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of Samosata (Greek: Παῦλος ὁ Σαμοσατεύς, lived from 200 to 275 AD) was Bishop of Antioch from 260 to 268. He was a believer in monarchianism, a nontrinitarian doctrine; his teachings reflect adoptionism.  

 

사모사타.의 파울로스. 폴.인데. 3세기 사람이야. 폴리시언.이 아닌 폴리언.의 폴.이걸랑. 모나키언.에 어답션이즘. 입양설.인데. 이사람이 사모사타. 출생이고. 7세기 폴리시언의 시작 콘스탄틴-실바누스.가 이 사모사타. 출생이야. 폴리시언의 폴 이름이 그래서 저 3세기 사람 폴.에서 왔을 수도, 하는거걸랑. 저사람과 교리가 비슷한듯 한거고. 전혀 상관 없어. 7세기 폴리시언.은 사도 바울을 따르는 폴.일 뿐인데.

 

3세기 폴. 이야길 보면. 이사람이 안티오키아의 주교야. 비잔틴 없을때야. 교회 중심은 로마도 아니고 이 동쪽교회의 안티오키아.와 알렉산드리아 여. 즉 이사람이 당시 교회진영의 최고 위치인겨. 저때 그리스도는 탄압인듯 아닌듯 한 죽어지내는 분위기걸랑. 로마에서 그리스도를 좋아하지 않아 기본적으로. 위기의 3세기.인데도 보조군단에 참여를 절대 안해 그리스도는. 자기들만의 제사를 지내는거고 로마 신들을 모시지도 않고. 그리스도가 고개를 못들때야 저당시. 헌데 저 안티오키아의 주교.인 사모사타 폴.의 모습을 보면, 저당시 동쪽 교회의 생활상 실상이 또한 비쳐. 그래서 언급하는건데.

 

 

저때는 위기의 3세기야. 로마는 저때부터 망한겨. 이 시작은 카라칼라.야. 이전 지나듯 썰했지만.

 

Caracalla (/ˌkærəˈkælə/LatinMarcus Aurelius Severus Antoninus Augustus;[1] 4 April 188 – 8 April 217), from 198 to 217 AD

 

얘가 아빠 세베루스.가 형제를 공동황제 하라하고 죽고. 얘가 동생을 죽이고 단독황제를 하걸랑. 그러면서 결정적으로 보조병들에게 시민권을 다 준겨 그냥. 이삼십년을 로마군단에 속해서리 로마문명을 배우는 조건으로 시민권을 준거야 로마는. 야만이 문명이 되는데 이삼십년이 걸린다고 생각한거야. 갈리아 게르만들은 저 시민권을 따기 위해서 군인을 하는겨. 이건 자발적인 지원이야. 로마의 문명은 엄청난거야. 로마 시민권자 라는 자부심은 대단한겨 이건.

 

이걸 얘가 로또로 뿌리면서. 로마라는 자부심이 사라져. 로마는 얘때 망한거야. 지금도 머  서로마는 왜 망했나 어쩌고 하면서 별 같잖은 분석질 하는데. 이게 가장 큰 주제야 여전히 사학계의. 로마는 왜 망했나. 타락 어쩌고 재정 저쩌고 에드워드 기번이 벼라별 개소리 하고도 하지만.

 

천만에 말씀이야. 내가 아주 강하게 결론을 내준다. 저 카라칼라.의 시민권 남발.이야.

 

저건 정체성의 문제야. 시민권이란건 함부로 주는게 아냐. 착한척 난민 다 받아 다 시민권 줘? 그나라는 망하는거야. 저런 애들은 역사.란 걸 전혀 몰라 감정으로만 세상을 보는 애들은. 정말 너무나 무식한겨 저런건. 잠깐 착한척 하다가 같이 망하는겨 저게. 트럼프가 난민정책을 강하게 제기하는 이유야. 저건 정체성의 문제야. 

 

조선족이 이백만이냐 저들에게 최저임금 보장해주고 건강보험 챙겨주고 나중엔 투표권도 주겄지 자기들 표니까. 국가 재정을 축내는건 둘째치고 말야 완전히 국가 정체성을 없애려고 작정을 하는겨 저게. 너무나 무지한거야 정책자들이.

 

정체성 없는 국가.란 존재할 수 없어. 힘이 없어 이건. 정체성 없는 국가는 쉽게 사라져. 이게 인간의 역사야. 

 

정체성 없는 개인.은 그냥 개돼지 일 뿐이야. 이게 조선. 오백년.인겨. 오직 중국들에 조공질에 울타리로만 존재했던겨 저 조선이란 개 쓰레기 오백년은. 장백산맥 안에서 아무도 간섭을 안해. 장백산맥의 야만들은 힘을 키우면 중국을 먹지 여기 는 오지야. 관심이 없는겨 이 조선 반도는 야만 들에게도. 그게 입성책동 이고 원나라의 왕관.이 상소를 하는 이유야 원나라에. 고려를 먹지 마쇼. 비용만  들고 이익은 하나도 없는 땅이요. 그 이유를 조목조목 대. 원나라가 고려를 직접 지배안하는 이유야. 저 고려 따위 조선반도 애들이 감히 자기들 칠 힘도 없는 이들인거고. 

 

참 더러운 조선 오백년의 전후야 이게. 저 더러운 추잡한 오백년의 시작이고. 저걸 또 왕관.이란 사람이 어 왕씨네. 고려사람이 고려를 생각해서 애국한겨 저건. 이따위로 해석질하는겨 지금 사학계가. 이 사학계의 뽕질은 끔찍한 수준이야.

 

카라칼라.가 그리고 동방원정을 하는겨. 저때가 파르티아.가 마지막 시기인거야. 얘들은 이때 사산애들이 이 직후에 테시폰(크테시폰) 오른쪽 Istakhr 이스타크르.에 서면서 테시폰 점령하면서 파르티아가 망하는겨. 저때 카라칼라.를 상대하는 파르티아 킹.이 뒤에 사산에 망하는 킹이야. 

 

비잔틴과 이슬람이 서기 638년에 경계선 긋는 그 지역.이 말야. 즉 소 아르메니아.와 대 아르메니아.의 아래 카파도키아 킹덤.에 오른쪽 소핀. 콤마진. 이라는 아르메니안 킹덤.이 고대부터 전장의 중심인겨 여기가. 특히나 지금 터키와 시리아의 접경인 자그로스 산맥.의 남북경계.가 아주 전장의 핵심이야. Zagros

 

지금 국경선이. 터키가 직사각형 처럼 반호수를 포함해서 쭉 남과북을 평행하게 거. 이 남북경계선의 2/3 삼분의 이.가 시리아.고 오른쪽 남북경계선 삼분의 일이 이라크.야. 그리고 터키 동쪽경계는 이라크.와 아르메니아.가 반반 아래 위.고 터키의 북쪽은 흑해 오른쪽 위 조지아.와 경계선이야. 

 

터키 남쪽으로. 시리와 와 이라크.를 경계할때 이건 자그로스 산맥.이 기준이야. 여기서 잘 봐야 할께. 시리아 와의 경계선은 자그로스 산맥 아래까지 다 먹은겨 터키가. 그리고 이 자그로스가 쭉 더 평행하게 가서 이라크와는 산 정상 능선을 따라서 경계여. 시리아 입장에선 손해를 무지 본겨. 산 아래 기슭까지 터키땅인겨. 에뎃사.가 그래서 터키 땅인거고. 

 

이 자그로스.가 터키와 국경선을 긋고 오른쪽으로 꺾여 내려가는겨. 그러면서 이란과 국경을 나누는데 이게 티그리스 중류 까지는 자그로스의 능선. 정상을 따라서 이란과 국경을 나누고. 이 아래 하류까지 따라가는 자그로스.는 이란이 반대로 자그로스 정상을 넘어서 이란땅이 된겨. 그래서 이라크 땅이 티그리스 하류로 갈수록 홀죽해져. 

 

이 자그로스.산맥이 이라크 티그리스 감싸면서 이게 걸프만 입구 호르무츠 해협 까지 가는  긴 산맥이야 아주 두터운. 페르시아 아케메네스.의 수도가 나중 수사 Susa 와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란 곳이. 수사.가 티그리스 하류를 바라보는 자그로스 기슭지역이고. 페르세폴리스.는 아래 페르시아만(걸프만)쪽의 자그로스 산맥 기슭인겨. 사산.이 시작하는 이스타크르. 란 곳은 크테시폰(테시폰) 넘어서의 자그로스 산맥 동쪽기슭의 도시인겨 얘들이 산맥을 넘어서 파르티아를 먹은거야. 이 자그로스 산맥.이 메소포타미아. 지형의 중심인겨.

 

카라칼라.가 파르티아 를 치러 가. Harran, ancient Carrhae,  카라이.에 잠시 머물러. 여기가 기원전 53년 크라수스.가 수레나 Surena 의 활기술에 처참히 대패한 카라이 전투.의 카라이야. 로마 패배사의 몇개 안되는 전투여. 1만이 죽고 1만이 포로가 되서 또 다 죽고 로마 독수리 군기까지 뺏긴곳이야. 여기가 지금 하란.인데. 

 

하란.이 바로 에뎃사.의 바로 아래여. 지금 (샨리)우르파. 여기도 지금 터키땅이야. 자그로스 산맥 남부야.

 

카라칼라.가 과거 로마의 대패.의 현장을 일부러 온겨. 지나가는 길이고. 여기서 군단병에게 암살을 당해 오줌누다가. 

 

Macrinus (/məˈkraɪnəs/LatinMarcus Opellius Severus Macrinus Augustus;[note 1] c. 165 – June 218) was Roman Emperor from April 217 to 8 June 218.  

 

카라칼라.의 암살범 배후가 마크리누스. 저 암살한 병사는 카라칼라애들에게 죽어. 근위대에서 추대되는게 마크리누스.야 걍 원정길에 지들이 추대하는겨. 이사람은 베르베르 족이야. 로마사를 보면 황제가 원정길에 죽고 근위대에서 황제추대하는 일이 몇개 보이걸랑. 비잔틴때도 그렇고. 얘들은 다 실패해. 로마로 돌아가는 길에 칼케돈에서 체포되서 사형당해

 

Elagabalus (/ˌɛləˈɡæbələs/), also known as Heliogabalus (LatinMarcus Aurelius Antoninus Augustus; c. 204 – 11 March 222), was Roman emperor from 218 to 222. 

 

로마 원로원에서 추대한 인물이 엘라가발루스. 헬리오가발루스. 태양신모시는 가발루스걸랑. 이전 썰했던 시리아 엄마 여사제 자식이여. 페이건 태양신 모시던. 그래서 로마에 취임하러 갈때 검은 돌 모시고 가던. 카라칼라 의 아빠 세베루스.의 부인의 누이의 외손자여. 

 

얘가 시리아에서 엄마따라 페이건 신 데려오고, 결혼도 다섯번을 해. 이혼을 그리 하고. 남자하고도 결혼해. 난잡한겨. 얘 후계자를 미리 정해

 

Severus Alexander (/səˈvɪərəs/LatinMarcus Aurelius Severus Alexander Augustus;[1] c. 208 – 19 March 235) was Roman Emperor from 222 to 235 

 

엘라가바발루스. 다음이 세베루스 알렉산더. 사촌동생이야 엄마의 여동생 아들. 이사람이 근위대를 시켜서리 자기 사촌형을 암살시키고 황제에 올라. 14세에. 엄마가 배후인거야. 얘가 그나마 오래한겨 13년간. 오른쪽 사산 이 막 흥하는거고. 위로는 게르만들 쳐내려오고. 게르만들과 상대하면서 근위대에 신임을 잃는겨. 이사람이 카이사르 흉내를 내.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와 내전할때. 폼페이누스 죽고도 잔여세력이 득세걸랑. 북아프리카로 원정가야하걸랑 군단병들이.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부터의 핵심군단이 네개야. 7군단 9군단 10군단 12군단. 은 카이사르와 같이 해온거걸랑. 아 헌데 카이사르가 돈이 없는겨. 인류 최고 최대의 채무자여 이 카이사르는. 채무자중에 가장 뻔뻔한 채무자고.

 

네개 군단병들이 전쟁에 지치고. 북아프리카를 가기 싫은겨. 우리 제대 하겄다고, 밀린 급료 달라고. 

 

이때 카이사르.가 니덜 그럼 기달려. 내 다녀와서 다 주께. 하면서 저 네개 군단병들에게 하는 호칭이. 

 

Quirites 퀴리테스.여. 이걸 시티즌.으로 번역하지만. 당시 퀴리테스.는 군인도 공직자도 사제도 아닌  평범한 로마 시민.이걸랑. 

 

카이사르는 자기 군단병들을 부를땐 밀리테스 Milites 여. 이게 솔져.여. soldier. 단수 밀레스 miles. 이게 밀리터리.가 되는건데.

 

아  우리 카이사르 형이. 우리를 밀리테스.가 아닌 한낮 퀴리테스.라 부르는겨. 제대한다고 징징댔더만. 

 

갑자기 풀죽어서리 막막 우는겨 네개 군단병들이. 카이사르 형~ 대머리 형~~~ 미안해~~ 하고는 내전 마무리 하는겨 승리하고.

 

이걸 그대로 따라해 저 세베루스 알렉산더 청년 황제가. 자기 군단병들이 말 안듣겄랑.

 

퀴리테스!

 

먼 헛소리래 지가 카이사르여. 군단병들이 회의자리에서 저 모녀를 죽여. 얘가 이전 사촌형 알레가발루스.도 엄마랑 같이 죽인거걸랑 엄마가 배후에서.

 

저들이 다 시리아 핏줄 애들이야. 로마 애들이 아녀 엘라가발루스.나 세베루스 알렉산더.나 

 

Maximinus Thrax (LatinGaius Iulius Verus Maximinus Augustus;[3] c. 173 – May 238), also known as Maximinus I, was Roman Emperor from 235 to 238.  

 

9군단장 막시미누스 트락스.가 황제가 돼. 근위대애들이 선출하는겨. 이사람도 밖에서 선출된거걸랑. 트라키안 핏줄이야. 약해 핏줄이. 돈도 없어. 

 

이렇게 줄줄이 일이년에 누군 두세달.만에 죽고. 걍 개차반 로마가 된겨 저 3세기엔. 그러다가 

 

Valerian (/vəˈlɪəriən/LatinPublius Licinius Valerianus Augustus;[1] 193/195/200 – 260 or 264), also known as Valerian the Elder, was Roman Emperor from 22 October 253 AD to spring 260 AD. 

 

서기 260년.에 발레리아누스.가 이전 언급했던 노바티안이즘.의 노바티아.라는 그리스도 죽이고. 이들이 배교했던 그리스도의 랍시 Lapsi 반대 하는 그리스도고. 이게 북아프리카의 도나티즘.으로 나중 그대로 재현되고.할때 

 

이사람이 로마황제론 처음으로 이민족에 포로로 잡혀 죽는겨. 사산 에게. 

 

이건 완전히 로마 제국 전체를 뒤흔드는 쇼크인겨. 로마 황제가 전쟁에서 패하고 포로가 되고 죽은겨 서기 260년에.

 

로마 제국 자체가 흔들리는겨. 

 

이때 등장한게 갈리아 제국이야. 

 

The Gallic Empire (LatinImperium Galliarum)[note 1] or the Gallic Roman Empire are names used in modern historiography for a breakaway part of the Roman Empire that functioned de facto as a separate state from 260 to 274.  

 

서기 260-274년 14년간. 로마의 갈리아 프로빈키아.에서 군단이 황제를 자처하는겨. 이때는 이미 로마의 군단병들이 게르만족에 갈리안들이 태반인겨. 아우구스투스 이후로 보조병으로 시작했던 이민족들이 2백년동안 로마를 익힌겨. 그러면서 고급장교에 군단장들까지 수두루룩 양산이 돼. 로마 군단병들에 군단장이고 고급장교지만 대부분 게르만에 갈리아야.

 

저때 밀라노.에서도 군단이 황제를 자처하고 나와. 하튼 로마황제가 포로가 된게 제국을 흔든겨. 위기의 삼세기였지만.

 

즉 저때가 가장 위기인겨 로마는. 황제가 포로돼서 죽은게.

 

Gallienus (/ˌɡæliˈɛnəs/LatinPublius Licinius Egnatius Gallienus Augustus;[1] c. 218 – September 268), also known as Gallien,[2] was Roman Emperor with his father Valerian from 22 October 253 to spring 260 and alone from spring 260 to September 268.  

 

이때 황제가. 포로되서 죽은 발레리아누스.의 아들 갈리에누스. 이사람때 갈리아 제국이 들어서고. 밀라노 황제는 진압을 해. 저 밀라노 진압하는 중에. 이사람도 자기 부하에게 찔려 죽어.

 

Claudius Gothicus (LatinMarcus Aurelius Valerius Claudius Augustus;[1] May 10, 214 – January 270), also known as Claudius II, was Roman emperor from 268 to 270. 

 

암살배후가 클라우디스 고티쿠스.여. 이사람도 이민족에 바닥부터 군생활 한 인간이야.

 

Quintillus (LatinMarcus Aurelius Claudius Quintillus Augustus;[1] Died April 270) was Roman Emperor for a few months in 270. 

 

Aurelian (LatinLucius Domitius Aurelianus Augustus;[a] 9 September 214 or 215 – September or October 275) was Roman Emperor from 270 to 275.   

 

그다음이 퀸틸루스.가 몇달하고. 그리고 아우렐리아누스.여. 이사람이 서기 270년에서 275년. 5년 하면서 위기의 3세기.가 진정이 되는겨.

 

이사람때 갈리아제국.을 진압하고 다시 로마로 편입을 해. 이사람때 유명한게 아우렐리안 성벽이야

 

The Aurelian Walls (ItalianMura aureliane) are a line of city walls built between 271 AD and 275 AD in RomeItaly, during the reign of the Roman Emperors Aurelian and Probus. They superseded the earlier Servian Wall built during the 4th century BC. 

 

무라 아우렐리아네. 이전의 로마 성벽이 세르비안 성벽이야. 이건 기원전 390년.에 갈리아애들이 로마 약탈해서 거의 망하는 지경까지의 로마약탈 당하고 세운거걸랑 로마 성벽이란건. 이걸 카이사르.가 성벽을 다 치운겨. 왜 우리 로마에 성벽을 세우냐. 우리는 자유다. 하면서리 다뉴브강 라인강 에 군단초소들을 두면서 로마 성벽을 대신한거걸랑. 

 

저 개념이. 지금 미국.이 동쪽으론 나토 두는거에 서쪽으론 여기 동북아 에치슨 라인이란겨. 

 

이전 일곱개 언덕을 훨 넘어서 테베레 강변까지 확장하고 일부는 강변을 넘어. 이 넘은 구역안으로 들어온게 베드로 성당이야 로마의. 여기가 유대인 구역 이었고.

 

이 아우렐리아누스 때. 동쪽에 제국이 생겨. 즉 서쪽엔 갈리아 제국.이 선 상태에서. 동쪽에 거대한 제국.

 

The Palmyrene Empire was a splinter state centered at Palmyra which broke away from the Roman Empire during the Crisis of the Third Century. It encompassed the Roman provinces of Syria PalaestinaArabia PetraeaEgypt and large parts of Asia Minor.  

 

팔미라 제국이 생기는겨. 팔마이린 엠파이어. 수도가 팔미라.야. 시리아 가운데 내륙이여. 270–273 서기 270년.에서 딱 3년간. 이들은 아우렐리아누스때 창립하고 망한겨. 그리고 나서 갈리아제국.도 망한거고. 

 

 

팔미라 제국.이 딱 3년간이지만 동쪽의 아나톨리아 절반에 아르메니아 아래에서 레반트에 이집트까지 이들이 다 갖고온거야. 

 

Septimius Odaenathus,  c. 220 – 267 AD), was the founder king (Mlk) of the Palmyrene Kingdom who ruled from Palmyra, Syria. He lifted the status of his city from that of a regional center subordinate to Rome to the supreme power in the east. Odaenathus was born into an aristocratic Palmyrene family that had received Roman citizenship in the 190s under the Severan dynasty

 

창립자.가 셉티미우스 오다이나투스. 오다이나투스. 이사람은 팔미라 지역의 사람이야. 여기서 귀족층이었어. 로마시민권을 받은 집안이야 아빠세대에.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사산에 잡힌곳이 또한 에뎃사 전투.야. 여긴 이들 나와바린겨. 

 

그리곤 발레리아누스.의 부하들이 황제를 칭하는거야. 대개 황제가 원정나가서 죽으면 근위대 애들이 황제선출을 해. 대부분 망해. 얘들을 진압하는게 오다이나투스.여. 즉 발레리아누스.의 아들인 당시 황제 갈리에누스.가 얘 편이야. 

 

이사람이 팔미라 킹덤.을 혼자 서는겨 저 발레리아누스 포로돼서 죽은 해 서기 260년.

 

이사람이 이상태에서 세력 키우고. 오른쪽 사산 으로 쳐들어가서 수도 테시폰.까지 포위하고 오는겨. 완전히 자기 세상이야. 그리곤 독립 선언하고 킹하고 아나톨리아 원정길에 역시나 암살당해. 서기 267년

 

그리고 아들이 여덟살이야. 엄마가 대리 통치하는게 미망인이 된 여자.가 하는겨. 

 

Septimia Zenobia pronounced Bat-Zabbai; c. 240 – c. 274 AD) was a third century queen of the Palmyrene Empire in Syria. Many legends surround her ancestry; she was probably not a commoner and she married the ruler of the city, Odaenathus. Her husband became king in 260, elevating Palmyra to supreme power in the Near East by defeating the Sassanians and stabilizing the Roman East. After Odaenathus' assassination, Zenobia became the regent of her son Vaballathus and held de facto power throughout his reign.  

 

셉티미아 제노비아. 이 제노비아.가 신랑 오다이나투스.가 서기 260년에 킹덤 하고. 오른쪽 사산에. 왼쪽 위 아나톨리아 원정하다 암살당하고. 이여자가 이집트에 아나톨리아까지 확장을 하는겨. 그러면서 서기 270년.에 엠프리스. 여황제가 되는건데. 해서 삼년간. 

 

즉 이때 저쪽 나와바리는 이 제노비아.라는 여자가 만든거야.

 

Paul of Samosata (Greek: Παῦλος ὁ Σαμοσατεύς, lived from 200 to 275 AD) was Bishop of Antioch from 260 to 268. He was a believer in monarchianism, a nontrinitarian doctrine; his teachings reflect adoptionism.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사모사타.의 폴. 아  참 나.

 

이사람이 모나키언이즘에 어답션이즘.은 둘째 치고. 저때는 머 그리스도애들 세상도 아니고. 삼위일체 이단 어쩌고도 325년에야 정리하는거고 황제가. 의미 없어 지들이 서로 이단이다 아니다 하는건. 주교자리로 서로 싸우는거걸랑 지들끼리. 그렇다고 각 교구가 인사권 간섭할 수도 없는거고. 

 

이 사람이 문제는. 타락한겨 지금 시선으론. 그리스도 신도들이 이사람 만져보고 인사 한번 하면 성은이 망극하는지 재물을 무지 바치는겨. 당시 부자들도 그리스도가 많은듯해. 안티오키아 가 가장 부자야. 여긴 셀레우코스가 세워서리 셀레우코스 조 때 이리 수도를 옮겼어 파르티아에 쫓겨서. 동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가 이 안티오키아야. 여기 그리스도들의 돈들이 저 사모사타 의 폴. 당시 주교 에게 막 몰리는겨. 

 

무엇보다도 저 부패로 보는 다른 성직자들의 시선이야. 저사람을 다른 주교들이 모여서 내 쫓는거야. 헌데 다른 교구는 그런 힘이 없어. 그게 의미가 없어. 이사람이 쫓겨났지만 계속 주교 행세를 하는겨. 이사람을 거둔게 저 팔미라.의 제노비아. 야. 여기서 계속 주교 행세 하는겨.

 

그리곤 아우렐리아누스.가 제노비아의 팔미라.를 진압하는거야. 다음 서쪽의 갈리아를 진압하는거고.

 

헌데 제노비아.를 아우렐리아누스.가 안죽여. 걍 딴데로 옮기고 거기서 살다 죽어.

 

In the history of the Roman Empire, the "Little Peace of the Church" was a roughly 40-year period in the latter 3rd century when Christianity flourished without official suppression from the central government.  

 

아우렐리아누스.가 또한 저 사모사타.의 폴.도 인정해. 폴리언 이랑 반폴리안을 다 인정해. 그건 니덜끼리 알아서해라. 이사람이 그리스도.를 인정해주고 탄압을 안해. 대략 40년간. 즉 저이후 밀라노칙령 313년이야. 이 직전까지 아우렐리아누스 부터 40년간을 교회의 작은 평화.라고 부르는겨.

 

 

사모사타의 폴. 짧게 이야기하려다 머가 이리... 

 

나중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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