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 Gilbert (/ˈɡɪlbərt/; 24 May 1544 – 30 November 1603), also known as Gilberd,[1] was an English physician, physicist and natural philosopher. He passionately rejected both the prevailing Aristotelian philosophy and the Scholastic method of university teaching. He is remembered today largely for his book De Magnete (1600), and is credited as one of the originators of the term "electricity". He is regarded by some as the father of electrical engineering or electricity and magnetism.
윌리엄 길버트. 1603년 11월 30일에 죽었어. 엘리자벳1세.가 같은해 3월 24일 에 죽었걸랑. 아 증말 위대한 여자 엘리자벳1세. 내 웬만하면 위대하다 란 수식어를 안붙이는데 말야. 정말 영국여자들은 위대한 여자들이 많아. 조선 오백년을 보고 쟤들을 보면, 아, 비교하면 안되지만 말야, 시체파먹는 구데기들의 지렁이를 감히 사람 이야기에 빗대는게 아니지만서도. 쟤들의 관용의 역사 를 보면 아 기가막혀 이건. 이걸 쟤들은 몰라 유럽애들은. 조선 역사를 보면, 이건 그야말로 복수심에 쩔고 쩐 벌레들의 이야기걸랑. 오직 복수. 이것 하나 만 있어 얘들 이야기를 그냥 보면. 조선은 복수 하는 애들 이야기야. 그것도 잔인하게. 오직 복수, 오직 자기만 정의. 오직 자기만 군자. 상대는 소인. 상대는 적폐. 걍 이거 하나야. 그래서 나는 이해가 돼 지금 이땅에서 적폐놀이 하는게. 어찌할 수 없는 역사의 두께야. 우리네는 저런 엘리자벳 같은 인간이 없걸랑. 없을 수 밖에 없는 역사였고. 어찌할 수 없어 이 모든 것들이.
무력감.
아 난 요즘 이 무력감.을 느껴. 조선 역사를 보다가 쟤들 역사를 보고 쟤들 리터러쳐들의 저 어이없는 양.과 질.을 보면 말야. 무력감이 생겨 무력감이.
16세기 절정에만도 찍어낸 책이 1억5천만권에서 2억권이라잖니. 저게 책 종으로만 따지면 수천만권 이야. 제목이 다른게. 쟤들 리터러쳐 가 어마어마한겨 16세기 만도. 우리네가 보는 세계 문학 전집이란게 그냥 유치한 수준도 아니고, 아예 없는거야 쟤들 리터러쳐 를 번역한 게 그냥 없다고 보면 돼. 하물며 작금에 나오는 영미애들의 책들은 더 엄청난 산물들 이걸랑 그 양 조차.
무력감이 느껴져. 그제는 힘이 하나도 없던데. 어제 다시 타이핑할 힘이 생겨서리 쓰지만서도.
아 , 한글 책이 읽을 게 단 하나 도 없는겨 이게. 에이 정말.
저딴 조선들의 글들이 위대하답시고 테레비 신문 잡지 에서 필독서 해대고.
무력감이 그냥 온 몸을 뒤덮어. 니넨 이런 기분 느낄 수가 없을텐데. 니넨 아무 생각없는, 지렁이를 찬양하며 시체파먹는 구데기 친구들이잖니.
아 진짜 이놈의 무력감. 그제 아무 힘도 없더만. 이 무력감의 엄습. 저녁에 밥먹으니 그나마 힘이 나더라고. 아 왜냐면 가만 보니까 하루종일 물만 먹고 아무것도 안 처먹은겨 담바고만 빨아대고. 아 무력감 생겼어.
Sir Joseph John Thomson OM PRS[1] (18 December 1856 – 30 August 1940) was an English physicist and Nobel Laureate in Physics, credited with the discovery and identification of the electron, the first subatomic particle to be discovered.
조셉 톰슨.이 서기 1897년.에 일렉트론. 전자.를 확인해. 원자 아래의 성분.을 전자.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견한겨. 이사람도 케임브리지 대학이여. 랭커셔 출생이고. 부모는 스콧들이고. 아 이놈의 영국.
빛이 전자기파.라는 걸 증명한 맥스웰 방정식.의 맥스웰.은 조셉 톰슨.의 한 세대 이전 사람이야. 이사람은 전자.를 못봐 그래서. 이 인간도 스콧 출신에 에든버러 갔다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는거고. 집안 짱짱 귀족집안이고.
After many experiments, first with carbon filaments and then with platinum and other metals, Edison returned to a carbon filament.[50] The first successful test was on October 22, 1879;[48]:186[51][52][37] it lasted 13.5 hours.[53] Edison continued to improve this design and on November 4, 1879, filed for U.S. patent 223,898 (granted on January 27, 1880) for an electric lamp using "a carbon filament or strip coiled and connected to platina contact wires".[54] This was the first commercially practical incandescent light.[55]
토마스 에디슨.이 탄소 필라멘트.로 전기 실험 성공한게 서기 1879년.이야, 물론 조셉톰슨의 전자 발견과는 상관없는 전기 실험이지만, 그 바닥은 같은 전자 이야기걸랑 이게.
His research on hearing and speech further led him to experiment with hearing devices which eventually culminated in Bell being awarded the first U.S. patent for the telephone in 1876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전화기 특허.가 서기 1876년.이야. 에디슨과 동갑이여. 조셉 톰슨은 9살 어리고. 이 전화기도 다 같은겨 이게 바닥이야기가.
저런게 말야. 모두, 나침반에서 시작이 되는겨 이게.
De Magnete, Magneticisque Corporibus, et de Magno Magnete Tellure (On the Magnet and Magnetic Bodies, and on That Great Magnet the Earth) is a scientific work published in 1600 by the English physician and scientist William Gilbert and his partner Aaron Dowling. A highly influential and successful book, it exerted an immediate influence on many contemporary writers, including Francis Godwin and Mark Ridley.[1]
윌리엄 길버트.가 데 마그네테, 마그넷.이라는 자석.과 자석의 몸들 에 대하여, 그리고 그 거대한 자석이라는 지구에 대하여. 라는 책을 서기 1600년 에 출판에. 나이 56세에. 그리고 3년후에 죽는데.
윌리엄 길버트.가 저 책에서 만들어 낸 라틴어.가 엘렉티리쿠스. electricus. 이 엘렉트리쿠스.란 걸 뒤에 토마스 브라운.이, 일렉트리시티.라는 전기.라는 영어를 최초로 만들어내. 저책은 라틴어로 된 책이야.
The English word "electricity" was first used in 1646 by Sir Thomas Browne, derived from Gilbert's 1600 New Latin electricus, meaning "like amber". The term had been in use since the 13th century, but Gilbert was the first to use it to mean "like amber in its attractive properties". He recognized that friction with these objects removed a so-called "effluvium", which would cause the attraction effect in returning to the object, though he did not realize that this substance (electric charge) was universal to all materials.[8]
토마스 브라운.이 서기 1646년.에 단지 영어로 번역한 말이야, 길버트 책의 엘렉트리쿠스.를 보고. 엘렉트리쿠스.란게, 앰버 같은. 이란건데. 앰버 amber 가 호박 이잖니. 이걸 그리스어로 엘렉트론.하는겨. 앰버 라는게 레진. 수지 여 나무의 기름이야. 앰버 라는 말은 아랍어 안바 anbar여 이건. 앰버 라는 말은 미들 프랜취 14세기에나 나온 말이야. 이걸 영어로 쓴게 앰버.야. 프랜취.가 아랍말 받은거고, 아랍애들이 ambergris 앰버그리스, 회색 앰버, 라는게 향유고래 기름.이여. 귀한 기름을 저기서 앰버.로 듣고 나무 기름.에서 나온 귀한 호박.이라 이걸 앰버.라고 한겨 유럽애들이. 14세기 이후에.
이전에는 엘렉트론.이라 한거야. 고대그리스어로는. 라틴어로 이게 명사형이 엘렉트룸.이야. 이전 화폐 이야기에서 본, 고대그리스.가 뤼디아 에서 기원전 7세기 후반에 쓴 코인.이 엘렉트룸 코인 이라 했잖오. 호박에 금과 은 합금을 코인으로 만든겨.
엘렉트론.이라는 나중 앰버 로 쓰는 이 호박.이 문지르면 가벼운 물건들을 땡기는 걸 안거야. 고대에. 이걸 정전기.로 부르는거고.
Theophrastus discussed amber in the 4th century BC, as did Pytheas (c. 330 BC), whose work "On the Ocean" is lost, but was referenced by Pliny the Elder (23 to 79 AD), according to whose The Natural History
호박에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걸, 플리니우스 엘더.가 언급을 해. 기원전 4세기 퓌테아스.가 엘렉트론 이란게 바다에서 뱉어낸 어떤거같다 라는 의견.을 옮기고,
Pliny also cites the opinion of Nicias (c. 470–413 BC), according to whom amber
니키아스.가 이전에, 엘렉트론을 문지르면 먼가 끌어당겨. 했다고. 즉 저때 다 안겨 호박의 성질을.
물건을 끌어당기는게, 앰버 라는 호박 이라는 엘렉트론.말고. 자석이란게 있는겨.
One of the earliest known references to lodestone's magnetic properties was made by 6th century BC Greek philosopher Thales of Miletus,[12] whom the ancient Greeks credited with discovering lodestone's attraction to iron and other lodestones.[13] The name magnet may come from lodestones found in Magnesia, Anatolia.[14]
밀레토스.의 탈레스.가 기원전 6세기에 언급을 해. 자석의 성질을. 이사람은 피타고라스 보다 먼저여. 밀레토스.도 이오니아야 터키땅 해변. 자석 이라는 돌 마그넷.이 아마 마그네시아.에서 나온 듯 추정해서 마그넷.이라 하걸랑. 마그네시아, 밀레토스, 모두 에페소스 근처.인 이오니아.야.
From Middle English magnete, via Old French magnete, Latin magnetum (“lodestone”), from Ancient Greek μαγνῆτις [λίθος] (magnêtis [líthos], “Magnesian [stone]”), either after the Lydian city Magnesia ad Sipylum (modern-day Manisa, Turkey), or after the Greek region of Μαγνησία (Magnēsía) (whence came the colonist who founded the city in Lydia).
마그넷. 이란건 고대그리스어로 그래서 마그네티스 라고 했고 라틴어로 마그네툼.이라고 한겨.
자석.이란 말을 영어로 마그넷.에 더하여 로드스톤 이라고 해 lodestone. 북극성 이 영어로 또한 lodestar 로드스타.야. 로드 라는게 영어로 길잡이. 길. 이여 이게. 이건 게르만 말이야 영어 쓰는. 고대그리스어로 마그네티스. 에 리토스.lithos 가 붙어. 마그네시아의 돌.이란 뜻이여. 리토스.랑 로드 랑 전혀 상관이 없어. 로드 스톤 은 훨 이후 쓴 말이야. 앰버 처럼.
자석.은 철 을 끌어당기는 돌이고
호박.은 문질러서 정전기로 가벼운 거 끌아당기는 돌이고.
Based on his find of an Olmec hematite artifact in Central America, the American astronomer John Carlson has suggested that "the Olmec may have discovered and used the geomagnetic lodestone compass earlier than 1000 BC". If true, this "predates the Chinese discovery of the geomagnetic lodestone compass by more than a millennium".[7][8]
미국인 존 칼슨.의 말에 따르면, 기원전 천년 이전에 멕시코만 해변의 올멕스.가 히머타이트. 라는 적철석.으로 나침반용으로 썼다고 주장을 해. 그렇다면 올멕스.가 중국보다 천년이상 빠르다. 고 하지만 머 의미없고.
Among the Four Great Inventions, the magnetic compass was first invented as a device for divination as early as the Chinese Han Dynasty (since c. 206 BC),[1][2] and later adopted for navigation by the Song Dynasty Chinese during the 11th century.[3][4][5] The first usage of a compass recorded in Western Europe and the Islamic world occurred around 1190.
중국에선 기원전 206년 이후에 나침반으로 썼다 자석을 이용해서. 이때는 디비네이션 용도로. 신을 모시는 용도여. 송나라 11세기에 항해용으로 썼고. 서유럽과 이슬람진영에선 서기 1190년 즈음에 사용했다.
나침반.이란게 이 말부터 웃긴데. 羅針盤 한자로 우리넨 저리 쓰걸랑. 저건 조선식 한자고.
指南针,又稱羅盤或司南,是一种用于指示方向的工具,广泛应用于各種方向判讀,譬如航海、野外探险、城市道路、地圖閱讀等领域。
중국애들은 지남침. 나반. 사남. 으로 쓰는데 말야.
方位磁針(ほういじしん)は、磁石の作用を用いて方位を知るための道具である。
일본에들은 방위자침. 호우이지신.
지남. 이나 사남.은 중국애들 고전에 나오는 단어야. 이건 중국말이야. 나반. 라반 이란건 ㅋㅋ. 루오판.이여. 罗盘 간체자여 신라할때 라. 罗马 로마를 루오마. 라 이리 똑같은 한자를 쓰걸랑. 저건 로마 접시여 ㅋㅋㅋ. 더하여 로드스톤 lodestone 의 로드.를 루오 라고 발음 한거라고 볼라고 했는데, 아 이게 애매하네. 중국사에선 유림외사.가 18세기책인데 여기에 라반.이 처음 등장해. 루오스톤을 겸해서 로마 생각해서 라반 할 수도 있겠는데 말야.
골때리는 단어가 조선실록에 등장을 해.
선조실록 129권, 선조 33년 9월 21일 신유 4번째기사 1600년 명 만력(萬曆) 28년
윤근수가 대행 왕비의 묏자리 잡는 일로 아뢰다
그리고 문통이 나경(羅經)이란 것을 꺼내 보여주었는데 마치 우리 나라의 윤도(輪圖)처럼 생겼으며, 단지 더 자세하여 내면과 외면에는 각양의 양식이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말이 이것은 당나라 때부터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감히 아울러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알았다. 이른바 나경이란 것은 책인가, 물건인가? 이 사람과 함께 가 신평(新坪)과 섭정국이 새로 본 자리를 살펴보고 또 연월(年月)의 금기(禁忌)에 대해서도 묻도록 하라."
하였다. 회계하기를,
"나경은 대략 윤도처럼 생겼는데 조금 커서 작은 소반만하였으며, 또 해 그림자를 재는 것도 있었습니다. 신평과 새로 본 자리를 살피는 일은 총호사에게 물어 처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함께 가 살피려면 반드시 먼저 예단을 보내 후하게 대접하고 난 다음에 가야 할 것이다."
하였다.
.
서기 1600년 인데. 이문통 이가 나경. 이란것을 보여줬는데, 윤도 처럼 생겼다. 해그림자를 재는 것도 있다.
윤도 라는게 풍수쟁이들이 갖고있던 나침반이걸랑.
저걸 당나라때부터 전해 내려오던 거란 거걸랑. 중국에 저 나경 이란게 안보여. 아 골때리네 이거. 책이 아니라 물건이걸랑. 야 이거 머냐 이거.
저걸로 풍수로 몇번 써댄게 보이고. 정조때 보이고 안보이는데. 아 저게 머냐. 갑자기 눈에 띄어서 골때리는데. 왜냐면 저 라. 라는 한자는 로마.아니면 쓸 수가 없는 단어걸랑 저건. 저건 반다시 로마.에서 왔다는 거야. 로마진영에서 갖고 온겨 당나라때. 당나라는 하서주랑 통해서 로마랑 만나던 애들이걸랑 얘들이. 분명 이때 갖고 온겨. 비잔틴 로마진영에서든.
윤도.라는 건 바퀴모양 그림.이야. 12간지를 각 방위에 써대고 여기 위에 나침반 바늘을 올려놓는거걸랑. 이문통의 나경.이란게 이 윤도 처럼 생겼다는겨. 당나라때 부터 전해진. 저건 로마 것의 변형임이 분명해. 저기위에 자석 을 올려놓고 썼어 실록을 보니 저 나경.을 갖고. 아 저게 먼지 몰겄다. 나중에 다시 보던 하자.
조선때도 저걸 지남철. 지남침. 패철. 이라고 쓴겨. 풍수쟁이들 지관들이 갖고 다닌겨 저건.
헌데 말야. 지남침.이란게, 아주 오용 해석된 말이야. 이건 남쪽을 가리키다.라는 뜻이 아냐. 위키영어도 모두 이 남쪽방향 가리키는 침.이라고 써댔는데. 우리네도 대부분 이리 알고 있을테고. 아냐 이게.
其察言也不失,若磁石之取鍼;如舌之取蟠骨
귀곡자.가 소진 장의.의 스승이여 종횡가 시조고. 기원전 4세기 사람이고, 책 귀곡자.를 누가 언제 섰는진 몰라. 이 귀곡자.에 자석이야기가 나오는데. 지피지기 이야길 하걸랑. 나를 먼저 아는 것 부터 시작해서 상대를 아는 방법인데, 하나를 제대로 보면 열을 안다는겨. 말을 살펴보면 놓칠게 없다는거야. 상대의 전부는 그 하는 말.에서 다 드러나기 마련이란겨. 어떤 속임수를 쓰던간에. 자석이 바늘침을 취하듯이 혀라는건 반골. 전체 뼈들을 다 취하는 부위란거야. 저 혀에서 나오는 말에서 그 사람이 다 드러나니까 제대로 살피라.
자석이 끌어당기는 이야기가 여기 최초로 나오는겨. 귀곡자가 하튼 기원전 4세기에 한 말로 봐 닝기리. 언제 썼던간에.
밀레토스의 탈레스가 기원전 6세기여. 빨라 서쪽 애들이. 헌데 이걸 방향 탐지기.로 쓴건 중국이 처음이야. 이것도 서양이 서기 1190년 이면, 남북 가리키기 용도지만 하튼간 천년이 앞선겨 이것도. 엄청난겨 이건. 다 천년이야. 화약 종이 가 천년이고. 오잉 이 나침반 방향 쓰임은 훠얼 빨라.
여기서 문제가 머냐면 말야. 저놈의 지남침 하는 남쪽을 가리키는 침.이란 말이 완벽한 오역.에서 나온 말이란거야.
有一种观点认为中国古代记载的“司南”就是指南针最早形式(戰國時韓非子《有度篇》即已出現司南一詞)。东汉王充(公元27~约97)《论衡》(明嘉靖版)卷十七是应篇第五十二说“司南之杓,投之於地,其柢指南”
왕충.의 논형. 서기 80년 즈음에 쓴걸로 보여. 왕망.의 신나라 망하고 후한시작하는 광무제 때 태어난 사람이야. 이사람이 반고 반초 반소.라는 삼반.과 동시대여. 반고 보다 5살 많아. 반초.는 감영 시켜서 로마 보낸거고. 삼반의 아빠 반표에게 배운겨. 집안은 평민이고 돈은 없고 머리는 좋아서 닥치는데로 읽는겨. 이사람의 논형.은 중국 최고의 책 중 하나야. 가장 실증적인 책이야.
왕충의 논형.에서 사남지작, 투지어지, 기저지남. 이란 글자가 나오는겨 이게.
사남.이란 나침반의 손잡이 작대기가 땅으로 떨어져 가리켜. 그 바닥 끝이 남쪽을 가리키다.
저게 애매한 글이야. 사남 이란걸 단지 나침반으로 본거걸랑 저게. 그래서 남쪽을 가리키다 지남침.이 된거고. 이 지남침.을 조선때도 그대로 쓴겨. 지남침 지남철. 나침반이란건 없어 조선실록에. 중국이 로마접시.를 루오판 쓴걸 슬쩍 침 넣어서 나침반 한겨. 참 이런거 보면 진짜 욕 나오는겨 이따위 말장난 단어들 만든거 보면. 세상에 저게 말이 되는 말이냐 로마식 침 그릇. 걍 나반.이라고 쓰던가. 뜬굼없는 나침반은 머여 저게. 걍 일본처럼 방위자침.이라고 하던가. 정말 너무너무너무한겨 저건. 저러면서 저것들 반일놀이나 해대고 중국 위대해 해 대고. 사마천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가니 해대고. 아 증말 너무 끔찍한 땅빠닥이야. 지렁이를 위대하다 모시는 시체파먹는 구데기집단.
司南之杓,投之於地,其柢指南
왕충.의 저 말이 애매한겨 이게. 사남. 이란 말이. 이게 먼지 모르는겨. 나침반 짝대기를 사남이라 한건가?
故先王立司南以端朝夕. 韓非子 有度
이게 한비자. 유도.에 처음 티나와. 고로 선왕.이 사남.에 올라서 단으로써 아침 저녁까지 했다는겨. 단. 이란 말은 당당하게 뻣뻣하고 곧게 서있는 형상이야, 늙은이가 권력 지팡이 집고. 이건 쎄고 높은 말이야. 단지 끝 단 이 아냐. 단오.라는 말이 그래서 정오 중에 최고의 정오 라는게 단오.야. 저 단 이란 말은 귀한 말이야 저건. 조석을 단. 하면서 사남.자리에 올라 서 있는거야.
投之於地,其柢指南 . 저게 웃긴겨. 남쪽을 가리키는거라 사남.이란거야. 이게 대체 먼말이야. 이건 말이 안돼. 저건 세상의 바닥을 남쪽이라 말하는거와 같아. 이건 말이 안되는거야 세상의 기준이 남쪽이란 말이란거야 이건. 이게 말이되냐고.
将司南理解为磁勺从古文献考证及实验方面在学术界一直存有异议。其中东北师范大学教授刘秉正在1956年考证出指南鱼是中国人最早地进行人工磁化的应用,同时也对司南是磁性指南工具提出质疑[3]
이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겨. 사남 이란걸 지남침.으로 같이 쓰는데. 异议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겨. 서기 1956년. 대학교수가. 사남 이란게 자성.이 남.을 가리키는 거냐.에 대한 질의.를 하는겨.
近些年来他进一步提出《论衡·是应篇》以及《瓢赋》中的司南是天上的北斗, 而其它的文献中的司南或指南有的是指南车如《鬼谷子》记载的司南,有的是行事的准则如《抱朴子·外篇·疾谬》中的指南,还有是指官职如《韓非子》中的记载[4]。2005年中国国家博物馆研究员孙机近根据前北平历史博物馆旧藏残宋本《论衡》认定“司南之杓”杓字实为酌,那么看来“其柢指南”之柢也非指勺柄[5]。根据最新的文献考证表明,司南是北斗的别称,同时司南的其他用法也都与北斗有关[6]。此文通过对北魏·温子升《定国寺碑》中“幽隐长夜,未睹山北之烛;沉迷远路,讵见司南之机。”、梁·吴均《酬萧新浦王洗马诗二首》中的“独对东风酒,谁举指南酌”等唐以前文献的分析,认为这些文献中司南只能解释成北斗,而《论衡》,《瓢赋》中的司南也应是北斗
쟤들이 말을 구질구질하게 섰는데. 사남.이라는건 말야. 이전 썰했듯이. 사 라는게 높은말이야. 그래서 관청.의 끝말이 무슨 사.여 옛날엔. 저건 권력 지팡이 쥔 자가 호령하는겨. 사남. 이란건 말이지. 남쪽에 대고 호령하는 자리.인거야. 그래서 머겠니. 저건 가장 정북.의 자리 가장 높은 자리여. 사남 이란건 그래서 북두칠성 이 되는겨 이게. 선왕.의 자리인거고.
司南之杓,投之於地,其柢指南
사남.의 표.가 북두칠성 표.이든 술잔따라주는 작.이든간에. 사남.의 스푼 국자가. 던져 수그려져 땅으로. 그 뿌리는. 남을 가리키다. 남을 가리키다.를 쟤들은 저걸 국자 자루 끝이 남.을 가리키다. 이리 해석해온 거걸랑. 저 뿌리 저.라는 글자를 왜 썼는지 모르는거야 쟤들이. 그래서 작병.이라는 손잡이 쪽으로 보지 않은겨. 사남 이란게 먼지조차 몰랐는데 유물을 발굴해보니까 북쪽의 북두칠성이 사남.인겨. 아 사남.이 북두칠성이구나.
저기서 남.을 가리키다.라는 건, . 국자를 자루 끝쪽이 북두 신인겨. 즉 저기서의 남.이라는 사남.은 머냐. 이건 북쪽이야 북쪽. 사남.은 북쪽이야. 저게 뿌리 저.해서 남쪽을 가리키다 라고 해석한다면 손잡이 끝이 남쪽이고 스푼 국자.는 북쪽인겨. 이리 보면 시선은 남쪽이 아니라 국자스푼이 가리키는 북쪽이야. 나중 복원도 를 보면 바늘침.을 스푼으로 썼어 얘들 나침반이 고대에. 저기서 관심갖아야 하는 방향은 남쪽이 아니라, 북쪽이야. 사남은 북쪽에 있어. 사남은 북두야.
独对东风酒,谁举指南酌 당대 이전에 나온 시. 독대동풍주, 수거지남작, 홀로 동풍을 술로 대하는거야, 누가 북두에서 국자 자루를 들어 남쪽을 향해서 술잔에 부어주려나. 캬 멋진 시인데 말야. 즉 동풍의 바람을 국자로 퍼서 술잔에 담아줄 이 누구 없는가?
사남.이란건 북두.라는겨. 남쪽을 관장하다. 이따위로 본거걸랑 저것들이. 남쪽에 대해서 호령하는 북두의 자리가 사남이야. 지남. 할때도 사남을 향해 술잔을 누가 올려줄 사람 없누? 라고 볼 수 있는겨 저게.
저것도 그래서, 지남 의 뿌리.라고도 본다면 저 국자그릇.의 손잡이 끝이 남쪽 이란거야. 여기서 주 관심 목표는 남쪽이 아냐. 국자 손잡이가 아니라, 술잔을 푸는 스푼모양은 북쪽을 향해 있다는거야. 관심은 북두야 북쪽이어야 하고. 이리 해석을 해도. 아니면 남.이 사남.의 줄임으로 보던가. 이래저래, 가리키는 방향은 남쪽이 아니라 북두 가 있는 북쪽이여. 지남침 이란 말은 아주 매우 잘못된 작명이야.
另外《韩非子·有度》中的司南也应解释成法律,其中的“朝夕”不是方向,而是早晚朝见或君王早晚听政
별외.로 한비자 유도 에 나오는 선왕이 사남에 올라 단.으로써 조석.을 하다 할때도 이들은 조석 이란걸 아침 조 저녁 석 해서리 동과 서.로 보고. 단 이란걸 끝단 어쩌고 말도 안되게 이걸 정중앙 이런 번역해온거걸랑. 야 어찌 이리 무식하냐 그래. 저것도 지금 봤는데 내가 저걸 아까 해석하고 나서. 즉 내 해석대로 이제야 해석을 한겨 저 멍청이들이.
最初,“司南”指测影的表杆。如《韩非子·有度篇》说,“故先王立司南,以端朝夕。”“端朝夕”即正东西,引申为确定东西南北方向。“立司南”来源于殷商甲骨文中的“立中”和战国时的“立朝夕”,它们的意思都是立表以测日影
바이두.를 보면. 이게 저 내용이야. 단 이란 말을 정 중앙. 이리 해석하고. 주석을 동서 로 봤고. 야 골때리 진짜.
사마천 사기 번역 이전 썰했듯이. 저 번역 개판이야 저게. 헌데 내 중국들 번역도 보면. 또옥 같아 저게. 중국들의 사기 번역 수준이 어차피 이 조선빠닥 번역 수준의 천장이고.
아 골때리 저딴 거 보믄.
자기들꺼 조차 번역을 못해. 헌데 우리넨 저런 의문조차 없어. 쟤들은 지금에라도 고치지. 한글 국학하는 애들은 머냐 말이야 이게.
이 얘길 왜 하냐
王振鐸(1911年-1992年),字天木,河北保定人。中國博物館學家、中國古代科技史學家。現存的指南車、記里鼓車、候風地動儀、水運儀象台等實際上都是王振鐸的複原模型。
저걸 20세기에 왕진탁. 왕천뚜오.가 복원을 막 했는데. 저기에 침 대신 국자를 진짜 얹어놨네. 저그림도 보면, 바늘침.을 국자 수저로 올려놓은거걸랑. 저건 남쪽 이 어디냐가 관심이 아냐, 북쪽 사남 이라는 북두.가 관심이야. 어떻게 남쪽이 관심대상이냐.
자성.이 가리키는 방향은 사남 이 자리한 북두 지. 남쪽이 아냐.
이걸 중국애들은, 비록 귀곡자 서술이 탈레스 보다 늦었지만, 자석의 끄는 힘. 북 을 가리키는 방향 용도로 쓴건 저 왕충 논형.인 서기 80년 이 문서로 보이는거고. 이게 아마 유물로 나온게 있나봐 그래서 기원전 206년 이라 위키영어가 쓴듯 하고. 확인하기 구찮고. 하튼 천년 넘게 앞선겨 방위 용으로 나침반을 쓴게.
이걸 항해용 으로 쓴게. 11세기야. 이것도, 활자인쇄 필승.이 했다고 소개한 송나라 심괄.의 몽계필담.에 있는겨. 이사람이 1095년 에 죽어. 1190년 즈음에 서유럽에서 항해로 쓰는거고. 즉 백여년 후에 유럽에선 쓰는거야.
《郑和航海图》(全名《自宝船厂开船从龙江关出水直抵外国著番图》),原载明茅元仪编《武备志》卷二百四十。《郑和航海图》又称《茅坤图》(Mao Kun map)。《武备志》成书于明崇祯元年(1628年),而所收入的《郑和航海图》,据一些学者研究,应该是郑和下西洋时所绘制发给郑和船队上的舟师的航海图,根据如下:
정화항해도. 모곤도. 마우쿤 지도.라고 해. 서기 1628년.에 나온겨.
茅元儀(1594年-1640年),字止生,號石民,又署東海波臣、夢閣主人、半石址山公,浙江歸安(今浙江吳興)人。明代军事家,文學家茅坤的之孫。茅國縉之子。
모원의. 가 서기 1621년.에 편집해서 1628년.에 출판을 한겨. 할아버지.가 모곤. 마오 쿤.이야. 모곤.이 갖고 있던걸 손자가 명나라 군사학 백서.인 무비지.란 책을 편찬을 할때, 자기 할배의 지도를 넣은거야. 정하의 원정때의 항해도로 봐 이걸.
Zheng He (Chinese: 鄭和; 1371 – 1433 or 1435) was a Chinese mariner, explorer, diplomat, fleet admiral, and court eunuch during China's early Ming dynasty. He was originally born as Ma He in a Muslim family, and later adopted the surname Zheng conferred by Emperor Yongle.[2] Zheng commanded expeditionary treasure voyages to Southeast Asia, South Asia, Western Asia, and East Africa from 1405 to 1433
정화하서양. 이라는 정화 원정이 서기 1405-33. 28년 간 수차례 다녀오는건데. 이전 썰.
学者徐玉虎更将《郑和航海图》绘制的时间,定为1425年至1430年间。原因如下:
학자들은 이게 저 말년 항해기간때 이 지도를 제작한걸로 봐. 저게 건너건너서 모곤.에게 갔다가 2백년 만에 세상에 드러난거야. 이 정화원정이 기록이 대부분 사라졌어 이게. 중국들이 저당시 다 지들이 지운겨. 실록에만 몇자 있고. 귀한거지 저게. 저 아무 의미없는 정화원정. 오히려 저걸로 명나라는 바다를 금지해 ㅋㅋㅋ. 참 골때리는 애들이야. 오직 조공받기 위한 원정. 경제는 조공 무역. 중앙에서 콘트롤 하는 경제 란건 그건 시장을 죽이는겨.
South and West Asia[edit]
Some of the places marked include Bengal (榜葛剌), Orissa, Sri Lanka, Kollam, Calicut, Hormuz, Oman.
Africa[edit]
The east coast of Africa is shown in sections of the map with Sri Lanka and India with its land mass at the top of the map and the Maldives in the middle. Places such as Mombasa (慢八撒), Barawa (卜剌哇), and Mogadishu (木骨都束) are marked on the map. Other locations identified include Lamu Island, Manda Island, and Jubba and Marka in Somalia.[15] What appears to be Malindi (麻林地) is shown in the wrong location to the right of Mombasa, and it has been suggested that this Malindi was meant to represent Mozambique or Kilwa Kisiwani in Tanzania
여기 지도에서, 남아시아 벵갈. 오릿사. 스리랑카. 콜람 캘리컷. 걍 인도 벵갈만에서 주욱 동쪽 해안이랑 끝 돌아서 콜람 캘리컷 찍고 걸프만의 호르무즈.에 사우디아라비아 반도 끝 오만.에 이어 홍해로 가서 소말리아 모가디슈.에 요 아래 케냐 까지 지도에 찍혀. 저기서 말린디.가 어딘줄 몰라서 의견이 갈려. 케냐 까진 간것 같은데. 이 캐냐 아래 탄자니아.에 모잠비크 까지 갔는가. 이게 의견이 갈려. 맞은편 큰섬 마다가스카르.는 안간듯 하고.
이 기록을 저 지도로 보는겨. 기록이 없어 이게 얘들이. 미개한거야 중국이라는건. 리터러쳐 를 안남기고 없애버리는건 그만큼 미개하단 거야. 즉 쟤들은 명때 신권 세속권의 완벽한 일치야. 주원장의 어록과, 유교 가 짱이고 주자 해석만 짱이고 이걸로만 시험을 치루어서 행정직이 되는게 유일한 삶의 길이야. 다른 리터러쳐는 의미가 없는겨. 이게 그대로 지금 모택동이 대체된거고, 이따위 중국을 빨아대는게 이 조선민국 인건데 말야.
The sailing instructions are given in compass points and distances – the compass point uses a 24-point compass system with a Chinese character denoting each point (each point further subdivided into three), and the distance is expressed in Chinese units of time (each unit a 2.4-hour period) that would take account of the local currents and winds.[1] Most of the instructions are only given in one direction, although occasionally both the outbound and homeward voyages may also be given
이 지도에서, 나침반.을 쓴게 보이는겨. 24개 방위로 표현해서.
얘들은 이게 다야.
나침반.을 방향 용으로 만 쓰는 걸로 또한 끝났어.
얘들은 참 무지한게. 대체 나침반 이란게 왜 엄청난 발명품 인가에 대한 이해가 없어.
이 사학계.가 조선과 중국을 보면 정말 참으로 끔찍한 수준이걸랑 이게.
나침반.이 방향 용으로 쓰여서 저게 대단한 발명품 인줄 알아 얘들 역사 서술은.
저게 무슨 의미가 있니 방향용으로 내가 지금 동쪽으로 북쪽으로 쫌만 더 가면 되겄다. 야 그따위는 나침반 없어도 돼.
세상 이야긴 모두 이놈의 나침반에서 나오는겨. 화약에 더해서.
헌데 말이야. 얘들은. 화약이든 나침반이든 종이든, 천년을 먼저 만들고도, 저어어언혀 그 이상을 못간거야.
유럽애들이 화약을 칭기스칸 애들 무리로 알게되었다는 기록은 없어. 로저 베이컨이 그런 말을 안써. 그냥 폭죽놀이 했다 란 기록밖에 없어. 몰라 이걸. 영향이 거의 없어. 상관이 없어 화약은. 저 무지한 게르만들이 하이미들 지나고서 바로 만든게 화약이야. 스스로. 이어 바로 엄청난 발전을 이뤄. 진보 란 단어를 내가 쓰기가 싫어. 진보 란 애들 치고 진보적인 벌레 하나 못봤걸랑.
종이는 슬람이가 받아서 준거야. 종이를 알고, 삼백여년 후에 구텐베르크 가 활자인쇄 만들면서 바로 서유럽은 책의 세상이 돼. 천년 전에 종이 만든 극동은 자기들만의 코트에서 찍어대 책을. 이게 또한 일본 은 예외야. 참 싕기한 애들이야 이 일본 이란 쪽빠린. 신권 세속권이 막부애들 부터 깨부수기 시작한거걸랑. 이 일본얘긴 나중에 하고. 이 관점으로 일본사를 논하는 애들 단 하나 없을텐데. 저 일본사 보는 애가 내글 보면 확 깨일텐데 말이지. 쟤들은 이렇게 볼 수 없어 역사를.
나침반.을 방향 용도로 유럽이 중국에서 슬람이 통해 받아썼던 말던. 쟤들은 천년 먼저 사남 이란 북두를 가르키는 나침반을 쓴겨. 유럽은 몰랐어 저걸.
헌데 말야. 저따위 방향 가리키는게 중요한게 아냐 저게.
이 이상의 엄청난 이야길 한 인간이. 저놈의 윌리엄 길버트 인겨. 여기서 전기.가 나오는겨 저 마그넷 의 원리를 실험하고 추정해서 가설화한게. 여기서 전자 라는게 끄집어내져 이게.
이건 다음으로 미루고 말야
저게 유럽애들이 탐험의 시대.가 열리고 적도 아래쪽을 가게 되는겨. 저건 복각 이야기.로 나오는겨. 이 복각에 대해서 설명하는 걸 못봤는데 아 당췌 참 난 이해가 안가.
저건 말야, 적도 이남을 가지 않았으면, 윌리엄 길버트.의 이야긴 없어. 즉 이전 로버트 노르만.이 이 복각을 끄집어내걸랑. 이사람은 바다를 다닐 수 밖에 없는 선원이야. 이게 먼가 다른겨 적도 위와 적도 아래가.
이런 경험.을 중국 들은 못한거야.
오직 단하나. 정화 만 1433년.을 마지막으로 유럽애들보다 유일하게 먼저 단 한번 저때 막판 여행기에서 다녀온 경험이 다야. 그리고 명나라 바다는 해금. 닫치는겨.
항해를 하면서 의문이 생길 수가 없는 애들이 된겨.
온갓 바다 북과 남 끝들을 돌아다니면서, 벼라별 자연현상을 겪는 경험.은 유럽애들이 유일한 거걸랑 이게.
여기서 의문이 생기고, 이걸 받아서 대륙에 처박힌 바다와 전혀 관련없는 사람들이 연구를 하고, 이걸 받은 바다의 현장에서 자기의견을 다시 내, 팁을 받아 팁이 되고 팁이 팁이 되서 그래서 나온게, 지금의 전기.인거야. 전기 란 말은 마그넷.이라는 자석.이라는 나침반 연구에서 나온겨 이게. 그 시작은 저 바다의 선원들인거고.
그리고 저기서 양자역학이 시작이 된겨.
이걸 중국애들은, 할 수가 없는겨. 의문이 나올 수가 없었고. 생각할 여지도 없었고. 유럽애들 저 개무식했던 게르만들이 이걸 해낸거야 저 어처구니 없는 무식했던 게르만이. 신권 세속권 분리가 되면서.
이런 일들을 절대로 동양 빠닥에선 할 수가 없던거야. 이런 생각이 나올 수가 없던거야. 질문이 없고 의문이 없는 땅빠닥. 오직 대깨문 식이야. 대가리가 깨져도 유교 대가리가 깨져도 조선. 여기엔 다른 생각은 적폐 가 되는겨 이게. 다른 생각 하면. 죽어 죽어. 이게 고대로 조선의 연장선인데. 저 중국이나 이 땅빠닥이나.
참 지들 스스로 대깨문 이요. 해대며 자랑스러워하는게. 저건 정말 기괴한거야.
다음으로 넘기자.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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