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레종. 영어 노르만디 Normandy region. 불어 Normandie. 삐쭉 반도가 Cotentin 코탕텡.이고 이 반도 끝에서 왼쪽 변이 Manche 망슈 데파트망.이고 여기에 오트빌 가문의 탄크레드.가 있던 곳이고. 노르망디의 수도.는 루앙 Rouen 이야. 이 루앙으로 파리에서의 센강 Seine이 흘러 가는거고,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부인.이 여기 루앙이야. 벨기게의 몽스 Mons 에서 발원한 강.이 Oise 와즈 강이고, 이게 주욱 루앙과 파리 사이로 흘러가서 노르망디 접경지역의 센 강과 만나고. 이 와즈강 계곡의 도시가 Crépy-en-Valois 크리피 앙 발루아.여. 발루아 의 수도였어. 파리와 아미엥. 사이에 파리 외곽권역이여.
랭스 Reims 에서 오는 강이. Aisne 엔 강이고.이게 와즈강으로 들어와. 아라스 Arras 바로 동남에 캉브헤 Cambrai 가 있어. 여기서 에스코 강이 시작해서 Valenciennes 벨랑시엔.지나 Lille 릴 오른쪽 투르네이로 헤서 헨트 지나는 에스코강이고. 캉브해 아래 즈음에서 Somme 솜강이 흘러 내려돌아서 아미엥 Aminens 을 지나 바다로 까지는겨. 솜강.
아라스 Arras 는 아르트와.였고. 아래 그믐달로 해변 칼레에 불론뉴에 아미엥으로 덮은게 피카르디.야.
지금 프랑스 Nord 노흐 데파트망.이 벨기에 접경지역 길게 인데. 릴.과 벨랑시엔.이 있는 여기는 원래 플랑드르 가문땅에 벨기에 땅이여. 이 길죽한 접경 데파트망.을 지금 프랑스가 갖고 온거고. 요기에 맞닿은 지역이 아르트와 이고, 이걸 감싸는게 피카르디.야. 그리고 노르망디.라는 건 바로 해변에 붙은 이 왼쪽 지역인거야. 지금 노르망디 레종.이 롤로.가 받은 노르망디 공작령 땅과 거의 같어 이게.
랭스 Reims 바로 위에가 위아래 길게 Aisne 엔 데파트망.이고. 여기에 랑 Laon 과 스와송 Soissons 이 있고. 이 엔 데파트망 위에가 노흐 Nord 데파트망이 벨기에 국경과 길게 접하고, 엔 데파트망 왼쪽에 두개 두파트망.이 위아래 접해. 솜 Somme 과 Oise 와즈.여. 강이름 따서. 솜.에 아미엥이고, 와즈.에 Compiègne 콩피엔뉴.와 클레르몽.이 있고 요기 인접한 아래.가 발루아 코트인 크리피 앙 발루아.고 이 와즈 데파트망.이 발루아여. 저 클레르몽이 십자군 발기 하는 클레르몽이 아냐. 십자군 발기하는 클레르몽은 같은 이름 도시 지금 오베르뉴.에 있는거고.
랭스 Reims 는 피카르디.가 아냐. 랭스 바로 위 서북쪽 랑.에 스와송 까지가 피카르디.야. 솜 의 아미엥과 해변 블론뉴 를 포함하는. 랭스.는 클로비스1세 가 대관식 한 성당이 있는 곳이야. 여긴 3세기.에 교구가 있었고 5세기에 성당. 즉 비숍이 있던 자리여. 프랑스 킹들은 여기서 대관식을 해야만 해. 나중에 프랑스 대학살 1789 때 목짤린 킹 루이 17세.도 여기서 한거고, 마누라 앙투아네트.가 인파로 두세시간 갇혔다며 글을 쓴거고, 저때 루이 17세가 돌아가는 길에, 애들 꼬마들 대표로 루이에게 꽃다발 주던 우리식 중학생이 바로 로베스피에르.야. 얘가 나중에 커서 루이 목짜르는거고, 그리곤 자살 시도 실패후 턱 다 나가서리 다음날 똑같이 지 목 짤리는거고. 이 프랑스 대학살 1789 란건 끔찍한건데 말야.
아 예전에 테레비 틀다가, 저 프랑스 1789 자랑스런 민주주의 혁명, 야 저걸 시리즈로 방송하는거 보고 참 골때리던데 말야.
그걸 또 막 막 심장이 뛰는지 강연하는 애가 신나게 말하고, 듣는 이들은 대단한 감격인냥 ㅋㅋㅋ. 아 정말 웃겨 이땅빠닥 현실이.
쟤들은, 거짓말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가. 일부러 저러는건 아니겠지. 알면서 저럴린 없고. 그냥 고것, 지가 듣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인, 일본애들이 번역한 어설픈, 것의 한글 만 보고 자란, 애가 나이 처먹고, 저런 짓을, 저런 프로그램을, 강연하고, 그걸 기획하는 애나, 정말 골때리는거야 저게.
쟤들은, 일단 저런 지리. 도시. 산과 강.을 모르고, 계보에 대해 전혀 무지해. 저건 지들이 보기엔 너무나 얽히고 섥힌 미로걸랑. 이바이트의 뇌론 이해할수가 없어. 지들 보기에 선동하기 좋은것만 이해가 되서리 저런 짓을 여전히 하는거걸랑 이땅빠닥 지식인 자연 하는 애들이.
니덜 인생은 말야. 완벽하게 실패했어.
니덜이 지금 사오십에, 나이 처먹고 육칠십 에 팔십 원로라미 경건한 듯 엄청난 인생 어쩌고 하는 너 란 것들 이란 말이지. 니덜 인생은 그냥 벌레 지렁이 보다 못함을 너, 너들은 모를거다. 우리넨 저딴 벌레들을 떠받들며 사는거고 이땅의 미개한 민들이란게.
가장 기본을 모르는거야. 그래서 하는 짓이 환타지 놀이에 주작놀이야. 소설도 아냐 저런건.
저 불론뉴 아라스 랑스 Lens 베튄 Bethune 의 아르트와 와 해변은. 플랑드르 꺼였어. 이게 다우리.로 12세기에 프랑스 킹으로 들어온거고. 여기 접하는 피카르디.의 지역을.
Vermandois, Laonnais. 베흐먼드와, 라오네. 라고 해. 아미엥 있는 서쪽에 St Quentin (Aisne) and Péronne (Somme)
셍캉텡, 페론. 솜 데파트망.과 오른쪽 엔 데파트망 북쪽.을 베흐먼드와. 베흐먼의 땅.이라 하고, 이 오른쪽이 랑 Laon 과 스와송 Soissons 이야. 여기를 랑.의 땅 라오네. 이 바로 아래.가 랭스 Reims여. 즉 저 피카르디 땅은 베흐먼드 들의 땅인겨
The Viromandui or Veromandui (French: Viromanduens, Viromand(ue)s, Vermandois) were a tribe of the Belgae, occupying a small region in northern Gaul. We know about them primarily from Julius Caesar's De Bello Gallico, a book chronicling Caesar's early conquests against the Gauls.
비로만두이. 카이사르가 갈리아 원정할때 쓴 말이야. 갈리아 북쪽에 벨가이 라는 지역이 있는데 여기 한 부락은 비로만두이.라고 한다. 벨가이의 서남쪽이 이 비로만두이.들인거야. 벨가이 는 전부 갈리안 으로 보면 돼.
Pepin II Quentin (French: Pépin; 817 – after 850) was the count of Vermandois, lord of Senlis, Péronne, and Saint Quentin. He was the son of King Bernard of Italy (a grandson of Charlemagne) and his Queen, Cunigunda of Laon.[1] He supported Emperor Lothar after the death of Emperor Louis the Pious, despite having sworn allegiance to Charles the Bald.
비로만두이.를 따서, 여기를 베흐먼드와. 비로만두이의 땅.이라 하고. 이 이름의 첫 카운트.가 피핀2세 캉텡.이야. 아미엥의 오른쪽 페론 생캉텡 의 군주야. 이사람은 이탈리아 킹 버나드.의 아들이야.
샤를마뉴.가 경건루이.로 이어지지만, 원래 샤를마뉴.는 아들이 넷.이야. 샤를마뉴가 서기 814년.에 죽는데. 이 직전 삼사년전에, 윗자식들이 다 죽은겨. 경건루이 만 살아남아서 잇는거야. 경건루이.는 원래 타이틀이 아키탄의 킹.이야.
경건루이 형.이 이탈리아 킹 버나드.여. 이사람 자식이 피핀2세.야. 세상은 이미 작은 삼촌 경건루이.의 자식들 세상이 된거고, 사촌들 중 대머리 샤를 편에 섰다가 로타르 로 갈아탔다.
이 버나드 자식들이, 파리 윗쪽에 베흐먼드와. Vermondois 를 받은겨. 왼쪽 아미엥.과 오른쪽 랑 Laon 의 사이야. 이들이 부닥치는게 윗쪽 플랑드르 가문인거고. 아래 발루아 야. 샤를마뉴 아들.인 버나드.의 자식들이 200년 지나면서, 이게 여자.로 가서, 다우리.로 결혼해서 받은 사람이.
Hugh (1057 – October 18, 1101),[1][2] called the Great (Latin Hugo Magnus), was a younger son of Henry I of France and Anne of Kiev and younger brother of Philip I.[3] He was Count of Vermandois in right of his wife (jure uxoris). His nickname Magnus (greater or elder) is probably a bad translation into Latin of a French nickname, le Maisné, meaning "the younger", referring to Hugh as younger brother of the King of France.[4]
앙리1세.의 자식 위그.야. 얘 형이 필립1세.인거고. 앙리1세.가 위그 카페의 손자야.
이 위그.가 프랑스 킹의 동생으로 십자군1차 를 가는거야. 필립1세.는 우르바누스2세 교황의 십자군 발기.를 반기지 않아. 대놓고 반대는 못하고. 동생이 가는겨. 40이 넘은겨 저때. 이때 이사람은 베흐먼드와.의 백작이야. 저때는 발루아도 갖고왔어. 파리 위의 땅 부자야. 킹의 동생이고. 이쪽은 십자군 갈때 따로 작은 부대 꾸려서 알프스 넘어서 바리.까지 가서 여기서 배타고 드가는겨. 이사람은 걍 유람 하는겨 이게. 비잔틴 황제 한테도, 프랑스 킹의 동생님 가신단다 환대히 맞이하거라 하는거고. 그러다 저 지중해 뱃길이 험하걸랑. 난파되서 겨우 에피루스에 닿고, 겨우겨우 콘스탄티노플에 갔는데, 황제가 보니 어이가 없는겨. 걍 일개 소대정도 되는 이들이 와서 예루살렘 가겠다는 꼬라지가. 여기서 부용의 곳프리.들과 만나는 거고, 이 때 콤네노스 조의 황제가, 이들에게 하미지.를 요구하는거야. 니덜은 비잔틴 황제인 내 아래다. 이게 머냐면, 니덜이 앞으로 예루살렘 쪽으로 가서 땅을 정복하면 그 땅은 내 비잔틴땅이다 라는 압박을 넣는거걸랑. 이걸 곳프리는 거부하고, 저 위그.는 거지꼴로 있으면서 쪽 다까고, 걍 부하 됩시다 막막 서로 싸우는겨. 그러다가, 위그.는 안티오키아 정복만 구경하고 예루살렘 정복길은 안가고 빠꾸해. 그리곤 돌아와 보니, 욕 처먹는겨 저게 프랑스 망신 다시키네 저거. 그래서 다시 가는게 1101년 십자군 이야. 가다가 타르수스.에서 죽은겨.
필립1세.와 동생 위그.의 엄마가 키예프의 앤.Anne 이야. 앙리1세 부인.이 말이지, 키예프 의 블라드미르 대제의 손녀여 이게. 류릭의 자식들인겨 저 프랑스 카페 애들이 필립1세 부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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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belle, who possessed from 1167 to 1183 the counties of Vermandois, Valois and Amiens conjointly with her husband, Philip, Count of Flanders; and Eleanor. By the terms of a treaty concluded in 1186 with the king, Philip Augustus, the count of Flanders kept the county of Vermandois until his death, in 1191. At this date, a new arrangement gave Eleanor (d. 1213) a life interest in the eastern part of Vermandois, together with the title of countess of St Quentin, and the king entered immediately into possession of Péronne and its dependencies.[1]
위그.가 죽고 자식들이 베흐먼드와.를 가. 이건 카페야 이제. 결혼으로 2백년만에 주인이 바뀌었어. 플랑드르 와 결혼하면서 아미엥.도 갖고 오는겨. 왼쪽 아미엥과 오른쪽 랑.이 여까지 플랑드르였어. 이걸 결혼으로 카페의 자식이 갖고 온거야. 그리고 저 베흐먼드와 모든 땅이, 필립2세. 잉글랜드 실지왕 존.갖고 놀면서 프랑스 땅 넓힌, 이 사람이 킹덤 직속으로 넣고, 저기서 성루이의 아들 필립3세.가 발루아를 똑 떼서 발루아의 샤를.이 되고 여기서 필립6세.가 나오는건데.
저 애매한 피카르디.와 아르트와.가 플랑드르.와 베흐먼드와.에 있다가, 이게 카페에 발루아 의 킹덤으로 들어온거걸랑.
이때, 이 왼쪽 접한 곳이, 노르망디여. 노르망디가 먼 곳이 아냐. 베흐먼드와. 와 플랑드르.의 이웃이고. 베흐먼드와.는 사이에 낀 작은 애들이고, 플랑드르와 해변으로 직접 만나던 애들이 이 노르망디야.
이 노르망디.의 정복왕 윌리엄.의 부인.이 플랑드르.의 마틸다.이고. 노르망디.와 플랑드르.는 떼놓고 말할 수가 없는겨 이게. 더하여 잉글랜드 란건 그래서, 노르망디와 플랑드르.의 자식인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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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 킹이 1066년. 에 오르는데. 상대는 해롤드 곳윈선.이야.
웨식스 Wessex 의 알렉산더 대왕.이 웨식스 킹.이 871년.이고 앵글로 색슨 킹.이 886년.이고, 손자 애덜스탄.이 킹 오브 더 잉글리쉬.가 927년.이야 이때부터, 더 잉글리쉬 의 킹.이 잉글랜드가 되는겨. 이게 애덜레드 AEthelred 가 978-1013년 킹 하다가, 크누트의 아빠 Sweyn Forkbeard 스벤 폭비어드. 스벤(스베인. 스웨인)이 와서 애덜레드.와 다투는거야.
스벤.이 바로 죽어 41일 만에 1014년.. 애덜레드.는 노르망디.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 애덜레드의 두번째 부인.이 노르망디.의 엠마.야. 전부인의 아들이 에드문드. Edmund 고. 애덜레드 와 에드문드.가 1016년 4월과 11월에 죽어. 요때 다시 들어오는게, 스벤.의 아들 크누트.야. 크누트.가 19년에 두 아들이 6년 을 잇는건데 잉글랜드 킹으로. 1016-42.
그리고 나서. 참회왕 에드워드.는 노르망디 엠마.의 아들이야. 엠마가 나이 18세에 36세의 애덜레드.에 시집을 간거야. 이 핏줄이 웨식스 알프레드.의 마지막 핏줄 참회왕인겨.
노르망디 엠마.의 아빠가, 정복왕 윌리엄의 증조 할배여. 참회황 에드워드.가 엄마쪽으로 삼촌뻘인겨 윌리엄에겐.
크누트.가 죽고. 잉글랜드 킹은 Harold Harefoot, Harthacnut, 토끼발 해롤드.가 크누트 전부인의 자식이고, 하르따 크누트.가 엠마와의 자식이야. 크누트.가 잉글랜드 킹 하고, 죽은 애덜레드의 부인 노르망디 엠마.를 둘째부인으로 들인거야 원활한 통치를 위해. 첫부인 있는 상태에서. 크누트.가 죽고 잉글랜드는 해롤드 헤어풋. 덴마크는 하르따크누트.가 킹하다가, 헤어풋 죽고 엠마 아들 하르따크누트.가 덴마크와 잉글랜드 킹 한거야. 그러다가 참회왕 에드워드.가 잉글랜드를 이은건데.
하르따크누트.와 참회왕 에드워드.는 엄마가 노르망디의 엠마.이고, 아빠가 다른겨. 크누트.와 웨식스 핏줄 에들레드.야
덴마크.는 하르따크누트.대에서 끊기면서 여자핏줄로 이어 가는게
Sweyn II of Denmark 스벤2세.야
House of Knýtlinga. 덴마크.는 시작이 같은 이름 크누트.여. 크누트 가문이 916-1042. 반전설 부터해서 130년이야. 처음 크누트.에 다음 늙은 곰 Grom 에. 이 아들이 그리스도가 돼.
크누트 다음 세대까지 가다가 그다음 시집간 딸의 스벤 2세 부터
House of Estridsen. 에스트리드센 가문. 에스트리드.가 스벤의 딸이자, 크누트 대제.의 여동생.이야. 여자 이름을 딴건데. 이 여자가 시집가는 남자가.
Ulf (or Ulf Jarl) (Ulf Thorgilsson). 울프 백작.이야. 얼 earl 이 란 말이, 스칸디나비안의 jarl 얄.이란 말에서 온 영어야. 카운트.고 그라프.고, 브리튼.은 얼.이라 하고.
울프.는 크누트 코트에 있던 백작이고. 이때 크누트.의 여동생과 결혼을 한거야. 토그릴 백작의 자식이고. 덴마크 코트의 귀족 가문인겨. 이 울프 백작에 시집간 크누트 여동생의 에스트리드센.이름으로 1047-1412. 370년이 가는겨. 크누트 핏줄이 916-1412.로 5백년이 가다가. 이게 마가렛.이 노르웨이 킹에 시집가고, 죽고, 노르웨이 형 스웨덴 킹도 죽고, 에스트리드센 의 마가렛이 칼마르유니온.으로 세개를 다 갖고 오고. 끊겨 이 핏줄이.
House of Oldenburg 이걸 올덴부르크 가문의 크리스티안1세.가 이어가다가 이사람 손자 크리스티안2세.가 스톡홀롬 블러드배쓰.로 스웨덴 부글부글 시키고, 덴마크 재벌들 자 조지면서 경제 죽고, 쫓겨나고. 스웨덴은 떨어져 나가서 구스타브 바싸 가문이 지금도 킹이고. 덴마크 노르웨이 의 지금 킹.이 이 올덴부르크 가문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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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트리드. 가문이란 여자이름을 딴 덴마크 왕조의 남편.이 덴마크 땅 귀족 울프 백작.인데. 즉 울프 가문 이어야 하는데, 크누트 의 기빨을 버리기 싫어서 여자 이름을 이어간거야 덴마크 역사가들이.
이 울프의 누이.가 시집간 곳이 잉글랜드 서식스 Sussex 백작 곳윈 Godwin 이야. 곳윈.이 막 시작한겨 서식스 백작을. 이 아들이.
Harold Godwinson (c. 1022 – 14 October 1066) 해롤드 곳윈선.이야.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정복왕 윌리엄에 패하는.
해롤드 곳윈선.이 자기 엄마.가 울프핏줄이고, 이 울프.는 에스트리드 남편이고, 에스트리드 는 크누트의 여동생이자 아빠가 잉글랜드 점령한 스벤(스베인)이란 명분으로 자기가 잉글랜드 킹.을 하겠다는거걸랑. 얜 엄마핏줄로 크누트.에 닿는거고.
정복왕 윌리엄.은 노르망디 엠마.가 큰할머니.걸랑. 엠마가 웨식스의 에덜레드 로 낳은 애가 에드워드.야. 이사람은 노르망디 핏줄로 웨식스 알렉산더 대제를 잇겠다는거야. 참회왕 에드워드.가 윌리엄에게 주기로 했다는겨 윌리엄이 참회왕을 만났을때. 어쨌거나 정통성이 윌리엄이 쎄. 해롤드는 크누트고 윌리엄은 정통 웨식스를 잇는거고.
윌리엄.은 bastard 배스타드.야.
Robert the Magnificent (French: le Magnifique;[a] 22 June 1000 – 1–3 July 1035), was the Duke of Normandy from 1027 until his death in 1035.
Arlette de Falaise (ou Herleva, Erlève, Herlève, HerlotteNote 1) (vers 1010 – vers 10501), est la concubine du duc de Normandie Robert le Magnifique. Elle est la mère de Guillaume le Conquérant puis, après son mariage avec Herluin de Conteville, de deux autres fils : Odon de Bayeux et Robert de Mortain.
Herluin de Conteville (1001–1066[1]),
아빠가 로베르.이고 엄마가 팰레즈.의 아를렛.이야. 로베르 공작이 35세에 죽는데. 결혼을 안했어. 팰레즈 의 아를렛.이 윌리엄을 낳아. 윌리엄의 누이가 있는데 이 아를렛.의 딸인지 다른 배인지 몰라. 공작이 죽고 아를렛이 재혼하는 남자가 콘트빌.의 에를위앙 이야. 여기서도 두 아들을 낳아. 정복왕 윌리엄의 씨 다른 동생들이야. Odo of Bayeux and Robert, Count of Mortain 바이유.의 오도.와 모흐텡 백작 로베르. 인데. 바이유 오도.가 바이유의 주교.인겨. 이 바이유.에 Bayeux Tapestry 바이유 태피스트리.라는 정복왕 윌리엄의 잉글랜드 정벌 이야기를 수놓은 직물.이 있는거야. 950년 된. 이게 아마 저 씨 다른 동생. 바이유 의 오도.의 작품이고 여기서 저걸 보관하는거야. 동생 로베르.는 씨 다른 형이랑 같이 헤이스팅스 전투 참전한거고.
엄마 아를렛.이 누군 지 몰라. 집안이 우리식으론 죽은 사람 염하는 집안이다, 가죽벗겨 파는 집안이다, 그냥 돈많은 상인 집안이다, 설이 분분해.
로베르 노르망디공작의 유일한 아들이야. 이 사람이 오지랖이 넓은데 보니까.
오른쪽 플랑드르. 공작 가문의 부자.가 내전을 해. 볼드윈 4세와 그 아들 5세. 아들 하나 있는게 마음에 졸 안들었는지 이십대 애랑 싸우는겨 아빠가. 얜 쫓겨나서, 이걸 노르망디 공작 로베르.가 중재를 해줘. 그리고 나중 이 아들인 볼드윈5세.가 고마워 하는겨 로베르.와 이 아들 윌리엄.에 대해.
로베르 공작.때 프랑스 킹이 로베르2세.에 앙리1세.야 이 로베르2세.의 부인이 그 유명한 아를.의 콘스탄스.여. 이여자가 프로방스 관습을 파리에 심고, 이게 불편해서 코트 애들이 로베르 2세에게 마누라 뒷담화하고, 이걸 들은 콘스탄스가 애들 시켜서 뒷담화한 이를 죽이고, 로베르2세는 교황 찾아가서 나 이혼시켜줘유 전 마누라랑 재혼할래유 하는걸 거절도 당하고 오히려 와서 더 친해졌다 하고. 종교재판에 이단으로 몰린 성직자가 재판장 나설때 이 여자가 자기 막대기로 눈깔도 찔러. 로베르2세가 찐따 같은데, 자기 잘때 마누라 콘스탄스한테 문좀 지켜달라 하고. 큰 자식이 나 혼자 왕할래유 하다가 대들고 난리 피다가 급사하고. 차남이 앙리1세.야. 헌데 콘스탄스 는 막내를 좋아해. 엄마랑 싸우는겨 꼬라지가.
이때 로메르 노르망디공작.이 앙리1세 편을 들고, 이사람이 킹에 오르고, 또한 그래서 로베르 공작을 좋아하게 돼.
로베르 공작이 27세에 올라서 8년 저리 있다가, 예루살렘 순례를 하러 가는거야. 직전에 자기가 결혼 안하고 낳은 아이 윌리엄.을 합법자식 승계권을 주고. 예루살렘으로 떠난겨. 갔다가 니카이아 에서 죽어. 나중에 윌리엄.이 아빠 시신.을 갖고 오라고 시켜. 애들이 갔다 오는길에 윌리엄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 그래서 시신을 그냥 이탈리아 에 둔거야. 이 사람 무덤이 지금 어디있는지 전혀 몰라.
William I[a] (c. 1028[1] – 9 September 1087), usually known as William the Conqueror and sometimes William the Bastard,[2][b] was the first Norman King of England, reigning from 1066 until his death in 1087. He was a descendant of Rollo and was Duke of Normandy from 1035 onward.
정복왕 윌리엄.이 아빠 죽고, 7세에 노르망디 공작에 오른거야. 더군다나 배스타드.야. 나이도 어리고, 정통성도 약하고. 코트 사방이 적이여. 가디언 들이 서넛이 암살당해. 어릴때부터 피해다니는겨.
노르망디.의 자잘한 귀족들이 저 자리를 넘보는겨. 헌데 아빠가 만든 인연으로 말야. 프랑스 킹 앙리1세.와 플랑드르 공작 볼드윈5세가 천만 다행이도 어린 윌리엄 편인거야. 아빠가 저리 안 뿌렸으면 정복왕 윌리엄 이란건 없어.
The Battle of Val-ès-Dunes was fought in 1047 by the combined forces of the Norman duke William I and the French king Henry I against the forces of several rebel Norman barons, led by William's cousin Guy of Brionne
발-에즈-뒨 전투. 캉 Caen 근처야. 1047년. 윌리엄 19세 때여. 이때 앙리1세.의 지원으로. 노르망디 반란군을 이기는겨. 이때 이 반란군의 배후가. 부르고뉴 백작. 이브레아 가문의 기 Guy 야. 이사람이 엄마가 윌리엄 아빠의 여동생이야. 이 핏줄로 얘가 먹으려는겨 노르망디를. 정복왕 윌리엄.은 7세부터 저 19세 까지 12년간을 도망다니던 인간이야. 이때부터 윌리엄.이 자리를 잡은겨.
Geoffrey II, called Martel ("the Hammer"), was Count of Anjou from 1040 to 1060 and Count of Vendôme from 1032 to 1056.
노르망디 아래.가 Maine 멘.이고 아래가 앙주.야. 앙주 백작 제프리2세.가 멘을 먹으면서 노르망디.로 올라가는겨.
The Battle of Mortemer was a defeat for Henry I of France when he led an army against his vassal, William the Bastard, Duke of Normandy[a] in 1054
The Battle of Varaville was a battle fought in 1057 by William, Duke of Normandy, against King Henry I of France and Count Geoffrey Martel of Anjou.
모흐트메르 전투. 바라빌 전투. 1054. 1057. 앙리 1세.가 가만보니 윌리엄이 너무 강해지는겨. 앙주 제프리랑 손을 잡고 노르망디 윌리엄을 치는거야. 이걸 윌리엄이 다 이겨. 26세. 29세. 어릴때 부터 피말리는 긴장감 속에서 자란거야. 이 윌리엄 이란 인간은 엄청난 인간이야.
윌리엄.이 플랑드르의 마틸다.와 결혼하는게 서기 1049년.이야. 발-에즈-뒨 전투 이기고 하는겨. 플랑드르 볼드윈5세.의 딸이야. 아빠 로베르가 죽기전 인연으로 플랑드르 마틸다가 오는겨.
그리고, 잉글랜드로 가서 킹이 돼. 서기 1066년. 대륙의 앙리1세와 앙주백작을 이기고. 38세야.
잉글랜드.는 노르망디.와 플랑드르.가 낳은겨.
플랑들르.의 첫 시작이 볼드윈. 보드앵 인데
Baldwin I (probably 830s – 879), also known as Baldwin Iron Arm (the epithet is first recorded in the 12th century), was the first Margrave of Flanders.
Baudouin. 불어로 보드앙. 브드앙. 보드앵. 으로 소리를 내는데. 우린 대개 보드앵.이라 쓰고 지금.
이사람 부인이 쥬디스.야 Judith. 졸 오래전 썰. 대머리 샤를.의 딸인데. 잉글랜드 애덜울프.에 시집갔다가, 죽고, 전부인 아들 애덜볼드. 즉 알렉산더 대왕 형.에게 재가했다가 또 죽어. 파리로 다시 와서 눈맞은 남자가 저 볼드윈, 보드앵 이걸랑. 교황한테 까지 찾아가서 결혼 허락해줘유 하고 대머리샤를은 열받아 하다가 허락을 해. 그리고 플랑드르.를 준거걸랑.
이게 보두앵 1세.의 플랑드르 시작이야. 이게 아들 보두앵2세.의 자식대에서, 불론뉴.가 떨어져 나가는겨. 불론뉴.와 플랑드르.는 그래서 같은 플랑드르지만, 불론뉴가 동생이고 플랑드르가 형이야.
할때 윌리엄 일가의 보두앵5세는 형쪽 정통 플랑드르.이고 이 딸 마틸다.야.
864 - 1792. 이 플랑드르 가문이, 직계 끊기고, 여자로 담피에르 가문에 시집가서, 여기 담피에르 여자.가 부르고뉴 용감공에 시집가서 부르고뉴 것이 되고, 마리.가 합스부르크로 시집가고, 프랑스 대학살 1789까지 9백년을 이리 가.
블론뉴.는 로렌의 이다.의 두 자식이 십자군1차 가서 부용의 곳프리도 죽고. 예루살렘의 볼드윈1세 도 자식없이 죽어. 불론뉴에 남은 형도 딸만 낳고 죽어. 이딸이 잉글랜드 킹 스티븐.에게 시집가는겨. 이 스티븐은 헨리2세 엄마 마틸다.와 아나키 시대 킹자리로 내전하는거고. 그러면서 이 블론뉴.가 잉글랜드께 되는겨. 이걸두고 또한 프랑스 잉글랜드가 전쟁을 하는거고. 십자군 가면서 불론뉴의 플랑드르는 끊기고. 시작 플랑드르는 9백년을 간겨.
프랑스 라는 애들이 3년전 부터 저렇게 행정구역을 다시 바꿨걸랑.
참 애들이 유치하고 역겨운게. 저 프랑스란 애들의 열등감을 저걸로 볼 수가 있어. 이들이 중세를 지우면서 모든 땅 이름을 다 지워. 있던 이름은 여러 단어 조합으로 만들고. 레종.과 아래 데파트망으로도 찾기 힘들어지게.
그러면서도 말야. 노르망디.는 안지워. 왼쪽 브르타뉴.도 안지워. 그대로 써. ㅋㅋㅋ.
저건, 저 바다위 영국이란 나라의 시작은 노르망디.이고 브르타뉴 라는 주문을 거는거걸랑. 영국아 니는 프랑스꺼야. 라는걸 저 두 개 레종.은 그대로 두는 이유야.
애들이 저 프랑스란 애들은 참으로 열등해진건데 저런걸 보면. 아 난 그리 해석해 저런 짓을. 반드시 그래 저 두곳만 안 지운 이유는. 유치한거지. 저 프랑스가 어떻게 저리 허섭한 애들이 되어쓰까마는. 그래도 아시아보다는 천만배 낫지만서도.
플랑드르.가 파리 못지 않게 르네상스가 바로 온겨. 이 플랑드르를 통해서 잉글랜드로 들어간거고. 앤불린이 플랑드르에서 어릴때 즐기고, 카스티야의 미친년 후아나.가 이리 시집와서 그나마 해방감을 얻은겨. 이 플랑드르.가 윌리엄을 통해 잉글랜드를 낳았지만, 이 플랑드르가 그 이후도 잉글랜드의 대륙 젖줄이 된거야. 잉글랜드는 플랑드르 없이 말할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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