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夏(1038年-1227年),国号大夏邦泥定国,是中國歷史上由党項族建立的一個朝代。主要以党項族為主體,包括漢族回鶻族吐蕃族等民族在內的國家。因位於中原地區的西北方,國土佔據黃河中上游,史稱西夏

 

서하.라는 나라이름은. 아주 후대에 사가들이 만든 이름이야. 탕구트 당항족.이 자칭할때 자기들말을 한자표기로. 방니정.국 한겨. 방니정.이 머 쟤들만의 의미가 있겠지. 저걸 대하.라 하고. 저기가 북위의 남북조때. 하주夏州. 라고 한거야. 은천시. 있는 오르도스. 하투의 황하 덮개 지역을. 은천시에서 국자가 꺾이고 오르내리는 지역이 유림시.야. 이 아래가 연안시.이고. 황하 변들을 오르도스.라는 하투.라 하고 또한 여기 분지를 감숙녕 분지.라해. 안녕 할때.녕. 이 편안하다.란 땅 평평이 된겨. 이 녕.이란 글자와. 하주.의 하.란 글자가 합해서. 녕하. 라는 닝샤 자치구.의 이름을 지금 쓰는겨 宁夏回族自治区. 녕하.라는 단어는 원나라 때 나오는 단어야. 

 

북위의 남북조때. 하주.라는게. 지금 유림시. 榆林市 야. 섬서성 위끝. 오르도스 하투 국자 덮은거 바닥면.의 오른쪽 전투.지역이야. 서하.라는건 이 하주. 유림시.의 왼쪽이란거야. 여기가 지금 은천시.라는 탕구트 서하 킹덤.의 수도였던겨. 지금 서하구.西夏区 가 은천시.내의 관할구.야. 자기들 킹덤 수도지역.이 서하.인거야. 이게 머 하주.의 서쪽 전부 이따위게 아니고, 영어위키처럼 황하의 서쪽해서 서하.다 이따위 설명도 개거지설명이고. 일단 황하.라는 하.와 서하.의 하.가 전혀 다른데 먼 황하의 서쪽이니. 

 

황하.라는 이 단어도 말야. 웃기게도. 사마천 사기에도 나오지 않는단어야. 반고의 전한서.에서나 나와 이 황하.라는 강이름이. 즉 사마천 조차 자기들 역사.를 황하로 본게 아냐 이게. 

 

지금 섬서성(산시성)이. 하주.라는 유림시(위린시)가 맨 위고. 오른쪽 산서성(산시성)과의 경계가 황하.여. 오르도스.라는 하투. 국자 안쪽에 있는겨. 손내민 삐쭉 맞은 편이 닝샤 회족 자치구.야. 녕하. 은천시(인촨시)가 수도고. 이게 서하.인겨. 닝샤.가 짝아. 7만제곱이 안돼. 닝샤의 아래쪽은 감숙성(간쑤)로 감싼겨. 감숙성 아래가 두개 붕알로 길게 늘리면서 섬서성과 접한거고. 거대한 서하 였던 이름의 하.와 분지 녕.합한 닝샤.는 저리 짝게 갇힌거고 여긴 지금 회족.이라는 무슬림들 땅이된거고. 

 

저기서. 石嘴山市 석취산시(스쭈이산 시).까지만 닝샤 후이족 자치구야. 여기부터 황화강 돌아 올라 내려가는 오르도스 전지역이 지금 내몽고 자치구야. 유림시 위까지. 저 지도를 잘봐야해. 내몽고가 황하강 넘어 아래를 다 먹은겨 지금. 

 

西夏由党項族所建立。党項族是羌族的一支,帶有鮮卑的血統。唐朝時居住在四川松潘高原一帶[11],是唐朝的羈糜州之一。當時分有八部,以拓跋氏最為強盛。  

 

서하.가 당항족.이 만든건데. 강족.의 가지야. 이들은 시작이. 청해 북동부 기련산맥.의 아래기슭에 있었어. 여기서 선비족 가지인 토욕혼(토곡혼)의 지배에 있다가. 당나라때는 송심고원.에 있었대. 여긴 저 한중 아래 진령 넘어 아래야. 이들이 당.때 羈糜州 기미주.의 하나였다.

 

“羁,马络头也;縻,牛蚓也" 사마천.이 사기에 쓰길. 기. 마락두야. 미 우인야. 말과 소에 줄을 맨겨. 즉 야만애들을 고삐를 매서리 가르치겠다는 겨 저말은. 기미정책이란게 중국 모든 왕조의 정책이돼. 야만애들을 고삐매서 갈켜서 자기들 스스로 다스리게. 자치구.를 오래전부터 둔거야. 얘들이 그러면서 고위직 공무원이 되게 하고. 이 당항족이 절도사.도 되는겨.

 

节度使中國越南朝鮮古代軍事將領,因受职之时,朝廷赐以旌节,故称。後來在中國和越南成為地方军政长官,簡稱節度節使節帥代驻守於各道的武将称为都督,都督带使持節的称為节度使。一般情況下也時常稱持節的各鎮守軍官,如觀察使招討使安撫使等為節度使  

 

절도사. 라는게 당나라때 자리가 아니라. 극동의 무사계급을 칭해. 고대에 군사장령.이 임명될대 조정 코트가 정절. 깃발과 마디있는 짝대기.를 하사해. 징표로. 후에 중국과 월남에서 지방군정장관.을 간칭 절도. 절사. 절수. 라고 했다. 당대에는 군대기지를 지키는 각도의 무장을 감독.이라 칭하고. 감독이 지절. 부절을 취해서 절도사.라고도 해. 각 진관. 지역별 군단기지 지키미 군관. 관찰사. 초토사. 안무사. 등이 절도사.야

 

唐, 618년 ~ 907년.

Turkic Khaganate 552–659

The Tang Empire conquered the Eastern Turkic Khaganate in 630 and the Western Turkic Khaganate in 657 in a series of military campaigns. The Second Turkic Khaganate emerged in 682 and lasted until 744 when it was overthrown by the Uyghurs, a different Turkic group.  

 

당나라.가 서기 618년.이고. 부민카간의 돌궐국.이 552년에 서. 이 후손들이 당나라 황제와 서신 교환에. 투지에.라는 돌궐.의 칸.이요 하민서리 돌궐. 투르크.란 말의 시작이 돼. 아 걍 그런줄 알어. 부민카간.의 동생 이스타미.가 아랄해쪽 가서리 서돌궐.을 세워. 이 두개 돌궐이. 얘들보다 60년 지나서 선 당나라.에 망하는겨. 당이 서자마자 당태종.이 서기 630년.에 부민카간의 동돌궐을 망.하고. 다음바로 당고종.이 서돌궐을 망.시켜 서기 657년에 출정해서 659년 망. 그리고 다시 2차 돌궐이 서고 744년.에 위구르.에 망하는겨. 서기 552-744.가 돌궐국.이 세상에 티나온겨. 몽골에 있던 애들이 서쪽으로 간거고 얘들이 오구즈 투르크언어족의 조상이 되는겨. 이게 지금 터키애들인거고. 쟤들 전에 유연.이었고. 유연 전이 선비였고 이전흉노였고.

 

당나라가 서자마자 하서주랑 타고 쳐 올라간거야. 천산산맥 북쪽기슭으로 옥수스강(아무강)따라 아랄해 오구즈까지 간겨. 바로간겨 당나라가. 당고조 이연.다음 태종.다음 아들 고종.해서 3대안에 끝을 본겨. 

 

武曌[4](624年2月17日-705年12月16日) 무조. 武则天 무측천.

唐太宗李世民(598年1月23日-649年7月10日)

唐高宗李治(628年7月21日-683年12月27日) 

 

당나라.는 시작하고 삼대 당고종.때에 서돌궐.까지 가면서 망시키고. 이 당고종.이란 3대대 나당연합으로 고구려 백제 망 시키지만. 이때부터 저문겨 이게. 당이 3백년 좀 안갔지만 이미 3대 당고종 끝나고 저문겨. 바로 서기 700년 전후에 등장하는게 측천무후.라는 무측천.이야. 당태종.의 첩이고. 26세 아래야. 당고종 이치.보다 네살 많아. 헌데 이치.가 배다른 엄마 무씨를 좋아해. 아빠죽고 중대갈된 무씨 찾아가고. 마누라 황후 왕씨가 무씨 데리오고. 아 저때 무씨 처세술 짱이야. 그리고 지 딸죽이고 왕씨에 덮어쒸우고 폐황후만들고 자기가 황후가 돼. 나라이름도 고쳐. 음청난 여잔대. 고종.을 독살시켰다는 설도 있고. 

 

이런 이야긴 말야. 유럽사에 없어. 야만의 극동사 에게만 있는 이야기야. 이전 인간돼지 이야기 처럼.

 

유럽사엔 저딴 짓들이 없어. 일단 첩도 없고. 여자가, 저리 자기 신랑을 저리 죽이고 이전 본처핏줄들 친인척들 몰살하는 그딴 짓들은 없어. 형제 살해 그따위 짓도 없고. 아들이 애비죽이는 짓은 더 없어. 오직 이 극동빠닥 역사만 유일한겨 이 중국들과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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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祿山(703年2月19日-757年1月30日),本姓[2],名軋犖山[3]营州柳城(今辽宁省朝阳市)人。母阿史德氏[4]。父为昭武九姓粟特人,母为突厥巫師,信仰祆教[5]。安祿山是唐代藩镇割据势力之一的最初建立者,也是安史之亂的主要發動人之一,并建立燕政权,年号聖武。  

 

唐玄宗李隆基(公元685年9月8日-762年5月3日)(712年-756年在位)

楊貴妃(719年-756年7月15日)

 

 

무측천.지나고 나오는게 당현종.에 양귀비.에 안녹산.인데. 안녹사 사사명 안사의 난.이나면서 당은 끝물을 타. 이후 150년 후에 망하는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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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현종이 자기 비 측천무 조카 무씨가 죽고, 닮았다며 마음주는게 무씨 와 낳응 아들 이모.의 마누라여. 양귀비. 34세 차이야. 

 

根据《新唐书》的记载,在开元二十八年(740年)十月[14],以为玄宗母亲窦太后[b]祈福的名义[15]敕書寿王妃杨氏出家为女道士。道号“太真”。  

 

당현종.이 양귀비.를 자기 죽은엄마 두태후.를 위해 기도하라며 출가시키고 도사.로 만들고 태진.이름 주어서 자기옆에 들인게. 서기 740년. 당현종 55세. 양귀비 21세. 아들마누라가 된게 4년전이고. 아들 이모.가 745년에 딴여자랑 결혼해. 바로 한달후에 양귀비.를 당현종이 귀비.로 들여. 60세. 26세. 

 

安史之亂唐朝於755年12月16日至763年2月17日由安祿山史思明唐朝發動,同唐朝皇室爭奪統治權的內戰动乱,是唐朝由盛而衰的轉捩點[1][2],也造成唐代藩鎮割據[3]。由於反唐戰爭的發起者以安祿山史思明二人為主,故事件被冠以安史之名。亦稱天寶之亂。  

 

안사지난. 이 755-763. 팔년간의 난.인데. 양귀비를 귀비로 들이고 10년 후. 안녹산은 757년에 죽고. 사사명은 761년에 죽고. 안녹산.은 아들한테 죽고. 이 아들을 사사명이 죽이고. 이 사사명은 또 자기아들에게 죽고. 골때리는 시절인데. 史朝義. 사사명의 아들 사조의.가 763년에 자살하면서 저게 끝나는겨. 

 

엄청난 살육전이 저 안사의 난.이야

 

Censuses taken in the half-century before the rebellion show a gradual increase in population, with the last census undertaken before the rebellion, in 755, recording a population of 52,919,309 in 8,914,709 taxpaying households. However, a census taken in 764, the year following the end of the rebellion, recorded only 16,900,000 in 2,900,000 households.  

 

전체인구 53백만.에 세금내는 가구가 9백만가구.였는데. 저 8년난 이후 기록이 17백만에 가구수 2.9백만. 3천6백만명이 죽었어. 인구가 1/3 만 남은겨. 2/3이 죽고. 

 

이 중국들 전쟁은 그야말로 이건 살육전이야. 

 

이런 전쟁은 유럽에 없어. 독일 30년 전쟁때인 17세기에나 벌어지는거고. 유럽은 이때부터 긴장을 하게 돼. 용병을 안쓰고 자기군대를 쓰고자 하고. 총이 극대화되고 무기가 발전한 상태서, 상업에 뒤쳐진 애들이 약탈을 하는게 30년 전쟁이걸랑. 독일 신성로마 땅들이 이때 통일을 해야한다란 자각이 생기고 이걸 한게 프러시아야. 

 

중국은 머 걍 고대부터 중세부터 근대에 현대전까지. 걍 죽이자여 죽이자.

 

이게 조선이고. 머  한국전쟁 때 국군이 양민을 죽였다느니 어쩌고 저쩌고 이승만이 먼저 학살을 해서리 인민군애들이 보복했을 뿐이라느니 저쩌고.. 어차피 내려와도 걍 죽이는겨 서로서로. 저걸 마치 인민군들은  민족의식 이념 투철 빨치산 만세  하면서 국군 나보 인민군 착해  남부군 놀이 해대질 않나.

 

참 그야말로 끔찍하고 더럽고 추악한 해석질인데 저 이념놀이 하는 저 그야말로.

 

이 극똥빠닥은. 그냥 서로 적페야 서로 죽이자야. 저 거대한 중국 울타리의 역사의 이음일뿐이야 이게. 

 

그러면서 저 중국들을 떠받드는거고 여전히. 미세먼지 오믄 절대 중국 탓 하면 안돼. 차 몰고 다니지 말래. 중국몽 함께 하고.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항상 인지하고 북조선한테 잘해야한대. 

 

이 들은. 논리가 안되면. 특수성.이란 참 싀안한 방패를 또 들이대. ㅋㅋㅋ. 참  웃긴 족속이야 저것들은. 

 

곧 니덜이. 이땅을 피바다.로 만들면서 낄낄대고 웃을 날이 오겠지. 적폐를 몰아낸대민서.

 

사악한 이들이 정의를 외치는 세상이 되었으니.

 

무식해서 그래 저게. 

 

공정한 세상을 만들겠다 모든 생활속에서. 참 그야말로 아주 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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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의난.이란게 아주 중국사에서는 치명적이야. 저때의 양귀비 사건은. 양귀비의 사촌오빠들에 친인척과 양귀비 언니들이 역시나 세명이 같이 코트로 들어가걸랑. 채륜때 두황후 시절 두 귀인이야기에 역시나 언니동생들이 같이 코트에 들어가듯이. 당나라가 그야말로 당나라가 된게 저 당현종 말년때의 양귀비이고 안녹사에 사사명이야.

 

당. 唐, 618년 ~ 907년.

The Rashidun Caliphate 632–661

The Umayyad Caliphate 661–750 CE

1차 Turkic Khaganate 552–659

 

우마이야 칼리프.가 서기 661년에서 750.이야. 1차 투르크.가 무함마드보다 먼저선거고. 위에. 630에 동돌궐. 659에 서돌궐 망하는건 당나라 태종.에 다음 고종.이지만. 말이지. 서돌궐이 659에 망하지만. 이미 여긴 직전에, 무함마드가 등장하고 죽고 다음 4명 칼리프시절 라시둔때. 2대 우마르.가 서기 642년에 코라산.넘어서 옥수스강(아무강)에 트랜스옥시아나.까지 다 먹은겨. 서돌궐은 아랄해 아래에서 쪼그려 앉아있던거고. 여길 당나라애들이 와서 서돌궐을 지운거야.

 

저기 트랜스옥시아나.라는 아무강 시르강.지역이. 키르기즈스탄 서쪽이야. 여기가 당나라.와 무슬림이 부딪히는겨 이때부터. 당나라가 서돌궐을 지우고 물러난게 아냐. 여기에 똑같이 절도사 수준의 감독들이 여기를 관할하게 돼. 

 

The Battle of Talas or Battle of Artlakh (Chinese: 怛羅斯戰役; Arabic: معركة نهر طلاس‎) was a military engagement between the Abbasid Caliphate along with their ally the Tibetan Empire against the Chinese Tang dynasty. In July 751 CE  

 

탈라스 전투. 751년. 달라사 전역. 아틀라크 전투. 이게 당현종 때야. 안사의난. 직전의. 탈라스 강.에서 압바스 칼리프.랑 전쟁하는겨. 압바스.가 우마이야 지운 서기 750년. 직후에 당나라랑 붙는거야. 압바스.가 우마이야.에 반란하는게 메소포타미아가 아냐. 코라산.이야. 아무강 아래 코펫 다그. 기슭이여.

 

The Abbasid Revolution was the overthrow of the Umayyad Caliphate (661–750 CE), June 9, 747 – July, 750

 

Beginning around 719, Hashimiyya missions began to seek adherents in Khurasan. Their campaign was framed as one of proselytism. They sought support for "a member of the House of the Prophet who shall be pleasing to everyone",[48] without making explicit mention of the Abbasids. 

 

압바스 레볼루션.이 3년 치열하게 해서 우마이야를 내쫓을때. 시작 거점이 코라산이야. 서기 719년. 이리 와서 여기를 먼저 지배를 한거야. 우마이야.까지는 아랍족이 지배자야. 압바스는 달라, 우마이야를 엎기 위해서 페르시아와 투르크들과 연합을 한겨. 그래서 압바스 바그다드 황금시대가 된거걸랑. 아랍 노예가 되었던 이방인들이 압바스 아랍애들과 손잡아줘. 여기서 시작해서 코라산 넘어 티그리스강으로 가는겨. 그리고 압바스 세우고. 저 트랜스옥시아나.에서 당나라와 전쟁하는게 탈라스 전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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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라스 강 Talas 이. 시르강 위에 있는 강이야. 키르기즈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아래 산에서 발원하는. 여기가 걍 서쪽이야. 키르기즈스탄이란 나라는 중국의 완전 서북쪽에 접한 나라야. 저기까지 서기 750년.에 당나라 관할이었던겨 저게. 저기서 당나라가 지면서 얘들이 저 타림분지 아래로 쳐들어가고 이후 못나온거야. 

 

 

신장위구르 자치구.가 자세히 보면. 빨간 줄이 천산산맥인데.  키르기즈스탄.이 왼쪽 위에 있는겨. 그리고 이 산맥 가지가 따로 나와 벌어져. 천산산맥이 일짜가 아니라 기역짜야 이게. 저 내부 협곡도 중국 국경 내부야. 카자흐와 접하는. 저기 안쪽 삼각 협곡이. 지금 이리 카자흐 자치주.야 伊犁哈萨克. 이리 합살극. 저 사이 협곡강.이 이리.강이야 ili river. 이 강이 발하슈.호수로 흐르는겨. 기역 시작 부분이 차가타이 칸국의 수도인거고. 

 

우루무치.라는게 기역자 접하는 천산산맥 위.인거고. 투르판 분지.와 오른쪽 하밀.이란 지역은. 천산산맥 오른쪽의 분지들이야 이게. 투르판.과 하밀.의 위에 작은 병풍으로 우루무치.와 경계하는겨. 흉노애들의 수도가 여기 투르판.이야. 천산산맥 기역과 잔 가지들의 아래지역이야. 위가 아녀. 우루무치 있는 북강 지역의 동북경계가 알타이 산맥이고. 저기가 몽골.과 급하게 경사를 지우며 경계선거야. 신장 위구르.의 북강은 완전히 삐쭉 솟은 지역이야. 저길 다 먹고 천산 넘어 돌아서 왼쪽 끝 키르기즈스탄.까지 간겨 당나라가. 비슈케크.에 탈라스 talas 강이 있는거고. 저기서 압바스 애들이랑 전쟁한겨 서기 751년에. 이게 아주 결정적이야. 중국이 이 후로 천산산맥 아래로 들어가 숨은겨. 몽골때나 다시 오고. 

 

그리고나서, 당나라.가 압바스.랑 친해져. 이게 안사의 난.때 당나라가 말야. 압바스에 구원을 요청하는겨. 압바스가 그래서 저 지역의 아랍 이란 무슬림들이 천산산맥 돌아서 우루무치지나서 하서주랑 타고 장안까지 가주는겨 저때. 

 

 

大秦景教流行中国碑 대진경교유행중국비. 서기 781년. 페르시아 선교사. 야즈드호지드.가 시안시에 세웠잖오. 阿罗本(Alopen Abraham)아라본. 알로펜 아브라함.이 서기 635년.에 왔다고 기록하며 130년간의 그리스도 전도이야길 기념한거걸랑. 네스토리우스.가 경교.란 이름으로 서기 635년.에 당태종.의 후원으로 그리스도가 전파된겨. 이전 630년.에 동돌궐 망하고. 이후 657년에 서돌궐 원정길도 가지만. 요 사이에 페르시아 네스토리우스 그리스도가 와서 130년을 전도한겨. 아랍과 페르시안들이 하서주랑으로 들어오는겨 이때부터. 이들은 그리스도여. 그러다 751년에 싸우는건 압바스라는 무슬림들 슬람이들이고. 


 

635년.은 이슬람쪽은 무함마드 죽고 직후에 온거고.

 

 

이슬람이 중국땅에 온건. 

 

After critical analysis, it is evident that Sa'd ibn Abi Waqqas and the three other Sahabas who were preaching from 616-18 were noticed by Emperor Gaozong by 618 AD. Guangzhou is home to four mosques, including the famous Huaisheng Mosque believed to have been built by Sa`d ibn Abi Waqqas, the second cousin of Muhammad . The city also has a grave believed to be that of ibn Abi Waqqas (father of Sa'd ibn abi Waqqas)  

 

이런저런 치밀한 분석후 내린 결론은. 서기 618년. 당나라 설때에 이미 와있었다는걸 당고종.은 알고 있었다. 하는정도야. 

 

이슬람.은 아래 바다로 들어온겨. 광저우. 광주.로. 이들이 여기서 강타고 산타고 장안까지 간거로 봐. 무함마드 살아있을 때 온거야. 당고조 이연.을 만났다고 이슬람기록엔 있는데 딴데는 없어. 몰라. 하튼 저때는 확실히 들어온겨. 그리스도보다 먼저 들어왔어. 20년 먼저. 바다로. 그리스도는 하서주랑 타고 땅으로 오신거고. 

 

그리고 이슬람 무슬림들이 바다로 저 광주. 광저우에 무지 들어가는겨. 상인으로. 그러면서 토착하는거고. 

 

당나라때 걍 종교의 천국이야. 그리스도에 이슬람에 마니교도 들어오고 도교 천국이고. 양귀비.는 도사.인겨. 

 

저게 845년 때. 당무종.이 저 경교비.를 땅에 묻잖아. 이때 원래 타겟은 불교걸랑. 배불정책.에 튀긴 똥으로 도교 외엔 모두 배격하는겨. 경교비가 묻히면서 2백년동안의 그리스도가 탄압받고. 더하여 똑같이 광저우 무슬림들이 죽어나가는겨. 불교도 배척당하면서. 

 

 

 

저러면서 당나라는 60년후에 망하는거고. 이 도교.가 너무 난리를 쳐서. 유교가 재등장하면서 신을 죽여버린겨. 이 절정이 주원장의 명나라고. 도교는 원나라때 구처기 티나오면서 칭기스칸한테 만능부적받고 다시 흥하다가 종교대토론으로 아주 개 아작을 내고. 이러면서 민간에 도교가 시안야릇하게 스미는겨. 신을 죽여버린 유교와 바닥에 숨은 도교가 시안야릇한 괴기가 된겨 이 잡종이.

 

 

 

이게 지금 한무당 땅빠닥 조선이고. 

 

 

골때리는 두 잡종의 나라야 지금 이 중국과 조선민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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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때. 저 안사의난.때 광저우에 있던 무슬림들도 봉기를 해. 못살겠으니까. 완전히 지옥이걸랑. 민심 뒤숭숭하니 이방인들을 죽이는거고 이때 저지역 아랍 이란인들이 들고 일어났던겨.

 

저 안사의난.이 아주 거대한 국제전이 된겨 이게. 

 

安祿山(703年2月19日-757年1月30日),本姓[2],名軋犖山[3]营州柳城(今辽宁省朝阳市)人。母阿史德氏[4]。父为昭武九姓粟特人,母为突厥巫師,信仰祆教[5]。安祿山是唐代藩镇割据势力之一的最初建立者,也是安史之亂的主要發動人之一,并建立燕政权,年号聖武。  

 

唐玄宗李隆基(公元685年9月8日-762年5月3日)(712年-756年在位)

楊貴妃(719年-756年7月15日)

 

안녹산.이 양귀비보다 16세나 많아. 헌데 양귀비의 양자가 돼 총신이 되어서. 양귀비가 30대에 40대 안녹산을 양자로 들이는겨. 

 

안녹산 캐릭이 아주 웃겨. 흙수저들은 저따위를 밴치마킹을 꼭 하란 말이야.

 

아빠가 속특인. 소그디안. 이란인이고. 엄마가 돌궐족 무당이야. 천교. 琐罗亚斯德教. 쇄라아사덕교. 조로아스터교.여. 아빠가 일찍 죽고. 엄마가 안씨에 재혼해서 안씨 성이 된겨. 

 

아빠가 소그디안.이야. 얜 요동반도에서 태어났어. 소그디안은 상인이야. 여기 들어오는 이란 아랍 은 대부분 상인이야. 언어를 6개국어를 해 安禄山通晓六国语言. 통역관을 하는겨. 그러다가

 

被节帅张守珪养为假子,后渐升至千卢将军。장수규라는사람의 가자. 양자로 들어가. 절수. 무관장교야. 점점 승진해서 천로장군.이 된 사람. 천명을 휘하에 둔 거지. 양부밑에서 얘가 장교로 크는겨. 그러면서 중앙 코트.에 띄고. 놔물주고, 양귀비.의 눈에 들어가서 초고속 승진을 해. 나이는 16세 많으면서 양귀비.가 아들로 삼아 이 안녹산.을. 

 

開元二十八年(740年)禄山为平卢兵马使,以贿赂交结唐廷派往河北御史,博得唐玄宗李隆基的称许與寵信。開元二十九年,官营州都督天宝元年(742年)为平卢节度使;天宝三载,兼范阳节度使、河北采访使;十载,又兼河东节度使,掌握了今河北辽宁西部、山西一带的军事民政财政大权。又受封為東平郡王。 

 

당현종.이 서기 740년.에 개원을 해. 천보.로 바꿔. 안사의난.이 그래서 천보의난.이 돼. 이때가 양귀비.를 자기죽은엄마 천도재 기도하라고 태진.이란 이름주고 도사.로 만든 해야. 아들한테서 떼어낸. 이때 안녹산이. 37세.에 병마사.가 되고. 당조정에 회뇌. 뇌물을 주면서 하북의 어사.가 되고. 그러면서 당현종.눈에 띄고. 이땐 아직 양귀비.를 비.로 맞기 전이야. 이미 애인이 된겨 기도하란 핑게로. 양귀비가 안녹산을 이때  안거고. 그러면서 평로 절도사. 범양절도사. 하북 채방사.에 하동 절도사. 를 겸직을 하는겨.

 

唐代称都督。唐初沿北周及隋朝旧制,重要地区置总管统兵,旋改称都督,惟朔方仍称总管,边州别置经略使,有屯田州置营田使贞观以后,内地都督府多省并罢,惟军事活动频繁的地区尚存,以统州、县、镇戍。每遇战事发生,由朝廷派遣行军总管统率出征或备御。规模较大的战役,又设置行军元帅或行军大总管统领诸总管。

 

 

당나라 절도사.는 당현종.때 만든거야 재정비하면서. 당때는 군대지역사령관 무장을 도독.이라 한겨. 돌궐치러가는 무장들이 도독.이야. 삭방 지역 무장.만 총관.이라 칭한거고. 별도로 경락사.가 있었고. 둔전하는 곳에는 영전사.라 칭하고. 

 

막 이러다가. 정비하면서 당현종때 절도사 열개를 둔거야. 이게 당 10개 절도사.야. 헌데 이것도 막막 바뀌어. 이 중에서. 저 안녹산.이 겸한 범양절도사. 하동절도사.가 가장 군대가 많은겨. 여기가 낙양지역과 북경인 하북지역이야. 얘가 그냥 병권을 다 쥔거야 이게.

 

安史之亂唐朝於755年12月16日至763年2月17日

 

안녹사가 난을 시작하자마자. 당해 장안을 다 점령하고. 당현종은 도망다니고, 이때 열받은 민들이 양귀비 양국충 등 친인척 죽이는거야 죽여라 하는거고. 양귀비 자살하고. 안녹사.는 낙양에 수도를 두는거고. 자긴 연나라. 라면서. 2년후에 죽어. 아들한테. 아들 담당 환관이 꼬셔서. 아빠가 너 말고 딴애 귀염질하고 너 죽일꺼람시. 아빠를 죽이고. 얜 사사명이 죽이고. 사사명은 자기 아들에게 죽고. 아들한테 세력이 안붙는거야. 자살하고 끝나 8년간의 안사의 난.이.

 

이때 오는게 압바스 칼리프 지원군이야. 

 

During the Abbasid era (750-1258), there were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Arabs and the Tang dynasty, the most important of which occurred in 757 when Emperor Suzong ( 肅宗 ) (756- 762) asked the Abbasid caliph al-Mansur (754-775) to help quell an internal Tatar revolt. The Caliph accordingly set a military campaign of 10.000 soldiers. The Islamic forces were able to control the capital Chang’an".[19]  

 

압바스 기록에 의하면. 만명을 보냈다고 해. 장안으로. 지들이 도와줬대. 

 

저때 당 코트를 도와준게 몽골위의 위구르.여. 이들은 이때 이슬람이 아냐. 여전히 텡그리.에 마니교에 불교여. 

 

回鹘汗国  742年 - 848年

 

회흘한국. 오구즈.라는 위구르.가 2차 돌궐국.을 망시키고 몽골고원에 서. 얘들이 하서주랑 타고 당숙종. 도와주러 오는겨. 당현종은 양귀비 자살시키고 슬포소리 낙담해 죽고. 아들 당숙종이 이어서 진압을 하는겨. 

 

그래서 당코트.는 위구르.와 친한겨 이게. 저 위구르.가 백년 후에. 서쪽에서 오는 예니세이 키르즈.라는 투르크.에게 쫓겨서리 하서주랑으로 들어가서 타림과 북강의 고창위구르.와 하서주랑 량주까지의 감주위구르.가 되는겨. 당나라 말기에 생긴것들이야 당망할때와 5대십국의 난리때에. 이게 칭기스칸에 지워지는거고 냉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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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안사의난.때 말야. 저 하서주랑.을 차지한 이들이. 다름아닌 아래 티벳이야.

 

吐蕃藏文:བོད་ཆེན་པོ།,威利:bod chen po,拉薩話:/pʰøʔ˩˧˨ ʨʰẽ˥ po˥˧/,意为“大藏”[註 3])是历史上一个位于青藏高原藏人君主制政权,由松赞干布朗達瑪延续两百多年。

大蕃国  629年-877年

 

토번. 투판. 대번국. 서기 629-877. 

 

티벳이란 나라가. 역사상 거의 유일하게 통일된 체제.였던게 저당시 250년.이야. 따악 당나라때. 특히 안사의 난때 이들이 청해.에 타림분지에 하서주랑까지 다 지배한겨. 

 

그래서 저 안사의난.때 진령아래부근에 기련산 아래있던 당항족 탕구트.가 아래 티벳에서 쳐올라오는 저 토번. 애들에 밀려서 이동을 한겨 민족이동을. 은천시 부근으로. 오르도스 지역으로. 토번은 타림에 청해에 하서주랑을 다 차지하고 탕구트 당항족은 황하줄기따라 동북으로 도망을 친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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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巢之亂,是唐僖宗時由私鹽商人黄巢為首的民變,近年亦有學者稱黃巢民變,是唐末民變中,歷時最久,遍及最大,影響最深遠的一次,禍延唐朝关中地區,時間長達十年,造成的死亡人數難以估計,導致唐末國力大衰,加速唐朝滅亡,因為長安殘破及被朱溫所毀,導致之後的政治中心东移至开封  

 

875年-884年 

 

안사의난.이후 백년지나 터지는게 황소의난. 이야. 나이 40.에 들고일어난건데. 이전에 민란이 계속 있어왔고. 저이후 20년지나서 당나라는 망하는거고. 수당도 장안이었고 이후 송나라는 장안을 버리고 개봉으로 가. 황소때문에. 황소.가 장안을 이후 역사에서 버리게 한겨.

 

 

 

黄巢(835年-884年),曹州冤句(今山東菏澤西南)人,末時人。初為鹽幫首領,售私鹽為業,後成民變軍首领,曾自立为帝,尊号为承天应运启圣睿文宣武皇帝,国号大齐,年號金統,史稱黄巢之亂。黃巢退敗時死於部下之手。野史有稱「黃巢殺人八百萬」惡名[1]。  

 

황소.는 조주 출생이야. 지금 산동하택.인데. 여긴 산동 서남끝이야. 아래 긴손가락 강소성.에 왼쪽 하남 이걸랑. 여기서 바로 직선으로 걍 장안 쳐들어간겨.

 

이사람은. 수 사염. 집안이 염. 소금상인집안이야. 진사.에서 떨어지고. 하튼 글을 해. 안되서 그렇지. 

 

문제는 저놈의 소금이야. 물론 머 당나라 망하는 시기라 난리법석이지만.

 

이 소금.이란게. 세수.에서 최고여 그래서 한나라 전한때는 전매를 해. 오로지 중앙 코트.에서 파는겨. 담배인삼공사처럼. 담배를 개인이 만들어 팔면. 호온나. 소금이 마찬가지여 이게. 헌데 사염. 개인 소금 밀매.가 이건 끊이지가 않아.동한때 전매대신 징세해. 민간에 주기도 하는겨. 그래도 밀매가 득세해.  원나라 말기에 주원장 등장할때 홍건적 나올고 할때 가장 쎈애들이 장강 하류의 소금업자들이야. 여기 대표인물이 장사성.이었고. 다들 사염. 대부분 밀매여 이게. 

 

관우도. 소금장수여. 시작은.

 

到了汉光武帝时期,食盐由专卖改为征税。

其后到唐朝中期,对食盐的管理都比较松弛,“亭户冒法,私鬻不绝”[5]。贩私者往往“多结群党,并持兵杖劫盗及贩卖私盐”。[6]到了乾元元年(公元758年),又改为全部官营。宝应元年(761年),盐铁使刘晏改为民间制造,官府统购,批发专卖。这次改革增加了政府税收收入。例如778年,盐业收入占政府总收入的一半之多,史稱大历末,“天下之赋,盐利居半”。  

 

한광무제때. 즉 동한 건국할때야. 식몀을 전매에서 징세.로 바꿔. 민간에 맡기고 세금을 징수해. 이전에 얘들보면. 술도 전매제야. 철기 같은 금속도 전매제야. 

 

하튼 민간 줬다가 다시 전부 관영 전매제 했다가. 당나라 서기 758년. 안사의 난때. 그러다 다시 민간제조 하게 했다가. 하는데. 이 황소.가 소금장사 집안이야. 

 

黄巢出身商家庭,以販售私鹽為業,家道殷富,四次进士不第  

 

그래서 가도은부. 집안은 부유한겨. 헌데 4차 진사 부제. 네번 시험봤지만 진사.에서 부제. 낙방이 된겨. 

 

曾組織鹽幫專行走私,與朝廷緝查私鹽進行過多次武裝衝突。 

 

아예 소금장사로 간겨 그래서. 염방. 소금집단조직을 키워. 헌데 주사. 밀매를 하는겨. 세금신고 안하고. 장사성의 6백년 선배님이야.

 

그러면서 조정코트 공무원들과 무장충돌.을 하게 되면서. 이게 민란급이 되어버린겨. 모든 부랑자들이 다 모이고. 당시 농민들도 여기에 합세를 하고. 

 

875-884. 구년동안의 민란이야. 장안 수도까지 점령해. 이들은 민란 한번하면 걍 코트 개작살. 

 

十一月(881年1月16日),即位於含元殿,建立了大齊政權,年號金統。原朝官員,四品以下留用,餘者罷之,以尚讓為太尉兼中書令,趙璋為侍中,孟楷蓋洪尚書左、右僕射,皮日休為翰林學士。  

 

6년만에 장안을 점령해. 881년. 나라를 세워. 대제. 연호 금통. 아 짱이야 진짜. 저때 내가 태어나서 쟤들을 통솔했으면. 천년제국 대제.를 만들어줬을텐데. 난 시조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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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등장하는게, 당항족 탕구트야. 오르도스. 하투 지역. 하주 지역으로 옮겨 갔던. 안사의난으로 백년전에 왔던.

 

定难军节度使,又称夏绥(银)节度使,唐朝贞元中分振武朔方二节度置夏州节度使,治夏州,在今陕西横山县西北。

初曰夏州节度,领夏、绥、银三州,兼领宥、盐二州,今陕西绥德以北、甘肃宁夏道东部、及内蒙古南部之地,亦曰盐夏长度使,广明初拓跋思恭有其地,赐号定难军,五代因之,宋入于西夏。  

 

정난절도사.라는게 바이두.에서만 제대로 설명이 되었는데. 당현종의 10개 절도사.지만 정난절도사는 여기 안들어가고. 정난군. 난을 평정하는 군대의 사령관.이란 뜻이야. 이게 어느 특정지역 주둔하는 군대가 아냐. 정난절도사가 모든 자료들 왈 저 하주에 오르도스지역에 주둔하는 절도사가 아냐. 잘못된 설명이야 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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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은)절도사.라고도 칭해. 夏绥(银). 하.가 유림시. 수.가 유림시 바로 위. 은.이 은천시. 저 국자 엎은 하투 덮개 머리지역이여 여기가. 하수절도사.라는건 황소의 난 이후 탕구트족이 황제한테 받은 정식 자리야. 이전엔 하수절도사란게 없었어.

 

이 지역에 탕구트 들이 백년전에 토번에 쫓겨서 이리왔었고. 황소의 난.때 여기의 탕구트 부족이 장안으로 내려가서 당나라를 도운거야.

 

李思恭(?-895年),原名拓跋思恭,是唐朝末年党项族平夏部的首领,为北魏皇室拓跋氏之后,唐末因平定黄巢有功被赐皇姓“李”。 [1]  原是夏州(治今陕西靖边北)的偏将,咸通末年据宥州(治今内蒙古鄂托克旗),自称刺史  

 

탁발 사공. 탁발씨.들이 부족장이야. 881년.에 장안이 점령되고, 황소가 대제 킹하시고. 여길 공격하러 오는겨 탁발사공.이 탕구트부족민들을 데리고. 오른쪽 하동절도사 가 올때 지원군으로 같이 온겨. 오르도스.에서 황하강 따라 내려와서리.

 

옆의 절도사.따라서 지원병력으로 온거야. 장안 점령한 황소 진압하러.

 

이 와중에. 당나라 코트.가 도망간 당희종.이 탁발 사공에게 정난절도사.를 준겨. 정난 절도사.가 당시 어느 특정지역.의 지키미가 아냐. 난이 일어날때 주는 임시직이야 저게. 그리고 나서, 황소를 몰아낸겨 장안에서. 2년걸렸어 진압하는데

 

七月,黄巢被平后,唐僖宗因为李思恭平定叛军出力很大,加任李思恭为太子太傅,晋爵为夏国公,赐姓李,拜夏州节度使。883년 에야 황소를 쫓아내고 장안엘 들어가. 이 공으로. 당희종.이 이씨.를 주는겨. 탁발씨는 야만성씨잖오. 이때부터 이사공.이고 서하 리더는 이씨들인겨. 하국공.이란 작위를 주고. 하주절도사.라고 별도 절도사 자리를 만들어준겨 이게. 하주절도사 란건 이전에 없었어. 이때부터 하주절도사.야. 정난절도사.가 하주절도사.가 되서리 마치 정난절도사.가 하주의 절도사.이다 라고 모든 텍스트들이 있는데. 그게 아냐

 

저게 모든 책들이 시안하게 잘못된거야 저건. 정난절도사.를 마치 원래부터 저기에 있었던양. 아주아주 잘못된 풀이야. 오직 바이두 중국.만 제대로 저걸 이야길해. 영어위키도  잘못된겨. 하물며 한글설명은 말할것도 없고.

 

서하.라는 킹덤이 황소때문에 생긴겨 그래서. 야만의 탁발씨.가 하주절도사가 된겨. 그리고 바로 20년 후에 당나라 망하고도 저기서 버틴겨 탕구트가. 오대십국때 버티면서 오히려 하서주랑을 차지한거야. 어드래 얻은 자기들 땅인데 쉽게 내주겄어. 조광윤의 송이 중원을 통일하고, 탕구트는 여기서 대하국.을 만든겨. 이게 서하야. 

 

이 서하.가 칭기스칸 1차 올때 자기 안도와준 금나라를 수시로 쳐들어간거고. 칭기스칸 길잡이로 금나라를 몰아내게 해준게 서하.고. 더하여 저런 몽골애들에 또 개겨서 다시 싸운게 서하.고. 저 서하를 지우러 가는 길에 말에서 떨어져 결국 죽은게 칭기스칸.이야. 서하.와 칭기스칸.은 그래서 같이 죽었어.

 

아  아들 네명 이야기 은제 하냐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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