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pal States (Italian: Stato Pontificio), officially the State of the Church (Italian: Stato della Chiesa, Italian pronunciation: [ˈstaːto della ˈkjɛːza; ˈkjeː-]; Latin: Status Ecclesiasticus;[2] also Dicio Pontificia), were a series of territories in the Italian Peninsula under the direct sovereign rule of the Pope, from the 8th century until 1870. They were among the major states of Italy from roughly the 8th century until the Kingdom of Piedmont-Sardinia successfully unified the Italian Peninsula by conquest in a campaign virtually concluded in 1861 and definitively in 1870. At their zenith, the Papal States covered most of the modern Italian regions of Lazio (which includes Rome), Marche, Umbria and Romagna, and portions of Emilia. These holdings were considered to be a manifestation of the temporal power of the pope, as opposed to his ecclesiastical primacy.
페이펄 스테이트스. 스타토 폰티피치오. 스타토 델라 키에사. 스타투스 에를레시아스티쿠스. 디키오 폰티피키아. 디키오.가 장악 통제 권력 이야. 교황의 지배하의 땅이란겨. sovereign 사버린.이란 말을 주권.이라 번역하지만. 이건 라틴어 super 수페르 슈퍼파워에서 오는겨. 슈퍼.의 명사여 superanus 수페라누스. 수페르.란건 above 뭐의 위에.란거야. 위에서 다 보고 지배한다는겨 이건. 이게 사버린.이란 주권이야.
교황령이란건 사버린.을 발휘하는 땅이야. 교황이 군주인겨 저건. 비숍릭.과 같은 포프릭.이야. 이땅이 로마위로 피렌체 빼고 아펜니니 산맥에 오른쪽으로는 이걸 넘어 포강 아래까지 가걸랑. 여길 로마냐.라고 해. 에밀리아 가도의 아래길이야. 이 왼쪽이 에밀리아.이고. 라치오 마르케 움브리아 로마냐 에밀리아일부.를 교황령이라 하지만, 피렌체 까지도 교황령이라 주장하걸랑 이걸로 아비뇽교황정일때 백년전쟁 중인 잉글랜드 용병들 화이트컴퍼니 불러서 피렌체를 치려했던거고 교황이.
저 교황령.이라는게 생각해보면 말야. 웃긴겨 저게.
저 교황령이 로마카톨릭이 유럽의 중심에 서게 된 시작이야. 저런 교황령이란건 없어. 저건 유례를 찾을 수 없어.
어느 종교단체든, 자기 교회 절 사원 주위의 땅들을 기부와 매입을 통해서 운영하는 거걸랑. 이게 불교식으론 고려때 사원전 같은겨. 동쪽교회도 마찬가지야. 주변의 땅들을 소유해서 운영해왔던거지, 그 영역을 넘어서 나라 차원의 땅을 종교단체가 취하고 군주가 되서 지배를 하고 법을 행사하는 사버린.을 갖고 있던 곳은 없어. 한 왕조 안에 거대한 독자적인 사버린을 행사하는 종교단체란건 인간 역사에 없는겨 그건. 저게 한몸이 된게 정교일치야. 그게 조선인거고. 유교라는 사이비 종교단체와 왕조의 철저한 결합이 조선 오백년이걸랑 저게. 이게 지금 조선민국 조선민족놀이 애들의 이상향인거고.
저게 웃긴겨 그래서. 정말 웃긴거야. 우리는 저걸 걍 당연스레 그런가부다 하는건데. 절대 그게 아냐.
아 난 이런 생각 하나 못하는 저 지금 게르만 애들도 허섭하다 생각하는데. 이러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되서 프로작 처먹고 뒈지는거지만 말이지.
The Donation of Pepin in 756 provided a legal basis for the erection of the Papal States, which extended the temporal rule of the Popes beyond the duchy of Rome.
At Quierzy the Frankish nobles finally gave their consent to a campaign in Lombardy. Roman Catholic tradition asserts that it was then and there that Pepin executed in writing a promise to convey to the Papacy certain territories that were going to be wrested from the Lombards. No original document has been preserved, but later 8th century sources quote from it and the Fragmentum Fantuzzianum probably relied on it.
스테파누스2세 로마교황이 알프스를 넘어 서기 753년.에 파리가서 소피핀과 꼬마 샤를마뉴를 만나. 성유발림하고 키에르지. 오드프랑스 레죵.에 있는 도시여. 파리 위여. 여기서 소피핀.이 문서로 약속을 했다는거야. 롱고바르디 애들한테 땅을 떼어내서 일부를 페이퍼시. 교황의 지배령.으로 주겠다는걸. 이 문서.는 지금 존재하지 않아. 그러나 8세기 후반에 이 문서를 인용해서 언급한게 보이는거고.
저걸 소피핀.이 롱고바르디.를 복속시키고. 서기 756년.에 실현을 시켜준겨. 3년 전의 약속을 소피핀이 지켰다며.
지금으로선 저 땅들이 정확하게 어디를 말하는지 알수 없어. 로마교회쪽은 롬바르디아 땅 아래는 전부 주기로 했다고 하는거고 이걸 명분으로 피렌체에 유세를 부린거걸랑 또한. 정확한 건 몰러. 여하튼 그래서 교황령은 로마에서 저 로마냐에 에밀리아 일부까지 교황령이 된거야.
이건 황당한 사건이야.
이건 정말 너무나 황당한겨 이건.
세상에 말야, 군주.가 전쟁을 하고, 거대한 소유물을 전혀 쌩판인 남에게 준겨 이건. 그렇다고 그 땅을 주면서 나에게 인사하러 오라느니 조공을 바치라느니 생색따위가 전혀 없는겨 이게.
이건 말야. 유일한 사건이야. 걍 일부 땅이 아냐. 저건 거대한 나라야. 거대한 나라를 자기 병력과 무기로 힘겹게 싸워서 쌩판 남에게 준겨. 전혀 생색없이.
조온나게 골때리는겨 이게.
아 정말 타이핑질 하다보니 진짜 골때리네 이거.
저런 사례는 없어 역사적으로. 내가 우주사를 다 꿰뚫고서 하는 말 아니겠어? 그러니 얼마나 황당하겄니 내가. 가만 보니까. 아 이거 졸 당황스럽네 진짜.
어떻게 저따위 이벤트가 발생한겨 저거.
유럽빼고, 모든 세상은 말야 근대까지 정교일치여. 월드워 투.까지 정교일치여 이건. 신권과 세속권이 하나야. 한몸둥아리야. 신권은 철저하게 세속의 군주에 붙어서 살아온거야. 세속의 군주가 인정하지 않는 신.은 철저하게 배격된거고. 절대 신권이 세속권력에 들이댈 수가 없어. 그러다간 땅에서 발 붙이지 못해 신이란 존재는.
주원장의 명나라.가 유교의 신이야. 공자가 주원장으로 둔갑을 한겨. 감히 공자의 현현 주원장한테 손가락질 하면 걘 죽어. 그 최초.의 인간이 이탁오.여. 권력안에서 공자를 인정안하면 그건 제대로 살 수가 없어. 패륜아가 되는겨. 이탁오.는 유럽에선 그리스도를 부정한거걸랑.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인간은 역시나 유럽에선 유대인이나 페이건으로 살았어야 하지만. 유럽식으로는 이단도 보통 이단이 아닌거지. 허나 유럽엔 저런 이단의 역사가 천년 이상이었고. 중국은 저따위 소리를 저때서야 하는겨. 하물며 조선에서도 공자말에 주자해석에 토달면 걘 패륜아가 되는겨. 적폐중 최고 적폐야. 이게 지금 조선민국에서 심심하면 나오는 말이 패륜.이야. 자기들 생각과 다르면 걘 패륜인겨. 적폐여. 천인공노할 짓인겨 자기들 수령님을 모독하면. 정치권에 나오는 단어들이 북조선과 전혀 다를바가 없어 쟤들 말하는거 보면. 왜냐면 아주 똑같은 유교 사회걸랑 쟤들 바탕이.
신권과 세속권의 분리는 월드워 원투 끝나고 지금 현대에 와서야 존재한거야 이게. 유럽은 16세기 신속과 세속권의 분리.가 근대의시작이고.
그리고 후진 이들의 나라에선. 이념이 신을 대체한거야. 이게 공산주의 사회주의 하는거고 민족주의 해대는거걸랑. 정확하게 신을 이념이 대신하면서 이게 세속권과 합일이 된게 후진 땅의 실패한 땅의 공통점이야. 조선민국은 조선유교를 화폐로 모시고 중국은 모택동을 화폐로 도배질할 수밖에 없는겨 그래서. 얘들은 정확히 여전히 정교일치야.
유럽애들은 저걸 다 벗어난거야. 지긋지긋한 저놈의 정교일치.에 이념일치.의 발광같은 전쟁에서.
이걸 못해서 안달인겨 이 조선민국은. 이제서야. 세상에 이따위 한심한 땅빠닥이 없는거걸랑.
신권. 교권.이 세속권력에 천년동안 들이댄거야 유럽애들은. 같은 그리스도.의 세상에서. 이게 아주 독특한거야.
어느땅에서도 저리 집요하게 교주가 군주에게 저리 들이댄 적은 없어.
호국불교 잖냐. 불교가 나라의 세속권력을 지키기 위해 외적과 싸우지 못할 망정. 어찌 그 당대의 세속권력에 뭉쳐서 뎀비냐. 그것도 천년을. 이게 골때리는겨.
이 유럽사 라는게 보면 볼수록 아주 독특한거야. 다른 실패한 나라들, 철저히 철저히 실패한 나라들의 역사를 보고 여길 보면. 유럽 외에는 말야 정말 끔찍할 정도로 철저하게 실패한 인간의 역사야. 이걸 위대하다 주장하며 거짓말 하는애들이 민족주의 를 부르짖는 애들이고.
이걸 유일하게 인정한 애들이 일본이야 다름 아닌.
메이지 유신.이란 사건은 정말 엄청난 사건이야. 유럽의 근대는 16세기 부터야. 얼리 마던.이라 부르는. 이 메이지 유신.이란건 서유럽의 4백년 역사과정을, 페리 함대 우라가 앞바다 출현 1853년 부터 해서 시작해서 대정봉환 1867년에 세이난 전쟁 1877년 저때 단 10년간 펼처지는 어마어마한 사건이걸랑 저게. 유럽애들이 사백년 걸쳐 해결한걸 일본은 저 10년간의 기간 전후로 오십년 걸쳐 해결한겨. 조오온나게 수그리고. 양키들한테 아주 적극적으로 배운겨. 저기에 민족주의 해댔으면 일본이란 건 없는겨 지금. 민족 주의 란건 철저히 남을 배격하는 열등감에서 나오는 세상에서 가장 드러운 이념이야 저 민족주의 란건.
저것들이 메이지유신.의 기운으로 야마가 돌아서 대동아공영권. 이란 말이 나온거야. 아 음청나걸랑 해보니까 지들 자신이. 얘들 내셔널리즘.은 민족이 아니라 지들이 세운 국가.야. 지들 신국 새로운 국가야. 유럽애들도 하는데 우리도 하자 바스코다가마 이후 오백년 걸린거 지금에서 함 해보자. 이것도 철저한 열등감 질이야. 실패하고 실패한 아시아에서 저걸 이겼다고 우월감이 생긴겨 이 똥떵어리 동쪽에서. 다시 개박살이 나고. 다시 고개 숙여서 양키들 떠받들면서 다시 하는겨. 원자폭탄 두방맞고서도 저리 일어나는겨 쟤들이. 조온나게 싀안한 족속이야 저건. 저 힘은 엄청난겨. 저건 말야 저럴수가 없어. 바로 다시 메이지로 돌아가서 고개숙여 배워. 철저하게. 그게 지금 일본애들이야.
니덜은 일본애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이들인걸 전혀 모르는데 말야. 이건 쟤들 스스로도 몰라. 독특한 애들이야 쟤들이. 지들이 잘나봤자 얼마나 잘났겠어 저 유럽애들의 초승달부터의 역사를 받는 저 역사를 어드래 이겨 어드래.
헌데 일본애들이 또한 말야. 저 동양 끝 빠닥에서 지들 나름의 종교전쟁을 하는겨 이게. 이게 골때리는겨.
헤이케모노카타리. 평가물어.라는 시대에 땡중들이 자기들 하치만신을 가마에 태우고 교토 한복판에서 다이라노 애들과 전쟁을 해. 감히 다이라씨들이 저 신불이 타고 있는 빈가마를 못건드려 무서버서.
노부나가.가 저 히에이산을 싸그리 태워. 저 땡중들과 절들을 모조리 태워죽여. 수만명을. 완벽한 결별이야 기존 자기들 신앙과, 이 노부나가는. 그리고 남만사.라는 교회를 세워 이 인간이.
이에야스.는 그 자식대에서 시마바라의 난. 그리스도 애들 3만7천명이 무기를 들고 에도막부.랑 전쟁을 해 전쟁을. 싸그리 죽어. 조선에선 걍 나 죽여주슈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인 반면에 쟤들은 전쟁을 해 그리스도 애들이. 당대 정점의 권력이랑 싸워 대규모로.
이런건 말야. 서유럽의 저 교황과 세속과의 싸움 빼고. 없어 이런건. 이게 일본네들이 또한 유일한겨 이게.
중국땅 당나라의 도교 외 탄압하며 정벌하는거랑 무슬림들이 청나라 동치제때 반란하는건 걍 옆에 낑긴거고 이건 이민족 탄압에 대한 대항인거고. 홍건적 명교 들이 원나라 말에 등장하는건 정교일치를 취한 애들이 나라를 세우겠다는거고. 저건 종교전쟁이 아냐. 홍수천의 태평천국의 난. 지저스 친척이 강림해서 자기가 나라를 세우겠다는겨 19세기 다 오고.
우리네는 삼국지 때 등장하는 장각삼형제때의 신이 구한말에 오시잖니. 저 글자 쓰고 태워 종이 먹는게 말야 아주 똑같에 똑같어. 조조 유비 나올때 강림하신 오마이귀신님이 여긴 구한말에 오시는겨 .
저 일본들이. 저딴 종교전쟁 도 했던겨 세속권과 신권이. 쟤들 골때리는 애들이야 가만 보믄. 가만 볼수록.
국화와 칼. 웃기고 자빠진거야. 신기하대, 덴노라는 신과 칼이 같이 모셔지는 땅이라니. ㅋㅋㅋ. 니덜 교황이 쟤들 덴노 일 뿐이야. 니덜처럼 신권과 세속권의 기나긴 전쟁속에서 다 떨어져 나간 신권이 쟤들 덴노일 뿐이고. 저 양키애는 자기들 역사도 모르고 남의 역사도 모르는겨. 저따위 책이 이 덜떨어진 조선땅에선 일본 욕질용으로 베스트셀러여 아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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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의 저 신권과 세속권의 대립. 교와 정.의 대립은 유일한겨 이건.
이게 가능했던게, 우습게도 말이야. 교황령이야. 소피핀이 키에르지.에서 써준 문서 한장.이 3년 후에 실현되면서 로마교황의 욕심이 발동하는겨 이게. 서기 756년.에.
서로마.가 망하고, 게르만들이 서유럽을 점령하고, 이들이 그리스도를 믿는데 말야.
프랑크 킹덤 481–843
수에비 킹덤 409–585
부르고뉴족 킹덤 411–534
비지고쓰 킹덤 418–c. 721
Odoacer's kingdom 476–493
오스트로고쓰 킹덤 493-553.
롱고바르디 킹덤 568–774
이베리아반도의 수에비.가 처음 서고 이건 비지고쓰로 들어가고, 그리곤 무슬림들이 여긴 지배하는거고. 알프스넘어는 프랑크 가 통일을 하걸랑.
브리튼.은 칠왕국 체제인거고.
쟤들은 모두 게르만이걸랑. 다뉴브 넘어온. 그리고 바다로 브리튼 넘어간. 이 인간들은 페이건이야. 그리스도가 아녀 이게. 다뉴브 안쪽에 있었던 로마의 게르만 용병들이나 로마화된 게르만들이 서기 313년부터 편안하게 그리스도를 믿은겨. 그리고 동로마 테오도시우스 가 서기 380년.에 오직 그리스도만. 했던거고. 이사람이 이후 서로마 도 갖고 오면서 동서가 서기 4백년 직전에야 오지 그리스도만.이 된겨.
즉 서로마 망할때 게르만들에겐, 그리스도가 이게 낯설어 민들에게는. 다뉴브 안의 게르만에게나 좀 익숙해졌을까.
브리튼.도 저 상황에서 그리스도가 갓 들어오다가 서로마 휘청대면서 로마군단이 브리튼을 떠나걸랑 본토 수복하러. 여기에 앵글로 색슨이 오는거고. 막 그리스도가 브리튼에 정착하려할때 색슨이 들어온겨 얘들은 해변에 있던 완벽한 페이건이야. 기존에 있던 교회들을 다 깨부시고 자기들 페이건들을 모셔.
저긴 다시 시작하는겨 게르만들이. 완전히 딴세상이 된거야. 그리스도 이야긴 동쪽이야기고, 이탈리아 반도 귀퉁이 로마이야기일 뿐이야. 이탈리아는 오도아케르.에 오스트로고쓰에 바로 롱고바르디.여. 로마는 외로워. 먼 비잔틴 승인받는 곳이야. 반도의 반대 위의 라벤나.도 자기를 무시해.
이 로마교회가 이 상황에서 멀 하겠어 얘들이. 얘들은 아무런 힘이 없어.
오도아케르.는 게르만이지만 로마 귀족이었어. 파트리쿠스여. 얜 말이 통해 헌데 바로 망해. 오스트로고쓰의 테오도릭.은 발칸 넘어 다키아 모에시아 에 있던 게르만이야. 비잔틴한테 허락받아있다가 서로마간겨. 비잔틴으로부터 찔끔 배우다가 로마로 들어가. 막 건물들도 세워. 걍 그리스도 찔끔 알어. 대부분 페이건이야. 다음 온 롱고바르디.는 완전 달마시아 구석끝에서 온애들이야. 얘들은 걍 바바리안이고 페이건이야 이게.
Over time, the Lombards gradually adopted Roman titles, names, and traditions. By the time Paul the Deacon was writing in the late 8th century, the Lombardic language, dress and hairstyles had all disappeared.[1] Initially the Lombards were Arian Christians or pagans, which put them at odds with the Roman population as well as the Byzantine Empire and the Pope. However, by the end of the 7th century, their conversion to Catholicism was all but complete.
롱고바르디.가 이탈리아로 와서 로마스타일을 채택해. 8세기 후반. 즉 와서 2백년 좀 되서 망할때즈음엔 얘들 풍습이 사라지고 로마화가 돼. 초기에 아리안 이나 페이건이야. 저때 게르만이 그리스도면 대부분 아리안이여. 이 아리안.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살려주고 회복되다가 테오도시우스 니카이아 공회의에서 완벽히 이단 되걸랑. 즉 저들은 기존 교권과 안맞아. 저 롱고바르디 의 이탈리아 교회들은 따로 노는겨. 로마.와 라벤나.의 영향력 밖이야 저건. 그리곤 이들이 라벤나.를 막판에 접수하고 로마도 점령하려 한거였걸랑.
로마교회는 자기땅에서도 버티기 힘든 애들이야 이들이.
The Frankish Church grew out of the Church in Gaul in the Merovingian period, which was given a particularly Germanic development in a number of "Frankish synods" throughout the 6th and 7th centuries, and with the Carolingian Renaissance, the Frankish Church became a substantial influence of the medieval Western Church.
In the 7th century, the territory of the Frankish realm was (re-)Christianized with the help of Irish and Scottish missionaries. The result was the establishment of numerous monasteries, which would become the nucleus of Old High German literacy in the Carolingian Empire. Columbanus was active in the Frankish Empire from 590, establishing monasteries until his death at Bobbio in 615.
프랑크 교회.는 갈리아 인들의 그리스도에서 성장을 해. 메로빈지언 시작 클로비스1세.가 그리스도 의 힘으로 통일을 해. 부인이 아리안.이걸랑. 부인한테 전도당한겨. 이들은 말야, 자체척으로 시노드. 공회의.를 하는겨 지들끼리.
그래도, 저 프랑크가 초기에 통일하고 지배할때는, 얘들은 갈리아 인들에게서 배우는겨 그리스도를. 즉 대부분은 걍 페이건이야 이게. 프랑크가 또 분열이 되걸랑. 갈리아 땅도 페이건이 훨 많은겨. 하물며 독일땅은 작센족은 샤를마뉴때야 들어오는겨. 페이건이야 대부분 저기도.
7세기.에 아이리쉬 스콧 선교사들이 오히려 대륙으로 들어와서 선교를 하는겨 졸 웃기게도.
아일랜드의 성인 대표 두명이 성 패트릭.에 성 콜럼바.야. 패트릭.을 5세기로 보고 콜럼바.를 6세기로 봐.
패트릭.을 잘 몰라. 브리튼 섬에서 아일랜드로 가서 선교한걸로 보고. 콜럼바.는 아이리쉬야. 이 콜럼바.가 스콧랜드 선교를 시작한겨. 더하여 프랑크땅도 선교를 해. 이 아일랜드란 땅은 참 웃긴거야 저게.
브리튼.이 오히려 그리스도.가 늦게 복구돼. 여기 온 색슨들은 완벽한 페이건이야 해변에 있던. 얘들은 로마를 모르는 애들이야. 기존의 교회들을 다 부스고 자기들 페이건을 모시걸랑.
In comparison to its uninterrupted continuity in the culturally Brittonic west Christianity, which was extinguished with the arrival of the Saxons in the east, was reintroduced again to eastern Britain by the Gregorian Mission, c. 600. Establishing his archdiocese at Canterbury, St Augustine failed to establish his authority over the Welsh church at Chester but his mission—with help from Scottish missionaries such as SS Aidan and Cuthbert—proved successful in Kent and then Northumbria:
캔터베리.로 다시 시작하는겨. 이게 서기 597년.이야. 교황 그레고리1세.가 파견한겨 이건.
Pope Gregory I (Latin: Gregorius I; c. 540 – 12 March 604), commonly known as Saint Gregory the Great,[1] was Pope from 3 September 590 to 12 March 604 AD. He is famous for instigating the first recorded large-scale mission from Rome, the Gregorian Mission, to convert the then-pagan Anglo-Saxons in England to Christianity.
교황 그레고리1세.에게 그레이트 딱지를 붙이고 세인트 도 붙여. 서기 600년 전후.에 캔터베리.를 발판으로 브리튼섬이 그리스도화 되기 시작하는겨. 이걸로만 그레이트에 성인 이 아니라.
이사람이, 서유럽의 저 야만의 땅들의 난립한 세속과 일치된 교회줄을 자기들 로마교회.로 일차로 묶은겨 이사람이
알프스 넘어는 로마교회와 전혀 상관이 없는겨. 테오도시우스 칙령 380년.에 망할때 까지 끽해야 백년도 안된거걸랑 그리스도 정착은. 더하여 망할때의 진영이 제대로 말씀이 먹히지도 않고 연일 전쟁에 더하여 뒤에 훈족도 오고 게르만들 전쟁에 저게 의미가 없어 서로마는. 망하기 전후의 그리스도란게.
Regional synods had been held regularly in the Church of Gaul, more than thirty of them between 314 and 506.[1] The synods listed here (some of which are also referred to as "General synods of the German empire") mark a particularly Germanic development in the Western Church: to the usual regional or provincial councils, Germanic peoples added a traditional element from their systems of government, the idea of a national council, which was influenced by the Christian East.
이때 갈리아땅의 그리스도.는 자체적으로 시노드.를 한겨. 동쪽에서 공회의.란걸 할때. 이들은 그걸 배워서, 자기들 나름의 공회의를 한거야. 이걸 프랑크족이 그대로 전통을 이어 받아.
From Ancient Greek σύνοδος (súnodos, “assembly, meeting”), from σύν (sún, “with”) (English syn-) + ὁδός (hodós, “way, path”).
이 시노드.란건. 같은 길. 이라는 그리스어야. 이걸 회의.로 진화해서 쓰는거고. 어원이 멋진데. 이건 유대교 시나고그.를 번역한거고.
얘들은 완전히 따로 논겨. 로마교회.는 초기 일곱공회의 가 동쪽에서 열릴때 걍 곁다리 낀거고. 바닷길로 가기도 험난하고 저긴. 이 주제에 알프스 넘어 자기들이 저길 관여를 못하는겨 하고싶어도. 힘이 없어 사방이 갇힌상태에서.
When the Western Roman Empire fragmented under the impact of various 'barbarian' invasions, the Empire-wide intellectual culture that had underpinned late Patristic theology had its interconnections cut. Theology tended to become more localised, more diverse, more fragmented. The classic Christianity preserved in Italy by men like Boethius and Cassiodorus was different from the vigorous Frankish Christianity documented by Gregory of Tours, which was different from the Christianity that flourished in Ireland and Northumbria. Throughout this period, theology tended to be a more monastic affair, flourishing in monastic havens where the conditions and resources for theological learning could be maintained.
서쪽은 완전히 걍 로칼로 가는겨. 자기들 독자적으로. 다양하게. 그래서 나중에 로마 사람이 와서 보니까, 그리스도들이라고 예배를 하고 멀 하는데, 기괴한겨 이게. 완전히 자기들 로마와 다른겨 분위기가. 여기에 아이리쉬 스콧의 선교사들이 뿌린게 섞이고. 조오온나 웃긴겨 저게 ㅋㅋㅋ. 더하여 모나스틱. 수도원들이 난립을 하는겨. 이 수도원들이란건 나쁘게 말하면 페이건화가 심한거라 볼수가 있어. 저게 결국 그노스틱 노스틱.이라는 영지주의걸랑. 저게 잘못 가면 아주 시안야릇하기 쉬운게 저런거야. 수도원이 많다는건 그만큼 뭔가 냄새가 페이건이야.
Fifth_Council_of_Orléans
King Childebert had ordered the Council to be summoned[3] to deal with the case of Bishop Marcus of Orleans, who had been driven from his See.[4] After defending Mark, Bishop of Orléans, from attacks made upon him, finding nothing in the charges made by his enemies, the Council issued some twenty-four canons.[5]
The Council pronounced an anathema against the errors of Nestorius and Eutyches (Canon I). It prohibited simony, and prescribed that the election of bishops take place in all freedom, by the clergy and the people, and with the consent of the king (Canon X).[6] Likewise, that no one be consecrated a bishop until he had been one year in the clergy, during which he is to be taught by learned and proven persons in spiritual discipline and rules (Canon IX).
It censured all who attempted to subject slaves who had been emancipated within the church to any servitude whatsoever, and those who dared take, retain, or dispose of church property (Canon XXII). It stated however that bishops should not ordain slaves, and that a slave who was freed should not be ordained without the consent of his former master (Canon VI). It threatened with excommunication all who embezzled or appropriated funds given by King Childebert for the foundation of a hospital of Lyon (Canon XV), and it placed lepers under the special charge of each bishop.
오를레앙 5차 공회의. 프랑크들의 시노드.가 주기적으로 열렸어. 칠드버트1세. 쉴드베르1세. 이 쉴드베르.가 클로비스1세.의 아들이야. 2대 프랑크 킹이야. 이사람이 교회 회의를 소집하는겨. 여기서 자기들이 또한 이단.을 규정하고 파문을 해. 시모니.라는 성직매매도 금지해. 이건 킹의 눈을 벗어나는 걸 금지하는거야. 비숍.이라는 주교. 선출도 정해. 성직자들과 일반 민들의 선거로 뽑도록 해. 헌데 킹.이 결국 인가를 해야 해. 비숍 은 킹.이 결국 선택하는겨.
비숍 이라는 주교.자리가. 여러 지역교회들의 수장자리야. 이 비숍 이란것 조차. 킹.이 선출을 하는겨 이게. 여기에 로마.는 전혀 관여를 못해. 저게 6세기 여 저 상황이.
완벽한 정교일치야. 저게 모두가 똑같은겨 이 서쪽은. 비지고쓰는 그리스도가 더 늦어 여긴. 얘들은 설립되고 백년이 지나 킹이 그리스도가 되는겨. 프랑크는 클로비스1세가 그리스도였지만.
서쪽은 아주 완벽한 정교일치.인, 신권을 세속권이 철저하게 지배한겨 저건.
저 상황에서. 그레고리1세 교황.이 당신들 교회의 정신적인 수장.을 로마로 두자. 라고 한겨 이게. 이사람이 그래서 더 그레이트 딱지가 붙는겨. 교황한테 더 그레이트.가 흔치 않아.
즉 저들이. 그리스도 마음자리.의 중심이 저때 없었어. 저걸 로마교회.가 서기 600년 되어서야 이 정신줄을 먼저 잡은겨.
그렇다고 인사권을 쥔게 아냐. 주교.를 교황이 임명하는게 아냐. 그냥, 거기 누구 이번에 주교 되쓰요. 알려주이소 그것만. 할 뿐이야.
오히려 웃긴게, 로마 교황의 입김이 그나마 쎈 건. 저 캔터베리 대성당.의 잉글랜드여. 저긴 정확하게 자기들이 시작을 했다는 명분이 강하게 서걸랑. 로마 교황이 저 멀고먼 잉글랜드.에 오히려 강하게 자기소리를 내는겨. 이게 조온나 웃긴겨. 더해서 캔터베리가 그래서 자부심이 강해지는겨. 이게 터진게 토마스 베킷 대주교.가 뻗대는 거야 헨리2세에게. 헨리2세는 애들 시켜서 대주교를 패죽이는거고. 아이러니야 저런게. 저런 사건이 그래서 저렇게 각ㄱ가의 지역에서 터지는겨 그런 맥락으로.
오히려 그래서 잉글랜드.에 로마 카톨릭의 입김이 쎈거야. 저 먼 땅에. 얘들은 말야 반대로 가까운 알프스 넘어엔 아무런 힘도 명분도 없는겨. 웃기게도 잉글랜드가 호구가 된겨 저 멀고먼 로마에서 떨어져 나간. 이게 또한 더가서 헨리8세가 티나오는겨. 아이 증말 자기 모든 땅이 로마교회땅이 된겨 가만 보니까. 앤 불린때문에 일 벌린거지만, 실재 감찰해보니 놀랄 노짜인거야 이건. 앵글리카니즘 해야 하는거야.
서기 600년 전후에야 그나마, 당신들 의 정신적 주인은 우리 로마요. 한거고.
그래도 모든 건 걍 로칼들에서 세속 군주인 킹.의 관할인겨. 로마교회는 아무런 힘이 없거니와 명분도 없어. 잉글랜드땅 빼곤. 역사적으로.
이게 말야. 저 소피핀.의 756년 교황령 을 주면서 판세가 완전히 달라지는거야.
여기서 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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