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fred North Whitehead OM FRS FBA (15 February 1861 – 30 December 1947) was an English mathematician and philosopher. He is best known as the defining figure of the philosophical school known as process philosophy,[21] which today has found application to a wide variety of disciplines, including ecology, theology, education, physics, biology, economics, and psychology, among other areas.  

 

알프레드 노어쓰 화이트헤드. 프로세스 철학.에서의 상징적 인물이야. 이사람은 Ramsgate 렘스게이트 출신이여. 켄트.여 캔터베리 대성당 이 있는.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 수학 전공자여.

 

In 1880, Whitehead began attending Trinity College, Cambridge, and studied mathematics.[33] His academic advisor was Edward Routh.[1] He earned his BA from Trinity in 1884, and graduated as fourth wrangler.[34]  

 

1880년. 나이 19세.에 입학해서. 1884년. 23세에 졸업을 해. 4등 랭글러. 랭글러.라는게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학부 수재들.에게 주는 자리야. 전체를 1등급 수재들에. 2등급 을 상하.로 나누고, 3등급이 있고 나머진 걍 보통.이야. 1등급 애들중에서 전체 4등.을 했다는겨. 

 

수학이야 수학. 있잖니. 수학을 못하면, 인문학자 들조차 마이크를 잡으면 안돼. 

 

수학적 사고 가 없으면 걘 미개한 애야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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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에서, 화이트헤드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어. 과정철학이 먼지도 모르고. 걍 모두들 아는척 아는체. 서양철학 이해하는 색끼 단 하나 없다는데 내 코털먼지 건다. 

 

우리네는 쟤들의 리터러쳐를 이해할 지능이 된 애들이 인문학엔 없어.  내 아주 확신을 한다.

 

 

 

 

Process philosophy — also ontology of becomingprocessism,[1] or philosophy of organism[2] — identifies metaphysical reality with change. In opposition to the classical model of change as illusory (as argued by Parmenides) or accidental (as argued by Aristotle), process philosophy regards change as the cornerstone of reality—the cornerstone of being thought of as becoming.

 

프로세스 철학. プロセス哲学(プロセスてつがく) 일본애들은 프로세스 테스가쿠.라고 프로세스 라고 해. 저걸  과정철학 그러면 먼말이냐. 프로세스가 과정이니. 일본애들한테 좀 배워라 배워. 걍 프로세스 해 뭔 과정이니.

 

화이트헤드 왈 서양철학은 플라톤 이후 2천년간 플라톤의 푸트노트. 주석이라 했걸랑. 플라톤의 이데아.나 모든 그리스도 신학.이나 다를게 없어. 플라톤의 이데아.가 그리스도가 승천했는지 하는 저 파라다이스.에 하늘의 킹덤이여. 단지 내용이 다른 것일 뿐이고. 붓다가 진입해서 살고있는 정토.의 내용이 대무량수경. 관무량수경.에 자잘하게 나오고, 그 축약본이 불설아미타경 일 뿐이고. 저기 가려면 이 변화속의 이땅에서 어드래 살면 저기 감 둥 해대는거고 서로들.

 

리앨리티.는 이데아.에 있는겨. 진짜 리앨리티.가 이데아.여. 이건 불변.으로 본거야. 디자인 이 다 되었어 이게. 어떤 세계인지. 단테는 이 파라다이스.를 구층으로 나누는거고. 저건 저 상태에서 불변.이야.

 

이 시작.이 소크라테스 이전.에 파르메니데스.야. 엘레아의 파르메니데스. 엘레아의 제논.의 엘레아. 엘레아 학파 시작이야. 플라톤의 이데아.의 조상님이셔 이분이. 체인지. 변한다는건 저건 허상이란거야. 움직인다는건  빈 공간으로 가는건데 빈공간 이란건 낫띵. 아무것도 없음.이란 거걸랑. 낫띵 이란 없어. 낫띵에선 낫띵 이야. 낫띵 에선 에니띵도 안나와. 이게 이들, 아웃오브 낫띵 낫띵 컴즈. 낫띵에선 낫띵 밖에 안나와. 세상엔 낫띵이란 없어.

 

이게 그래서 말야. 그리스 숫자.에. 제로. 영. 이 없었던겨. 이전 제로.이야기 기억할리 없지만서도. 대체 없다는게 뭔말이야 이게. 제로.란 말이 대체 먼말이냐고. 아무것도 없다는게 머냐고 이게. 제로 라는 말 만큼 괴상한 말이 없는겨 이게. 그래서 단지 고대이집트.는 시작하는 1.의 받침. 자리채우기 용도.로 제로.를 사용한거걸랑. 

 

지금 현대문명.은 저 제로.라는 연역적 개념의 출발에서 나온겨. 넘어가고 이말 할라는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 체인지를 액시덴탈 로 봤어. 이건 머냐면. 먼가 일어난 현상.이야. 액시덴탈 이란건. 단지 허상이 아니란겨 파르메니데스.나 플라톤이 그림자 처럼 취급하는 건 너무 야멸찬겨.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빠닥의 안이비설신의 로 느끼는 것들을 그림자 허상으로 취급하면  대체 어쩌자는겨 이거. 아리스토 형은 이데아를 무시하는게 아냐, 이데아는 이데아고. 퓌시스, 휠레. 라는 이 액시덴탈 한 것들도 제대로 봐야 하지 않겠냐 하는 거걸랑. 체인지 라는 변화.에 의미부여를 한게 아리스토 형이야. 그래봤자 알렉산더 형이 졸 개무시하는 아리형 존재감이고.

 

process philosophy regards change as the cornerstone of reality—the cornerstone of being thought of as becoming

 

화이트헤드 들은. 변화.를 실재.라는 리앨리티.의 코너스톤. 코너에 박는 돌 수준으로 보는겨. 집 지울때 코너별로 주춧돌에 축대를 세워야 건물 올리잖오. 변화. 그 자체가 실재.의 축대 라는겨. 변화 없는 실재.라는건 개소리 라는거고. 

 

존재.라는건. 고정불변의 상태. 고정불변의 디자인에서의 내용들.이 아니라, 비커밍. 먼가 계속 되어가고 있는 것.이 존재.라는겨.

 

저게 칼융의 심리학이야 또한. 인간은 그 태어난 스냅샵 직전후 만 보는게 아니라, 이전 수천년 수십만년의 것에서 나온 후예. 옷 끝자락 일 뿐이니 그 바닥을 다 봐야 인간이 이해되고, 따라서, 인간의 역사.도 그렇게 쓰여져야 한다. 는건 내 말이고. 이게 나만의 사유사. 사유의 흐름으로 보는 세계사.여야 하고 모든 나라들 각각의 국사 여야 해. 우리넨 이게 전혀 안되어있고. 그래서 저따위 돌대가리 가 조선 이여 위대한 민족이여 해 대는 이 기가막힌 시절을 지금 이 조선들의 땅에서 보는 현실이고. 저따위가 선생이야 저따위가 교수고 저런 따위가 거대한 정신의 천장이야 쟤들의. 이 조선 애들의. 

 

정말 끔찍한건데.

 

저런 인간이 자기 생각을 책이든 머든 표현을 하는건 자유야. 헌데 말이야. 저런 수준을 공중파로 알리는건 정말 이건  심각한겨 이건. 저런 인간과 권력의 대빵이 대담을 하고 말야. 이건 말도 안되는겨. 그만큼 이땅 지식층.이 너무나 무지한거걸랑.

 

저런 짓은 연쇄살인범의 연쇄살인보다 천만배 더 나쁜 짓이라고 나는 생각해. 저건 아주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확 죽여버리는 짓이걸랑 저건. 저게 그대로 이어지고 이어져서 아이들이 그냥 하얀 도화지가 검께 색칠이 되는겨. 심각한겨 저건. 

 

나야 내가  저따위 애들 아무도 모를때 서점 가서 내가 찾아서 내 스스로 읽어서 모든 건 내 탓이지만 말야 그래서 쟤한테 머라 하고 싶지도 않아. 내가 선택 한 거걸랑. 나한테 드리워진 시커먼 집단무의식에 자유의지가 어느정도 작동된지 모르겄지만 어쨋꺼나 내가 전적으로 선택해서 본 것이라 모든 건 내 탓이지만

 

저걸 방송을 보고 권력과  하는 걸 보게 하는건 전혀 다른 문제야. 

 

머 누굴 무엇을 탓하겟어. 이따위 조선 반도에 사는 것 자체가 원죄라면 원죄일까.

 

From Old French mathematique, from Latin mathēmatica (“mathematics”), from Ancient Greek μαθηματικός (mathēmatikós, “fond of learning”), from μάθημα (máthēma, “knowledge, study, learning”). 

 

매쓰메틱스.라는 수학.이라 번역되는 건, 그 자체가 그리스말이야. 마떼마티코스. 마떼마.가 지식. 배움. 이란게 배워진 것.이고. 마떼마티코스.라는 메쓰메틱스.는. 배워진 것과 관련된. 지식과 그 근처들.의 합이여 이게. 

 

수학이란게 짐승과 인간을 가르는 가장 큰 분기점이야. 

 

세상의 천재들은, 그래서 수학.과 물리학.에 다 몰리는거고. 

 

내가 이 인간사.를 수학적으로 푸는 유일한 거고. 화이트헤드.는 자기의 수학으로 철학을 본거고. 나는 수학으로 철학에 더해 인간의 역사.를 지금 푸는건데. 이게 내가 만든 사유사.야. 사유의 세계사. 사유의 빨대구멍으로 보는 세계사.

 

  • Adventures of Ideas. New York: Macmillan Company, 1933. Also published b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33.  

이 사람이. 과정과 실재.를 서기 1929년.에 쓰고 4년 후에 쓴 책이 어드벤쳐스 오브 아이디어스.야. 우리말로 관념의 모험. 이리 번역이 되었는데. 사유의 모험.이야. 사유들의 모험들. 72세.에 쓴겨

 

내가 저책을 파릇파릇 스물두살때, 도서관의 영어원서를 구해서. 일일이 다 카피를 해서. 그걸 봤걸랑. 왜냐면, 번역한 책이 암호걸랑. 어떤 서양책이든 안그런게 어딨겠냐만.

 

저 책 이야길 할 시간은 없고. 

 

책 제목  잘 쓴거야. 인간의 역사.는 사유의 모험.의 역사야. 이 자체야 이건. 누가 더 사유의 모험을 더 해서 더 깊게 더 밀도있게 사유의 새를 날렸는가.가 그 시대 문명의 수준을 결정하는 결정적 잣대야. 

 

이게 그대로 보이는게, 리터러쳐 라는겨 literatures. 

 

그 시대 그 나라의 리터러쳐.를 보면. 그나라의 문명 수준을 측정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물론 나만의 이야기지. 누가 이런 이야길 하는 걸 난 보지를 못했어. 저걸 추상적.으로 이야기 한게 화이트헤드.의 사유의 모험 이란 책이야. 저건 오직 나 만이 해석해 줄 수 있어 이 땅에선.  쉽게. 

 

내생각이 그렇다는데 머 어쩔겨 니덜이.

 

이땅 인문학 만큼 사기꾼의 나라는 없어 이게. 벌레들이 위인대접 받고 뒈지는 땅빠닥이니.

 

제레미 다이아몬드 의 총균쇠.니 닐 퍼거슨의 문명이니, 이언모리스 의 전쟁의 역설이니 왜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는가 어쩌고 전에. 

 

왜 왜 왜 서양애들이 총균쇠.를 다룰 만큼 저런 문명이 되었냐는겨. 그게 단지 지리적 요인이냐 그게. 

 

그래서 또는 다른 요인으로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고 곧 머지않아 중국의 동양이 서양을 지배할거라느니.

 

유치한 소리 말아라. 

 

저건 사유야 사유. 사유의 모험.의 정도의 차이야. 

 

내가 저걸 항진명제.로 쓰면서 지금 글을 천여개를 써온건데 말이야. 그러면서 다시 저 명제로 돌아온거걸랑. 

 

저걸 지금 시점에서 확인 해 보려는건데. 게르만 애들 신과 세속의 분리 이야기 하다가 저 라인강 동쪽 게르만애들이 그래서 제대로 보이면서 정리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야.

 

저 셋.의 말은 근본적이지 않아. 그렇다고 저 셋이 지금 보면 유럽사 애들 중에 주류들도 아냐 저게. 오히려 우리가 모르는 지금 역사학자들이 수두룩 해. 쟤들은 메인 세력의 엔분의 일 이거나, 듣보잡이야. 우리는 그나마 번역이 된게 저 셋 인거고.

 

 

사유의 모험.의 정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리터러쳐.들을 보면 말야. 이 중에. 우리가 흔히 철학.이라 부르는 리터러쳐.를 보자고.

 

독일 철학.의 시작을 누구로 보는 지 아냐?

 

German philosophy, here taken to mean either (1) philosophy in the German language or (2) philosophy by Germans, has been extremely diverse, and central to both the analytic and continental traditions in philosophy for centuries, from Gottfried Wilhelm Leibniz through Immanuel KantGeorg Wilhelm Friedrich HegelArthur SchopenhauerKarl MarxFriedrich NietzscheMartin Heidegger and Ludwig Wittgenstein to contemporary philosophers. Søren Kierkegaard (a Danish philosopher) is frequently included in surveys of German (or Germanic) philosophy due to his extensive engagement with German thinkers.[1][2][3][4]  

 

곳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가 독일 철학의 시작이야. 졸 웃기게도.

 

Gottfried Wilhelm (vonLeibniz (sometimes spelled Leibnitz) (/ˈlaɪbnɪts/;[11] German: [ˈɡɔtfʁiːt ˈvɪlhɛlm fɔn ˈlaɪbnɪts][12][13] or [ˈlaɪpnɪts];[14] FrenchGodefroi Guillaume Leibnitz;[15] 1 July 1646 [O.S. 21 June] – 14 November 1716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곳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이사람이 서기 1646년 생이야. 독일 땅 30년 전쟁 직전에 태어난겨. 이 사람부터 독일 철학의 시작인거야 이게. 

 

라이프니츠.가 투링기아 작센안할트 접하는 바로 오른쪽 작센이 있는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겨. 오른 아래쪽 드레스덴 의 엘베강이 이리 흘러서 작센 안할트로 들어가. 이 왼쪽이 고원지대 투링기아고. 독일땅 30년 전쟁으로 전체인구의 20퍼가 죽었다고 하는데, 태양왕 루이.가 이제 다 크고, 라인강쪽으로 호시탐탐 노리는겨. 그 시작이 상속전쟁.이란겨. 오른쪽 스페인 네덜란드.인 벨기에 땅을 먹으려 한겨. 이미 네덜란드.는 독립한거고. 벨기에땅을 스페인네덜란드.라고 해. 

 

태양왕 루이.는 마스터플랜.을 초기에 잡아. 자기들 경제적 이익을 위해 스페인 네덜란드.에 라인강 을 전쟁으로 가져와야 경제가 사는 걸 정답으로 간주하고 이걸 평생 하는겨 전쟁을. 상속전쟁 후에, 신성로마진영이 힘들어하는겨 쟤 저거 30년 전쟁 끝난지가 언젠데, 다시 쳐들어오는거 아닌가? 이때 라이프니츠.가 작센 선제후 땅 라이프치히.걸랑. 어느덧 20대 중반이 된겨. 얘가 작센 선제후의 두뇌가 돼. 프랑스 루이.를 꼬셔. 너 그러지 말고 이집트 먹고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먹어서 인도양으로 가라고. 이거에 혹 해 루이가. 라이프니츠.를 파리로 불러.

 

이때부터 라이프니츠.가 파리.를 알게되고, 세상을 알게되는겨. 작센 선제후 친척 외교사절단을 에스코트하면서 런던.에 가서 런던의 학자들을 만나. 

 

라이프니츠.가 파리와 런던을 저때 다녀오면서, 자기가 무식하단 걸 깨달아. 이때부터 라이프니츠.가 된거야. 이사람을 최종 스폰해주는 사람은 하노버 가문의, 제임스1세.의 시집간 딸의 딸 소피아.고 그 딸이야. 이 모녀가 라이프니츠.를 스폰하는겨. 그래서 라이프니츠.가 된거야. 

 

 

독일 철학은. 이 라이프니츠.로 사작을 해. 여기서 크리스티안 볼프.에 칸트 에 헤겔 로 이어지는겨. 

 

이 라이프니츠.가 말야,. 끽해야 서기 1646년 생이여.

 

 

이 독일.의 사유의 흐름이 이정도로 늦었던거야 이게. 

 

프랑스 철학은 아벨라르.로 시작하는겨. 엘루이즈.의 남자 피에르 아벨라르. 이전 두세번 언급한.

 

French philosophy, here taken to mean philosophy in the French language, has been extremely diverse and has influenced Western philosophy as a whole for centuries, from the medieval scholasticism of Peter Abelard, through the founding of modern philosophy by René Descartes, to 20th century philosophy of scienceexistentialismphenomenologystructuralism, and postmodernism.  

 

Peter Abelard (/ˈæb.ə.lɑːrd/LatinPetrus Abaelardus or AbailardusFrenchPierre Abélard, pronounced [a.be.laːʁ]; 1079 – 21 April 1142)  

 

아벨라르.가 서기 1079년 생이여. 낭트 출생이여. 루아르 강 하류에 위에가 브르타뉴. 브리태니여. 켈트들의 땅. 브리튼 애들과 오히려 가까운. 저 브르타뉴.란게 프랑스 땅에서 웃긴 지역이여 저거가. 저게 프랑수아1세때에서나 프랑스에 들어오는겨 저게.

 

데카르트.가 (1596–1650). 라이프니츠 태어난 직후 에 죽어. 대륙엔 데카르트가 있으면 영국엔 아이작 뉴턴.이 있다고 했어. 이사람이 1643년 생이야. 라이프니츠 보다 세살 많지만, 라이프니츠를 아이작뉴턴.에 비할 수는 없어. 

 

잉글랜드.라는 나라가 엄청난 나라야. 저 철학사 를 보더라도. 그 밑에의 리터러쳐.를 보더라도. 왜? 카이사르 이후 고대로마가 직접 여길 왔걸랑. 프랑크 애들이 갈리아 점령해서 로마를 배우듯 잉글랜드땅에 앵글족 작센족 애들이 브리튼의 고대로마를 배우고 7왕국 체제로 또한 서로 경쟁.을 한겨 여긴. 독특하게도. 프랑크 킹덤.은 나중에야 갈라서서 샤를마뉴가 다시 통일한거고, 저긴 칠 왕국.을 중심으로 여럿이 갈라서서 살다가 이걸 알프레드 대제가 통일하는거걸랑 이게. 이 힘이 또한 더 쎈겨. 여기에 다시 노르망디 윌리엄.이 넘어와서 바이킹이 노르망디 노르만이 되서 늦게 익힌 로마에 그리스도 받은 놈들이 잉글랜드 의 킹이 된겨. 저 잉글랜드 란 땅이 아주 독특한겨 저 끄트머리에서. 이게 대륙애들과 달라 이런게.

 

잉글랜드.는 서기 597년에 교황 그레고리1세.의 사명으로 캔터베리.로 재시작한거지만, 이미 이전 사오백년의 로마역사가 있는 땅이야 여기가. 오히려 얘들이 바다건너 프랑크 킹덤애들의 미개한 그리스도.를 선교해해줘. 로마 교황진영은 여길 올 힘이 없어. 사방이 게르만이라. 로마 교황진영은 게르만이 아녀. 저긴 고대로마부터 로마시민들의 땅이여 저게. 이탈리안이야 쟤들은. 게르만이 아녀. 뿌리가 전혀 달라. 이탈리아는 프로토 이탈릭.이고 게르만들은 프로토 게르마닉.의 가지들의 가지들의 모임일뿐이고. 시조가 전혀전혀 다른겨 얘들은. 같은 인도유러피안 이지만.

 

서양의 본격적인 사유의 시작은 말야, 스콜라 철학이야. 

 

Scholasticism was a medieval school of philosophy that employed a critical method of philosophical analysis presupposed upon a Latin Christian theistic paradigm which dominated teaching in the medieval universities in Europe from about 1100 to 1700. It originated within the Christian monastic schools that were the basis of the earliest European universities.[1] The rise of scholasticism was closely associated with the rise of these 12th and 13th century schools that flourished in ItalyFranceSpain and England.[2]  

 

스콜라스티시즘.이야. 스콜라리즘이 아냐. 서기 1100년 으로 보는데. 이 시작이 저 프랑스 낭트.의 아벨라르.여. 이 아벨라르.즈음 부터 본격적으로 보면 돼. 이게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잉글랜드.에 퍼진겨.

 

저기에. 독일땅.인 신성로마제국.은 없는겨 이게. 멍청한 미개걸랑 아직. 오직 고대로마.를 겪은 땅에서만 스콜라스티시즘.도 생긴거야. 이게 당연한거야 이건. 

 

 

 

Anicius Manlius Severinus Boëthius,[a] commonly called Boethius[b] (/boʊˈiːθiəs/; also Boetius /-ʃəs/; c. 477–524 AD)

 

아니키우스 만리우스 세베리누스 보에티우스. 보이띠어스. 보이셔스.라고 부르는데. 철학의 위안.을 쓴 사람이여. 오도아케르 킹덤때 로마.에서 태어나서. 오스트로고쓰 킹덤때 파비아에서 죽어. 게르만이 아니야. 로마 사람이야. 스콜라의 가장 조상으로 봐.

 

Saint Isidore of Seville (/ˈɪzɪdɔːr/LatinIsidorus HispalensisSeville, c. 560 –  Seville, 4 April 636), was a scholar and, for over three decades, Archbishop of Seville. He is widely regarded, in the oft-quoted words of the 19th-century historian Montalembert, as "the last scholar of the ancient world."  

 

고대시대의 마지막 학자. 세비야의 이시도루스. 비지고쓰족 킹덤이여. 고대로마 였던 곳이야 저 스페인땅이. 이전 카르타고.에 페니키아 해변도시였고.

 

 

 

스콜라학파.의 이름들 하면 대표적인게 토마스 아퀴나스. Roccasecca 로카세카. 로마 바로 옆이여. 도미니칸 수도회. 오컴의 윌리엄. 잉글랜드여. 오컴이즘.이란게 따로 있어 이사람 이름으로. 유일하게 보이는 독일땅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이사람은 뮌헨 왼쪽 위 라우잉엔 사람이야. 헌데 역시 공부하러 간 곳은 볼로냐 대학에 바도바 대학, 이탈리아에서 공부한겨. 

 

저들이 모두 이탈리아.에 프랑스.에 잉글랜드.여. 스페인땅 비지고쓰킹덤에 있었고. 

 

이 고대로마.를 무시할 수가 없어 이게. 이게 가장 중요한겨. 저 사유의 관점에서. 

 

독일땅은 저게 없는겨. 계속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가장~~늦어  여기가. 가장~~ 무식해 여기가. 그래서 마르틴 루터 따위 말에 렬렬하게 노는겨 영주들은 잘 활용하는거고. 선동하기 좋은 땅이야. 히틀러 말 한마디로 부들부들 떠는 애들인 거고. 무식 할 수록 저따위 전체주의.가 득세하고 하기가 쉬운겨. 이 조선반도 처럼. 저 중국처럼. 

 

아, 정말 어찌 할 수 없는 저 역사의 무겐데 말야. 

 

저런 데서, 라이프니츠.가 라이프치히 에서 천잰줄 알고 영재 놀이 했다가, 파리 런던 에서 지식인 애들 만나면서, 그제서야 라이프니츠.가 된거야. 여기서 칸트 헤겔 이 나오지만, 또한 칸트.도 저게 독일 땅이 만든게 아냐. 저 저 구석탱이 프러시아 십자군 시작인 곳에서 나온겨 이놈의 칸트란 인간은. 헤겔이란 인간은 슈투트가르트 출생이여. 여기가 스와비아.의 중심이고. 독일땅은 라인강 상류.에 옆 알자스.에 접한 스와비아 슈바벤.이란 이곳이 만든겨 이게. 여기가 프리스피릿.이고 농민전쟁의 이전 업퍼라인.의 반란운동이 여기여. 여기서 호헨졸레른 가문이 시작해서 프러시아 킹덤을 만든거걸랑. 

 

칸트의 저 프러시아 지금 칼리닌그라드.도 웃긴겨. 폴란드에 들어간 게르만이야. 폴란드가 노벨상이 19개인가 그래. 골때리는겨 이 폴란드가. 칸트가 독일땅에 잇었으면 칸트가 될 수 없었어. 저기서 슬라브 진영에 발트 해변에 있어서 칸트가 된겨 저게. 여하튼 늦은 게르만이 저때서야 생각이 트이기 시작한거야.

 

스콜라.는 독일땅 지분이 거의 없어 이게. 그나마 있어도 이탈리아에서 배운 애들이야.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14세기 라지만, 이미 이전에 다 여기 이탈리아에 와서 배울 애들은 배우러 온거고. 다른 애들은 각 지역에서 고대로마의 것들이 저때서야 자기들끼리 복습하고 보면서 깨닫는거야 저게. 그러면서 이탈리아를 드나든거고 저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서로  돌아다녀 저 게르만애들이.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이탈리아에 볼로냐 대학이 서면서 모든 영지의 인간들이 들어오는 종합대학이 들어서는겨 파리 잉글랜드 스페인땅에도. 

 

헌데, 독일땅 게르만은 늦어 저게. 고대로마 경험이 없어 쟤들이. 제~일 늦어.

 

 

The Matter of France was one of the "Three Matters" repeatedly recalled in medieval literature. It was contrasted with the Matter of Britain, the legendary history of Great BritainBrittany and King Arthur; and the Matter of Rome, which represented the medieval poets' interpretations of Ancient Greek and Roman mythology and history.[1] The three names were first used by the twelfth-century French poet Jean Bodel, author of the Chanson de Saisnes, a chanson de geste in which he wrote:

Ne sont que III matières à nul homme atandant,
De France et de Bretaigne, et de Rome la grant.
"With only three matters should man concern himself:
Of France, and of Britain, and of Rome the great."[2]

 

저 이전의 리터러쳐.들을 보면. 프랑스.의 중세 초기.의 리터러쳐.들을 뜨리 매터스.라고 해. 이건 13세기 초에 프랑스 사람이 만든 단어야. 사람들은 프랑스, 브리튼, 로마. 와 관련된 세가지 매터들.이야기들. 소재들.에 관심갖아야 한다.

 

Bertrand de Bar-sur-Aube 프랑스 시인, 베트란드 바쉬우브. 1215년. 에 쓴 말이야

 

저게 모두 프랑스 에서 프랜취.로 나오는 리터러쳐 들이야. 

 

프랑스 매터.는 샹송 드 제스트. 업적들에 대한 샹송. 노래여. 에픽 서사시여. 카를 마르텔, 샤를 마뉴, 경건 루이 시절 이야기고. 브르타뉴 매터.라는게 아서왕 킹아서 이야기여. 이 아서왕과 기사들의 이야기 저작자는 이게 프랑스여 프랑스. 이전 썰했듯. 먼머쓰이 제프리.가 브리튼의 역사.로 킹아서 캐릭을 등장시키지만, 이후 기사들의 로망스.는 프랑스가 쓰는겨. 로마 매터스.는 고대그리스 로마 이야기여. 그리스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는 그리스어걸랑. 게르만은 그리스어를 몰라. 라틴어 번역된걸 프랜취로 보는겨. 여기에 알렉산더 대왕의 로망스.가 여기에 속해. 이 알렉산더 로망스.가 성경 다음으로 4세기에 나온 전 세계 언어들로 번역된 베스트 셀러여 저게. 픽션이여. 저당시 글자 있는 모든 인간들은 알렉산더 로망스.를 읽었어. 

 

Old English literature or Anglo-Saxon literature, encompasses literature written in Old English, in Anglo-Saxon England from the 7th century to the decades after the Norman Conquest of 1066. "Cædmon's Hymn", composed in the 7th century, according to Bede, is often considered as the oldest surviving poem in English.[1] Poetry written in the mid-12th century represents some of the latest post-Norman examples of Old English;[2] for example, The Soul's Address to the Body (c. 1150–1175) found in Worcester Cathedral Library MS F. 174 contains only one word of possible Latinate origin, while also maintaining a corrupt alliterative meter and Old English grammar and syntax, albeit in a degenerative state (hence, early scholars of Old English termed this late form as "Semi-Saxon").[3][4] The Peterborough Chronicle can also be considered a late-period text, continuing into the 12th century. The strict adherence to the grammatical rules of Old English is largely inconsistent in 12th century work – as is evident in the works cited above – and by the 13th century the grammar and syntax of Old English had almost completely deteriorated, giving way to the much larger Middle English corpus of literature.[5][6][7]  

 

잉글랜드 애들이, 자기들의 영어로, 7세기 부터 글을 써. 비드의 캐드몬 찬송가. 베오울프.를 올드영어로 써대는거고.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저 먼 섬에서 저리 쓰기 시작하는겨 저 섬에 넘어간 게르만 들이.

 

노르족 사가 예다 같은 글들이. 13세기여. 조오온나게 늦은겨. 얘들은 고대로마를 전혀 모르는 애들이라서 그래.

 

스페인.은 이전 썰. 세르반테스 이야기 할때. 저 프랑스 기사소설 프랑스 매터.에 브리튼 매터.가 여기로도 들어와. 이 스페인 문학.이란 정말 어마어마해. 스페인 연극.이 유럽 최고였어 중세에. 이전 썰. 잉글랜드 저리 가라여. 오히려 프랑스.가 스페인 중세 연극을 모방을 하는겨. 각색을 하고.

 

한편 라인강 동쪽 게르만을 보면.

Epic Poetry[edit]

The most famous work in OHG is the Hildebrandslied, a short piece of Germanic alliterative heroic verse which besides the Muspilli is the sole survivor of what must have been a vast oral tradition. Another important work, in Old Saxon, is a life of Jesus Christ in the style of a heroic epic known as the Heliand.

Lyric Poetry[edit]

Works include the short but splendid Ludwigslied, celebrating the victory of the Frankish army, led by Louis III of France, over Danish (Viking) raiders at the Battle of Saucourt-en-Vimeu on 3 August 881. There is also the incomplete Das Georgslied about the life of Saint George, and the Wessobrunn Prayer, a praise of Creation and a plea for strength to withstand sin.

Other Literature[edit]

Works include the Evangelienbuch (Gospel harmony) of Otfried von Weissenburg, the Latin-German dictionary Abrogans, the magical Merseburg Charms and the Old High German translation of the theologian Tatian.  

 

중세 초기 에 저런 게 있고.

 

Middle High German literature refers to literature written in German between the middle of the 11th century and the middle of the 14th. In the second half of the 12th century, there was a sudden intensification of activity, leading to a 60-year "golden age" of medieval German literature referred to as the mittelhochdeutsche Blütezeit (1170–1230). This was the period of the blossoming of MHG lyric poetry, particularly Minnesang (the German variety of the originally French tradition of courtly love). The same sixty years saw the composition of the most important courtly romances. These are written in rhyming couplets, and again draw on French models such as Chrétien de Troyes, many of them relating Arthurian material. The third literary movement of these years was a new revamping of the heroic tradition, in which the ancient Germanic oral tradition can still be discerned, but tamed and Christianized and adapted for the court. These high medieval heroic epics are written in rhymed strophes, not the alliterative verse of Germanic prehistory.

 

하이미들때 게르만 리터러쳐.가 있는데, 이게 대게 왼쪽 프랑스껄 갖고 오는겨 이게. 아서왕 이야길 여기서 갖다 써. 거기에 이전 썰했든 고대 로마 연극 대본을 갖고 연극을 저때 수도원에서 하기 시작한거고.

 

이 독일땅이 아주 늦어. 이 늦은 애들이, 그만큼 선동하기 당하기 쉬웠던건데. 

 

헌데 결국 저기서, 천년간 1800개 영지들에서 저리 흩어지고 경쟁했던 에너지.가 거대한 사유의 충돌.로 근대 직후부터 급성장하는겨 쟤들이. 또한 천년간 그래도 제국 다이어트.로 느슨하게 묶여 있었걸랑. 저 힘으로 지금 독일애들이 유로.를 이끌어 가는거야. 다양한 애들을 천년간 묶어봤걸랑. 유로가 그래도 독일때문에 버티는겨. 

 

독일은 라인강변 왼쪽이 빨리 시작하는겨. 특히나 프랑스 태양왕 루이가 동진을 하면서 이 라인란트.라는 라인팔라틴과 위 라인란트.가 프랑스의 자유로움.을 제일 빨리 익히는겨 독일에서. 저당시까지도 독일땅은 아주 가장 깝깝한 땅이었걸랑. 오히려 저때서야 좀 숨통이 시작한게 독일이야. 

 

독일의 에너지.는 가장 늦게 발동이 걸렸지만, 터진 에너지는 가장 강해. 프랑스 만큼 방종인듯한 자유로움이 아냐, 우직한 바바리안 게르만이 남은겨. 갈리안화 된 서쪽 게르만과 달라 이게. 무식함의 좋은 말은 우직함이야. 그 속에서 이천여개 영지가 중세천년간 서로 드나든겨 신성로마 안에서. 이 경쟁의 힘의 잠재력.이 히틀러 이후를 바로 이겨낸거야. 동서독 분리하고도 다시 합쳐서 지금의 독일이 된겨 저게.

 

가장 미개하고 무식한 라인강 동쪽의 게르만이, 가장 늦게 배워서, 그래도 미국 영국 다음으로 세계 최고의 국가가 된겨. 

 

아 일단 여기까지 풀어보자. 정리들은 나중에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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