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쟁이, 시작할때 프로테스탄트에서 가장 믿었던 곳이, 잉글랜드걸랑. 제임스1세의 사위 라인팔츠그라프의 프리드리히5세.를 보헤미아 킹으로 추대한 이유였고. 헌데 제임스1세.는 저게 그야말로 폭풍속으로 가는 현장인걸 직시한거고, 오히려 사위를 말려 너 보헤미아 킹따위 욕심내지 말라고.
그리고 초반에 잉글랜드가 오히려 신경써야 하는 곳이, 프랑스 땅 라 로셸.이야
The Anglo-French War was a military conflict fought between the Kingdom of France and the Kingdom of England between 1627 and 1629. It mainly involved actions at sea.[3] The centerpiece of the conflict was the Siege of La Rochelle (1627–28)
앵글로-프렌치 전쟁. 1627-29. 리슐리외.가 위그노 진압하는 전쟁때 이 위그노를 지원하는게 잉글랜드야. 이건 잉글랜드가 패하고 물러난겨.
그렇다고, 사위랑 자기딸을 야박하게 모른체 할 수 없걸랑.
Moreover, within the British Isles, Frederick V's cause became seen as that of Elizabeth Stuart, described by her supporters as "The Jewell of Europe",[32] leading to a stream of tens of thousands of volunteers to her cause throughout the course of the Thirty Years' War
엘리자벳 스튜어트.라는, 잉글랜드의 딸은 유럽의 보석.이라며 자원병을 모집하는겨. 이걸 제임스1세.가 라인팔츠그라프.에서 파견나온 대사. Dohna 도나 후작.을 시켜서 직접 자원병을 모집하라해 브리튼에서, 돈은 킹이 개인돈을 대는거야. 즉 드러나기가 싫은거야. 라인팔츠그라프 사람이 병력 모집하는거고.
Horace Vere, 1st Baron Vere of Tilbury (1565 – 2 May 1635) (also Horatio Vere or Horatio de Vere) was an English military leader during the Eighty Years' War and the Thirty Years' War, a son of Geoffrey Vere and brother of Francis Vere. He was sent to the Palatinate by James I in 1620. He was created Baron Vere of Tilbury, and died without a male heir.
호러스 비어. 틸버리의 비어 남작.이야. 틸버리 연설의 그 틸버리고. 1588년 아르마다 이후에 등장하는 사람이고, 스페인에 복수하러가는 카디스 전투에 참전하고, 네덜란드 독립전쟁 했던이고. 이사람이 사령관을 맡고. 스콧과 잉글랜드 병력 2,200명이 모이고 이 연대병력이 제임스1세가 지원한 거의 유일한겨 자기 딸이랑 사위를 돕는.
틸리백작 체르클라에스.에 안되는겨 저 병력이. 프로테스탄트 독일땅에 인물이 없어 이게. 저사람이 갔다가 패하고 돌아와. 밀린 월급이나 돈도 못받고 안받아. 그리고 다시 네덜란드로 가서 전쟁하고, 돌아와서 나이 70에 죽어.
이사람이 다야. 잉글랜드는.
The Battle of Vlotho was fought on 17 October 1638. It was a victory for the Imperial Army under the command of Field Marshal Melchior von Hatzfeldt, and ended the attempt by Charles I Louis, Elector Palatine, to recapture the Electoral Palatinate.[3] Charles Louis' defeat marked the last time either Palatine or English forces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e Thirty Years' War.
플로토 전투. 서기 1638년. 호러스 비어.가 죽고. 플로토. 당시 라벤스베르크 백작령. 토이토부르크 숲 발치의 북라인 베스트팔렌 지역. 팔츠그라프 선제후 였던 프리드리히 5세. 즉 엘리자벳의 남편이 죽고, 아들 샤를 루이. 카를 루트비히.가 아빠를 이어서, 팔츠그라프를 되찾겠다며 싸운거걸랑. 이게 스위든 용병 스콧 사람과. 잉글랜드 가 합세한 전투인데. 참패를 해.
William Craven, 1st Earl of Craven, PC (June 1608 – 9 April 1697) was an English nobleman and soldier.
저때 잉글랜드 귀족이, 윌리엄 크레이븐.이야. 이사람은 원래 가난한 귀족이었다가 갑부가 된건데, 30년 전쟁에 참전을 해. 그런데, 엘리자벳.을 보고 사랑에 빠져. 당연히 다음 영국 내전때 오빠 찰스1세.를 재정적으로 지원해. 나중 아들 찰스2세가 복권될때 백작을 받는겨. 엘리자벳을 평생 사모했다고 해. 유부주제에. 하튼 저사람도 플로토 전투.에 참전해서 패했지만, 걍 개인이 간겨 저건. 잉글랜드가 30년 전쟁에 저게 다여.
더하여 덴마크. 이 덴마크의 크리스티안4세.의 누나가 덴마크의 안나.이고 제임스1세의 부인이고, 엘리자벳과 찰스1세는 조카들인겨. 제임스1세가 1625년에 죽어. 이후에 발렌슈타인이 자기 모가지 까지 쳐올라 오는거걸랑. 이 덴마크.는 전쟁없이 가장 평화롭고 부유한 나라였어. 스위든애들이 노르웨이 로 진출할때 쳐들어가서 이기고 돈받은 칼마르 전쟁이나 했던거고. 얘들은 30년 전쟁에 끼고 싶지 않은건데, 발렌슈타인이 발트해변까지 온거야. 이 발렌슈타인이 코펜하겐을 가려했는데, 배가 없어 쳐들어가질 못한거야. 헌데 신성로마제국은 가장 큰 문제가, 바다를 모른다는겨 얘들은.
저때 제임스1세는 죽고, 크리스티안이 자기 조카 찰스1세에게 구원요청을 하는겨 오히려. 살려달라고. 이전에 발렌슈타인이랑 볼가스트에서 붙었는데 대패했걸랑. 이 덴마크는 정말 그야말로 운빨로만 저기서 버틴겨 이게. 상대해 주는건 스위든인데 스위든은 힘이 없던거고, 다른 대륙 애들은 이 덴마크는 관심이 없는겨 저 바다끝 모가지 삐죽이들한텐.
남은 곳이 슈트랄준트.야. 이것도 스위든이 고용한 스콧 용병 귀족이 지킨거걸랑. 저때 잉글랜드가 도와주러 병력 보내서 막은 게 다야. 이 덴마크 는 거의 항복하다 시피 신성로마진영과 조약을 맺어. 우리는 절대루다가 끼지 않겠슴둥. 프로테스탄트 라고 도와주는일 절대 없을거임둥.
아, 이 덴마크는 정말 후진데 가면 갈수록. 머 그렇다고, 자기들 안에서 부국강병이니 르네상스로 멀 더 발전시켰느니 그런것도 없어. 티코 브라허 같은 천문학자도 쫓아내는 마당에. 헌데 저런애가 덴마크사에선 그레이트 를 붙여주는겨. 이 덴마크는 정말 운빨 좋은 나라야 이게 지금. 노르웨이 때문에 얻은 그린란드에, 노르웨이가 갖고 있던 셔틀랜드 오크니 제도 를 스콧에 그냥 주고. 노르웨이는 그냥 더 어처구니 없게 자기들땅 다 뺏기고도 아무말 못하고. 저걸 가운데서 영국이 다해준겨 저게. 그러면서 지하자원을 마음껏 쓰는겨. 유럽이 피바다로 익힌 정치제도를 그냥 쓰고 유럽의 우산아래서. 그러면서 복지놀이 하는겨. 지금 덴마크란 나라도 말야, 문제가 많은 나라야 저게. 인간의 의욕을 죽이는 나라야. 인재들이 저 나라를 떠나 지금. 돈벌면 머해. 모두 세금인걸. 누가 좋은차 타면, 적폐가 돼 저기가. 웃긴 나라가 된건데. 그게 다 이유가 있어. 노르웨이 스위든. 이 북유럽이 골때리는 애들이야. 쟤들은 답안지가 될 수 없어. 저건 그냥 남이 준 거야. 쟤들은 공짜로 사는거야 역사없이. 좀 야박하게 말하면. 저중에서 스위든이나 좀 처주까. 핀란드도 머 별거 있겄나. 아 부러워 그래서 쟤들이. 헌데 쟤들은 저걸 스스로 알아 그 바닥은. 대륙의 유럽이야길 쟤들은 그대로 다 배우고 익히걸랑. 이게 달라 아시아 애들이랑.
저런 노르웨이에 가서, 평화가 경제유, 어쩌고 저쩌고 연설한거 보면. 정말 끔찍한거야 저 무지한 수준이. 아프리카 미개한 발가벗은 애가 말야, 문자 익혔다고 공자왈 맹자왈 떠드는겨 쟤들 의회에 가서. 정말 낯부끄러운건데.
이 조선 이란 두 글자는. 부끄러운 줄 몰라.
부끄러운 줄 가장 모르는 애가, 남보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 된대.
아 수치스러워.
Under its terms, Gustavus Adolphus agreed to maintain an army of 36,000 troops, in return for France paying him 400,000 Reichsthalers a year. The treaty was due to last a minimum of five years.
프랑스.가 스위든에게, 매년 40만 라이히스탈러.를 주고, 스위든은 36,000 병력을 동원 유지해야하고, 프랑스의 스톱 명령없이는 철수도 조약도 하지 말라는 것에 동의를 한거야 스위든이.
제국의 탈러. thaler 란게 은화 야. 이게 서기 1516년. 보헤미아의 에르츠 게비르거 Erzgebirge . 라는 원석산. 작센과 경계짓는. 이 산맥 사남쪽인데.
The name thaler was used as an abbreviation of Joachimsthaler, a coin type from the town of Joachimsthal in the Kingdom of Bohemia (now the Czech Republic), where there were silver mines and the first such coins were minted in 1518.
탈러.라는게 이게 서기 1518년.에 처음 등장하는거야. 이후 작센 탈러. 프러시안 탈러. 성갈렌 탈러. 벼라별 탈러 동전들이 붙는거고. 이게 딸라. dollar 가 된겨. 이 달라라는게 5백년이 안된거야 역사가. 오아킴스탈. 저기가 체코의 원석산 성 요하킴 골짜기.야. 탈.이 골짜기고. 여기서 은광이 발굴되고 여기에 돈공장을 둔거야. 이게 브와디스와프2세.가 마티아스 죽은 헝가리도 킹.하고 보헤미아킹 하고 죽고, 아들 루이2세가 킹할때 부터 나온겨. 그리고 제국탈러 라는건 1576년 부터 공식화 되고. 이 은화 탈러.는 마르크의 1/9 이고, 마르크는 파운드의 1/2 이야. 저게 말이 40만 탈러지, 그리 큰 액수는 아냐. 저걸 파운드로 계산하면. 아이 걍 넘어가자.
그리곤, 걍 전쟁 세번 하고 죽은겨 아돌푸스가. 브라이텐펠트 전투. 라인전투. 로 틸리 죽이고. 처음으로 대승 연승 하고. 그러다 발렌슈타인이 복귀한 뤼첸전투.로 죽어. 이기다가 걍 후퇴해.
The Battle of Nördlingen (German: Schlacht bei Nördlingen; Spanish: Batalla de Nördlingen; Swedish: Slaget vid Nördlingen) was fought in 1634 during the Thirty Years' War, on 27 August (Julian calendar) or 6 September (Gregorian calendar). The Roman Catholic Imperial army, bolstered by 15,000 Spanish soldiers, won a crushing victory over the combined Protestant armies of Sweden and their German-Protestant allies (Heilbronn Alliance).
뇌르틀링엔 전투. 1634년. 프로테스탄트들이 스위든 킹도 죽고, 아 정말 얘들은 말야 정말 혼나야돼. 완전히 벼랑끝이야 이게. 그렇다고 제대로 하는것도 없고. 이제서야 하일브론 동맹을 맺어서 하는 전투야. 그래도 대패해. 스위든이 부랴부랴 발을 빼는겨 이게.
France declared war on Spain in May 1635 and the Holy Roman Empire in August 1636, opening offensives against the Habsburgs in Germany and the Low Countries.[63] France aligned her strategy with the allied Swedes in Wismar (1636) and Hamburg (1638).
프랑스.가 전쟁을 선포하고, 나가려는 스위든을 다시 붙잡고. 서기 1635년.에 들어오는거야. 1618년 에서 17년 지나고. 13년 남은 후반전을 프랑스가 직접 하는거야. 즉 저 30년 전쟁도 이건 이탈리아 전쟁 1494-1559 라는 65년 전쟁의 연장선이야. 예전엔 이탈리아에서 한거고, 이젠 독일땅에서 하는거고. 똑같은 합스부르크야 저건. 프랑스 대 합스부르크의 본격적인 2차전이 30년 전쟁인거지 가만보믄.
이걸 프랑스애들이, 마음껏 신성로마제국 진영에서 휘젓고 다닌겨. 발렌슈타인이 북진할때도, 이젠 이념전쟁이걸랑 이건. 서로 이단인거야 이건. 종교전쟁이란건 이건 전혀 개념이 달라, 판이 다른거야. 걍 저 땅의 모든 인간들은 이단이고 적폐야. 마음껏 아작을 내도, 나는 정의니까 신이 보살필거야. 발렌슈타인의 부대가 북진하면서 이런짓을 또한 쎄게 했어.
프랑스는 이전 합스부르크 전쟁에서, 전장터가 프랑스였어 또한, 변경이었지만, 저때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는 전장을 프랑스로 못 밀고 간겨. 완전히 자기들 땅에서 싸운거야. 프랑스는 내땅도 아니고, 그렇다고 머 후계자 계승하겠다고 저땅을 우리가 갖고 올것도 아니야 저건. 그냥 기세 죽이는거야 프랑스애들 입장에선. 지도자가 그런 기분으로 하는전쟁이야 이게. 얘들은 카톨릭이야. 이념도 아니야 이건. 이게 프랑스가 들어오면서, 또한 성격이 전혀 다른거야 이런면에서.
얘들 오기전에는, 이념간의 전쟁으로 서로 악랄하게 밟아 죽이는거고.
프랑스 오고부터는, 프랑스란 애들은 신성로마 땅에 전혀 아쉬울게 없는애들이야. 저땅 이긴다고 내땅 되는것도 아니고. 이전 이탈리아전쟁 65년간부터의 철저한 복수심이야 이건.
이게 30년 독일전쟁이, 세계 2차대전 초기보다도 더 비참했던 이유야. 중세 유럽 천년 지나고서 가장 참혹했던 이유는 이거야.
유럽 에 저런 전쟁은 처음인겨 이게.
저런 전쟁은 중국사에만 있었던거야. 이 중국사.가 흑사병 역사적인 세차례.의 발원지였던 이유고. 이전 썰. 그냥 모~든 민들을 쌍그리 죽이고 태우는겨 이 중국사란건. 시체들이 거리에 쌓이는거고, 여기서 전염병이 돌면서 이게 하서주랑 타고 유럽에 들어온게 세차례의 흑사병이야.
얘들은 전쟁 하면 기본 수십만 학살에 수백만이야 이게. 청나라 때 학살하는것도 그렇고.
이전 안녹사 사사명 그 당나라때도 안사의난.
Censuses taken in the half-century before the rebellion show a gradual increase in population, with the last census undertaken before the rebellion, in 755, recording a population of 52,919,309 in 8,914,709 taxpaying households. However, a census taken in 764, the year following the end of the rebellion, recorded only 16,900,000 in 2,900,000 households.
5천3백만이었던 인구가, 9년 후에 1천7백만, 3천6백만명이 죽은겨 저때. 미친거야 이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미개한게 중국사야. 이걸 유럽과 같이 비교해서 보면.
안사의 난.이후 백년 지나서. 황소의 난.
另有黃巢姬妾二三十人 . 황소의 희첩. 마누라외 여자첩들이 이삼십인.이었다.
“贼围陈郡百日,关东仍岁无耕稼,人饿倚墙壁间,贼俘人而食,日杀数千。贼有舂磨砦,为巨碓数百,生纳人于臼碎之,合骨而食,其流毒若是。”(《旧唐书·列传第一百五十》)
“人大饥,倚死城堑,贼俘以食,日数千人,乃办列百巨碓,糜骨皮于臼,并啖之。”(《新唐书·列传第一百五十下》)
도적이 진군을 백일 에워쌓서, 관동은 경작을 못하게 돼. 사람들은 굶주려 담장에 기대고, 도적이 사람들을 잡아 먹어. 매일 수천을 죽여. 멧돌 방아가 수백개야, 사람을 빻아서 가루로 만들고 먹어.
사람들은 굶주리고, 죽은 듯 사람들이 구덩이를 매우고 성처럼 쌓여있고. 도적은 그걸 먹어. 구당서 신당서.
중국사에서 나오는, 걍 흔한 풍경이야 저게.
저게 극동사 이고, 저게 중국몽이다 저게. 저게 또한, 이어이어가서, 저게 조선사야. 조선 위대한 오백년. 사람들 죽이길 벌레 보다 못하게 걍 고문해서 죽이고. 적폐놀이로. 유럽사 보다가 여길 다시보면, 이건 인간...아 아니지 오히려 이 극동사가 인간 일수 있어. 인간이 짐승과 다를게 무언가. 저게 조선오백년에 이어 한국 전쟁이야. 양민학살을 해대는거봐. 인민군이 하는 양민학살은 적폐들 죽이는거라 당연한거고 사과해선 안되는거냐? 그냥 조오롤라게 죽이는겨.
이 극동애들의 이야긴. 전혀 도덕 윤리 가 없어. 그래서 예의 들 을 입에 달고 사는거야. 헌데 이야기 바닥 자체가, 자기들 만을 위한 예의 예절이걸랑 이게. 이야기 자체가 너무나 수준 이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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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adly clashes ravaged Europe; 20 percent of the total population of Germany died during the conflict and there were losses up to 50 percent in a corridor between Pomerania and the Black Forest.[15] In terms of proportional German casualties and destruction, it was surpassed only by the period of January to May 1945 during World War II.
전체인구의 20퍼센트가 죽어. 8백만이 죽은거로 봐. 2차대전 1월-5월의 피해를 넘는 규모야.
듣도보도 못한 참상이야 유럽에서.
두가지 이유가 교차하면서, 처음 17년은 이념의 다름 으로 인한 적폐놀이로 악랄하게 죽이고 태우는거고. 다음 13년은 프랑스의 전혀다른 이유가 등장하면서 아쉬울것 없는 복수질로 피해가 줄지 않고 꾸준이 30년을 이어간겨 파괴력이.
Among the other great social traumas abetted by the war was a major outbreak of witch hunting.
이때 또한 그래서, 마녀사냥이 극심한거야. 이 마녀사냥이란 종교재판은 중세의 것이 아냐 이건. 이건 근대의 작품이야. 프로테스탄트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터진게 마녀사냥이고, 이 절정이 30년 전쟁이야.
The war resulted in increased autonomy for the constituent states of the Holy Roman Empire, limiting the power of the emperor and decentralizing authority in German-speaking central Europe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은 이 30년 전쟁으로 끝이난거야 실재적으론. 황제 라는 자리가 확실하게 힘이 없어져. 그나마 있던 힘도. 프로테스탄트로 양 진영이 갈라선 이후로,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라는게 신성로마제국의 끝의 시작이야. 얘들은 말만 제국에 로마지 아무것도 아닌겨 이게. 로마 교황이 갖고 논겨 얘들을. 1122년 보름스 협약으로 하인리흐 5세를 무릎꿇리면서 아 신성로마 게르만들 별거 없구만. 교황이 갖고노는겨 얘들을. 오히려 프랑스가 위그 카페가 서면서, 얘들은 이 카페의 정통을 계속 이어가면서 로타링기아를 끝끝내 갖고 온거야. 이 의지는 엄청난겨 이건. 반대로 게르만의 신성로마땅은 점점점점 아무것도 아닌게 되고, 프로테스탄트 티나오고 30년 전쟁으로 그냥 허울뿐이 된거야 이건. 민들에게, 영지인들에게, 얘들은 면목이 없어. 자기 제국의 땅을 폐허로 만들게 한 당사자가 황제야. 저애가 뭔 말을 하던 그게 먹히겠냐고.
더하여, 프랑스가 저때 들어오면서, 신성로마제국의 독일땅들이, 개화가 돼 웃기게도.
프랑스애들이 놀라는겨 얘들 사는거 보고. 자기들과 전혀 다른 문명이야 여긴. 이 프랑스가 독일땅와서 미개함을 느껴.
독일땅 사람들이 프랑스 애들을 보고 멋짐과 화려함을 느껴.
대륙에서는 프랑스의 시대를 여는거고, 영국은 내전으로 들어가는거야.
Jacques Callot (French: [ʒak kalo]; c. 1592 – 1635) 자크 칼로. 로렌 공국의 화가.
Les Grandes Misères de la guerre (French pronunciation: [lɛ ɡʁɑ̃d mizɛʁ də la ɡɛʁ], The Great Miseries of War or The Miseries and Misfortunes of War) are a series of 18 etchings by French artist Jacques Callot (1592–1635), titled in full Les Misères et les Malheurs de la Guerre.
레 그랑드 미제르 데 라 게르. 전쟁의 거대한 비참함. 전쟁의 비참함과 불운. 30년 전쟁을 살고 죽은 사람이 당시를 그린거야. 1633년 작품이야. 41세. 2년 후에 죽고.
이념의 전쟁. 선악의 대결 때의 그림이야 저건. 프랑스가 참전하기 전이야. 적폐는 저리 죽여도 되는겨 이젠. 이념의 시대에.
가장 드럽고 추악한게, 적폐놀이야.
이딴 짓을 21세기에 한다는건. 그것도 정치하는 애들이. 나는 정의 상대는 적폐. 그리곤 혐오를 부추기고.
반일놀이할때는 혐오 부추기고, 적폐놀이로 혐오 부추기면서,
자기들 하나님인 중국님들, 우리 위대한 조선 오백년이 모시던 중국님들은 왜 혐오 부추기냐는겨 우한 폐렴의 시기엔.
참 슬픈거야. 저런 지능들과 산다는건, 한시대에 한 땅에서.
30년전쟁은 이걸로 마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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