑에 현업들은 그거 몰라. 현업들은 지들 월급나오니 마니 자기부서 얘기 자기 자리만의 시선의 이야기 외엔 몰라 몰라. 모든 근심은 오너와 임원이야.
월급을 주려해도 돈을 벌어야 주고, 지금 버는 돈이 주구장창 벌 거란 확신도 안서고. 앞으로 세상 못따라가면 바로 주저앉고 거지되는게 오너야. 회사망하면 그 밑에 직원들이 대신 리스크 져 주니? 지들은 월급 안나오면 그뿐이지.
지금 반기업정서 웃긴거지. 노동자 어쩌고 저거 지난 시대의 이야기. 조선 망하고 해운 망하고 아마 앞으로 정유 랑 화학 이랑 주저앉을거라. 이전엔 중동에서 정유 안했걸랑? 헌데 이제 지들이 정유공장 짓는거지. 원유를 정제하는 부가가치를 우리같은 애들에게 줄 이유가 없는겨. 거기에 중국애들이 또 지어댄다. 점점 저 정유 화학도 저 조선 해운 망하는 추세를 따른다.
프레이저보고서, 웃기지도. 반미 할땐 언제고, 또 양놈이 보고서 하나 만들은거, 오 미제 보고서 하며 저따위로 우리네 경제역사를 분석을 한다. 정말 지들만의 독창적인 독보적인 지들만의 온전한 사관이 없는거라. 미친거지 미친거. 어드래 하면 산업화 애들의 성과를 주저앉히나 어드래 하면 산업화들이 죽을 짓을 했나 꼭두각시 짓만 했나, 고따위 시선만 취하는거지. 또 그럴땐 친미지. 미국은 천주국이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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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랑 아닌거랑 그 시선은 천지차이야. 온전함의 차이야. 오너는 보다 온전함의 시각으로 자기 조직 자기 회사 자기 국가를 보는 자야. 그럴 수 밖에 없어. 왜냐하면 듣보는 정보 자체가 다르거든. 그리고 그 마음가짐이 달라. 자기가 판단 하나 잘못하면, 망하는거야.
자기가 판단 잘못하면, 저 기업들 망하는 것처럼 망하는거야. 그 딸린 가족들 포함해서, 그런 짐들이 오너들에게 있어. 그 무게감에 따른 돈과 여유를 또한 누리는거고.
나이 처먹어서 보쓰가 되는 이유기도 해. 진보란 족속은 말이야. 초딩이야 세상보는게. 아, 아름다와야 해 세상은, 아 민주 만인이 평등한 만인이 주인이 되는 사회, 아 가슴 벌렁벌렁거리지. 아 왜 내 월급은 작은겨 지들은 엄청 처먹고. 내도 돈 많이 줘! 니들 졸 받잖어!
나이 처먹어서 점점 윗자리나 자영업 하면서 시선 넓어지면서, 온전해 지는겨 보다.
나이 처먹어서 자기돈으로 딴나라 돌아다니면서 졸 시선 넓이는겨. 이따위 땅바닥 좁은 나라에서 이따위 밖에 못봤구나, 세상은 저리 움직이는데, 어릴때 헛소리 했구나
보다 온전함의 확장이 그래서 보수야 보수. 단지 변절하고 기득권 챙기기 위함을 보수 라고 편협하게 해석을 하는거지.
그 바닥엔, 나이 처먹으면서, 인간에 대한 마음의 복잡성을 알게되는거거든, 인간들의 그 각각의 알수없는 마음. 그게 그리 단순한게 아니란 거지. 모택동이 인민들 불쌍히 여겨, 굶지 않는 나라 만들자! 집에 부엌들 다 없애라우, 나라에서 똑같이 배불려 먹여주께. 공짜 인민식당 만들은겨, 결과가 머였니. 천만명이 죽었어 누군 이천만명이 죽었다 하고. 그거 가릴라고 문혁하는거지.
조선왕들 썰만 풀고 말랬더니 먼 서두가 이리 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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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도 말야, 지원부서와 영업부서의 사람들이 수준이 그래서 다른거걸랑. 영업부서는 사람들 만나면서 돈 벌어와야 하는 이들. 이들은 그러면서 상대의 마음을 읽어나가는거지. 현장에서 마음공부하는거라. 온전함이란 폭의 문제도 문제지만 깊이의 문제도 있지. 사람마음이란게 우주크기란 말이지 무한대걸랑. 이 사람들의 온전함의 크기는 지원부서의 사람들이 따라가질 못해.
해서 지원부서는 영어로 cost center 비용만 쓰는 이들이야. 대체가 가능해. 기업의 꽃은 영업인거지 그래서. 영업은 영업력이야. 영업하는 힘. 그 힘 에너지를 키운 사람이 제대로 영업하는 거지.
수년 전에 한 친구놈이, 작은 전자부품 유통하는 놈. 몇년 해보니까, 자기가 차릴 만 한거지. 그 회사 오퍼상은 그 같잖은 회사는 몇몇 영업하는 이들에 맡기고 골프나 하며 논다는거지 지가 보기엔. 돈은 수백억있고, 야 내도 이거 내가 몇년 고생해서 확보한 영업망으로 내 이름된 회사 차리자 하고 나가는 거야. 머 이런 이들 졸 많지.
헌데 나중 이쉑이 하는 말. 졸 사오년 고생하고. 야, 지난 그 사장님 참 존경스럽더라. 나와보니 세상이 그리 간단한게 아니더라. 그 사장의 단면만 나는 봤다. 그 회사 차리기 까지 그사람 졸 고생하고, 놀고 다는게 놀고 다닌게 아니었더라. 최근에 그 사장님 만나서 인사하고 왔다. 그분이 새 영업루트 하나 소개시켜주더라. 옛날엔 졸라 한심하고 악랄한 인간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만.
인간이 그리 간단치가 않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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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들을 다 볼 수는 없고.
가만 보믄 말이야. 대정태세 다~ 고종까지 다~ 그리들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더만. 이따위 생각도 요즘에야 드는건데.
정말 다들 그 시대, 그땐 그 인간들이 온전함의 가장 윗자리야. 물론 세상 돌아가는 동시대 기준으로 보면 남들은 우리은하계의 온전함이지만 조선은 태양계 크기의 온전함은 취했는지 마는지. 우주에 은하계가 삼사천억개가 있는데 말이지.
연산군도, 처음엔 그리 간단한 이가 아니걸랑. 대신대간들이 연산을 아주 우습게 본거지. 연산이야긴 좀 했으니 넘어가고
예종. 남들이 잘 모르는 예종. 이사람도 웃기단 말이지.
예종은 만 18세에 왕이 되었어. 연산군도 거의 만18세에 왕이 되었고, 가만 중종도 거의 만 18세에 왕자리에 올랐지.
지금 식으론 걍 고삼이야 고삼.
고삼이 밑에 신하들이 나이가 오육십일꺼잖아? 그 숱한 대신 대간들 위에서 자기 자리 지키면서 조선을 이끌어가는 그 자리. 왕이란 자리.
우리는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볼 필요가 있어.
조정 회의 하면 그 최소 수십명을 주관하는 사람이 왕이란 거지. 그 수십명의 에너지, 그 사람들도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인생들이 어마어마 한거걸랑.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인거지. 그런사람들의 뿜는 에너지를 다 감당하고 쳐내려가는 자리야 저 왕이란 자리는.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아.
물론 세자 생활을 하면서 공부도 시키고 익숙해지겠지만. 밑에서 보는 자리와, 직접 올라간 자리의 느낌은 전혀 다른 거걸랑.
무지 아는체 해야해. 모르는 것도 아는 척 해야 하고. 무식한 티 내면 안돼. 나 몰라 ! 하는 것도 에너지 힘이 있어야 나 모르니 갈켜줘! 하는거걸랑. 그것도 쉽지 않은 처세야.
해서 우습게 보이고 하면, 잘못하면 뒤집혀 죽는 자리가 왕이야. 조선시대 반역이랍시고 난언들 아주 많걸랑. 난언 이라고 조선실록 검색하면 삼사백 기사가 떠 국역으로만. 대부분 걍 죽이는겨. 아니어도 기인겨. 거짓이어도 진짜여야 하는거지. 조금의 반심도 품지 않게.
대표적인게 남이 역모사건이걸랑. 예종 즉위년도에 터지는 사건. 이전에 한번 언급했듯이. 유자광이 밀고한 사건.
헌데, 실체가 없단말이지 심하게 조져도. 헌데 국문하는 예종 입장에선, 저걸 키워야 해. 왜냐? 자기 힘! 자기가 고삼 어린이가 아니란 걸 보여줘야 해. 니들 앞으로 내헌테 어리다고 까불지 말라 하는걸 신하들에게 보여주는 거걸랑. 그리고 그 밑의 조선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나 니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리 애가 아니란다 하면서.
해서, 재수좋게 강순. 영의정, 당시도 영의정인가? 무신출신, 같이 이시애 난 남이랑 진압한 사람. 팔순을 내다본 할배. 이사람이 엮인거지. 남이 혼자만 걸고 넘어지면 안되걸랑. 뭔가 세력이 있어야 시나리오가 되고 사건이 되어서 사실화 할 수 가 있는거지. 강순은 당시 실록기록 보믄 억울한거지. 예종이 그거 모르겠어? 아니어도 기인겨. 해서 남이랑 강순이랑 죽이고 그 부하들 같이 찢어죽여서 칠일 머리 걸어놓고 저 태평로 바닥에.
그리고 계속 연일 국문하는겨 남이와 연관된 사람들. 그러다가 어느 누군 살 방법을 찾는게 머냐면. 아 사실 남이가 지 어미랑 근친하는 걸 봤어유. 해서 그 어미에게 증. 이란 사관 기록이 남는 거걸랑. 그 어미도 찢어 죽여서 머리걸어놓고, 그거 주작한 애는 살아남는거지.
저때 예종 졸 단호해. 역사가들은 머 훈구가 모의해서 신세력으로 떠오르는 남이를 죽인 사건이다. 라고 하지만, 아니라고 봐. 저때 대신들도 벌벌 떨거든 말하는거 보믄. 물론 그 유자광의 말에 남이가 한명회를 간신이라 했고 한명회가 역모할거다라 했다 라 하지만. 헌데 남이는 한명회등 훈구를 싫어하긴 한듯하지만. 나중 보믄 유자광과 한명회는 또 웬수야 성종때.
예종의 왕 노릇 자리잡게 하는게 저 남이 사건.
예종의 또 한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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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실록 7권, 예종 1년 8월 15일 병인 3번째기사 1469년 명 성화(成化) 5년
대사헌 오백창 등이 부도한 말을 내기에 이른 이준을 죄주도록 하다
"비록 준이 알았던 일이 아닐지라도, 전중생으로 하여금 교만하고 방자하게 하였으니, 어찌 죄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죄주지 않으면, 신 등뿐만 아니라 온 나라의 신민(臣民)이 결망(缺望)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전자에 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의 반인 등이 폐해를 기쳐서, 역적(逆賊) 이시애(李施愛)로 하여금 구실거리를 삼게 하였었다. 그때에 세조(世祖)께서 말씀하시기를, ‘경 등의 반인들이 폐해를 끼쳐서 이런 욕을 듣는구나.’ 하셨는데, 그 말씀이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하거니와, 이번에도 또한 반인이 한 짓인데, 어찌 준이 알았던 일이겠는가? 이제 경 등이 아뢰기를, ‘신민이 결망(缺望)합니다.’ 하였는데, 이른바 신민이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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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귀성군이라고 왕족 종친이걸랑. 남이랑 나이가 같아. 이시애 난때 같이 공을 세운이 인데. 이 이준의 반인伴人, 수행인 가방모찌가 건방을 떨어서 역모에 휩쓸리거든 이 종친 이준.이란 사람이. 해서 신하들이 이준에게도 죄를 물어야 한다 하걸랑.
헌데 이 고삼 예종이, 저 날을 보면 저때는 남이사건 이전이야.
어린 예종이 받아치는 논리가 죽여줘.
예전 신숙주 한명회 도 이전 이시애 난때에 그 수하 반인들 모찌들이 이시애랑 공모를 했다고 했지만, 세조께서, 그건 신숙주 한명회완 상관 없지, 그 밑에 애들이 독자적으로 공모를 한거지 해서 니들도 용서를 해줬는데, 왜 똑같은 이번 경우는 왜 이준을 벌주라 하느냐?
저때도 신숙주 한명회는 그야말로 실세 중에 실세거든.
저 논리가 전혀 틀리지 않걸랑. 대신들이 할 말이 없는거지. 곧 예종이란 왕은 어려도, 저 이시애 난이 2년전이믄 다 아는겨 그따위 사건들을. 그리고 그것들을 끄집어 내서 반격할 줄도 알고.
헌데 왕이란 자리는 보믄, 실록을 보면, 대부분의 벼슬자리들의 이름들을 다 아는듯해 그 상세 내역까지. 왕이란 자리는 대단한겨.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명언이야.
저 예종도 원래 몸이 안좋았어. 죽을때 대왕대비도 그딴 얘길 해. 아 몸관리좀 하지 그래 그리 말해도 안듣더니만 그 젊은 나이에 왜 죽냐그래 하걸랑. 독살이니 머니 개소리 잡탕 역사학자들이 책팔아 처먹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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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도 그 이전 조광조 알성시 시험문제 만 봐도 아주 고수야. 그런 질문은 왕이니까 하는것이고, 왕자리의 진짜 고민을 사유를 해서 질문을 한 것이걸랑. 그런 질문을 받은 조광조의 답은 매우 허섭한거야. 만약 내가 거 있었다면 꼴찌를 줬을거라. 그따위도 답이라고. 겉멋만 들은 도학자들. 정의의 사도들이지 정의 놀이하는 인간들. 아주 이땅에 지금 쎄고 쎈 흔한 인간들이야, 어린 조광조들이 널려 빠진거지.
그 말도 안되는 지 스승 김굉필을 문묘에 올리자고, 그것도 한두달 매~앤날 쎄우는거. 한 일년 반 배웠나? 감동은 지만 받아 처먹은걸, 지 눈에만 위대한거지 듣보잡 김굉필이 위대하면 지한테만 위대한거지. 김굉필 올려야 한다~. 코메디지 코메디. 입사한지 하루만에 사간원에 입사한지. 그 다음날, 사간원 대빵부터 다 짤라야 한다. 또 쎄우고, 해서 명분 목줄 잡아서 지 말이 멕혔지만
나중에 말야, 조광조 죽이는 기묘사화나 신사무옥때도 저때 당한 사간원애들이, 조광조 무리 다 쳐없애야 한다 하지 ㅋㅋㅋ 중종이 어느정도 처버릴까 물으니. 인간사 그리 돌고 도는것.
중종이 36년을 재위하걸랑. 헌데 나중엔 더 온전해지는겨. 아 그때 기묘사화 이후에 조광조 무리들 다 쳐낼때, 거기 노비들 이름 모르는 인간들 지나보니 죄도 없고 괜히 엮인 이들인데, 내가 너무했구나 하거든. 저것도 사림과 훈구의 대립 어쩌고 해석하지만, 걍 단순한 중종의 왕 자리에서의 감정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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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랑 단종도 보믄 좀 짠해. 세조 실록 처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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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1년 윤6월 11일 을묘 1번째기사 1455년 명 경태(景泰) 6년
혜빈 양씨·상궁 박씨 등을 귀양보내다. 노산군이 세조에게 선위하다
http://sillok.history.go.kr/id/kga_10106111_001
...
노산군이 경회루 아래로 나와서 세조를 부르니, 세조가 달려 들어가고 승지(承旨)와 사관(史官)이 그 뒤를 따랐다. 노산군이 일어나 서니, 세조가 엎드려 울면서 굳게 사양하였다. 노산군이 손으로 대보를 잡아 세조에게 전해 주니, 세조가 더 사양하지 못하고 이를 받고는 오히려 엎드려 있으니, 노산군이 명하여 부액해 나가게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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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이 세조한테 자리를 넘기는 장면이야. 단종이 나이 만11세에 왕이 되잖아. 헌데 멀 알겠어? 그 짱짱한 대신들 속에서, 완전히 꼬마지 꼬마. 그렇다고 엄마가 있나 대왕대비 할머니가 있나. 아마 무지 쫄았을껴. 어린 꼬마가. 재위에 있을때도.
황표정사 라 하잖아. 김종서 황보인이 밑에서 벼슬자리 어디 누구누구 자리마다 몇명들 추천한거 올라오면, 저들이 이놈 임명하세요 하고 황표, 누런종이를 붙이는거지. 그걸 보고 단종이 마치 자기가 임명한것 마냥. 어느 자리 누구로 해라 하는거지.
그전에 따로 두 할배, 칠십을 바라보는, 이들을 따로 만났겠지. 할배들이요 나 대체 누가 누군지 벼슬이 어떤 자린지 몰라유. 어찌해야 되요? 하니, 그럼 우리가 황표를 붙여줄테니, 회의때 그 붙인 이름을 임명하세요 하는거지.
세조가 저딴걸 다 아는거라 수양대군이. 수양입장에선 화딱지 나는거지. 아니 이씨 조선이가 김씨 조선이가?
김종서는 수양대군을 포섭을 못했나봐. 그래도 제일 큰형 문종이 죽고 다음이 수양인데, 왜 안평대군만 포섭을 한건지. 나름 속사정이 있었겠지. 수양이 1417년생이야 신숙주랑 동갑. 밑에 동생 안평은 한살아래. 그 밑에 동생 임영대군은 수양보다 세살아래. 임영은 수양에 붙고, 안평은 조카 단종을 지키려하지만 유배가서 죽고. 김종서의 패착이야 수양을 못 품은건. 어찌보면 그냥 수양이 계유난 할 수 밖에 없는 역사였지.
그 수양대군이 계유난 일으키고, 단종은 완전히 꼭두각시. 아 수양이 단종의 유모들인 혜빈 양씨랑 상궁까지 죽일려 하는겨.
단종이 재위 3년이 지나고 만 14살이 된거지. 자리를 넘겨주는겨. 내 유모들은 죽이지 말라고. 그리고 그 자리를 넘겨주는 모습이 저 실록 기록이야.
꼬마가 자리에 일어나서, 자기 도장을 쥐고, 엎드려 있는 작은 삼촌 수양대군에게 주는겨.
그래도 그 왕의 자리 삼년여 동안, 나름 애어른일꺼라. 그때 어린 꼬마 단종의 마음이 어땠을까나.
헌데 세조가 된 수양. 저 이후에도 말야. 어린 조카 단종이랑 사냥 같이가고 술자리에도 자주 불러. 세조 마음도 그리 좋았겠어?
세조실록 8권, 세조 3년 6월 22일 갑인 5번째기사 / 경차관 조계팽에게 노산군에게 보내는 물품을 전하고, 얼음을 바치게 하다
세조 3년 6월 23일 을묘 1번째기사 / 내시부 우승직 김정을 보내 노산군을 문안하다
세조 3년 6월 23일 을묘 2번째기사 / 강원도 관찰사에게 노산군에게 자공하는 물자와 기거 절차를 아뢰게 하다
세조 3년 7월 5일 병인 6번째기사 / 노산군이 일용하는 비용을 곡진하게 마련해 줄 것 등을 명하다
세조 3년 7월 6일 정묘 2번째기사 / 의원 조경지를 영월에 보내 노산군에게 옷가지를 주다
세조 3년 7월 15일 병자 6번째기사 / 강원도 관찰사에게 노산군에게 술을 공진하도록 하다
저리 사람도 보내서 문안인사 시키고 얼음도 보내고 옷도 주고 졸 극진히 대해. 술도 주는거보면 어린 나이에 술도 먹을 만큼 그림자가 있는거지.
헌데 문제는, 세조의 큰아들, 세자가 죽은겨. 9월에. 스무살에. 의경세자.
그럼 다음 자리가, 그 죽은 아들의 큰아들 월산대군이걸랑. 얘가 세살이라. 저때 세조는 마흔살.
이게 꼬이는거지. 다음 대를 이을려면 공백이 갑자기 졸 커진거라. 저때 둘째아들, 즉 의경세자 동생, 나중 예종은 7살이지만 예종은 논외지 당시.
자기가 혹 잘못되면, 다음자리가 흔들리는거지. 그치 살아있는 저 노산군, 어린단종. 단종이 저때 16살을 넘기거든.
이걸 서로 눈치보는겨. 계유난 공신들이. 세조만 문제가 아니라, 자기들도 문제라, 제일 앞장서는 정인지니 신숙주니 그래서 그런거야.
죽여야 합니다!
세조 3년 9월 10일 신미 2번째기사 / 신숙주·정인지 등이 금성 대군과 노산군을 사사토록 청했으나 허락치 않다
저때 하필 또 재수없게 금성대군, 세조보다 8살 아래 동생. 얘가 단종복위를 하는겨. 두달전에. 그걸 세조가 봐줬걸랑. 내 동생인데 가서 잘 말해라 하고. 너 그러지 말라 전하거라 하는거지. 자기도 그 한살아래 동생 안평 죽이고 맘 편했간? 자기도 죽이기 싫은겨 자기 형제를 더이상.
아 그런데 큰아들 의경세자가 죽은겨.
그러믄서, 저 동생 금성대군이 한게 다시 튀어나오는거지.
같이 죽여야 합니다!
세조 3년 10월 21일 신해 2번째기사 / 송현수는 교형에 처하고 화의군 등을 금방에 처하다. 노산군이 자살하자 예로써 장사지내다
저날 기사에 끝줄에 그냥 노산군이 자살했다 예로써 장사지내다. 이게 다야 단종 죽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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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도 어찌할 수 없었던겨.
세조도 보는 저 이전에도 계속 허락하지 않걸랑. 계속 싫다고 해. 대신들은 죽여야 한다 계속 주장하고. 왜냐면 자기들 후환이 두려운거지.
그러다 뜬금없이 자살을 한겨. 만 16세지. 저땐 다 큰거야. 꼬마가 아니지 더이상.
어떻게 죽었는지는 나중 숙종실록에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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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25년 1월 2일 임신 1번째기사 1699년 청 강희(康熙) 38년 하직하는 수령을 인견하고 면유하다
하직하는 수령을 인견(引見)하고 면유(勉諭)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군신(君臣)의 대의(大義)는 천지 사이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단종 대왕(端宗大王)이 영월(寧越)에 피하여 계실 적에 금부 도사(禁府都事) 왕방연(王邦衍)이 고을에 도착하여 머뭇거리면서 감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정중(庭中)에 입시(入侍)하였을 때에 단종 대왕께서 관복(冠服)을 갖추고 마루로 나아오시어 온 이유를 하문하셨으나, 왕방연이 대답하지 못하였었다. 그가 봉명신(奉命臣)으로서도 오히려 그러했는데, 그때 앞에서 늘 모시던 공생(貢生) 하나가 차마하지 못할 일을 스스로 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가, 즉시 아홉 구멍으로 피를 쏟고 죽었다. 천도(天道)는 논해야겠으니, 그 공생의 성명이 전해와서 알 수 있는 단서가 있으면 본도(本道)로 하여금 계문(啓聞)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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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멕이라는 명을 받고 왔다. 단종이 왜왔냐 하니 왕방연이 차마 말을 못하더라. 그때 옆에 모시던 이가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즉시 아홉구멍에서 피를 쏟고 죽었다.
숙종때 단종을 신원복위 해주걸랑. 해서 저때 노산군일기 를 단종실록으로 겉표지만 바꿔.
더 자세한 당시 상황이 연려실 기술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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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부도사 왕방연(王邦衍)이 사약을 받들고 영월에 이르러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으니, 나장(羅將)이 시각이 늦어지다고 발을 굴렀다. 도사가 하는 수 없이 들어가 뜰 가운데 엎드려 있으니, 단종이 익선관과 곤룡포를 갖추고 나와서 온 까닭을 물었으나, 도사가 대답을 못하였다. 통인(通引) 하나가 항상 노산을 모시고 있었는데,스스로 할 것을 자청하고 활줄에 긴 노끈을 이어서, 앉은 좌석 뒤의 창문으로 그 끈을 잡아당겼다. 그 때 단종의 나이 17세였다. 통인이 미처 문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아홉 구멍에서 피가 흘러 즉사하였다. 시녀와 시종들이 다투어 고을 동강(東江)에 몸을 던져 죽어서 둥둥 뜬 시체가 강에 가득하였고,이날에 뇌우(雷雨)가 크게 일어나 지척에서도 사람과 물건을 분별할 수 없고 맹렬한 바람이 나무를 쓰러뜨리고 검은 안개가 공중에 가득 깔려 밤이 지나도록 걷히지 않았다. 《병자록(丙子錄)》
노산이 항상 객사(客舍)에 있으므로, 촌 백성들로서 고을에 가는 자가 누(樓) 아래에 와서 뵈었는데, 해를 당하던 날 저녁에 또 일이 있어 관에 들어가다가 길에서 만나니 노산이 백마를 타고 동곡(東谷)으로 달려 올라가는지라 길가에 엎드려 알현하며, “관가께서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하고 물었더니,노산이 돌아다보며 말하기를, “태백산으로 놀러간다.” 하였다. 백성이 절하며 보내고 관에 들어가니, 벌써 해를 당하였다. 《영남야어(嶺南野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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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각색이 된거지. 태백산에 가면 저 단종이 태백산에 머물었단 곳이 있더라 한번 가보니까. 태백산 참 싕기한 산이얌 그 꼭대긴.
세조가 죽이고 싶어서 죽인게 아니야
그리고 단종은 자살했을 뿐이야 저건 연산군 무오사화 때 죽은이의 에피소드를 그대로 차용한 것일 뿐이야. 김종직의 나라야 조선은.
저 죽는 장면 똑같은 모습이 무오사화 실록에 있어. 숙종때 각색을 한거지 단종 자살을 타살로. 아무도 말을 안하지 지금까지. 조선은 김종직꺼 라니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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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는 방계에서 또 막내잖아. 정통성이 없는거지. 그래서 그 그림자 딛고 보믄 나쁜말론 음험하고 좋은말론 대단하지. 동인 서인 이니 남인 북인이니 드세면 치고 조지고, 니들 세력 커봐라 납두다가, 뭔 일있으면 상대가 조져야 합니다 하면 그래 옳다 조지고. 참 왕 입장에선 아주 웃겼을거여. 그리 권력유지를 하는거지. 임란 후 불안불안해도 임란 끝나고 십년을 더 버텼어. 선조가 대단한거지 조선 백성들이 멍청한건지.
숙종은 완전 장자 승계. 대단해. 영조는 동생으로서 독약으로죽였니 소리 들으면서도, 역시 신하들 부리는거보면 신의경지야.
하튼 조선 왕들 보면, 다들 말이지 그리 간단한 인간들이 아니얌.
헌데 그 간단함이 아니란 말은, 걍 이 쪼끄만 땅에서 왕놀이 한게 다야. 딴 애들보다 더 넓게 볼 수 있는 자리고 신하 개개인들을.
그 답답한 애들보다 더 위에 섰다는 거뿐.
다들 깝깝하다 깝깝해.
중국 강희대제 때에, 혹자가 그러더만, 세계에서 제일 강국이었대 청나라 강희제때가. 헌데 강희제는 서양문명에 문을 닫아. 중국 1900년 사진이 허섭한 이유지. 다른 문명과 만나지 않은 문명은 도태되는거지. 헌데 중국의 힘은 역시 자생력이라. 그 갑골문의 하은주부터의 역사, 무수한 전쟁과 통일의 역사가 아주 찐하게 의식에 남아잇는 사람들이걸랑. 그 전쟁과 통일의 과정중에 힘이 에너지가 극대화 되고 뭉친거고 그게 지금 중국이야. 비록 강희제때 문을 닫아 잠시 비참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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