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icians (Old Armenian: Պաւղիկեաններ, PawłikeannerGreek: Παυλικιανοί;[1] Arab sources: Baylakānīal Bayālika)[2] were a Christian adoptionist sect from Armenia which formed in the 7th century,[3] possibly influenced by Gnostic movement and religion of Marcionism and Manichaeism.[4] According to medieval Byzantine sources, the group's name was derived from the 3rd century Bishop of AntiochPaul of Samosata,[5][6] but Paulicianists were often misidentified with Paulianists,[7] while others derived their name from Paul the Apostle,[1][8] hence the identity of the Paul for whom the movement was named is disputed.[4] It is considered they were formed by Constantine-Silvanus.[4]  

 

폴리시언. 7세기. 아르메니아에서 시작. 그리스어 파울리키아노이. 아마도 마르시온이즘.과 매니키즘.의 영향을 받은듯. 

 

중세 비잔틴 기록으로는. 이들 이름은 3세기 안티오키아 주교, 사모사타의 파울로스(폴. 바울)에서 갖고왔다고 했다. 어렇게 이들 폴리시언.들은 종종 폴리언.으로 오해되었다. 다른이들은 사도 파울로스(바울)에서 왔다고 한다. 어디서 유래인지는 논쟁중이다. 시작은 콘스탄틴-실바누스.로 본다. 

 

저들은 폴리시언.이야. 폴리언.이 아냐. 폴리언 Paulians 들은. 3세기 사모사타.의 폴.을 따르는 이들이다.

 

7세기 등장하는 폴리시언.들은 12사도의 사도 바울.을 따르는 이들이야. 3세기 폴리언.들과 구분하기 위해서 폴리시언.이라고 달리 말해. 누구 이름을 딴거냐. 이게 쫌 애매한데 말야. 쓰면서 정리해보지 머. 

 

이들이 중요해. 유럽에서 13세기에 활개치는 이단으로 규정되는 이들의 뿌리가 이 폴리시언.들이야.  

 

Constantine-Silvanus (died 684) was the founder of the Paulicians, a Christian movement in 7th century Armenia, who sought to return to the purity of the church in the time of Paul the Apostle. They were considered heretical by the Byzantine Church.[1]  

 

서기 684년에 죽은 콘스탄틴-실바누스.가 창립자야. 아르메니아 에서 시작한겨. 사도바울 시대의 교회의 순결로 돌아가자는 거걸랑. 비잔틴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되다.

 

Constantine was born in Mananali, near SamosataCommagene. About 653 A.D., Constantine became friends with a traveling Armenian who had been held captive by the Saracens. The traveler gave Constantine a copy of the four gospels and the letters of Paul. Reading the gospels and epistles caused Constantine to change his name to Silvanus, after the companion of Paul, and begin preaching, gathering around him a group of followers who rejected what they considered the image worship and superstition of the Byzantine Church. Silvanus founded his first congregation, who became known as Paulicians, in Kibossa, near Colonia, in Armenia. For thirty years he traveled extensively, along the Euphrates valley, across the Taurus Mountains, and into the western parts of Asia Minor, making converts on the way. His missionary activities came to the attention of the Byzantine Emperor, Constans II, known as Constantine Pogonatus (the bearded).  

 

이사람도. 3세기의 안티오키아 주교였던 폴.의 사모사타.에서 태어났어. 여긴 터키에서 레반트로 내려가기 전 유프라테스강 서쪽이야. 서기 653년 에 아르메니아 사람이랑 여행하다가 친구가 된겨. 이 친구란 사람은 사라센.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났었던거고. 이 사람이 콘스탄틴.에게 4복음서와 사도바울 서신들.을 주었고, 이걸 보면서 콘스탄틴이 자기 이름을 실바누스 Silvanus 로 바꿔. 그러면서 신빨이 와서리 설교하고 사람들 모이는겨. 

 

일단 저때가 서기 653년.이야. 이사람의 고향 사모사타.가 지금 터키 땅이지만 시리아 접경이걸랑. 여긴 아르메니아.가 아니야. 이 접경지역이 당시 애매한겨. 

 

당시 비잔틴.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이후에 발칸에 슬라브 게르만 에 더해 불가르란 투르크 들이 점령할때야. 1차 불가리아 제국이 서기 681년.이야. 이직전에 발칸 아래까지 필로폰네소스 위까지 있다가 그나마 올라간겨. 여기에 게르만 켈트들도 발칸 아래에 있는거고. 발칸은 이스탄불 외에는 서기 650년 전후에 해변지역부터 다시 회복하는거야 비잔틴은. 

 

동쪽 소아시아(터키)엔 사산 224–651. 이랑 4백년을 전쟁이야. 사산이 서기 620년 때엔 소아시아 땅 카파토키아.를 다 먹어. 앙카라.에 칼케돈 까지 사산 으로 들어와. 흑해 동남부해변과 서아시아 해변 지역빼고  내륙 깊숙히 사산 땅인겨. 

 

7세기 초에 비잔틴은 이스탄불 지역.에 소아시아 서남부 해변이 전부였던겨. 얘들은 사산 에 다 먹힐 수도 잇었걸랑.

 

오히려 비잔틴을 구해준건. 무함마드.의 출현이야. c. 570 CE – 8 June 632 CE. 서기 632년에 죽어. 얜 말년 10년 동안 헤자즈(히재즈)지역 메카 메디나에 아라비아 반도를 다 통일하고 죽은겨. 그다음 30년은 라시둔 칼리프야. 

 

The Rashidun Caliphate greatly expanded Islam beyond Arabia, conquering all of Persia, besides Syria (637), Armenia (639), Egypt (639) and Cyprus (654).

 

1대 아부 바크르.가 2년을 칼리프 하는데. 본격적으로 사산 을 쳐들어가. 사산의 수도.는 테시폰(크테시폰 Ctesiphon)이야. 유프라테스강과 좁혀지는 티그리스강.에 있는겨. 이들이 아라비아반도 오른쪽인 걸프만 왼쪽변을 따라가서 유프라테스강 하류부터 올라오는겨 강줄기 따라서 상류로. 

 

사산 이 소아시아 땅 내륙을 다 먹고 보스포로스 해협 건너 콘스탄티노플만 먹으면 끝나는 상황에서. 부랴부랴 빠꾸를 하는겨. 사산의 중심은 저 메소포타미아 걸랑. 얘들이 소아시아 땅에 레반트도 다 비잔틴에게 주다시피한거야. 그러면서 비잔틴이 동맹군이 되서리 저기서 같이 무함마드 다음 아이들과 싸우는겨 유프라테스강 하류로 부랴부랴 가서리. 테시폰 점령당한게 서기 637년.

 

이슬람의 다른 한쪽애들이 반대쪽. 즉 홍해 끝으로 레반트로 쳐올라가는겨 지중해 동쪽해변으로. 여기 상대는 다시 레반트 받은 비잔틴이야. 사산이 던지고 간 곳을 비잔틴이 역시 바로 내려와서 상대를 해.  해변 따라 쭉 예루살렘에 쭉 시리아 북쪽 알레포 까지 간게 서기 637년. 

 

아부 바크르.때 바로 시작해서. 다음 우마르.때 레반트와 메소포타미아를 다 먹은겨. 무함마드 죽고 5년 만에 다 한거야. 

 

크테시폰 점령한 쪽은 오른쪽으로 자그로스 산맥 Zagros 위아래로 사산 의 잔여세력과 싸우면서 페르시아를 점령하고.

 

지중해 동쪽 레반트로 가서 알레포 점령하고 아타톨리아. 터키 땅으로 들어가. 비잔틴이랑 싸우는겨. 2년 후 서기 639년에 경계선이 거져. 토러스 산맥 동쪽.에서 저 위 흑해 동남부 까지. 우상향 사선이야. 반 호수 포함 터키 동남부.가 무슬림 땅이 된겨. 여기에서 흑해 동남부에 코카서스 산맥 남부 쪽이 아르메니아 였걸랑. 여기도 아랍 무슬림에게 하미지를 한거야. 

 

터키땅. 사도 바울의 고향 타르수스.가 아나톨리아 반도와 레반트가 만나는 깊숙한 만의 아나톨리아 반도 동남부 해변이야. 여기까지는 무슬림 땅이 된거야. 이게 서기 639년. 그리고 나서 슬람이들은 이집트로 가는겨. 여긴 이전 비잔틴에 사산에 이제 슬람이가 되는겨 이때부터. 그리고 다음 3대 칼리프 우스만 때에 바다로 나가서 키프러스 섬을 갖고 오고. 크레테 섬 로도스 섬에 시칠리아 섬까지 침략을 하는겨 이슬람이. 사산 애들은 바다를 모르걸랑. 얘들은 페르시아 이란이야. 아랍 애들은 페르시아 보다 바다를 아는겨. 헤자즈.와 지중해 에서 다른 언어족 아래서 장사를 한거걸랑 물길로. 

 

그러다 우스만이 이전 우마르.의 순결 도덕 정책 뒤집고 선물 허용하며 자유경제로 가고 주류애들 기득권 없애고 식민지 땅에서 약탈 금지하고. 하다가 권력 잃은 기득권애들이 야밤에 메디나의 우스만 집을 침입해서 패죽이걸랑. 그리고 4대 알리. 오르고 내전 하면서 우마이야 다이너스티.가 들어서는건데. 그리고 이 우마이야 때 이집트 너머 서쪽 북부아프리카 해변 까지 확장을 하다가. 압바스 칼리프가 오르고 우마이야는 스페인땅으로 가고. 압바스 칼리프.는 칼리프 라는 신권으로 가고 술탄들이 세속에서 들어서면서 레반트와 페르시아 땅들이 전국시대가 되는겨. 이러면서 말야.

 

비잔틴이 서기 639년에 경계선을 오른쪽 글때. 2대 우마르때. 이후 4백년 지나서야 저 아나톨리아 동쪽땅을 갖고 오는겨. 이때 아르메니아.도 비잔틴에 다시 고개숙이는거고.

 

비잔틴이 이슬람 애들이랑 저기 경계선 그을때. 다시 정신차리고. 서기 640년 즈음부터 행정구역을 정비하는겨. 저 직후부터 아나톨리아 땅을 이슬람과 경계하고 이 안을 테마.theme라는 이름으로 행정구역을 정하는거야. 그리고 발칸반도.를 불가르 슬라브 게르만 애들로 부터 하나하나 회복을 하면서 콘스탄티노플 왼쪽의 트라키아 부터 테마.로 편입을 하는게 서기 680년.이야. 이때부터 펠로폰네소스. 아테네. 마케도니아 들이 하나 둘씩 비잔틴의 테마.로 들어오는겨. 그래서 3백년 지나서 저 발칸 땅이 그제서야 비잔틴땅이 다시 돼. 이민족들을 발칸땅에서 몰아내는게 4백년이 걸린겨. 더하여 오른쪽에 레반트는 못가져와도 아나톨리아 땅 전체는 갖고오는게 동시대야. 

 

저걸 비잔틴이. Heraclian dynasty (610–695). 이라클리오스 조.부터 시작해서. 즉 이때 사산이 망하면서 이슬람을 상대하면서 동쪽 경계 긋고 테마.라는 행정구역을 시작하고. Macedonian dynasty (867–1056) 마케도니안 조.에서야 예전의 비잔틴은 아니지만 발칸과 아나톨리아 땅을 회복한겨. 4백년이 걸리면서 비잔틴이 다시 살아난거야. 

 

그러자마자. 오른쪽에선 셀주크 투르크.가 들어서면서 아나톨리아로 다시 쳐들어오는겨. 비잔틴이 로마에 도움 요청하고, 로마는 카놋사의 굴욕 시켰지만 바로 교황 감금당하고 로마 약탈당하고 이걸 뒤집기 위해 교황 우르바누스2세.의 십자군 발기.로 레반트 십자군 2백년 하는건데 말야. 그러면서 저때 아나톨리아땅은 셀주크.에 이어 셀주크 사촌 룸 셀주크 걸랑. 

 

폴리시안.이란건 서기 653년.에 콘스탄틴-실바누스.가 저때 시작한겨 아르메니아에서. 아르메니아.는 저당시 3대 우스만 때이고 14년 전에 아랍 무슬림에게 들어온 거걸랑. 이 이슬람은 세금만 잘 내면 되는거고 그리스도를 믿던 말던. 

 

이 사람이 움직인 코스.가 비잔틴과 이슬람 경계지역의 오른쪽인 슬람이들 땅이야. 여기서 토러스 산맥 따라서 왼쪽 비잔틴 땅으로 가면서 설교 하는겨 이게. 

 

소위 이단.이라지만, 다른 소리가 강하게 티나올 때는. 시대적으로 무지 어려운겨. 혼란스러운거고. 저때 막 사산 비잔틴이랑 4백년 전쟁 막바지에 사산 은 지고. 이어서 바로 비잔틴과 무슬림이 전쟁 직후 인거야. 아르메니아는 여기저기에 휘둘리고. 이 아르메니아 란 나라는 아케메네스 때부터 여긴 킹덤이야. 기원전 3백년이야 역사가. 여기 위 조지아.는  기원전 1천년이야. 고대 국가중 지금도 있는 나라들은 세계사에서 이 두나라 뿐...이야. 차이나 도 쳐야 하나. 

 

저 두나라 역사는 정말 음청난겨. 2천년간 강국들에 치인 역사야 저들이. 그래도 지금 저리 존재 한다는 것 자체로 존경해 줘야 해. 가장 비참하게 당한 두 나라야 저기가. 

 

세상 역사에서 가~~장 태평성대 한 곳이 조선 오백년이야. 가~~장 태평성대한 오백년을 보낸 애들이 조선의 치자 들 몇 몇 이야. 가~~장 비참한 역사의 민들이 조선 오백년의 코리안 들인거고. 이 코리안들은 희대의 싸이코 패스 들의 오백년 동안 완~~전히 비참한 노예를 한거걸랑. 헌데 저 노예 의 자식들이 오히려 저 개 쓰레기 똥 구데기 쌔끼들을 찬양 질 하는 게.  끔찍한 거야 저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 . 민들을 오직 자살 외엔 탈출구가 없던 조선 오백년 인걸. 그걸 어찌 모르냐 그래. 어떻게  니덜을 오백년간 쳐죽인 들을 떠받들수가 있니 이 미개해진 코리안 들아. 어떻게 저 세상 끔찍한 조선 이란 두글자 의 들을 찬양한단 말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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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653년. 콘스탄틴-실바누스.가 시작한겨 저 시대적 상황에. 

 

시대 배경 했고. 다음 실바누스. 사라센. 이 두 용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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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are another claims of it being derived from the Semitic triliteral root srq "to steal, rob, plunder", and perhaps more specifically from the noun sāriq (Arabic: سارق‎), pl. sariqīn (سارقين), which means "thief, marauders, plunderers".[10] Other possible Semitic roots are šrq "east" and šrkt "tribe, confederation".[11]  

Ptolemy's 2nd-century work, Geography, describes Sarakēnḗ (Ancient Greek: Σαρακηνή) as a region in the northern Sinai Peninsula.[2][3]

 

사라센.이란 말은 셈족 발음에서 갖고 온 그리스어 사라케네. 프톨레마이오스.가 2세기에 언급해. 셈족어로 훔치고 약탈하는 이. 이걸 그리스에서 시나이반도 아라비아 반도 사람들을 지칭했고. 3세기에 저지역 사람들이 야만.이라고 말해. 

 

그리스와 로마에서 지역인 만 쓴거지 저 속뜻이 도둑 강도 인건 잘 몰랐어. 

 

Beginning no later than the early fifth century, Christian writers began to equate Saracens with Arabs. Saracens were associated with Ishmaelites (descendants of Abraham's older son Ishmael) in some strands of Jewish, Christian, and Islamic genealogical thinking. The writings of Jerome (d. 420) are the earliest known version of the claim that Ishmaelites chose to be called Saracens in order to identify with Abraham's "free" wife Sarah, rather than as Hagarenes, which would have highlighted their association with Abraham's "slave woman" Hagar.[18]   

 

이걸 성 제롬.이 서기 420년 즈음에. 아브라함이 노예 하갈.에서 낳은 이스마엘 후예들.을 사라센.이라 칭한겨. 본부인 사라.에서 음운놀이를 한겨. 라임으로. 하갈엔즈 대신에 사라센즈.라고 갖고 온겨. 다른 뜻을 보탠겨 성제롬이.

 

프톨레마이오스.가 잘 정의 한거야. 저지역의 사람들은 아랍인들이걸랑. Arabs. 아랍인들은 또한 하갈.의 자식인 이스마엘.의 후손들이야. 성제롬이 말장난 하듯이 뜻 정의한거도 맞아 떨어져. 

 

하튼간 사라센.은 기본 어원이 약탈에 강도야. 저들이 프톨레마이오스 정의에 의해 사라센.은 아랍인들이 된겨 결국. 성제롬이 못을 박은거고. 우연적이게도.

 

아랍인. Arabs 

 

Arabic (Arabic: العَرَبِيَّة‎, al-ʻarabiyyah[al ʕaraˈbijja] is a Semitic language that first emerged in the 1st to 4th centuries CE.[5] 

Arabs (/ˈærəbz/;[39] Arabic: عَرَب‎, ISO 233 ‘arab; Arabic pronunciation: [ˈʕarab are a population inhabiting the Arab world

 

언어족.으로 아라빅. 이야. 아라빅 언어족 사람들.을 아랍. 이라고 해. 영어 애럽즈. 아랍어 발음으로 아랍. 

 

아랍의 조상 올드 아라빅.은 기원전 9세기.에 앗시리아 기록에 처음 언급이 돼. 이들 언어가 아라비아 홍해 해변의 헤자즈 언어로 저 프톨레마이오스 인 2세기 즈음에 진화된거로 봐. 그리고 무함마드 출현하고 이슬람이 글자화 되면서 클래식 아랍어.가 압바스 칼리프 전성시대인 9세기 까지로 보는겨. 

 

The Nabataean alphabet is an abjad (consonantal alphabet) that was used by the Nabataeans in the second century BC.[2][3] 

 

아랍 글자.는 4세기 중반에 티나와. 이 아랍글자의 엄마.는 나바티안 글자야. 이건 기원전 2세기에 나오고. 아랍글자가 나오면서 나바티안 글자는 사라져. 나바티안의 아람어에 페니키안 글자가 엄마고. 

 

아랍인들이. 기원전 9세기에 언급이 되고. 기원 후에나 눈에 띄게 등장을 하는겨. 즉 헤자즈. 지역에서 세력을 이룬거야 이들이. 이때서야. 기원전엔 별볼일이 없는거야 이게. 그러다가 자기들 글자를 4세기에 쓰면서 삼백년 지나서 무함마드.가 등장을 하면서 역사에서 기지개를 편겨. 

 

The first written attestation of the ethnonym Arab occurs in an Assyrian inscription of 853 BCE, 

 

아랍.이란 글자.의 사람들이 기원전 853년.의 앗시리안 글자에 처음 등장하는데. 이때 킹이 아랍인들을 이긴거로 나오걸랑. 아랍은 앗시리아에 바빌로니아에 아케메네네스 알렉산드로스 셀레우코스 로마 파르티아 밑에 있던 걍 부락들인거야. 유대인들 처럼 머 특별나게 로마 역사서에 등장하는것도 아냐. 유대는 유다이아 란 이름으로 집중 관리대상이기나 했지. 구약의 사울 솔로몬 다윗의 킹덤이 가짜던 진짜던 간에. 얘들은 스틸리.란 돌비석으로 저런 킹덤 비스무레한게 있었던듯 도 하걸랑. 네개 정도의 돌비석에. 

 

아랍은 그런게 없는겨. 걍 기원전 천년 부터 남들 제국들의 부락이었어. 

 

아랍.이란 단어. 글자.는 자주 언급이 되는겨. 

 

헌데 말야. 아랍 이란 말을 잘 안쓰고. 사라센.을 쓰는겨 시안하게. 

 

성제롬 까지도 사라센.과 아랍인.은 같은 사람들이야. 저러다가 8세기 글에 적그리스도.를 사라센.에 의미가 더해져.

 

저러면서. 웃기게도. 레반트 십자군 2백년에 말야. 유럽애들은 저 동쪽 애들을 사라센. 이라고 불러. 

 

이건 참 웃긴건데. 저 당시 유럽을 상대하는 애들은 셀주크 투르크.야 초기엔. 얘들은 투르크여. 룸셀주크.도 얘들 친척이고. 투르크.는 페르시안도 아냐. 페르시안은 인도유럽피안이고. 투르크.는  전혀 달라. 인도유럽피안레벨의 다른 애들이걸랑. 저 다음에 상대하는 이집트에 선 아유비드 살라딘 애들은 쿠르드.여. 얘들은 페르시안의 가지야. 그리고 다음 맘룩애들은 쿠만 킵차크 라는 투르크야 성 루이.를 포로로 잡는 애들은. 

 

저기서 말야. 아랍애들은 전혀 없어. ㅋㅋㅋ. 저때 아랍애들은 걍 칼리프.라는 신권만 가진 이들일 뿐이야 바그다드에서. 

 

아랍애들이 사라센.이었는데. 중세때 사라센.은 아랍애들이 아냐 전혀. 

 

또한 저때 사라센이라 불리던 애들은 레반트 오는 유럽애들을 프랑크.라고 불렀어. 오는 애들이 다 프랑크의 자식은 역시나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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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여튼. 아르메니안 친구 한테 성경들을 받았는데. 사라센 한테 납치 당했다 하는건 저기선 우스만.시절의 아랍 무슬림 애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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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as or Silvanus (/ˈsaɪləs/Greek: Σίλας/Σιλουανός; fl. 1st century AD) was a leading member of the Early Christian community, who accompanied Paul the Apostle on parts of his first and second missionary journeys.[1] 

 

콘스탄틴-실라부스.가 사도바울 서신들.을 선물받아 보면서. 사도 바울 빠가 되는겨. 이 사도바울.님께서 전도여행을 세번 하셔. 첫번째는 아나톨리아 만 다녀오고. 두번째 세번째는 해협건너 발칸반도에 필로폰네소스까지 가는겨.

 

이때 처음부터 동행한 사람이 실라스.(영어 사일러스). 실바누스.(그리스어 실루아노스). 두번째도 동행해. 이때 아나톨리아 중간 뤼카오니아 Lycaonia 에서 만난 사람이 티모테오스.야. 디모데. 디모데 서신 하는. 

 

 

Timothy (Greek: Τιμόθεος; Timótheos, meaning "honouring God"[4] or "honoured by God"[5]) was an early Christian evangelist and the first Christian bishop of Ephesus,[6] who tradition relates died around the year AD 97  

 

티모테오스.는 두번째 사람이고. 이사람은 중간에서 만나서 같이 발칸까지 가고. 세번째도 같이가 티모테오스.는. 세번째 다녀 와서 예루살렘에서 사도바울. 파울로스.가 잡히는겨 이걸 다 봐. 

 

실라.는 두번째 전도여행에서 코린토스.에서 더이상 안나와. 

 

티모테오스.는 끝까지 나오는겨 사도 파울로스 깜빵가시고 그거 보고 에페소로 떠나걸랑.

 

저때 말야. 티모테오스 만나면서 즉 두번째 전도여행이야. 저걸 기록한 사람이. 루크. 누가복음의 루크 인겨. 이사람이 사도행전.을 같이 쓴겨 이게. 사도행전에서 저 해협을 건널때. 우리. 라는 인칭의 변화가 나와. 조오온나게 귀한 단어야 이게. 이사람이 직접 티모테오스 실라스.와 함께 사도 파울로스.와 같이. 간거야. 

 

이 루크.는 사도 파울로스가 로마로 배타고 갈때까지 같이 간겨 로마로. 그리고 사도행전.으로 남긴겨.

 

신약.이란 건 말야. 정말 저건 최고의 이야기야.

 

이  페이건의 땅빠닥에서. 이 교회가 다 저 초기교회들 수준도 안되는 그야말로 한무당식 교회걸랑 저게. 저 믿음의 수준이 정말 저 초기교회 이단 수준도 못돼 쟤들 설교하는게. 

 

아 내가 정말 저 성서 강의를 해야 하지만. 구찮으니 못하고.

 

하튼 그래서. 콘스탄틴.이 첫째부터 동행해서 두번째 전도여행에서 코린토스.에서 끊긴 저 실라스. 실라부스.로 이름을 바꾼겨. 

 

The Emperor issued a decree condemning the teachings of Silvanus and sentenced him to death by stoning. Simeon, the officer sent to carry out the execution, ordered Silvanus’ friends and followers to stone him. The followers refused and dropped their stones, except for one young man, Justus, whom Silvanus had raised like an adopted son, who cast a stone at Silvanus and killed him. Simeon was impressed with the piety of Silvanus’ followers and joined them, taking the name Titus. Justus betrayed Titus and the Paulicians by informing on them to the bishop. Emperor Justinian II ordered Titus and all the Paulicians to be burned to death as heretics in 690. 

 

이들이 사도바울.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면서. 비잔틴의 아르메니아 테마에서 전도하는겨. 여긴 아르메니아 킹덤이 아닌 비잔틴의 행정구역이야 킹덤 왼쪽에 있는. 비잔틴에서 시몬(영어 시미언)을 파견해서 처형시키라고 해 투석형. 시몬이 실바누스의 친구들과 추종자들을 시켜서 돌 던지라 해. 돌을 다 버려. 안해. 헌데 한 젊은 애. 유스투스.란 사람이 돌을 던져 죽여. 이사람은 실바누스.가 양자처럼 키운 인간이야. 웃기지. 

 

시몬이 오히려 저 무리들에 감동을 해. 이사람이 폴리시언.이 되는겨. 티투스.로 개명을 해. 돌 던진 유스투스.가 이걸 비잔틴에 알려. 유스티니아노스2세.가 저 배신한 시몬. 티투스.와 모든 폴리시언들을 화형시키라고 해. 서기 690년.

 

저때가 690년 이고. 이 전에 불가르 들이 불가리아 제국 1차.를 681년에 세워. 이들은 투르크고. 발칸반도엔 슬라브들이 역시 넘쳐나고. 

 

저 유스티니아노스2세.가 이클리오스 조.의 마지막 황제야. 얘가 인기가 없어. 무너져가는 비잔틴이. 어찌보면 이슬람 때문에 사산.이 쫓겨나서 아나톨리아 반도.를 그나마 갖고 온겨 비록 레반트를 주고 동쪽 지역도 이슬람께 되었지만. 

 

비잔틴은 걍 갑자기 그래도 회복이 된거야. 얘가 이때 내실을 안 다지고. 마치 옛 로마로 복귀한 마냥 들떠서 세금 왕창 올리고 귀족들 의견안듣고 확전을 하면서 영토확장에만 열올려. 얘를 내 쫓고 새 황제를 올리면서 얘 코를 짤라. 당시 비잔틴의 흔한 일이야 코 짜르기. "the Slit-nosed" 해서 이사람 닉이 짤린 코.야. 대신 황금을 코모양으로 만들어 붙였대. 쫓겨나고 다시 불가르 슬라브 애들 도움으로 복귀하다가 다시 근위대에 죽어. 그리곤 비잔틴은 20년 아나키. 대공위 시대가 오는겨 여기서 이사우리안. 이사우로스 조.가 백년을 하고 이어 오육십년 후에 마케도니안 조가 2백년 가까이 하면서 어느정도 회복을 하고 바로 끝의 시작을 가는게 비잔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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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시언 언제 하냐. 

 

다음에 하자. 

 

Caravaggio  (1571–1610),  The Conversion of Saint Paul ,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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