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derick V (German: Friedrich V.; 26 August 1596 – 29 November 1632)[1][2] was the Elector Palatine of the Rhine in the Holy Roman Empire from 1610 to 1623, and reigned as King of Bohemia from 1619 to 1620. He was forced to abdicate both roles, and the brevity of his reign in Bohemia earned him the derisive sobriquet "the Winter King" (CzechZimní král; German: Winterkönig).  

 

라인 팔라틴(팔라타인)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 창문투척사건이 터지고 그 다음해 보헤미아 킹.으로 추대가 된겨. 이때 나이가 23세야. 애가 너무 어려서 상황 판단력이 없는겨 얜. 그냥 싄난겨 젊은 혈기에. 얜 칼뱅이야. 보헤미아 진영에서도 얘 장인 잉글랜드 제임스 믿은거고. 얘들은 시작부터 이게 어그러진거야.

 

다시 말하면, 당시 프로테스탄트 진영에, 독일땅에 인물이 없는겨. 루터 당시의 작센의 요한 프리드리히와 그 아빠와 큰아부지에, 헷세의 필립.에 나중 알베르트 계열 작센의 모리스 같은 인물이 없이 30년 전쟁이 터진거야. 그래서 뜬굼포 스위든 이라는 외부의 프로테스탄트.가 얘들을 대변해서 독일땅이 지옥이 된거걸랑. 

 

여긴 이사람의 고조할배,부터 칼뱅이란 프로테스탄트.가 된거야. 4대를 거쳐 프로테스탄트야.

 

Frederick III of Simmern, the Pious, Elector Palatine of the Rhine (February 14, 1515 – October 26, 1576) was a ruler from the house of Wittelsbach, branch Palatinate-Simmern-Sponheim. He was a son of John II of Simmern and inherited the Palatinate from the childless Elector Otto-Henry, Elector Palatine (Ottheinrich) in 1559. He was a devout convert to Calvinism, and made the Reformed confession the official religion of his domain by overseeing the composition and promulgation of the Heidelberg Catechism. His support of Calvinism gave the German Reformed movement a foothold within the Holy Roman Empire.  

 

시작이 짐먼 Simmern 의 프리드리히3세.여. 짐먼. 이란 땅이 훈스뤼크 산맥 위의 라인 왼쪽이야. 라인그라프 들 중 하나였고. 프리드리히3세 부터 선제후권을 승계를 받아 이전 선제후가 끊겨서. 라인 팔라틴 선제후 의 짐먼 가문은 이사람부터야. 이사람이 칼뱅이야. 서기 1515년 생이여. 루터 대자보 1517년 직전 태어난겨. 이때 작센의 현명공 끈질공 형제.에 이다음 자식 요한 프리드리히 때 슈말칼덴 전쟁이여. 요때 세대인겨. 저게 끝나고 라인강쪽이 프로테스탄트가 되고 여긴 칼뱅이야. 

 

라인 팔라틴. 이전에. 저놈의 팔라틴 이란게 자주 나오는데 말야.

 

count palatine (Latin comes palatinus), also count of the palace or palsgrave (from German Pfalzgraf), was originally an official attached to a royal or imperial palace or household and later a nobleman of a rank above that of an ordinary count. The title originated in the late Roman Empire. In the Middle Ages especially and into modern times, it is associated with the Holy Roman Empire.[1]

The office, jurisdiction or territory of a count palatine was a county palatine or palatinate. In England, the forms earl palatine and palatine earldom are preferred. 

 

카운트 팔라틴. 팰리스 의 카운트. 독어 팔츠그라프. 라틴어의 코메스 팔라티누스.여. 팔라티움.의 백작 이란 뜻이야. 로마의 일곱언덕 에서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집이 팔라티노 언덕에 있걸랑. 이 언덕이 팔라티움.이야. 팔라티움.의 형용사가 팔라티누스.이고. 여기서 나온게 팰리스 palace 라는 궁전.이야. 이건 고대그리스말이 아냐. 오직 로마 라틴말이야.

 

Palatium

이건 에트루스칸.의 팔라드. 하늘.이란 뜻이여. 또는 이태리의 목동들의 여신.이야.

 

palate. 팰리트.가 입천장. 구개.여 입의 덥개. 입의 천장, 하늘 이란 뜻이고. 구개음화 라는게 혀가 입천장에서 노는 거걸랑. palatalization. 팔라티움 에서 나온거고. 하늘 이라서 그래. 

 

백작은 백작인데, 하늘 같은 백작이야. 

 

공후백자남.이라고 우리가 일본애들 번역을 그래도 산식으로 쟤들을 이해하면서 완전히 쟤들 이야기를 극동식으로 배우는 완벽한 오류인데 또한. 공후백자남 이란건, 중국 고대 때 자리를 다시 왕망이 전한 망 하고 신나라 라는 새로울 신 하면서 땅이름 다 바꾸고, 얘가 공후백자남 이란 귀족계급을 나누면서 봉지.를 재정비 한거걸랑. 이때 공후백자남 서열대로 땅크기 집호수 민들.을 규모별로 나눈거고, 이 방식을 그대로 유럽사에 대입을 한거걸랑 일본애들이 메이지때. 

 

이전 썰했든, 잉글랜드 헨리4세가 마퀴스 marquess 를 거부해. 이걸 리차드2세.가 잉글랜드에선 처음으로 마퀴스 라는 후작령을 더블린.에 줘. 이걸 헨리4세 가 이 작위를 지워버려. 

 

"the name of marquess is a strange name in this realm".  

 

헨리4세의 어록이야. 마퀴스.라는 후작이란 이름은 우리땅에서 낯선 이름이다. 

 

프랑스도 marquis 이 마키.라는게 16세기에나 등장하면서 퍼지는겨 이게. 잉글랜드도 헨리4세 이후에 생기기 시작하는거고. 이 마크 라는 이름은 경계선 표시하는 이름이거랑. 경계 초소여 이게. 잉글랜드도 내전하면서 아일랜드와 스콧 들어오고 내전 경계 지점.에 수두두룩이 이놈의 마키스.들을 두기 시작한거걸랑.

 

저건 프랑크 시작할때 프랑스땅에 잠깐 양쪽에 있다가 지워진 자리에, 샤를마뉴때 오른쪽 슬라브 아바르에 나중 마갸르 막는 경계초소 마크 들을 세운겨. 이 독일땅에 남발되는게 이 마크의 마그레이브.여. 작센 오토때는 엘베강 넘어 북쪽 개척한다고 마그레이브들이 위에 세워지는거고.

 

그래서 쟤들이 의전 상, 마키스 라는 마그레이브.를 카운트 백작 위에 놓지만 말야, 이건 니덜 외지에서 고생하고 내전 진압에 경계서느라 고생하니까 혹시 다른 카운트들이랑 모여서 밥먹을때 니덜 윗자리 앉아라 하는 용도일 뿐이야. 마크 지킨다고 더 큰 땅에 더 많은 헤택이 있는게 아냐 중국의 후작 처럼. 이 후작 이란 자리는 저 마크 와는 전혀전혀 상관이 없어. 중국의 공작.은 그야말로 킹의 핏줄이 킹 못된 애들이 다음으로 받는 자리이고, 후작은 신하들 중에서 공을 세운 높은 명예의 이름이 후작 이란겨. 이게 전혀 달라 개념이.

 

쟤들은 고대 로마 고대로 따라서, 코메스.라는 카운트여. 코메스 라는건 고대 로마때 파견 보낸 공무원이야. 그냥 대부분 무조건 카운트 인거야 쟤들 귀족들 타이틀은. 이 카운트가 급이 낮으면 viscount 비스 카운트 붙인거고. 이거보다 못한게 배론 급이야. baron 그리고 걍 지방의 통장 동장 정도가 로어드 lord 인겨. 

 

비스 vis- 라는건 vice 바이스.여, 라틴말이고, 대리여. 카운트의 대리인.이 비스카운트.고 이걸 어거지로 자작 하는거야.

 

배론 baron 이란건 baro 라틴어 바로.여. 얜 일개 전사.여. 워리어. 이게 영어로는 simpleton 심플톤.이라는 얼간이 쑥맥인데, 심플 한 놈이여. 걍 단순한겨 리더 밑에서 심플하게 리더말에 따르고 무시기로 싸움하다 공 세워서 짝은 땅 받은 놈이 배론.인겨. 이걸 어거지로 남작 번역한거고 일본애들이. 잉글랜드는 이 배론 들이 만든 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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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건 다들 카운트야. 백작 으로 번역되는. 그래서 쟤들 이야기를 보면, 카운트 나 듀크 나 그게 우리 생각하는 듯이 굽신굽신 안해. 마그레이브 도 마찬가지고. 듀크 는 졸 높은 의미야. 이건 둑스.여. 로마때 이민족 대빵이야. 이건 의미있는 자리야. 그외 대부분은 카운트여. 이 카운트가 듀크 못지 않아. 마그레이브.는 상대적으로 후진겨 이건. 

 

중심은 카운트여. 이 위에 듀크.가 있는거지만, 듀크.가 카운트를 절대 무시못해. 카운트 애들은 병력을 쥐고 있는 애들이걸랑. 코트에서 하미지 받으면서  잘 다독여야 해 듀크는 카운트들을.

 

신성로마제국.이 호헨슈타우펜의 프리드리히2세때 1800개 영지로 보걸랑. 저 나눠진 영지들을 카운트 마그레이브 들이 복수로 담당하는거고.

 

Kleinstaaterei (German: [ˌklaɪnʃtaːtəˈʁaɪ]"small-state-ery") is a German word used, often pejoratively, to denote the territorial fragmentation in Germany and neighboring regions during the Holy Roman Empire (especially after the end of the Thirty Years' War) and during the German Confederation in the first half of the 19th century.[1] It refers to the large number of virtually sovereign small and medium-sized secular and ecclesiastical principalities and Free Imperial cities, some of which were little larger than a single town or the grounds of the monastery of an Imperial abbey. Estimates of the total number of German states at any given time during the 18th century vary, ranging from 294 to 348[2] or more.  

 

클라인 슈타터라이. 작은 영지령. 독일땅 30년 전쟁 이후에 독일 전역이 산산히 흩어진겨 저게. 영지들이 카운트급에서 다들 떨어져 나가면서 작게 선거야. 즉 저들 각각은 더욱 힘이 없는겨 오히려 30년 전쟁 하면서, 나폴레옹이 그래서 신성로마를 먹는게 쉬웠던겨 150년 이후에. 다음 프러시아 가 또한 독일 통일하는것도 쉬워 이건.

 

저걸 나폴레옹이 신성로마제국을 해체하면서 

 

German mediatisation (English: /miːdiətaɪˈzeɪʃən/Germandeutsche Mediatisierung) was the major territorial restructuring that took place between 1802 and 1814 in Germany and the surrounding region by means of the mass mediatisation and secularisation[1] of a large number of Imperial Estates. Most ecclesiastical principalities, free imperial cities, secular principalities, and other minor self-ruling entities of the Holy Roman Empire lost their independent status and were absorbed into the remaining states. By the end of the mediatisation process, the number of German states had been reduced from almost 300 to just 39.  

 

미디어티제이션. 독일땅을 제3자인 나폴레옹이 들어가서 권역들을 나눈거야. 나중 아프리카 지도 선 긋듯이. 

 

신성로마제국.이란게 이게  허상이야 이게. 저걸 신권 세속권 분리의 서임권 이야기 하면서 풀었지만 말야. 라인강 동쪽 애들은 고대로마 경험이 없는 생짜 개무식한 게르만애들이었걸랑. 이걸 교황이 그야말로 갖고 논겨 얘들을.

 

이름만 좋아 엠퍼러의 엠파이어 지 이것도 교황이 자기 교회권력 수호를 위해 샤를 마뉴를 부추겨 만든 타이틀일 뿐이었고 말야.  실속없는게 저놈의 신성로마제국 이란 천년의 나라야. 이게 동쪽 비잔틴 제국의 또다른 모습인겨 이게.

 

이놈의 독일땅은 그래서 라이프니츠.부터 시작하는겨. 이것도 30년 전쟁 끝나고서야. 이 라이프니츠.는 저 30년전쟁 종료 직전에 태어난 인간인거고. 

 

그래서 독일 리터러쳐.가 괴테 에 쉴러 에 얘들이 조오온나리 감정적인겨 그 글 바닥이. 로마의 로망스가 얘들은 저때서야 급격하게 온거야. 자유자유자유 프라이하이트!! 이걸 저때서야 아주 격렬하게 부르짖는겨 얘들이. 한편으로는 니체 같은 애들이 티나온거고. 괴테나 쉴러는 자유의 밝음에 미친거고, 니체는 자유의 어두움에 지배가 된거야. 여긴 그래서 저 바닥의 꿈틀대는 이드 Id 라는 그야말로 본능.을 주재할 에고.라는 의식이 부족한겨. 그 글들이. 그래서 괴테.는 베르터(베르테르)가 총 쏘면서 자살을 하는거고. 오직 본능의 이드에 지배당하는겨 이게. 

 

독일에 프랑스와 잉글랜드와 아래 이탈리아의 로마.가 뒤늦게야 그냥 밀물처럼 급격하게 쳐들어온거걸랑. 이거에 치인겨 쟤들이, 그나마 괴테는 밝게 치인거고, 니체는 어둠으로 치인거고, 마르크스 라는 애도 낳는거야 이게.

 

이것과 전혀 상반되는게, 잉글랜드야. 얘들 리터러쳐 가 그래서 최고야 최고. 유머도 최고고. 이 절정이 

 

The Life and Opinions of Tristram Shandy, Gentleman, also known as just Tristram Shandy, is a novel by Laurence Sterne. It was published in nine volumes, the first two appearing in 1759, and seven others following over the next seven years (vols. 3 and 4, 1761; vols. 5 and 6, 1762; vols. 7 and 8, 1765; vol. 9, 1767). It purports to be a biography of the eponymous character. Its style is marked by digressiondouble entendre, and graphic devices.  

 

젠틀맨 트리스트렘 섄디 의 삶과 의견들. 로렌스 스턴.이라는 폐병환자가 서기 1759년 부터 출판한 이 책은 아 증말 이건 최고야 진짜. 저 바닥의 유머가 전권에 깔린 거야 이건. 이건 요즘 미드 시트콤은 정말 저리가라인듯 해. 예전에 미드 프렌즈.는 저리 가라여 진짜. 머 이게 다시 리메이크 된다고 하지만 예전 맛은 절대 나올수가 없을테고.

 

프랑스.는 

 

François Rabelais (UK/ˈræbəleɪ/ RAB-ə-layUS/ˌræbəˈleɪ/ -⁠LAY,[2][3] French: [fʁɑ̃swa ʁablɛ]; between 1483 and 1494 – 1553) was a French Renaissance writer, physician, Renaissance humanist, monk and Greek scholar. He has historically been regarded as a writer of fantasy, satire, the grotesque, bawdy jokes and songs.  

 

프랑수아 라블레.가 16세기 인간이야.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 여기서 말야, 저 둘.은 자기들은 자유.를 수호하는 인간이라고 말해. 내 이대목이 기억이 나걸랑. 그러면서 그야말로 황당무개한 표현의 유머여. 상상 그이상의 자유스러움이야 저건. 유럽의 모든 그야말로 문학들에서, 반드시 한 대목 한문장으로 언급이 되는게 저 프랑스와 라블레의 글들이야. 트리스트램 섄디.도 심심하면 언급하는 글이 프랑수와 라블레의 글이야. 

 

이미 쟤들은, 아서왕 에 롤랑 이야기로 기사도 문학을 12세기.에 썼고, 아서왕 이야기의 단초.는 고도딘 킹덤.의 이야기가 6세기여. 동시대 길다스 가 아서의 팁을 주고, 이게 브리튼의 히스토리.로 9세기에 나오고 웨일즈 연대기가 11세기로 보이고 이걸 다 받아서 먼머쓰의 제프리.가 12세기에 아서왕을 등장시키면서 여기서 원탁의 기사가 바로 등장을 하걸랑. 롤랑의 노래.에 더해서. 이건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합작품이야. 이 기사도 문학이 자유야 자유. 자유와 로망. 이게 스페인에선 로페 페리스 데 베가, 티르소 데 몰리나. 세르벤타스 돈키호테,  서기 1600년에 오는겨. 어어어엄청난겨 이게. 돈키호테 는 그야말로 자유여 또한. 저기에 페드로 칼데론.이 나오고, 저 역사가 라인강 왼쪽 게르만진영은 켈트에 웨일즈가 바닥에 깔려서 프랑수아 라블레 까지 천년 가까이 온거야 이건. 

 

이 힘은 엄청난거야. 이게 쟤드리 리터러쳐 로 티나오는거고. 이 버전업 된게 프랑스는 프랑수아 라블레. 이고 스페인땅에선 세르반테스.이고 잉글랜드는 제프리초서에 셰익스피어가 티나오는겨. 이건 말야, 천년의 과정의 산출물이야. 

 

이게  라인강 동쪽은, 쟤들과 비교하면 이게 완전히 전무야 전무. 그나마 저쪽에서  뒤늦게 산출한 물건이 라이프니츠.여. 이사람도 30년 전쟁 끝날때 애기고 이후 파리와 런던을 접하고서야, 라이프니츠.가 된거야. 이사람을 후원해서 보호해준 인간은 또한 하노버 가문이라는 잉글랜드에서 시집간 딸과 그딸이고. 즉 라이프니츠.는 저 코트에서 잉글랜드 모녀가 준 리터러쳐.를 익혔다는겨 저건. 라이프니츠.는 신성로마제국이 만든 산출물이 아냐, 저건 잉글랜드가 만든 산출물이야.

 

아 그야말로 엄청난 통찰인데, 이런 이야길 정작 유럽애들은 몰라.

 

그만큼 저놈의 신성로마제국.이 멍청한 땅이여 저게. 저 땅이. 오히려 30년 전쟁을 겪으면서, 프랑스와 잉글랜드와 저 플랑드르 프리지아.를 제대로 만나면서, 완전히 흩어진, Kleinstaaterei 클라인슈타터라이.의 자잘한 영지들이 저 문화의 엄청난 파도를 후려쳐 맞은거야. 그래서 글들이 이건 뽕맞은 작품마냥 보이는겨 이게. 어떤놈은  햇빛만 쬔듯 뒈질때도 커튼을 걷어라 라미 괴테같은 애도 나오고, 아잉  나는 위버멘슈여 초인이여 초인, 내가 짜라투스투랑께 내가 신이고 내말을 들어보랑께 해댐시 소심한 애가 신놀이 하면서리, 여자한텐 말 한번 못 걸어보고, 몰래 사창가 이년저년 만났는지 매독균이 뇌를 파먹고 죽기도 하고. 

 

이 독일땅에 그래서, 음악이 특히나 최고가 되는겨 이게. 대부분 작곡가들은 여기서 티나오는겨. 이 음악이란건, 의식의 산물, 에고의 산물이 아냐. 이건 이드. 라는 저 바닥의 꿈틀대는 본능, 호모사피엔스이후 30만년간 쌓여온 저놈의 무의식의 바다의 산출물이 음악 이란 거걸랑. 이게 저 라인강 왼쪽애들에 의해 깨인 자유스러움의 파도로 저 30만년의 무의식이 터지면서 쏟아지는게 음악이야. 작곡가들이고. 

 

30년 전쟁으로 독일땅이 참혹해졌지만. 오히려 저 전쟁으로 그제서야 클라인슈타터라이.로 자잘한 지역별로 왼쪽의 자유를 받으면서 이게 지금의 독일이 된거야. 

 

왜냐면, 특히나 30년 전쟁 후반에 프랑스가 여길 들어오걸랑. 얘들이 이 라인팔라틴으로 들어오는겨 왼쪽에서. 이 라인 팔라틴과 라인란트라는 라인강 서쪽을 프랑스가 점령해.

 

프랑스 리터러쳐가 말하는거야. 야 대체 여긴 머여 이거. 완전 고리타분한 중세여 머여. 여긴 왜 변한게 없는겨. 라인강변 의 게르만들도 싕기해해 프랑스애들을 보고. 아 우리가 얼마나 깝깝하게 살았는가.를 저 프랑스 애들한테서 느끼는겨 이때. 고대 로마의 군단기지 였던 라인강 서쪽강변 조차 이지경이었던거야. 라인강이 이때부터 저당시 온 프랑스 애들에 의해 깨여서 나가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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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완전히 역설인데 이게.

 

아 헌데, 이놈의 조선땅은 역설이 아냐. 걍 주구장창 그림자고 주구장창 헬조선이고, 그림자가 정의라는 시대를 여전히 사는거걸랑. 그림자를 화폐로 모시고. 세상에서 가장 기괴한 땅이 이 극동의 끝 반도땅인데 말야.

 

그래서 나같은 최고의 지구역사상 최고의 지식인님이 이런 괴상한 땅에서 나온겨. 그래서 이런 엄청난 통찰의 이야기들을 풀어주시는거지만. 그래서 한편으론 할렐루캬님.을 만든 역설은 있기는 하다. 끽해야 열한둘이 찐하게만 볼 뿐인지만. 니덜이 나중 게르만을 넘는 애들을 산출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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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야 카운트. 

 

Graf (male) or Gräfin (female) is a historical title of the German nobility, usually translated as "count". Considered to be intermediate among noble ranks, the title is often treated as equivalent to the British title of "earl" (whose female version is "countess").  

 

이게 신성로마에선, 그라프.여. 백작부인은 그래핀.이고. 그라프.라는건 그레이브 .grave 에 graphy 그래피. 글자이야기할때 썰했지만, 이건 파는거야. 새김글.이 그래피.여. 그레이브.라는 무덤은 땅을 파서 시체를 묻어 넘은겨. 독일애들은 코메스.라는 공무원으로 안쓴겨. 땅을 넓혀서 여기 내땅.이라고 땅을 파서 팻말을 꽂은거야. 

 

Markgraf, Landgraf, Reichsgraf, Gefürsteter Graf, Pfalzgraf, Rheingraf, Burggraf, Altgraf, Freigraf, Waldgraf, Raugraf, Vizegr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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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그라프. 제국의 경계초소 백작. 란트그라프. 제국내 일정지역의 백작. 라이히스그라프 황제가 직접 임명한 백작. 게퓌르스테터 그라프. 땅은 없지만 투표권 있는 백작. 팔츠그라프, 팔라틴 백작. 라인그라프. 라인강변의 백작. 부르크그라프. 부르크 라는 산악지대 도시의 백작. 알트 그라프. 올드한 옛날의 이름뿐인 명예직 백작. 프라이그라프. 걍 명예직 백작. 발트그라프. 숲지대 땅의 백작. 라우그라프. 황무지 땅의 백작. 비제그라프. 대리 대타 백작.

 

걍 다 백작이야 저 신성로마제국의 땅은. 저게 또한 프랑스였고 잉글랜드였어. 세상은 카운트 라는 백작의 땅이야 이게. 공후백자남 이란건 완벽한 무지의 번역일 뿐이고. 극동바닥의 역사와 유럽애들의 역사.는 이게 전혀 달라. 극동이 살았던 시선의 프레임으로 우리가 유럽사를 일본애들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고 이시선이 또한 중국애들이 같이 일본판으로 보는건데, 절대 그렇게 볼 수가 없어. 완전히 달라 유럽사와 극동사는. 극동사는  단순하고 그만큼 미개한겨. 일본애들이 미개한 프레임으로 단어들을 번역해서 저 프레임으로 유럽사를 지금까지 봐온거걸랑. 이런 시선에서 티나오는게 중국애들이 이전에 만든 대국굴기 라는 시시티비 프로그램이야. 정말 유치가 찬란해도 저따위 무식한 유럽 역사 이야긴 없는겨. 저걸 보면 알아, 이 극동의 지식수준이 얼마나 미개한건가를.

 

 

Estimates of the total number of German states at any given time during the 18th century vary, ranging from 294 to 348[2] or more  

 

18세기에 독일의 의미있는 규모의 영지들이 294개에서 348개야. 이게 카운트 급이야. 이건 카운트급의 사람들이 300명의 가문으로 있다는겨. 그외 자잘자잘한 도시나 농촌, 시장 구청장 통장 읍면장 들이 자기들이 카운트 같은 마그레이브.에 비스카운트.에 배론급의 로어드들이 그야말로 산재한겨 신성로마제국땅에. 이걸 나폴레옹이, 300여개.를 39개.로 미디어티제이션. 말이 좋아 중재지, 걍 지가 근겨. 

 

신성로마제국.은 그래서, 교황이 이건 갖고 논거야. 아 난 머리에 총맞아서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절대 프로테스탄트 안해. 로마 카톨릭을 하지. 난 포프를 사랑해. 프로테스탄트  후져. 

 

 

신성로마제국.이 저렇게 18세기까지 300여개 카운트급이 난립을 한건, 30년 전쟁때 이후 Kleinstaaterei 클라인슈타터라이 라는 작은 영지들의 시대가 되서 흩어지면서 각각은 자유롭게 갔지만 말야. 이건 그만큼 황제라는 이름으로 가운데에서 힘을 제대로 발휘를 못한거야. 이건 1555 아우크스부르크 평화조약으로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나뉘어서 또한 힘이 둘로도 나뉘었지만, 이미 훨씬 이전에 프리드리히3세 황제라는 막시밀리언 아빠 때 문제가 심각해서 얘가 게르만 킹일때 1495 제국개혁.이라며 행정조직과 제도개편을 한거걸랑. 이건 이미 이 훨 이전에 1356 골든 불 나올때 선제후 7개 투표권을 교황에게 세장 주면서 일단락 되었지만, 이 훨 이전에 프리드리히2세 황제와 교황의 싸움 절정 겔피 기벨리니 싸움에 이전에 할배 프리드리히1세와 롬바르디아 동맹의 싸움에 훨 이전엔 1122 보름스 협약 이라는 하인리히5세가 교황에 서임권 양보하는 걸 만들어내는, 교황이 황제를 서임권 을 핑게로 세속권의 황제를 아주 걍 갖고 놀은게 근본적인 이유야 이건. 신성로마황제는 천년 내내 완벽하게 교황한테 놀아난거야 이건. 아주 골때리는 역사적 장면이야. 유독 이 교황은 저 신성로마 황제 만 갖고 논거야. 프랑스 킹에겐 싸다구를 맞아 죽고 아비뇽에 기들어가면서 깨갱한 반면. 

 

신성로마황제는 교황때문에 힘 다 빠진 상태에서 프로테스탄트애들 인정하면서 더 빠지게 된거고 이게 19세기 까지 온거고 여기서 히틀러가 나온겨. 여긴 말야 그냥 그림자의 역사야 이건. 이걸 지금 독일로 만든건 역설적으로, 힘빠진 황제때문에 서로들 나름 자유롭게 다닌겨 제국의 영지인들이. 그래도 깝깝한 상태에서 30년 전쟁이후엔 프랑스를 통해 플랑드르를 통해 밖의 것이 들어오고부터 짝은 영지들이 저 거대한 물결들을 제각각 받으면서 서로들 그 바닥에서 다진 힘.이 히틀러 이후를 만든거야. 역설이야 이건. 1차대전과 2차대전의 엄청난 그림자를 쟤들은 저 역설적인 구조에서 쌓인 힘으로 이겨낸겨. 저건 지금 보면 당연한 강대국 독일 이라지만, 저게 결코 절대 쉬운게 아냐. 대~~부분의 나라는 망했어. 유고슬라비아 라는 이름의 저 슬라브들도 여전히 형편없고, 동유럽도 여전히 형편이 없어. 쟤들은 못한거야 독일처럼. 그게 다 이유가 있는겨. 저게 또한 일본이야. 쟤들의 바닥의 힘은 엄청난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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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그라프.라는 백작에서, 팔라틴 백작.이라는 팔츠그라프. 야. 프리드리히5세 는 라인강변의 라인그라프.들 중에 짐먼 Simmern 의 그라프 였던거고, 이 짐먼땅의 라인그라프.가 프리드리히5세의 4대조 부터 팔츠그라프.를 쥔거야. 즉 라인그라프 이자 팔츠그라츠 인 라인 팔츠그라프 라는 라인의 팔라틴 백작 인거야. 

 

 

팔츠그라프.라는 팔라틴 백작.과, 라인그라프 라는 라인강변의 백작.의 합성어인데. 저 라인강변에 그라프 들이 많은거고, 그라프 급의 자잘한 프린스들 로어드들 영주들이 있던겨.

 

저 자잘한 라인강변의 영주들.을 대표하는 타이틀 이 라인팔츠그라프. 라는 라인 팔라틴 백작.이야. 

 

저게 헷갈린겨. 분명하게 구분해야 할 것이, 일단, 팔라틴 백작.이라는 팔츠그라프.여. 이게 영어로는 팔라틴 카운트.여. 잉글랜드는 카운트.가 earl 얼.이라는 게르만 노르족 언어로 쓰는거라 팔라틴 얼.하는거고 굳이. 

 

 

독일땅 그라프.들의 여러 타이틀 중에, 영국과 프랑스.는 저리 남발해서 안쓰고, 마크그라프.에 비제그라프 를 마퀴 마퀴스.에 비스카운트.로 쓰는겨. 더하여 부르크그라프 발트그라프 라우그라프 들을 배론.이라고 딱히 잉글랜드에서 비교가 될까.

 

헌데, 팔츠그라프 라는 팔라틴 백작.은 프랑스와 영국땅에서도 중요한겨 이건.

 

 

이건 프랑크 메로빈지언.이 시작할때 부터 나온 타이틀이야. 이건 킹의 코트 조직을 만들면서, 킹이 직접 자기가 부리는 관리 인겨. 이게 지방의 카운트 라는 지방에 머무는 영주.가 아냐. 

 

Count Palatine ( in Latin, comes palatines). The Merovingian kings employed a high official, the Count Palatine, who at first assisted the king in his judicial duties and, at a later date, discharged many of these himself.  

 

이건 시작이 킹 하우스홀드 조직이여. 킹 개인이 고용한 고위직이야. 프랑크가 처음에 봉지를 주면서 봉건제도를 시작하잖니. 이때 등장하는게 라틴애들이 자기들 부락 추장을 호칭한 둑스 dux 걸랑. 프랑크 킹.이 로마 황제 입장이 된거야. 애들에게 땅을 나눠줘. 이때 얘들한테 주는 타이틀이 둑스.라는 듀크 인거야. 이 듀크 가 지방들의 더치들의 듀크들이 되서 영지를 담당하는겨.

 

킹이 그대로 둘 수가 없어. 분쟁이 생기거나 듀크 차원에서 해결이 안돼. 킹이 파견하는겨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이게 코메스 팔라티네스.라는 카운트 팔라틴.이야. 로마가 했던걸 그대로 하는겨 이건. 카운트 라는 공무원을 파견하는겨. 이 공무원은 팔라티움. 하늘같은 공무원 이라며 떠 받들라는겨 지방의 듀크.는 즉 이게 카운트 가 듀크 보다 절대 낮지가 않아 이게. 그러다가 더치 에서 서로 각각 땅을 파며 팻말 꽂는 그라프 가 되서리 그야말로 땅파먹는 카운트로 변질이 외면서 오히려 듀크.의 공무원이 된거걸랑 중세 지나면서.

 

카운트 팔라틴.이란게  높은 자리야. 쟤들이 사법적 문제를 다 해결해. 그러다가 얘들이 정착하면서, 의미를 상실하고 카운트 중에 윗계급의 카운트.로 바뀐거야 의미와 제도가.

 

 

 

After the fall of Rome, a new feudal type of title, also known simply as palatinus, started developing. The Frankish kings of the Merovingian dynasty (reigned 480–750) employed a high official, the comes palatinus, who at first assisted the king in his judicial duties and at a later date discharged many of these himself. Other counts palatine were employed on military and administrative work.[2]

 

뒤에는 얘들이 군사력을 쥐고 행정도 쥐면서 카운트 보다 높은 카운트 팔라틴(팔라틴 카운트) 이 되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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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는 1066년 부터 보면, 체스터 백작.같은 웨일즈 부근 경계력 백작령이 이 팔라틴 earl 백작이야. 

 

그리고, 헨리2세 때 아일랜드 점령하면서, 세개로 나눌때 킬데러 미드 등에 팔라틴 카운티.로 준겨. 즉 이 팔라틴이 붙으면 자치성이 상대적으로 졸 쎈겨. 

 

이 팔라틴 카운트(팔츠그라프).는 남발하지 않아. 듀크 못지 않게  귀하고 높은 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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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 제국.은 샤를마뉴가 들어오면서 저게 바뀌는거야.  이전 올드스템에 다음 샤를자식들때 영거스템 다섯 공작령.에, 각각 하나씩의 카운트 팔라틴.을 두는거야. 이건 머냐면, 기본적으로 팔라틴 카운트.란건 시작부터가 킹의 가장 최측근 파견 공무원이었다가. 영거스템부터 아예 저기 각각에 팔라틴 카운트를 두고 저 공작령들을 감시 통제하는겨 이게. 그러다 이 팔라틴 카운티.가 그 공작령 핏줄이 끊기거나 문제가 될때 얘들이 승계를 하는거야. 그러면서 이 팔라틴 카운트.를 잡은 가문이 각각 공작령의 실세가 되고 공작이 되고 선제후가 되는겨 이게. 

 

즉 공작령의 중심이자 핵심이 팔츠그라프.가 되는겨. 초기에 킹과 황제의 직속 파견 고위공무원들이, 듀크의 직속영주로 바뀌면서 더치들마다 이게 핵심자리가 되고, 이 팔츠그라프 를 쥔 듀크.가 선제후권을 갖게 되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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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벤(스와비아)의 팔라틴 카운티.가 Tübingen 튀빙엔.에 가고, 다음에 Württemberg 뷔르템베르크.가 갖고 오면서 이들이 슈바벤 공작령을 쥐는겨. 

 

작센쪽도 저 팔라틴 카운티.가 이어이어 베틴 가문이 쥐면서 이들이 작센 공작령에 선제후권을 쥐는거고.

 

바바리아.도 지금 세부 행정구역.이 팔라틴 이 있어. 고지대 프랑코니아 아래가 어퍼팔라틴.Oberpfalz 오베르팔츠. 라는 행정구역이여. 이게 바바리아 공국의 팔라틴 카운티 에서 나온 이름이야.

 

The County Palatine of the Rhine (GermanPfalzgrafschaft bei Rhein), later the Electorate of the Palatinate (GermanKurfürstentum von der Pfalz) or simply Electoral Palatinate[1] (GermanKurpfalz), was a territory in the Holy Roman Empire (specifically, a palatinate) administered by the Count Palatine of the Rhine. Its rulers served as prince-electors (Kurfürsten) from time immemorial, were noted as such in a papal letter of 1261, and were confirmed as electors by the Golden Bull of 1356.  

 

라인의 카운티 팔라틴.을 줄여서 라인 팔라틴 이라고 하고, 얘들은 팔라틴 카운트.로서의 선제후권.이 있어서 헷갈린거걸랑. 다른 공작령.은 공작은 공작이 따로 있는거고, 여기 핏줄이 이제 팔라틴 카운트.를 하는겨 겸하면서. 라인 팔라틴.은 공작이 아냐. 이들은 로타링기아.의 팔라틴 카운트.가 여기까지 갖고 있었걸랑. 그러다가 이전 말했듯이, 오토1세,가 프랑코니안 콘라트 손자들의 프랑코니아 공작령을 지우면서 자잘하게 흩어지걸랑. 로타링기아 의 팔라틴이 여기까지 쥐다가 로타링기아가 끊기면서 라인 팔라틴 만 따로 남은겨. 여기에 선제후권이 서기 1261년.에 대공위 시대 교황이 황제 갖고 놀면서 안티황제 만들고 내전할때 교황이 너도 선제후하라 는게 서기 1356년 골든 불.때 공식화가 되면서 이때부터 라인 팔라틴.은 선제후권 을 갖는 백작이 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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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ctoral Palatinate within the Holy Roman Empire, 1618

1618년. 30년 전쟁 시작할때의 라인팔라틴 선제후.의 땅이야. 저 지역의 카운트들 및 기타 영주들을 대표하는, 저 지도를 보면 라인강과 마인강이 만나는, 마인츠 아래, 즉 라인강 상류에 집중된겨 이 라인 팔라틴.의 선제후는. 여기에 마인강 상류야. 즉저긴, 이전 콘라트계열의 겝하트.자식들이 저기까지 간겨. 저기가 프랑코니아.야. 리푸아리안 프랑크.의 프랑코니아야 저건. 이걸 오토1세.가 황제되면서 저 더치를 지우고 자잘하게 흩어지게만 둔거야. 가운데를 뚝 떼놓은거고. 

 

저 지도를 보면 말야. 저당시 신성로마제국 영지가. 프랑코니아 지역의 라인팔라틴 선제후령.오른쪽이 바로 보헤미아야. 보헤미안숲 지대로 나뉜. 저 보헤미아의 땅이 조오올라 넓은겨 저게. 그래서 보헤미아를 따로 크라운.이라고 후대에 작명해. 보헤미아 킹덤은 수디티즈 넘어 폴란드 남부까지가 보헤미아야. 작센과 폴란드 국경의 루사티아 지역도 보헤미아야. 당연히 보헤미아.는 신성로마황제진영의 영지.여. 독립성이 쎌 뿐인거고. 

 

즉 저때 보헤미아.에서 시작한 30년 전쟁이란게, 이게 지금 체코땅을 생각하면 안돼 이게. 지금 체코땅의 두배여 저게. 아주 심각할 수 밖에 없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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