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ann Tserclaes, Count of Tilly (Dutch: Johan t'Serclaes Graaf van Tilly; German: Johann t'Serclaes Graf von Tilly; French: Jean t'Serclaes de Tilly ; February 1559 – 30 April 1632)
카톨릭 진영의 핵심은, 30년 전쟁에서, 틸리 백작 요한 체르클라에스.와 보헤미아의 발렌슈타인. 두 사람이야. 이 둘이 전반전과 하프타임에 죽으면서, 카톨릭 진영이 참패를 한거야.
리더 란 사람은, 그 지도력이, 갑툭튀가 아녀. 능력이란건 절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지 않아. 반드시 그런 사람이 나오게끔 그 집단무의식이 바닥에 깔아줘야 해. 미개한 민들에서 걸출한 인물은 나올 수 없어. 걸출한 인물이란 미개한 민들에게 자기가 습한 걸출함을 뿌려줘야 하는거고. 이게 역사라는 신이야.
오다 노부나가.가 어릴때 부터 전승이 아냐, 얜 어릴때 사이토 도산. 자기 장인한테 배운겨. 이 사이토 도산.이란 인간은 행승에 기름장수 하면서 자기가 익힌거고 세상을. 이 인간이 시장을 그래서 중시한거고, 나라가 설려면 시장이 자유로와야 해. 시장이 핵이야. 이걸 배워 또한 노부나가가. 장인이 자식에게 죽고 이 요시타쓰에게 노부나가가 상대가 안돼. 이 노부나가 는 저 20대때 전쟁만 하면 필패야 필패. 그리고 나서, 오케하자마 전투.가 26세때야.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이때 걍 죽을 각오로 임한겨 얜. 지난 시절의 전투 패배들의 경험이 오케하자마를 승리하는 바닥으로 승화가 돼.
이에야스도 마찬가지야. 얘도 아무것도 몰라. 겨우 저때 재수좋게 미카와 를 다시 얻고도, 정치경험 전무야. 전쟁경험 전무야. 일향종 잇키. 온니 나무아미타불 만 외치는 애들이 불지르고 난리야. 자기 가신들도 돌아서. 온갖 실패를 토대로 거기서 배운거야 쟤들은.
이순신 이란건, 고려시대 후기에 나온 화약 없는 이순신이란 있을 수가 없어. 고려시대의 배. 선박기술 없는 이순신이란 있을 수가 없어. 이순신이 잘 한건, 잊혀지고 멈춰진 고려때까지의 동북문명을 제대로 썼을 뿐이야. 남들은 이걸 못한거고 안한거고.
발렌슈타인.과 틸리백작 체르클라에스.도 당연히 갑툭튀가 아냐.
Giorgio Basta, Count of Huszt (1550 – 1607)
발렌슈타인의 눈을 뜨게 해준 사람은 조르지오 바스타. 출중함과 아님의 가름선은, 배우는 배우려는 싸이키야. 발렌슈타인은 배운겨, 남들은 배움을 거부한거고. 이게 인물사전에 오름과 내림의 차이 일 뿐이야. 배우려는 능력 힘 이 있어야 해. 이건 habit 해빗 이란 그 사람의 새겨진 관습에서 오는거야. 이게 에토스.이고 캐릭터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의 제 일.은 좋은 해빗. 좋은 버릇을 어릴때부터 들이는거야 얘들 교육론은. 아무리 좋은걸 가르쳐도, 버릇이 습관이 더럽게 들은 애들 청년 늙은 이 들 에겐, 그게 좋은지 몰라, 좋아도 배울 수 없어.
이사람도 군인이자, 외교관이자, 학자이자 시인이야. 유럽애들의 공통된 프로필이야. 단순 칼잡이, 이딴 건 있을 수가 없어.
He was the son of Demetrio Basta, an Albanian Epirote who had fled the Ottoman conquest of the region to Italy, where he served the Spanish Empire. His father fought in the Piedmont countryside in the middle 1500s, and then in Flanders as commander of a cavalry regiment under the Duke of Alba. Very young, Basta became a soldier, and eventually got promoted to the rank of officer in a detachment commanded by Demetrio. Then after his father died, Basta served in a cavalry company run by his oldest brother Niccolò.[9][10]
알바니안.이야. 오스만이 알바니아 점령하면서, 이탈리아로 피신을 한겨 부모가. 이탈리아에서 출생한겨. 이런 알바니안을 아르버레쉬 Arbëreshë 라고 해. 나폴리 지역 출생이야. 여긴 스페인 합스부르크 땅이고, 네덜란드 독립전쟁 80년 때 알바공작 따라서 네덜란드가서 전투하는겨 20대에.
조르지오 바스타.가 네덜란드 전쟁 때, 이 스페인 합스부르크 네덜란드.의 대리인. Gobernador 고베르나도르. 거버너.는 킹 펠리페2세.의 배다른 누나여.
Margaret of Parma (Italian: Margherita di Parma; 5 July 1522 – 18 January 1586) was Governor of the Netherlands from 1559 to 1567[1] and from 1578 to 1582. She was the illegitimate daughter of the then 22-year-old Holy Roman Emperor Charles V and Johanna Maria van der Gheynst. She was a Duchess of Florence and a Duchess of Parma and Piacenza by marriage.
파르마의 마가렛. 카를5세 황제가 결혼전에 낳은 딸이야. 배스타드야. 엄마가, 에노 지역의 작은 도시, 배런 급 자작 정도의 영주 밑에서 일하던 여자인데 몰라 잘. 부르조아 집안인지 세탁부 아줌마인지. 킹 펠리페2세 보다 다섯 살 많아. 카를5세 죽고서, 네덜란드 대리인이 된겨. 동생 펠리페2세가 임명한겨 이건. 피렌체 공작부인, 파르마 공작부인. 결혼으로 받은 타이틀이야 재혼해서. 이 여자 아들이 또한 유명한 알렉산더 파르네시오. 알바공작 을 이은 사령관인데.
John of Austria (Spanish: Juan, German: Johann; 24 February 1547 – 1 October 1578) was an illegitimate son of Holy Roman Emperor Charles V. He became a military leader in the service of his half-brother, King Philip II of Spain, and is best known for his role as the admiral of the Holy Alliance fleet at the Battle of Lepanto.
오스트리아의 후안. 이사람도 카를5세.의 배스타드, 자식이야. 카를5세가 부르조아(부르즈와) 상인의 딸이랑 바람나서 낳은 애야. 펠리페2세 킹보다 20세 어려. 완전히 아들뻘이야. 승계권은 없어. 그래도 사령관이야. 레판토 해전에 제독이야. 네덜란드 전쟁때도 지휘관이고.
얘들은 극동식의 서얼 어쩌고 그딴게 없어. 정식 자리만 못받는거지, 귀족이야. 다른 영지들을 받고, 공직에서 중요한 일들을 해. 이 유럽사는 한편으론 이 배스타드 들이 만든겨 이게. 잉글랜드의 1588 아르마다.도 잉글랜드 총 사령관은 배스타드야.
앤불린.은 저때보다 훨 이전 사람이고. 앤불린 이 어릴때 놀던 플랑드르 코트.는 저 마가렛 이 아니라, 미남왕 펠리페1세.의 누나.가 결혼 두번 다 실패하고 아잉 걍 난 저짝서 살래 혼자, 할때 여기서 놀던 꼬마 앤 불린은, 막시밀리언1세의 딸 코트, 즉 카를5세의 고모 품에 있던거야.
Fernando Álvarez de Toledo y Pimentel, 3rd Duke of Alba (29 October 1507 – 11 December 1582), known as the Grand Duke of Alba (Spanish: Gran Duque de Alba, Portuguese: Grão Duque de Alba)
조르지오 바스타.가 젊을때 겪은 유럽 전투.의 총 사령관은 알바공작 페르난도 알바레스. 알바 공작의 알바.는 살라망카 지역이고, 이 살라망카 왼쪽이 포르투갈 북부고. 살라망카 오른쪽 위가 바야돌리드.야.
이 알바공작 페르난도 알바레스.는 스페인의 영웅이야 지금. 저사람이 또한 황금양모피 기사단원이고, 80년 전쟁 할때 수장으로 직접 출정해서, 에흐몬트 백작 라모랄, 호렌 백작 필립.을 진압하고 사형시킨 사람이고, 조용 윌리엄은 도망가고, 다들 자기 자식뻘이야. 같은 기사단원들이었고, 사형시키기 전에, 라모랄과 필립의 가족들에겐 빨리 떠나라고 피신시키고. 우리네 조선 같으면, 구족을 멸하걸랑.
저런 적폐놀이 집단에서 말야, 그래서 인물이 전혀 없었던거야. 트집 꺼리만 잡으면, 그냥 사돈에 팔촌에 친구 까지 십족을 멸하는겨 이 개 쓰레기 잡벌레 집단들은. 그래서 막상 외적이 쳐들어오면, 인물이 없는겨. 그나마 임란때는 좀 있어, 병란때는 아예 없어. 저게, 임란때 포상이 편협하고 어쩌고 해서 의병이 없었다 이전에, 인물들이 없는겨 조선에. 더하여, 구한말 일본한테 그래서 그냥 준거야 나라를.
왜? 인물이 싸그리 싸악 청소가 된거야. 오직 조선 에 충 한 애들 만, 시대 간 보기 눈치 보기 만 철저한 애들만 살아남은겨 오백년 말에.
그래서 걔들이, 결국 머야? 조선 독립 하면서 조선 이란 두 글자 를 쥐는겨. 여전히.
자기들은. 조선. 이걸랑. 위대한 조선인들.
저게 조선민국 정체성의 뿌리야. 난 그렇게 생각해. 여긴 아무런 에토스. 에또스. 에띡스. 모랄. 이란게 없어. 그 살아남은 핏줄들이 지금 정의의 져스티스의 칼 놀이 하면서 배부른 돼지들, 몇몇만의 조선 을 만드는거지.
그리곤, 나쁜건 적폐의 잔재, 친일의 잔재야. 친일 잔재를 지우면, 위대한 조선 오백년의 정체가 다시 들어나오는거걸랑.
조선이여 조선이여 위대한 조선이여. 우리 민족끼리, 우리 조선민족끼리.
대빵은 우리조선민족끼리를 팔로잉하는겨. 우리 조선민족끼리의 소식지를 받아 봐야 하는거고. 오잉, 실수였어요, ㅋㅋㅋ. 실수로 팔로잉 한거예욤. 에헴. 난 대통령 할끄얌.
빨랑 빨랑 합쳐 니덜 조선과. 그래서 제대로 된, 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 이란 나라이름으로 시작을 해.
난 니덜 편이야. 난 니덜한테 표를 줄꺼야.
망해야 해. 이따위 땅빠닥은. 지구에서, 아니 우주에서 사라져야해. 우주의 생명체들의 보다 나은 진화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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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니덜 편이야.
당원은 못되어줘도, 표는 주께 니덜한테.
Alexander Farnese (Italian: Alessandro Farnese, Spanish: Alejandro Farnesio; 27 August 1545 – 3 December 1592) was an Italian noble and condottiero who was Duke of Parma, Piacenza and Castro from 1586 to 1592, as well as Governor of the Spanish Netherlands from 1578 to 1592.
알바공작 톨레도의 페르난도 알바레스.가 80년 전쟁 와중에, 포르투갈로 가서, 포르투갈을 지우고 스페인과 합쳐. 그리고 죽어. 이 알바공작을 이은 사람이 알레한드로 파르네시오. 영어 알렉산더 파르네이지. 저 파르마의 마가렛.의 아들이야. 용병대장으로 80년 전쟁 참여하고, 엄마 마가렛.을 이어서 자기가 총 대리인이 돼.
조르지오 바스타.가 저 두사람을 다 겪은 사람이야.
By some historians he is considered the most effective general of his generation[2] as well as one of the greatest in military history.[3] Although a tough leader, he was respected by his troops. He touched their sentiments e.g. by addressing them in his speeches as "gentlemen soldiers" (señores soldados), but was also popular among them for daring statements such as:
Kings use men like oranges, first they squeeze the juice and then throw away the peel.[4]
Alba especially distinguished himself in the conquest of Tunis (1535) during the Ottoman-Habsburg wars when Carlos I defeated Hayreddin Barbarossa and returned the Spanish Monarchy to predominance over the western Mediterranean Sea. He also distinguished himself in the battle of Mühlberg (1547), where the army of Emperor Charles defeated the German Protestant princes.
알바공작. 포르투갈을 갖고 와서 죽은 사람은, 자기 병력들에 존경을 받은 사람이고. 유명한 연설 중에.
킹들은 사람들을 오렌쥐로 취급한다. 처음엔 그 킹들은 주스를 짜먹고, 그리곤 껍질을 버리지.
킹이 싫어하는 말이지만, 머 어째 서로 다 아는거 솔직히 말하는거지. 튀니지 전투 1535년. 이게, 하이레딘 바바로싸. 붉은수염 하이레딘.이라는 터키 지금 영웅. 이전 썰. 술레이만이 해군 사령관 임명한 해적이걸랑. 이 튀니지를 갖고 오는데 카를 5세때, 여기에 참전하고, 뮐베르크 전투. 저건 슈말칼덴 전쟁 때, 종교전쟁했던거고. 카를5세와 그 아들 펠리페2세 때 사령관 할배였고. 80년 전쟁 초기는 이사람과 다음의 알레한드로 파르네시오.가 한겨. 이 둘이 있을때 네덜란드는 힘을 못쓰고 프리지아 해변만 남다가, 1588 아르마다 이후에, 파르네시오 말년에 네덜란드가 힘을 얻은겨.
The Long Turkish War or Thirteen Years' War was an indecisive land war between the Habsburg Monarchy and the Ottoman Empire, primarily over the Principalities of Wallachia, Transylvania and Moldavia.[7] It was waged from 1593 to 1606
조르지오 바스타.가 다음 가는곳이 롱 투르크 전쟁이야. 알렉산더 파르네시오가 죽고, 저긴 그다음은 소규모 전투야. 국경선 다지기 걸랑. 펠리페2세가 루돌프2세 황제에게 추천장을 써줘. 바스타 는 알바니아에서 오스만에 쫓긴 알바니안이야. 웬수를 갚아야 해 개인적으론. 왈라키아 트렌실베니아 몰도바 에서 오스만에 반란하는 지원사격을 이사람이 하는겨.
이때 오스만 지역의 반란군의 대표가, 이전 썰한 왈라키아 의 용감 미하이.야. 얘가 볼도바.에 세운 사람이 라즈반.이고, 이 몰도바를 정리하러 오는게 폴란드에서 얀 자모이스키.인거고, 오스만과 손잡고.
저 왈라키아(루마니아. 로마니아)의 용감 미하이.가 로마니아.의 영웅이야 지금. 저때 트랜실배니아.는 지그스문트 바토리 라는, 엄마는 칼뱅이지만, 카톨릭인 어린 군주였걸랑. 얘들이 저때 잘 했으면, 오스만은 물러났을거야.
저때 분위기가 졸 좋았어 반오스만 진영는. 그런데, 트랜실베니아.의 지기스문트 바토리.가 어릴때 프린스가 되서 섭정에 갓 군주가 돼. 막 20대에. 얜 카톨릭이야. 그런데, 트랜실베니아의 귀족들은, 프로테스탄트에, 오스만에 하미지 해오던 애들이었걸랑. 오스만에 어떻게 대드냐는거야. 그래서 바토리.가 난 군주 안할래, 하고 떠나. 루돌프2세 가 있는 프라하로 가는거야. 이 때 외삼촌 보츠카이.가 너 돌아오라 돌아오라 하는거고. 헌데 요때, 왈라키아의 용감 미하이.가 몰도바에도 라즈반 세우고. 오스만들을 이겼걸랑. 카톨릭에선, 조르지오 바스타.가 여기에 합세를 하고.
저때, 트랜실베니아 만 확실하게 편들었으면, 오스만은 발칸반도에서 사라졌을 수 있었어 저때.
헌데, 트랜실베니아.는 귀족들이, 감히 오스만에 대드는걸 생각도 못해. 여기에, 카톨릭 제수이트. 예수회 인간들이 정치적으로 개입하는게 불만이고. 이게 바토리 들끼리 서로 싸우는겨. 지기스문트 바토리.가 염증을 느껴서, 자기 사촌 앤드류 바토리에게, 그런 너가 해. 하면서 프라하로 간거야. 이 앤드류.는 로마 카디널, 추기경임에도, 오스만과의 전쟁을 반대한거야. 얘들이 갑자기 친 오스만으로 돌아서고. 오히려 용감미하이.와 바스타.가 연합해서 저 트랜실베니아.를 공격해야 하는거야.
The Battle of Şelimbăr or Battle of Sellenberk[2] (Hungarian: Sellenberk; German: Schellenberg) took place on 18 October 1599 between the Romanian army of Michael the Brave (Romanian: Mihai Viteazul) and the Transylvanian-Hungarian army of Andrew Báthory (Hungarian: Báthory András). The battle was fought near the village of Șelimbăr (in Hungarian: Sellenberk) close to Sibiu (in German: Hermannstadt, in Hungarian: Nagyszeben).
셸림바 전투. 1599년. 카르파티안 산맥 감아도는, 트랜실베니아.와 왈라키아의 교차점 고지대야. 여기서 용감미하이.와 바스타.가 트랜실베니아.를 이기는건데. 오히려 이러면서, 이쪽 힘이 죽는겨 이게.
The Battle of Mirăslău or Battle of Miriszló took place on September 18, 1600 near Miriszló (Romanian: Mirăslău ), Transylvania, between the Wallachian troops led by Michael the Brave supported by ethnic Hungarian Szeklers and the troops of Austrian general Giorgio Basta supported by the Hungarian nobility of Transylvania.
미라슬라우 전투. 1600년. 셸림바 바로 왼쪽이야. 지금 모두 로마니아(루마니아) 땅이고.
셸림바 전투.로 트랜실베니아 를 이기고, 앤드류 바토리.도 농노에게 죽어. 황제 루돌프2세.가 저자리를 용감 미하이.에게 준거야. 헌데 얘가, 조르지오 바스타.를 업수이 여기고 얕보는겨 이게. 조르지오 바스타.는 저 용감 미하이.가 배신자인겨. 둘이 갈라서고, 미라슬라우 전투.에서 왈라키아의 용감 미하이.가 패하고, 바스타 가 암살을 시켜 바로.
조르지오 바스타.가 그래서 저기서 실세가 되고, 이사람은 정치를 해본 사람이 아니야. 이사람에 반란하는게, 지기스문트의 외삼촌인, 보츠카이.야. 칼뱅주의. 이 보츠카이가 바스타에 대들지만 두번 다 패해. 조르지오 바스타.는 전쟁기계여. 헌데 근본적으로, 헝가리나 트랜실베니아는, 프로테스탄트의 땅이야. 지기스문트 바톨리도 그거에 못 베기고 프라하로 갔던거고, 아예 안맞는겨 이게. 루돌프2세가 불러들이고, 보츠카이가 트랜실베니아의 프린스로 앉고. 그리고서 롱 투르크 전쟁이 끝나는겨. 오스만은 걍 아무것도 안하고 다시 눌러 앉은겨 저게.
저때 중심은 트랜실베니아 였던건데. 얘들이 스스로 포기를 한거야. 국가 독립 어쩌고 보다는, 칼뱅 이란 이념이 중요한거고, 오스만은 자기들을 받아주는거고, 카톨릭은 자기들과 안 맞는거야. 나중에 보츠카이.가 인정을 받는거고 마티아스 황제한테.
오스만이 강해서 저리 오래 있던게 아냐 저 헝가리 로마니아 몰도바 에. 자기들이 자초한겨 저건. 제발 좀 오스만아 있어서 계속 우리를 지배하거라.
저때 저 현장의 중심에 조르지오 바스타.야. 롱투르크 전쟁 이 끝나고. 프라하에 와서 죽어.
Basta was born into a period of transition from the tradition sword and shield to the gun. And cavalry switched from the Gendarme to lighter and armed cavalrymen, which valued quick cavalry charges.
바스타.가 유럽에서 군사전법의 패러다임을 바꾼사람이야. 저때 총이 등장한지 1백년이 될 때야. 단지 총 이란게 이탈리아 전쟁때 등장한 듣보잡이었고 명중율도 낮고 재장전이 늦걸랑. 이게 점점 고도화되서 무기로 쓰이고, 칼과 방패의 시대를 마감하는겨 이게. 칼과 방패 란건, 핵심이 고대로마부터 중기갑병이야. 치렁치렁 달고 움직이는 애들이야. 기사가 움직이면 뒤에 시종이 방패들고 짐들고 따라다니는. 이게 고대로마부터 2천년간의 전쟁패러다임이야.
이게 총이 등장하면서, 1백년 지나고. 이 조르지오 바스타.가 이 패러다임의 변화를 최초로 눈치를 채고. 경기갑병 중심의 군대로 바꾼거야. 젠다름.이 중기갑병이야. 중무장한 말탄 기사들이야. 이게 완전히 바뀐거야. 그리고, 말 이란 것도, 좋을 필요가 없어 이게. 총을 장전한 말탄 기사의 말.이 이게 예전에 시종이 기사 따라다니면서 짐실던 말.로 대체가 돼.
명마 라는게 쓸모가 없는 시대가, 총의 시대야.
이걸 제일 먼저 눈에 익힌 인간이, 30년 전쟁의 보헤미안, 훗사이트에서 카톨릭으로 전향한 발렌슈타인이야. 이 발렌슈타인.이 갓 스물넘어서, 조르지오 바스타.가 헝가리 갈때 귀족 신분으로 옆에 참모로 드간거야. 이때 저사람의 전쟁기법을 익힌겨. 배우는 능력이 탁월해. 저게 딱 이년여 정도 였걸랑.
Wallenstein then joined the army of the Emperor Rudolf II in Hungary, where, under the command of Giorgio Basta, he saw two years of armed service (1604–1606) against the Ottoman Turks and Hungarian rebels.
21세에서 23세에, 저때 조르지오 바스타.에서 처음 전쟁을 경험한겨 이사람은. 이게 다야. 그리고 3년 후 1609년. 나이 26세에 카톨릭으로 전향한거야. 이 조르지오 바스타 와의 투르크전쟁 경험이 제일 컸을거야 아마.
갑툭튀로 절대 저리 전쟁능력이 있을 수가 없어. 분명히 저때 익힌겨 조르지오 바스타 에게서. 나만의 이야기야. 이런 얘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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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백작 체르클라에스.는 조르지오 바스타.보다 9세 어려. 똑같아 성장과정은. 플랑드르 한복판에서, 80년 전쟁을 알바공작과, 마가렛 아들 알렉산더에 걸쳐서 그 경험으로 30년 전쟁을 한겨.
저 둘이 죽고, 30년 전쟁은, 스위든이 갖고 가는겨 제일 큰 열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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