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ty Years' War was a war fought primarily in Central Europe between 1618 and 1648
it resulted in eight million fatalities not only from military engagements but also from violence, famine, and plague. Casualties were overwhelmingly and disproportionately inhabitants of the Holy Roman Empire, most of the rest being battle deaths from various foreign armies.[10] The deadly clashes ravaged Europe; 20 percent of the total population of Germany died during the conflict and there were losses up to 50 percent in a corridor between Pomerania and the Black Forest.[15]
30년 전쟁.이 1618-48. 이 기간에 전쟁 기근 역병으로 8백만이 죽었다. 사망자들은 신성로마제국 독일땅 거주지들에서 압도적이었다. 대부분은 다양한 외국 병력들과의 전투에서의 사망자였다. 독일 인구의 20퍼센트가 죽었고, 포메라니아에서 검은숲 지역까지의 대각선 길 지역의 손실은 50퍼센트에 육박한다. 이게 아마 동북 포메라니아에서 서남 검은숲까지 빗금 지역에 사망자의 반.에 반이 폐허가 되었다는 듯해.
In terms of proportional German casualties and destruction, it was surpassed only by the period of January to May 1945 during World War II. One of its enduring results was 19th-century Pan-Germanism, when it served as an example of the dangers of a divided Germany and became a key justification for the 1871 creation of the German Empire (although the German Empire excluded the German-speaking parts of the Austro-Hungarian Empire).[16]
사망자수와 파괴의 비율로 보면, 2차대전 1945년 1월에서 5월까지의 기간의 것을 넘어. 이 30년 전쟁.이 2백년 지나서 범 게르만주의.를 만들었고, 독일땅이 나눠지면 안되는 구나,를 자각하게 되었고, 이 자각이 2백년 걸쳐서 프러시아의 빌헬름1세.가 서기 1871년.에 독일통일제국.을 하게끔 한 근본적인 시작이란거지.
이런게 보면, 잉글랜드.에 다음 영국과 비교하면 정말 독일땅은 너무 늦는겨 이게. 저 30년 전쟁은 내전.이 아냐 웃기게도. 저건 딴 놈들이 쳐들어와 짓밟은거걸랑 신성로마제국을. 이 독일땅은 저 1871년 때에서야 통일전쟁을 하는겨. 헌데 웃기게도 빌헬름 1세의 통일도 또한 영국같지 않아. 독일이란 건, 보오전쟁 보불전쟁, 이라는 오스트리아 프랑스와 전쟁하면서 그냥 자기들 통일한거걸랑 저게. 나중에 이런 얘기 하고.
프랑스.도 말야 제대로 된 내전.을 한적이 없는겨 여기도. 1789년 프랑스 대학살 때에서야 내전을 했던겨 이들은. 이전에 위그노전쟁 때나 종교로 갈려서 한번했던거고 그이전엔 부르고뉴 중심으로 대들고 오를레앙도 찔끔 킹에 대들었을 뿐. 이런면에선 프랑스가 독일 보다 훨 앞선겨. 허나 이것도 영국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이건 천지차이야. 나중에 정리해보고.
저 30년 전쟁은, 독일땅 사람들 입장에선 황당한거야. 시작은 보헤미아 인데, 전쟁터는 30년간 독일땅인겨 저게. 이 독일이란 라인강 동쪽 애들은 지금 다시 보면 참 그야말로 너무나 미개했던건데. 그럴 수 밖에 없던 지역이고.
요즘 그래서 다시보면 말이지,
유럽이 켈트 냐 게르만 이냐 하걸랑. 이전 유전자 지도를 한번 봤지만. 당연히 켈트가 프랑스 영국에 많은거고.
갈리아라는 켈트.가 대륙에서는 대표적으로 프랑스에 골리쉬.에 스페인의 셀티베리안과 카탈란.이걸랑. 이들은 지금 다 사라지고, 대륙에 남은 켈트 들은 브레튼 breton 이야. 위 브리튼섬의 웨일즈.와 콘위시.이고. 게일은 따로 빼 스콧 게일.과 아이리쉬 게일.
골리쉬.라는 켈트.와 셀티베리안 카탈란 이라는 대륙 켈트.들은 다 지워지고 로망스 언어족이 된겨. 셀티베리안.과 카탈란.은 이 로망스 언어족에서 갈로 로망스.와 이베로 로망스.에 옥시탄 로망스.가 된거걸랑. 이들은 게르만 애들에 지배당한 켈트들인겨 이게.
라인강 동쪽의 게르만 들은, 갈로 로망스 보다 조오오온나게 후진겨 늦은거고 그 생각이. 게르만에 지배당한 프랑스 켈트들은 로마에 있었던 이들이걸랑. 헌데 이베로 로망스.는 라인강 동쪽 게르만 보다 더 후져 이게. 여기 온 게르만이 그리스도가 2백년 늦어 갈리아 프랑크 게르만보다. 그리고 바로 슬람이가 8백년 있걸랑. 조오오온나 후진게 이놈의 이베리아 로망스 라는겨. 이 이베로 로망스.가 그나마 저 8백년 동안 위에서부터 독립하면서 로망스화 되면서 슬람이가 갖고 있었던 걸 받았기때문에 게르만 조차 추격하고 이탈리아에서 나온 떨거지들 힘으로 갑자기 거대한 신대륙을 만드는거걸랑. 더 웃긴건 포르투갈.이 2백년 동안 개척해서 거둔 열매를 스페인이 취하면서 오히려 포르투갈이 망하는겨 이게.
이 스페인반도 땅은, 독일땅 보다 후진겨 이게. 얘들도 내부 다지기.를 전혀 전혀 안한거야. 그러다 그냥 나폴레옹에게 그냥 먹힌겨 스페인땅은.
1차대전 끝나고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똑같은겨 역시나 역사가. 포르투갈은 살라자르 티나오고. 스페인은 프랑코 티나오고 내전하고.
스페인 포르투갈.은 확실히 무슬림 지배 8백년의 후유증이 큰거야. 그만큼 정체성 다지기가 안된겨 여긴. 갑작스런 신대륙발견에 갑작스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에, 이게 결국 짱돌이 된겨 시간 지나서 보면.
그래서 이베리아반도는 논외로 하고. 영국 프랑스 독일 만 보면, 즉 켈트를 지배한 게르만의 땅 두개.와 그냥 게르만인 라인강 동쪽인데.
당연히, 켈트들의 땅이 압도적으로 나을 수 밖에 없어. 쟤들보다 4백년의 로마 경험이 있는 켈트들이걸랑. 이걸 게르만이 활용한 거고. 특히나 엘리자벳.때 말야, 이전 썰한 모스크바 컴퍼니, 이반4세때 얘들이 제일먼저 러시아를 알게 돼. 러시아 모피만 가져오겠어? 러시아문화를 갖고 오는겨 또한. 또 엘리자벳.이 레반트에 터키 컴퍼니.를 만들어, 오스만꺼도 갖고 와. 엄청난 거야 저건. 엘리자벳.이 만든겨 이놈의 영국은.
또한, 이 영국 브리튼.은 섬에서, 대륙의 전쟁들에 휩싸이지 않은겨 상대적으로, 그래서 반대로 자기들끼리 내전을 먼저 찐하게 한거걸랑 이게. 그러면서 말야, 대륙에서 내전할때 브리튼은 다진 정체성으로 날라가는겨 이게.
켈트냐 게르만이냐. 게르만이 켈트보다 나을 수가 없어. 켈트냐 게르만이냐. 켈트 없는 게르만.은 독일땅이야. 후진거지. 얘들은 뒤늦게 저 켈트의 게르만을 익힌겨. 이게 독일을 만든겨. 플랑드르와 프리지아, 켈트를 만난 게르만이라서 훨씬 앞선겨 그냥 게르만보다. 저 개무시기 개르만의 라인강 동쪽이, 오히려 30년 전쟁때 들어오는 프랑스 애들로 인해서 이때서야 게르만 신성로마제국.이 좀 문화가 열리게 돼. 라인강변 조차 완전히 중세의 땅인겨 여기 게르만땅은. 오히려 이때서야 독일땅이 숨통이 좀 트여. 그리고 나오는 인간이 라이프니츠.여. 이 라이프니츠.가 독일 리터러쳐.의 시작이야 시작. 가장 중심인물이 저 라이프니츠.여. 헌데 저 동시대를 비교해봐도, 독일땅은 정말 인물이 없어 인물이. 프랑스와 영국을 비교하면 저당시, 독일은 정말 무지한 땅인겨 저건. 쟤들이 저때 30년 전쟁부터 왼쪽 켈트화된 게르만애들이 들어오면서 급성장을 한거야 독일이란 개무시기 게르만들이.
대륙의 켈트 게르만 잡종.보다 브리튼의 켈트 게르만 잡종.이 지리적 여건으로 따로 놀면서 내전하면서 먼저 정체성 다지기로 앞서 나간거고 얘들이. 엘리자벳 이전엔 여긴 거지여. 이후엔 역전이 되는겨 이게. 대륙쪽은 이제서야 내전을 할까말까걸랑.
저건 내전이 아녀. 80년 전쟁이든 30년 전쟁이든. 대륙 전쟁은 내전이 상대적으로 거의 없어. 방데 전쟁 티나오는 프랑스 1789에서야 내전 찐하게 하는겨 이게. 독일땅은 저 이후 프러시아가 내전인듯 아닌듯 걍 통일하는거고.
저런게 똑같이 이탈리아고.
이탈리아.는 프로토 이탈릭.이야. 켈트도 게르만도 아녀 얘들은. 게르만과 켈트들이 여 와서 배운거고. 이들을 켈트와 게르만에 비교해대면 섭섭해하지 이탈리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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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간에 말야
The Eighty Years' War (Dutch: Tachtigjarige Oorlog; Spanish: Guerra de los Ochenta Años) or Dutch War of Independence (1568–1648)
The Twelve Years' Truce in Antwerp on 9 April 1609
80년 전쟁.중에. 딱 50년 지나서 30년전쟁.이 시작이 되고, 네덜란드는 이걸 합해서 80년 독립전쟁인거야.
이전에 딱 40년 전쟁하고 10년간 쉬는 중인겨. 12년 휴전.을 공식화 했걸랑. 이 기간이 9년 지날 때 저게 터져서, 3년 앞당겨 80년 전쟁을 하는건데 네덜란드와 스페인은.
이 30년 전쟁에 들어오는 외국이 덴마크 에 스웨덴 이걸랑. 더하여 이놈의 프랑스여. 프랑스.가 들어오는게 이게 웃긴거야.
반면에, 영국은 안껴 저길. 제임스1세.가 죽고 아들 찰스1세.가 엄마 덴마크의 앤. 안나.가 카톨릭을 심어 웃기게도. 더하여 팔리어먼트가 시른거고. 저들은 우리할머니 스콧마리.를 죽인겨. 아빠는 참아도 나는 못참아. 엄마가 이걸 심어. 우리 아빠 가만보니 팔리어먼트의 꼭두각시여 해대면서 뜬굼포 카톨릭을 다시 갖고와. 이 영국은 또 내전이여. 이게 세킹덤의 전쟁.이고. 찰스1세 모가지 짜르는 올리버크롬웰 등장하시고. 이 영국은 30년전쟁에 낄 여지가 없어.
웃긴건 말야, 이놈의 프랑스여.
30년 전쟁 이야길 보면, 프랑스가 저길 프로테스탄트 편 들으면서 끼는 이유가 웃긴거야. 카톨릭의 사도를 자처하는 프랑스애들이, 오히려 프로테스탄트 편을 드는겨. 그 이유가, 왼쪽 아래 스페인 합스부르크.에 오른쪽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 양쪽에 강건하면 위협적이란 거걸랑. 이런 분석은 그럴싸하지만 좀 약해
이게 웃긴게 머냐면 말야.
이전 50년동안 했던 80년 네덜란드 독립전쟁 전반전때는, 프랑스에선 저런 소리가 없어요. 네덜란드 독립전쟁 전반전 40년에 휴식 10년 동안 프랑스는 저기에 관심이 없어. 헌데 뜬굼없이 위협을 느낀다는건데.
네덜란드 이전 전쟁은, 엘리자벳.의 잉글랜드.가 1588년 스페인 아르마다 이후에 본격적으로 네덜란드를 지원한거걸랑. 이전엔 개인들이 용병 자격으로 가서 도와준거고. 프랑스.는 위그노전쟁이 6년 먼저 터지고 이 위그노 들이 이 와중에 가서 도와준겨 네덜란드를. 그러다가 성 바텔레미 학살.로 위그노가 몰리면서 네덜란드 갔던 위그노들이 오히려 프랑스로 다시 가. 본토 위그노들이 바로 간겨 프랑스로. 이게 1572년 이고. 80년 전쟁 시작이 1568년 이여. 저건 프랑스 중앙코트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프랑스.는 앙리4세.가 파리를 포기할 수 없담시롱 카톨릭인겨. 낭트 칙령 으로 같이 인정하자 하미.
앙리4세.가 첫부인이 메디치 카테리나.의 딸 발루아의 마가렛.이고 둘 결혼 때 성 바텔레미 학살 일어나는건데. 이후 마가렛.이 남편 편 안들걸랑. 성격이 졸 활달무애야 이여자가. 결혼 무효하고 들인 부인이 메디치.의 마리.야. 여기서 루이13세.가 나와. 이 메디치.의 마리.는 이전 메디치.의 카테리나.의 그 메디치 가 아녀. 메디치 가문이 메디치 은행 세우는 지오반니.고 이사람 아들이 셋.인데. 첫 코시모.에서 위대한 로렌초 로 이어가는거고. 이 핏줄이 카테리나. 프랑스 퀸.까지 간거걸랑. 코시모 메디치. 마지막 핏줄이 암살로 죽고. 이탈리안 전쟁 막판에, 다시서는 메디치.는 창립자 지오반니의 막내.핏줄이야. 이탈리아 전쟁 끝나고, 피렌체.가 그랜드 더치.라는 대공작령이 되걸랑. 카를5세 도와서 프랑스에 싸웠다고 카를이 그랜드로 올려줘. 이때부터의 피렌체 그랜드 듀크.의 메디치.는 쥬니어 막내 줄인겨. 이전의 메디치와 전혀 달라.
앙리4세.가 재혼한 부인이 저 메디치.의 마리.인데. 독실한 카톨릭이야. 이여자 딸이 또한 잉글랜드 찰스1세의 부인 마리 퀸.이야. 이 마리 퀸.이름으로 미국 매리랜드.라는 주가 나와. 저긴 카톨릭 땅인겨. 그래서 당근 아들 루이13세.도 꼴통 카톨릭이야. 얘가 프랑스 위그노를 다 조지는거고, 다음 아들 루이14세가 어 우리땅 위그노 이삼천명 정돈가? 하는거고.
앙리4세.가 서기 1610년.에 암살당하는겨. 아들 루이13세.가 1643년 에 죽어. 9세에 즉위해서. 30년 전쟁.은 후반전에 이 루이13세.가 합스부르크.에 전쟁선포를 하는겨.
앙리4세.는 위그노전쟁.에 이어 펠리페2세의 스페인에 지칠대로 지친겨. 카톨릭 개종하고 대관식한게 1594년.이고 계속 펠리페2세.가 개입해서 싸우고 낭트칙령 1598년.으로 36년간 프랑스 종교전쟁.이 종지부를 찍어. 이때 네덜란드 독립전쟁은 30년 지난거고. 앙리4세.는 대관식 올리고 킹한게 16년 이야.
이사람이, 카톨릭으로 개종했지만, 마음 바닥은 위그노야.
The War of the Jülich Succession was a military conflict over the right of succession to the United Duchies of Jülich-Cleves-Berg. It lasted between 10 June 1609 and 24 October 1610, resuming in May 1614 and finally ending in 13 October 1614.
윌리히 후계자 전쟁.
Johann Wilhelm of Jülich-Cleves-Berg (German: Johann Wilhelm, Herzog zu Kleve, Jülich und Berg) (28 May 1562 – 25 March 1609) was a Duke of Jülich-Cleves-Berg.[1]
윌리히-클레베-베르크. 공작 요한 빌헬름.이 서기 1609년.에 죽어. 여기가 라인강이 죽 흘러서리. 네덜란드와 접하는 제법 큰 라인강변 왼쪽 오른쪽의 땅이여. 이 오른쪽 바로 위가 뮌스터.고 옆이 도르트문트.여.
아들없이 딸만 둘인데. 큰딸은 프러시아 브란덴부르크.로 시집을 갖고. 프로테스탄트.여. 작은딸은 바바리아의 노이부르크.여 당근 꼴통 카톨릭이고. 이걸 황제 루돌프2세.가 중재한다민서 뺏아서리 카톨릭화하는겨.
앙리4세.가 프로테스탄트 돕는답시고, 합스부르크 상대로 전쟁할라고 준비하다가 암살을 당하걸랑. 마차 타고 가다가 이 마차로 자객이 뛰어올라 찔러 죽여. 이게 1610년.이야. 요한 빌헬름이 자식없이 죽고 일주일 후 즈음에 우연찮게도 12년 휴전서약을 한겨 네덜란드 스페인은. 그리고 나서리 저기 윌리히 클레베 베르크.가 후계자 이슈가 터진거걸랑.
앙리4세.는 네덜란드 전쟁에 낄 여지도 없었고. 저때 뜬굼없이 반 합스부르크 라면서 프로테스탄트 돕겠다 한거걸랑. 이후 바로 루이13세가 9세에 킹이 되고, 엄마 마리.가 섭정을 해. 이여잔 꼴통 카톨릭이야. 합스부르크랑 친해. 친정 메디치는 쟤들이 대공작으로 올려줬어. 합스부르크 랑 싸울 이유가 전혀 없는겨.
결국 저 윌리히 전쟁.은 브란덴부르크.와 노이부르크.가 각각 칼뱅.이랑 카톨릭.으로 인정하고 나눠. 서기 1614. 저게 30년 전쟁 전초전.이야.
앙리4세.는 프랑스 카톨릭 진영에, 가짜 전향이란 의심의 딱지가 붙걸랑. 그래서 계속 펠리페2세.가 프랑스를 공격한거고. 그리곤 낭트칙령 발표하고 마무린데. 저때도 네덜란드는 전쟁 중인겨. 잉글랜드가 합세해서 1588 이후로 힘이 붙은거고, 딱히 프랑스가 여기서 네덜란드편 들기도 애매하지, 합스부르크를 상대로 전쟁할 명분은 있지만, 네덜란드 진영엔 잉글랜드가 동맹군인겨.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앙숙이고.
윌리히 지역은 네덜란드 넘어 라인강 접경이걸랑. 프로테스탄트 편에 서서 합스부르크랑 또 전쟁하려다 죽은건데 말야.
그리곤 루이13세. 섭정하는 카톨릭 대장 엄마 마리.에, 이때 등장하는게 리슐리외 추기경이여. 엄마 마리.와 리슐리외.가 1642년.에 죽어. 루이13세.는 이 다음해 1643년에 죽어. 태양왕 루이.가 5세.에 킹이 되는겨.
마리.가 정치욕심이 있는 여자고, 아들 루이13세는 엄마 품을 벗어나려는 거고, 리슐리외.는 당근 킹 편을 드는거고. 엄마랑 아들이 싸우고 엄마는 쫓겨나는겨 프랑스에서. 망명하고 죽어.
In 1616 Marie's rule was strengthened by the addition to her councils of Armand Jean du Plessis (later Cardinal Richelieu), who had come to prominence at the meetings of the Estates General. However, her son Louis XIII, already several years into his legal majority, asserted his authority the next year. The king overturned the pro-Habsburg, pro-Spanish foreign policy pursued by his mother, ordered the assassination of Concini, exiled the queen to the Château de Blois and appointed Richelieu to his bishopric.
1616년.이 루이13세.가 15세야. 엄마 마리.는 친합스부르크여. 섭정을 안 넘기는 거고. 아들은 권력 내놓아라. 해서 1617년 16세.에 권력을 받아. 그리고는 이전 엄마 가 했던 친 합스부르크 정책.을 다 뒤집어 엎고. 엄마를 내쫓고, 리슐리외.를 옆에 두는겨. 이게 1618년 30년 전쟁 일어나기 직전이야.
30년 전쟁이 터지고, 덴마크.가 7년 후 1625년에. 가 들어갔다 나오고, 요걸 스위든.이 1630년에 들어가. 그리고 프랑스.가 1635년 에 들어가. 덴마크와 스위든은 프로테스탄트.고 카톨릭 진영이 자기들에 안좋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렇다고 딱히 들어가기가 거시기 하걸랑. 헌데 스위든.이 들어가게끔 한건 리슐리외.여. 프랑스에서 펀딩을 해주는겨 저게. 돈 줄테니 니덜이 가서 싸워. 땡큐야 스위든은. 프랑스는 자기들이 직접 들어가긴 거시기한거걸랑. 자기들은 카톨릭인데 대놓고 반카톨릭 으로 보이고, 헌데 합스부르크.는 그것 이상으로 싫걸랑 프랑스는. 두나라에 돈을 댄겨 프랑스는. 그러다가 직접 참전을 한거야.
저건 엄마 마리.를 내쫓고. 바로 터진게 30년 전쟁이야.
프랑스 와 합스부르크.는 1494-1559 이탈리아 전쟁의 웬수 중에 웬수고. 부르고뉴 마리가 막시밀리언.에 1477년 시집가면서 부터도 웬수여 여긴. 루이13세 입장에선 어쨌거나 아빠 앙리4세를 괴롭힌 펠리페2세.의 스페인 합스부르크고. 이 둘은 150년 가까이 아주 지긋지긋한 웬수사이야. 이걸 엄마 마리. 이탈리아 메디치 여자가 돌려놓은거걸랑. 당연히 이여잔 쫓겨나서 타지에서 죽은겨 그래서. 저 둘 사이의 극심한 감정을 모르는거야 메디치의 마리.는.
종교보다 저 150년간의 감정이 있는겨. 그게 리슐리외.여. 추기경 이지만 스위든 프로테스탄트.랑 손을 잡는겨 그래서. 그래서 이사람이 갓 성장한 루이13세 편을 든거고. 자기의 이념 종교 보다는 국익이야.
이 뒤를 잇는게 마자랭. 추기경이야. 루이 14세 태양왕이 다섯에 킹이 돼. 1643년. 아직 1648년 30년 전쟁 끝나려면 5년 남았어. 마자랭.도 리슐리외.랑 아주 똑같은 인간이야. 계속 가는겨. 헌데 프롱드의 난.이라는 내란이 일어나 프랑스에서. 이 프랑스가 그래서 빠꾸하면서 30년 전쟁이 끝나는건데. 즉 루이14세.가 열 살 일때 끝난겨. 얜 어릴때 그래서 저 내전에 프롱드 쪽 애들이 승리하고 힘 다 빠진 어린 시절의 이름뿐인 킹을 보내서, 이 복수심으로 귀족들을 다 조지고 절대군주.가 되는건데.
앙리4세.가 1594년 에 대관식 하고 1598년 낭트칙령 하고, 이 사이에 펠리페의 스페인과 전투중이었고 네덜란드 80년 전쟁 전반전의 후반이걸랑. 이때 딱히 네덜란드엔 그리 신경이 안갔어. 내부적 이유도 있지만, 이때는 좌우에 합스부르크 라는 무게감이 약해. 80년 전쟁의 초기 40년 은 말야, 스페인 합스부르크 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 이게 사이가 안좋아. 그래서 독일땅 황제진영은 저 네덜란드 전쟁에 이때는 개입을 전혀 안해. 그리고 뒤에가선 못했고. 왜냐면 오른쪽에 오스만이랑 롱 투르크 전쟁이라는 13년 전쟁.을 해야 했걸랑. 네덜란드는 오직 스페인 합스부르크.만 참전한거야.
더하여 말야. 아주 근본적으로,
The Peace of Augsburg, also called the Augsburg Settlement,[1] was a treaty between Charles V, Holy Roman Emperor, and the Schmalkaldic League, signed in September 1555 at the imperial city of Augsburg.
아우크스부르크 평화 조약. 1555년.으로. 카를5세가 루터파.를 인정하기로 하면서. 카를은 이걸 하고 다음해 동생에게 황제자릴 주고 수도원 들어가서 2년 후에 죽는겨. 저게 카를5세의 마지막 작품인데.
오히려 저게 말야. 신성로마진영의 힘을 그냥 화악 죽인겨 저게. 저러면서 신성로마땅은 그냥 두 진영을 찢어지면서, 황제가 힘이 확 죽는거야. 그래서 신성로마제국은 저 서기 1555년 부터의 역사는 지는 역사야. 저무는 역사고. 얘들이 못뭉치는겨 이게. 저때부터 1871년 프러시아의 빌헬름.이 통일할때까지의 3백년 역사.는 힘이 없는겨 이 독일땅이. 나중 대투르크 전쟁.에서 스타는 사보이야.
리포메이션.이라는건 종교개혁 이 아니라. 저게 리포메이션이야.
1555년 을 분기점으로, 그래서 말야, 스페인도 끝의 시작을 가는겨. 너무 빨리 잡는거 아녀? 하겠지만. 저때야.
저러면서, 태양왕 루이의 시대가 오고, 잠시 지다가 나폴레옹이 티나오는겨. 저때 이미 대영제국 이라는 브리튼은 내전 다 끝내고 날라가기 시작하는거고.
참 아이러니한데 이 역사를 가만 보면 말이지.
Philip II of Spain (Spanish: Felipe II; 21 May 1527 – 13 September 1598)
Maximilian II (31 July 1527 – 12 October 1576), 즉위 1564
Charles V[b] (24 February 1500 – 21 September 1558
Ferdinand I (Spanish: Fernando I) (10 March 1503 – 25 July 1564)
카를5세.와 동생 페르디난트1세.의 각각의 두 자식이 펠리페2세.고 막시밀리언2세 황제.야. 둘이 사촌지간인데, 나이가 똑같아. 1527년 생. 카를5세가 말년에 저 둘이 30세가 넘은겨 벌써.
카를5세.가 동생에겐 황제를 주고, 아들에겐 스페인 킹.을 줘. 이때부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와 스페인 합스부르크.가 되는겨.
저때 잘 봐야 할 것이. 독일 저지대인 네덜란드 벨기에땅은 스페인 합스부르크 땅이야. 더하여 이탈리아를 잘 봐야해. 여기는 말야. 피렌체를 대공작령으로 올리고 얘들은 황제진영에 하미지를 하는겨. 여기 주인은 신성로마황제고 황제에 직접 하미지 하는거고. 아래 나폴리 킹덤은 시칠리아와 함께 이건 스페인 합스부르크 여. .
카를5세가, 나눠주고 말야, 자기 아들에겐 네개의 단어.를 주면서 갈키걸랑. 펠리페는 그래서 아주 차가운 사람이야. 웃음이 없고, 웃을땐 칼날 같은 인상에 섬짓한겨. 아무도 안믿어. 나쁘게 말하면 음흉해.
카를이 황제자릴 동생에게 줬는데, 동생 아들인 막시밀리안2세.가 마음에 안 드는거야. 그래서 언뜻, 동생에게, 너 다음의 후계자는 내 아들 펠리페2세에게 주었으면 하고 말을 한 듯해.
카를5세.가 오래 살았으면 아마 막시밀리언.이 쉽지 않았을 듯해. 게르만의 킹.이 된게 1562년 이야. 카를 죽고 나서 된겨 이게. 자기나름 정치력을 발휘해서 막막 자기들 편을 만든겨. 펠리페2세.가 황제자릴 놓친거야 이건.
이 동갑내기 둘이서 사이가 안좋은겨 저러면서.
막시밀리언.은 스페이나드 라는 스페인것들을 그래서 싫어해.
네덜란드 독립전쟁이 터졌어. 1568년.이야 막시밀리언2세 황제 즉위후 4년 후에 터진겨. 여기에 황제진영이 전혀 개입을 안하는겨 이게.
감정적으로 너무 싫어하는겨 사촌인 펠리페 2세를. 둘이 성격이 극과 극이야. 막시밀리언은 활달 쾌활.에 프로테스탄트.에게도 관대해. 펠리페는 꼴통 카톨릭에 표정 숨기고 표현 안하는 인간이야.
더하여 말야. 막시밀리언.이나, 아빠 페르디난트.나, 이미 신성로마황제.는 아우크스부르크 조약 1555년.으로 두동강 나면서 힘이 확 줄은겨. 다시 뒤를 돌아보면 저때 헝가리땅에 오스만들 쳐들어오고 다뉴브를 사이에 두고 나눌때도 페르디난트 황제.는 헝가리 킹 자처 하지만, 거의 진거야 이건. 힘을 전혀 못써. 투르크 대상 전쟁은 왈라키아 몰도바 트렌실베니아 애들이 자체적으로 싸운겨 저건. 황제쪽 병력은 이게 힘이 없는겨.
페르디난트 때부터 황제 되면서, 아예 힘이 확 죽은겨 이놈의 황제란 자리는.
막시밀리언2세가 이 황제가 되고, 1568년.에 네덜란드 독립전쟁이 시작돼. 3년 후 1571년에 레판토 해전이 지중해에서 터져. 이건 거대한 해전이야. 이것도 중심은 말야 저 와중에 스페인 이 저걸 상대한거야 바다에서.
막시밀리언2세 황제진영은, 아무것도 안하고 못하는겨. 이 황제는 어찌보면 조롱감이여 교황이나 서쪽애들이 보기엔. 말만 황제지 아무런 힘도 없는겨 저 자리는.
가만 보면 말야, 우리가 신성로마황제 하면 엄청나게 대단한 듯 보이지만, 정말 뜯어놓고 보면. 로마 교황한테 말도 안되는 억지에 쫓기면서 1122년에 교황의 신권에 무릎을 꿇는거 하미, 여긴 장남 로타르.가 이름뿐인 황제 명함 받는 그 순간 부터 천년이 무늬만 황제인겨 이건. 이놈의 라인강 동쪽 게르만이란 지역은.
가만보면 쟤들 천년 역사가 불쌍해. 막시밀리언1세 황제가 부르고뉴 마리랑 결혼에, 자식과 손자녀 로또결혼 두번을 이사벨라 스페인쪽과 헝가리 브와디스와프 쪽으로 해서 얻어걸려 땅이 넓어진 거 빼곤 말야. 이게 벨류없는 걍 껍데기여 저놈의 신성로마황제자리는. 그래서 그만큼 각각의 서클들에서 마음껏 서로들 돌아다닌거고 자유도시들이 난립을 한겨 저게. 1800개 영지들이 독립적으로 움직인겨 서로들. 이게 결국 지금 독일의 힘이 된거야. 3백여년 1871년까지도 저물고. 그러다 잠시 통일해서 제국하지만 월드워 원 투.로 걍 뻗어서 지워저야할 땅이 지금 저런 강대국이 된건 또한 바닥의 저 시절의 힘이야. 껍데기뿐이었던 신성로마황제 천년동안 바닥에서 서로들 다진 힘들.을 다 망하고도 버티고 다시 일어나는건.
일단 여기서 끊자. 아 시작의 시작도 못했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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