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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은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과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왕방연이 단종 죽이고 썼다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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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道昭昭, 其在懲惡之道, 所當論以逆律, 貢生姓名, 如有流傳可知之端, 令本道啓聞
저기 숙종실록의 단종의 죽음 시 어떻게 죽었는지가 세조때, 자살했다 예로써 장례를 치루다. 그 짧은 구절 이후 거의 250년 만에 처음 등장하는 구절이야. 저기서 숙종이 아마 해당 기사에 최석정. 이란 이가 영월로 부임하는데 얘기하는거 같은데. 천도니 뒤에 본도本道 니 헷갈리는데 언뜻보면
저기 보면 금부도사 왕방연이가 죽이러 왔는데 머뭇머뭇 말을 못하니까, 단종을 오래 모신 어느 공생(貢生), 심부름꾼이걸랑 노비정도 겄지. 이 이름모를 공생이, 자기가 대신하겠다고 나선거지. 해서 단종의 목을 끈으로 묶고, 그 연이은 연려실기록 병자록을 보면, 단종은 앉아있고 그 공생이 긴 목맨 줄을 단종 앉아있는 자리 벽 뒤의 창문 넘어에서 당겼다는 거걸랑. 그래서 단종의 아홈구멍 두눈두귀두콧구멍입구멍소변대변구멍 그 아홉구멍에서 피를 쏟고 죽었다.
뻥이지.
그 이은 연려실 기록 보면, 이내 따르던 시종시녀들이 막막 그 앞의 동강에 빠져 자살해서 시체가 동강에 둥둥 떠다닌게 그득하였다
더 뻥이지.
목매달아 목졸려 죽이는데, 피가 나니, 그것도 아홉구멍 전부에서.
시녀 시종들이 왜 동강에, 삼천궁녀 빠지듯이 빠져죽니. 야사는 믿을게 전혀 없고.
저 단종죽는 장면은 아주 똑같아 야사와 실록이. 250년 후의 실록. 야사도 단종사후 백여년 지난 후의 야사.
숙종은 저 야사를 보고 이야기를 한거걸랑. 아주 글들이 거의 같아. 이정형의 지퇴당집. 저 인용한 병자록은 인조때 인거 같고.
왕방연, 실록에 저기 유일하게 나오는 사람. 인물정보 전혀 없어.
저 당시 세조는, 그 글에서 내가 썼듯이, 단종복위(더 이전글 씀)에서 육신들 등 소위 역모세력 죽이고도, 단종한테는 세조가 예의 무지 차렸걸랑.
저 의경세자 죽음 이후로, 대신들이 계속 죽이자고 더 해도 허하지 않걸랑. 저 기사가 세번인가 본거 같은데 싫다는 말을. 그러다가 갑자기 어느 기사 말미에 저리 자살했다고 나오걸랑.
즉, 세조는 금부도사를 보낸 적이 없어. 정사는. 공신들이 몰래 보냈을리가 있나? 글쎄. 아니라고 봐. 그리 쉽게 하나? 글쎄, 음모론이야 소설을 쓸 수 있지.
저 목졸라 죽이는 장면이 내 기억에 나걸랑. 연산군일기 재밌어서.
연산 10년 윤4월 18일 무인 3번째기사 1504년 명 홍치(弘治) 17년 김영순이 이극균이 목매 죽었음을 아뢰다
의금부 경력(義禁府經歷) 김영순(金永純)이, 이극균(李克均)에게 죽음을 인동현(仁同縣)에서 내리고 돌아와서 아뢰기를,
"신이 극균의 거처에 당도하니, 글읽는 소리가 들리므로 물었더니, 그 첩의 아들 이연명(李延命)이었습니다. 신이 극균을 불러 죄명 전지(罪名傳旨)를 내어 주니, 극균이 꿇어앉아 읽기를 마치고 신에게 말하기를 ‘국가에서 신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이다.’ 하더니, 곧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서 모시 폭으로 목을 메고, 사람을 시켜 벽을 뚫고 밖에서 당기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막 당기려 하는데, 극균이 갑자기 중지시키고 밖으로 도로 나와서, 신에게 말하기를 ‘신의 나이 70이 다 되고, 몸에 병이 쌓여 있으니, 죽어도 다른 생각이 없겠습니다만, 신이 소시부터 변방에서 일하였으며, 나라 일에는 크고 작은 것 없이 모두 진심 갈력하였습니다. 신이 반복하여 생각해 보아도, 한가지 죄도 없습니다. 이 말을 주상께 전달하기 바랍니다.’ 하고, 곧 목매어 죽었습니다."
하였다.
갑자사화, 연산군 미칠때, 이세좌 편 들어줬다고 이극균을 죽여. 그 일가들 다 유배보내고 나눠주고 그 집터는 또 연못만들고
저 이극균집안이나 이세좌 집안이나 당시 조선 제일이거든. 이세좌가 젊을때 연산군 생모 윤씨 사약 심부름했다고 갖고 놀다 죽이지. 얜 아주 싸이코 또라이걸랑 진짜.
저 이극균 노인네가, 시골바닥에 처박혀가있걸랑 좌의정인데 완전 2인자지 서열. 영의정 다음. 그 노인네가 저리 죽는겨. 앉아서 모시줄 목에 걸고, 사람시켜서 창문너머 모시줄을 건네주고 밖에서 땡기는거걸랑.
저거랑 아주 또~옥같어. 단종 죽이는 숙종실록 장면이.
가만히 그날 내 저 글 쓰고 인용하고 보이 저 글이 연상이 되어서 쓰는건데.
단종한테 세조는 나쁜 감정 없어. 그리 못되게 안대했걸랑. 자기 동생 성질 사나운 금성이 역모어쩌고 해도, 사람시켜 너 그러지 말아라 하던 사람이걸랑. 주석정치라며 술자리 좋아하고, 술자리에서 정인지니 이전의 남이니 말 실수 해도, 거의 야자타임이걸랑 정인지 주사보믄. 해도 걍 넘어가던 인간이 세조야.
단종이. 만11세에 즉위하고, 1년 반 안되서 그 기대던 김종직 황보인 할아버지 계유난에 죽고. 나머지 1년 반 꼭두각시 하다가, 엄마 같은 유모들 죽을까봐 떨고, 그러다 자리 주고, 복위한다며 성승 성삼문 유응보 등 그 고문당하는거 다 봤을껴. 직접아마. 신음소리 다 들었을껴 직접 국문하니까. 그러다가 또 세조가 술자리 부르면 가고, 같이 사냥나가고, 그러다가 또 죽이라는 소리 듣고, 그래서 영월 유배가는날 그래도 세조는 자기 심복 환관을 저 지금 화양동 거기까지 배웅을 나가게 해.
저러면 만 16세에 죽지만, 5년동안 거의 사람 마음이, 애 마음이 말야, 기댈 세력 하나 없이 말야. 거의 에너지는 없어진걸지도 몰라.
자살했을 수도 있어.
자살아니어도, 실록이나 우리가 알듯이, 그렇게 비참하게 죽지 않았어.
야사가 저런거걸랑. 단종이 아주 불쌍한거야 조선 유학자들이. 야사는 유학자들이 쓰는겨. 민들 이야기가 아니지. 유학자들이 단종을 아주 불쌍하게 처리 해야지. 죽이는 이도, 금부도사를 안세우고, 그 곁의 심복인 어느 공생을 설정하지. 심복 노비가 죽이면 더 처절한겨 그 죽음이. 아예 이야기를 처절하게 만드는 거지. 아홉구멍에 피가나오는거지, 다른 죽음들과는 먼가 달라보여야 하고 특이해 보여야 하걸랑.
거기에 더해 실록에 없는, 따르던 시종 시녀들이 수없이 막막 동강에 몸을 던져 시체가 그득하였다. 갑자기 뇌우가 치고 비고 쏟아지느니.
다, 주작이지 주작.
저렇게 불쌍하게 죽은 단종. 을 설정을 하고
저기에다가 충 忠 을 설정하는겨. 지들만의 충. 즉 포장질 하는거지.
세조는 이제 충의 대상. 천도의 대상이 되지 않는거지.
그 대표적 인물이 소위 김종직. 조선 유학의 아주 깊은 뿌리야 뿌리.
(김종직 본관이 선산, 아버지 김숙자가 선산출신. 김숙자는 경상도 고령 성주등 부임. 어머니 밀양 박씨. 김종직은 외가 밀양 출생.
박정희가 선산출생. 고령박씨. 단지 역사의 우연이냐)
지는 그 세조 시대에 과거 보믄서 세조가 주는 녹봉 처먹으믄서, 그 충 이란 정의놀이를 하는거지.
해서 조의제문. 이 그래서 시작하는거고, 그 조의제문으로 무오사화가 빌미가 되지만. 저게 무지 상징적인 거거든. 김종직이 저 조의제문으로 무오사화때 조짐질 당하면서, 그 이후 조선의 유학의 우상은 김종직이 되는거야. 그 아래가 김굉필이고 그 직속이 조광조고 그 빠질하는 애들이 주욱 주욱 선조때 사림들이고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 이야.
조의제문. 의제. 를 조문하는 글.
의제 義帝. 초한지에 나오는 그 서초 초나라의 의제. 진나라 시황제 죽고 그다음 이야기. 초나라 명문가 출신 항우가 자기 나라 재건할라고 이전 초나라 왕의 핏줄을 찾아. 어디 시골 구석에 처박힌 양치기 꼬마로 한 핏줄이 남아 살고 있는걸 델꼬오지. 조선의 철종이지.
그리고, 진나라 함양에 진격하는겨 유방이랑 항우랑. 먼저 함양 먹은 유방이, 나중 온 항우한테 개길라다가 졸 무셔무셔 하고, 항우는 길거리 양아치 유방주제가 감히 하며 홍문의 연. 에서 칼춤 핑게로 죽일라다가 실패하고.
그리고 나서, 죽이는게 저 의제 걸랑. 양치기 목동 꼭두각시 의제.
의제 라 하면서 자기는 패왕이라 자칭하지 서초 패왕. 의제보다 높다는거지. 의제 의 義는 당당한 나를 신명이 보우하사 라는 갑골문이걸랑. 진짜 도에 근접하는게 의. 헌데 그런건 현실에 없어. 의 라는 것은. 그래서 이 의 라는 글자에 가짜 라는 속뜻이 있어. 의족 의수 진짜같은 발 진짜같은 인공손에 이 義를 쓰는거걸랑.
아주 저 꼬마 애를 갖고 노는거야 의제. 라고 이름 붙여주면서 항우애들이.
저 의제를 배에 태워서리 그 배를 구멍내고 죽이는겨
이 의제가 언제적 의제인데. 김종직이 서울 한양가는길 내 예전 익산이라 쓴거 같은데 써놓고 보니 잘못쓴거걸랑 지금 사드 하는 그 성주. 성주에서 자다가 꿈에 저 물에 빠진 의제 가 나와서리 운다는거지.
해서 조의제문. 을 썼다는데. 그게 말이 되냐.
저 의제가 19세인가 죽었걸랑. 그 불쌍한 죽음이 단종이랑 똑같은거지.
자기는 아주 충 하다 이거야 김종직은. 술주시 서문도 그렇고.
아 유학자들이 , 드디어 기댈 忠, 우상이 생긴겨. 우상. 인간은 빠질을 해야 하걸랑. 빠를 만들어야해. 조선 의 최고 아이돌 최고의 빠가 저 김종직이야 그래서.
해서 저 김종직을 조진 유자광은 천하의 간신배인거고.
유자광은 남이를 주작 역모질 하지 않았어.
남이의 성격을 봐야 해.
세조 14년 5월 1일 경신 2번째기사 1468년 명 성화(成化) 4년
서현정에 나아가 오자경 등에게 사후하게 하다. 실언한 남이를 옥에 가두다
남이가 취(醉)하여 나와서 말하기를,
"성상께서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을 지나치게 사랑하시니, 신은 그윽이 그르게 여깁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귀성(龜城)은 지친(至親)이고 또 큰 공(功)이 있으니, 귀성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누구를 사랑하겠느냐? 너의 말은 반드시 정실이 있으니, 누구와 함께 의논하였느냐?"
하였다. 남이가 대답하기를,
"다른 사람과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하니, 임금이 김국광(金國光)에게 명하여 끌어내다 의금부(義禁府)의 옥(獄)에 가두게 하였다.
세조 14년 5월 2일 신유 1번째기사 1468년 명 성화(成化) 4년
남이를 석방하고, 겸사복장을 파직하다
남이(南怡)를 석방하고, 겸사복장(兼司僕將)을 파직하였다. 사람이 위로하는 자가 있으므로, 남이가 대답하기를,
"내 말은 진실로 옳으니, 이것은 실로 죄가 없다."
하니, 듣는 자가 송연(竦然)하여 해괴하게 여기었다.
남이가 집안이 매우 좋걸랑. 태종 핏줄이라. 세조에겐 먼 조카뻘. 당시 졸 간사한 권람의 사위이고. 이시애 난때 공 세우고 공조판서를 줘 세조가. 건교부 국토부장관 나이 27세냐 28세냐.
귀성군(구성군) 이준은 임영대군의 아들, 세조가 계유난때 자기 동생 안평은 단종에 붙어서 유배보내 죽이고, 그 밑에 임영은 세조를 따랐걸랑. 그 임영의 아들, 남이랑 나이가 같은 이십대. 이 이준을 세조가 아껴. 해서 좌의정을 줘. 젊은애들한테 자리주며 옛날 공신들 견제하는거지.
헌데 술처먹다가 남이. 가 왜 세조임금아 이준을 그리 편애하냐 하는거걸랑. 세조 열받아서리 옥에 가두라 했는데 다음날 풀어준겨. 원래 세조성격이 이래. 세조가 졸 호탕해. 술자리서 애들 말실수 많이 해. 그거 다 받아주는이가 세조야.
헌데 다음날 옥에 나오면서 저 남이 가 하는말이. 그래도 내 말은 맞으니 죄가 없다. 했다는거지. 그걸 들은 이가 송연. 소름끼치며 해괴하게 느꼈다 는거걸랑.
즉 또라이라는거지. 세상이 지꺼걸랑. 말도 막할껴.
유자광이 두살이 많지만, 남이가 보기엔 유자광이 허섭한 서얼이걸랑 엄마가 노비출신이고 애비는 고려때 바닥서 치고 올라온 무관주제이고. 말을 그냥 생각나는데로 막 했을껴. 그거 잡고 유자광이 터뜨린거야.
유자광이 최대 간신이란 건 주작이야 그래서. 이전 유자광 글 이어서 마무리 하믄.
시작은 저 김종직이고, 아이돌 우상화 김종직. 그 뿌리는 단종이고, 그럴려면 단종의 죽음을 아주 찐한 억울함 슬픔의 이야기로 구성해야 하고. 머 꿈에 단종 죽은 엄마가 세조 에게 나타나서, 내아들의 억울한 죽음의 원수를 갚겠다 해서 세조 아들 세자가 죽었다느니, 뻥이지, 세자가 죽고 그것때메 단종이 죽은걸.
저 감정선들을 봐야 역사가 제대로 보여, 보다 온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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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남의 이야기에 덧씌우는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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