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mma Theologiae (written 1265–1274 and also known as the Summa Theologica or simply the Summa) is the best-known work of Thomas Aquinas (c. 1225–1274). Although unfinished, the Summa is "one of the classics of the history of philosophy and one of the most influential works of Western literature."[1]
숨마 테올로기아이. 테올로기카. 간단히 숨마. 떼올로지.라는 신학.은. 떼오스 라는 신. 더하기 로고스. 말 이야. 말은 이성이 되고 논리고, 이게 그리스도에선 (신의) 지혜. 배움. 앎.이야. 원칙으로는 신의 말.에 대한 최고치. 최고의 가르침. 신에 대한 앎의 최고 정수. 이걸 단순히 걍 신학대전.이리 번역 한건데. 물론 일본애들이 한거지. 저게 한글로 써있겠지만, 아마 저걸 한글로 읽는다는건, 고행 고통일거야. 왜냐면. 암호걸랑. 우리네 한글 성경 자체가 암호이듯이. 게르만애들이 천년 걸쳐 번역하고, 일본애들이 오백년 걸쳐 번역한걸, 어떻게 한글로 바로 번역이 되겠니 그게. 대부분 저게 일본말을 한글 가나 로 옮긴거지 ㅋㅋㅋ. 참 한심한 건데 진짜.
민중 신학 해방 신학 저 도포자락 늙은이들, 정말 한심한겨 저 수준이. 저런 애들이 이땅에선 스승이고 위대한 민족이야. 저것들이 수메르가 환인 해 댄다? 웃겨 저 조선 민족 애들의 환빠놀이. 저걸 쟤들이 한대니까? ㅋㅋㅋ. 저게 이땅빠닥의 진보 니 민족 이니 이념 놀이 하는 애들의 최고 선생 이념이야.
어이없는데 진짜.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글은 좀 보자고 어떤 말글을 씨부렸는지. 아 이사람 말은 진짜 깊어 이게. 걍 대충 봤는데. 이걸 글로 정리하면서 함 보자고. 저 위키영어는 정말 최고야 저게. 모든 테마들을 정리한거 보면.
글바닥이, 고대그리스 텍스트들의 사유.에 기반한거라 고대그리스 인간들의 랭귀지게임. 그 언어놀이 속에서 사용한 단어의 느낌이 없으면 저게 먼말인지 몰라.
신학이 죽은 시대야 지금. 신학을 배우도록 해. 저게 유럽애들도 고대가 끊긴 영어단어를 지금 쓰는거걸랑. 얘들도 지금 허섭한 이념놀이로 점점 후져지는겨 그래서.
Thomas Aquinas was a theologian and a Scholastic philosopher.[84] However, he never considered himself a philosopher, and criticized philosophers, whom he saw as pagans, for always "falling short of the true and proper wisdom to be found in Christian revelation."[85] With this in mind, Thomas did have respect for Aristotle, so much so that in the Summa, he often cites Aristotle simply as "the Philosopher", a designation frequently used at that time. Much of his work bears upon philosophical topics, and in this sense may be characterized as philosophical. Thomas's philosophical thought has exerted enormous influence on subsequent Christian theology, especially that of the Catholic Church, extending to Western philosophy in general. Thomas stands as a vehicle and modifier of Aristotelianism and Neoplatonism. It is said that Thomas modified both Aristotelianism and Neoplatonism by way of heavy reliance on the Pseudo-Dionysius.
아 이걸 저거 모든걸 다 할수 있으려나 진이 빠져서리.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자고 스콜라 철학자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기를 철학자라고 여기지 않았다, 철학자들을 비판했다, 그들을 페이건이라 여겼다, 왜냐면 걔들은 진짜의 최적의 앎에 모자르다면서, 지저스가 드러낸 것에서 발견되어진 것에 대해. 이런 생각에서도,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리스펙트 했다, 숨마 에서 그는 종종 아리형을 줄여서 그 필라소퍼. 그 철학자.라고 인용한다 그당시 사용한 대명사로. 그의 많은 사상은 철학적 주제에 기반하고, 이런 의미해서 철학적이다 라고 특징지을 수 있다. 토마스의 철학적 사고는 그리스도 신학에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나 로마 카톨릭의 신학에, 더하여 일반적으로 유럽 철학에도.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신플라톤주의를 주요 수단과 보조 수단으로 써먹으면서 자기이야기를 한다. 토마스는 아레오파기테스의 디오니소스 에 깊이 기대면서 아리스토텔레스와 신플라톤을 보완했다 고 말하여진다.
이사람의 신에 대한 이야긴, 아리스토텔레스 와 플라톤 이야. 이들의 세계관으로 신 에 대해 접근하는겨.
Commentaries on Aristotle[edit]
Thomas Aquinas wrote several important commentaries on Aristotle's works, including On the Soul, On Interpretation, Nicomachean Ethics and Metaphysics. His work is associated with William of Moerbeke's translations of Aristotle from Greek into Latin.
아리스토텔레스.가 핵심이야. 아리형의 책들을 다 본겨. 모르베크 의 윌리엄 이 번역한 그리스어로 된 아리형의 라틴어번역판을 주로 본 듯하고. 즉 12세기 번역이 없었으면, 토마스 아퀴나스 란건 없어.
Epistemology[edit]
See also: Double truth
Thomas Aquinas believed "that for the knowledge of any truth whatsoever man needs divine help, that the intellect may be moved by God to its act."[86] However, he believed that human beings have the natural capacity to know many things without special divine revelation, even though such revelation occurs from time to time, "especially in regard to such (truths) as pertain to faith."[87] But this is the light that is given to man by God according to man's nature: "Now every form bestowed on created things by God has power for a determined act[uality], which it can bring about in proportion to its own proper endowment; and beyond which it is powerless, except by a superadded form, as water can only heat when heated by the fire. And thus the human understanding has a form, viz. intelligible light, which of itself is sufficient for knowing certain intelligible things, viz. those we can come to know through the senses."[87]
토마스는 믿었다, 진짜에 대한 지식이 어떤 것이든 간에, 인간은 신성한 도움이 있어야 배울 수 있다는겨. 더하여 그 분간 분별의 능력 배움 이란건 신에 의해서 배운대로 활동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믿었다. 인간 존재들이란건 그런 신적인 드러나는 특별한 도움 없이도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는 내츄럴한 능력을 가졌다고. 그런 신의 계시라는 시안한 도움과 드러남은 종종 벌어지는데, 특히나 진리 진짜들이 믿음 으로 닥아갈때 그런 일들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런건 신이 인간의 네이쳐 에 따라서 주는 빛.이다. "신에 의해 창조된 것들에 주어진 모든 포름 들은 정해진 활동 움직임을 위한 파워 동력을 갖고 있고, 그 파워는 그것 자신의 최적의 받은 파워에 비례해서 쓸수 있는거고 그걸 벗어나는 건 아무힘도 없다, 추가로 더해진 포름이 없다면. 마치 물이 불에 의해서 데펴질때 고만큼만 데펴지는 것처럼. 인간의 이해란건 어떤 포름 을 갖는거다. 다시말해서, 분별가능하게 해주는 빛, 그 자체로 충분하다 어떤 분별가능한 것을 안다는건. 다시말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들, 감각기관들을 통해서.
히포의 오거스틴.은 인간의 인식.은 신의 일루미네이션, 신이 빛을 쬐어주는겨. 신의 도움이 필수 적이야. 인간 자체의 이성이란 없어. 오직 신이야. 그래서 이성이 없어도, 신의 빛 쬐임으로도 목격자의 증언을 분간을 제대로 퍼뜩 알수 있다고 까지 해. 토마스는 그게 아냐. 인간은 신의 빛. 신성한 도움.이 없어도 이해 분간 의 이성적 능력이 있다는겨. 네츄럴 네이쳐 는 모~두 저건 아리스토텔레스 의 피시스.야 저건 자연 이 아녀. 자연 이라 말하면서 회로가 막 엉켜버려.
토마스의 네이쳐 내추럴.은, 아리형이 이데아를 뽀개 버리고 만물에 각각 심은 만물 각각의 이데아여. 저 코어퍼럴 바디 라는 생체육신이든 물건이든, 저건 매터 와 포름 이라는 휠레 와 모르페 로 되어있어. 휠레들이 모여서 저놈의 모르페 라는 포름 으로 가는게 목적이야 얘의 세계관은. 저 바닥에 피시스 라는 네이쳐 가 있어서 휠레(매터)들을 모르페(포름)으로 만들게 끔하고 유지하게끔하고 그 네이쳐에 의해서 포름이 허물어지는겨.
인간은 바디 라는 매터와 프시케 라는 포름 으로 되어있고, 이 바닥에 또한 피시스 라는 네이쳐 가 있어서 저 생체육신의 매터 가 어떤 포름들을 시간이 가면서 유지를 하는겨. 이때 특이하게 꺼낸건, 영혼에 대하여 라면서, 최적의 포름. 모르페 는 유데모니아 라는겨. 이 유데모니아 를 이루고 지속해가는게 교육이고 인간의 삶의 목적인겨 아리형은. 유데 모니아 라는건 최고의 신적. 인 상태야. 이건 신과 합일 된 상태야. 가장 좋은겨. 가장 잘하는거고. 딱 고상태야. 이게 유데모니아야.
저 바닥에도 네이쳐 라는 피시스 가 있는거고. 토마스 아퀴나스 에서 나오는 모든 네이처 내추럴 포름 form 은 정확하게 아리스토텔레스의 랭귀지 게임. 언어놀이 속에서의 단어의 뜻이야. 저걸 형상질료 자연 은총 으로 번역하는 순간 암호가 되버리는겨.
토마스.는, 배움 에 관한한, 디바인 헬프. 디바인 레벌레이션 이 필요가 없는겨. 이건 인간이 자체로 장착된 인간의 네이쳐.의 작동으로 하는거야. 헌데 이 네이쳐의 작동의 파워지수.는 신 이 심은거야. 신이 디자인한거고. 이 신이 과거에 제공했던 네이처 의 파워지수 만큼만 배움.에 써먹는거야. 요걸 똑 떼서, 데카르트 가 써먹어.
배우는것과 행동하는 것은 별개야. 이 배운대로 행동하는 것에, 신의 개입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는겨. 즉 이건 판단을 유보한겨.
헌데. faith 페이쓰 라는 믿음. 은 인간의 네이쳐 로 스스로 배우는 것.과 이건 전혀 별개야. 네이쳐 만으로는 페이쓰. 단계로 갈 수 없어. 이건, 신의 도움 이 필요해. 이게 디바인 레벌레이션 이야. 믿음 이란건 신의 도움 신의 빛 이 작동될 때에야 가능한거야.
믿음 이란건, 근거 가 없는겨 이건. 저건 탁월한 명제야.
저건 저 사람 말대로, 이성의 영역이 아냐 믿음이란 페이쓰는. 저건 그걸 초월하는, 신의 드러남.을 느끼는 건데, 여기선 신의 도움이 그래서 필요한겨.
즉 대깨문 이라는 종교 가 저건 이성의 활동이 아니라, 자기 교주님의 계시를, 상식을 초월하는, 슈퍼내추럴한 걸 저들이 각각 느낀거야. 저런 이들에게, 말로 논리로 어떻게 접근을 하니. 저건 신의 영역 신의 도움이야. 대깨문을 이해하고 이념에 민족 에 조선 의 사람들을 이해하려면 대깨의 신 이념의 신 조선 민민 의 신 의 영험 을 니덜이 받으면 돼. 저걸 말로 상대하는건 미개한겨 그건. 그러니 저들을 이해하려면 저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저들 신들의 영험을 가서 받도록 해 그럼 이해가 가는겨 저 오컬트 집단이.
오컬트의 믿음 페이쓰.는 그래서 저건 이성의 영역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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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의 인식론.이 이걸 강하게 말해주는겨. 기본적인 배움 지식.과 페이쓰 라는 믿음.의 차이야 이건. 신의 도움의 필요 유무.
Ethics[edit]
See also: Christian ethics
Thomas's ethics are based on the concept of "first principles of action".[88] In his Summa theologiae, he wrote:
Virtue denotes a certain perfection of a power. Now a thing's perfection is considered chiefly in regard to its end. But the end of power is act. Wherefore power is said to be perfect, according as it is determinate to its act.[89]
Thomas emphasized that "Synderesis is said to be the law of our mind, because it is a habit containing the precepts of the natural law, which are the first principles of human actions."[90][91]
According to Thomas "... all acts of virtue are prescribed by the natural law: since each one's reason naturally dictates to him to act virtuously. But if we speak of virtuous acts, considered in themselves, i.e., in their proper species, thus not all virtuous acts are prescribed by the natural law: for many things are done virtuously, to which nature does not incline at first; but that, through the inquiry of reason, have been found by men to be conductive to well living." Therefore, we must determine if we are speaking of virtuous acts as under the aspect of virtuous or as an act in its species.[92]
이 사람 말이 깊어 이게. 이게 스콜라 철학이란겨. 이나라에 스콜라 철학을 이해하는 애가 단 하나 없어. 저게 제대로만 이야기하면 참 재밌걸랑. 저들의 말들이 이해가 되어야 데카르트 베이컨 칸트 헤겔 들이 이해가 되고 비트겐슈타인이 이해가 돼. 스콜라를 이해하려면 플라톤 아리스토가 이해가 되어야 하고. 플라톤 아리형이 이해가 되려면 수메르가 이해가 되어야 해.
그치, 결국 나 혼자 외엔 아무도 몰라. 저걸 써내려가며 정리한 유럽애들은 다 죽었고. 이해할 애들이 없는거지 지금은.
에띡스. 라틴어의 캐릭터야. 영혼에 새겨진 것. 삶과 행동의 준칙들.이 에띡스.야. 이게 도덕 이니 윤리 가 아냐. 도덕 윤리 라는건 조폭 들의 피라미드 놀이로 아래사람들 노예로 부리면서 창녀들 거느리면서 꼰대가 독재하는 이념 인겨. 그게 예의 이고. 동양빠닥의 단어를 막 쟤들한테 대입하는건, 야 그건 인간으로선 할짓이 아니지. 안맞아 그리 번역하면. 먼가 걸리는겨 이해가 안되고. 왜냐면, 언어놀이 속에서 쓰던 말이 전혀 달라서 그래.
Virtue denotes a certain perfection of a power. Now a thing's perfection is considered chiefly in regard to its end. But the end of power is act. Wherefore power is said to be perfect, according as it is determinate to its act.
버츄 란건 어떤 파워.의 어떠한 퍼펙션.을 콕 찝어 말하는거다. 퍼펙트 란건 페르 파키오.여. 전체를 뚫어서 다 만든겨. 완벽 완전.이야. 힘의 완벽한 상태여 이건. 최고여 최고. 아레테 를 정확히 번역한겨. 이게 먼 놈의 도덕 의 덕 미덕 저쩌고가 아냐. 최고 최절정.이야. 어떤 것의 완벽함 이란게 그것의 끝에 대해서 거론되는건데. 이 파워의 끝이란 건 행동 이다. 그래서 파워가 완전 완벽 최고치다 라고 말하여지는 이유다, 그것은 그것의 움직임 활동을 결정하는 것이고.
버츄 라는건 마음 내재된 파워지수의 최고치 고 완벽함 이라 말할때는 그 끝의 정도에서 재는 거걸랑. 파워의 끝에서 이게 행동으로 눈에 보이는겨. 행동을 보면 그 파워의 완전함 정도를 알수 있는거고. 버츄 라는건 추상명사로 일곱개로 뒤에 정리하지만 저것들이 모두 그 사람들의 행동 에 다 드러난다는거고.
최고 잘함의 버추 를 갖아야 하는겨. 이게 에띡스 야. 얘들 에띡스 의 궁극.은 각각의 미덕 이란 분야들에서 최고의 경지 를 다다르고 유지하고 행동으로 보여줘라. 이게 버츄.야. 이게 아레테.고.
에띡스.의 핵심은 버츄어스 액션.이야. 삶의 준칙 잣대의 기준은 버츄에서 나온 액션 이고. 이건 신더레시스 synderesis 라는 스콜라용어인데, 칸트가 써먹는 실천이성.이야. 행동이 버츄인가 아닌가, 행동이 옳은가 아닌가를 판단하는겨 이 이성으로. 인간의 이성 인식 이라는게, 진짜 냐 가짜냐 를 사색적으로 판단 하는 게 있고, 행동을 에띡스가 좋은 옳은 방향으로 하게끔 판단하는 이성 이 있다는겨. 이 행동을 제대로 하게끔 작동하는 이성이 신더레시스.야. 이건, 백지로 스민게 아니라, 이미 내츄럴하게 프로그램 이 다 되서 인간의 마음 마인드 nous 누스 에 다 있는겨. 내재가 된겨. 이게 행동의 제1원칙들인데 이미 다 인간이면 내추럴하게 이 행동 실천 이성 이 있어서 이거대로 살면 되는거야. 그 각각의 스피시즈. 유형 타입 별 개별적으로 심어진 파워의 네이쳐 대로.
저건 버츄 가 아녀.
버츄 란건 최고치 완벽함이야. 이건 인간에 심어진게 아냐. 이걸 끄집어 내서 활동으로 써먹는건 인간의 이성의 작용으로 해야만 한다는거야. 네이쳐 가 기본적으로 이걸 장착을 시켰는데, 네이처가 이게 처음부터 작동하게끔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아. 이건 인간의 신더레시스를 작동을 잘 해서, 네이쳐가 숨겨놓은 완벽함의 네이쳐.를 파악해서 활동시켜야 한다는거야.
모든 네이쳐.는 신이 장착을 시킨겨. 나름대로 각각 개별적으로 그 최고치 를 다 구비를 해줬어. 이걸 찾는건 인간의 이성의 노력의 문제야. 이미 장착된 네이처의 파워지수가 부족할 수 있어 남들과. 그럼 슈퍼애디드. 먼가 도움을 받아야해 또한. 신으로 부터.
Thomas defined the four cardinal virtues as prudence, temperance, justice, and fortitude. The cardinal virtues are natural and revealed in nature, and they are binding on everyone. There are, however, three theological virtues: faith, hope, and charity. Thomas also describes the virtues as imperfect (incomplete) and perfect (complete) virtues. A perfect virtue is any virtue with charity, charity completes a cardinal virtue. A non-Christian can display courage, but it would be courage with temperance. A Christian would display courage with charity. These are somewhat supernatural and are distinct from other virtues in their object, namely, God:
토마스는 추기의 버츄들 네가지를 규정한다. 신중 관용 정의 용기. 이것들은 내추럴이고, 네이쳐에 리비얼, 드러난 것이다. 이들은 모두에게 묶여있는거다. 즉 모든 인간들에게 이게 다 있어. 반면에 신학의 덕 신덕의 세가지 믿음 소망 자선. 이 있다. 토마스는 서사한다 버츄들을, 불완전(불완공) 와 완전(완료 완공)한 버추들로. 완벽한 버추는 자선 류의 버추.이고, 지선은 어떤 카디널 버츄 주요버추 를 완성시킨다. 비그리스도 라도 용기를 보여줄 수 있다. 관용을 같이 한 용기일 수도 있다. 그리스도는 자비를 같이한 용기를 보여줄거다. 이런 것들은 다소 슈퍼 내추럴 하다, 그들의 오브젝트에 있는 다른 버추와는 구분된다, 즉 신.이다.
카디널 이라는게 추기경. 하지만. 이건 플라톤의 단어야. 여닫이문의 힌지.를 추기 추구 하는데, 이게 없으면 문 이 없어. 문을 못 열고 닫아. 이건 모든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장착해야만 하는 버츄들이란거여. 그리스도든 비그리스도든 모두. 허나 신이 개입된 덕, 신의 로고스 신의 지혜를 통한 덕은 그리스도인만의 버츄 라는겨. 믿음 소망 자선. 이건, 슈머내추럴 한겨. 인간의 네이쳐 를 넘는거야. 이건 다른 버추들. 즉 추기의 네가지 버츄랑 구별이 되는거고, 이건 신과 관련된 신의 것이란거여.
Now the object of the theological virtues is God Himself, Who is the last end of all, as surpassing the knowledge of our reason. On the other hand, the object of the intellectual and moral virtues is something comprehensible to human reason. Wherefore the theological virtues are specifically distinct from the moral and intellectual virtues.
신의 로고스의 덕들의 오브젝트는 신 그자신이다. 오브젝트.는 객체이고 보는 자인 서브젝트가 바라보는 대상이야. 이것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단어이고, 이게 고대로 지금 물리학에서 고대로 쓰는개념이야. 신학적인 버추를 함양한 객체는 신 그 자신이다. 이 신.은 모두의 가장 끝이고, 우리 이성의 지식 배움 앎을 넘어서는거다. 반대로, 지적이고 모랄의 버추들의 오브젝트 객체는 인간 이성에 닥아오는 이해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신학적인 버츄들은 특별히 구분된다 모랄과 분별의 버추들과.
믿음 소망 자선.은 신 이라는 그리스도의 신 이 개입이 되어야만 지닐 수 있고 행동될 수 있는 버추 들 이란겨.
Thomas Aquinas wrote "[Greed] is a sin against God, just as all mortal sins, in as much as man condemns things eternal for the sake of temporal things."[94]
Furthermore, in his Treatise on Law, Thomas distinguished four kinds of law: eternal, natural, human, and divine. Eternal law is the decree of God that governs all creation. It is, "That Law which is the Supreme Reason cannot be understood to be otherwise than unchangeable and eternal."[95] Natural law is the human "participation" in the eternal law and is discovered by reason.[96] Natural law is based on "first principles":
토마스 아퀴나스 는 썼다. 탐욕은 신에 반대하는 죄.이다. 모든 생체육신들의 죄들처럼, 인간이 잠시의 것을 위해서 영원한 것들을 저주한다는 면에서.
더우기, 그의 법에대한담론.에서 토마스는 법의 네가지종류 를 구별한다. 영원함, 내추럴, 인간적, 신적. 영원한 법은 신의 교리고 모든 창조물을 다스린다. 그 법은 최고의 이성인데, 불변이고 영원하다는 것 이외로는 이해될 수 없다. 내추럴한 법은, 영원한 법에 인간이 개입 참여한 거고 이건 이성으로 발견된다. 내추럴한 법은 첫번채 준칙들에 근거를 둔다.
내추럴한 법을 어기는건 인간이 개입한거고, 이걸 어기는건 인간세상에서의 죄와 벌로 처리되는거고, 영원한 법 이라는 신이 직접 주재한 법을 거스르는건 이건 신을 어긴겨. 이건 신이 죄를 다스려. 탐욕은 내추럴한 법, 인간의 법 이 아니라 영원한 법, 신의 법 에 적용되는 큰 죄란겨 이건.
저게, 주요 네가지 와 신의 버츄 세가지.를 또한 달리 보는겨. 주요 네가지 버추는 내추럴 한거야. 이걸 어기는건 인간의 죄고 인간세상에서 벌하는거야. 허나 세가지 버추에 반하는, 믿음 소망 자선. 에서 탐욕이란건 자선 에 반하는 죄란겨. 똑같이 불신, 절망 도 이건 신에 반하는 죄고 영원한 법에 거스르는겨. 쎄 그 벌이.
. . . this is the first precept of the law, that good is to be done and promoted, and evil is to be avoided. All other precepts of the natural law are based on this . . .[97]
내추럴한 법은 첫번째 준칙을 근거로 두는데, 그래서, 굿 이 행해져야 하고 볻돋워져야 해. 악은 피해져야 해. 다른 모든 내추럴한 법의 준칙들은 이 첫번째 준칙에 근거를 두다.
Whether the natural law contains several precepts, or one only is explained by Thomas, "All the inclinations of any parts whatsoever of human nature, e.g., of the concupiscible and irascible parts, in so far as they are ruled by reason, belong to the natural law, and are reduced to one first precept, as stated above: so that the precepts of the natural law are many in themselves, but are based on one common foundation."[98]
내추럴한 법은 몇가지 준칙들을 갖고 있어, 이중에 하나만을 토마스가 말한대. 인간의 네이쳐가 갖고 있는 어떤 구성요소들이던 간에, 예로 굶주린 욕정과 성질내는 요소들 의 경향들, 이들이 하고픈데로 하고자 함은, 또한 그정도 만큼 이성에 의해 다스려지는거고, 그래서 내추럴한 법에 속한다, 그래서 이런 것도 첫번째 준칙으로 귀결된다 위에서 서술했던. 자연법의 준칙들이란게 그 자체로 내재가 된것들이 많지만, 하나의 공통적인 기반에 근거하고 있다.
즉 내추럴한 법이 인간이 만든 법이고, 이것의 제1준칙은 선한 짓 하고 복돋우고, 악함은 피하라. 이게 모두를 커버하는 첫번째 준칙이고, 욕정과 성질 도 이에 관한 죄니 여부.는 저걸 기준으로 판단한다는거지.
The desires to live and to procreate are counted by Thomas among those basic (natural) human values on which all human values are based. According to Thomas, all human tendencies are geared towards real human goods. In this case, the human nature in question is marriage, the total gift of oneself to another that ensures a family for children and a future for mankind.[99] He defined the dual inclination of the action of love: "towards the good which a man wishes to someone (to himself or to another) and towards that to which he wishes some good".[100]
결혼. 살고자 하는 욕망, 낳고자 하는 욕망도 이런 기본적 내추럴한 인간의 가치, 모든 인간의 가치가 근거를 두고 있는, 것들이란 측면에서 토마스가 또한 말해. 모든 인간의 관성, 경향, 마음의 쏠림은 실재로 인간적인 좋음들에 향한다. 이런 경우에, 문제제기가 되는 인간의 네이처.는 결혼 이란것이다. 이건 자기자신을 남에게 완전히 주는 선물 인데, 이건 아이들에겐 가족을 보장해주고 인류를 위해선 미래를 보장해준다. 토마스는 한쌍의 사랑의 행위.의 쏠림을 규정했다.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바라는 선함(그 자신에게 또는 또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떤 선함을 바라는 그 대상.
결혼 을 하고 가족을 꾸려서 아이를 낳고 사랑을 하는건, 선을 하는거고 복돋운다는거지. 인간의 러브 는 그 대상.과 굿.에 같이 쏠린다는 거고. 여기서 굿 이여 굿. 굿이 동반되는 대상 일 뿐인거고. 이건 내추럴한 법.의 제일준칙 이고 이 내추럴한 법에 의한 자연스런 인간의 쏠림일 뿐이다.
Concerning the Human Law, Thomas concludes, "... that just as, in the speculative reason, from naturally known indemonstrable principles, we draw the conclusions of the various sciences, the knowledge of which is not imparted to us by nature, but acquired by the efforts of reason, so to it is from the precepts of the natural law, as from general and indemonstrable principles, that human reason needs to proceed to the more particular determination of certain matters. These particular determinations, devised by human reason, are called human laws, provided the other essential conditions of law be observed ..." Human law is positive law: the natural law applied by governments to societies.[101]
인간의 법에 대해서 토마스는 결론한다. :"스페큘러티브 리즌. 사색의 이성. 진리를 구별하는 이성으로, 내추럴하게 알게 되는, 자명한 원칙들을 통해서, 우리는 다양한 분간들, 그것들을 배우는건 내이쳐에 의해 우리에게서 분리 되지 않는거고, 이성의 노력들로 오히려 얻어지는건데, 네이처한 법의 준칙들로 부터 그리 되는거고, 보편적이고 자명한 원칙들로 당연히 그리되는건데, 즉 인간의 이성은 어떤 매터들, 휠레들,의 보다 특별한 결정들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특별한 결정들 제한들은 인간의 이성에 의해 수정이 되는 것이고, 해서 인간의 법들.이라고 불린다, 나머지 필수적인 법의 조건들이 덧대지면서..." 인간의 법은 포지티브 로.이다. 내추럴한 법.은 거번먼트들, 다스리는 권력단위들에 의해서 소사이어티들에 적용된다.
이게, 이후 법사상의 핵심이 되는, 번역된 자연법 과 실정법. 이 되는 내추럴 로.와 휴먼로(포지티브 로)의 시작이야.
법이 이터널 내추럴, 휴먼 디바인. 이터널은 디바인(신적).이고 내추럴은 휴먼.과 성질이 같으면서도, 내추럴과 휴먼을 구분을 해. 내추럴 로 휴먼 로. 자연법 실정법. 내추럴이 자연 하면서 참 애매한건데.
무엇이 진짜인가 를 구분하는 스페큘러티브 리즌이라는 순수한 이성을 통해서 인간의 생활에 적용되는 휴먼 로. 인간의 법들을 만들어도 되는 정당성을 부여해. 저걸 만들어 내는 이성이란건 네이처.에 기반을 두는거고, 저 네이처의 제일 준칙은 선을 지향하고 악을 배제하는겨. 보편과 자명으로 내추럴하게 이성이 끌어낼 수 있다는겨. 그래서 각각의 개별적인 한계들 제한들을 둘 수가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관찰하면서 수정보완 할 수 있고. 그런 세부적인 인간의 법들을 만들어도 되고 만들어야 한다.야.
From Old French positif, from Latin positivus, from the past participle stem of ponere (“to place”). Compare posit.
포지티브 로.라는게 실정법. 이란게 실생활에 실제로 규정하는 법이야. 포네레.의 과거시제 완료야. 놓다 여. 두다. 과거에 놓은거야. 정했어. 그 정한게 파티시플. 공유가 되어있는겨 지금까지. 과거에 정하고 둔 것들이 계속 적용이 되는겨. 법들을 계속 만들어 써먹으라는거야.
그래서 네이처 에 기반한 법.이 있고, 저렇게, 적극적으로 인간의 이성이 개별적으로 나가서 각각의 사례들에 제한 하는 법들을 만드는 휴먼로. 포지티브 로.가 있는겨. 이게 근대 법 사상의 두개야.
Natural and human law is not adequate alone. The need for human behavior to be directed made it necessary to have Divine law. Divine law is the specially revealed law in the scriptures. Thomas quotes, "The Apostle says (Hebrews 7.12): The priesthood being translated, it is necessary that a translation also be made of the law. But the priesthood is twofold, as stated in the same passage, viz, the levitical priesthood, and the priesthood of Christ. Therefore the Divine law is twofold, namely, the Old Law and the New Law."[102]
Thomas also greatly influenced Catholic understandings of mortal and venial sins.
내추럴 로 휴먼 로. 만으론 부족해. 인간의 행동을 지도하는데 필요한게, 디바인 로. 신성한 법. 이건 성서에 드러나 있어. 교회법으로 써먹는거고. 토마스는 인용한다. 사도는 말한다. 히브리인서. 사제쉽.이라 번역이 되었는데, 법으로 구성되어있다고 번역될 필요가 있다. 사제쉽이란 사제정신은 두개의미다 같은 구문에서. 레위인적인 사제정신, 그리고 지저스의 사제정신. 그러므로 신의 법도 두개의미다, 올드 법, 새로운 법. 구약법 신약법
토마스는 또한 죽을 죄와 용서할 죄 에 대한 카톨릭적 구분에 심대히 영향미쳤다.
모탈 죄.는 죽을 죄고. 베니알.은 venia 베니아 라는게 용서 야. 용서 가능한 죄야.
Thomas Aquinas refers to animals as dumb and that the natural order has declared animals for man's use. Thomas denied that human beings have any duty of charity to animals because they are not persons. Otherwise, it would be unlawful to kill them for food. But humans should still be charitable to them, for "cruel habits might carry over into our treatment of human beings."[103][104]
Thomas contributed to economic thought as an aspect of ethics and justice. He dealt with the concept of a just price, normally its market price or a regulated price sufficient to cover seller costs of production. He argued it was immoral for sellers to raise their prices simply because buyers were in pressing need for a product.[105][106]
동물들은 말못하는 애들로 간주하고. 내추럴한 질서는 동물들을 사람의 사용물 로 선언했다. 토마스는 인간 존재가 동물들에게 자선의 의무를 가진다는 건 거부했다 왜냐면 동물들은 사람들이 아니니까. 그렇지 않았으면 동물들을 먹기위해 죽이는건 불법이 되었겠지만. 그러나 인간들은 동물들에게 그래도 자비로와야 해, 잔혹한 습성들은 우리가 인간들을 다룰때 그대로 스며 들걸랑. 동물에게 잔혹하면 그대로 인간 상대로 잔혹해 진다는거지.
토마스는 경제적인 사고에도 기여했다. 적정 가격. 시장 가격 또는 규제된 가격은 판매자가 생산원가들을 넘기에 충분할 정도여야만 한다고. 판매자들이 단지 구매자들의 그 상품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해서 가격을 올리는건 모랄하지 않다 고 주장했다.
Political order[edit]
Thomas's theory of political order became highly influential. He sees man as a social being that lives in a community and interacts with its other members. That leads, among other things, to the division of labour.
Thomas made a distinction between a good man and a good citizen, which was important to the development of libertarian theory. That is, the sphere of individual autonomy was one which the state could not interfere with.[107]
토마스의 정치적 질서의 이론은 매우 영향력이 있었다. 그는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여기고 공동체에서 살아야 하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해야 하는 존재로 여긴다. 그런고나점은 무엇보다도 분업. 으로 다다르게 된다.
토마스는 굿맨 과 굿시티즌. 좋은 사람과 좋은 시민을 구별한다. 이건 자유주의 이론의 발전에 중요했다. 이게 개인적 자율의 영역이고, 국가가 간섭할 수 없는 것이었다.
Thomas thinks that monarchy is the best form of government, because a monarch does not have to form compromises with other persons. Moreover, according to Thomas, oligarchy degenerates more easily into tyranny than monarchy. To prevent a king from becoming a tyrant, his political powers must be curbed. Unless an agreement of all persons involved can be reached, a tyrant must be tolerated, as otherwise the political situation could deteriorate into anarchy, which would be even worse than tyranny.
According to Thomas, monarchs are God's representatives in their territories, but the Church, represented by the popes, is above the kings in matters of doctrine and morality. As a consequence, worldly rulers are obliged to adapt their laws to the Catholic Church's doctrines and determinations.
Following Aristotle's concept of slavery, Thomas justifies this institution on the grounds of natural law.[108] However, Thomas also distinguished between 'natural slavery', which is for the benefit of both master and slave, and 'servile slavery', which removes all autonomy from the slave and is, according to Thomas, worse than death.[109]
토마스는 마너키. 혼자 다스림. 군주제 를 지배의 가장 좋은 형태라고 생각한다. 군주는 다른 이들과 협의할 필요가 없기때문이다. 더우기, 토마스에 따르면, 올리가르키, 과두제, 몇몇의 다스림. 은 참주제로 가기가 더 쉽다고 한다 혼자의 군주제보다. 킹이 참주가 되는걸 막으려면 그의 정치적 권력은 억제되어야 한다. 모든 이들의 동의가 이뤄진다면 참주 란 인간도 관용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왜냐면, 정치적 상황이 무정부로 갈수 있기 때문이며 그것은 참주보다 더 나쁘기 때문이다.
토마스에 따르면, 군주들은 신의 대표자들이다 그들의 영토들에서. 그러나 교회는 교황들이 대표인거고, 가르침과 모랄 측면에서 킹들보다 윗자리다. 결론적으로 세속의 지배자들은 그들의 법들을 카톨릭 교회들의 가르침들과 결정들 제한들에 따라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제 의 생각을 따라서, 토마스 도 이 제도를 정당화 한다. 내추럴한 법.에 근거로. 그러나 토마스 는 내추럴한 노예제, 이건 주인과 노예의 이익을 위함 이다. 과 노예적인 노예제, 이건 모든 자율을 노예로 부터 제거하고 따라서 죽음보다 못한 것이다. 를 구분 한다.
주인도 이익이고 노예도 이익인 노예제는 괜찮아. 이게 조선 인거지. 조선 건국이래 육백년이고. 걍 조선 이면 좋은겨 노예상태로. 자기들 주인이 먼 개짓을 해도 대가리가 깨져도 좋은거고 그게 편하걸랑. 마치 남북전쟁때 주인 벗어나기 싫은 흑인 노예들처럼. 바깥세상 무서워 안나가. 난 노예가 좋아.
Psychology
Thomas Aquinas maintains that a human is a single material substance. He understands the soul as the form of the body, which makes a human being the composite of the two. Thus, only living, form-matter composites can truly be called human; dead bodies are "human" only analogously. One actually existing substance comes from body and soul. A human is a single material substance, but still should be understood as having an immaterial soul, which continues after bodily death.
In his Summa theologiae Thomas clearly states his position on the nature of the soul; defining it as "the first principle of life".[110] The soul is not corporeal, or a body; it is the act of a body. Because the intellect is incorporeal, it does not use the bodily organs, as "the operation of anything follows the mode of its being."
인간은 하나로 된 머티리얼 서브스턴스. 이건 성 오거스틴이 플라톤 아리형보다 더 나아간 두개의 실재.보다 더 나아간 하나의 실재.로 본겨. 존심이 쎄신거지. 영혼이란건 몸의 포름 이야. 그래서 인간 존재는 두개의 합체로 된 거다. 즉 아리형의 관점을 쓰면서 실재는 하나 인거야. 그래서, 살아있을 때에만, 포름-매터 합체물이 진실로 인간 으로 불릴 뿐이고, 죽은 몸들은 비유적으로 인간 이라 할 뿐 진짜 인간은 아니란 거야. 하나의 움직이는 존재하는 실재는 몸과 영혼에서 온다. 한 인간은 하나의 물질적 실재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해되어야 한다 비물질적인 영혼을 갖고 있는걸로, 이건 몸의 죽음 후에도 계속 된다.
그의 신학대전에서 토마스는 분명히 서술한다 그의 입장을, 영혼의 네이쳐에 대해. 그것을 규정한다 이렇게, 생명의 첫번째 근간.이라고. 영혼은 몸적인게 아니다 즉 몸이 아니다. 영혼은 몸의 행위 이다. 분별력은 몸적이지 않은거라, 몸의 조직들을 활용하는게 아니다, 어떤 것의 작용이라는건 그 존재의 모드, 를 따르듯이.
영혼은 몸이라는 매터의 포름 이야. 인간의 전체 형상과 움직임을 이루는 근간이야. 그 바닥의 네이쳐에 의해서 작동해 이 포름 이란 영혼은. 영혼은 살아있을때 몸을 벗어나지도 않는거고 몸이라는 감옥의 행위이고 몸을 이루는 포름인 동시에 감옥을 움직이는 포름이고 감옥의 근육을 바탕으로 움직이게 할 뿐이야. 모드 mode 라는건 근육이고 매개체야.
우리말에 혼백. 혼령. 귀신. 이 있는데, 혼백 이란건 몸이 죽어서, 하늘로 가는게 혼 이고 땅으로 꺼지는게 백.이야. 혼백.이 포름의 두가지 형태여 저런 관점으로 보면. 백이 소위 한무당식 경락에 해당하는겨. 백 이란게 몸의 모드를 콘트롤 하는거고. 혼령 영혼 이란건, 영 이란건 심장에 있는, 외부의 신과 접촉하는 통로여. 혼령 이란건 내 혼이 나 외의 외부의 신과 통신하는 영 이 장착된 혼 이고. 귀신 이란건 신에 대한 나쁜 이미지 귀.야 귀 란건 산발한 험한 형상이고. 이게 드웰러 온 더 뜨레스홀드 라는 사이에서 머무는 자 의 귀신이고.
백.은 죽으면 같이 사라지는거고, 혼은 남아있는겨. 유교에서는 사대까지 지내다가 완전히 사라지고.
According to Thomas the soul is not matter, not even incorporeal or spiritual matter. If it were, it would not be able to understand universals, which are immaterial. A receiver receives things according to the receiver's own nature, so for soul (receiver) to understand (receive) universals, it must have the same nature as universals. Yet, any substance that understands universals may not be a matter-form composite. So, humans have rational souls, which are abstract forms independent of the body. But a human being is one existing, single material substance that comes from body and soul: that is what Thomas means when he writes that "something one in nature can be formed from an intellectual substance and a body", and "a thing one in nature does not result from two permanent entities unless one has the character of substantial form and the other of matter."[112]
토마스에 의하면, 영혼은 매터 가 아냐. 몸적인 것도 아니고, 영혼적인 물질 도 아냐. 물질적인 거라면 유니버설즈. 플라톤의 이데아를 푸는, 많은것 위의 하나. 그 하나들의 세계.가 유니버설즈.야. 이건 비물질적인 것이고, 영혼이 물질적인거면 이 비물질질적인 유니버설즈를 이해할 수 없어. 수용자 는 수용자 자신의 네이쳐에 따라서 입수하는데, 그런식으로 영혼이란 수용체는 유니버설즈.를 이해하는거고, 그 영혼이란건 유니버설즈.와 같은 맥락의 네이처를 갖고 있어야만해. 그러나 유니버설을 이해하는 어떤 실재도 매터-포름의 합체물일 수는 없어. 인간들은 합리적인 영혼들을 갖고 있고 이건 몸과는 독립적인 추상적 포름들이야. 그런데 인간은 하나의 존재물이고, 하나로 된 물질적 실재이고 이건 몸과 영혼에서 오는겨: 토마스가 말하고자 하는건, 네이처의 안에서 하나의 먼가가 포름될 수 있다, 하나의 지쩍인 실재와 하나의 몸에 의해서. 그리고 네이처 안에서 하나의 것이란 두개의 영원한 단위들간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하나는 실재적인 포름의 성격과 나머지는 매터 로 되어있게 된다.
영혼이 물질이 아니라는 걸 계속 말하는거고. 유니버설즈.란 신적인 신성을 접하는건 두개의 매터-포름 합체물이 아니라, 오직 영혼 만의 작용 이라는겨. 영혼 에게 아주 특별한 자격을 부여하고픈 거고. 그럼에도 인간 자체는 단 하나의 서브스턴스. 실재.인거고. 이걸 두개의 별도의 서브스탠스로는 절대 안 나누겠다는 의지야. 성오거틴 따라하기 싫어 하는겨.
The soul is a "substantial form"; it is a part of a substance, but it is not a substance by itself. Nevertheless, the soul exists separately from the body, and continues, after death, in many of the capacities we think of as human. Substantial form is what makes a thing a member of the species to which it belongs, and substantial form is also the structure or configuration that provides the object with the abilities that make the object what it is. For humans, those abilities are those of the rational animal.
영혼은 실재적인 포름.이다. 실재의 부분 이란거지 그 자체로 하나의 실재 가 아니란겨. 인간은 그 자체가 한 덩어리의 실재일 뿐이지, 영혼이란 실재 더하기 몸이란 실재 가 아냐 이사람에겐. 그럼에도 영혼은 몸과 분리가 되서 존재하고 죽음 후에 계속되고 우리가 인간으로써 생각할 능력들 중 많은 부분에 얘가 있는겨. 실재적인 포름 은 그것이 속하는 스피시즈. 종. 개개들을 유형별로 그룹핑한 생물 분류학 개념이야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든. 이 스피시즈의 구성원이 되게끔 해. 즉 영혼이란 실재적인 포름 의 유형별로 종 이라는 스피시즈 가 다른거야. 또한 그 같은 종.의 각각의 개개 특성화 하는 윤곽 조합들을 달리 하게 하는게 이 영혼 인거고, 개별성을 부여하게 끔 한다는거고 외모에 능력까지. 인간들은 이런 능력들이 이성적 동물의 능력이고, 인간이란 종.만의 능력을 갖게끔 하는 영혼 이라는 실재적 포름 인거야.
These distinctions can be better understood in the light of Thomas's understanding of matter and form, a hylomorphic ("matter/form") theory derived from Aristotle. In any given substance, matter and form are necessarily united, and each is a necessary aspect of that substance. However, they are conceptually separable. Matter represents what is changeable about the substance—what is potentially something else. For example, bronze matter is potentially a statue, or also potentially a cymbal. Matter must be understood as the matter of something. In contrast, form is what determines some particular chunk of matter to be a specific substance and no other. When Thomas says that the human body is only partly composed of matter, he means the material body is only potentially a human being. The soul is what actualizes that potential into an existing human being. Consequently, the fact that a human body is live human tissue entails that a human soul is wholly present in each part of the human.
완전히 아리스토텔레스 를 갖고 와서리, 자기 이야기 인듯 하는겨 이게. 그러면서 약간 비트는거고. 매터와 포름은 합체될 수 밖에 없어. 각각은 서로 필요해 하나의 인간이란 서브스턴스.를 위해서. 그러나 관념적으로 보면 분리 할 수 있다. 매터 는 변화가능함을 대변하고, 그렇지만 실재 라는 건 그 이상인거고. 예로 청동 이란 매터.는 잠재적으로 동상 도 되고 잠재적으로 심벌즈 로도 될 수 있다. 매터 는 무언가의 매터 로 이해되어야 한다 반다시. 반대로, 포름 이란건 어떤 특별한 매터 덩어리를 유별난 실재 로 만들도록 결정짓게 한다.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매터란 건. 토마스가 말하길, 인간의 몸이란건 단지 부분적으로 매터 로 구성이 된거다 라고 할때, 그는 물질적 몸이란건 오직 잠재적으로만 인간 이다 라고 주장하는것이다. 영혼은 그 잠재적인걸 존재하는 인간 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몸 은 살아있는 조직이다 라는 사실.은 인간의 영혼이 인간 의 모든 각각요소에 온전하게 전체적으로 스며있다는 것을 말한다.
아 이 샹 하나도 안빼뜨리고 다 번역하려니 걍 다 때려 넣어봄.
Economics[edit]
Aquinas addressed most economic questions within the framework of justice, which he contended was the highest of virtues. He says that justice is "a habit whereby man renders to each his due by a constant and perpetual will."[113] He argued that this concept of justice has its roots in natural law. Joseph Schumpeter, in his History of Economic Analysis, concluded that "All the economic questions put together matters less to him than did the smallest point of theological or philosophical doctrine, and it is only where economic phenomena raise questions of moral theology that he touches upon them at all."[114]
아퀴나스 의 경제적 질문들. 정의(적정성. 최적) 져스티스 관점에서.
져스티스 란건 해빗. 어떤 습관이다. 이 습관으로 인간은 자기들 각각에 그의 의무를 자연스레 하게끔 한다, 꾸준하고 영원한 의지에 의해서. 그는 주장했다, 져스티스 의 이런 관념은 내추럴 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조셉 슘페터 는 그의 책에서 결론짓다, 모든 경제적 질문들은 토마스 아퀴나스에겐 관심이 약했다, 그의 신학적 철학적 교리의 최소한의 것보다도 훨씬 적었다. 이것도 그가 접근하는 모랄적 신학의 문제를 야기할 경제적 현상에만 경제이슈에 관심갖을 뿐이었다.
이사람이 이런 말 하는건, 아쉬워서야. 토마스 아퀴나스 의 경제론이 현대 경제학 이론의 효시걸랑. 다를게 없어. 헌데 이 경제이야기도 아리스토텔레스 를 걍 그대로 갖고와서 자기생각 덧붙인겨
Aquinas was careful to distinguish the just, or natural, price of a good from that price which manipulates another party. He determines the just price from a number of things. First, the just price must be relative to the worth of the good. Aquinas holds that the price of a good measures its quality: "the quality of a thing that comes into human use is measured by the price given for it."[115] He goes on to say that the price of a good, measured by its worth, is determined by its usefulness to man. This worth is subjective because each good has a different level of usefulness to every man. Aquinas argues, then, that the price should reflect the current value of a good according to its usefulness to man. He continues: "Gold and silver are costly not only on account of the usefulness of the vessels and other like things made from them, but also on account of the excellence and purity of their substance."[116]
아퀴나스.는 져스트 라는 걸 경제에 적용하는게 조심스러웠다. 그는 적정 가격을 결정하는데. 우선 적정가 라는건 그 상품의 가치와 관계되어야 한다. 아퀴나스는 한 상품의 가격이 그것의 품질을 결정한다는 생각이다. 물건의 품질은 인간의 사용에서 오는건데, 이건 상품에 주어진 가격으로 측정이 된다. 계속 말한다. 상품의 가격은 그 가치로 측정되서 매겨지고 이건 사람에게 그것의 유용함으로 결정된다. 이 가치는 종속적이다 왜냐면 각각의 상품은 유용함의 수준이 모든 사람들마다 서로 다르니까. 아퀴나스는 주장한다, 그 가격이란건 한 상품의 현재가치를 반영해야 한다, 그것의 사람에 쓰임새에 따라서. 금과 은은 비싸다, 그릇들의 유용함과 기타 다른 용도때문만으로 비싼게 아니라, 금과 은 자체의 서브스턴스, 실재의 우수함과 순도 때문에 비싸다. 대부분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야. 헌데 이런것도 이사람의 생각의 영역이야.
Aquinas also wrote extensively on usury, that is, the lending of money with interest. He condemned its practice: "to take usury for money lent is unjust in itself, because this is to sell what does not exist, and this evidently leads to inequality which is contrary to justice."[117] Money, and other similar goods, are consumed only when they are used. Charging a premium for money lent is a charge for more than the use of the good. Thus, Aquinas concluded that the lender is charging for something not his own, in other words, not rendering to each his due.
아퀴나스 는 또한 고리대금업. 대부업에 대해 썼다.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그는 그 행위를 비난했다. 빌린 돈에 대해 이자를 받는건 언져스트. 적정하지 않다. 옳지 않다 그 자체로. 이런건 존재하지 않는 것을 파는 것이고, 명백하게 져스티스, 정의 정당함 옳음에 반하는 불평등한 것으로 귀결되므로. 돈 과 다른 비슷한 상품들은 소비가 된다 그들이 사용될때. 돈에 대해 프리미엄을 얹어서 빌려주는 건 그 상품의 사용 이상에 대한 더하기.이다. 따라서 아퀴나스는 결론짓다, 빌려주는 이는 자기것이 아닌 것에 대해 부과하는 것이고 다시말해서 자기가 빌려준 거에 따르는 합당한 것이 아니다 그건. 아리형 생각이랑 같은거고.
토마스 아퀴나스 의 신학.은 다음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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