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e John XXII was determined to suppress what he considered to be the excesses of the Spirituals, who contended eagerly for the view that Christ and his apostles had possessed absolutely nothing, citing Pope Nicholas III's bull Exiit qui seminat in support of their view.[8] In 1317, John XXII formally condemned the group of them known as the Fraticelli.[9]
서기 1300년대로 가보자고. 서기 1317년.에 교황 요한22세.가 프라티첼리.를 공개적으로 비난을 해. 이미 이건 이전에 이단선고 받은 단체야. 이때 저들이 문제제기하는건 교회가 왜 소유를 하느냐.인겨. 지저스와 그의 사도들은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다. 헌데 대체 지금 로마교회란건 머하는 짓인거냐 저게.
The Fraticelli ("Little Brethren") or Spiritual Franciscans were extreme proponents of the rule of Saint Francis of Assisi, especially with regard to poverty, and regarded the wealth of the Church as scandalous, and that of individual churchmen as invalidating their status. They thus claimed that everyone else in the Church were damned and deprived of powers and were declared heretical in 1296 by Boniface VIII.
프라티첼리. 작은 브레뜨런.이야. 브레뜨런.이란건 브러더후드.의 졸 쎈말이야. 프라이어.라는 수도사는 형제.란 뜻이고.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에서 나온 극단주의로 보는데. 파버티. 청빈.이라 하잖니. poor 움추리고 숙인거야. 가난.이고. pauper 파우페르.야. 가난한겨. 이걸 제 일 덕목으로 삼아. 이들은 프란체스코 수도원.도 비난을 해. 야 니덜 본질이 소유하지 않는건데 대체 머냐 니덜 수도원들 자체도. 우리가 진짜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정신을 이어받은 거다. 라는겨. 서기 1296년 에 이단 선고받아.
저들 수식어로 스피리츄얼.이 붙어. 정신적인 프란시스코.란거지. 즉 물질을 배제한다는거야 자기들이야말로.
어쩔수 없이 말야, 이전 이단이야기.를 이어서 풀어야해 샹 졸 구찮게. 자연스레 이어지는 거지만서도. 초기 이단부터의 이야기를 모르면, 그리스도 역사가 지금 문제가 아니라, 유럽역사가 안풀려 이건. 그리스도 에 대한 이해 없인 유럽역사를 알 수가 없어. 유럽역사 이해 없는 세계사나 조선사 이해는 그건 이해가 아냐. 전 혀 모르는거야 니덜이 지금 보는 이 조선반도의 조선사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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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코 함락 Acre 이 1291년.이야 레반트 십자군은 이걸로 끝난겨. 2백년 만에 끝이 난겨 이게. 그렇다고 로마 교회의 이빨은 이걸로 죽은거고. 그렇다고 로마교황이 다시 서임권을 황제에게 뺏기겠어? 이 상황에서도 세속을 흔드는겨. 얘들은 정말 엄청난 애들이야 진짜.
저때 유럽의 충격은 엄청난거야. 레반트를 다시 뺏긴건 그야말로 쇼킹이야 이건 저당시 민들에겐.
유럽은 레반트 십자군을 시작으로 말야. 동시에 터지는게 이단이야 역시나. 이때 카타르파. 발도파(부데스)가 등장하기 시작하는겨.
카타르.가 12세기에 확 퍼져. 레반트 십자군 시작하자마자.
Henry of Lausanne (variously known as of Bruys, of Cluny, of Toulouse, of Le Mans and as the Deacon, sometimes referred to as Henry the Monk or Henry the Petrobrusian[1]), French heresiarch of the first half of the 12th century. His preaching began around 1116 and he died imprisoned around 1148. His followers are known as Henricians.
루잔.의 앙리. 서기 1116년.에 등장해. 디콘 이었다느니. 몽크 였다느니 해. 이를 따르는 무리들.이 저때 생겨. 이단이야.
발도파 부데스들이 서기 1177년에 리옹에 등장해. 이들이 주장하는것도 말야. 소유하지 말라 인겨 교회는.
카타르.는 Languedoc 랑그독. 지역. 이전 오일어 오크어 프랑코 프로방샬 이야기 복습하고 와라. 프로방스에 툴루즈 지역이야. 부데스들은 혼강 위 리옹지역이고. 루잔의 앙리.도 프랑스여. 이게 모두 프랑스여. 즉 독일땅은 아직 이단이 나올만큼 생각이 여물지가 않은거야. 불가리아 보고밀이 여기에서 점화가 된건데 말이지. 그래서 덜 떨어진 황제 진영을 교황이 저격을 한거고 말야.
Bogomilism (Bulgarian: Богомилство, romanized: Bogomilstvo; Macedonian: Богомилство; Serbo-Croatian: Bogumilstvo / Богумилство) was a Christian neo-Gnostic or dualist sect founded in the First Bulgarian Empire by the priest Bogomil during the reign of Tsar Peter I in the 10th century.[1][2][3] It most probably arose in what is today the region of Macedonia.[4][5]
폴리시언.들이 발칸으로 들어와서 비잔틴이 불가리아 1차제국 상대 용병으로 쓰이면서 거주를 해. 이 발칸에서 10세기에 나온게 보고밀.이야. 지금 마케도니아 지역. 인데. 이전 썰했듯이. 마케도니아 와 트라키아.의 경계가 네스토스 강.(Nestos , Mesta) 이야. 위에 발간산맥 왼쪽에서 우하향으로 길게 산맥이 뻗어. 로도피즈 산맥이야. 이 왼쪽으로 흐르는강이야. 이 오른쪽 강이 마리차 강. Maritsa .이고 트라키아 라는건 위 발칸산맥에서 왼쪽 네스토스 강.까지야. 중간에 로도피즈 산맥 위로 가로로 강이 흐르다가 지금 에디르네.에서 꺾여 내려간 강.인 마리차강.을 좌우로 동서 트라키아.라고 해.
네스토스 강 왼쪽부터 마케도니아.야. 이건 고대나 지금이나 비슷해. 여기부터 왼쪽 에피로스(에피루스)를 경계하는, 디나르 알프스에서 뻗어 내려온 핀두스(핀도스)산맥까지에, 아래는 올림포스 산.까지야. 이 올림포스 산 아래로 텟살로니아 평원 텟살리. 하는겨. 저기가 마케도니아.야. 당시 비잔틴.은 테마.라는 행정구역으로 정비하면서 트라키아 부터 테마로 만들고 아래 해변 부터 잠식해서 발칸을 다시 회복하는거고. 저때는 저게 1차 불가리아 제국.의 땅은 해변 위 내륙들인겨, 비잔틴은 동트라키아.에 테마를 시작으로 마리차강까지 마케도니아 테마.란 이름으로 편입을 하는 중이여. 해변부터 시작하는겨 이게. 회복하는게. 저게 결국 모두 다 들어오는 거고 10세기 지나면서. 그러면서 1차불가리아는 비잔틴으로 들어오는거야 지워지고.
보고밀.이 저기서 시작을 한겨. 저기가 위에 로도피즈 산맥과 위 왼쪽으로도 저긴 고산지대야. 세르비아와 불가리아를 가르는 지대가. 지금 발칸에서 가장 높은 산들이 여기에 있는거고. 요기서 10세기.에 보고밀들이 퍼진겨. 이전 동쪽교회진영의 이단의 역사 7백년이 여기로 온거야. 바로 오른쪽과 해변은 비잔틴이야. 불가리아 제국.은 서기 681년에 서서. 서기 864년.에 그리스도.를 세워. 이 불가리아.는 그리스도.를 군주.가 독자적으로 세워. 로마.와 비잔틴.에 하미지를 안했어. 그러면서 자기를 크냐즈.라고 하고 이게 뒤에 짜르로 자칭을 하는거야. 불가리아 황금시대.는 저 이후여 마케도니아 조.의 비잔틴에 흡수되기 전끼자의.
저 9세기 중반.이 발칸이 피곤할때야. 서유럽은 베르됭조약.이 843년.이야. 경건루이 3형제가 정리하는 해. 판노니아 아바르.는 저 직전에 불가리아에 의해 지워진겨. 오른쪽엔 압바스 칼리프.의 황금시기야. 아랍애들과는 비잔틴 이라클리오스 조.가 7세기에 서자마자 페르시안 사산 조.에 지워질 뻔했다가, 갑자기 등장한 무함마드.때문에 터키땅을 회복하고, 여기서 무하마드 이후 4대 칼리프 시절 우스만 우마르 때 수도까지 위협받다가 쟤들 내전하면서 편해지고 아르메니아를 경계로 지낸겨. 그러다 우마이야 에 압바스 칼리프.가 서서 이슬람 바그다드 황금시기.를 9세기 중반까지 백년 하는거야 오른쪽은.
발칸이 제일 피곤한겨. 아바르가 지워지고, 여기에 모라비아 가 등장해. 이들이 카르파티아 산맥 끝에서 다뉴브 타고 내려오고. 위로 능선따라 죽죽 불가리아의 다뉴브 지역으로 오는겨 루떼니아 지나서. 아바르.가 지워진 자리에 위로는 모라비아 슬라브. 아래로는 크로아티아 슬라브.가 있는 거고. 이 왼쪽으론 게르만 루이땅 애들이 마크.를 두고 있는겨. 이와 동시에 이때 등장하는게 오른쪽에서 마갸르.들이 흑해를 돌면서 서진을 해. 그리고 아래로는 비잔틴.이랑 여전히 전쟁이야.
불가리아.는 게르만 루이쪽 신성로마진영이 서쪽 적이고. 아래로는 비잔틴이야. 여기에 산맥능선따라서 모라비아.와 부딪히고 마갸르 들이 막 동쪽에서 들어와. 가장 골치아플때야 쟤들이. 저때 서기 864년.에 정신줄을 잡으면서, 자기들만의 그리스도.를 군주.가 만들어. 로마와 비잔틴에 전혀 상관이 없어.
저 크냐즈.들을 그래도 제국.이라 부르는건. 킹덤.이란건 하미지.를 한겨. 킹덤이란건 신.에게 하미지를 한 체제야. 서유럽의 모든 킹덤.은 로마 교황.에게 하미지를 한겨 저건. 잉글랜드 도 정복왕 윌리엄.이 제국이 아니라 킹.인건 로마교황에 하미지를 해서 그래. 교황이 넌 킹.이야 라고 한거야. 유독 샤를마뉴.애들만 엠퍼러. 임페라토르.가 된거야 이건. 로마 교황.이 직접 황제관.을 로마 베드로 성당에서 씌워주는겨. 다른 킹은 로마 교황한테 대관식 못해. 자기들 땅 대주교에게만 받는겨. 저게 요상한거야. 저 신성로마 황제.라는 땅에 킹덤들이 난립을 한 저 서유럽이 골때리는겨 저건. 이건 다음주제로 하고. 저건 이상해진거야. 샤를마뉴 부터 저러다가 베르됭 조약에서 그것도 말야 가장 힘없는 전쟁의 패자.인 장남.이 황제 타이틀을 쥐기로 한거야 셋이 협약할때. 이 황제.란 타이틀.은 의미가 없는겨 이게 샤를마뉴 이후 다다음 부터. 장남.이 하필 진거야. 장남.이라고 황제관.을 쓴거야. 저건 유명무실한 타이틀이걸랑. 헌데 저 유명무실한 타이틀이 언제부터인가 금본위 처럼 황제본위에 그리스도 본위.자리의 가치.가 된거걸랑 저게. 저게 웃긴겨.
대머리 샤를.이나 게르만 루이.는 저 황제 타이틀.에 연연한게 아냐. 에이 그래 그거 큰 형님이 가져 그냥. ㅋㅋㅋ. 이게 다여 이게. 그게 머라고 . 가운데 땅에서, 그래 그래 저 이탈리아 저거 머라고 큰형이 이탈리아 거 알프스 넘어내려가서 이탈리아 킹을 하던 황제관을 쓰던 맘대로 햐.
알프스 넘어의 큰 땅을 둘이서 나눠 갖은겨. 명함이란 허울은 패한 장남이 취한거고.
저들이 이탈리아 라는 알프스 아래는 관심이 없는겨 저기가. 저긴 자기들 살아온 기후.에도 안맞고 전혀 다른 곳이걸랑. 저거 큰형 가져 저거. 한거걸랑. 로마 아래로 쫓겨난 롱고바르디.들이 그래서 산거야 거기서. 비잔틴에 하미지 하면서. 쟤들은 저 아래로 내려가서 이탈리아 반도 전부를 먹을 생각 조차를 안한겨 저건. 과안심이 없어 저긴. ㅋㅋㅋ.
저 이름뿐인 황제.란 타이틀이. 저게 금본위가 된거야 언젠가부터. 엠퍼러 가 그냥 엠퍼러란 허울.이 아니구나 저게. 저 이탈리아를 버리는게 아니였어 보니까. 이게 찰스 핏줄 끊긴 장남 로타르 끝핏줄에서 저자리를 위한 경쟁을 시작하는게 이탈리아 반도에 있던 애들이야 또한. 스폴레토.의 가이. 베로나 마크령. 카르니올라 마크령.에 왼쪽 부르고뉴 킹덤의 보소 가문.도 뛰어들고. 이걸 작센 오토.가 정리를 하면서 그야말로 무게감 있는 황제 타이틀이 저때서야 되는거걸랑 저게. 저게 아주 웃긴겨 지금 보믄.
황제.와 킹.들은 하미지 주고받는 고개숙이는 관계야 아니야. 황제의 임페리얼 스테이트.의 킹 빼고. 폴란드는 전혀 저 영지소속이 아냐. 남이야 얘들은. 덴마크가 황제에 하미지를 하지 않아. 헌데 먼가 무게감은 다르걸랑. 시안한 체제가 서유럽에서 중세 천년 에서 나폴레옹 까지 온겨 저게. 조온나 웃긴겨 저건.
중국을 봐봐. 왕.이란 타이틀은 말야. 무조건 띠 라는 황제 천제.의 아래야. 저 서유럽애들 식으로 저런 관계의 황제.와 왕.의 사이는 없어.
이 역사란건 말야. 상대를 두고 이야길 하는거야.
유럽애들이 자기 역사가 얼마나 이상한 지 몰라 쟤들이 지금. 자기들만을 중심으로 보면 자기들이 정상인거야. 헌데 저게 재들 외의 모든 세상사를 보면, 쟤들이 이상한겨 진짜. 쟤들이 자기들이 이상하다는 걸 몰라.
남들과 전혀 다른 역사.의 프로세스. 과정을 겪은 게 저 유럽이란 지역이야. 그래서 지금 전혀 다른 문명을 쟤들이 만든거걸랑. 저런건 동시대 남들과 비교를 해야 인지가 되는겨.
유럽애들이 자기들이 얼마나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가를 몰라. 그게 서임권 이란 이름으로 시작한 정교분리야.
유럽애들이 완전히 역사의 승자가 되서 쟤들이 자기 역사를 너무나 모르는겨. 왜냐면, 비교할 상대.가 없는겨. 자기들 역사 와 그에 준하는 남들의 역사.가 없는 겨 이게. 지금 세상사에.
비교를 할라캐도. 좀 비교 될 만한 역사.를 다른쪽에서 비슷하게 갔으면 그것과 잣대질 하면서 자기를 보는 거걸랑. 얘들은 이걸 못하는거야 지금. 저 이후는 인류사에서 전혀다른 역사의 과정이걸랑 저건. 이걸 지금에야 쟤들이 알게 된거야 저건. 저런걸 전혀 몰랐어. 역사 해석을 유럽은 제대로 자기들을 할 수가 없었어. 끽해야 고대사.를 거울로 해서 자기들을 볼뿐인거야. 고대 그리스 로마.와 자기들 역사를 비교해 왔던거고. 여기선 말야, 제대로 된 분석이 나올 수 가 없어. 관점 포인트들이 허술해 저런 자기 해석은.
같이 비슷하게 살아온 애들이 있으면 좋걸랑. 그게 없는겨 지금 유럽사는. 그래서 동시대 애들과 몇개 보이는거만 비교해보니 어 쟤들 이런게 없었네 우린 있었고. 그래서 우리가 앞선나? 이러면 승자의 역사해석이니 어쩌고 욕처먹는거걸랑.
반대로 뒤쳐진 애들은 그런 없었음.을 인정안하는거야. 이게 골때리는겨. 정답 찾기 노력을 얘들은 안해. 딴 시선으로 하는겨 지들만 보는거고. 문제점.이란건 나만 보면 나올 수 없어. 문제점이란건 비교 를 통해서 드러나는 추상명사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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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는 킹덤 딱지 못붙이는겨. 쟤드른 어떤 상대에도, 신이든 세속이든. 고개숙인 애들이 아냐. 제국이라 이름 붙여 그래서. 나중 지들이 짜르도 선언하는거고. 그걸 인정할 수 밖에 없어. 그래서 엠파이어여.
저와중에 티나온게 보고밀.이야.
이전 폴리시언.들이 옮겨진 발칸.은 발칸산맥 아래야. 로도피즈 산맥 위이고. 여기가 지금 소피아. 다음 제2의 도시 플로보디프.여. 여기서 발칸넘어의 불가리아 애들을 막는겨. 그러다가 넘어간거고.
보고밀은 저 로도피즈 아래의 내륙이야. 불가리아 수도는 발칸 넘어있는거고. 여기가 먼가 고립되고 자유로운겨.
여기서 티나온겨 보고밀이.
The Bogomils were dualists or Gnostics in that they believed in a world within the body and a world outside the body. They did not use the Christian cross, nor build churches, as they revered their gifted form and considered their body to be the temple. This gave rise to many forms of practice to cleanse oneself through purging,[clarification needed] fasting, celebrating and dancing.
선과악.의 듀얼리스트 이원론이야. 마니교여. 노스틱. 영지주의여. 그리스도 십자가를 사용 안해. 교회 건물.을 부정해. 영성주의자들이야. 교회는 내 몸.이 교회야. 퍼징.이라는게
From Middle English purgen, from Old French purgier, from Latin pūrgō (“I make pure, I cleanse”), from pūrus (“clean, pure”) + agō (“I make, I do”).
푸르고. 퓨어.여. 깨끗하게 하는겨. 이건 금욕주의로 가는겨. 수도사야. 모노스틱 이란게 저게 그리스도 진영에서도 말야. 졸 애매한 신앙생활이야 저건. 그래서 저게 이단으로 안빠지게끔 한게 저기에 수도생활 법규.를 만드는거걸랑 베네딕트 오거스틴 의 법들로. 저들은 자기들만의 법을 만들어. 자기들이 나름 금욕하면서, 단식도 하고. 모여서 춤도 추는 의식을 하는겨. 저건, 깨끗해진 자기들을 서로서로 축하하며 더 복돋우는거야. 저게 잘못가면 광란으로 가는거고 그리 비추는거고.
From the imperfect and conflicting data that is available, one positive result can be gathered that the Bogomils were gnostics, adoptionists and dualists.[6]
저게 이전까지의 이단 이야기들의 종합판이야. 다 갖고 오는겨 이전에 했던걸.
For Bogomils "the Logos was not the Second Person of the Blessed Trinity, the Eternal Word incarnate, but merely the spoken word of God, shown in the oral teaching of Christ".[37] Although Bogomils regarded themselves as "Trinitarian",[38] anathemas against Bogomils (circa 1027) charge Bogomils with rejection of the Trinity.[39]
보고밀.은 로고스. 지저스를 삼위일체.의 제2의 페르소나.로 인정 안해. 단지 신의 소리.가 지저스의 입을 통해서 전달되어진 것일 뿐이야. 지저스.는 신이 빌린 몸이란거야. 어답션이즘이야 이건. 삼위일체를 부정하는겨.
이 삼위일체.란건 초기 교회에서 일곱공회의까지 만든 억지 중에 억지여 이건. 로마카톨릭.과 이스턴 오소독시.가 공유하는 이놈의 삼위일체.란건. 저 모든 이단이라는 다른 소리들이 나올때 그것에 대응하는 논리들이 덕지덕지 붙어서 생긴 희안한 논리여 이 삼위일체란건. 말도 안되는겨 저건. 저걸 지금 항진명제.로 쓰는거고. 12세기에야 정립이 된겨. 성부성자성령.의 순서.도 저때서야, 서로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함.이지 누구 다음이 아니다.라는게 천년 논쟁지나고 나서 생긴 삼위일체 방패야. 이 셋의 누가 앞이고 뒤냐.가 필리오케 논쟁에서 터진거고. 이게 1054여. 천년 후에 정립된 삼위일체 방패.를 기준으로 하면 이전 천년동안의 삼위일체 정답 진영 자체가 이단이야. 필리오케 문제 제가하는 동쪽교회도 이단이야 삼위일체 방패로는. 성령은 성부에서 조차 나오는게 아냐. 저 순서 이야기함으로써 이전 삼위일체 논쟁은 모두 이단이야. 이따위 이야기를 지금 교회애들이 할 지쩍 능력이 될랑가 모르겄지만. 저 논리는 명백한 팩트야. 내말이 틀려?
지금도 저 삼위일체.로 저대로 이야기 안하는 사도신경 어쩌고는 저거 이단. 이따위 말 하는 애들이 있는거고그래서.
저게 불가리아 그리스도 진영.에 퍼지는건 양 쪽 로마와 비잔틴.이 문제제기 못해. 불가리아 그리스도.는 지들이 교황이자 군주걸랑. 헌데 저게 양쪽 진영으로 퍼지는겨. 더하여 불가리아 군주 자체도 자기의 법을 무시하는 거걸랑 저건.
저기서 교회 진영이 가장 문제시 하는건. 교회 건물을 부정하는겨. 아니 교회에 안오면 장사가 안되는데.
Catholic ecclesiology is the theological study of the Catholic Church, its nature and organization, as described in revelation or in philosophy. Such study shows a progressive development over time. Here the focus is on the time leading into and since the Second Vatican Council (1962-1965).
교회론.이라는게. 에클레지올로지.걸랑. 이것도 모든 종교에서 나오는 말이고. 교회 건물.과 조직.이야기야. 이게 필요한건가 만건가. 저 에클레지올로지.란 말 자체도. 19세기에나 나오는데 말야
In Christian theology, ecclesiology is the study of the Christian Church, the origins of Christianity, its relationship to Jesus, its role in salvation, its polity, its discipline, its destiny, and its leadership.
교회론.이 지저스와 관련된 교회.에 대한 학문.이라는건데. 저건 교회.를 어떻게 운영하는가.의 문제야. 교회 건물.을 어떻게 짓고 데코레이션 을 어드래 하고.가 큰 이슈고. 교회를 어떻게 꾸리는가야. 이게 구분선이 졸 애매한겨. 교회건물. 자체가 포커스여 이건. 여기에 이를 꾸려가는 절차. 조직 까지도 포함을 해.
에클레시아.라는 말이 모임.이야. 모이는 공간문제가 발생하고 사람들 모이는 조직문제가 생기고 인사문제가 생겨 이게. 그 공간은 어떻게 꾸며야 하는가. 이걸 연구하는겨 저때 19세기에나 이게 학문이 되는거고.
교회 건물이 필요있다 없다. 이것 자체.가 그건 말도 안되는 물음이야.
교회 건물 의 필요성 유무.에 대한 문제제기.는 어떤 종교도 할 수가 없어 이건. 그건 이단 중에 최고의 이단이야. 물질 소유 여부 이전에, 자기 교리를 제대로 알리려면 물질적인 모든 것.은 기본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어. 사람 사는데 의식주에 집이 있어야 하는가? 이 질문이랑 다를게 없어.
헌데 저것 자체를 부정하는겨. 교회건물. 콘스탄티노플 초기 이야기만 봐도 말야, 민들에게 보이는 교회의 부정부패가 엄청난겨. 교회 자리가 곧 물질적 풍요야. 이것에 대한 반박이 조올라 생긴겨 저 동쪽 이단진영에서도. 오쏘독스 처치.는 이런 태클을 시작하자 마자 당한거야 저게. 로마교회.는 저 구석 촌구석에서 이슈가 상대적으로 안되어왔던거고, 그러다 서기 756년 교황령이 생기면서 여기도 탐욕이 생길 수 밖에 없고. 이걸 반박하는 사람들이 나오는겨 저때 되서야. 서기 1122년 로마교황이 하인리히5세.의 무릎을 꿇리면서, 이건 완전히 로마교황 세상이 된겨 이게. 동시에 니덜 추악하고 더러워.
교회가지맙시다.
이게 동시에 터진거야 이때 되서야. 고대 로마 진영의 프랑스 동남부에서. 보고밀의 의식의 흐름이 이때 온거야. 이걸 싸그리 다 죽인거고 저때. 저들은 칼이 없었어. 죽어야지 어떡하니. 그리고 3백년 후에 게르만 정통 들이 이제서야 의식화가 되서 저 의식의 흐름의 파장이 이때서야 온거야 16세기에서야. 이게 마르틴 루터 일 뿐이야
또옥 같은 이야기를 천년을 한겨 저 이단 이라 낙인 찍힌 이들이. 마르틴 루터.가 이름 알린건, 배후에 칼 가진 영주.가 있었을 뿐인거고. 단지 그차이야. 전혀 전혀 그외의 다름은 없어. 대갈빡 진화가 저땅에 천년 이 되어서야 천년 전의 레반트 주변 수준이 된겨 저 게르만 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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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교단체고 자기 건물은 성스럽게 웅장하게 지어야 해. 이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의 대심문관 챕터야. 아 정말 환상적이야 저 지저스에 대한 웅변과 항변은. 엄청나 저 작품.
Catharism (/ˈkæθərɪzəm/; from the Greek: καθαροί, katharoi, "the pure [ones]")[2][3] was a Christian dualist or Gnostic revival movement that thrived in some areas of Southern Europe, particularly what is now northern Italy and southern France, between the 12th and 14th centuries. The followers were known as Cathars and are now mainly remembered for a prolonged period of persecution by the Catholic Church, which did not recognise their belief as being Christian. Catharism appeared in Europe in the Languedoc region of France in the 11th century and this is when the name first appears. The adherents were sometimes known as Albigensians, after the city Albi in southern France where the movement first took hold.[4]
이제 서유럽으로 오는겨. 11세기.에 랑그도크. 프로방스에 툴루즈 지역이야. 고대 로마.땅이여 여긴. 카타르파. 알비파. 12세기에서 14세기.에 활발해. 프랑스 동남부.에 이탈리아 북부. 역시나 영지주의.에 이원론이야. 듀얼리스트.가 들어가면 이건 선악.이고 악을 물리쳐야 하고. 이건 금욕으로 가는거고 영성으로 가는거고 세속과 분리를 하는겨. 세속에서 가장 싫어하는겨 군주나 교회는.
The Massacre at Béziers refers to the slaughter of the inhabitants during the sack of Béziers, an event that took place on 22 July 1209, and was the first major military action of the Albigensian Crusade.
베지에 학살. 2만명을 죽여. 카타르들. 서기 1209년.
The Albigensian Crusade or the Cathar Crusade (1209–1229; French: Croisade des albigeois, Occitan: Crosada dels albigeses) was a 20-year military campaign initiated by Pope Innocent III to eliminate Catharism in Languedoc, in southern France.
저걸 시작으로 20년. 카타르 십자군 이름으로 최소 20만. 최대 1백만.의 카타르들이 죽은걸로 봐.
The Waldensians (also known as Waldenses (/wɔːlˈdɛnsiːz, wɒl-/), Vallenses, Valdesi or Vaudois) are an ascetic movement within Christianity, reputedly founded by Peter Waldo in Lyon around 1173.[1][2]
왈덴시즈. 발도파. 부데스. 1173년.에 리옹.에서 설교를 시작해. 교회가지마러
The Mérindol massacre took place in 1545, when Francis I of France ordered the Waldensians of the village of Mérindol to be punished for dissident religious activities. Provençal and Papal soldiers killed hundreds or even thousands of Waldensian villagers.
메린돌 학살 서기 1545년. 이전 언급. 메린돌.이 저 베지에. 오른쪽 이여 프로방스 해변. 다 해변지역이야. 수백 수천의 발도파들을 죽였다고 전해져.
다 고대로마때 도시들이야.
저 피터 왈도.의 설교.는 역시나 소유하지 말자여. 자기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거리 유세하는겨 저사람이. 서기 1173년.이야. 그야말로 로마교황.이 황제한테 이기고, 레반트 십자가 국가들이 설때 나온거야. 카타르.와 부데스 들은. 저게 동시에 터진겨. 저건 로마 교황진영 이 갖고 잇는 사버린 sovereign 의 교회에만 말하는게 아니라, 세속 군주들의 교회진영 에게도 주장하는거걸랑. 어떤 주권의 교회든간에 당신들 너무 타락한거야 라는 거걸랑 저들이. 그러면서, 동쪽에서 과거 폴리시안만 따져도 육칠백년 동안 해오던 이단 이야기가. 이제서야 서유럽에서 나오기 시작한거야.
그만큼 생각 의 함수값이. 늦었던겨 여긴. 이제야 좀 인물들이 나오는거야 진화된 집단무의식에서.
Cathar cosmology identified two twin, opposing deities. The first was a good God, portrayed in the New Testament and creator of the spirit, while the second was an evil God, depicted in the Old Testament and creator of matter and the physical world.[22] The latter, often called Rex Mundi ("King of the World"),[23] was identified as the God of Judaism,[22] and was also either conflated with Satan or considered Satan's father, creator or seducer
카타르들의 우주관을 보면. 마니교같은 듀어리스트여. 선과 악.이 있고. 영혼 창조의 선한신. 물질을 창조한 악의 신. 2세기에 나온 이단이여. 알렉산드리아 진영의 발렌티누스. 시노페의 마르키온. 발렌니니안이즘. 마르시온이즘. 2세기여 이건 벌써. 영혼 이데아의 플레르마.에서 비토스.가 있고 여기서 아이온.이 30개가 있고 마지막이 소피아.이고 이게 내려와서 지금 물질인 세상이 되고 이걸 만든게 데미어지.demiurge라는 구약의 신인겨. 우리가 조물주.라고 쓰는게 이 데미어지.인거야. 이건 나쁜 말이야. 이게 나중 유대교 카발라.의 생명의 트리.로 가는겨. 이건 그리스도 진영은 이단이야.
저건 대부분 영지주의 쪽 이단 낙인받는 이들이 공통의 이야기야.
물질은 나쁜겨 그래서. 무조건. 이 세상의 것때문에 죄.가 스미는겨 몸에. 이게 불교.랑 아주 똑같아. 아주아주아주 똑같아. 장아함경.에 정확히 나오는말이야. 기세경으로 따로 편집된 불경이고. 광음천.이라는 아이온에 있던 선한 신 세계의 우리가. 이 지옥행성 지구의 지미. 달콤한 물. 겨자씨.에 맛들여서 떨어져 내려와서 그게 무명에서 행 식 명색 육입 촉수애취 유 생 노사.의 반복이라는 삼사라.를 이놈의 땅에서 끊임없이 하는겨. 저놈의 데미어지 올드엠파이어 제국의 두목이 몰래 꼬심질에 당하다가. 저 지미가 쟤들 사과 일뿐인거고. 이게 그래서 동과 서는 같어 어쩌고 가 아니라 어떤 은하계 에 사는 생명체든간에 끽해야 나올 스토리는 저따위 이야기가 다여 닝길아.
그러면서 저들이 금욕으로 갈 수 밖에 없는겨. 에클레시아. 라는 모임체. 자체가 의미가 없는겨 쎈 애들에겐. 대승 불교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내 몸 하나 탈출해서 아이온으로 올라가기도 벅차죽겄는디 수레에 너들을 태워가니 마니 하니. 하능겨 저들 대부분은. 아니면, 혼자는 힘드니까 우리끼리 철저히 금욕지키면서 힘들때마다 서로 셀럽질 해주면서 춤추면서 복돋우자 하는거걸랑.
저런게 흔해지면. 교회는 장사가 안되고, 세속에선 세금이 안걷혀.
이전 동쪽의 이세기부터의 이단의 이야기들의 생각들이 저기에 다 모인겨 저게. 삼위일체.를 제대로 노예적으로 받겠어? 지저스의 정체성.을 저들이 그대로 따르겠어. 지들이 삼위일체에 지저스의 정체성을 규정질 했지만, 솔직히 지들도 지들이 먼 소리 해댄지도 모르걸랑. 저건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겨. 생각만 좀 있는 인간에겐. 개소리도 저따위 개소리가 없는겨. 저러다 지저스 자체도 안 받아들여. 지저스.도 그냥 인간일 뿐이야. 인간이 자각을 해서 신성.이 된겨. 먼놈의 삼위일체 지저스냐. 그게 Psilanthropism 씰렌뜨로피즘.이었고 이게 콘스탄티누스 대제 제1차 공회의 니카이아. 325년 에서 이단하는겨. 저걸 서유럽에서 카타르 다음에 프리스피릿. 이라는겨. 그야말로 자유영혼. 요게 부데스.들의 리옹에서 알사스 시작하는 라인강 넘어 스와비아 슈바벤 구석탱이에서 시작이 된겨.
천년 전에 동쪽에서 했던 이야길 그대로 하는겨 서유럽에서 천년만에. 그리고 그 이어 삼사백년만에 마르틴 루터 가 또오오오옥 같은 거 살짝 비틀어 솔라 피데. 고대로 고대로 지저대는거고 그러면서 지가 지저스 재림인가벼 자뻑질 하는거고 저 번개한방에 쫄아서 법학하려다 수도원 쳐들어간 애가.
Saint Dominic (Spanish: Santo Domingo), also known as Dominic of Osma and Dominic of Caleruega, often called Dominic de Guzmán and Domingo Félix de Guzmán (/ɡʊzˈmɑːn/; Spanish: [ɣuθˈman]; 8 August 1170 – 6 August 1221), was a Castilian priest and founder of the Dominican Order. Dominic is the patron saint of astronomers.
Saint Francis of Assisi (Italian: San Francesco d'Assisi, Latin: Sanctus Franciscus Assisiensis), born Giovanni di Pietro di Bernardone, informally named as Francesco (1181/1182 – 3 October 1226),[2] was an Italian Catholic friar, deacon and preacher.
단테 가 천국입구에서 보는 수레의 두 수레바퀴.의 두개가 도미니칸들과 프란체스칸.이야. 저 둘.이 정확하게 저 시대야. 저 현장의 완전한 한가운데의 사람인겨. 교황이 1122년 황제 무릎꿇리고, 그리고 카타르와 발도들이 극성을 부릴 때 티나온겨. 저당시 완전히 극과 극의 대립의 시기인거야 유럽땅이. 에이 물론 독일땅 게르만들은 논외여 얘들은 멍청한 바바리안 상태인거잖니. 프랑스 동남부땅과 이탈리아 중북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야.
저것때문에 성 도미니크.의 도미니칸 들이 나온거야. 저들을 막으려고 설교수도사들이 되는겨. 성 프란체스코.가 청빈으로 가면서 교황의 하락을 받아내는거고.
성 도미니크 라는 산토 도밍고.는 카스티야 사람이야. 스페인이여.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는 스폴레토 공작령.이야.
교황령이 위로 올라갈땨 양쪽이 홀쭉해. 왼쪽이 토스카나고. 오른쪽이 이 스폴레토공국.이야. 요 아래가 베네벤토.이고. 이건 위 롱고바르디 애들이 쫓겨와서 생기고 스폴레토.는 프랑크.에 하미지를 하는겨. 얘들은 마크령인겨 이게. 아래 막으라고. 이 스폴레토.의 가이.가 파리까지 쳐들어가고 황제도 되는거고. 할때 아시시.라는건 위 움브리아 가운데여.교황령과 부딪히고. 이게 1201년.에 교황령으로 들어와. 저기가 아펜니니 산맥 산속이지만 여기가 물류 통로라 장사가 되는거걸랑. 아빠가 비단 상인이고, 엄마가 프로방스 귀족여자야. 완벽하게 상인이라는 아빠 기질과 프로방스.의 엄마 생각.을 받아서 자기 생각을 갖게 된겨 프란체스코.는. 저 시대의 중심에서 청빈.을 내세운거고. 자기 재산 다 버리고.
이 수도회.라는것도 다시 생각해보면 웃긴거야 이건. 수도사의 시작은 3세기 사막의 아부지들이야. 이집트에서 시작한겨. 이게 다뉴브하류 사람이 서쪽에 소개해줘서 5세기에 생기는게 칸느 해변에 섬들이걸랑. 그리고 베네딕트 나오는거고.
저기에 성 오거스틴 의 수도회칙.을 만들어서 저기에 따르는겨. 가만히 모이면 이상한 영성주의 이단이 되기 쉽다며. 베네딕트도 자체 규약을 만드는거고. 이게 수도회란 것의 시작이야. 이건 로마 가 승인이란걸 하면서 하는겨 오히려. 다시보면, 아무것도 없는 로마교회니까 저런거라도 자기들 권위를 내세우며 세확장을 하고 싶었던거야. 동쪽엔 이따위 수도회란 없어. 걍 자기들끼리 사막가서 그리스도 하거나 집안에서 공간 마련해서 그리스도 하는거일 뿐이였어.
저 두 수도회가 저때 나오는데. 도밍고.가 프란체스코 보다 열살 많아. 카스티야 사람이 자기 코트.의 킹 결혼문제로 덴마크 에 가는길에 저 남쪽 프랑스 의 알비파 카타르들을 본거걸랑. 저들 설득하고자 설교하면서 뜬굼포 도밍고 수도회가 나와.
나이는 프란체스코가 열살어리지만 수도회는 먼저 승인을 받아. 직후에 도밍고쪽이 받고.
The Order of Preachers (Latin: Ordo Praedicatorum, postnominal abbreviation OP), also known as the Dominican Order, is a mendicant Catholic religious order founded by the Spanish priest Dominic of Caleruega (also called Dominic de Guzmán) in France, approved by Pope Innocent III via the Papal bull Religiosam vitam on 22 December 1216. Members of the order, who are referred to as Dominicans, generally carry the letters OP after their names, standing for Ordinis Praedicatorum, meaning of the Order of Preachers.
The Franciscans are a group of related mendicant religious orders within the Catholic Church, founded in 1209 by Saint Francis of Assisi. These orders include the Order of Friars Minor, the Order of Saint Clare, and the Third Order of Saint Francis. They adhere to the teachings and spiritual disciplines of the founder and of his main associates and followers, such as Clare of Assisi, Anthony of Padua, and Elizabeth of Hungary, among many others.
저 두 수도회.가 전.혀. 다른겨 성격이. 도미니칸 은 정식으로 Ordo Praedicatorum 오르도 프라이디카토룸. 프라이. 앞에서, 디코. 말하는겨.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의 오어더 order 오르도 란건 질서 라 번역하지만, 줄 지우는거고. 이게 법.이야. 법이란건 줄세우는겨. 줄이란건 정돈 이고. 무법.이란건 난잡한거야. 무엇을 하던 질서가 있어야 해. 그 대명사.가 직선.이야. 줄.이고 줄이란건 더 가면, 순서,가 되고 이게 계급이 되는겨. 어떤 곳이든 계급은 필수야. 피라미드적이어야만 할 수 밖에 없어 모든 생명체.의 모임.이 제대로 운영이 될라면. 그래서. 오르도. 란 말을 저 수도회 모임.에 다 붙인겨 로마 교황쪽에서. 니덜이 우리랑 느슨히 떨어져 있다고 마음대로 하지 말아라. 우리가 주는 법칙.에 따라서 설교를 하던 모나스틱 독고다이 그리스도 만나기를 하던 해야한다. 이게 수도회.라는 오어더.가 붙는 이유야.
도미니칸.은 OP 프라이디카투스.하는 법.에서 노는 애들인겨. 카타르 를 상대로 했었고. 그러기 위해 멘디컨트. 탁발도 했던겨. 스스로 벌어서 잠자고 먹고 하는거걸랑.
프란체스칸.은 그게 아녀. 설교내용이 참 그리스도 말씀을 일반적으로 하면서 멘디컨트를 하는겨. 이들의 주 설교내용은 머겠어. 갖지 말라 소유하지 말라여. 그러면서 우리네는 그 말 하는 사람들이니 우리같은 사람들이 많아야 하고 이런 사람들을 위한 의식주 좀 해결해 주세요 하면서 탁발하는겨. 이게 시작이 전혀 다른거야.
프란체스칸.은 대표적으로 세개 수도회여. 저게 아시시.의 프란체스코.가 생전에 다 만든 각각의 성격의 모임체야. 성 클라라 수도회.가 수녀들 여자들이야 제2계급.이라 하고. 제 3 수도회.가 재가자 들의 수도회여 이건. 불교식으론.
프라이어스 마이너.란 건 19세기 말에야 만든 정식 이름이야. 여기저기 남자 수도사들 의 프란체스칸들이 널려서 통일을 하고. 마이너.를 붙인겨. 자기 삶들이 마이너 하다며.
프란체스칸.이 기본적으로 청빈으로 갈 수 밖에 없어. 도미니칸.은 그리스도 말씀 위주고. 나중에 체사레 보르자 아빠 알렉산더6세 교황.때 프랑스 애들 들어오는 이탈리아 전쟁 에 피렌체가 메디치 쫓아내고 사보나롤라.가 인민놀이 정의놀이 하면서 피렌체 경제.가 바닥을 치고 할때 이 사보나롤라.가 도미니칸.이야. 보다못한 프란체스칸 수도회.에서 니덜 사기다 람시 불판 놀이 하다가 도미니칸들이 질질 끌고 시민들에게 맞아죽고 사보나롤라 화형시켜 죽이고 할때 봐도, 저 수도회.는 저당시 전혀 다른겨 저게. 저걸 서기 1300년 단테는 신곡에서 아잉 우리 교회진영 두 수레바퀴여 어쩌고 해댄거고.
저 프란체스칸.이 골때리는겨. 이게 독특해. 청빈.을 내걸어서, 저당시 1122년 이후여. 80년 지나서 저게 생긴겨. 카타르 알비파 십자군.이 1209-1229.야. 로마 교황쪽은 레반트 십자군의 힘으로 황제한테 서임권 뺏아오고 그야말로 절정일때인겨 이땐. 아코함락 1291 훨 이전이고.
도미니칸.도 제대로 세를 발휠할 때야. 카타르가 저때 20만이 죽어 최소한. 완전히 저 시작 한복판에 나온게 저 두 수도회야. 프란체스칸.은 말야, 로마교회들에 열받는겨 민심이. 영주들 교회들에 열받고. 그리스도의 청빈.이 제대로 먹힌겨. 이건 말야, 기존 교회들에 대한 반감이야 이건. 여기에 민들의 돈이 몰리는거고. 영주들의 돈이 이 프란체스칸에 들어오는겨 건물들을 주는거고 땅을 주는거고.
프란세츠칸.이 말야. 이게 세가 쎄지면서, 말로만 청빈 에 말뿐인겨 이게. 지들은 오히려 잘 살고, 더하여 로마를 봐. 로마교황의 교황령.에 더하여 저 알프스넘어의 황제령의 교회들이 로마교황께 된겨 저건. 수도회들 이란것도 이건 교황 직속이야. 와 걍 로마교황이 갑자기 이건 머 부자도 아니고 황제 저리가란겨.
프란체스코.가 한쪽은 완벽한 교황파.로 가는거야. 그래서 이 프란체스코 쪽이 교황의 오른팔이 되서리 이단심문에 적극 동참해 얘들이. 팡타그뤼엘 의 프랑수아 라블레.도 프란체스코 수도원에 적을 두었다가 그래서 베네딕트 수도원으로 옮기는거야. 뭔 말을 못하걸랑. 살벌하게 죽이는게 보이걸랑.
이 프란체스칸.들이 진영이 화악 갈리는겨 이게. 한쪽은 교황파. 한쪽은 황제파.
이당시 논쟁.이 Usus 우수스. 라는겨. 사용권. usage. utor 우토르. use 사용하는겨. usus facti 우수스 팍티. 파키오 . 만들다 하다. 교회진영에서 세속의 것들을 사용할 여지.가 어느정도여야 하느냐?
교황이. 자기 교황령.을 저리 크게 갖은 것도 웃긴거고. 독일땅 황제라는 세속권력을 이겨서 이제는 말야, 황제 선거에 이 교황이 개입을 하는겨. 시작부터 황제를 파면할 권리가 있다고 자부심 쩔며 시작한거걸랑. 저말은 황제도 자기가 임명할 권리를 유일하게 갖고 있다는 다른말이야 이게.
저때 서기 1250년. 프리드리히2세.가 교황이랑 전쟁하면서 교황이 뺏아간 남부 다 갖고 오고 롬바르디아 까지 다 먹을라다 죽었걸랑. 이후 대공위 시대여. 이때 교황이 황제 선거에 개입하면서, 세속에서 뽑은 황제.를 거부하는겨. 황제관을 안씌워주고 자기가 내세운 후보가 황제라며 안티황제가 등장을 해. 프리드리히2세.의 할배 붉은수염 1세.도 로마교황에 쩔쩔매면서 황제관을 써. 교황말 잘 들을 께요, 교황님이 쫓아내달라는 시칠리아 노르만 쉑 쫓아내드리께요.
완전히 말야. 로마교황 앞에 생쥐가 된겨 황제진영이. 프리드리히2세.는 아랍어도 하는 인간이야. 코트에서 아랍애들이랑 같이 놀아. 레반트 십자군 가기 싫어. 그걸 파문 해대면서 저거 내가 황제 앉힌은혜 모르는 놈 저거 저거 니 증말 안갈래? 얼렁 얼렁 가 이 황제 색햐. 억지로 간겨 프리드리히2세가. 가서 살라딘.이랑 쎄쎄쎄 하고 그냥 돌아와. 예루살렘 구경만 하고. 살라딘 코트쪽 애가 그걸 써. 야 저 프랑크 황제란 인간 참 웃기네. 저 코트의 프랑크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무슬림 나팔소리에 무릎꿁고 기도를 하고 황제는 서서 구경하고. ㅋㅋㅋ. 프리드리히2세.는 짱이야 짱 진짜. 이전 사자심왕 리차드.에 이어서. 아 쟤들 이야긴 정말 차원이 달라 이게.
교회 진영안에서도, 저건 어이없는겨. 생각있는 애들에겐.
어떻게 신권이 세속권을 저리 갖고 놀 수가 있냐 말이야. 어디 구석의 고대사회 무당도 제사때나 점이나 쳐주면서 추장에게 자문을 할 뿐이지. 자기가 머라고 대체 먼 힘이 있다고 세속의 절대자를 올리니 마니.를 지가 좌지우지 하면서 내란을 일으키냐 말야 이게.
이건 인류가 호모사피엔스로 부터 30만년. 30만년 동안 있어본적 없던 일이야.
저때 나오는게 신권 과 세속권.의 관계.인겨. 사버린 Sovereign. 이 문제를 이때 처음 고민을 하게 된겨 이게. 로마 교황 애들 때문에. 이런 고민은 한 적이 없어 인류가.
저기서 중심주제.가 저 우수스. Usus. 우수스 파크티. 교회가 어느정도 까지 make a use 사용을 해도 되느냐.의 문제걸랑. 세속의 것을. 황제 권력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저래도 되는가? 결국 머 부터 시작이 되냐면, 가만보자 저거. 교황이 지금 저리 땅을 저렇게 독자적인 사버린.을 행사하는 저런 교황령.이라는게 저게 맞아? 동쪽 비잔틴 페이트리아크.들도 저따위 거대한 땅은 없어. 저게 옳은거야?
Pope John XXII was determined to suppress what he considered to be the excesses of the Spirituals, who contended eagerly for the view that Christ and his apostles had possessed absolutely nothing, citing Pope Nicholas III's bull Exiit qui seminat in support of their view.[8] In 1317, John XXII formally condemned the group of them known as the Fraticelli
The Avignon Papacy, also known as the Babylonian Captivity, was the period from 1309 to 1376
교황 요한22세.가 스피리추얼즈. 프라티첼리.들이야. 이단이야. 프란체스코.에서 자기들이 진짜 청빈 프란체스칸.이라며 현 로마교황을 비난하던 이들이걸랑. 프리스피릿.이라는 자유영혼 파.와 달라. 프리스피릿.은 그리스도 의 신성.도 부정해. 이들은 교회의 신권.에 대한 문제 제기야. 교회의 탐욕을 걸고 넘어져. 지저스와 사도들의 시대는 절대적으로 무소유였다. 이건 이전 교황 니콜라스3세.도 우리 프란체스칸 내분 때 이 입장을 지지한 칙령에서도 언급한다. 당신 머냐 말야 당신.
서기 1317년.이야 저때가 아비뇽 교황정.의 초기.이고 저 교황 22세.는 아비뇽 교황정 시작한 클레멘스5세.를 이은 아비뇽 교황정.의 핵심이야.
1250년.에 프리드리히2세.가 죽고. 이탈리아는 겔피 기벨리니 라는 교황파 황제파 내전.에 교황이 프랑스 성루이 동생 앙주의 샤를.을 부르고. 이어서 성루이 십자군 대참패.에 아코함락 1291년.으로 레반트 십자군 2백년 막내리는거에. 이때 황제 대공위 시기인겨. 프랑스는 분풀이를 교황에 해대는거고, 얘들도 2백년 만에야 안거야. 자기들이 교황의 황제 서임권 핑게로 동쪽 비잔틴에 버금가는 서쪽교회를 지들꺼 로 하려는 터무니 없는 욕심의 레반트십자군 발기에 놀아난걸. 템플기사단에게 성루이 인질값 빚이나 엄청지고. 이 열받음.이 코트애들이 로마로 가서리 교황 싸다구를 갈긴겨 이게. 이 교황이 보니파체. 보니파티우스 8세 교황이야. 걍 필립4세가 애들 보내서리 감금해서 조오온나리 들구패. 나이 73세인 할배교황을. 이 충격으로 한달후에 죽어. 다음 교황이 베네딕트 11세.여. 암살로 죽은듯. 바로 다음 교황이 클레멘스5세.여. 아비뇽으로 끼들어가는겨. 필립4세 의 템플러기사단 빚 해결해주면서 기사단장 태워죽이고 기사단 해체하고. 이 다음 교황이 저 요한22세.야
저때 독일땅 황제진영은 아비뇽 교황정 시작하고나서. 1250년 이후 처음 황제.에 올라. 하일리히7세.여 룩셈부르크 가문.의 이것도. 로마교황이 아비뇽에 들어오면서, 이제 졸 웃기게도 저 황제 자리를 프랑스에서 콘트롤 하는거야.
필립4세.가 자기 할배 성루이.의 부채.를 떠맡아야 하는겨. 아코함락 1291년.이 얘때야. 레반트 십자군 2백년의 똥을 얘가 다 맞는거야. 로마교황 뚜들겨 패고, 애들이 지들이 그냥 아비뇽으로 들어왔어. 교황이 프랑스께 된겨 이게. 교황은 황제 선출에 저기 투표권이 있어. 아직 일곱장 정리되는 1356년 골든불.이 아냐. 저때는 서너장 에 한장 정도야 어떨땐. 허나 대관식을 하는 교황이 이빨이 졸 쎄진겨. 황제가 교황말을 들어야 대관식을 받아. 또 이런대관식에 여전히 절절매는겨. 이게 골때리는 상황이야. 지금 오른쪽 황제자리가 60년이나 빈자리야. 저걸 필립4세.가 자기 동생 발루아.의 샤를.을 앉히려 한거야. 헌데 이게 안되지 너무 티가 나니까. 이때 룩셈부르크 백작.이 자기에게 하미지 하면서 프랑스에 붙었걸랑. 이 가문을 자기 꼭두각시로 앉힌겨. 이게 하인리히7세.야. 당연히 아비뇽 교황.인 클레멘스5세.가 승인을 해야하고.
교황은. 프랑스를 이용했어야 했기때문에. 프랑스에 대한 서임권 문제제기는 못해 얜. 황제 가 교황 밥인겨 이게. 이게 웃긴겨. 더하여 저 먼 잉글랜드.가 또한 교황 밥이야 이게. 캔터베리 토마스 베킷.을 패죽이면서 오히려 헨리2세의 잉글랜드에게 역풍이 분겨 이게.
아비뇽 교황정.이란게. 정치적으로 너무 죽이 맞는 프랑스.와 로마교황.의 합작품의 결과야. 여기서 황제.진영을 갖고 노는거야 프랑스가. 교황을 이용해서. 아 정말 멋진 통찰인데. 이 아비뇽 들어가기전에 알비파 20만명 최소한 죽인 거고. 이단의 시대야 서유럽의. 저때가. 아비뇽 들어가서는 이탈리아쪽에서 더 난리야. 로마 교황이 아비뇽으로 들어갔어. 프라티첼리.가 이때 나오고. 프리스피릿.이 이 기운으로 저 내분상황인 스와비아.를 중심으로 독일땅에 퍼지는겨. 저기에서 또한 누가 나오냐. 뒤에는 얀 후스.가 1400년 서기 지나면서 보헤미아에서 티나오는겨
아비뇽교황정에 들어간 2대 요한22세.일때, 마침 이전 황제 룩셈부르크 하인리히7세가 일년하고 죽은겨. 1313. 이 다음해 저 필립4세 킹이랑. 클레멘스5세 교황도 죽고. 이때 부터 템플기사단의 저주 라민서 필립4세.의 세아들 루이10세. 필립5세. 샤를4세.가 내리 죽고. 루이10세.의 자식 장1세.도 갓난아기에서 죽으면서 카페 가 끝나고. 필립6세. 발루아 가 시작하면서 잉글랜드랑 백년전쟁을 하잖니. 저 필립6세.가 필립4세.의 동생 발루아의 샤를.의 장남이야. 이 발루아.의 샤를.이 카페앙주.가 나폴리 깅덤을 세우고 이 앙주.의 마가렛.과 결혼하면서 카페앙주.가 발루아 앙주가 되고. 다음 결혼을 코트니의 캐서린이랑 하면서 십자군 4차.가 점령한 비잔틴 발칸에 이 발루아 앙주.가 발을 디디는거야. 이 발루아 샤를.의 결혼운 으로.
이 다음 황제.가 바바리아 공작 루이. 루드비히4세.야. 이걸 요한22세 가 인정을 안해. 서로 안티 황제 안티 교황 세우는겨. 이게 마침 클레멘스 5세 교황이 죽고 막 빌때야. 루트비히가 게르만의 킹이 1314년에 오르고 대관식을 아헨에서 해. 이 아헨.이 프랑크 애들의 고향이고 샤를마뉴의 온전 휴양지야. 게르만 킹의 대관식은 아헨이야. 다음 교황한테 이탈리아 가서 대관식 하는거고. 게르만 킹 선출권도 교황에게 있는겨. 열받은겨 자기들 자리 빌때 게르만 킹 했다고, 황제대관식을 안해줘. 게르만 킹으로 인정 안해. 다른 킹을 내세워 교황이.
교황오른 요한 22세.가 무효화 하고 계속 저 나중 황제를 갖고 노는겨 이게. 이
루트비히4세.가 1314-47
교황 요한22세. 1316-34
아비뇽 교황정.과 대공위시대 실재 마지막교황의 시기가 저 두 사람이야. 아주 절정일때야. 여전히. 교황이란 신권과 황제라는 세속권의 싸움이. 이때 교황은 프랑스 우산에서 저리 황제진영을 갖고 노는거야. 이들이 서임권을 넘어서 황제 자리 자체.를 쥐고 흔드는겨 이게.
저건 정말 말도 안되는겨 진짜. 아이 서임권 뺏긴것도 황당어이인데 대체 저게 먼 짓이냐고 저게.
프란체스칸에서 특히나 반발하는거야. 얘들은 시작이 자체 내분이야. 자기들 교황파 프란체스칸 에 문제제기를 하는거야. 이게 진짜 프란체스코 뜻이냐 지금 우리가? 청빈을 모토로 시작을 했는데 우리가 갖은 땅이 이게 머며 이 사치스러움이 교황과 당신들이 결탁해서 이게 머하는거냐고 대체. 이걸 니콜라스3세 교황이 칙령을 발표하면서 그래 니덜 프란체스칸들 청렴해라. 한거걸랑. 이 칙령을 근거로 프란체스칸에서 나온 프라티첼리.들이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하는거야. 우리는 완벽한 무소유를 할꺼야. 이 논쟁이야 이게. 우수스 파크티.
우리는 우수스 파우퍼 usus pauper, poor usage 가난한 사용. 파버티 poverty 가 푸어.이고 파우퍼.야.
이 논쟁이 중심이야. 신권과 세속권.의 논쟁에서.
요한22세.가 저 니콜라스 3세 교황의 칙령.의 인용을 금지하고, 자기들 논리를 만드는거야.
On 26 March 1322, with Quia nonnunquam, he removed the ban on discussion of Exiit qui seminat[10] and commissioned experts to examine the idea of poverty based on belief that Christ and the apostles owned nothing. The experts disagreed among themselves, but the majority condemned the idea on the grounds that it would condemn the Church's right to have possessions.[9]
이 문장이 졸 재밌는건데. 교회의 소유권과 사용권의 문제제기야. 근본적으로 파고드는거야. 교회.는 어느정도 선의 소유.를 하여야 하는가. 우수스 파우페르.가 맞느냐. 이게 쉬운 문제가 아니걸랑. 아비뇽교황정에서 저걸 논의를 하는겨. 헌데 다수는 교회의 소유권.을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고 보는거야. 이게 단지 아비뇽이 타락해서라며 나오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할 수가 있어? 에이 말이 안되지. 그리 쉽게 말할 수 없어 저런 문제를.
The Franciscan chapter held in Perugia in May 1322 declared on the contrary: "To say or assert that Christ, in showing the way of perfection, and the Apostles, in following that way and setting an example to others who wished to lead the perfect life, possessed nothing either severally or in common, either by right of ownership and dominium or by personal right, we corporately and unanimously declare to be not heretical, but true and catholic
프란체스칸.이 반론을 해. 지저스.는 완벽하게 그리 보여줬어요. 사도들도 그걸 본받아서 다른 이들에게 그런 완벽한 삶, 즉 두서너개 나 공용으로도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어. 자기만의소유 정당성의 권리든, 지배권이든 개인의 권리에 의해 내꺼 자기꺼라며 소유하는 짓은 안햇어 지저스와 사도들은. 우리는 그래서 이단이 아냐. 우리가 진짜고 우리가 보편이라는 카톨릭.이야.
쎈겨. 이에 대한 아비뇽 교황정의 반론
By the bull Ad conditorem canonum of 8 December 1322,[11] John XXII declared it ridiculous to pretend that every scrap of food given to the friars and eaten by them belonged to the pope, refused to accept ownership over the goods of the Franciscans in future and granted them exemption from the rule that absolutely forbade ownership of anything even in common, thus forcing them to accept ownership. On 12 November 1323, he issued the bull Quum inter nonnullos,[12] which declared "erroneous and heretical" the doctrine that Christ and his apostles had no possessions whatever.[8][13][14]
요한22세.가 쟤들말을 비웃어, 야 니덜 위선떠는거 아냐? 수도사들이 받아서 먹는 음식들은 교황.꺼야. 니덜은 교황 울타리에서 수도원 차리고 탁발짓하는거잖니? 그러면서 프란체스칸들의 물건들에 대한 소유권을 거부한다고? 그러면서 같이 공통으로 어떤 것도 소유하는 걸 절대적으로 금지한다는 법.에 대해선 니덜한텐 면제권을 주면서 니들만 소유할 수 있다는거냐? 지금 니덜이 의식주 해결하는 그 모든게 니덜이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소유권속에서 사용하면서 사는거고, 음식도 그 소유권에 의해 니덜이 처먹는거고. 왜 니덜은 그런 소유속에 살면서 우리들한테는 소유권이 없다고 말하니?
이 소유권.이란 말이 졸 웃긴거야 저런 식으로 쳐들어오면.
프란체스칸 저 진영이. 저 논리에 논리적으로 밀려. 지들은 소유권이 없다면서 먹고 자는 그 곳과 것.에서. 그래서 이들이 반론을 해. 그건 내가 소유권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단지 빌릴 뿐이라고. 빌려서 임시 사용할 뿐이라고 ㅋㅋㅋ. 신 만이 소유한 것이고, 우리는 빌려 사용할 뿐이고.
저게 말이 되냐고.
헌데 대부분 애들은 걍 쉽게 저런 걸 보면, 아 교황 타락 프란체스칸 짱. 이리 쉽게 말하는데. 아니라고 봐 그또한.
Peter John Olivi, also Pierre de Jean Olivi or Petrus Joannis Olivi[a] (1248 – March 14, 1298), was a Franciscan theologian who, although he died professing the faith of the Roman Catholic Church, became a controversial figure in the arguments surrounding poverty at the beginning of the 14th century. In large part, this was due to his view that the Franciscan vow of poverty also entailed usus pauper (i.e., 'poor' or 'restricted' use of goods); while contemporary Franciscans generally agreed that usus pauper was important to the Franciscan way of life, they disagreed that it was part of their vow of poverty. His support of the extreme view of ecclesiastical poverty played a part in the ideology of the groups coming to be known as the Spiritual Franciscans or Fraticelli.
이 중심에. 프란치스칸 피터 존 올리비.가 있어. 프란체스칸의 프라티첼리 진영 사람이야.
Marsilius of Padua (Italian: Marsilio or Marsiglio da Padova; born Marsilio dei Mainardini or Marsilio Mainardini; c. 1275 – c. 1342) was an Italian scholar, trained in medicine, who practiced a variety of professions. He was also an important 14th-century political figure. His political treatise Defensor pacis (The Defender of Peace), an attempt to refute papalist claims to a "plenitude of power" in affairs of both church and state, is seen by some authorities as the most revolutionary political treatise written in the later Middle Ages. It is one of the first examples of a trenchant critique of caesaropapism in Western Europe.
파도바.의 마르실리오. 이사람의 책. 데펜소르 파키스. 평화의 수호. 여기서 말하는게 교황의 막강한 권력.에 대한 반박이야. 이때 고민하는게 과연 신권.은 어느정도 세속에 관여하여야 하는가.의 문제야. 저런 생각들을, 이제 실증적으로 경험적으로 논리적으로 실험적으로 엠피리컬 익스페리멘털.로 푸는겨 이때는. 이런 주제.는 처음인거니와 정치사회적 문제를 실증적 경험적 실험적인 사유의 논리로 푸는 것의 시작이야 서유럽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사고방식의 부활인겨 이게. 자연과학뿐아니라 인문학 진영에서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으로 정치체제들을 고민하고 시스템별로 장단을 비교하고 거기서 최적 답안지를 제공하지 않아. 시대와 요견별로 맞는거 쓰라는겨. 모두가 주인인 민주세상도 얘기 해. 그런 세상은. 카오스야 아리스토텔레스 의 정치학은.
신권.이 세속에 부딪히는건 저게 호모사피엔스 30만년 만에 처음이여 저게. 저게 시저로페이피즘.의 첫 사례 라지만. 시저로페이피즘.이란게 저리 쉬운 말이 아니라, 신권과 세속권과의 관계 에 대한 탐색의 시작이야 저건.
The tract Defensor pacis (The Defender of Peace) laid the foundations of modern doctrines of popular sovereignty. It was written by Marsilius of Padua (Italian: Marsilio da Padova), an Italian medieval scholar. It appeared in 1324 and provoked a storm of controversy that lasted through the century. The context of the work lies in the political struggle between Louis IV, Holy Roman Emperor and Pope John XXII. The treatise is vehemently anticlerical. Marsilius' work was censured by Pope Benedict XII and Pope Clement VI.
저게 단지 땅을 소유하니 마니 이문제가 아니라. 사버린.의 문제야. 여기에 법도 당근 들어가는겨 이게. 교회법 캐논로.와 세속권력의 세속법.의 전쟁이야 이건. 이 대표적인게 잉글랜드야. 잉글랜드.가 서임권에 토지소유권의 문제보다 잉글랜드가 지금 영국이 된 이유는. 다른 서유럽애들과 달리. 저놈의 교회의 사버린.의 대표적 무기 캐논로.를 세속에서 죽인겨. 이 시작이 헨리2세.여. 이게 지금 영국을 만든겨. 다른 유럽은 고대 로마.의 법의 판례들을 중세중기에 티나오는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다이제스트 이전썰.의 것들도 다시 뿌리면서 로마의 꾸리꾸리시절걸 저때도 쓴 동시에 이놈의 교회법에 휘둘린 땅이걸랑. 이 신권과 세속권이 시안하게 얽혀잇는겨 이게. 저 한몸뚱아리에서 킹이 교황위에 있으려 했던것일 뿐이고.
파퓰러 사버린티. 포풀라레스여 영어의 파퓰러.는. 옵티마테스.에 반대되는 민중파.여. 민들이야 민들. 시민들. 시민 주권.을 국민주권으로 대체하는거고. 이것에 대한 근대적 이론을 제공한게 저 당시의 평화의 수호.라는 파도바.의 마르실리오.의 책이야.
저게 서기 1324년.이야. 얘들의 정치학이란건 이 두께가 엄청난거야 이게. 국민주권.이란 말이 저때 티나온겨.
파도바.야. 베네치아 옆의 파도바. 알프스넘어의 게르만이 아냐.
Michael of Cesena (Michele di Cesena or Michele Fuschi[1]) (c. 1270 – 29 November 1342) was an Italian Franciscan, general of that Order, and theologian.
체세나.의 미켈레. 교황 요한 22세.에 반박하는 프란체스칸.이야. 다들 아비뇽 교황애들에 이단이야. 이들이 대피하는겨 그래서. 다 저 이야기야. 소유권 문제. 어느정도로 교회는 소유해야 하는가. 그럼 세속은? 그럼 민들이란?
William of Ockham (/ˈɒkəm/; also Occam, from Latin: Gulielmus Occamus;[9][10] c. 1287 – 1347) was an English Franciscan friar, scholastic philosopher, and theologian, who is believed to have been born in Ockham, a small village in Surrey.[11] He is considered to be one of the major figures of medieval thought and was at the centre of the major intellectual and political controversies of the 14th century. He is commonly known for Occam's razor, the methodological principle that bears his name, and also produced significant works on logic, physics, and theology. In the Church of England, his day of commemoration is 10 April.[12]
오컴의 면도날.의 이 오컴.이 저때 사람이야. 저 논쟁 사이에서 등장하는겨 이사람이. 프란체스칸.이야. 논리학. 피직스. 물리학자여. 이제야 말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재림한거걸랑 저때.
ius fori. ius poli . 오컴의 윌리엄.이 요한22세 에게 하는말. 니덜의 그런 주장은. 이우스 포리.라는 건데. 포럼이야. 니덜만의 끼리끼리 모여 만든 법칙인데 말야. 그건 이우스 폴리. 축. 태초의 잣대.의 법.이 아녀 그따위껀. 너희들만의 작위적인 이우스 포리 일뿐, 보편성이 없어 그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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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라 철학이라는게, 저당시 이단 이야기에 대한 반박을 위해 다시 그리스도를 재정립하는겨 교리를. 이제야 서유럽 진영에서 교리정립을 자기들이 하는겨. 초기 그리스도 시대의 교부들은 오거스틴, 도 히포.여. 로마랑 상관없어. 제롬.은 저짝 달마시안지 먼지 저짝이야 정확한 곳 몰라. 로마가 아녀. 걍 로마로 쳐주지만. 대~~~부분 교부들은 동쪽교회야.
이제서야 서유럽은 저걸 할 대갈빡이 된겨.
저때 이단에 대한 반박의 스콜라.에 더하여,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랍 학자들의 도움으로 이때 스민거야 이게. 나중 아랍 이야긴 할까 말까 넘어가고. 이때서야 엠프리컬한 경험적인 사유가 들어오는거야. 땅으로 내려오는겨 이제. 그래서 로직. 피직스.가 이 13세기.에 퍼지는겨. 이 중심에 저런 오컴의 윌리엄.이고. 이제는 말이지, 고대 그리스 로마.의 현실감각을 뛰어넘는 사유가 바로 터지는겨. 그리스도로 고민하면서 논리싸움 하면서 생각의 터가 확장이 된거걸랑. 바로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그래서 터지는거야. 그리고 바로 근대야.
이 중심엔. 단연코. 기필코. 확실히. 저놈의 교황들의 신권의 어이없는 세속권에 대한 우월감, 인류역사 있어본적이 없는 저런 짓들 속에서 저게 나온겨.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없었으면 산업혁명이란 없어. 이탈리아 르네상스.없는 현대 문명은 없어.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교황의 말도 안되는 뻘짓.이 만들어낸거야 이게.
Roger Bacon OFM (/ˈbeɪkən/;[6] Latin: Rogerus or Rogerius Baconus, Baconis, also Frater Rogerus; c. 1219/20 – c. 1292),
저들의 생각의 시작.이 서유럽에서 로저 베이컨.이야. 이 로저 베이컨.이 경험주의의 시작이야. 경험주의적 실증적 실험적 사고.란건 현실로 내려온겨 이게. 그리스도라는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겨. 그리스도 도 현실감을 이제서야 갖기 시작하는거고.
Ḥasan Ibn al-Haytham (Latinized as Alhazen[11] /ælˈhæzən/;[12] full name Abū ʿAlī al-Ḥasan ibn al-Ḥasan ibn al-Haytham أبو علي، الحسن بن الحسن بن الهيثم; c. 965 – c. 1040) was an Arab mathematician, astronomer, and physicist of the Islamic Golden Age.[13][14][15][16][17][18]
하산 이븐 알하담. 앨해즌. 알하젠. 현대 광학의 아버지. 아랍 수학자 천문학 물리학자.
Ibn Sina (Persian: ابن سینا), also known as Abu Ali Sina (ابوعلی سینا), Pur Sina (پورسینا), and often known in the west as Avicenna (/ˌævɪˈsɛnə, ˌɑːvɪ-/; c. 980 – June 1037) was a Persian[7][8][9] polymath who is regarded as one of the most significant physicians, astronomers, thinkers and writers of the Islamic Golden Age,[10]
이븐시나. 아비세나. 페르시안 박물학자.
Ibn Rushd (Arabic: ابن رشد; full name in Arabic: أبو الوليد محمد ابن احمد ابن رشد, romanized: Abū l-Walīd Muḥammad Ibn ʾAḥmad Ibn Rušd; 1126 – 11 December 1198), often Latinized as Averroes (English pronunciation: /əˈvɛroʊiːz/)
이븐 루시드. 아베로즈.
아리스토텔레스.가 저들로 가고. 저들게 로저베이컨.으로 가고. 이 로저베이컨.은 프란체스칸.이야. 이사람 의 실용적 실험적 사고가 저당시에 정치적으로 쓰여지는겨.
Thomas Aquinas (/əˈkwaɪnəs/; Italian: Tommaso d'Aquino, lit. 'Thomas of Aquino'; 1225 – 7 March 1274) was an Italian[10][11] Dominican friar, philosopher, Catholic priest, and Doctor of the Church.
토마스 아퀴나스. 는 도미니칸.이야. 스콜라 철학.하면 토마스 아퀴나스.지만, 그리스도.를 현실로 내린겨 저 사고방식으로. 그러면서, 신.은 더 그 위에 있으면 되는것을. 하는거고.
스콜라 없는 근대란 있을 수 없어. 이 스콜라.도 하이미디벌 때에야 나오는겨 이게. 서유럽에서.
이 사고방식이 정치적으로도 써먹히는겨 단지 교리뿐만이 아니라. 단지 물리학 광학 의학 천문학 의 자연과학 영역뿐만이 아니라
이게 모두 하이미디벌 때 나온거야.
이 하이미디벌.이란건 교황의 서임권 뜬굼포가 만든거야. 이것이 없었으면, 하이미디벌 이란 건 없었어. 자신있게 내가 말한다. 이건 인류역사상 없던 신권의 짓들이야. 저 짓들이 양 극단의 부딪힘을 일으키면서 생각이 터지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근대를 만든거야.
저 이야기.가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의 중심시대고 중심 주제야 에코 할배의 책이. 가장 중대한 시기걸랑 저때가. 저걸 알리고 싶은데, 너무 어렵고 복잡하걸랑. 소설로 쓴거야 두 개의 이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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