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triarch of Constantinople has been dubbed the Ecumenical Patriarch since the 6th century.[27] The exact significance of the style, which has been used occasionally for other prelates since the middle of the 5th century, is nowhere officially defined but, according to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the title has been criticized in the Catholic Church as incompatible with its own claims by the Holy See.[27]  

 

이스턴 오소독스 처치.라는 동방정교회.에서 로마 교황 자리.가 콘스탄티노플.의 에큐메니칼 페이트리아크.야 이 에큐메니탈.이 콘스탄티노플.에 쓰인건 5세기 부터 쓰이다가 6세기에 통칭이 된겨. 이때부터 콘스탄티노플.의 페이트리아크.에게만 붙게 되는겨 이 에큐메니칼.이란 타이틀.이.

 

비숍.위에가 아치비숍. 이고. 아치비숍위에가 파트리 patri- 아빠.가 붙는겨 얘들은. 페이트론. 후원자 수호자.가 아빠란거고. 원래 교회가 다섯 페이트리아크 체제였다가. 이게 1054년 정식 동서교회 분리하면서. 로마라는 페이트리아크.가 공식적으로 홀로 선거야. 동쪽 오소독스.는 네개인 콘스탄티노플.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이었다가 나중에 불가리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조지아 러시아. 가 지금 페이트리아크.라는 총대주교.가 아홉 있는겨. 그 외 지역은 아치비숍.이나 메트로폴리탄 비숍.이 자치적으로 있는거고. 

 

로마 카톨릭.도 이전 정리했지만 동쪽에 이스턴 카톨릭 처치.가 있어. 여기들도 페이트리아크들.로 관구와 조직을 나누는거고. 로마 도시가 거대한 라틴 카톨릭의 페이트리아크의 중심을 겸하는겨 또한. 16세기가 지나면서. 페이트리아크.란게 오소독스만의 조직이 아냐. 세계로 흩어지면서 앵글리카니즘도 페이트리아크.라는 자리로 조직을 크게 나눠.

 

문제는 에큐메니칼.이란거야. 6세기부터 거의 콘스탄티노플.에만 붙는겨 이게.

 

From Latin oecūmenicus, from Ancient Greek οἰκουμενικός (oikoumenikós, “concerning  οἰκουμένη (hē oikouménē, “the inhabited (earth)”)”, “the whole (known) world”). Cognate with French œcuménique.[1]   

 

에큐메니칼.이란 말은. 오이쿠메니코스. 거주하고 있는 땅. 즉 모든 (알려진) 세상.이야. 세계 그리스도 회의 어쩌고.를 쓸때 이 에큐메니칼.이란 단어를써.  이건 전적으로 말야, 이스턴 오소독스 처치.가 주관하는겨. 이 에큐메니칼 이란 단어를 로마 카톨릭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야 이건. 로마는 저 단어 들어가는 세계 어쩌고 종교모임엔 관심이 없어. 지들이  머라고 저 에큐메니칼 이란 단어를 쓰냐는겨 저게. 

 

From Middle English popepopa, from Old English pāpa, from Vulgar Latin papa (title for priests & bishops, esp. & by 8th c. only the bishop of Rome), from early Byzantine Greek παπᾶς (papâs, title for priests & bishops, especially by 3rd c. the bishop of Alexandria), from late Ancient Greek πάπας (pápas, title for priests & bishops, in the sense of spiritual father), from πάππας (páppas, “papadaddy”).  

 

포프.란 교황.이란 말은. 로마에서 8세기에 쓰기 시작한 말이야. 이건 말야. 정확하게. 서기 756년 교황령을 소피핀.에게 받고 부터 써대는겨 쟤들이. 이걸 쟤들도 몰라. 서기 756년 이란게 로마 카톨릭.의 역사를 만든 말이야. 쟤들이 이걸 몰라서 서카.라는 8세기 즈음부터.라고 짐작하는거걸랑. 

 

포프.란 말은 알렉산더 주교.가 3세기부터 쓰던 말이야. 이건 흔한 호칭인겨 동쪽 사제들에겐. 이걸 로마가 서기 756년 부터 본격적으로 갖다 쓴거야. 그리스어 파파스.야. 이건 애칭이야. 파트리.는 아버지.란 말이고. 파파스. 파파.는 아빠.야. 파파스.가 애기가 밥달라고 우는 울음소리야 이게. 애기가 파파 파파 하면서 밥달라고 우는거걸랑. 마마 파파 가 어디나 똑같은 말이 되는겨 전 지구상에. 마마가 우리넨 엄마 고 파파 가 아빠야. 이건 정확하게 어원이 같아. 애기가 우는 소리여 밥달라거나 칭얼댈때의 의성어야. 또는 달래는 소리야. 음 마 음 마. 애기한테 밥 줄때 음 마. 입닫은 거 떼 내라는 거걸랑 아기야 이 밥 줄테니 입벌려 엄마 입모양 보고. 음 빠 음 빠. 빠 빠 빠 파파파파파 하고 입벌리라는겨 이게. 이게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는겨. 마마에 파파가 되는거고.

 

아  타이핑질 하다보니 별 개소리가 다 나오는데. 저런게 언어의 시작이야. 내가 우주 최고의 언어학자 잖니.

 

저게 개소리같이 들리겠지만, 저게 맞아.

 

교회에서 초기 선교하면서, 자기들을 민들에게 친근히 접근시키는  훌륭한 마케팅 도구인겨 저게. 얘들 머리 잘 쓴겨 진짜. 모든 종교든 간에 겁박을 하면 안돼. 친근하게 접근해야 해. 이게 포교의 제 1 원리인겨. 

 

3세기 부터 동쪽에서 쓰던말을 로마가 8세기.에 본격적으로 갖고 온거야. 서기 756년 이후로. 우리 로마카톨릭.의 최고는 아버지는 아버지인데요. 친근한 아버지예요. 파파.예요. 엄청난 통찰이야 이게. 이걸 정식 교황 호칭으로 만든 저 당시의 인간들은 대단한 이들인겨.

 

헌데 말야. 얘들은 저 당시도 여전히 다섯 페이트리아크.의 하나 일 뿐이야 로마교회는. 로마 주교도 로마 페이트리아크.야. 로마 총대주교 일 뿐이야. 헌데  콘스탄티노플 페이트리아크.앞에 언제부턴가 에큐메니칼 을 붙이는겨 이게. 6세기 부터는 본격적으로 붙이기 시작해. 저러면 호칭이 전지구적인 총대주교. 이따위가 되는거걸랑. 이게 은근히 싫은겨 로마는. 얘들은 비잔틴에게 항상 요구하던게 다섯 페이트리아 아크.가 아니라. 로마.가 그 위 라는거걸랑. 다른 교회는 자기 아래인거고. 이따위 페이트리아크 라는 것도 마음에 안드는겨. 로마 교회가 맨 위에 앉아서 비잔틴 황제와 동등하게 저 나머지 페이트리아크.를 관할해야 하는거야. 콘스탄티노플 페이트리아크.가 특히나 미운겨. 이 콘스탄티노플 이란건 콘스탄티누스 대제 가 만든 수도일뿐 성경 이야기에선 아무런 상관이 없어 저 도시는. 그냥 황제랑 같이 있다고 쟤가 주인 행세 하는거걸랑. 이 로마교회는 이게 가장 답답한거야. 헌데 얘들은 자기들을 뒷받침해줄 아무런 정치적 세력 세속권력이 없는겨.

 

종교란건 세속권력.을 전제로 하는겨. 세속권력 없는 종교란건 있을 수가 없어 고대부터 지금까지.

 

로마교회란건 오직 베트로 반석 이거 하나야. 자기가 속한 세속은 오도아케르에 오스트로고쓰에 다음 위는 롱고바르디라는 게르만 바바리안들이 점령하고 아래에는 비잔틴이야. 비잔틴의 엑스아르크 우산안에 있는 미미한 존재인겨 얘들은. 로마가 이 둘 사이에 낑기면서 비잔틴에 기댄 상황이걸랑. 롱고바르디.가 언제든 쳐들어올 상황이었던거고 2백년이. 

 

이상황에 먼  알프스 넘어 애들은 저놈의 똑같은 롱고바르디 애들의 다른 가면들일 뿐인겨. 로마 교회란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야. 걍  동네 교회여 저게. 

 

그러면서도 뻗대는겨 비잔틴에. 우리를 저 맨 위 자리로 달라. 우리가 모든 교회를 통제하게 해달라.

 

세상에 이따위 염치없는 애들이 없어 다른 교구들이 보기엔. 그렇다고 베드로 로마.를 머 어찌할겨. 성경 문구의 지저스의 한마디 권위가 엄청난겨 저건. 진짜 지저스가 그런 말을 한건지 아니면 스크라이브 라는 필경사가 옮겨 적으면서 덧붙인건지. 베드로 열혈 팬.이 슬쩍 앞에다가 썼을 수도 있걸랑. 머 어쩌겄어. 저 말은 그리스어 로 되어있던 코덱스에서 나온걸. 라틴애들이 주작한 것도 아니고. 저게  불편한 상황이야 교회 진영이. 그래서 옛따 걍 니덜이 동등한 우리 다섯중에 1번.이다. Primus inter pares 프리무스 인테르 파레스. 퍼스트 어몽 이퀄즈. 란 명함만 준겨. 로마때 프린켑스 세나투스. 원로원 연설할때 첫번째 주자여. 이게 아우구스투스.가 황제 되면서 프린켑스.를 쓴거고. 콘스탄티누스.도 자긴 프리무스 인테르 파레스.야. 저건 말야. 호칭 받는 자를 높이는 말이 아냐. 저기의 방점은 프리무스.에 있는게 아냐. 인테르 파레스.라는 뒤의 이퀄즈 equals 에 있는겨. 시민이나 황제나 똑같은 동등함.이란겨. 립서비스여 저건. 이걸 아우구스투스.가 정치적으로 자기를 칭하면서 쓰기시작한거야. 영악한겨 이게. 얘들은 정말 최고의 마케터야 이런거 보믄.

 

쟤들은 시작부터 그런 갑질이 없어. 카이사르.는  맨몸으로 로마 시내를 지 혼자 걸어다녔어. 경호원들도 다 치우고. 아 카이사르. 란 인간은 정말 최고야 최고. 인류역사상 이런 매력적인 인간은 없어. 

 

저런게 유럽애들의 롤 모델이 돼. 귀족도 피어리지.여. 같은겨 파레스의 페어여. 원탁이고. 더하여 귀족들간 같다 를 더 가서 민들과 자기도 같은겨 저게. 저기서 먼  구십도 허리를 접어서리 선배님 해대는 예의 짓 이 그딴건  흑인노예도 안했어. 장관이란 애가 당에 인사한답시고  허리 접고 왼손으로 오른 팔꿈치 바치고 악수 드리고 

 

저게  저게 머여 저게. 조폭 들도 아니고. 저런 애가 지들의 정의라며  정말. 조선이여 조선이여 우대한 조선이야 우리 조선민족이여

 

로마교회는 저 이상 뭔 진도를 나가고 싶어도 못나가. 

 

지금 그리스도란건 동쪽교회가 만든겨 이건. 이스턴 오소독스 처치.에 네스토리우스 들이 만든게 지금 온 세상의 그리스도야. 이 로마.라는건 지분이 없어 얘들은. 일곱 초기 공회의.도 전적으로 동쪽에서 주축으로 한거야. 초기 교부들은 여기서 다 나온겨. 저 외진 곳 로마교회에서 무엇을 할거야 쟤들이. 저길 육로로 가려해도 그 사이는 게르만에 슬라브들이 쫘악 깔렸어. 지중해로 가서리 꾸역꾸역 험한 지중해 바람 맞고 도착하면 다행이고.

 

그리스도란건 이스턴 오소독시가 만든겨 지금. 

 

로마교회란건 서기 756년 부터 시작하는거야. 소피핀이 준 로또에 의해서. 세상에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 전무후무한 일이야. 헌데 여기에 또 로마의 사기질이 있는겨. 이 로마교회란 애들은 참으로 골때리는 애들이야 얘들이.

 

아 이런게 글들로 정리하면서 하나하나 풀어지는건데. 이런 이야긴 말야 영어로도 없어. 나의 모든 이야긴. 아 이걸 쟤들한테 갈키줘야 하는데 말이지.

 

생각하다보믄 정말 감탄사가 나와. 아 이게 그래서 저런 거구나. 하는. 

 

참으로 기가막혀 진짜 쟤들의 했던 짓을 보면. 저 로마 교회란건 음청난 애들인겨 . 저 사기질. 세상 최고의 사기꾼인데 얘들이 ㅋㅋㅋ. 아 헌데 저게 제대로 먹힌겨.

 

난 로마 카톨릭.이 지금. 세상빠닥 흔한 프로테스탄트 들보다 천만배 나은 애들이라고 봐.

 

내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리스도 종파를 선택을 한다면  당연히 로마 카톨릭.을 선택하지. 허나 내가 그리스도 교단에 취직할 일은 없고 말이지. 난 렬렬한 아이를 외계인님을 추종하는 교주걸랑. 어드래  내 교단을 버릴수가 있겄니. 아잉 샹 신도가 없어 이게.

 

아  아이를교 포교해야 하는데 이거. 

 

지금부터 나오는 이야긴 나만의 아주 엄청난 이야기야 ㅋㅋㅋ.

 

이전에 말야.

 

교황을 언급할때. 홀리 씨. holy see 라 하걸랑. 

 

The word see is derived from Latin sedes, which in its original or proper sense denotes the seat or chair that, in the case of a bishop, is the earliest symbol of the bishop's authority  

 

씨.라는건 세데스.야. 세데오 sedeo. 내가 앉다.의 명사여. 의자여 seat. 성스러운 의자. 온전한 의자.인겨. 

 

cathedra (Latin for "chair"; from Greek: καθέδρα kathédra, "seat") or bishop's throne is the seat of a bishop. It is a symbol of the bishop's teaching authority in the Catholic Church, the Orthodox Church, and the Anglican Communion churchesCathedra is the Latin word for a chair with armrests, and it appears in early Christian literature in the phrase "cathedrae apostolorum", indicating authority derived directly from the apostles;[1][2] its Roman connotations of authority reserved for the Emperor were later adopted by bishops after the 4th century.[citation needed] A church into which a bishop's official cathedra is installed is called a cathedral.  

 

의자.란게 그리스어로는 카떼드라.야 from κατά (katá, “down”) + ἕδρα (hédra, “seat”)   카타.가 숙이는겨. 에드라.가 의자.야. 앉으면 낮아져. 라틴어도 저걸 그대로 라틴표기해서 카테드라 라고 쓴거고. 헌데 라틴애들은 자기들 말 세데스.가 이미 있었어. 그래서 세데스.를 쓴거야. 카떼드라.에서 chair 체어.가 오고 세데스 에서 seat 시트.가 와. 

 

주교가 앉는 자리.가 카떼드라.야. 그래서 커띠드럴 cathedral 이란 말을 우리말로 성당 으로 번역하는데, 물론 일본애들 번역인거고. 그래서 커띠드럴은 카톨릭 교회. 처치.는 개신교 교회 로도 알고있걸랑. 그게 아니고. 주교가 앉는 카떼드라.라는 의자가 있는 교회.가 커띠드럴.이야. 커띠드럴.이란건 주교가 있는 교회.란거야 그래서. 

 

로마에서는 저 커띠드럴.을 착안해서. 자기 말 세데스.를 갖고 온겨. 저 위에 올려놓고 이게 홀리 씨.가 된겨. 

 

이 홀리 씨.란건 교황 호칭. 아너리픽 스타일.이 아냐. 교황을 부를땐. His Holiness 히스 홀리니스.야. 콘스탄티노플 에큐메니칼 총대주교를 부를땐 His All Holiness 히스 올 홀리니스.야 달라 이게.

 

The Holy See (LatinSancta SedesEcclesiastical Latin[ˈsaŋkta ˈsedes]ItalianSanta Sede [ˈsanta ˈsɛːde]), also called the See of Rome, refers to the jurisdiction of the Bishop of Rome, known as the pope, which includes the apostolic episcopal see of the Diocese of Rome with universal ecclesiastical jurisdiction of the worldwide Catholic Church, as well as a sovereign entity of international law.  

 

홀리 씨.라는건 로마 카톨릭.만 쓰는 말이야. 이건 에피스코펄 씨.라는겨. 거버넌스야. 자기들 관할이란겨. 에피스코펄 이란게 감독자 와치맨.이야. 이건 로마 카톨릭.이 관리하는 세상 모든 교회 범주.란거야. 

 

The Patriarchate of Constantinople is governed on the basis of the decisions of the ecumenical councils, the holy canons, and the long history, tradition and praxis of the church. The patriarch is elected by an assembly of the "endemousa", a synod consisting of all metropolitans who are Turkish citizens, residing in Turkey.  

 

지금 콘스탄티노플 페이트리아크.를 선출하는건. 엔데무사.라는 콘스탄티노플 시노드.에서 투표로 선출해. 저게 영어로만 보믄 어설픈데 마치 모든 시민들이 국민투표 하듯. 그게 아니라. 저 시노드.는 저 권역의 주교들 모임체.야. 이들이 선출하는겨. 따로 로마처럼 전세계 카디널들이 모이는게 아냐. 콘스탄티노플 주교들이 투표로 뽑는겨. 이 사람이 에큐메니칼 도 같이 취하면서 세계 총대주교.가 되는겨 이스턴 오소독시 진영에서. 

 

비잔틴은 각각 오토세펄리.라는 자치지역들이고 자기들이 주교를 뽑고 그 주교들이 총주교를 뽑아. 주교가 비면 그 교회 지구에서 죽기전에 임명하거나 거기 고위직 사제나 디콘이 뽑았던겨 예전엔. 주위 주교들이 모여서 뽑거나.

 

이런것도 지금 이야기고. 결국 콘스탄 총대주교 자리 역시 황제.가 선출을 했던거야 망할때까지. 콘스탄 페이트리아크.는 황제의 입일 뿐이야. 이스턴 오소독시.는 비잔틴 황제에게 대들 수가 없어. 비잔틴 황제들은 여러 다이너스티.로 끊기고 이어지고 하는거고. 저기서 새 황제 올라오면 충성충 해야 해. 그 와중에 알력 싸움이 있을 뿐이고. 

 

동쪽 교회들 네 페이트리아크.가 지배하는 저 곳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313부터 철저하게 자리를 잡은겨. 그러다 사산 에 이슬람들 들어서면서 뺏긴 지역안의 그리스도는 페르시안과 아랍애들 투르크들 눈치보며 깨갱한거고 콘스탄티노플에 붙어있던 페이트리아크.가 계속 중심을 잡아준겨 얘들이. 얘들은 훈족애들 올때도 뇌물로 버틴 도시야. 여길 중심으로 지들은 계속 자리를 잡아준겨. 일곱차례 공회의도 이들 네 페이트리아크.가 중심이 되서 한겨 저 와중에. 이들이 그리스도의 중심인거야. 여기서 떨어저나간 네스토리우스.는 시리아에 인도와 중국을 가는거고. 

 

로마는 아무런 밸류가 없어 이게. 이놈의 로마 카톨릭은. 서기 756년 전까진. 끽해야 서기 600년에 그레고리1세.가 캔터베리 에 발 담그고. 알프스 넘어의 교회들을 로마카톨릭 진영으로 선언 했던것 뿐이야. 형식적인 말뿐인거야 이건. 알프스넘어의 게르만들은 자기들 게르만식화된 그리스도들을 하는겨 저게. 완전히 정교일치된 로칼 지역들의 군주에 소속이 되서리 세속과 철저하게 하나가 된 교회들이야. 여기에 로마교회는 아무런 지분이 없어. 

 

Constans II (Greek: Κώνστας Β', Kōnstas IILatinHeraclius Constantinus Augustus or Flavius Constantinus Augustus; 7 November 630 – 15 September 668), also called Constantine the Bearded (Κωνσταντῖνος ὁ Πωγωνάτος Kōnstantinos ho Pogonatos), was emperor of the Byzantine Empire from 641 to 668.  

 

로마 교회.에 2백년 만에 황제가 찾아와. 이라클리오스 조.의 콘스탄스 2세.야. 시칠리아섬으로 수도를 옮겨. 콘스탄 분위기 안좋아서. 여기서 목욕탕에서 빠께스 맞아 죽었다고 햇잖오.

 

In 663 Constans visited Rome for twelve days—the only emperor to set foot in Rome for two centuries—and was received with great honor by Pope Vitalian (657–672). Although on friendly terms with Vitalian, he stripped buildings, including the Pantheon, of their ornaments and bronze to be carried back to Constantinople, and in 666 declared the Pope of Rome to have no jurisdiction over the Archbishop of Ravenna, since that city was the seat of the exarch, his immediate representative.  

 

이사람이 시칠리아로 옮기고. 당시 롱고바르디 정벌한다는 핑게로 바다건너 와. 로마를 서기 663년.에 12일간 머물러. 서로마 망하고 2백년 만에 황제.가 온겨 여길. 로마 주교로서는 얼마나 반갑겠어. 감격이야 감격. 로마는 거지여 거지. 

 

헌데 저 콘스탄스2세가 로마에 와서 값나가는 진귀한 장식물들을 다 걷어가 ㅋㅋㅋ. 싕기하걸랑. 그리고 3년 후 서기 666년 에는 로마 주교.는 라벤나 주교한테 아무런 권한 행세 말라.고 선언을 한거야. 라벤나가 비잔틴의 왼쪽 수도인겨. 로마가 계속 저 라벤나 우리 밑으로 넣어줘유 징징대는걸 선을 확 거버린겨 저때. 이후 다음 황제에 저 선언은 취소가 되지만.

 

그만큼 로마는 아무것도 아냐. 얘들은 걍 떨거지여 이게. 저런 로마가  서기 756년 소피핀의 약속이행으로 뜬굼없이 세속의 넓은 땅이 생겨버린겨 이탈리아에.

 

로마는 비잔틴에게 상대가 안되던 애들이야 그 세력이. 비잔틴 교회쪽의 저 촌동네 작은 교회여 저게.

 

소피핀.이 저 약속.을 문서로 다짐한건 역사적 팩트야. 그리고 이행을 해. 이게 정말  미스테린겨 가만보믄. 이게 말이 안되는거걸랑.

 

The Donation of Constantine (LatinDonatio Constantini) is a forged Roman imperial decree (Diplom) by which the 4th-century emperor Constantine the Great supposedly transferred authority over Rome and the western part of the Roman Empire to the Pope. Composed probably in the 8th century, it was used, especially in the 13th century, in support of claims of political authority by the papacy.[1] Lorenzo Valla, an Italian Catholic priest and Renaissance humanist, is credited with first exposing the forgery with solid philological arguments in 1439–1440,[2] although the document's authenticity had been repeatedly contested since 1001. 

 

콘스탄틴의 도나티오. 소피핀의 도나티오. 기부.의 근거가 이놈의 콘스탄틴 기부 사건.이야.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 313 하고 이 삼년 후.인 3월 30일.에 왜 자기가 그리스도가 되었고 세례를 받았는가. 그래서 당시 로마주교에게 이탈리아 땅과 서쪽땅을 줬다.는 문서여 이게. 

 

In many of the existing manuscripts (handwritten copies of the document), including the oldest one, the document bears the title Constitutum domini Constantini imperatoris.[3] The Donation of Constantine was included in the 9th-century Pseudo-Isidorean Decretals collection.    

 

이걸 필사해서 남은 9세기 문서가 가장 오래되었는데 현재.

 

The text, purportedly a decree of Roman Emperor Constantine I dated 30 March, in a year mistakenly said to be both that of his fourth consulate (315) and that of the consulate of Gallicanus (317), contains a detailed profession of Christian faith and a recounting of how the emperor, seeking a cure for his leprosy, was converted and baptized by Pope Sylvester I. In gratitude, he determined to bestow on the seat of Peter "power, and dignity of glory, and vigour, and honour imperial", and "supremacy as well over the four principal sees, AlexandriaAntiochJerusalem, and Constantinople, as also over all the churches of God in the whole earth". For the upkeep of the church of Saint Peter and that of Saint Paul, he gave landed estates "in JudeaGreeceAsiaThraceAfricaItaly and the various islands". To Sylvester and his successors he also granted imperial insignia, the tiara, and "the city of Rome, and all the provinces, places and cities of Italy and the western regions"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주교에게 감사하다면서, 베드로의 의자, 그 자리라는 건. 힘 고귀한영광, 생기, 제국의존경. 의 그 자리. 나머지 네 페이트리아크 를 넘어 지배할 지배의 자리. 뿐이 아니라 모든 세상의 모든 신의 교회들의 윗자리. 라며 걍 최고의 말들로 베드로의 자리.를 떠받들면서, 

 

베드로와 파울로스.의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가 유대땅. 그리스. 아시아. 트라키아. 아프리카. 이탈리아. 여러 섬들. 곳곳에서의 땅들을 거기마다의 교회들에 줬다는겨. 그러면서 또한 로마 주교에겐. 제국의 인시그니아. 티아라. 로마제국의 헤럴드리가 그려진 휘장. 왕관.을 선물로 주고. 더하여

 

로마라는 도시. 그리고 이탈리아의 모든 주들 장소들 도시들. 그리고 서쪽지역들.을 로마 주교에게 줬다.

 

라는 문서여 저게. 엄청난 사기질인데.

 

Composed probably in the 8th century, it was used, especially in the 13th century, in support of claims of political authority by the papacy.[1] Lorenzo Valla, an Italian Catholic priest and Renaissance humanist, is credited with first exposing the forgery with solid philological arguments in 1439–1440,[2] although the document's authenticity had been repeatedly contested since 1001.[1]  

 

저게 8세기 즈음에 나온걸로 보여. 13세기에 특히 교황이 심심하면 세속을 상대로 주장하는 갑질이었던겨 저걸 근거로. 그래서 단테 가 신곡에서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비난하걸랑. 야 당신때문에 교황이 배가 불러서 타락했어. 해대면서. 저 문서가 아주 중세에 사람들이 모두 아는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진거야. 이게 위조란게 서기 1440년 에야 밝혀지는겨. 이 문서에 대한 문제 자체는 1001년 부터 제기가 되어 왔던거고. 단테 이후 백년만에 저건 위조임이 밝혀진겨. 

 

The first pope to directly invoke the decree was Pope Leo IX, in a letter sent in 1054 to Michael I CerulariusPatriarch of Constantinople.[3] He cited a large portion of the document, believing it genuine,[6][7] furthering the debate that would ultimately lead to the East–West Schism. In the 11th and 12th centuries, the Donation was often cited in the investiture conflicts between the papacy and the secular powers in the West.[3]  

 

저 문서.가 1054년 동서교회 분리 할때 로마 교황이 콘스탄티노플 에큐메니칼 페이트리아크.에 내밀던 자기들의 근거여 또한. 대체 왜 우리가 니덜 말을 들어야 허냐. 그리스도 최고의 황제 콘스탄 대제가 우리에게 이런 문서를 확증하며 주신거 모르느냐. 니덜은 우리 아래임을 명명백백하게 말씀하시지 않느냐. 

 

 

In 1053, the first step was taken in the process which led to formal schism: the Greek churches in southern Italy were forced either to close or to conform to Latin practices.[9][10][11] In retaliation, the Ecumenical Patriarch of Constantinople Michael I Cerularius ordered the closure of all Latin churches in Constantinople. In 1054, the papal legate sent by Leo IX travelled to Constantinople for purposes that included refusing to Cerularius the title of "Ecumenical Patriarch" and insisting that he recognize the Pope's claim to be the head of all the churches.[2] The main purpose of the papal legation was to seek help from the Byzantine Emperor in view of the Norman conquest of southern Italy and to deal with recent attacks by Leo of Ohridagainst the use of unleavened bread and other Western customs,[12] attacks that had the support of Cerularius. Historian Axel Bayer says the legation was sent in response to two letters, one from the Emperor seeking assistance in arranging a common military campaign by the eastern and western empires against the Normans, and the other from Cerularius.[13] On the refusal of Cerularius to accept the demand, the leader of the legation, Cardinal Humbert of Silva CandidaO.S.B.excommunicated him, and in return Cerularius excommunicated Humbert and the other legates.[2] This was only the first act in a centuries-long process that eventually became a complete schism.[14]

동서교회 분리 1054년.을 다시 보면 말야. 저때 비잔틴 쪽에서 가장 열받은건. 서기 999년 부터 들어온 노르만 들이야. 이 노르만들은 예루살렘 순례하다 돌아가는 길에 당시 내려온 롱고바르디 가 지배하는 베네벤토 쪽 시민들이 요청한거야. 제발 좀 이슬람 해적들좀 막아달라. 저 롱고바르디 귀족애들. 해변의 비잔틴애들은 아무 힘이 없다. 당신들이 여기 와서 쟤들 몰아내고 이슬람 막으면서 우릴 지켜달라. 당신들이 우리들의 군주가 되어라. 한거걸랑 이게. 그래서 이들이 노르망디에 가서 친구들 데리고 오는게 이탈리아 들어오는 시작이야. 

 

그러면서 50년 지난거걸랑. 어느정도 반도는 해결이 된겨. 그리곤 여기 지역의 교회들이 비잔틴 관할에서 모두 로마 교회.로 들어오는거야. 베네벤토 나 나폴리 나 모두 비잔틴 관할인겨 이게. 비잔틴 애들이 보기엔 저 노르만 들이란게 자기들 적군인거야. 로마 에게 항의를 하는겨. 저 노르만 애들을 정벌해 달라. 라며 십자군이 이때 최초로 등장하는겨. 이 십자군은 비잔틴 입장이야 로마 입장이 아냐. 로마에겐 노르만이 친구여 이게.

 

Constantine IX MonomachosLatinized as Constantine IX Monomachus (Medieval Greek: Κωνσταντῖνος Θ΄ Μονομάχος, romanized: Kōnstantinos IX Monomachos; c. 1000 – 11 January 1055), reigned as Byzantine emperor from 11 June 1042 to 11 January 105

당시 비잔틴 황제.가 마케도니아 조.의 마지막 모노마코스.야. 오른쪽엔 셀주크.가 통일하면서 서진을 하고 위 불가리아.는 마케도니아 조.가 지운상태지만. 왼쪽에 신성로마 살리안조.가 서면서 롱고바르디 몰아낸 게르만들이 자리를 잡고는 뜬굼없는 노르만들이 이탈리아 아래 자기들 땅을 침범하는겨. 시칠리아.는 이미 아랍 무슬림들이 해적질 기지로 쓰는거고. 셀주크.는 저 직전에 아르메니아 쪽에서 처음 만나서 전투하기 시작하고. 그래도 저때 비잔틴은 아직 괜찮아. 

 

로마교회.는 서기 756년 이후로. 금수저로 다시 시작하는겨 이게. 거지 가 갑자기 금수저를 문 황당한 사건이걸랑. 그리고 3백년이 흘렀어. 알프스 넘어는 머 프랑스땅에서 떨어져 나옹 고지대 저지대 부르고뉴 킹덤들이 서다 아를킹덤이 되고, 독일땅은 오토가 다시 통일을 하던 말던 얘들은 자기들 땅이 이탈리아에 생긴거걸랑. 이전보다는 맘편히 알프스 넘어의 게르만 교회들에게 주인인척 유세 좀 부릴 수 있는겨 얘들이. 그러다 아래 땅까지 노르만 애들이 와서리 비잔틴을 몰아내주면서 저짝 교회도 로마로 들어오는겨. 우왕 땡큐도 이따위 땡큐가 없어.

 

비잔틴이 저게 제일 기분나빠. 노르만 니덜이 몰아 내 달라. 니덜이 갖고 간 비잔틴 관할 교회들을 다시 넘겨라. 미쳤냐 노르만은 우리 편인데. 이탈리아땅 교회를 또 왜 니덜이 갖느냐.

 

유교병 무교병 필리오케 니 사소한겨 그런건. 이미 로마.는 교회가 게르만화 된겨 이들이. 이들이 프랑크애들과 만나면서 저 떨어진 외진 로마.가 오히려 게르만화 되는겨. 이게 무교병.이야. 비잔틴은 유교병.이걸랑. 효모있는 빵을 유카리스트에 써. 유대교들이 무교병을 쓰걸랑. 로마는 무교병이야. 왜냐믄 게르만들이 무교병 쓰는겨. 그게 머라고. 게르만들 따라주는겨.

 

비잔틴 애들이 보기엔. 로마 카톨릭이 저게 기괴한겨. ㅋㅋㅋ. 로마가 서기 600년에 본 게르만 교회들의 기괴함.을 비잔틴 오소독스.가 이후 로마를 보고 똑같이 느끼는거야 저게 ㅋㅋㅋ. 왜 니들 예배식이 게르만화 바바리안화 되었냐 이거야. 

 

비잔틴 은 그리스어.야.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이후로 완전히 그리스어로 돌아섰어. 로마는 라틴어 잖오. 라틴어 쓰는 인간들이 로마 혼자 남은겨 이게. 이탈리아 반도에서.

 

클래식 라틴어.가 사라질 수 밖에 없는겨. 이미 세상은 주위는 게르만들 천지야. 게르만들이 라틴어를 배우면서 라틴어 가 게르만화가 되는겨 이게. 

 

Medieval Latin was the form of Latin used in Roman Catholic Western Europe during the Middle Ages. In this region it served as the primary written language, though local languages were also written to varying degrees. Latin functioned as the main medium of scholarly exchange, as the liturgical language of the Church, and as the working language of science, literature, law, and administration.

Medieval Latin represented, in essence, a continuation of Classical Latin and Late Latin, with enhancements for new concepts as well as for the increasing integration of Christianity. Despite some meaningful differences from Classical Latin, Medieval writers did not regard it as a fundamentally different language. There is no real consensus on the exact boundary where Late Latin ends and Medieval Latin begins. Some scholarly surveys begin with the rise of early Ecclesiastical Latin in the middle of the 4th century, others around 500,[1] and still others with the replacement of written Late Latin by written Romance languages starting around the year 900. 

 

미디벌 라틴어.라는게 사오세기.에서 서기 900년 정도로 봐. 이 전을 레이트 라틴.이라 해. 이게 모두 게르만화 된 라틴어야. 이 시대 라틴어.는 저작권이 게르만들에게 있는겨. 게르만 들이 라틴어를 배워 익힌 자기말들화 된 라틴어.에 게르만 만의 말들이 라틴어화 된 말들이 뒤섞인게 이 미디벌 라틴어 시대야. 레이트 라틴.이란건 그래도 로마.의 라틴어 색깔이 있어서 레이트 란 말을 붙인겨. 미디벌 라틴어 시대는 저건 게르만 말인겨 저게. 

 

저건 이전 레이트 라틴어까지의 로마말이 아냐 저건. 기괴한 겨. 로마 교회가 저리 될 수 밖에 없어. 얘들은 저기간 게르만들 속에서 살았걸랑. 그래서 예배식 언어도 이상해지고 말도 이상해지고 그 예배 식 자체도 페이건 화 된거야 비잔틴 애들이 보기엔. 

 

비잔틴애들이 로마 교회를 수백년간 손가락질 한거야. 저거 저 페이건된 로마교회들. 저거 이단들이야 저거. 예배도 기괴하게 게르만식으로 하고 말이야. 저 촌놈들 저 로마교회들 저거.

 

저게 서기 1000년 전후에 완전히 터진겨 저 감정이. 로마 교회는 교황령이 생겼어. 이젠 당당한겨. 이게 우리식 로마 카톨릭이야. 니덜이 머라던. 

 

기분 나쁜 애들은 바로 로마 카톨릭 진영인거야.

 

촌놈이라고 손가락질 하는건 비잔틴이 하는거야. 저 상황에선.

 

캬 이건  대단한 통찰이야.

 

기분이  나쁜겨 로마쪽이. 그래서 로마가 먼저 레가투스. 대사여 로마애들은 자기들 특사도 군단장이란 레가투스여 ㅋㅋㅋ. 이 레가투스 가 가서리 너 콘스탄 총대주교. 파문. 이라고 써서 소피아 성당에 올린겨.

 

이때 로마가 문제제기하는건. 저런 삿대질 속에서 꾹참고. 에큐메니칼.에 대한 빈정상함이야. 6세기부터 니덜이 에큐메니칼  하는데. 누가 그따위 호칭을 쓰래. 

 

저때 에큐메니칼.을 쓴건. 하우스홀드 개념으로 썼다는겨. 여러 페이트리아크.의 행정일을 총괄한다는 정도고 회의할때 회의실 마련 하고 문서 준비하는 집사 역할이니 오해 말란 거걸랑. 웃기지 말란겨 먼 에큐메니칼에 그따위 개념을 추가하냐 세상 이란 의미를. 소기지 말어 하는거걸랑 로마가. 

 

저때 로마가 에큐메니칼.에 대한 부당함 근거도 콘스탄티누스.의 기부 문서.야. 그리고 니덜은 우리 아래라는 니덜 황제의 자술서.야 이건. 지저스.가 베드로 어쩌고 말하기 전에 이미 7백년 전에 니덜 황제가 인정한거야! 라면서 얘들이 파문을 시킨겨 비잔틴 총대주교.를

 

저건 지난 7백년 간의 비잔틴 황제빽 아래의 비잔틴교회.에 당했다고 느낀 로마교회.의 아주 통쾌한 복수여 저건.  그 수백년의 촌놈 비하질.의 복수를 적의 진영 중심 성당에 가서. 파문 이란 두 글자.를 쓴거야. 이건 말야. 로마 입장에선 속이 후련한 복수인겨 ㅋㅋㅋ.

 

.

 

이걸 황당하게 느낀 비잔틴 쪽에서 역 파문을 한거고. 이게 갈라진 서기 1054년.인거야. 정치적으로 완전히 결별을 해. 

 

어차피 페이트리아크 체제였어. 원래 간섭을 안해 할수도 없고. 남남이야. 그래도 인사는 왕래했걸랑. 완전히 공식 선언한거야. 니들과 우리는 다르다 라는걸. 이게 1054년 교회분리.야

 

저때 로마.가 당당한건. 로마교황령 3백년 체제에 더하여. 자기들의 황제.가 따로 있는겨. 그게 신성로마 황제.야. 이전엔 비잔틴 황제. 혼자 뿐이었어. 감히 저리 대들지 못해. 비잔틴이 수백년을 놀린겨 로마를. 

 

로마교회.가 교황령.에 더하여. 자기들만의 황제를 따로 만든거야 이게. 이 신성로마황제.가 로마교회.의 빽이 되는겨. 비잔틴교회가 힘이있는건 옆에 비잔틴 황제가 있기 때문이걸랑.

 

 

What may perhaps be the earliest known allusion to the Donation is in a letter of 778, in which Pope Hadrian I exhorts Charlemagne, whose father, Pepin the Younger, had made the Donation of Pepin granting the Popes sovereignty over the Papal States, to follow Constantine's example and endow the Roman Catholic church.  

 

로마가 저럴 수 있었던 건. 756년 교황령이야. 이건 엄청난겨. 이게 지금 로마 카톨릭을 만든거야. 헌데 소피핀.이 이걸 왜줬냐 이거야. 이문서가 8세기 즈음에 나온걸로 보이는데. 몰라 이걸. 헌데 처음 언급된게 서기 778년.이야. 샤를 마뉴.에게 로마교황.이, 너 아빠 소피핀.이 교황령 준 거 기억하지? 다시 확인좀 해줄래? 하는겨

 

소피핀.이 바보가 아녀. 그냥 줬을 리가 없어.

 

로마 주교 스테파누스2세.가 저때 저걸 만든겨. 위조로. 이건 내 생각이야. 캬  엄청난겨. 이게 맞아 이게.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아리안들을 품은 사람이야. 첫 공회의때 이단 선언했다가 죽기전에 번복해주고 아리안들이 복귀를 해. 이사람이 품이 좋아. 아리안이 초기 게르만들의 그리스도여. 게르만들에게 인기있는 사람이 이 콘스탄티누스야. 더하여 밀라노칙령이야. 이사람은 게르만들에게 성인이야. 그리고 자기들 끼리 그리스도 한겨 갈리아애들에게 배워서. 이들에겐 저짝 비잔틴이 미국이야 얘들은 동남아고. 로마는 영국이야 얘드른 라이베리아고. 아프리카. 

 

저걸 로마 주교.가 서류 만들어서. 소피핀에게 보인겨. 우리 로마가 말이죠. 베드로의 자리아니지않슴둥? 베드로의 자리를 이리 콘스형님이 극찬하잖슴둥? 그리곤 콘스형님이 모든 교회들마다 땅을 줘서 저리 자리잡은거 아니잖슴둥? 하물며 로마는 너무나 엄청나서 이탈리아 모두와 알프스 넘어 서쪽을 다 줘도 영광스럽다 라 하시지 않슴둥? 이거 보심둥 이게 그때 준 티아라고 그때 받은 콘스 당시 제국의 휘장임둥. 이런것도 다 갖고 간겨 조작을 해서. 

 

저기서 웃긴게, 저기 써있다는 헤럴드리 휘장.과 티아라 왕관이야.  유치한 부속품이야 이건.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저런걸 유치하게 줄리가 없어. 쟤들이 사기질 치기 위한 증거물을 저리 덕지덕지 붙이고 만들은거야 증거물이라며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오히려 저런게 사기꾼의 시나리오 프레임이걸랑.

 

우리는 욕심없슴둥. 어드래 이 땅까지 다 갖슴둥? 저 롱고바르디 애들 있는 포강 아래까지만 주셔도 저희는 만족 함둥. 저걸 롱고바르디 때문에 우리가 지금 못받고 있슴둥. 

 

해댄겨 저게. 그래서 저걸 써준거야 소피핀.이. 자기가 마치 콘스탄티누스 대제 인 듯 뿌듯하게. 제목도 도나티오.에 콘스 대신 자기이름 피핀 쓰고. 자기가 비잔틴 콘스 대제 가 된겨 저때.

 

아 그리고 아차! 한겨. 쏙은겨 저건. 그래도. 약속을 지킨거야 소피핀이.

 

샤를마뉴.가 황제.를 선언해. 이것도 로마가 꼬시는거야. 비잔틴이 임페라토르 인데. 당신이 이쪽 임페라토르 해라. 왜 대체 렉스냐. 

 

얘들은 클로미스도 렉스야. 모두 렉스야. 감히 임페라토르.라고 못한겨 지들이. 

 

로마가 샤를마뉴.를 꼬신거야. 저 땅을 다시 확답받으면서. 당신 렉스 버리고 임페라토르.해라. 당신이 그 고대 로마 황제를 복원하시라. 

 

이건 샤를마뉴.가 상상도 못했던거야 

 

아  맞아. 내가 로마를 다시 세울께. 게르만 바바리안의 이상향 로마황제라니. 맞어 교황 당신 말이. 그거 내가 할께.

 

서기 800년.에 그래서 황제관을 쓰는거야. 로마로 와서. 

 

그리고 저 해.에 AD 

 

The terms anno Domini[note 1][1][2] (AD) and before Christ[note 2][3][4][5] (BC) are used to label or number years in the Julian and Gregorian calendars. The term anno Domini is Medieval Latin and means "in the year of the Lord",[6] but is often presented using "our Lord" instead of "the Lord",[7][8] taken from the full original phrase "anno Domini nostri Jesu Christi", which translates to "in the year of our Lord Jesus Christ".

This calendar era is based on the traditionally reckoned year of the conception or birth of Jesus of Nazareth, with AD counting years from the start of this epoch, and BC denoting years before the start of the era. There is no year zero in this scheme, so the year AD 1 immediately follows the year 1 BC. This dating system was devised in 525 by Dionysius Exiguus of Scythia Minor, but was not widely used until after 800. 

 

아노 도미니. 라는 A.D. 서력. 서기 가 쓰이기 시작하는겨. 저건 서기 800년 부터 확실하게 쓰이는거야.

 

저건 샤를마뉴.와 로마 교황.의 합작품이야. 이 배후는 정확히 로마 교황이야.  비잔틴 교회.의 비잔틴 황제.에 대항하기 위한 로마교회가 만든 자기들의 세속 황제.야 이게 2백년 동안 쌓이고 힘이 되어서 로마가 비잔틴 중심 소피아 성당.에 당당히. 파문 이란 두글자.로 후련하게 복수를 한겨 이건.

 

 

이때 사기질의 미끼.가 바로 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부문서 였던거고. 

 

야 이걸로 내가 시나리오를 만들면. 정말 대박을 터뜨리는겨 이게. 다빈치코드.는 샹 저리가라지 이게.

 

헌데 이게 맞아. 

 

.

로마카톨릭.이 그러면서. 세속의 모랄의 문제를 걸고 넘어가는겨. 로마 카톨릭 이 없었으면, 지금 유럽은 없어. 세속에 휘둘린 신권. 이 세속권 신권.의 합일.은 그 나라를 죽여. 정교일치.는 그 땅을 죽여. 이건 인류문명사.의 항진명제야. 인간의 역사에서 배울 건 이거 단 하나야. 정교일치 금지. 정교 분리. 그래야 썩지를 않아.

 

신권을 쥔 세속권력만 있었다면 저 유럽땅은 근대를 만들지 못했어. 로마 카톨릭.이 오히려 게기고 원투 치고 세속권력을 갖고 놀아줬기 때문에 유럽이 로마처럼 망하지 않은거야. 유럽이 비잔틴처럼 쇠하지도 않은거고.

 

이건 저 사기질 친 로마카톨릭의 힘이야. 

 

로마 카톨릭이 없었으면 유럽이란건 없어 지금. 저 두개의 신권 세속권의 긴장감이 지금 유럽을 만들고 세계를 만든거야

 

유일한거야. 다른 세상엔 저게 없었어. 

 

거대한 역설이야 저게.

 

아 세상은 말야. 역설이야 역설.

 

역설이란 건 말야. 정의와 적폐 란게 없단 거야. 이 미개한 조선 오백년들아. 나는 정의 상대는 적폐. 세상에 이따위 미개한 것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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