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니세이강.Yenisei River. 이 3,438 km. 세계에서 다섯번째 길어. 네번째가 미시시피.야. 3900키로. 이게 몽골서북쪽에서 발원에. 러시아와의 경계가 산맥이야. 여기서 죽 북쪽 Novaya Zemlya 노바야 지믈랴.섬 안쪽의 카라 해 Kara Sea 로 가는겨. 저 출구가 예니세이 만.gulf 이야. 저 두께가 미시시피 흐르는 미국 대륙 두께 오대호에서 루이지애나 보다 약간 얇은겨 이게. 그리고 오른쪽 바이칼호수 남쪽 끝에서 발원하는 강이 Angara 앙가라 강.이고. 바로 아래 중간 두개 줄기.가 퉁구스 강 두개 지류야. 저 두강 사이에 퉁구스족.들이 사는겨. Tungus

 

퉁구스 언어족.은 별개의 언어족 민족이야. 

 

옛날엔 알타이 언어족 해서. 투르크 몽고 퉁구스 에서 코리안들을 다 알타이언어족. 저 알타이 산맥을 중심한.거로 봤는데.

 

알타이 꺼내면  무시기 소리들어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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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퉁구스.들도 예니세이강 타고 내려와서 하서주랑으로 들어가서 지금 중국 전역에 산재하고 있는겨.

 

The Afanasievo culture, or Afanasevo culture (Russian Афанасьевская культура Afanas'yevskaya kul'tura; "[the] Afanasevan culture"), is the earliest known archaeological culture of south Siberia, occupying the Minusinsk Basin and the Altai Mountains during the eneolithic era, c. 3300 to 2500 BC. It is named after a nearby mountain, Gora Afanasieva (Russian: Гора Афанасьева, lit. 'Afanasiev's mountain') in what is now Bogradsky DistrictKhakassiaRussia  

아파나시에보 문화. 아파나세보 문화. 미누신스크 분지.와 알타이 산맥에 걸친 지역.이야. 기원전 3300-2500. 여기의 캘코리틱. 구리시대야. 저 좌표 빨강이 미누인스크. 인데 예니세이강 오른쪽변이고. 바로 왼쪽접변이 지금 카카시아(하카시아) khakssia 공화국.이야. 러시아 안의. 아파나시에보 문화.는 저기서 서남 죽 아래 발하슈(발하시) 호수 북부지역까지 길게 뻗친걸로 봐. 

 

저기서 2천년 지나서 기원전 천년 즈음에 천산산맥 넘어 타림분지 로 들어간 이들을 토카리안 이라해. Tocharians.

 

저 카카시아 공화국 지역이 또한, 몽골고원 위구르들을 당나라때 아래로 내몬 예니세이 키르기즈.라는 투르크가 살았던 곳이야. 키르기즈스탄의 시작이 저기인겨. 저 아파네시에보 문화 기원전 3300-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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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카리안.은 인도유럽피안.으로 봐. 이들은 기원전 1천년에 타림분지로 들어가서, 예니세이 키르기즈.애들때문에 밀려들어온 고창위구르.애들이 들어올때 토카리안언어족이 사라지는겨. 이 고창위구르.와 하서주랑 감주위구르.들은 칭기스칸한테 지워지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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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나시에보 문화.는 인도유럽피안.이야. 즉 흑해와 카스피해 주변에서 이리 이동한겨. 기원전 3300-2500년에.

 

인도유럽피안.이 흑해-카스피해 스텝에서 기원전 4천년에 동과 서로 움직이면서 왼쪽의 유럽을 만들고 오른쪽에 이란 인도 문명을 만든거야. 

 

이걸 쿠르간 가설.이라고 해.

 

The Kurgan hypothesis (also known as the Kurgan theory or Kurgan model) or steppe theory is the most widely accepted proposal to identify the Proto-Indo-European homeland from which the Indo-European languages spread out throughout EuropeEurasia and parts of Asia.[3] It postulates that the people of a Kurgan culture in the Pontic steppe north of the Black Sea were the most likely speakers of the Proto-Indo-European language (PIE). The term is derived from the Russian kurgan (курга́н), meaning tumulus or burial mound.  

 

쿠르간 하이포때시스. 쿠르간 띠오리. 쿠르간 모델. 스텝 이론. 아주 걍 정설이야 이건. 폰틱 스텝 pontic steppe 에서의 쿠르간 문화.가 인도유럽.을 만든겨 양옆으로 퍼져서. 이들이 문명을 만든겨 지금의. 4천년동안. 

 

폰틱.이 pontos 폰토스. 바다여. 바다위의 스텝지역. 여기서 바다의 중심은 흑해.야. 우크라이나 야 이건. 흑해에서 오른쪽 카스피해 위까지야. 즉 코카서스 산맥 위가 중심이야. 

 

kurgan (Russian: курга́н) is a type of tumulus constructed over a grave, often characterized by containing a single human body along with grave vessels, weapons and horses. Originally in use on the Pontic-Caspian steppe, kurgans spread into much of Central Asia and EasternWestern and Northern Europe during the 3rd millennium BC.[1]

The Russian noun, already attested in Old East Slavic, comes from an unidentified Turkic language,[2] compare Modern Turkish kurğan, which means "fortress". Kurgans are mounds of earth and stones raised over a grave or graves. Popularised by its use in Soviet archaeology, the word is now widely used for tumuli in the context of Eastern European and Central Asian archaeology.

The earliest kurgans date to the 4th millennium BC in the Caucasus,[3] and researchers associate these with the Indo-Europeans.[4] Kurgans were built in the EneolithicBronzeIronAntiquity and Middle Ages, with ancient traditions still active in Southern Siberia and Central Asia. Archeologists divide kurgan cultures into different sub-cultures, such as Timber GravePit GraveScythianSarmatianHunnish and Kuman-Kipchak.

 

쿠르간. 이라는게 러시아 슬라브말이고. 튜뮬러스.의 한 형태인데, 튜뮬러스.가 tomb 무덤이여. 라틴어야. 튜뮬러스.는 쌓아올린겨 이건. 무덤얘기할땐 봉분.이 되는거고. 그레이브 grave 라는건 게르만말 무덤인데 이건 갈라진 틈이야. 동굴같은거고, 땅을 갈라서 묻는게 그레이브.야. 봉분이 아냐 이건. 

 

쿠르간.이란건 무덤안에 그릇들. 무기들. 말들.을 같이 묻는겨 사람이랑 함께. 여기서 뽀인트는 무기.와 horse 말.이야. 이걸 봉분으로 같이 묻은 무덤.을 쿠르간 kurgan 이라고 하는겨 슬라브어로. 이게 기원전 5천년대 부터 폰틱 스텝 지역에 보이는겨. 저긴 전4천년이라 했지만. 이 쿠르간 형태의 무덤들이 기원전 3천년에 동쪽 중앙아시아. 즉 카스피해와 아랄해 동쪽 트랜스옥시아나 지역과 저 아파나시에보 문화의 예니세이강 상류. 발하슈 호수 윗쪽에 보이고, 서쪽으로 동유럽 서유럽 북유럽 전역에 보인다는겨 저게. 그래서 코카서스 산맥 북쪽의 폰틱 스텝.에서 시작해서 좌우로 기원전 3천년에 좌우에 정착한 걸로 보는겨. 저 문화의 사람들이. 저말이 전3천년에 그렇다고 저 좌우지역에 사람들이 안살았다는게 아니라 이 멍텅구리들아. 저사람들 문화.가 압도적으로 지배를 했다는겨 이전 토착민들을. 

 

저들이 말과 무기.를 앞세우고 이동하면서 좌우의 토착민들을 지배하고 저들의 언어가 지배하면서 쓰이는겨. 이게 인도유럽피안의 시작이야. 

 

러시아어 쿠르간.이 저런 무덤의 뜻이고. 지금 터키어 쿠르간.의 뜻은 저런 무덤위에다가 흙과 돌을 쌓아올린 포트리스 fortress 요새.를 쿠르간.이라고 해 투르크말로. 포트리스.란건. 라틴어 fortis 포르티스. 포르스. 가 strong 강한거야. force 포스.가 여기서 나오고. 탄탄한 요새.야. 

 

저 이론이 지금 아주 정설이야. 고고학으로 확인이 된겨. 저 이론을 만든 여자.가 엄청난 여자야. 

 

 

 

Marija Gimbutas (LithuanianMarija Gimbutienė; January 23, 1921 – February 2, 1994) was a Lithuanian-American archaeologist and anthropologist known for her research into the Neolithic and Bronze Age cultures of "Old Europe" and for her Kurgan hypothesis, which located the Proto-Indo-European homeland in the Pontic Steppe.

 

마리야 김부타스. 리투아니안-어메리칸 고고학자.에 인류학자.인데. 쿠르간 가설.을 만들고 인도유럽피안 언어족 모델을 만든겨 이여자가. 더하여. 이 마리야 김부타스.가 세상 모~~든 페미니즘의 그야말로 하나님이야. 

 

페미애들이 개졸무식해서 그야말로 페미인데. 아 증말 특히나 이땅빠닥의 페미는 그야말로 끔찍한 수준이고 이게. 이 조선페미는 지들의 웬수를 숭상하민서리 여자선비가 되려는 페미걸랑. 그야말로 세상빠닥에서 가장 무지한 족속이야. 헌데 이해를 해야해. 왜냐면 조선 남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지하걸랑. 쟤들의 천장이 개무지한 조선남자인데 그 개무시기를 상대하는 족속이 어련하겠니.

 

Marija Gimbutas was born as Marija Birutė Alseikaitė to Veronika Janulaitytė-Alseikienė and Danielius Alseika in Vilnius, the capital of Republic of Central Lithuania; her parents were members of the Lithuanian intelligentsia.[1]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태어났어. 1921년. 1차대전 끝나고 태어난겨. 부모들이 리투아니아 인텔리겐차 멤버들인데. 

 

Her mother received a doctorate in ophthalmology at the University of Berlin in 1908 and became the first female physician in Lithuania, while her father received his medical degree from the University of Tartu in 1910. After the 1917 Russian Revolution, Gimbutas's parents founded the first Lithuanian hospital in the capital.[1]  

 

엄마.가 베를린대학 눈깔학. 오프땔몰로지. 박사고 의사야. 첫번째 여자 피지션. 내과의사야. 아빠는 에스토니아 타르투 대학 의학학위를 받고. 그러다 1차대전중에 1917 러시아혁명 일어나고. 레닌이 막시스트들의 노동.인민.사회.를 표방한 정당의 다수인 볼셰비키.로 쏘련.을 만들어. 저 노동.인민.사회. 아 엄청난 말이야 저게. 저 세개 가 교미하면, 사람들을 그야말로 대학살 하는거걸랑.

 

이 조선들의 땅빠닥에선 머 저딴게 깨인 지식인자연 행세하는건데. 그야말로 개무식한 땅에서 떠받들여지는 이념놀이걸랑. 무지한 땅빠닥에서 벌어져야만 하는 어찌할 수 없는 과정이야. 아 슬픈 조선반도여, 우리네도 곧 저리 갈텐데 말이지. 여긴 희망이라곤 털의 결에 묻은 먼지만큼도 없는 땅이 되버린건데.

 

부모.가 리투아니아.의 지식인들의 싸롱이 되는겨 집안이. 전쟁땐 병원을 만들어. 마리야 김부타스.가 저 문화속에서 자란겨. 자기가 글을 써, 저 속에서 당대 최고의 인문학 사람들의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고. 

 

In 1931, Gimbutas settled with her parents in Kaunas, the temporary capital of Lithuania, where she continued her studies. After her parents separated that year, she lived with her mother and brother, Vytautas, in Kaunas. Five years later, her father died suddenly. At her father's deathbed, Gimbutas pledged that she would study to become a scholar: "All of a sudden I had to think what I shall be, what I shall do with my life. I had been so reckless in sports—swimming for miles, skating, bicycle riding. I changed completely and began to read."  

 

1931년. 나이 10세.에 카우나스.로 이사해. 당시 임시수도. 지금 비뉴스.다음 제2의 도시야. 15세 1936년에 아빠가 죽어. 이 침상에서 다짐을 했대. 학자가 되기위한 공부를 하겠다고. 

 

갑자기 나는 생각해야 했다 내가 무엇이 될것인가, 내가 내 인생에 걸쳐 무얼 할것인가. 나는 장거리 수영, 스케이팅 자전거 등 스포츠에 환장해왔지만. 아빠 죽음침상에서 완전하게 바뀌고 읽기 시작했다.

 

15세에. 대부분은 자기가 멀 할까 확신없이 살다가 가시는데 말야.

 

 

In 1941, she married architect Jurgis Gimbutas. During the Second World War, Gimbutas lived under the Soviet occupation (1940-41) and then the German occupation (1941–43).[6]  

 

1941년 나이 20세.에 설계사랑 결혼해서 김부타스.가 되고. 2차대전 중에. 소련 연방이었다가 독일애들 나찌 들어오고. 

 

Gimbutas' first daughter, Danutė, was born in June 1942. Early in 1944 the young Gimbutas family, in the face of an advancing Soviet army, fled the country to areas controlled by Nazi Germany, first to Vienna and then to Innsbruck and Bavaria.[7] In her reflection of this turbulent period, Gimbutas remarked, "Life just twisted me like a little plant, but my work was continuous in one direction."[8]

While holding a postdoctoral fellowship at Tübingen the following year, Gimbutas gave birth to her second daughter, Živilė. From 1947 to 1949 she did postgraduate work at the University of Heidelberg and the University of Munich. In the 1950s, the Gimbutas family left Germany and relocated to the United States.[7][9][10]

Her third daughter, Rasa Julija, was born in August 1954 in Boston.  

 

다음해 딸 낳고 2차대전 말에 소련이 서진하고. 비엔나로 인스브룩으로 바바리아.로 피신해. 

 

삶은 나를 쥐어짤 뿐이었다, 작은 식물 신세였고. 그러나 내 일은 계속 했다 한방향으로만. 즉 저와중에도 이여잔 공부를 한겨. 튀빙겐 대학에서 포닥을 했어. 박사 이후과정. 그리고 둘째 딸 낳고.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포닥을 졸업해. 1949년. 28세에. 이 하이델베르크.가 대학의 도시야. 저 대학이 신성로마제국때 세운 가장 오래된 대학이야. 아마도. 아 확신이 안서네 이거. 니덜이 확인해 보고. 뮌헨대학에서도. 그러다 30대에 미국으로 간겨. 1950년대에. 1994년. 73세에 엘에이.에서 죽은건데. 

 

즉 공부를 리투아니아.와 오스트리아.에 독일땅에서 이미 다 한겨. 

 

리투아니아.란 곳이, 참 조온나 허섭해졌지만 말이야. 요가일라 야기에워와 사촌 비타우타스 때부터 걍 갑자기 저기가 폴란드랑 엮이면서 폴란드의 황금자유시대.를 같이 겪은 이들이야. 이전엔 폴란드에 크라크푸 대학도 있던거고. 저 문명이 엄청난겨 저게. 저기에 왼쪽 귀퉁이 프러시아 튜튼 십자군이 이전에 들어오면서 얘들이 신성로마문명을 그대로 갖고 오고, 이전에 리보니안 십자군으로 위에서 그대로 다 갖고온겨 이게. 슬라브들이 좌우에서 아주찐하게 게르만이 익힌 고대 그리스로마와 중세 그리스도를 아주 찐하게 습한겨. 최고야 최고 저 폴란드 리투아니아.의 중세직후 근대초기.는. 이 여자는 이 문명이 만든 여자야. 

 

In 1956 Gimbutas introduced her Kurgan hypothesis, which combined archaeological study of the distinctive Kurgan burial mounds with linguistics to unravel some problems in the study of the Proto-Indo-European (PIE) speaking peoples, whom she dubbed the "Kurgans"; namely, to account for their origin and to trace their migrations into Europe. This hypothesis, and her method of bridging the disciplines, has had a significant impact on Indo-European studies.  

 

미국에 가서. 서기 1956년. 35세.에 쿠르간 가설.을 알린겨. 최고야 최고. 모든 언어족 연구의 시작이야 이게. 이걸로 모든 민족.의 흐름을 보는 거고. 이게  하플로그룹 유전자 지도.로 얼핏 맞는거야 요즘이게. 아 증말 음청난겨. 인문학이 자연과학의 선생님이야. 인문학이 자연과학을 만드는겨. 아 내가 전세계 최고인데. 소설을 못쓰겟어. 노벨상 막막 줄까봐.

 

Three genetic studies in 2015 gave support to the Kurgan theory of Gimbutas regarding the Indo-European Urheimat. According to those studies, haplogroups R1b and R1a, now the most common in Europe (R1a is also common in South Asia) would have expanded from the Russian steppes, along with the Indo European languages; they also detected an autosomal component present in modern Europeans which was not present in Neolithic Europeans, which would have been introduced with paternal lineages R1b and R1a, as well as Indo European languages.[13][14][15] 

 

세가지 유전자 연구들 2015년.이 김부타스.의 쿠르간 이론.을 증명해주다. 인도유럽피안 우르하이마트. 고향 시원을. 걍 쿠르간 이론 그대로 유전자 지도로 다 들어맞는겨. 60년 후의 과학적 자료들이. 음청난겨 이건.

 

마리야 김부타스.의 업적이 저거 하나만도 어마어마한거야. 저여잔 최고의 노벨상을 주었어야해. 

 

Gimbutas gained fame and notoriety in the English-speaking world with her last three English-language books: The Goddesses and Gods of Old Europe (1974); The Language of the Goddess (1989), which inspired an exhibition in Wiesbaden, 1993–94; and the last of the three, The Civilization of the Goddess (1991), which, based on her documented archaeological findings, presented an overview of her conclusions about Neolithic cultures across Europe: housing patterns, social structure, art, religion, and the nature of literacy.  

 

김부타스.가 욕처먹는게, 신.에 대한 문제야. 이 여자는, 여신.이 고대 문명의 중심 이었다는겨. 저게 먼말이냐면 말야.

 

쿠르간.의 뽀인트.는 무기.와 말.이야. 즉 쿠르간.의 폰틱 스텝 사람들이 말이란 기동력과 무기.로 문명을 압도하고 지배를 하기 시작했다는거걸랑. 그래서 인도유럽피안을 만든겨. 

 

이들 전에는, 즉 기원전 4천년 이전의 좌우 모든 세상.은 평화로왔다는겨. 이 중심엔 여자.가 있었고. 여성 우대가 있었고 남녀 평등이었고, 이 바닥엔. 갓디스. 여신.이 남신.보다 우위였다는겨 이여자 말은. 

 

페이건 들이  환호하는겨 ㅋㅋㅋ. 대신 학계에선 반대로 미친년 소리 듣는거고. 

 

김부타스.의 저 주장을 반박하는게, 저 이전에 오기전의 유럽 유적들엔 그러면 사람 살해. 전쟁. 무기 가 없었다는거냐? 고고학적을 파보니 저들 오기전에 무기가 있었다. 하민서리 그런 평화로운 고대. 인도유럽피안이 오기전의 평화.는 잘못된 거다.라며 반박하는거걸랑.

 

Peter Ucko and Andrew Fleming were two early critics of the "Goddess" theory, with which later Gimbutas came to be associated. Ucko, in his 1968 monograph Anthropomorphic figurines of predynastic Egypt warned against unwarranted inferences about the meanings of statues. He notes, for example, that early Egyptian figurines of women holding their breasts had been taken as "obviously" significant of maternity or fertility, but the Pyramid Texts revealed that in Egypt this was the female gesture of grief.[24]  

 

피터 어코.는 고고학계 주류.의 최고로 평가받는 인간인데. 저 갓디스. 여신에 대해 비난하길. 이집트 빵빵왕조 이전의 여신상에 대해 요즘 근거없는 썰들이 저 김부타스.가 라며 콕찝어 말은 못하겠고 함시롱 이집트 여자들에 대한 이미지가 자기들 가슴들을 잡고 있는 의미.는 명백하게, 모성과 풍요로움생산.을 상징하는거야! 헌데 나중 피라미드 텍스트를 해석해보니 저 이가 명백하게 맞다며 주장하는 소리가 개소리였다는거지. 여자가 가슴잡는 의미는 슬픔.을 표현한거라며.

 

저 여신.에 대한 의미부여.가 김부타스.의 말이 틀렸다.라고 말할 수가 없어. 그렇다고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페미들은 저딴걸 써먹어야 하걸랑. 대갈빠기 돌대가리라 못써먹을뿐이지.

 

마리야 김부타스. 최고야 저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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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s that Gimbutas considered as part of the "Kurgan culture":

쿠르간 문화.의 최초가. 버그-드네스트르. 드네스트르강.이 니스터. 몰도바와 우크라이나 경계고. 버그.강이 써던 버그. 이전 했잖냐 기억없게찌물론. 키예프 드네프르강과 드네스트르 강 사이에 버그.강이 있다했잖니. 이 버그-드네스트르.니스터 강 사이가 기원전 5천년대.야. 

 

사마라. 기원전 4천년대. 4999에서 4000. 크바린스크. 기원전 5천년. 사마라.와 크바린스크.는 우랄산맥 아래. 카스피해 북부.에 볼가강이 꺾여 카스피 향해가는 지점이야. 드네프르-도넷. 기원전 5천년-4천년. 도넷강.이 드네프르강 위에 강이야. 도넷이 흘러서 돈 강.이랑 만나서 아조브해로 가는겨. 우크라이나.가 가운데 드네프르강.이고 오른쪽이 도넷강. 왼쪽이 버그강.이야.

 

스레드니 스토그. 기원전 4천년-3천년. 여긴 드네프르강 하류지역이야. 

 

Maykop 마이코프. 전3500년 2500년. 코카서스 인접 북쪽이야. 이 위가 얌나야. 기원전 4천년3천년. 

 

Usatovo culture 우사토보. 전3500년 이후. 여기가 Coţofeni 코초페니.라는 루마니아의 카르파티아산맥 휘감싸는 지역이야.

 

모두 흑해 코카서스산맥 북쪽이야. 아래도 아냐. 대부분 우크라이나.인거고. 인도유럽피안을 만든. 지금 문명의 최초 조상님들이 지금 처지가 슬픈거지.

 

코사크님들을 보면 깍듯이 인사를 하도록해. 코카서스님들이랑. 

 

니덜은 예의가 읎어유, 

 

칭기스칸. 네아들 하려다. 이게 먼 개소리한거냐 또. 

 

아 저거들 다 은제 하냐. 정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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