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o's Empire known from between 631 and 658 AD 

 

Great Moravia (LatinRegnum MarahensiumGreek: Μεγάλη Μοραβία, Megálī MoravíaCzechVelká Morava [ˈvɛlkaː ˈmorava]SlovakVeľká Morava [ˈʋɛʎkaː ˈmɔraʋa]PolishWielkie Morawy), the Great Moravian Empire,[1] or simply Moravia 833–c. 907  

 

The Duchy of Bohemia, also later referred to in English as the Czech Duchy,[1][2] (CzechČeské knížectví)  c. 870–1198  

 

사모.의 제국.이 서기 631년부터 27년간 있다가 사모.의 죽음과 함께 흩어져. 왜 죽었나는 프레데가르.가 안썼어. 아래 아바르.에 옆에 투링기아.과 전쟁과 동맹을 하다가 사모.가 죽어. 그리곤 사모.를 잇는게 2백년 안되서 모라비아.와 이후 삼사십년 지나서 보헤미아.야. 모라비아. 가 먼저인겨. 보헤미아.는 모라비아.가 만들어지고, 이 모라비아의 군주.가 보헤미아.를 점령해서 따로 대리인.을 세우고. 이게 보헤미아 더치.가 되고. 이 보헤미아.가 모라비아.와 헤어지고 독립을 하고, 모라비아.는 헝가리에 지워지고, 보헤미아.는 게르만과 모라비아.와 헝가리 사이에서 작센의 게르만에 세입자.가 되면서 이게 나중 킹덤이 된건데. 

 

The Pannonian Avars (/ˈævɑːrz/; also known as the Obri in chronicles of Rus, the Abaroi or Varchonitai[9] (Varchonites) or Pseudo-Avars[10] in Byzantine sources) were an alliance of several groups of Eurasian nomads of unknown origins  

 

567–after 822  

 

저쪽의 시작은 모두 이 판노니안 아바르.야. 로마의 판노니아.란건 오른쪽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뚝 떨어지는 다뉴브.야. 오른쪽 같이 떨어지는 티사 Tysa 강이 꺽인 다뉴브.와 베오그라드에서 만나는겨. 판노니아는 아래 이 베오그라드 까지여. 발등모양이야. 왼쪽 북쪽 경계는 지금 비엔나 까지야. 이 비엔나 에서 다뉴브 줄기 떨어지는 것과 평행하게 긋는겨 만나는 곳이 드라바 강.과 이 아래 사바강.이야. 두 강이 평행하게 흘러서. 드라바강은 크로아티아와 헝가리 국경을 긋고 다뉴브.와 만나고. 아래 사바강.은 크로아니아.와 세르비아 경계를 그으면서, 다뉴브가 오른쪽 가서 떨어진 베오그라드.에서 만나는겨. 

 

저기가 판노니아.야. 아바르.가 저기에 있던거고. 더하여 다뉴브.와 티사.강 사이 통로로 들어가서 헝가리 평원.이라는 판노니아 평원을 다 먹은거야. 서기 567에서 822 까지. 250여년을. 판노니아 위가 모라비아.야. 이 아바르.가 9세기 초에. 왼쪽엔 샤를마뉴의 프랑크.에 오른쪽엔 불가리아 1차제국 투르크애들의 협공으로 망하는겨. 그러면서 프랑크.는 카린티아.라는 마크.를 세우는겨. 바바리아 공국의 마크. 이게 나중 스튀리아. 카르니올라. 이스트리아.라는 마크령으로 쪼개지고. 카린티아.는 뒤로 작게 공국령으로 들어가. 그래서 이 카린티아.가 또한 초창기 오토1세 통일 전에 황제.도 나오는겨. 이 카린티아.가 바로 등장하는 헝가리.를 상대하는거고.

 

아바르. 가 서고. 크로아트족.이 더치.가 되는겨. 7세기에. 아바르.막으라고 비잔틴이 보증해줘. 이게 서기 925년.에 킹덤.이 돼. 로마 교황.으로 부터. 지금 크로아티아.는 90퍼가까이가 로마카톨릭이야. 

 

아바르. 후반기에 아래 달마시아 쪽부터 서는게 세르비아족.의 주판.인 군주들이 서는겨. 8세기 말에. 얘들은 독립국.이야. 그러다가 서기 1217년.에 킹덤이 돼. 비잔틴으로 부터. 

 

아바르.가 망하자 마자. 아래 알프스 구석에서 서는게 슬로베니아.의 시작이야. 

 

Kocel[a] (fl. 861–874) was a Slavic ruler of Lower Pannonia, a polity known in historiography as the Balaton principality. He was an East Frankish vassal titled comes (count), and is believed to have ruled between 861 or 864 and 876.

 

코첼.이 아바르 망하고. 일이십년.간 슬로베니아 땅의 군주.가 돼. 프랑크.의 세입자야. 이게 땡 이야. 이 코첼. 요 기간이 슬로베니아 라는 나라.가 서는 명분이 돼. 우습게도. 1천년이 지난 19세기에서야 슬로베니아.가 민족주의 하는겨. 저 코첼.이란 이름을 걸고.

 

Pribina (c. 800 – 861) was a Slavic prince whose adventurous career, recorded in the Conversion of the Bavarians and the Carantanians (a historical work written in 870), illustrates the political volatility of the Franco–Slavic frontiers of his time.[2] Pribina was the first ruler of Slavic origin to build a Christian church on Slavic territory in Nitra, and also the first to accept baptism.[3]  

 

코첼.의 아빠.를 프리비나.로 봐. 프리비나.가 지금 슬로바키아 서남부 니트라 Nitra 의 군주.여. 이사람이 슬라브족에서 최초.로 세례를 받고 교회를 세운사람이야. 니트라.에서. 로마카톨릭이야. 이사람이 모라비아.를 세운 모이미르1세.에게 쫓겨나고. 아들이 내려가서 슬로베니아의 시조.가 되는 코첼.이 돼.

 

이 프리비나.가 슬로바키아.의 단군이야 또한. 프리비나.가 모라비아에 지워졌지만, 뒤에 모라비아.가 헝가리에 지워지고, 이 니트라.는 독립해서 따로 일이백년 갔다고 주장되어져. 이게 슬로바키아.가 되는겨. 슬로바키아.의 단군은 그래서 이 프리비나.가 돼. 슬로바키아.란 말은 15세기가 지나서야 나타나는 말이고. 

 

유전적으로 하플로그룹에서 슬로베니아.가 남슬라브.가 아니라 서슬라브.계통인겨 이게. 최근에 밝혀진게. 저 역사가 맞아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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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르.가 망하자 마자. 판노니아 위에서 모라비아.가 바로 등장을 해. 서기 833년.에. 이 모든게 아바르.여 저 판노니아땅의. 

 

Mojmir IMoimir I or Moymir I[1] (LatinMoimarusMoymarusCzech and SlovakMojmír I.) was the first known ruler[2] of the Moravian Slavs (820s/830s–846)[3][4] and eponym of the House of Mojmir. In modern scholarship, the creation of the early medieval state known as Great Moravia is attributed either to his or to his successors' expansionist policy.[5][6] He was deposed in 846 by Louis the German, king of East Francia

 

모이미르1세.여. 영어로 모머.라고 해. 모라비아.는 이 모이미르 조.가 70년 하고 끝난거야. 조카가 이으면서. 

 

모이미르1세.는 샤를마뉴 죽고. 아들 경건 루이.에게 조공 바치다가 반기를 들어. 삼형제.의 동쪽 게르만의 킹.루이.에게 패하고 죽어. 

 

Rostislav (nebo také Rastislav,[pozn. 1] RasticRasticlaoRastislaus, někdy též Radislav či Ladislav[2]) z dynastie Mojmírovců (datum narození neznámé – po 870Bavorsko) byl v letech 846870 druhým velkomoravským knížetem  

 

조카. 로스티스와프.가 게르만 루이.를 이기고 다시 회복해. velkomoravským knížetem . 이사람 칭호.가 벨리코 모라비스킴 크니제템. 모라비아.의 벨리키 크냐즈.여. 영어로 이때 모라비아 의 저들을 킹.으로 막막 쓰는데.걍 군주. 프린스여. 

 

Cyril (born Constantine, 826–869) and Methodius (815–885) were two brothers and Byzantine Christian theologians and missionaries. For their work evangelizing the Slavs, they are known as the "Apostles to the Slavs"  

 

모이미르.의 조카. 로스티스와프.일때에 키릴 형제.가 모라비아.로 와서 나중 키릴문자.를 만드는겨 이게. 

 

In 862, the brothers began the work which would give them their historical importance. That year Prince Rastislav of Great Moravia requested that Emperor Michael III and the Patriarch Photius send missionaries to evangelize his Slavic subjects  

 

로스티스와프 재임때. 삼촌인 창업자.가 게르만 루이.에 죽고. 자기가 게르만을 이기고, 로마 카톨릭은 싫어. 비잔틴 황제에 요청을 해. 즉 얜 힘을 빌리려는겨 비잔틴으로 부터. 왼쪽 게르만 신성로마제국.을 상대하기 위해. 그래서 비잔틴 그리스도를 갖고 오는거고. 우리가 우리 말로 예배를 하고싶다 관련된 교회용어를 우리 언어에 맞게 만들어달라. 더하여 관련 글자.도 만들어 달라. 우리는 능력이 안되니까 우린 그리스도가 먼지도 잘 모르고. 이때 간 사람들이 키릴 형제.야. 이게 슬라브 글자.의 시작이 되는거야. 서기 862년.에 

 

러시아 만드는 류릭.이 노브고로드.를 세우는게 서기 862년.이야. 이때 키릴 형제들이 모라비아.를 간거야.

 

Old Church Slavonic[2] or Old Slavonic (/sləˈvɒnɪk//slæˈ-/), also known as Old Church Slavic[2][3], or Old Slavic (/ˈslɑːvɪk, ˈslæv-/), was the first Slavic literary language (autonym словѣ́ньскъ ѩꙁꙑ́къ, slověnĭskŭ językŭ). It is also referred to as Paleo-Slavic (Paleoslavic) or Palaeo-Slavic (Palaeoslavic),[4] not to be confused with Proto-Slavic. It is often abbreviated to OCS  

 

키릴 형제.가 만든 슬라브 언어.를 올드 처치 슬라보닉. 올드 슬라빅. 이라고 해. 이게 최초의 슬라브어 리터러리 랭귀지. 문어체 언어.라는겨. 문어체 언어.이고 이걸 쓴게 슬라브 최초 글자.인겨. 이게 나중에 키릴 문자.가 되는데. 자세히 보면

 

The Glagolitic script (/ˌɡlæɡəˈlɪtɪk/,[1] Ⰳⰾⰰⰳⱁⰾⰹⱌⰰ Glagolitsa) is the oldest known Slavic alphabet. It is generally agreed to have been created in the 9th century by Saint Cyril, a Byzantine monk from Thessaloniki. He and his brother, Saint Methodius, were sent by the Byzantine Emperor Michael III in 863 to Great Moravia to spread Christianity among the West Slavs in the area. The brothers decided to translate liturgical books into the Old Slavic language that was understandable to the general population, but as the words of that language could not be easily written by using either the Greek or Latin alphabets, Cyril decided to invent a new script, Glagolitic, which he based on the local dialect of the Slavic tribes from the Byzantine theme of Thessalonica.  

 

키릴형제.가 슬라브 교회 언어.를 갖고 글자를 만든걸. 글래고리틱 글자. 라고 하는겨. 즉 저때 성경을 번역한게 아냐. 교회 예배식 할때의 슬라브 언어와 글자.를 만들어준겨. 여기에 성경 문구들 몇구절들을 슬라브들 소리대로 써준겨. 형 보다 동생 키릴.에게 더 저작권을 주는거고. 이걸로 슬라브 들이 교회예배를 하는겨. 

 

가자마자 서기 863년에 만들어 주고 왔어. 저들 말에 맞는 발음을 해준겨 그에 맞게 글자를 써준거고. 이때 만들어준 글자는 그리스 로마 알파벳으로 써준거야. 단순작업이야 이게. 그런데 키릴.이 돌아와서 저 슬라브사람들에게 맞는 글자를 새로 만들어줘야 겠다는 걸 깨달아. 즉 저기 가서는 저들에겐 단순한 로마 그리스 알파벳 조합만 준거야.

 

슬라브족에 맞는 새로운 글자.를 만들은게, 돌아와서, 텟살로니카 테마.에서 창조한 글래고리틱. 이야. 

 

그리고. 키릴형제가 죽고. 이 학파들이 저 글래고리틱.을 발전시켜 만든게. 키릴 문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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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릴형제를 보낸 저때 비잔틴 황제.가 

 

Michael III (Greek: Μιχαήλ Γʹ, Mikhaēl III; 839 or 840 – September 23/24, 867) was Byzantine Emperor from 842 to 867. Michael III was the third and traditionally last member of the Amorian (or Phrygian) dynasty. He was given the disparaging epithet the Drunkard (ὁ Μέθυσος) by the hostile historians of the succeeding Macedonian dynasty, but modern historical research has rehabilitated his reputation to some extent, demonstrating the vital role his reign played in the resurgence of Byzantine power in the 9th century.  

 

미카엘3세.여. 아모리안 조.의 마지막 황제고. 이 다음이 마케도니안 조.의 바실레오스1세.인겨. 이 비잔틴 역사가  재밌는데. 미카엘 3세.가 결혼을 했는데. 부인의 코트 레이디. 시녀라 굳이 번역하는. 황제가 황후의 시녀에게 반해.

 

 

Eudokia (EudociaIngerina (Greek: Ευδοκία Ιγγερίνα) (c. 840 – c. 882) was a Byzantine Empress as the wife of the Byzantine emperor Basil I, the mistress of his predecessor Michael III, and the mother to Leo VI the WiseAlexander and Stephen I of Constantinople.  

 

에우도키아 잉게리나. 이여자도 황족 핏줄이야. 이 시녀.는 원래. 바실레오스.의 정혼녀야. 헌데 황제가 정을 주고 대신 자기 누이.를 수도원에서 꺼내와서 바실레오스.에게 주는겨. 

 

마케도니아의 바실레오스1세.가 뒤 마케도니아 조.를 열면서 비잔틴.이 그리스땅을 대부분 회복하는거지만, 이사람은 농부.여. 핏줄을 아르메니안.으로 봐. 우연히, 이전 황제인 Theophilos 테오필로스 의 친인척 눈에 띄어서 그집에서 집사로 있다가. Danielis (Greek: Δανιηλίς, Daniēlísfl. 9th century AD) 심부름으로 아카이아 에 사는 다니엘리스.라는 과부.를 만나다가 이 재산많은 과부.의 마음을 사고. 재산을 받는겨. 그러면서 황제 코트.에서 이름이 나고, 아들 미카엘3세.때 코트에서 일하면서 심복이 돼. 

 

여자를 뺏기고. 마음 숨기고. 황제 누이도 나쁠거 없고. 그리곤 저 시녀.인 잉게리나.가 아들을 낳아. 누가봐도 황제의 아들이야. 얘한테 황제 승계권을 줘. 이때 미카엘과 공동황제.가 삼촌이걸랑. 삼촌이 역모를 꾸민다고 바실레오스.가 일러바쳐. 사실인지 아닌지. 삼촌을 죽여. 그리고 바실레오스.가 죽은 삼촌 대신 공동황제가 된겨. 이 상태에서 다음 자리가 저 잉게리나.의 자식에게 가게 된거야. 

 

바실레오스.가 코트의 한명을 꼬셔서. 잠자는 황제 미카엘 3세.를 암살을 시켜. 이 암살범을 죽이고. 단독 황제가 되면서 마케도니아 조.를 여는겨. 그리곤, 에우도키아 잉게리나.를 황후.로 다시 맞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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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unkard. 미카엘3세.의 닉이. 드렁카드. 술고래여. 사악한 황제로 묘사해 마케도니아 조 일때. 조작으로 봐. 가장 좋은 황제의 하나야. 아랍애들의 기록으론 졸나 훌륭한 황제로 기록이 되어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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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atopluk I or Svätopluk I, also known as Svatopluk the Great (LatinZuentepulcZuentibaldSventopulchOld Church Slavic: Свѧтопълкъ and transliterated SvętopъłkъPolishŚwiętopełkGreek: Σφενδοπλόκος, Sphendoplókos),[1] was a ruler of Great Moravia, which attained its maximum territorial expansion during his reign (870–871, 871–894)  

 

모라비아. 로스티스와프 다음에 스바토플루크.여. 이사람이 왼쪽 보헤미안들.과 결혼으로 동맹을 맺으면서 보헤미아.가 모라비아.로 들어오는겨 이게. 이때가 서기 870년 이야. 이게 보헤미아 더치.의 시작이야. 이때 보헤미안 지도자.가 dux 둑스.여. 추장이여 이 호칭은 저때. 이걸 단지 duke 듀크.라 번역한거고. 시작은 어디 세입자가 아냐. 걍 보헤미아도 독자적인겨. 모라비아와 연합을 한. 모라비아의 듀크.라고 말할 수 있겄나. 

 

그리고나서. 프레슬리미드 조.가 독립을 하면서. 보헤미아에서만. 왼쪽 게르만과 오른쪽 모라비아.와 전쟁들 하다가. 게르만의 세입자.가 되면서 게르만의 듀크 더치가 된겨 이게.

 

왜냐면. 저 둘도 벅찬데. 헝가리 땅에 마갸르 족이 오걸랑. 

 

The Battle of Pliska or Battle of Vărbitsa Pass was a series of battles between troops, gathered from all parts of the Byzantine Empire, led by the Emperor Nicephorus I Genik, and Bulgaria, governed by Khan Krum. The Byzantines plundered and burned the Bulgar capital Pliska which gave time for the Bulgarians to block passes in the Balkan Mountains that served as exits out of Bulgaria. The final battle took place on 26 July 811,  

 

마갸르.족이 최초 등장하는게 서기 811년.이야. 1차불가리아와 비잔틴.이 전쟁하는 플리스카 전투. 플리스카.가 1차 불가리아.의 수도야. 발칸산맥 넘어서. 이때 불가리아.가 마갸르족.과 연합했다고 기록이 남은겨. 저때는 저 다뉴브 하류에 있던겨 얘들이

 

The Hungarian conquest of the Carpathian Basin,[1] also Hungarian conquest[2] or Hungarian land-taking[3]  Contemporary sources attest that the Hungarians crossed the Carpathian Mountains following a joint attack in 894 or 895 by the Pechenegs and Bulgarians against them. They first took control over the lowlands east of the river Danube and attacked and occupied Pannonia (the region to the west of the river) in 900. They exploited internal conflicts in Moravia and annihilated this state sometime between 902 and 906.  

 

마갸르.가 카르파티아 산맥 을 넘어서 판노니아 평원(헝가리 평원)을 들어간게 서기 900년 이야. 얘들이 비잔틴에 눈에 띄고 백년 만에 저길 넘어서 점령한거야. 이때 헝가리 위에 모라비아.가 있고 서쪽엔 바바리아의 마크들이 있는거고. 

 

쟤들때문에 보헤미아.가 확실하게 신성로마제국에 고개숙여 들어가 세입자 듀크.가 돼. 헝가리 위 모라비아.는 마갸르.가 지워. 

 

Árpád (845 – 907. július eleje) a magyar törzsszövetség nagyfejedelme[1] volt a honfoglalás idején – melynek során a magyarok Etelközből a Kárpát-medencébe települtek. 

 

이때 마갸르.의 추장이 아르파드.야 아르파드 조.를 여는. 이때 이사람의 타이틀은. 나지페예델메. 가 벨리키 크냐즈.여. 걍 독립적인 군주야. 백년 후에 킹덤이 되는겨 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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