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개인적으론 경험주의에서 취할 건 아무것도 없는데. 저기서 의문을 제기한건 후대에 조지 버클리여.
George Berkeley (/ˈbɑːrkli/;[4][5] 12 March 1685 – 14 January 1753) – known as Bishop Berkeley (Bishop of Cloyne) – was an Irish philosopher whose primary achievement was the advancement of a theory he called "immaterialism" (later referred to as "subjective idealism" by others).
조지 버클리. 버클리 주교. 아이리쉬 걸랑. 이사람은 웃긴게,
Esther Vanhomrigh (known by the pseudonym Vanessa; c. 1688 – 2 June 1723), an Irish woman of Dutch descent, was a longtime lover and correspondent of Jonathan Swift. Swift's letters to her were published after her death. Her fictional name "Vanessa" was created by Swift by taking Van from her surname, Vanhomrigh, and adding Esse, the pet form of her first name, Esther.
에스더 밴홈라이.라는 아이리쉬 여자여. 애인이 조나단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그 인간인데. 성격이 무지 활달한 여자야. 그런데, 조나단 스위프트.가 이여자를 멀리해. 에스더는 열받아하고, 35세에 죽어. 죽을때 자기 유산을 저 조지 버클리 주교에게 상속을 하는겨. 조지 버클리는 에스더를 잘 몰라. 헌데 정작 받을 유산도 없어 빚청산 하고 남은게. 조나단 스위프트는 자긴 후이늠 어쩌고 하면서, 남녀 평등 교육 내세우고, 또 여자들 거인국 묘사할때 너무 추악하다 큰 모습보니까 해대고, 자기 마누라 야후 냄새 나서 멀리한다고 페미들한테 욕도 처먹는건데, 그리 도덕군자 행세하면 애인을 건들지도 차지도 말던가. 하튼 잰 좀 웃긴앤데. 여하튼 조지 버클리가 저리 걸려 스위프트랑.
이 조지 버클리.는 데카르트와 아이작 튜턴을 아주 증오해. 이 버클리 논리가 재밌어 이게. 정작 경험주의 애들은 자기들 카테고리에 넣지를 않지만, 오히려 경험주의 의 대부야 이사람이. 경험주의 애들의 빈약한 논리를 채워주는 사람이 조지 버클리야.
George Berkeley is considered one of the originators of British empiricism.[62] A linear development is often traced from three great "British Empiricists", leading from Locke through Berkeley to Hume.[63]
영국 경험주의의 원조들 중 한 사람으로 간주되다. 존 로크에서 조지 버클리로 가서 데이빗 흄.으로 이어진다고 봐야 한다.
정확히 맞는 진단이야.
The phrase appears associated with him in authoritative philosophical sources, e.g., "Berkeley holds that there are no such mind-independent things, that, in the famous phrase, esse est percipi (aut percipere) – to be is to be perceived (or to perceive)."[16]
이 조지 버클리.의 말 중에, 아주 획기적인 말이, 엣세 에스트 페르키피. 존재하는 것은 인식되는 것.이다. 감지가 안되는 건 존재하지 않는겨. 경험주의 애들에게 이보다 더 환상적인 문구는 없는건데.
According to Berkeley there are only two kinds of things: spirits and ideas. Spirits are simple, active beings which produce and perceive ideas; ideas are passive beings which are produced and perceived.[19]
The use of the concepts of "spirit" and "idea" is central in Berkeley's philosophy. As used by him, these concepts are difficult to translate into modern terminology. His concept of "spirit" is close to the concept of "conscious subject" or of "mind", and the concept of "idea" is close to the concept of "sensation" or "state of mind" or "conscious experience".
세상은 오직 두 종류야. 스피릿 과 아이디어 로 되어있어. 스피릿은 심플한거고, 활동적인 존재들이야, 아이디어를 생산해 내고 감지하게 해주는거야. 이사람의 스피릿.은 의식하는 서브젝트. 즉 마음 인거고, 아이디어 라는 개념은 느낌. 마음의 상태. 의식적 경험. 으로 개념정리를 하는건데.
관찰자 입장이 의식하는 주관자야. 서브젝트.가 저 대상인 오브젝트 를 대하는데, 오브젝트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로 서브젝트인 나 의 마인드.가 퍼시브. 감지를 하는겨. 오브젝트의 마음의 상태.를 퍼시브 하는겨. 즉 관찰자인 나 의 마인드 가 퍼시브, 감지하지 못하는 아이디어 란 건, 그건 낫 투비. 존재하지 않는 것이야.
Hence, human knowledge is reduced to two elements: that of spirits and of ideas (Principles #86). In contrast to ideas, a spirit cannot be perceived. A person's spirit, which perceives ideas, is to be comprehended intuitively by inward feeling or reflection
인간의 앎이란건, 스피릿과 아이디어 이 두개야. 아이디어는 감지되는 것이라고 쳐. 그럼 아이디어를 감지하게끔 해주는 스피릿.은 그럼 어쩌자는겨. 스피릿은 감지될 수가 없어. 이건 못느끼는겨 당사자가. 스피릿 때문에 아이디어를 인지하고 느끼는건데, 그럼 스피릿은 감지가 안되는거니까 존재하지 않는거네? 존재하지 않는게 어떻게 아이디어를 감지하냐? ㅋㅋㅋ. 이런 말장난이 재밌는데. 아잉 그러믄 안되지요 하면서리, 내면 탐색 즉 거울 반사 보듯이 직관으로 이해를 하라는겨. 다시말해서 스피릿 자체를 감지하란거걸랑. 자기 스스로. 감지가 되는 영혼 스피릿.이니까 당연히 존재할 수 밖에 없어. 이런 식으로, 신 이란것도 존재 합니다요. 신이 우리의 배후요.
이사람은, 가장 우려스려운 사태가, 신이 동상 취급당하는거걸랑. 저놈의 데카르트 때문에. 솔직히 경험주의는 안무섭걸랑. 헌데 이사람이 제일 열받는건 저놈의 데카르트에 뉴턴이라는 수학자 들이야. 아잉 만물을 수학으로 저리 정리해버리면 아쩌자는겨. 신이 할일 없다는 식으로. 니덜의 수학 명제들 공간,은 감지가 되지 않는 거야. 그래서 그건 존재 하지 않는거야. 대체 존재하지도 않은 세계를 갖고 신의 법이다 시부리는건 먼 경우여 그게.
얘들의 말들 이면을 보면 이런거야. 이걸 고급스럽게 서로들 표현한겨.
Axiom. No reasoning about things whereof we have no idea. Therefore no reasoning about Infinitesimals. (#354)
악시옴. 공리, 전혀 생각할 꺼리가 없는 것들, 저놈의 공리에선 감지되는 어떤 아이디어 라는게 나오지도 않아. 그러므로 극소니 어쩌고도 생각할 꺼리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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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여하튼간에, 감지되지 않는 것, 인식되지 않는것. 더 가서 측정되지 않는 것은 존재 하지 않은가?
이게 콴텀 양자역학으로 가면.
The framework of quantum mechanics requires a careful definition of measurement. The issue of measurement lies at the heart of the problem of the interpretation of quantum mechanics, for which there is currently no consensus. The question of how the operational process measurement affects the ontological state of the observed system is unresolved, and called the measurement problem.
메저먼트, 측정의 문제인데, 이 메저먼트 라는게 결국 모든 자연과학이자 인문과학의 핵심이야. 재는거야 재는거.
이게 또한 등장하면서, 저걸 오역해서, 양자 역학 컬트들이 생기는데 말야.
저건 지금, 퀘스쳔 이야. 아직 확실한 동의된 답안이 없어. 막 서로들 유트브 에 누군 기다 누군 아니다 이미 결판났다 어쩌고 저쩌고. 다 그들만의 리그야. 아직 저건 제대로 안풀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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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말이지.
경험주의.가 상식으로 가자는거걸랑. 걍 뻔한 말이야 이게.
데카르트 의 주장도 상식이야. 방법이 약간 다를뿐.
이들이 이러면서 유럽이 오컬트에서 벗어나는겨. 베이컨 과 데카르트.가 이걸 잡아주고, 라이프니츠.가 거들고, 뉴턴이 대못질 하고. 비록 후대는 경험주의 합리주의 로 분파질 했지만, 시작은 그게 아냐. 저기에 스피노자 가 한번 더 못질하고.
오컬트. 컬트 짓 하지 말라여 저들은.
저 오컬트 컬트 짓의 핵심은 근거없는 공리를 대전제로 삼으면서 아무런 검증도 하지 않는 짓들이걸랑.
저 공략지점을 찾은것 뿐이야 프랜시스 베이컨은.
저게 말이지, 이땅에 프랜시스 베이컨 같은 이들이 없는거야. 후진 문명에 없어 이런 사람이.
대깨문 이란게 쟤들이 만든, 웃긴겨 직접 지들이 만든 구호야.
대가리가 깨져도. 즉 자기들의 연역 두괄식의 대전제.는 공리야 공리. 항진명제야. 증명할 수 없는 항진명제야.
검증도 필요없어. 저건 오컬트도 아냐. 오컬트는 쫓겨난 이단애들이 몰래 믿는 짓들이걸랑. 저건 대놓고 컬트짓 하는 그냥 신앙이야. 완벽한 미개한 공리를 설정한 연역적 신앙 생활이야 저게. 저게 컬트야 오컬트고.
유럽이 오컬트 컬트에 먹힐 뻔 했어 진짜. 유럽이 저 들이 없었으면, 라스푸친 같은 이들이 유럽 코트를 점령했을거야. 러시아엔 프란시스 베이컨과 사람들이 없었을 뿐이야 저게.
우리넨 여전히 컬트 의 나라인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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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ume (/hjuːm/; born David Home; 7 May 1711 NS (26 April 1711 OS) – 25 August 1776)
이 프랜시스 베이컨이 등장하고, 데카르트 가 티나오면서, 이게 뜬굼없이 경험주의 합리주의 가 생겨버려. 여기 정점이 데이빗 흄이야.
Hume argued against the existence of innate ideas, positing that all human knowledge derives solely from experience.
얜 조지버클리의 내면의 타고나는 것들의 존재를 무시해. 모든 인간의 지식은 오직 경험으로만 나와서 얻는겨.
유치하게 가는겨 얘들이. 저건 억지로 꿰맨거야 지들끼리 사조를.
An opponent of philosophical rationalists, Hume held that passions rather than reason govern human behaviour, famously proclaiming that "Reason is, and ought only to be the slave of the passions".
데이빗 흄이 하다하다 저따위 말을 해. 이제 데카르트 가 뜬굼없이 합리주의자 의 거두가 되었어. 어머 저놈들의 리즌 이라는 추상적 이야기의 영역의 신. 리즌 이성 이란건, 패션 감정의 노예이고, 그래야만 한다.
미친거지 저게. 프랜시스 베이컨은 니따위 말에 동의 안한단다.
쟤들이 프랜시스 베이컨 사후에 유치하게 가고, 베이컨의 본질적인 말을 잃어버려.
그러면서 그야말로 데카르트 들이, 세상을 제대로 된 이성의 판으로 갖고 오는겨.
이들이 유럽을 오컬트 컬트의 길로 가려는 걸 구했어. 이들의 페이건들이 또한 컬트짓들을 해댔지만.
우리네에겐 저런 이성의 사람, 귀납적 사람,이 지식층에 전혀 없는겨. 우리네 땅은 완전 컬트 판이야 이게. 조선 이란 두글자가 항진명제의 공리야. 민족 이란 두글자. 이념 이 거대하게 대전제로 신 행세 하는 나라야. 저걸 귀납적으로 깹시다 하는 베이컨 들이 없는겨. 이땅은 희망이 없는거고.
데카르트 이야길 하려다 또 샜는데. 난 이놈의 데카르트가 좋아졌는데 끔찍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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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on was the first recipient of the Queen's counsel designation, which was conferred in 1597 when Elizabeth I of England reserved Bacon as her legal advisor. After the accession of James VI and I in 1603, Bacon was knighted. He was later created Baron Verulam in 1618[4] and Viscount St. Alban in 1621.
프랜시스 베이컨.은 1597년.에 엘리자벳.의 임명으로 코트에 들어오는겨. 법적 자문가로. 36세. 그리고 제임스1세.가 취임하고, 작위를 받고. 베룰램.의 배런.이 되고, 세인트 알반.의 비스카운트. 자작.이 돼. 이게 높아서 이사람은 세인트 알반 자작.이야.
Attorney General of England and Wales 1613-17
Lord High Chancellor of England 1617-21
베이컨 타이틀.이 제임스 1세때 어토니 제너럴.이 돼. 잉글랜드 웨일즈 땅에서 생기는 법적 문제의 코트에서의 최고 자문가야. 법률 관련된. 그리고, 이어서 로어드 하이 챈슬러. 코트에서 가장 높은 원로의 고문관이 된겨. 이사람은 최고 자리의 인간이야.
코트를 너무나 잘 아는겨. 영국 내의 정치 사회 문제를. 이걸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이 귀납법의 경험주의.야.
헌데말이지, 데카르트.는 베이컨과 전혀 달라.
René Descartes (/deɪˈkɑːrt/, also UK: /ˈdeɪkɑːrt/,[16][17][18] French: [ʁəne dekaʁt] Latinized: Renatus Cartesius; adjectival form: Cartesian[19]:58 /kɑːrˈtiːziən, -iːʒən/;[16] 31 March 1596 – 11 February 1650)
베이컨 1561년생 보다 35세 아래야. 일단 가는 길이 달라. 베이컨은 아빠가 킹의 도장 관리인이야. 쎈 자리야. 엄마도 학자집안에, 이 엄마의 언니가 엘리자벳 최측근 윌리엄 세실.의 부인이야. 걍 베이컨은 태생이 금수저여 이게. 물론 항상 돈에 쪼들려 살았는데, 대부분 돈에 치인 인간들에서 또한 인물이 많더라고 죽 보니까.
René Descartes was born in La Haye en Touraine (now Descartes, Indre-et-Loire), France, on 31 March 1596.[25] His mother, Jeanne Brochard, died soon after giving birth to him, and so he was not expected to survive.[25] Descartes' father, Joachim, was a member of the Parlement of Brittany at Rennes.[26]:22
데카르트.는 엄마가 바로 죽어, 데카르트를 낳고. 애기도 죽을줄 알았는데 살아남고. 아빠는 렌(헨. Rennes) 에서 브르타뉴 의회의 의원이었고. 데카르트가 낳은 지역은, 투렌.의 라이.인데 이게 지금 도시이름이 데카르트.야 여기가 리슐리외 근처고,. 투렌 지역의 수도가 투르 Tours 이고. 아 헌데 아빠는 브르타뉴 지역이고. 렌.은 서북쪽으로 더 가야 하는 곳이고. 투렌은 친정엄마네 집인듯 보이고, 아빠는 렌 에서 있었을테고.
René lived with his grandmother and with his great-uncle. Although the Descartes family was Roman Catholic, the Poitou region was controlled by the Protestant Huguenots.[27]
르네.는 친할머니.랑 할아버지 형제 집에서 살아. 여긴 프와투 지역이야. 아키텐이야 이곳은. 헌데 위그노들 땅이었고. 여기가 뒤에 리슐리외 가 라 로셸 위그노 점령전 하러 올때 같이 진압이 되는겨. 데카르트는 태생이 로마 카톨릭이고 죽을때도 카톨릭이야. 헌데 어릴때 위그노 세상에서 큰겨. 거부감이 없는거야.
In 1607, late because of his fragile health, he entered the Jesuit Collège Royal Henry-Le-Grand at La Flèche,[28][29] where he was introduced to mathematics and physics, including Galileo's work.[28][30] After graduation in 1614, he studied for two years (1615–16) at the University of Poitiers, earning a Baccalauréat and Licence in canon and civil law in 1616,[28] in accordance with his father's wishes that he should become a lawyer.[31]
서기 1607년. 11세에 라 플레쉬.의 제수이트 칼리지.에 들어가. 태어날때도 겨우 태어난거고, 엄마도 바로 죽고, 몸이 약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54세에 감기로 죽은건데. 이사람은 몸이 약해. 저기서 수학과 물리학을 알게되고 갈릴레오도 배우고. 1614년 18세에 졸업해서, 프와티에 대학에서 2년 공부해. 20세에 졸업해. 바칼로레아.를 받고. 즉 저땐 유니버시티에서 2년 하고 졸업하고 바칼로레아.를 받은겨. 이게 지금 배철러.라는 학사.이고. 캐논로 시빌로. 교회법과 세속법의 라이센스를 받아. 이건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이야. 법률가 가 되어야 했다 아빠때문에.
데카르트.는 하기싫은 걸 프와티에 대학 가서 2년을 억지로 한거야. 교회법 세속법을. 오직 아빠 때문에. 이사람은 수학과 물리학.이 너무너무 좋았는데.
In Discourse on the Method, Descartes recalls,
I entirely abandoned the study of letters. Resolving to seek no knowledge other than that of which could be found in myself or else in the great book of the world, I spent the rest of my youth traveling, visiting courts and armies, mixing with people of diverse temperaments and ranks, gathering various experiences, testing myself in the situations which fortune offered me, and at all times reflecting upon whatever came my way so as to derive some profit from it.[32]:20–21
데카르트의 회상. 나는 완벽하게 포기했다 (책속의)글들을 공부하는걸. 세상이라는 거대한 책속 이나 또는 나 자신의 내면에서 탐색해 배우는 것이 최상의 지식이란걸 자각하고 그 외의 지식이란건 구원에 도움이 안될 거란 생각으로, 나는 내 젊음의 나머지를 여행하면서 보냈다. 코트들과 군대들을 방문하고, 다양한 기질들과 계층들의 사람들과 섞이고, 다양한 경험들을 모으고, 운명에 떠 맡긴 나 자신을 시험해 보면서, 언제나 성찰을 했다 나에게 닥친 모든 것에 대해, 그러면서 그 속에서 무언가를 얻으려고 애썼다.
Given his ambition to become a professional military officer, in 1618, Descartes joined, as a mercenary, the Protestant Dutch States Army in Breda under the command of Maurice of Nassau,[28] and undertook a formal study of military engineering, as established by Simon Stevin.
저 문장들을 찬찬히 번역해 보니까 이해가 되는데, 저게 이해가 안되었걸랑. 카톨릭 인간이 낫사우의 모리스 아래서 용병생활을 한겨. 헌데 이사람이 총 들고 싸우는게 아냐. 선천적으로 약해 몸이. 군사 엔지니어 일을 하는겨. 군수 무기 관련 개발에 참여한겨 데카르트는. 이사람은 물리학 수학이 가장 관심분야였걸랑. 제수이트학교에서 어릴때도.
어릴때 위그노 땅에서 살았고, 책속에 진리가 없다고 느꼈고, 세상 자체가 거대한 책이야. 아주 다양한걸 다 경험하고싶어. 아 내가 비록 로마 카톨릭 이지만, 프로테스탄트 입장이 되어서 저쪽 군인생활하는 건 어떨까? 그럼 내가 느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되겠지? ㅋㅋㅋ. 정확히 이 감정선이라고 봐.
데카르트는 나이 20에 완벽하게 열린 인간이야. 참 저러기가 쉽지 않은데 말야.
나중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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