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lsund 슈트랄준트. 서기 1630년에 스위든이 유럽대륙에 처음 상륙해서 스위든-포메라니아 라는 땅을 2백년간 간 지배하는 시작이 슈트랄준트.야. 오른쪽 위가 큰 섬이야. Rügen 뤼겐 섬. 지금 다리를 놓은거고. 아래 그라이프슈발트 의 오른쪽 해변에 Wolgast 볼가스트.가 있고, 죽 아래에 Szczecin 슈체친.이 오데르강 하류에 있고 이건 폴란드고 지금. 볼가스트와 슈체친.이 포메라니아 공국의 수도들이었어. 저 오른쪽 위 섬이 Bornholm 보른홀름 섬인데, 6백 제곱키로가 좀 안돼. 이건 지금 덴마크 섬이야.
The Öresund or Øresund Bridge (Danish: Øresundsbroen [ˈøːɐsɔnsˌpʁoˀn̩]; Swedish: Öresundsbron [œrɛˇsɵnːdsˌbruːn]; hybrid name: Øresundsbron) is a combined railway and motorway bridge across the Öresund strait between Sweden and Denmark. The bridge runs nearly 8 kilometres (5 miles) from the Swedish coast to the artificial island Peberholm in the middle of the strait. The crossing is completed by the 4-kilometre (2.5 mi) Drogden Tunnel from Peberholm to the Danish island of Amager.
스위든어 오레순스브룬. 덴마크어 외하손스브훈. 영어로 오레순드 다리.야. Malmö 스위든의 말뫼.가 스위든에서, 스톡홀롬 예테보리 다음으로 세번째 큰도시야. 여기와 덴마크 코펜하겐을 잇는겨. 저 다리가 8키로걸랑.
Valdemar (English: Waldemar; Swedish: Valdemar Birgersson; 1239 – 26 December 1302) was King of Sweden from 1250–1275.
스위든 킹 발데마르 비에리에숀. 이 13세기 중반인데. 얘 동생 마그누스.가 반란을 해. 덴마크 킹의 지원을 받고, 킹이 되고, 형 발데마르는 감금된 채 걍 편히 살다 죽어. 덴마크가 킹이 된 마크누스 에게 전쟁 도와준 돈 달라고 해. 6천 마르크. 마그누스가 그런 약속 안했다면서 오히려 덴마크로 쳐들어가. 4천마르크 로 깎아. 그리고 이 마그누스의 자식들이 스위든 과 노르웨이.를 나눠갖고, 형 스위든이 자식없이 죽어서 동생 노르웨이가 겸하고, 죽고, 이 부인이 두 나라 대리하고 이 아들 마그누스가 커서 두나라 킹하고, 두 자식이 나와서 스위든 노르웨이를 각각하다가, 또 스위든이 자식없이 죽고 동생 노르웨이가 겸하다 죽고, 이 동생 노르웨이 의 부인이 덴마크의 마가렛.이야. 이때부터 칼마르 유니온이야. 덴마크가 세나라를 지배를 해. 스위든은 반란하고 자체 킹 내세우다가 진압이 되고.
저 덴마크의 마가렛.도 형 발데마르 에 반기를 둔 마그누스3세.의 핏줄이야. 이사람의 딸이 덴마크의 퀸으로 시집간거걸랑. 마가렛은 크누트의 여동생 에스트리드.의 핏줄인 에스트리드센 가문이고. 이 마가렛이 스위든 킹이 된게 1389년.이야.
길게는 마그누스3세의 발데마르 반란에 6천마르크 전쟁이 저 이전 1백년이고, 칼마르 부터는 본격적인 스위든의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하는거고, 정점이 스톡홀롬 블러드배쓰 라는 피의 욕조 사건이야. 스위든 귀족들을 초대해서 다 죽여. 이걸로 구스타브 바싸가 독립전쟁해서 칼마르를 벗어나는거고. 스톡홀롬 블러드배쓰.가 1520년 이야. 끔찍한겨 이건.
칼마르 부터 따지면, 서기 1389년 부터 말이지, 이 덴마크와 스위든은 웬수사이도 이따위 웬수사이가 없어 이게. 독립하고부터는 그 직후부터 계속 두나라는 전쟁이야 이건. 이게
The Dano–Swedish War of 1808–1809 was a war between Denmark–Norway and Sweden due to Denmark–Norway's alliance with France and Sweden's alliance with the United Kingdom during the Napoleonic Wars.
나폴레옹 티나오고 19세기 초까지 오는겨. 칼마르 부터만 쳐도 4백년 이상이고, 유럽 각각이 웬수지만 서로들. 이 덴마크 스위든은 그야말로 철천지 웬수야.
그래도 쟤들은 저렇게, 다리를 서로 놓고 살아.
영국과 프랑스는 사자심왕 리차드와 아우구스투스 필립2세 부터 8백년이 철천지 웬수야. 그러면서도 해저터널 뚫고 살아. 프랑스 어려울때 영국이 살려주고, 저 프랑스란 나라는 완전 쓰레기였던 저 나라는 영국이 만들어준거야 지금 저건.
저런것과 비교하면 말이지, 조선 일본 사이는, 이건 걍 태평성대 야 이건. 조선이 빗장 걸고 닫아서리 먼 나쁜 사이도 아니고, 임란때 당하고 나중엔 그냥 자기 싸버린을 그냥 주고. 철저히 열등해진 애들이 조선이걸랑. 통신사들이 일본 다녀온 글을 남겨. 오메 에도와 오사카 는 완전 별천지네 이거.
안가르쳐 저런 글들은. 숨겨야 해. 숨기세요 저 조선때 일본 찬양시피 한 글은 적폐들이예요. 저런거 갈키지 마세요.
유럽애들과 비교하면, 조선 일본은 걍 평범한 사이야 저건.
아뉴!! 사과해야쥬!! 북조선은 사과 안해도 된당께, 소련과 미국의 여칵관계로 일성이가 쳐내려오기 시른건데 억지로 내려와땅께. 죽인거 걍 눈감아 덮어주랑께. 같은 민족 이랑께. 대신 일본한텐 사과바다야 한당께.
민족놀이 하는 이들 보면 지 애비 조상은 훈도 헌병에 친일파들. 하물며. 참나 저런것들이 오히려 더 민족놀이의 선동에 앞장을 서.
유럽에 비하면, 조선과 일본은 조또 아니여 저게. 세계사를 전혀 모르고, 오직 자기 피해의식에만 젖어서, 사람들을 그림자 지우고 지들 권력벌이 돈벌이 하는, 정말 돈벌이 중에 가장 드러운 돈벌이에 권력놀음인데 저건.
우리는 특수하당께유!! 우리는 다르당께유!! 조선은 위대하당께유!! 왜 남덜 사례를 덮어쒸움둥!!
우리는 특수한 특수성으로다가 봐야 한당께!!
그래 니덜 특이하긴 해.
빨랑 해저터널을 만들고. 조선과 일본은 연방제로 합쳐라. 그게 서로들에게 좋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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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ege of Stralsund was a siege laid on Stralsund by Albrecht von Wallenstein's Imperial Army during the Thirty Years' War, from May to 4 August 1628. Stralsund was aided by Denmark and Sweden, with considerable Scottish participation. The siege ended Wallenstein's series of victories,[3] and contributed to his downfall.[4] The Swedish garrison in Stralsund was the first on German soil in history.[5] The battle marked the de facto entrance of Sweden into the war.[3]
슈트랄준트 포위. 1628년. 백산전투 1620년 이후 8년이 지난건데. 보헤미아 진영이나 프로테스탄트 연합에는 인물이 없어. 저건 일방적인 황제진영의 전쟁이야. 보헤미아 진압하고 북쪽으로 죽죽 올라가는겨. 이전에 볼가스트 도 갖고와. 저 선두엔 발렌슈타인.이 있는거고. 슈트랄준트를 포위하고, 덴마크는 1625년 부터 크리스티안4세가 합세했지만 별거 없어 얜. 저때 스위든이 처음으로 개입을 하면서 같이 버텨줘. 저 전투가 스위든이 30년 전쟁에 들어오는 결정적 사건이야. 2년 후에 본격적으로 들어오는겨. 저 슈트랄준트.에 다시 상륙하면서. 그리고 서포메라니아 는 스위든 것이 돼 2백년 동안.
Gustavus Adolphus (9/19 December 1594 – 6/16 November 1632, O.S./N.S.), also known in English as Gustav II Adolf or Gustav II Adolph,[1] was the King of Sweden from 1611 to 1632, and is credited for the founding of Sweden as a great power (Swedish: Stormaktstiden).
구스타부스 아돌푸스. 구스타브2세 아돌프. 서기 1611년, 17세에 킹에 올라서, 21년 재임하고 38세에 죽어. 막판에 30년 전쟁에 들어와서 2년 후에 전장에서 죽는데.
Gustavus Adolphus inherited three wars from his father when he ascended the throne: against Denmark, which had attacked Sweden earlier in 1611; against Russia, due to Sweden having tried to take advantage of the Russian Time of Troubles; and against Poland, due to King Charles's having deposed King Sigismund III, his nephew, as King of Sweden.
이사람이 즉위하는 서기 1611년이 이 북쪽과 동쪽은 난리야. 일단 아빠 카를9세는 조카 폴란드 킹 지기스문트 바싸를 내
쫓고 킹에 오른거걸랑. 여전히 지기스문트는 살아있고. 카를 9세가 10월에 죽어. 이때 막 덴마크와 칼마르 전쟁을 시작하고 죽은겨. 카를9세가 발트해에 갇혀서 노르웨이로 쳐들어가걸랑 내륙으로. 덴마크가 이걸 못 봐주고 스위든을 쳐들어가는게 칼마르전쟁이야. 러시아는 어둠의 시대여. 이반4세 죽고 고두노프 가 섭정에 차르가 되고, 죽고, 아들 표도르2세 어리고 가짜 드미트리 나오고 어린 차르 죽이고 차르놀이 일년하다가 도망가서 쩔뚝쩔뚝 목욕탕에 숨다 들켜 죽고 슈이스키 가문이 차르하고, 저걸 폴란드 지기스문트 바싸가 막 쳐들어가서 먹기 직전이걸랑. 지기스문트는 여전히 스위든은 자기꺼고. 리보니아에서 전쟁인거고 스위든과 폴란드는. 그러다 러시아가 뜬굼없이 스위든과 폴란드의 전쟁터로 변한거걸랑 이 직후부터.
헌데 이미 아래 왼쪽에선 덴마크가 스위든을 쳐들어와잇는겨. 이 스위든은 구스타브 바싸 독립이후 전쟁이야 항상. 저게 참 용한겨 저 스위든이란 나라가 저 시기를 버틸수 있었던건. 운빨이 좋은겨 저게. 다행히 그만큼 덴마크 란 나라가 형편이 없었어. 용병들을 제대로 유지 할 만한 시스템이 안된겨 얘들이. 항상 스위든을 물리치다가, 결국 용병에 돈 지급 못하면서 마무리를 못한거걸랑. 저 칼마르 전쟁 1611년 도 마찬가지여. 압도적인 덴마크의 완승이야 시작은. 스위든은 폴란드랑 싸우는것도 버거운겨 얘들은. 막 시작한 징병제로 농민들을 군인으로 만들기 시작했지만, 이게 대단할게 없어요 이 병력이. 스위든이 이긴게 아니라, 덴마크 폴란드가 일부러 져준겨 저건. 폴란드도 얀 자모이스키 죽고 완전히 정체성이 사라졌어 여긴. 폴란드인 이라는 자부심이 사악 사라졌어 저 지기스문트 바싸 이후로. 이게 이어져서 폴란드 리투아니아는 지도에서 사라진거야.
덴마크 란 나라는, 여긴 정말 인물이 없어 인물이. 안데르센 동화집. 이 덴마크 는, 영국이 만들어준겨 안 사라지게. 햄릿의 무대가 덴마크여. 잉글랜드는 노르망디의 윌리엄의 나라고, 이전 7왕국체제의 작센들 앵글족 애들이고, 노르망디 윌리엄은 롤로.가 만든 바이킹이고. 크누트도 남이 아냐. 다 똑같은 바이킹 애들이여. 베오울프가 쟤들 마음의 자리야. 잉글랜드의 마음의 고향은 저 덴마크야. 덴마크의 안나.가 제임스1세.에 시집을 가는거고. 쟤들에겐 이후 저 덴마크는 엄마의 땅이야. 힘의 균형논리를 영국이 나서서 통제를 하는겨. 저 북유럽 누가 더 쎄서도 약해서도 안돼 하면서 덴마크를 지켜준건 영국이야. 이젠 영국의 세상이걸랑 17세기 지나면서는.
구스타부스 아돌푸스.가 동쪽 잉그리아와 리보니아는 폴란드 러시아 상대로 전쟁하는건 스위든의, 드 라 가르디.에게 맡기는겨. 이사람은 덴마크를 직접 상대해.
The war against Denmark (Kalmar War) was concluded in 1613 with a peace that did not cost Sweden any territory, but it was forced to pay a heavy indemnity to Denmark (Treaty of Knäred). During this war, Gustavus Adolphus let his soldiers plunder towns and villages, and as he met little resistance from Danish forces in Scania, they pillaged and devastated twenty-four Scanian parishes. His memory in Scania has been negative because of that fear.[24] In the winter of 1612, during a period of two weeks, did he burn down, or otherwise destroyed 24 Scanian parishes and most of their population without meeting any enemy troops. The largest destroyed settlement was the Town Væ, which two years later was replaced by Danish King Christian IV as the nearby Christiansted (after the Swedification process, spelled Kristianstad), the last Scanian town to be founded by a Danish king.
덴마크한테 안돼 얘들이. 여전히. 헌데 덴마크 는 항상 마무리가 안돼. 배상금을 받기로 하고 2년 후 1613년에 전쟁을 끝내. 저때 구스타부스 아돌푸스.가 해변지역 스카니아를 완전히 약탈 초토화 했다는거지. 저 전쟁때. 여전히 스위든 해변은 덴마크 땅이었던거고. 그러다 덴마크에 돈 주기로 하면서 끝난겨 전쟁은.
The war against Russia (Ingrian War) ended in 1617 with the Treaty of Stolbovo, which excluded Russia from the Baltic Sea. The final inherited war, the war against Poland, ended in 1629 with the Truce of Altmark, which transferred the large province Livonia to Sweden and freed the Swedish forces for the subsequent intervention in the Thirty Years' War in Germany, where Swedish forces had already established a bridgehead in 1628.
러시아 암흑기.에 가짜 드미트리가 또나오고, 직후에 지기스문트 바싸 폴란드 병력이 출정하고 폴란드가 모스크바 코트를 장악해서 아들이 모스크바 차르 하라는 러시아 보야르 들 요구를 지기스문트 바싸는 묵살하면서 내가 차르 할텨 하고, 로마노프 가 저런 폴란드를 코트에서 몰아내고, 요때 스위든의 드 라 가르디.가 러시아 야금야금 먹고, 폴란드에 다음 로마노프의 러시아와 잉그리아 전쟁을 스위든은 했던거고. 이게 서기 1617년.에 로마노프가 스위든 니덜 잉그리아 먹고 나머지 땅들 돌려줘. 하면서 끝난겨. 이때부터 표트르 대제 티나오는 백년동안 잉그리아는 스위든 것이 돼.
더하여 여전히 리보니아 에서는 폴란드와 스위든은 전쟁이야. 지기스문트 바싸.가 스위든에서 쫓겨난 한풀이를 리보니아에서 스위든과 했던거고. 이것도 서기 1629년.에 끝나.
구스타부스 아돌푸스.가 17세에 킹에 오르고 21년 재임하면서, 칼마르, 잉그리아, 리보니아,가 순서대로 정리가 된겨. 18년만에. 덴마크한테는 돈주고 버텼고. 오른쪽은 리보니아를 더 넓히고 잉그리아도 갖고온겨.
이 때 30년 전쟁이 발발 중이었고, 10년째 될때 슈트랄준트.까지 황제의 카톨릭군대가 온거야. 여긴 바다건너 바로 스위든이야.
저때, 포메라니아의 공작.이 도움을 요청하는겨 스위든에. 제발 좀 도와달라고. 같은 프로테스탄트걸랑.
Brandenburg-Prussia (German: Brandenburg-Preußen; Low German: Brannenborg-Preußen) is the historiographic denomination for the Early Modern realm of the Brandenburgian Hohenzollerns between 1618 and 1701
포메라니아.의 아래가 브란덴부르크.이고 오른쪽이 카톨릭의 로얄-프러시아.이고 이 오른쪽이 프로테스탄트인 프러시아 더치.야. 브란덴부르크.는 룩셈부르크.의 카를4세 황제가 비텔스바흐 가문에서 뺏고, 지기스문트 황제 죽고, 이게 호헨졸레른 가문으로 가는겨. 이게 조각조각 나뉘어지고, 이 호헨졸레른의 튜튼기사단장 알베르트.가 마르틴루터.와 만나서 1525년.에 프로테스탄트로 전향해서, 프러시아 더치.로 떨어져 나가면서, 폴란드의 의회 세임에 참여하는겨. 이 브란덴부르크.와 프러시아 더치.가 백년 지난 서기 1618년.에 하나가 돼. 30년 전쟁 시작할때 공교롭게도. 이 사이엔 로얄-프러시아 라는, 열받은 튜튼떨거지들 카톨릭이 씩씩 거리는거고. 이 로얄프러시아가 서기 1772년에 프러시아 킹덤으로 들어오면서 브란덴부르크 와 프러시아 가 연결이 되는거야. 요게 올드 프리츠.라는 프리츠 영감님.인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2세.이고 이사람 엄마.가 하노버의 소피아 도로테아 이고 영국 조지1세 의 딸이고, 제임스1세의 엘리자벳.의 딸 소피아.의 아들 조지1세고.
할때 말이지, 저놈의 브란덴부르크 조차, 프로테스탄트의 도피처걸랑 여기가. 헌데 여기도 인물이 없는겨 저때는. 프로테스탄트 편들었다가 카톨릭 편들었다가 다시 프로테스탄트했다가. 프로테스탄트 가 기댈곳이 30년 전쟁땐 전혀 없었어.
유일하게 기댈 곳은, 스위든이야. 마침 구스타부스 아돌푸스.는 18년동안 있으면서, 조용해진겨. 오히려 리보니아는 넓어지고 잉그리아가 새로 생겼어. 헌데 저기 슈트랄준트.는 바로 바다 건너면 자기들이야. 저놈의 발렌슈타인이 저리 막막 오다간 바다건너 자기들에게도 위협도 되는거야.
갈까 말까, 애매하걸랑. 헌데 자기들도 이제 막 좀 편해질 때야. 아, 저기에 참전해 말어.
이때 등장하는게. 프랑스의 리슐리외.여.
신성로마제국의 저놈의 합스부르크.는 막시밀리언1세가 게르만킹때부터, 루이11세의 프랑스랑 웬수야. 이게 터진게 이탈리안 전쟁이고. 더하여 저놈의 신성로마제국 이란 이름은, 대머리 샤를 죽고나서 부터 가운데 로타링기아를 두고 이전 리슐리외 이전 6백년간 전쟁이었던 대상이 저놈의 오른쪽 신성로마야. 쟤들이 스페인과 떨어져 나가서 별거 아닌듯 보였는데, 30년 전쟁하면서 다시 똘똘 뭉친겨 저 두개의 합스부르크가.
아 자기들이 지저스를 이은 킹이라 자처했는데 말야. 카톨릭의 대변자는 쟤들이 아니고 우리 프랑스지만. 이념 이전에, 자기들 프랑스 란 국가 걸랑 저게. 리슐리외는 추기경이야. 이 인간은 이념 이전에 자기 나라 인겨. 이사람은 프랑스 사가들이 아주 비판적으로 욕질하지만, 천만에, 저 리슐리외는 프랑스 입장에선 위대한 인간이어야 해.
리슐리외.가 눈치가 보이는겨, 우린 직접적으로 못나서니까, 스위든아 니덜이 열심히 싸워라. 돈을 우리가 대마. 작센과 네덜란드에 자금지원하고, 스위든에도 돈을 대.
구스타부스 아돌푸스.가 갈까말까 할때, 저 리슐리외의 돈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거야. 얘들은 전쟁만 하느라고, 진짜 재정이 바닥이었걸랑. 세금은 올릴데로 올리고, 민심은 안좋아. 헌데 민들이 꾹 참은거야. 국가 라는 정체성은 이 스위든이 처음 갖은겨 이게. 유럽에서. 이 시작이 징병제야. 징병제 란 것은, 국가란 정체성의 시작을 알리는거야. 이게 또한 폴란드였어. 귀족들이 자발적으로 나선거걸랑. 가장 앞선게 싀안하게 이 폴란드였어. 헌데 이게 지기스문트 바싸라는 똥떵어리가 킹이 되면서 쟤들의 국가 라는 정체성을 사악 지운거야. 그래서 망한거고.
The Edict of Restitution, passed eleven years into the Thirty Years' War on March 6, 1629 following Catholic successes at arms, was a belated attempt by Ferdinand II, Holy Roman Emperor to restore the religious and territorial situations reached in the Peace of Augsburg (1555), whose "Ecclesiastical Reservation" had impeded the secularization of Catholic church lands after 1555, as no further Catholic church lands could legally be transferred to Protestant control. However, for several decades weak emperors had been unable to enforce the "Ecclesiastical Reservation" against Protestant encroachments.
더하여, 서기 1629년 3월 6일 날 칙령. 레스티튜션. 이건 손상된것을 복구하고, 잘못된 것을 돌리겠다는 겨 원상태로.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조약.을 제대로 지키자. 그 조문대로 철저히 하라. 이건 카를5세가 슈말칼덴 2차 전쟁하면서, 모리스의 작센한테 패한거걸랑. 저 조문이 프로테스탄트들에게 유리한 데로 진행이 돼. 말은 좋게 중립적이지만.
카톨릭 교회령 수도원령. 이런거의 세속화를 금지하고. 프로테스탄트의 영지로 된 것들은 이전으로 다 되돌려 놓으란 거야. 그리고 더이상 카톨릭 땅들은 프로테스탄트로 못 바꾼다.
더하야. 칼뱅.은 무조건 금지야. 저 조약에 칼뱅이란 없는데, 대체 칼뱅들이 왜 설치는가? 칼뱅은 시민권을 박탈하는겨.
구스타부스 아돌푸스.의 스위든 이 없었으면, 아마 역사가 말야, 완전히 달라졌을거야 지금.
스위든.이 저런 이유로, 바다를 건너 대륙에 올 수밖에 없었고. 마침 직전에야 모든 전쟁이 끝나서 여유가 있었던거고.
The Battle of Breitenfeld (German: Schlacht bei Breitenfeld; Swedish: Slaget vid Breitenfeld) or First Battle of Breitenfeld (in older texts sometimes known as Battle of Leipzig), was fought at a crossroads near Breitenfeld approximately 8 km north-west of the walled city of Leipzig on September 17 (Gregorian calendar), or September 7 (Julian calendar, in wide use at the time), 1631.[a][b] It was the Protestants’ first major victory of the Thirty Years War.
브라이텐펠트 전투. 1631년 9월. 스위든의 구스타부스 가 대륙에 오고, 프로테스탄트 진영의 처음의 승리다운 승리를 하는 전투야. 이때 틸리 백작 체르클라에스.가 부상을 당하고 다음해 죽어. 브라이텐펠트.가 라이프치히 근처야.
발렌슈타인.이 이전에 슈트랄준트 포위 1628년.이 이게 막히면서, 발렌슈타인의 불행이 시작이 돼. 오히려 의심을 사게 되고 황제로 부터. 저거 연전연승하던 놈이 왜 저걸 못 가져오지? 아 저거 프로테스탄트랑 손잡고 내자릴 넘보는건가?
발렌슈타인이 강력했걸랑. 무서워서 황제가 군권을 뺏아서 틸리에게 준거야. 헌데 틸리가 여기서 패하고 부상을 당해.
The Battle of Rain (also called the Battle of the River Lech or Battle of Lech) was fought on 15 April 1632 as part of the Thirty Years' War.
The forces involved in this conflict were 40,000 Swedish troops under Gustavus Adolphus and 25,000 Catholic League troops under Johan Tserclaes, Count of Tilly.
다음해 1632년 라인 전투. 다뉴브강 흐르는 바바리아 땅이야. 이 오른쪽이 다뉴브강의 잉골슈타트.야. 틸리.와 두번째로 만나는 대전이야. 이것도 스위든의 구스타부스.가 이기는겨. 틸리 백작이 이 전투에서 죽어. 그래서 할수없이, 발렌슈타인을 다시 부르는거야 황제가.
The Battle of Lützen (16 November 1632)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battles of the Thirty Years' War.
Though losses were about equally heavy on both sides, the battle was a Protestant victory, but cost the life of one of the most important leaders of the Protestant side, the Swedish King Gustavus Adolphus, which caused the Protestant cause to lose direction. The Imperial field marshal Pappenheim was also fatally wounded.
뤼첸 전투. 작센 안할트의 남부야. 라인 전투 이후 7개월 지난 11월 16일. 발렌슈타인 이 온겨. 구스타부스 아돌푸스 가 여기서 죽어. 이때 발렌슈타인의 병력이 밀렸어. 헌데 갑자기, 스위든 킹이 안보이는겨. 쳐 밀고 나가다가, 킹 찾아야 해. 죽은 킹을 발견하고 수습해서 스톡홀롬으로 가서 장사지낸거고.
저때 발렌슈타인은 보헤미아로 들어가고, 스위든 킹도 죽어서 서로 휴전중인거야.
그리곤 일년 지나서 1634년 2월에 발렌슈타인이 암살당해.
일단, 발렌슈타인은, 이사람은 종교나 이념에 미친 인간이 아냐. 훗사이트였어. 카톨릭이든 머든 관심이 없어. 져스트 피스. 단지 평화. 그 뿐인겨. 헌데 레스티튜션 칙령 1629년.에 쇼킹 먹었다는 설이 있어. 대체 왜 황제가 저짓이래? 이사람은 원래 훗사이트걸랑. 저건 아닌거지. 그러다가 오히려 황제가 자길 의심해서 군권을 빼앗고. 서로 감정이 다 갈라진겨 이미. 그상태에서 틸리 백작 체르클라에스 가 죽었다고 어쩔수 없이 다시 군권을 준거걸랑. 저 이후 전투를 안나서는거야 이사람이. 자기가 저 두 합스부르크의 딱깔이야? 하는 생각도 있을테고. 이건 바닥에, 보헤미안 이란 정체성이 작용했을거야 아마. 이 발렌슈타인은 진짜 애매한 인간이야.
이사람은 어쩌면 죽을 각오를 한겨. 암살당하고. 황제는 기뻐하고.
전쟁이란게 누군가 힘있는 이들이 각각 세력을 형성해줘야 해.
구스타부스 아돌푸스 가 죽고. 이쪽에선 체르클라에스와 발렌슈타인이 죽었어.
이게 이때부턴 특히나 전쟁이 드러워지는겨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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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여 저 스위든 이란 병력이,
이게 30년 전쟁 때 나온 말이 plunder 플런더 라는 말이야.
Mid 17th century from German plündern, literally ‘rob of household goods’, from Middle High German plunder ‘household effects’. Early use of the verb was with reference to the Thirty Years War (reflecting German usage); on the outbreak of the Civil War in 1642, the word and activity were associated with the forces under Prince Rupert.
독일어 플륀데른. 집안물건들 훔치기. 더가서 약탈에 폭력이걸랑.
중세 전쟁이란게 이런게 아녀. 시안하게, 로마 내전할때 말이지, 지들끼리 전쟁할때 로마 시내에서, 주점에선 술처먹으면서 시민들이 그 전쟁을 구경해, 누구누구 이겨라. 전쟁하는 애들은 시민들을 안건드려. 권력 놀이 하는 집단이 시민들을 건드린다는건 민들을 적으로 돌린다는거걸랑. 얘들은 로마때부터 이게 몸에 베인 애들이야. 이걸 싀안하게 갈리안에 게르만들이 익힌거걸랑.
그래서 백년 전쟁할때도, 잉글랜드 용병들이 잠시 휴전할때 로렌 알자스 지나서 신성로마네들 후계자전쟁때 돈벌러 가면서 약탈할때 욕을 엄청 먹은겨. 대체 저거 왜 민간인들 약탈하냐며. 아 자기가 그런건 아니구요 애들이 말을 안들었어유.
얘들은 이런 맛이 있었어 이게.
쟤들은 용병이 돈벌기 위한 전쟁일 뿐이야
헌데 저게 완전히 사라진게 30년 전쟁이야.
저때 저기서 중심이 스위든 병력이야. 얘들이 가장 미개한겨 서유럽 북유럽에서. 헌데 우연찮게 칼마르 유니온에서 벗어나면서 스톡홀롬 피바다 사건에 분노하면서, 시안하게 정체성이 다져지면서 징병제 생기고 농민들이 갓 군인이 되고 이들이 전쟁을 익히면서, 문명을 익히기 시작한겨 이게. 여기에 스콧 용병들에 저지대용병들도 끼는건데
이런 약탈이, 이전 폴란드 리소프체체.라는 코사프 병력이, 용병도 아니고, 니덜이 이겨서 약탈해서 돈 갖고 가란거걸랑 저 30년 전쟁때 얘들은 시작을 헝가리땅에서 조지 라코치의 칼뱅애들과 전쟁할때 리소프체체 들이란 코사르를 보내걸랑. 이 폴란드와 스위든이 저 30년전쟁의 플런더 의 중심에 선겨 얘들이. 얘들은 야만에서 갓 문명을 익힌 애들이걸랑 이게. 스위든이 오히려 저런 짓을 한거야 대륙에 건너와서. 촌놈들이 눈돌아가는겨 저 게르만땅들 조차도. 그래서 물건들을 훔치는거고. 스위든이 지금의 스위든을 생각하면 안돼. 지기스문트 바싸도 폴란드 킹에 스위든 킹을 하지만, 얜 코트가 폴란트 바르샤바야. 스위든의 스톡홀롬에 안가 얜. 왜? 저긴 바르샤바 크라크푸에 비해선 완전히 깡촌이야 저긴.
어쨌거나, 스위든이 저리 시작하면서. 다 죽은 프로테스탄트.는 기적적 소생을 한거야.
이 후는 걍 떨거지들끼리의 난투극이 된거고.
저 이후도, 결국은 카톨릭의 황제진영의 승리로 끝났어야 하는겨. 그만큼 프로테스탄트는 인물이 없어 인물이.
저걸 건져준게 웃기게도 같은 카톨릭인 프랑스야. 이 다음에.
프랑스는 저놈의 신성로마제국 너무너무 싫고, 저놈의 합스부르크는 더 싫어. 이념보다는 내 나라여. 저러다 우리도 먹힐껴. 하면서 프랑스가 참전하는거야. 노골적으로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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