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 the instruction of Michael Maestlin, Tübingen's professor of mathematics from 1583 to 1631,[14] he learned both the Ptolemaic system and the Copernican system of planetary motion. He became a Copernican at that time. In a student disputation, he defended heliocentrism from both a theoretical and theological perspective, maintaining that the Sun was the principal source of motive power in the universe
Despite his desire to become a minister, near the end of his studies, Kepler was recommended for a position as teacher of mathematics and astronomy at the Protestant school in Graz. He accepted the position in April 1594, at the age of 23.[16]
케플러.가 튀빙엔 대학.에서 공부하고, 그라츠.의 프로테스탄트 학교로 교수직에 가는게 서기 1594년. 23세 때야. 튀빙엔 대학에서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를 배워. 그리곤 태양중심주의. 지동설을 확실히 믿게 돼.
Claudius Ptolemy (/ˈtɒləmi/; Koinē Greek: Κλαύδιος Πτολεμαῖος, Klaúdios Ptolemaîos [kláwdios ptolɛmɛ́os]; Latin: Claudius Ptolemaeus; c. AD 100 – c. 170)[2] was a Greek mathematician, astronomer, geographer and astrologer.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 서기 100-170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사람이야. 당시 로마때의 이집트고. 이놈의 그리스 란건 정말 엄청난건데 이게. 특히나 저 프톨레마이오스.가 절정을 이뤄. 이사람이 지리학의 조상님에 천문학의 조상님이걸랑. 저당시 그린 세계지도.와 조선 구한말의 세계지도.를 비교하면. 참 창피한거야.
저당시 하늘 천문학과. 극동의 천문학은 비교 자체가 끔찍한거야 이게. 얘들은 여전히 구한말에도, 중국 포함 땅은 평평한겨. 지구가 둥글다, 이건 상상을 못해. 어이 코쟁이, 지구가 둥글면 아래쪽 사는 이들은 다 떨어져 죽겄네?
성리학의 개천설 혼천설. 하늘이 열린겨. 혼천설이란건 땅 아래의 하늘이야. 흐릿하다는겨 그게. 혼 이란 말이. 성리학 개념이야 저놈의 혼 이란 글자가.
미개해도 이처럼 미개한 나라가 없었어 지구상에. 저 조선이란건. 청나라 코트에는 벌써 제수이트 들이 코트에 들어오면서, 당신들 달력 틀렸어. 이걸 논쟁하고 인정을 해 중국 조차도. 조선때 저런 말하면 적폐가 되는겨.
The earliest and most influential of Ptolemy's major writings is the Almagest. In 13 books it establishes the kinematic models (purely mathematical and nonphysical) used to explain solar, lunar, and planetary motion and determines the parameters which quantify these models and permit the computation of longitudes and latitudes; of the times, durations, and magnitudes of lunar and solar eclipses; and of the times of heliacal risings and settings. Ptolemy also provides a catalog of 1, 022 fixed stars, giving for each its longitude and latitude according to an ecliptic coordinate system.
이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마게스트.에선. 태양 달, 행성들의 움직임,의 모델을 제시하고, 경도 위도 계산하는 삼각자를 이야기하고 이건 근대 까지 쓰는겨 이사람 위도 경도 계산법을. 일식 월식 주기 계산. 태양의 일출 일몰 시간. 더하여 하늘의 벌들 1022개 목록. 각각의 위치.
미친겨 이건. 저것과 말야. 1700년 이 지난 극동의 천문학과 지리학.을 비교하면, 걍 극동은 아프리카 원주민이야. 천동설로 폄하가 되지만, 천문학은 이사람이 다 한겨. 우주 전체 모델을 만들고, 별자리 이름붙이기 만들고. 지구가 왜 구형인지 설명하고.
극동은 완전히 미개한 땅빠닥이야 저게. 이 극동은 수메르 이후, 8천년이 뒤진게 아냐. 8천년이 느낌상 저건 수십만년이야. 미개해도 너무나 미개한겨. 저 양과 질,이 어마어마해. 우리넨 저런 두께에 대한 공부가 전혀 없는거야. 저 리터러쳐들이 너무나 엄청나서 감당을 못해 저걸.
에이, 샹, 걍 조선 위대해. 이짓만 하자.
열등감의 무리들이 내놓은 답안지야. 세상 모든건 남탓.
.
Nicolaus Copernicus (/koʊˈpɜːrnɪkəs, kə-/;[2][3][4] Polish: Mikołaj Kopernik;[b] German: Nikolaus Kopernikus; Niklas Koppernigk; 19 February 1473 – 24 May 1543) was a Renaissance-era polymath who formulated a model of the universe that placed the Sun rather than Earth at the center of the universe, in all likelihood independently of Aristarchus of Samos, who had formulated such a model some eighteen centuries earlier.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폴란드 사람이야. 미코와이 코페르니크. 이놈의 폴란드. 이사람은 당시 로얄 프러시아.의 사람이고, 이 로얄 프러시아는 폴란드 킹덤의 임차인 이야. Toruń 토루뉴 태생이야. 이 토루뉴. 는 비스와 강 Vistula 하류에 있는 도시고, 이 비스와 강이 포메라니아 와 프러시아 의 경계여. 포메라니아가 이 비스와강 하류에서 시작해서 왼쪽으로 옮기면서 확장한거고, 이 강하류는 프러시아가 차지하는겨.
The Peace of Thorn of 1466 (German: Zweiter Friede von Thorn; Polish: drugi pokój toruński) was a peace treaty signed in the Hanseatic city of Thorn (Toruń) on 19 October 1466 between the Polish king Casimir IV Jagiellon on one side, and the Teutonic Knights on the other.
토루뉴 평화. 1466년. 토른. 토루뉴. 튜튼 십자군과 야기에워 시작 요가일라.의 막내 카시미르 4세 와 체결한 조약이야. 튜튼 십자군이, 폴란드 피아스트 공작이, 발트해 프러시안 몰아달라며 오라.는게 서기 1226년 이고 아코함락이 1296년 이야. 아코함락 되고 갈데 없는 튜튼들이 이리 더 몰려. 2백년이 지난겨. 이 튜튼들이 폴란드 리투아니아 의 골칫거리가 되걸랑. 2백여년 만에 폴라드 에 정식으로 고개숙이고는 자리를 잡아. 특히나 이전 요가일라 와 비타우타스 사촌형제들은 아무도 못건들여 이미 저때 다 끝난겨 튜튼은. 저 1466년 조약으로 튜튼은 완전히 고개숙여. 세임에 발언권도 없어 저들은.
그리고 저 이후 60여년 지나서, 튜튼 기사단장이 루터 만나서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하고 정식 더치 령이 되는겨. 오른쪽 땅을 받고, 카톨릭 튜튼들은 서쪽땅에서 부들부들 하는거고.
할때, 코페프니쿠스.는 70년 살았는데, 말년에 프러시아 더치.가 떨어져나가서 루터파 더치.가 된거고. 코페르니쿠스.의 토루뉴.는 왼쪽에 남은 로얄 프러시아.야.
가만 보면, 웃긴게 말야.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에 죽었어. 이사람은 마르틴 루터 1517년 대자보 이후 기사들의 전쟁, 농민전쟁에 다음 슈말칼덴 전쟁 직전에 죽은겨. 즉 카톨릭과 루터.의 팽팽한 긴장감일때 의 사람이야 코페르니쿠스.는.
헌데 이사람은, 전혀, 이단을 겪지 않아. 프러시아.와 이탈리아를 오가면서. 즉 저따위 이단 논쟁은 미개한 게르만에서만 일어났던거야 시작은. 저게 점점 지들끼리 서로 정통 정의 상대 적폐 해대면서 마녀사냥 서로들 하기 시작한거걸랑.
The Commentariolus (Little Commentary) is Nicolaus Copernicus's brief outline of an early version of his revolutionary heliocentric theory of the universe.[1] After further long development of his theory, Copernicus published the mature version in 1543 in his landmark work,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On the Revolutions of the Heavenly Spheres).
Copernicus wrote the Commentariolus in Latin by 1514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란, 태양중심설.은 서기 1514년. 코페르니쿠스 41세 때 나온거야. 개괄적인 결론으로만 짧게. 코멘타리올루스. 짧은 코멘터리. 짧은 설명. 이걸 30년 지나서, 서기 1543년에 나이 70세. 죽는 해에 누렘베르크. 여긴 바바리아땅인데 당시 프로테스탄트 영지야. 여기서 첫 출판이 돼. 헌데 이미 서기 1514년인 30년 전부터 하던 이야기야 코페르니쿠스.가
헌데 뜬굼없이, 저 이야길 믿는다고, 갈릴레오는 1615년, 51세에 종교재판을 받는겨. 저 코멘터리 쓴 1백년 후에.
즉 저당시는, 루터 대자보 직전에 나온거지만, 저게 정치적 논쟁과 상관이 없는겨. 이후에도 저건 관심대상이 아냐. 종교 분파질이란게, 이게 점점 적폐 손가락질 영역이 꾸며지는거고 더해지는거걸랑. 이 적폐놀이란게 참 더러운건데.
즉 저 이야긴, 백년 지나서 적폐가 되는겨. 머 그렇다고, 루터애들은 저 이야길 좋아할까? 똑같아 루터애들도 저건 사탄이고 멍청한겨.
In 1533, Johann Albrecht Widmannstetter delivered a series of lectures in Rome outlining Copernicus's theory. Pope Clement VII and several Catholic cardinals heard the lectures and were interested in the theory. On 1 November 1536, Cardinal Nikolaus von Schönberg, Archbishop of Capua, wrote to Copernicus from Rome:
Some years ago word reached me concerning your proficiency, of which everybody constantly spoke. At that time I began to have a very high regard for you... For I had learned that you had not merely mastered the discoveries of the ancient astronomers uncommonly well but had also formulated a new cosmology. In it you maintain that the earth moves; that the sun occupies the lowest, and thus the central, place in the universe... Therefore with the utmost earnestness I entreat you, most learned sir, unless I inconvenience you, to communicate this discovery of yours to scholars, and at the earliest possible moment to send me your writings on the sphere of the universe together with the tables and whatever else you have that is relevant to this subject ...[73]
1514년에 처음 발표하고, 30년을 데이타를 수집하는겨 코페르니쿠스는. 저건 이미 유럽을 다 돌아 저 이야기가.
요한 알베르히트 비트만슈테터.가 저걸 흥미롭게 보고, 로마에 가서, 교황과 몇몇 추기경들 앞에서 저걸 강의를 해. 오잉? 저들이 호기심이 생겨. 저걸 들은 추기경 카푸아의 대주교가 코페르니쿠스에게 편지를 써. 3년 후에.
몇년 전에 당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모두가 그이야기만 하더라. 그때 나는 당신을 매우 높이 평가하기 시작했다, 왜냐면 나는 당신이 단지 고대 천문학자들의 흔치 않은 이야기들을 발굴해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우주론을 만들었다고 판단해서다. 거기서 당신은 주장한다 지구는 돈다고, 태양은 가장 바닥을 차지한다고, 그래서 우주에서 태양이 중심이라고. 그러므로 가장 최우선의 호의로 난 당신을 바라본다, 가장 많이 배우신 이여, 내가 당신을 불편하게 안 한다면, 당신의 발견들을 학자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가장 이른 시간안에 나에게 당신의 저작물, 우주 모델에 대해 표들을 포함한 것들을 보내달라,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모든 걸 포함해서....
저때가 서기 1533년에 1536년이야. 한창 루터가 생생할때야. 그래도 카톨릭은 저런 이야길 전혀 이단 이라 하지 않아. 오히려 너무 매우 흥미로운겨 이게.
반면 루터, 얘도 저 이야길 들어.
However, in 1539, Martin Luther said:
"There is talk of a new astrologer who wants to prove that the earth moves and goes around instead of the sky, the sun, the moon, just as if somebody were moving in a carriage or ship might hold that he was sitting still and at rest while the earth and the trees walked and moved. But that is how things are nowadays: when a man wishes to be clever he must . . . invent something special, and the way he does it must needs be the best! The fool wants to turn the whole art of astronomy upside-down. However, as Holy Scripture tells us, so did Joshua bid the sun to stand still and not the earth."[81]
This was reported in the context of a conversation at the dinner table and not a formal statement of faith. Melanchthon, however, opposed the doctrine over a period of years.[82][83]
마르틴 루터.의 말이야. 새로운 점성가의 이야기가 있다며, 지구가 움직이고 돈다고, 하늘 대신 즉 태양 달 대신에. 마치 누군가가 마차나 배를 타고 움직이면서, 자기는 앉아서 가만히 쉬고 있는데 지구와 나무들이 걸어 다니고 움직인다고 하는거지. 헌데 그런게 요즘 세상이란 말야, 사람은 유별나길 바라지, 그럴수록 뭔가 특별난 것을 만들어야만 하고, 그런식으로 가장 잘 먹히는걸 들이댈 수 밖에 없는거지. 그 바보가 천문학의 모든것을 완전히 뒤집고 싶어해.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지, 조슈아가 태양은 가만히 있으라 지구는 말고, 라고 했다곤 하지.
이런 말이, 저녁식사의 대화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공식 자료는 아니다. 루터 딱갈이 멜란히톤은 코레르니쿠스 이야기를 수 기간 반대했다.
Aristarchus of Samos (/ˌærəˈstɑːrkəs/; Greek: Ἀρίσταρχος ὁ Σάμιος, Aristarkhos ho Samios; c. 310 – c. 230 BC) was an ancient Greek astronomer and mathematician who presented the first known heliocentric model that placed the Sun at the center of the known universe with the Earth revolving around it.
사모스섬의 아리스타르코스. 기원전 310-230년. 처음으로 태양중심 모델을 주장한 사람이야. 즉 고대에 이런 주장이 있었고. 이건 관심을 못받았어. 단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주류였을 뿐이야. 이걸 코페르니쿠스.가 공식적으로 뒤집은거고.
It was not until the 16th century that a mathematical model of a heliocentric system was presented, by the Renaissance mathematician, astronomer, and Catholic cleric Nicolaus Copernicus, leading to the Copernican Revolution. In the following century, Johannes Kepler introduced elliptical orbits, and Galileo Galilei presented supporting observations made using a telescope.
With the observations of William Herschel, Friedrich Bessel, and other astronomers, it was realized that the Sun, while near the barycenter of the Solar System, was not at any center of the universe.
코페르니쿠스.는 튜튼십자군의 로얄 프러시아.고, 당연히 카톨릭이고. 이걸, 요하네스 케플러.는 타원궤도를 그리고 케플러의 법칙을 만들면서 뒷받침한거고, 갈릴레오는 시각적 데이타를 바탕으로 주장을 다시 한거고. 헌데 갈릴레오는 카톨릭 진영의 개혁판에서 저런 말이 위험하게 된겨. 헌데, 우주의 중심은 태양도 아니고, 18세기 지나면서, 윌리엄 허셸, 에 메씨에 가 나오면서, 성운 성단 은하들이 나와 막막. 태양이 중심이란 것도 유치한 이야기가 되는거고.
대체, 저런 이야기들 나올때,
조선을 보라고 조선을.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저런 생각의 차이가. 결국 거리의 모습 차이야. 저게 한양 길거리 빠닥이 똥 천지 였던거고, 유럽 도시들과 비교를 못하는겨 이게. 동시대 사진을 보라고. 저 조선 거리가 저게 사람 사는거냐고 저게.
그런데, 오매 . 물질문명으로 잣대질 말아유!! 조선의 정신문명은 엄청나게 위대해유!! 허연 도포짜락 이버유!!
저따위 미개한 말들이 여전히 흘러나오는겨 테레비로. 석학 님들, 민족 지도자연 하는 선생들의 이바구질로.
얼마나 여전 히 한심하냐고 이 조선 반도가.
Nicolaus Copernicus was born on 19 February 1473 in the city of Toruń (Thorn), in the province of Royal Prussia, in the Crown of the Kingdom of Poland.[9][10] His father was a merchant from Kraków and his mother was the daughter of a wealthy Toruń merchant.[11]
코페르니쿠스.는 상인들의 딸이야. 아빠도 엄마도. 뒤의 케플러와 똑같아. 크라크푸 대학 나왔어. 이 대학이 1364년 에 선겨. 유럽 중세대학 32번째고, 프라하 대학이 1348년 28번째 대학이고, 크라크푸 가 비엔나 대학보다 빨러. 엄청나 이 폴란드. 독일애들보다 빨러 이게.
유럽은 이 대학이 만든겨. 플라톤 과 아리스토텔레스 의 말을 듣고, 저 커리큘럼의 저 두 인간의 교육 가이드야 이게.
Copernicus is postulated to have spoken Latin, German, and Polish with equal fluency; he also spoke Greek and Italian, and had some knowledge of Hebrew.[j][k][l][m] The vast majority of Copernicus's extant writings are in Latin, the language of European academia in his lifetime.
언어를, 라틴어 게르만어 폴란드어 를 똑같이 유창하게 해. 그리스어 이탈리아어 로도 말을 해. 히브리어 도 지식이 있어. 대부분의 글은 라틴어로 썼고.
저게 그냥 유럽 애들의 공통된 프로필이야.
저런게 어마어마한 격차야. 지금 유럽 애들의 몇퍼 만의 리더들이 다 저래. 세상은 저 몇몇 의 애들이 중심이야.
아뉴!! 인민들이 중심이유!!
그래 그래라.
저 유럽의 시민들이 저런 인물들을 만들어 낸거고, 저 인물들이 유럽 시민들에게 자기들껄 계속 뿌려 온거야. 저게 서로서로들 프시케 라는 영혼에 새겨지는 거고, 그 새김의 정도로 계속 자기들 땅에서 윤회를 하는겨. 저작권은 저쪽에 잇걸랑. 저쪽의 영혼은 왜 극동으론 못올까?
극동에 와봤자, 찢어 죽임질 당하는 적폐가 되는 걸 리버뜨 되는 리인카네이션 전에, 운명의 여신의 실타래의 토큰 받을 때 극동엘 왜 오겠니.
Meanwhile, leaving Warmia in mid-1496—possibly with the retinue of the chapter's chancellor, Jerzy Pranghe, who was going to Italy—in the fall, possibly in October, Copernicus arrived in Bologna and a few months later (after 6 January 1497) signed himself into the register of the Bologna University of Jurists' "German nation", which included young Poles from Silesia, Prussia and Pomerania as well as students of other nationalities.[22]
During his three-year stay at Bologna, which occurred between fall 1496 and spring 1501
코페르니쿠스.는 폴란드에서 학업을 하고 졸업하고, 서기 1496년. 26세에 이탈리아 로 유학가는겨. 볼로냐 대학에 입학해서 5년을 다녀. 로마에 파도바에 이탈리아를 돌아다니고. 그리고 30 초반에 폴란드 가서 작품을 쓰는겨.
볼로냐 대학이 1088년 최초의 유니버시티 걸랑. 저기서 많은걸 주웠을 테고, 또한 모든 유니버시티 들이 모두 리터러쳐 가 서로 공유가 되는겨. 헌데 크라크푸는 상대적으로 저때는 자료가 적었을거야.
그런데, 요하네스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 죽고 30년 후에 태어난 거걸랑. 튀빙엔 대학은 깡촌도 아니고, 이 케플러.는 거의 신성로마제국 영지를 벗어나지 않았어. 이 케플러는 신성로마제국 에서 만든겨 이건. 라이프니츠.의 라이프치히 대학은 튀빙엔 보다 역사가 빨라, 마르틴 루터의 에르푸르트 도 튀빙엔 보다 빠르고. 헌데 여긴 지리적으로 완전 깡촌이걸랑 이게. 튀빙엔은 그나마 네카르 강 따라서 라인강과 만나는 곳이고.
여하튼 케플러.는 신성로마제국을 거의 벗어나지 않아. 코페르니쿠스.는 볼로냐 대학과 이탈리아 경험 의 5년이 컸을거야. 모든건 이탈리아야 중세나 근대도. 사유의 저수지는.
'세계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럽사257. 30년 27. 덴마크와 스위든. 구스타부스 아돌푸스 (2) | 2020.01.23 |
---|---|
유럽사256. 30년전쟁 26. 케플러 3. 티코 브라허 (0) | 2020.01.22 |
유럽사254. 30년전쟁 24. 요하네스 케플러 1. 갈릴레오 (1) | 2020.01.22 |
유럽사253. 30년전쟁 23. 조르지오 바스타 (1) | 2020.01.21 |
176. 에르 이야기2. 플라톤의 사후세계 (1) | 2020.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