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rt of Darkness (1899) is a novella by Polish-British novelist Joseph Conrad about a narrated voyage up the Congo River into the Congo Free State in the so-called Heart of Africa.[1] Charles Marlow, the narrator, tells his story to friends aboard a boat anchored on the River Thames. This setting provides the frame for Marlow's story of his obsession with the ivory trader Kurtz, which enables Conrad to create a parallel between what Conrad calls "the greatest town on earth", London, and Africa as places of darkness.[2]  

 

영어로 하트 오브 다크니스.인데. 이걸 암흑의 핵심.으로 번역을 했걸랑. 최근 번역은 어둠의 심연. 이고. 잘못된 번역이야 제목 자체도. 저게 다 의역이야. 우리의 이 번역에 대한 문제는 정말 심각하걸랑. 우리네가 사오십대 이상이 영어를 못하는 이유야. 장사성 사성소인.식으로 말야. 꼬는 걸 좋아하고 남의 글들이 꼬인걸로 보이고 그 꼬인듯이 봐서 꼬인걸로 해석하걸랑. 그냥 그대로 해석 번역할 줄을 몰라. 이게 가장 큰 문제야. 이런게 더 가서 음모론.에 빠지는겨 애들이. 지금 음모론 놀이하는 완전히 정신병자 가 공중파에서 인끼얻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삼사십대 홍위병애들로 완전히 국민 정서가 지금 개판이 된건데. 

 

노벨라.야. 뉴. 새로움 을 더 확장해서 만든 개념이야. novel 소설을 노블 나블.하는건 나중에 미국애들이 만든 개념이고. 유럽에서 소설은 로망스 로망. 로마가 소설이야. 이걸 미국애들이 구분을 해서 지들은 노블.을 소설이라 하고. 여기서 노벨라.를 중편소설로 분류를 하면서 만든 단어야. 

 

저게 서기 1899년 에 나온건데. 지금 영어판 페이지수가 88 페이지야. 이게 암흑의 핵심. 조셉 콘래드. 로 199페이지 번역이고. 을유문화사에서 나온게 어둠의 심연.으로 268 페이지인데. 대개 영어판이 한글로 번역된게 두배 분량으로 보면돼. 

 

우리네는 쟤들껄 두배 의 분량을 두배의 시간으로 읽으면서 제대로 맛을 못보는거지. 참 슬픈건데. 시간은 더 투자하고. 내용파악은 더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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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사회가 보장하는 안이한 삶을 박차고 나와 궁극적 자기인식을 성취할 수 있었던, 의식이 깨어있는 한 인간의 자기 탐구담을 그린 폴란드 출신 작가의 장편. 헨리 제임스와 더불어 20세기 영국 소설을 개척한 콘래드의 대표작! 영화 <지옥의 묵시록> 의 원작소설. 이 책은 서구 제국주의를 예리하게 비판한 점에서 주목받는다. 이 소설의 화자 말로는 유럽인들이 <암흑의 대륙>이라고 부른 아프리카로의 항해를 통해, 탐험을 동경해 온 자신의 꿈이 궁극적으로는 위장된 제국주의적 꿈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 김성곤(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이 책은 무엇보다도 문명 사회가 보장하는 안이한 삶을 박차고 나와 궁극적 자기 인식을 성취할 수 있었던, 의식이 깨어 있는 한 인간의 자기 탐구담이다. 이 책의 감동은 작가 자신의 생생한 체험에서도 나오지만, 그것보다도 우리가 서술자 말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그의 정신적 탐구에 간접적으로나마 동참할 수 있는 그 강력한 주술적 힘에서 나온다. ―이상옥(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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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책소개 한걸 보면 말야. 머 문명이 야만을 점령하면서 제국주의의 폐해에 식민주의의 허상 저쩌고 저 뒤에 사람은 다른 이야길 서술하지만 저사람이 저책 저자걸랑. 식민주의 제국주의 남발하던데 책 평에서 자기가. 

 

해서 저런 책 머 애들 서로 평한거 대충 일이분 제목만 봐도 양키 개개끼 식민주의 어쩌고 제국주의 저쩌고.를 말야, 고대로 책에 평한걸 지들이 뻬끼는거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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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을 볼때. 이 조선땅 애들이 평한 걸 깔고서 절대 보지 말어. 저 시선들이 다 왜곡된 시선이걸랑. 정말 시야가  쫍아. 이땅빠닥엔 말야. 글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애들이 없어 이게. 그래서 제대로 평할 줄 아는 애들도 없고. 

 

쟤들 눈깔엔. 그 정서 바닥이 역시나 조선이야. 조선은 제국주의 피해야 식민주의 피해자.란게 아주 인식의 오성의 대부분을 차지해. 그래서 남의 글들도 그것으로만 해석이 되는거야. 그래서 자기 위안을 삼는겨. 아 나랑 같은 감성을 지닌 애들이 이리 서양애도 많구나 하면서 자기 소속감을 억지로 갖다 부치면서 자기가 레벨업 된거 마냥 자뻑하는거걸랑. 

 

문학론을 이전에 내가 풀어줬지만 말야. 그게 지상 최고의 문학론이자 예술론이야.

 

이나라에 돈키호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저리 풀어서 쓴 사람이 숙신 이래로 없어. 영어도 저리 못풀어. 가서 다시 복습하고. 

 

그냥 그대로 봐 글들을. 책을 문학을 리터러쳐를 보는 이유는, 나, 내가 보지 않은 못한 과거와 현재의 다른 이야기들을 보고자 함이야. 거기서 먼가 실마리 를 찾으면서 떨리는겨 떨리면서 웃던 울던. 그러면서 감정의 확장을 하고자 하는거야 그래서 보다 나은 보다 확장된 보다 온전한 세계를 밟고자 우리는 책을 보는거고, 사는 거야. 

 

어제와 오늘의 삶이 같은건. 그건 짐승이야. 짐승. 먹고 자고 싸고. 그건 그냥 짐승의 본능 짐승의 삶이야. 머 그리 사는것도 나쁘지 않아. 걍 닌 짐승처럼 살면돼.

 

 

The History of Rasselas, Prince of Abissinia, originally titled The Prince of Abissinia: A Tale, though often abbreviated to Rasselas, is an apologue about happiness by Samuel Johnson  

 

Samuel Johnson (18 September 1709 [OS 7 September] – 13 December 1784)  

 

새뮤얼 존슨.이 서기 1759년 나이 50에 쓴 소설. 아비시나의 왕자 라셀라스.의 히스토리. 이사람이 토리.걸랑. 영어 사전 처음으로 만든 인간이야. 세익스피어.를 이사람이 전집으로 냈어. 저것도 노벨라. 중편 소설인데 말야. 

 

라셀라스.가 에티오피아 왕자야. 왕권 받기 전엔 감금당하면서 천국에서 사는겨. 매일이 쾌락의 극치야. 헌데 자긴 그게 싫어. 재미가 없어. 먹기위해서 싸고, 배고프기 위해서 움직이고, 맛있게 먹기위해서 싸고, 교미하고 싸고. 매일 매일 그게 즐겁다는데, 더 이상 재미가 없는겨. 숲속에서 명상 사색하면서, 세상의 짐승들을 봐, 아니 내가 대체 쟤들과 먼 차이인가. 쟤들도 나처럼 배고플때 먹고, 졸리면 자고, 한가하게 지내다가 또 배고프면 먹고. 

 

짐승과 천국이라는 곳의 자기가. 아무런 차이가 없는겨. 여기서 시작을 해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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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는, 특히나 이 조선 오백년에 길들여진 그야말로 똥빠닥 태생의 우리네는 말야. 세상을 자기세상 바운더리가 단 일이미터여 이게. 사는게. 생각하는 토양이. 그 바닥에서 빠질들 해대는거고. 정말 너무나 한심한 종족들인데.

 

Central to Conrad's work is the idea that there is little difference between so-called civilised people and those described as savages; Heart of Darkness raises questions about imperialism and racism.

 

콘라드.의 작품이 문명인과 노예들과 차이가 없다는게 중심.이라고 하고. 저 책도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지만. 저건 저 책의 서사의 일 부분일 뿐이야. 

 

찰스 말로.가 탬즈강 하류에서 바다를 보면서. 저녁부터 밤에 걸쳐서 옛날 이야기를 하는겨 배 위의 사람들에게. 너댓명이냐. 

 

템즈강 하류쪽을 보면서 하는 말이. 여기도 카이사르가 오기전엔 깜깜한 야만의 곳이었을꺼야. 저 야만의 땅들이 저리 불빛들이 넘실대는 문명이 되었구나. 문명이 되기전의 저 야만의 런던이 역시나 과거엔 어땠을까.

 

내가 예전에 저 야만의 어두움에 들어갔던 시절이 있었어. 하면서 아프리카 콩고.에 갔던 이야길 하는겨. 벨기에 회사 소속으로. 

 

Kurtz . 이사람이 말하고 싶은 인물이 쿠르츠.라는 사람이야. 저 콩고강 깊숙히 상류에 회사의 현장 오피스가 잇는겨. 여기서 코끼리 상아들을 땅속에 묻힌걸 대게 캐서 하류로 날라 실어서리 회사가 유럽에 파는 구조걸랑. 

 

이 쿠르츠.라는 사람이 말로.에겐 미스테리였걸랑. 가면서도 누구나 쿠르츠 쿠르츠 미스터 쿠르츠는 어떻구요 저떻구요 하면서 무지 위대한 대단한 듯 사람들이 말을해. 대체 누구길래. 

 

그러면서. 이 말로.가 저기서 아프리카 를 보면서 흑인 노예들의 모습도 걍 쓰는거야. 당시에 봤던. 저건 작가의 경험담을 걍 그대로 쓴거야. 

 

모든 소설은. 자기 경험을 갖고 쓰는겨. 혹은 주워들은거던간에. 

 

저건 걍 좀비야. 걍 처참한 상황들을 걍 써 아무감정 없이. 저기서 말로.는 그 흑인들을 보고 자기 감정이 어떻다 저떻다 말을 안해. 그런건 유치한 서술이야 자기 감정 드러내는건. 머 문명아 더럽구나 저리 사람들을 노예화 하다니. 웃기는 해석이야. 노예가 노예질 하는건 이유가 있어. 수천년의 이유가. 저기서 여전히 식인 이야기들 나오고.

 

저기서 걍 아프리카 흑인 애들 이야기도 자기가 보고 들은 이야길 걍 써 담담하게.

 

저런건 말야. 저 소설의 주제가 절대 아냐. 독자들아 걍 이런 세계도 있단다. 저기에 머 제국주의가 어떻고 식민주의가 저떻고 그딴건 관심이 없어. 

 

이 사람이 궁금한건. 저 다크니스.야.

 

저 다크니스. 란게 대체 머까. 

 

호러호러. 하걸랑.  무서워 저 다크니스. 

 

이사람은. 다크니스.를 찬양하지도 않아. 야만을 찬양하는게 아냐 그래서. 세상은 문명화 되어야 해. 이건 항진명제야. 환경 어쩌고 초가집이 좋아. 완벽한 위선이야. 야 이 지금이라도 안늦었어. 옷 다 벗고 산속 굴속에 처박혀서 살아. 가서 나뭇잎으로 니 몸뚱아리 가리던.

 

이사람이 궁금한건. 저 다크니스여. 다크니스 란 저 어두움. 암흑. 저 세계. 

 

저게 인간 이란 거여. 저게 인간일 수도 있는거고. 저게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이야. 어쨌거나 저 다크니스.에 계속 불을 밝히는게 인간의 사명이고 인간이 짐승과 다른거야. 저게 제국주의 라면 제국주의는  찬양 되어야 해. 저게 식민주의 라면 식민주의 는 렬렬히 떠받들어져야 해. 

 

Joseph Conrad (born Józef Teodor Konrad Korzeniowski, ; 3 December 1857 – 3 August 1924) was a Polish-British writer[1][note 1] regarded as one of the greatest novelists to write in the English language.[2] 

 

작가가 조세프 콘라드.인데. 폴란드 태생이야. 영어를 배워서 쓴겨. 영국 사람이야 이사람은. 이책은 영어야. 나이 42세 에 썼어. 

 

Lord Jim is a novel by Joseph Conrad originally published as a serial in Blackwood's Magazine from October 1899 to November 1900.   

 

저 책이후 다음해에 나온게 로어드 짐.이야. 저 두개는 다 번역이 되었어.

 

원래 동유럽 애들 책은 발칸 애들이랑 중남미랑. 시선이 안가걸랑. 다 저따위 해석들 머 제국주의 어쩌고 식민주의 저쩌고 해대면서 징징대는 이야긴 말야. 니 정신을 병들게해. 철저한 패배자의 철저한 자위질이야. 저런건 니들 버킷리스트에서 버려.

 

저 사람께  책 보면 저런 말로 도배가 되어있어 역시나. 헌데 가만 보면 책 정보를 보면 그렇지도 않아. 그래서 혹시나 하고 속는셈 치고 잡아 봤걸랑.

 

아  잘썼어. 

 

이사람은 폴란드 슬라브고. 저소설에서 쿠르츠.는 덴마크 사람이고. 회사는 벨기에고. 쟤들은 정말 저런것 자체가 이 극똥 편협 자폐족관 차원이 다른데. 저기서 쿠르츠.의 참모가 러시안 이걸랑. 같은 슬라브 잖아. 러시안인 젊은애를 소개할땐 세상에 이런 밝은 독특하고 참신한 성격의 소유자가 있다니 하면서 띄우는거 보면 졸 귀여워. 같은 슬라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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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욕질 해대며 쓰는 비평들이 많듯이. 이런 평들은 모두 개소리야. 미국사를 모르고 인간사에 편협한 애들이 보는 시선이야. 그런 식이었으면 유럽애들 미국애들이 저 소설을 읽었겠니 베스트셀러로. 

 

벤허 그리스도 이야기.를 그리 많은 이들이 읽는 이유가 있어.

 

허나, 그런것과 같이, 이땅의 대중문학이 많이 읽힌 다는 그 책들을 같이 바라봐선 안돼. 이 땅의 인간들은 세상에서 가장 후진 인간들이야. 즉 이땅의 베스트 소설들은, 철저하게 피해. 수준 낮은 애들이 찬양하는 책들이걸랑. 

 

But darkness was here yesterday.

 

하류의 먼 바다에서 강쪽의 런던쪽을 바라보며 하는말이야. 여기도 어제까진 어둠이었지. 문명이 아니었다는겨. 야만인겨 카이사르 오기전까진.

 

They were men enough to face the darkness.

 

그 로마인들은 저 어둠을 마주하기에 충분한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말야. 이야기는 영국을 어둠에서 다크니스에서 빛으로 만든 로마.로 시작해. 그러면서 아직 어둠의 시대였던 아프리카.를 이야기하는겨 이사람이. 즉, 로마가 오기전의 템즈강을, 자기가 로마인이 되어서 아프리카로 간 이야기야. 자기가 로마인으로 감정이입을 한거야. 

 

저들은 어둠을 마주하기 충분한 사람이었어. 

 

헌데 말야, 결국 말이지. 쿠르츠. 라는 사람은 말야. 저 어둠을 마주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는거야. 이야기의 결론은.

 

쿠르츠.는 저 어두움. 다크니스.에 먹혔어. 로마인들은 마주해서 헤쳐나가서 불을 밝혀서 우리가 이리 한가롭게 템즈강을 바라보지만. 

 

 

"True, by this time it was not a blank space any more. It had got filled since my boyhood with rivers and lakes and names. It had ceased to be a blank space of delightful mystery--a white patch for a boy to dream gloriously over. It had become a place of darkness

 

이사람의 관심 포인트.는 어둠 이야. 블랭크 스페이스. 괄호야. 공백이고. 모르는 곳이야. 어릴땐 모든게 미지야. 몰라. 알면서 채워나가는겨. 그게 문명이야. 그게 무의식의 의식화고. 

 

이사람은 인간의 감정세계 정신세계를 말하는게 가장 커.

 

어두움 이란 인간 자체야. 인간은 몰라.라는 덩어리걸랑 역시나. 

 

He sealed the utterance with that smile of his, as though it had been a door opening into a darkness he had in his keeping.

 

그는 입을 닫았어. 웃으면서. 마치 그가 지키는 어둠속으로 들어가는 문.이 었던 거처럼. 입 안에 표현 안하는 그 모든게 또한 어둠 이야. 입이란건 어둠으로 들어가는 문이자 닫는 문이고. 

 

세상이 이런 식으로 보이는겨. 어둠과 어둠을 열고 닫음. 

 

to the hidden evil, to the profound darkness of its heart. 

 

저 어둠엔. 저 깊은 가장 깊숙한 어둠의 곳엔. 악마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어.

 

We penetrated deeper and deeper into the heart of darkness

 

강 상류를 올라가는 것도 어둠 속을 헤쳐가는겨. 자기들이 오피스 를 가는데 그 과정이 어둠의 하트 속으로 들어가는 심정인거야. 

 

Everything belonged to him--but that was a trifle. The thing was to know what he belonged to, how many powers of darkness claimed him for their own

 

쿠르츠.는 착각을 한거야. 모든게 자기것인양. 자기가 주인이고 모든건 자기에 속한거야. 웃기는 소리지. 반대야. 쿠르츠.가 부분집합일 뿐이야. 그 어둠의 많은 힘들이 그에게 강요했을 뿐이야.

 

쿠르츠.란 사람은 원주민을 압도한 듯 보이지만 말야. 이 사람은 저 어둠에 먹혔어. 이사람은 어둠에 먹혀서 죽어. 

 

쿠르츠.는 저 어둠의 곳에서. 자기 탐색을 찐하게 해. 말로.의 서술이야. 할일이 없어 저 어둔곳에서. 쿠르츠.는 저기서 자기 내면 탐색을 조오온나 하는거야. 할짓이 없걸랑. 자기 생각만  하고 과거 회상 열라 하고 자책도 할테고 웃는경험도 갖고 올테고. 그러다가 미친거야. 잔인해 지걸랑. 판단력이 흐려지고. 그러면서 결국 쿠르츠.는 죽어. 판단력 착오로.

 

어둠에 먹힌겨.

 

자기 내면 탐색 조차. 함부로 해선 안돼. 그러다 어둠에 먹혀. 히키 가 되면 자기 방에 갇혀서 역시나 일평방제곱미터의 세상속에서 살다가 가는겨. 

 

 

 

Of course you may be too much of a fool to go wrong--too dull even to know you are being assaulted by the powers of darkness

 

the heart of a conquering darkness.

 

저 어둠이란 것은. 정복하는 어둠이야. 이 어둠이란건 말야. 정복력이 있는 심장이 있는 생명체야. 잘못 들어가다간 어둠에 먹혀. 정복되는거야. 저기서 하트.는 핵심이자 심연이라 지만. 걍 하트. 심장이야.

 

콘래드.는 어둠속에서 저 어둠의 심장.을 느낀겨. 모호하지만. 

 

 "unique propensity for ambiguity"

 

이사람을 평할때 그래서 제일 그나마 잘 언급한게. 이 콘래드 특유의 모호성.이야. 머가 확실치 않아 이게.

 

이 사람 글 의 아주 독특한 맛이야.

 

이사람은 제국주의니 식민주의니 이따위 말 하는게 아냐. 

 

로마인은 안먹혔는데 쿠르츠.는 먹혔어. 저 어둠이란게 먼지 몰겄어. 하튼 잘못당하면 먹혀. ㅋㅋㅋ. 

 

가장 중요한건 말야. 모든 이야기는 결말이야. 죄와벌.이 내가 후지다 라고 한 이유고. 

 

이사람 결말이  웃겨. 쿠르츠.의 애인을 만나걸랑 인사하러. 쿠르츠의 애인.은 쿠르츠.가 위대한 인물.이라고 자평 타평하는 여자야. 말로 는 쿠르츠.를 그리 평하지 않아. 그냥 저 어둠에 자기나름 열렬히 투쟁하다 먹힌 인간일 뿐이야. 그래도 그 어둠과의 전쟁.을 나름 평가는 하지만.

 

말로.가 시작할때. 자기는 거짓말을 못한다. 나는 거짓말 하는걸 매우 싫어한다. 그건 인간이 아니란 식으로 말하면서 과거 이야기를 하걸랑.

 

차마 말야, 쿠르츠 애인에게 쿠르츠의 이야기를 못하는겨 진짜이야길. 저 슬퍼하는 여자에게, 내사람 쿠르츠는 어떻게 죽었나요 내 생각 나에 대해 말했나요

 

말로.가 이순간 당황한거야. 거짓말을 해야 하나 진짜를 말해야 하나.

 

거짓말을 한겨. 그 여자를 위해서. 당연히 여자는 감격해 하고.

 

아 거짓말을 해선 안된다는 자기 신조. 크리드 를 깨면서도 오히려 서로 해피해진겨 ㅋㅋㅋ.

 

저게 말야. 다크니스.의 다른 속성인거야. 다크니스 란게 먼지 모르지만. 

 

저사람이나 평론가들이 저런식으로 썰하는 사람은 절대 없지 물론. 나만이 말할수 잇는 경지고. 콘래드도 왜 저리 결말을 쓰는지 몰르지 당근. 작가는 몸을 빌린 생체육신일 뿐이야 자기도 왜 그런 글을 쓰는지 몰라. 당근 이땅빠닥엔 신이 빌릴만한 생체육신의 작가.란 없고. 여긴 그야말로 글쟁이 들이 똥 자체걸랑.

 

 

아 저 결말 보고 참 웃겼는데 말야.

 

저사람책 읽을 만해. 로어드 짐.이랑 저거 해서 두개는 보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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