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recht Wenzel Eusebius von Wallenstein (24 September 1583 – 25 February 1634), also von Waldstein (Czech: Albrecht Václav Eusebius z Valdštejna), was a Bohemian[a] military leader and statesman who fought on the Catholic side during the Thirty Years' War (1618–1648). His successful martial career made him one of the richest and most influential men in the Holy Roman Empire by the time of his death. Wallenstein became the supreme commander of the armies of the Habsburg Emperor Ferdinand II and was a major figure of the Thirty Years' War.
알브레히트 벤츨 오이제비우스 폰 발렌슈타인. 또는 폰 발트슈타인. 체코어, 알브레히트 바츨라프 에우세비우스 스 발트슈테이나. 1583년생. 1618년에는 35세.이고, 1634년에, 생일 안지나서 50세.에 죽은건데. 황제 페르디난트2세.가 암살시켜. Eger (now Cheb) 에게르, 지금 헵. 여기사 보헤미아 고원숲.과 에르츠 게비르거.라는 원석 산맥.이 만나는 독일경계 뾰족지점이야.
1634년에 이사람 암살당하고, 1648년, 14년 후에 끝나는건데 30년 전쟁이. 즉 30년 전쟁 시작 후 백산전투 1620년 이 본격적 시작이지만, 이전에 벌써 체코 전지역에서 반란하면서 내전이었던 상황이고, 카톨릭들은 이미 땅 빼앗기고 피신을 한거야.
발렌슈타인.이 저때 갓 30대 중반이걸랑. 시작은 별거 없어. 헌데 이사람이, 30년 전쟁와중에 군권을 쥐면서 카톨릭 진영의 대스타.가 돼. 딱 중반 에 스웨덴 들어오고 나서 분전할때 발렌슈타인.이 암살 당하고, 이어 프랑스도 들어오면서, 30년 전쟁 후반전 이 되는거고. 카톨릭 진영은 완패를 한거야. 이 발렌슈타인 암살.로.
발렌슈타인 의 죽음이. 전후반전 중간 하프타임 때인겨. 황제 페르디난트2세 가 암살된 소식에 기뻐 날뛴거지만, 결국 발렌슈타인을 죽이면서, 완전히 대패한거야 황제의 카톨릭 진영은. 베스트팔렌 조약.이란게 마치 삐까삐까 해서 승패가 없는 듯 보이지만, 디사이시브 빅토리 여 프로테스탄트 진영에. 보헤미아만 카톨릭진영의 이념으로 뒤집어 쓴거지만, 대신 신성로마제국은 그대로 프로테스탄트가 인정이 되는거고, 더하여 칼뱅 까지 인정이 되고, 더하여 네덜란드 가 공식적으로 인정이 된거야. 스페인은 네덜란드 떨어져 나가는건 상상을 할 수 없었던겨 이건. 12년 휴전 취하고 다시 뺏아와야 하는게 저 네덜란드 였걸랑. 더하여, 서포메리아,를 스웨덴에 뺏긴겨 완전히.
Swedish Pomerania (Swedish: Svenska Pommern; German: Schwedisch-Pommern) was a Dominion under the Swedish Crown from 1630 to 1815,
서포페리아.가 서기 1630년.에 스위든 구스타브2세 아돌프.가 상륙하면서 30년 전쟁 이후 저게 공식적으로 스위든 땅이 돼. 2백년 가까이.
포메라니아.란 곳이. 독일과 폴란드를 가르는 오데르강 하류 발트해 해변의 좌우 지역이야. 이 포메라니아 더치.는 1121년.이야. 이전에는 포레라니안.이라는 슬라브 들의 독립국이여. 더치 가 되면서 폴란드의 바쌀, 임차인이 된겨.
여기가 왼쪽해변은 메클렌부르크.이고 오른쪽이 튜튼십자군의 프러시아가 들어서고, 아래는 브란덴부르크.가 올라오는겨 이게. 메클렌부르크 왼쪽엔 덴마크이고. 폴란드 임차인이었다가, 메클렌부르크, 덴마크, 아래 브란덴부르크.에 낑기며 사는겨 폴란드가 주인에서 쟤들 주인들로 바뀌어. 그러면서 여긴 신성로마제국 서클 영지로 들어오는거야. 이게 30년 전쟁 지나고, 오데르강 포함 왼쪽을 스위든이 먹고, 오른쪽을 브란덴부르크.가 먹는겨. 그러면서 브란덴부르크.는 바로 오른쪽의 프러시아와 붙어지는거고, 이게 나중 프러시아 킹덤이 되면서, 저 스위든 포메라니아 도 갖고 오는거고. 이 스위든이 차지한 포메라니안.이 포메라니아의 핵심이야. 슈체친. Stettin 이 오데르강 하류에 있는 중심도시고, Wolgast 볼가스트.가 왼쪽해변의 도시인데. 이 두도시가 중심이걸랑. 이걸 다 스위든이 먹은거야. 그러면서 스위든이 신성로마제국 다이어트.에 끼는거야. 저긴 로마제국 서클 영지걸랑. 대륙회의에 스위든 애들이 관여하는겨 이게. 이 스위든이 서포메라니아를 기반으로 30년 전쟁 후에 폴란드를 쳐들어가서 바르샤바까지 다 들쑤시고 빠꾸하곤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얼음바다를 건너가고, 이기고는 자기들 땅의 스위든 해변을 덴마크로부터 갖고 오면서, 발트해에서 벗어난거걸랑. 30년 전쟁은 스위든이란 나라를 위한 전쟁이야 저건.
데카르트.가 저 스위든 가서, 죽은겨. 유럽 최고의 국가가 스위든이 된거야 저게.
카톨릭 황제진영의 완벽한 패배야. 이건 자기가 자초한거야. 발렌슈타인을 죽이면서. 발렌슈타인이 암살당하지 않았으면, 또 몰라 세상역사가 지금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엄청난 인간이야 이 발렌슈타인.
페르디난트2세.가 두려운겨. 발렌슈타인이란 인간이. 저 인간이 저러다 내 자리, 우리 가문까지 갖고 가는거 아닐까?
Heřmanice 이사람은 헤즈마니츠 지역에서 출생하고, 여기의 영주집안이야. 여긴 보헤미아.의 북동쪽, 모라비아 접경이고, 위로는 수디티즈 산맥이고, 걍 촌동네 시골 지주 귀족이야. 발렌슈타인 가문.의 거점인데, 걍 시골 변방 귀족이야.
보헤미안.이야. 정통 슬라브여
His mother, Markéta Smiřická of Smiřice, died in 1593; his father, Vilém, died in 1595.[8]
They had raised him bilingually – the father spoke German while his mother preferred Czech – yet Wallenstein in his childhood had a better command of Czech than of German.[9] His parents' religious affiliations were Lutheranism and Utraquist Hussitism
엄마가 10세에 죽고 아빠가 12세에 죽어. 어릴때 고아가 된겨. 친인척 보호자 가디언이 키우는건데. 아빠가 게르만어를 하고 엄마는 체코어를 해. 발렌슈타인은 체코어를 더 잘하고. 당연히 아이는 엄마의 입모양을 보고 말을 배우는거야.
부모는, 루터교에 유트라퀴스트 훗사이트. 온건 훗사이트였고, 빵 포도주 같이 유카리스트 하는거라 이게 루터와 통해. 그래서 발렌슈타인.은 당연히, 프로테스탄트.인거고, 루터도 아니고, 훗사이트야 이사람은.
His uncle sent him to the brethren's school at Košumberk Castle in Eastern Bohemia
엄마쪽 형제. 외삼촌이 법적 대행을 해 클때까지. 외삼촌이 보헤미안 브레뜨런.이야. 훗사이트 전쟁때 생긴 과격파 래디칼이야. 엄마가 체코어를 더 잘한다는건, 정체성이 찐한겨 체코에 대한. 헤즈마니츠 아래에 역시 모라비아 접경쪽의 과격파 훗사이트의 라틴어 학교.를 보내.
In 1597, Albrecht was sent to the Protestant Latin school at Goldberg (now Złotoryja) in Silesia, where the then-German environment led him to hone his German language skills.[9] While German became Wallenstein's lingua franca, he is said to have continued to curse in Czech.[10] On 29 August 1599, Wallenstein continued his education at the Protestant University of Altdorf near Nuremberg, Franconia, where he was often engaged in brawls and épée fights, leading to his imprisonment in the town prison.[9] He beat his servant so badly he had to purchase him a new suit of clothes on top of paying compensation.[11]
그리고, 14세에, 산맥넘어 실레시아, 지금 폴란드땅의 라틴어 학교.로 옮기고, 독일어를 더 익히고, 프로테스탄트 대학, 뉘른베르크근처에 있는 알트도르프 대학.에 입학을 해. 이사람이 성질이 불같대. 그래서 종종 싸움질로 투옥도 되고, 자기 하인을 패서 반죽을 정도로 때려서, 보상으로 새옷을 사주어야 했단 일화도 있고.
일단 유럽 모든 인간들은, 지식인이야. 문무 어쩌고 문반 무반 저쩌고, 그딴건 극동빠닥에나 있던 그야말로 개소리고.
완전한 인문적 소양인이야.
라틴 스쿨을 어릴때 다녀. 대학 가기전에. 하이미디벌 들어오면서.
잉글랜드 는 서기 6세기의 애들 학교가 지금도 있어. 캔터베리 킹스 스쿨이.
이 라틴학교라는게 라틴어로 배우는겨. 이게 12세기에 등장해 대륙에. 후마니타스 여. 인문교육. 교육 코스가. 언어교육이고. 리베랄리스여 이게. 유니버시티.의 애들판이야. 고대 그리스 라틴 글자들 배우자면서 라틴 스쿨이 대륙에서 본격적으로 등장을 해.
우리는 유럽이란 중세를, 무슨 그리스도에 쩔고 쩐 애들로 알고 있는데. 무시칸 무지의 생각이야 그건.
조선의 성균관에 조선의 서당을 다른 나라에 비교하면 안돼. 조선 이란 두글자의 이야길 다른 나라에 비교하면 안돼. 조선은 벌레 집단 의 그 동물의 왕국에 벌레들 사는 모습과 비교를 해야 하는겨 그건. 조선의 역사.는 벌레집단의 역사와 비교사학을 해야해. ㅋㅋㅋ. 다른 벌레는 자기 집에 여자를 매춘을 시키는가. 다른 벌레는 리더벌레가, 밖의 벌레가 쳐들어오면, 리더 벌레들은 토끼는가. 다른 벌레에 잡혀간 동족 벌레가 도망나오면, 다시 잡아서 보내는가.
벌레사에도 저런 이야긴 없을껄?
아니유?!! 아니래유!! 우리 우대한 조선이 그럴리가 없슈!! 실록 기록들 그거 다 일본이 막막 지우고 수정한거유!!! 일본놈들의 역사 조작질을 믿는거유???!!! 사쿠라가 위대한 조선을 어찌 압니까 김선생? ㅋㅋㅋ. 나까무라 에게 박선생의 글을 보여주니까 나까무라 가, 혼토이 스고이 데쓰네. 어머 사쿠라가 인정을 해버렸네. 열허븐 조선은 위대해유!
벌레들이 벌레들로 환생을 하는거야 저게.
그렇게 오백년을 당하고도, 생각이 없으니 오백년을 환생하면서도, 자기들을 그렇게 괴롭히고 죽여온 쟤들을 또 모셔. 환생한 벌레들에 오백년을 당하고도 백년을 또당해. 벌레는 영원히 벌레로 환생하고 노예는 영원히 노예가 되는 이 조선반도.
니네가 조구글해.
기가막힌거지 진짜. . 세상에 저따위 파렴치한 애가 있을까? 지들이 스스로 세상에서 드러운 파렴치범이라고 길바닥에서 자랑스레 엉덩이 깔고 ㅋㅋㅋ. 참 기가 막히지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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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ebruary 1600,[9] Albrecht left Altdorf and travelled around the Holy Roman Empire, France and Italy,[12] where he studied at the universities of Bologna and Padua.[13] By this time, Wallenstein was fluent in German, Czech, Latin and Italian, was able to understand Spanish, and spoke some French
발렌슈타인.이 서기 1600년. 나이 17세에, 알트도르프.를 떠나서, 대륙을 여행을 해, 신성로마제국에 프랑스 이탈리. 볼로냐 파도바 의 대학들에서 공부하다. 게르만, 체코어. 라틴어 이탈리아어, 스페니쉬. 도 이해할 수 있게 되다.
이 유럽 말이란게 말이지. 모두 로망스 언어족.이고, 라틴어의 변형이야. 로망스로 안치는 독어와 영어도, 저건 로망스여 저게. 한 언어를 알면, 유럽 언어들 모두 아는건, 쉬워 저건.
유럽애들은, 국적이란게 의미가 없어. 프랑스 식당에 가면 유럽 모든 애들이 다 있어. 지들끼리 말야, 서로 서로 대화가 되었던거야 19세기까지도. 왜냐면, 완벽하게 섞여 산 애들이걸랑.
저걸, 동양 각각 고립어족 애들 시선으로 유럽을 봐선 안돼. 중국어를 한다고, 조선어를 알 수가 없어. 조선어를 안다고 일본어를 알수가 있니. 동남아도 마찬가지야. 이게 서로들 전혀 다른겨. 서로 못 섞이게 한거야 이게. 바벨탑 언어 이야긴 유럽과 상관이 없어. 동양에 오히려 맞아 저따위 우화는.
저런게 대단한게 아냐. 의식만 강하게 있으면 다 해. 안 배우려고 해도, 걍 보통 민들 조차, 대충 먼말 하는지 알어 쟤들은. 지금은 안 그렇지만. 오히려 중세 인간들이, 이게 더 수준이 높아, 19세기까지의 인간들이.
문학 이란 리터러쳐 들 수준이, 현대 러터러쳐가. 19세기까지의 글들을 못따라가요.
세상에, 푸코의 진자.가 안 읽히는거야. 장미의 이름 을 못읽어. 쟤들도 저걸 위한 사전 푸코 사전을 따로 내야 해. 어렵다고. 유럽이 망쪼가 든겨 저게. 완전히 하향 평준화가 되는겨 점점.
그러니 조선아 희망을 가져봐. 쟤들이 니덜 수준까지 추락할 날만 기다려. 그때는, 절대로 지지 않을겁니다.의 그 때가 올랑가 모르지.
발렌슈타인.이 왜 카톨릭으로 전향한 지는 알수 없어. 헌데 20대에 전향한거야. 저건 쉽지 않걸랑. 아니면 애초에 그만큼 훗사이트든 루터든 그딴게 관심이 없는겨 이사람은. 신앙이 관심이 없어. 이게 분명해. 저따위 이념놀이가 먼 의미여.
아니면, 가장 타당한 이론은, 이사람이 간 곳이 프랑스와 이탈리아야. 프랑스는 카톨릭의 나라고. 이게 자기 땅과 전혀 느낌이 다른거야. 문명 자체가 달라 이건. 더하여 이탈리아. 자기는 완전히 촌동네에서 산거야. 문명 자체가 달라. 더구나 모라비아 근처의 보헤미아 비주류 촌놈이야 귀족이라 봤자. 삼촌이 체임벌린, 황제 코트의 집사지만, 이게 후진겨. 후진게 세상 나가보니까 느껴지는거야. 저곳들은 모두 카톨릭 세상이걸랑. 이게 컸을거야.
머 창문에서 떨어졌는데 성모마리아 가 나타나서 받아주고. 이건 말도 안되고.
보헤미아에서 고위직을 하려면, 카톨릭을 해야해. 훗사이트나 루터는 커리어 관리가 안돼. 막지는 않았지만, 한계가 있는겨 이게. 그래서 바꿨다는 설도 있고. 몰라. 아마 저 여행이 타당할 듯해.
더하야. 이사람이 20대 막 시작하고, 참전하는게, 루돌프2세 황제가 발기한 롱투르크 전쟁이야. 이때 오스만과 전쟁하러 가걸랑. 이때 오히려 카톨릭이 더 강해진거고.
예수이트. 를 만나서 개종했다는 설도 잇고.
여하튼 간에. 카톨릭으로 바꾸고, 30년 전쟁이 터졌어. 이사람은 초창기는 자기 땅을 훗사이트 애들에게 뺏긴거 찾아오는게 급선무야. 백산전투고 나발이고. 쫓겨났걸랑. 더하여 결혼을 해서 다우리로 받은땅이 오른쪽 모라비아 지역이야. 저긴 과격파 훗사이트 천지여. 이사람은 자기땅과 마누라땅 회복하는게 급선무여 카톨릭이고 나발이고.
이사람은 걍 비주류 귀족이야. 삼촌이 황제 코트 체임벌린 집사를 하지만, 부모 다 죽고. 걍 혼자 집안 챙겨야 해.
어릴때 혼자가 되서, 이게 책임감 키우는 거로 갔을 수도 있는건데.
Johann Tserclaes, Count of Tilly (Dutch: Johan t'Serclaes Graaf van Tilly; German: Johann t'Serclaes Graf von Tilly; French: Jean t'Serclaes de Tilly ; February 1559 – 30 April 1632) was a field marshal who commanded the Catholic League's forces in the Thirty Years' War.
요한 체르클라에스, 틸리의 그라프. 백작. 틸리.가 브뤼셀 아래, 브뤼셀을 감싼 브라반트.에 아래인 왈룬 브라반트 에 있는 도시야. 여긴 스페인 합스부르크 땅이고. 1559년 생. 완전 할배여. 60이 다 되가 저때. 발렌슈타인 1583년생이믄 24세 많아. 아빠 뻘이야.
카톨릭 진영의 필드 리더야. 백산전투.는 이사람이 카톨릭에서 지휘를 한겨. 저때 발렌슈타인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그런데 발렌슈타인.이 카톨릭 진영에서, 마이센, 에 저짝 메클렌부르크에 덴마크 크리스티안4세 진영까지 연전연승으로 가는거야. 그러다 메클렌부르크 해변에서 막히걸랑. 성을 함락을 못해 돌아오지만. 워낙 강력한거야 이사람이. 프로테스탄트와 손잡는다는 염려로 쫓아내, 물러나고 틸리 백작 체르클라에스.만 남은겨.
이 체르클라에스.가 스위든의 구스타브 아돌프.가 들어오면서, 이 스위든과 싸우다가 죽어. 없어 리더가. 발렌슈타인을 다시 부르는겨. 그리고서 암살을 당한건데.
발렌슈타인.이 어떻게 군사기술을 익혔나. 20대 초반에, 롱투르크 전쟁 참전하면서, 발렌슈타인의 전쟁 선생님이
Giorgio Basta, Count of Huszt (1550 – 1607) was an Italian general, diplomat, and writer of Arbëreshë origin, employed by the Holy Roman Emperor Rudolf II to command Habsburg forces in the Long War of 1591–1606. He was later sent to administer Transylvania as an Imperial vassal[1] and to restore Catholicism as the dominant religion in the region
조르지오 바스타. 후스트 백작. 이탈리안 장군. 외교관 작가. 아르버레쉬. 이탈리아에 사는 알바니안. 핏줄이야.
이사람은 어디서 배워.
Fernando Álvarez de Toledo y Pimentel, 3rd Duke of Alba (29 October 1507 – 11 December 1582), known as the Grand Duke of Alba (Spanish: Gran Duque de Alba, Portuguese: Grão Duque de Alba)
Alexander Farnese (Italian: Alessandro Farnese, Spanish: Alejandro Farnesio; 27 August 1545 – 3 December 1592) was an Italian noble and condottiero who was Duke of Parma, Piacenza and Castro from 1586 to 1592, as well as Governor of the Spanish Netherlands from 1578 to 1592.
스페인의 알바공작. 페르난도 알바레스. 그리고, 파르마 공작 알렉산더 파르네이지. 저들이 스페인 카를부터 펠리페들까지의 핵심중에 핵심 사령관이야.
조르지오 바스타.가 저들에게 배우고. 저걸 발렌슈타인이 익힌겨 저건. 젊을때 한창. 조르지오 바스타의 전술 사람 다루기 인문학 등등을. 가장 좋은 배움은 그사람의 옆에서 잇으면 걍 다 배워져.
일단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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