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dgel War (also Club War, Finnish: Nuijasota, Swedish: Klubbekriget) was a 1596/97 peasant uprising in Finland(then part of the Kingdom of Sweden). 

 

The war against Sigismund (SwedishKriget mot Sigismund) was a war between Duke Charles, later King Charles IXand Sigismund, King of Sweden and Poland.  

 

핀란드 농민봉기 1596-7. 스웨덴 왕위계승을 위한 삼촌 조카 사이 나중 카를9세와 폴란드 지기스문트 킹 전쟁 1598-9

 

두개가 같은 맥락인데.

 

핀란드.는 처음 언급을 하는데. 커즐 워. 클럽 워. 커즐 이란게 끝이 뭉툭한 짧은 짝대기야. 곤봉 이라 한자번역하는데. 棍棒. 이건 휘둘러 때리는겨. 찌르는게 아니라. 

 

핀란드.라는 나라는 월드워 끝나고 서는거야 저게. 이 핀란드도 정체성이 20세기에야 생겨. 노르웨이와 같어. 

 

저들의 정체성이란건. 없었어. 오직 과거가 직접적으로는 천년간 당한 경험외엔 없어. 머  내세울게 없어. 그래서 말야 저들은 앞으로 강해지자 이거 하나야. 과거 국뽕질 할게 없어 이게. 핀란드도 내셔널리즘이 생기는겨 19세기부터. 이때 머 핀란드어만 쓰자. 얘들을 다 조져.  우리가 자폐적으로 가면 또 먹힌다. 세상은 영어다 지금 영어 다들 해라.

 

이 조선 이란 이 조선 민국.이  후진겨 저런걸 보면.

 

정말 그야말로 똥떵어리 자체 오백년을 국뽕질  하는겨. 몇몇만의 조선의 그 세상에서 가장 추악하고 더러운 역사를 말야. 세상에 저따위 역사는 인류문명사에 없어. 저 오백년은 그야말로 지옥이야 지옥 민들에겐. 저런 애들의 핏줄이 지금 조선 민국이란 세상에서 가장 망상 떵어리 들을 낳은겨. 아 정말  비참한겨 저 지쩍 수준 저 지능 수준이.

 

 

이전에 쟤가 노르웨이에 가서  저사람들 의회에서 말야. 평화가 어쩌고 저쩌고 연설하고 그걸 언론질로 오잉  평화 연설 음청났슈.

 

아 정말 쪽팔린겨 진짜. 노르웨이 역사를 전혀 모르는 애들이 쓴 연설문 갖고 그걸 읽는겨 저 노르웨이 사람들 앞에서. 

 

세상에 세상에 저런 무지능 무지란 건 없어. 정말 끔찍한거야 저건. 공개적으로 코리안들 얼굴에 똥칠을 하는거야 저게.

 

말레이지아 에 가서 그 말레이지아 사람들에 웬수 들의 언어로 인사를 하지 않나.

 

정말 말야. 너무나 너무나 끔찍한 수준이야. 저 무지 무능 의 수준이. 저게 조선 오백년의 피야 피. 

 

저건 정체성의 문제야. 정체성을 주작질 하면 안돼. 여기엔 아무런 힘이 없어. 

 

저들은 그야말로 나라를 아주 아작 을 내고 나갈꺼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탓을 적폐들에게 돌릴꺼고. 

 

추악하고 더러운 정도가 저건 정말 너무한거야. 21세기에 어찌 저따위 애들이 있냐 말이지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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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ron Age in Finland is considered to last from c. 500 BC until c. 1300 AD[10] when known official and written records of Finland become more common due to the Swedish invasions as part of the Northern Crusades in the 13th century.   

 

핀란드의 철기시대는 기원전 500년에서 서기 1300년으로 봐. 여긴 말야. 극동아시아 보다 더 늦은겨. 비록 철기시대 시작이 극동아시아와 비슷하지만 그다음의 문명으로 못나갔어 여긴. 중세 후기에나 여긴 문명이 되는거야. 스웨덴이 오면서. 

 

핀란드.는 우랄어족이야.

 

It is widely believed[13][14][15] that Finno-Ugric (or Uralic) languages were first spoken in Finland and the adjacent areas during the Comb Ceramic period, around 4000 BC at the latest. During the 2nd millennium BC these evolved — possibly under an Indo-European (most likely Baltic) influence — into proto-Sami (inland) and Proto-Finnic (coastland). However, this theory has been increasingly contested among comparative linguists.[16][17][18] It has been suggested instead that the Finno-Ugric languages arrived in the Gulf of Finland area much later, perhaps around 2000 BC[17]   

 

코움 세라믹. 빗살무니 토기가 기원전 4천년에 보여. 여기까진 머 비슷한겨 다른 곳과. 기원전 2천년에 원시 언어족이 출현하는겨. 프로토 사미. 프로토 피닉. 원시 사미족. 원시 핀란드어족. 우랄어족이 여기에 온게 기원전 2천년이야.

 

저 스칸디나비반도가 이 핀란드 언어족이 원래 주인이야. 먼저 왔어.

 

인도유럽피언이 기원전 4천년에 움직여. 왼쪽으로 말야. 프로토 그리크 Proto-Greek 원시 그리스어족이 기원전 3천년.으로 봐. 이들이 그리스어 만들고 페니키아 글자로 그리스글자 만들고 이걸 본따서 라틴어에 라틴글자가 나오는거고. 지중해.는 위대해. 레반트와 고대이집트를 이들이 배우는겨. 레반트와 고대이집트는 문명의 용광로야 저게. 카이사르와 지저스.를 만들 수 밖에 없어 저기서만.

 

인도유럽피안에서 위로 간 이들이 게르만이야. 프로토 게르만 Proto-Germanic 은 기원전 5백년이야. 이들이 저 스칸디나비아 서쪽에 아래 해변으로 간거야. 위와 동쪽은 이미 우랄족들인 사미족과 핀란드족이 있었어.  늦게 온겨 이 게르만은. 이 게르만이 아래 대륙으로 움직이고 갈리아와 로마와 전쟁하면서 문명이 급성장 하는겨 기원전에.

 

Later medieval legends from late 13th century describe Swedish attempts to conquer and Christianize Finland sometime in the mid-1150s. 

 

핀란드는 역사가 없어. 13세기 기록에 의하면. 스웨덴이 서기 천년 전후에 킹덤 세우고 그리스도 되고 이후 백년 후에 오른쪽 핀란드를 점령하러 가는겨 그리스도 심는 시도 하는거고. 서기 1150년.

 

 

In the early 13th century, Bishop Thomas became the first known bishop of Finland. There were several secular powers who aimed to bring the Finnish tribes under their rule. These were Sweden, Denmark, the Republic of Novgorod in northwestern Russia, and probably the German crusading orders as well. Finns had their own chiefs, but most probably no central authority. At the time there can be seen three cultural areas or tribes in Finland: FinnsTavastians and Karelians.[27] Russian chronicles indicate there were several conflicts between Novgorod and the Finnic tribes from the 11th or 12th century to the early 13th century.  

 

13세기 초.에 토마스 주교.가 교황 그레고리 9세의 임명으로 첫 주교가 돼 핀란드의. 당시 레반트 십자군 2백년 기간이야. 이 북쪽도 십자군이 가는겨 그리스도화 할라고. 이게 리보니아 십자군.에 프러시안 십자군이야. 스웨덴이 자기들이 십자군이라며 얘들은 핀란드를 점령하려는거고. 레반트 십자군의 바람이 저기까지 분거야.

 

These were Sweden, Denmark, the Republic of Novgorod in northwestern Russia, and probably the German crusading orders as well. Finns had their own chiefs, but most probably no central authority. At the time there can be seen three cultural areas or tribes in Finland: FinnsTavastians and Karelians.[27] Russian chronicles indicate there were several conflicts between Novgorod and the Finnic tribes from the 11th or 12th century to the early 13th century.  

 

핀란드.를 십자군이란 명분으로 서로들 노리는겨. 왼쪽 스웨덴. 아래 덴마크. 오른쪽 노브고로드. 핀란드는 자기들 일명 추장들이 있던거고. 이게 산발적으로 흩어지고 못 모은거야. 핀즈. 타바스티안즈. 카렐리안즈. 핀즈가 핀란드 내륙인들. 타바스티안즈가 아래 해변. 카렐리안이 핀즈 동쪽. 이 카렐리안은 지금 공화국.으로 러시아에 들어간거고. 

 

It was the Swedish regent, Birger Jarl, who allegedly established Swedish rule in Finland through the Second Swedish Crusade, most often dated to 1249. The Eric Chronicle, the only source narrating the "crusade", describes that it was aimed at Tavastians. Due to papal letter from 1237 Tavastians are known to stopped being Christian and returned to their old ethnic faith earlier. Novgorod gained control in Karelia in 1278,  

 

스웨덴이 서기 1249년.에 지금 핀란드를 지배하는겨. 오른쪽 카렐리아.는 노브고로도 공화국이 서기 1278년에 점령하고. 이때는 지금 지도보다 러시아가 더 많이 갖았어 땅을. 이게 이전 썰한 러시아 스웨덴전쟁들에 리보니안 전쟁에. 이어 표도르1세때 고두노프가 다시 벌인 스웨덴과 1590-95 전쟁하면서 현재 시대의 핀란드 러시아 경계선이 거진겨 이게. 스웨덴의 울타리로. 동쪽으로 더 간거야. 그리곤 19세기 시작하면서 핀란드가 러시아의 그랜드더치.로 들어오고 20세기에 월드워 끝나고 핀란드가 독립을 한겨. 얘들은 역사가 지금 백년이 된겨 이게.

 

그럼에도 핀란드.는 이 조선빠닥이. 이 조선 민국이 엄두를 못내. 정말 창피한 이들이야. 한글 전용. 한글 아끼자. 이들은 말야. 아이들을 죽이는겨 이게. 문명을 죽이는겨 이들이. 저능아로 만드는겨 국민들을. 저 내셔널리즘 저 세상에서 가장 후진 이념을 내세우는 그야말로 똥떵어리 들.

 

조선 오백년의 그야말로 추악한 몇몇만의조선.을 위대하다 정체성 갖고 완전히 망상놀이를 하는겨 저것들이. 

 

저기에 아무런 힘이 없고 온갖 거짓 만 있는겨. 모랄.이란게 저런 인간들에게 없어 그래서. 저런 이들이 정의여 민주여 해대는겨 저게. 그 내면을 보면 그래서  추악한거야 저게. 모랄이 지금에야 시작하는거걸랑. 

 

참 비참한 현실이야 이게.

 

저들이 내세우는 지식인 자연 하는 애들의 말글을 보면 그 수준이 수준이 말야. 정말 저게 어찌 인간의 대갈에서 나오는 말글 수준인가. 헌데 저런 말글들이 빠질하는 애들에겐  위대하고 엄청나고 정의롭게 다가오는거야. 저게 이땅 문명 수준이고 지쩍 수준이야. 여긴 말야. 문명이 아냐. 야만이야 이게. 이 땅의 인문학 수준은 세계에서 가장 후져 이게.

 

늙은이들이 빨랑 가셔야해. 쟤들은 저리 살아온게 자기들 삶의 이유라 생각하걸랑. 저걸 부정하면 자기들 삶의 기반이 허물어진다고 생각하는겨. 절대 지들 생각을 버릴 수가 없어. 저걸 버리면 자기가 죽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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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없어도 돼. 역사가 후져도 돼. 

 

문제는. 그걸 제대로 인식하고 현실 그대로 과거 그대로 보는게 중요한거야. 그게 핀란드고 노르웨이야. 

 

스웨덴도 머 별거있냐.  쟤들은 구스타브 바싸 16세기부터 시작하는겨 저게. 쟤들 역사란건 없어. 게르만이 마찬가지야. 프랑스 독일 영국. 역사가  허섭한겨 저긴. 카이사르 때부터 역사야. 자기들 130만명을 학살한 카이사르를 그 로마를 자기들 잣대로 삼는 애들이 영국 독일 프랑스.에 미국이야 미국. 미국은 로마야 저게. 

 

참 끔찍한 수준이야 이땅빠닥 국뽕 조선뽕의 저 들의 지쩍 수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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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bella Jagiellon (Hungarian: Izabella királyné; Polish: Izabela Jagiellonka; 18 January 1519 – 15 September 1559) was the oldest child of Polish King Sigismund I the Old

 

Anna Jagiellon (PolishAnna JagiellonkaLithuanianOna Jogailaitė; 18 October 1523 – 12 November 1596) was Queen of Poland and Grand Duchess of Lithuania from 1575 to 1586.    

 

Catherine Jagiellon (PolishKatarzyna JagiellonkaSwedishKatarina JagellonicaLithuanianKotryna Jogailatė; 1 November 1526 – 16 September 1583) was a Polish princess and the wife of John III of Sweden.

 

요가일라.가 시작한 야기에워 가문이 지기스문트2세.가 자식없이 죽어. 세 누이들이 이사벨라. 안나. 캐서린.이야. 이사벨라는 아래 동헝가리 사포야이 야노스.에게 시집가고 막내 캐서린은 구스타브 바싸의 둘째아들 요한3세.에게 가서 스웨덴 퀸.하고. 폴란드리투아니아.는 프랑스 앙리3세.를 킹으로 선출하지만 얘 오는길에 얘 형 샤를9세가 죽어서 프랑스가서 킹해. 결국 둘째 안나.를 추대하는데 남자가 필요해서 결혼을 시켜. 이사람이 Stephen Báthory  스티븐 바토리. 동헝가리에 하미지 하는 트렌실베니아 보이보드.야.

 

이사람때 이반4세와 리보니안전쟁 후반전을 하는겨. 이반4세가 1584년에 죽어. 스티븐 바토리가 2년후 1586년에 죽어. 이 다음 폴리.의 킹이 스웨덴 퀸인 막내 캐서린의 아들 지기스문트3세.여. 

 

스티븐 바토리.와 안나 야기에워 사이엔 자식이 없어. 지기스문트가 오스트리아 막시밀리언3세와 후계자 전쟁하고 폴란드 귀족애들은 지기스문트편을 들고. 자모이스키.가 합세해주고. 하면서 1587년 에 대관식을 하는겨. 

 

얘가 폴란드 리투아니아 킹에 오르는 1587년.이 이 후 2백년 후에 두 나라가 지워지는 시작이야. 내가 폴란드 몰락의 시작.이라고 명명을 해줬는데.

 

John III (SwedishJohan IIIFinnishJuhana III; 20 December 1537 – 17 November 1592) was King of Sweden from 1569 until his death.  

 

스웨덴의 요한3세.가 서기 1592년. 5년 후에 죽어. 폴리 킹 지기스문트3세의 아빠야. 구스타브 바싸의 둘째아들이고. 첫째가 에릭14세.인데 8년만 하고 죽어. 에릭때 에스토니아를 쳐들어가서 먹은거고 이걸로 리보니안 전쟁이 시작이 된거고. 에스토니아땅은 저이후 150년간 스웨덴꺼고 이게 러시아 표트르 한테 먹히는겨.

 

지기스문트.가 폴란드리투아니아.에 킹이 될때. 얜 원래 스웨덴 요한3세의 장남이걸랑. 폴리로선 부담스러. 헌데 폴리 입장에선 스웨덴이 필요해. 리보니안 전쟁에서 스웨덴이 강력했걸랑. 폴리.는 또한 러시아와 상극이야. 아래는 오스만이 쳐 올라오지. 몰도바를 완충지로 해서 저기도 신경쓰이고. 야기에워들이 2백년 지배한거고 세력이 있는겨 폴리에. 비록 엄마 핏줄이지만. 스웨덴이랑 연합이 공고해질테고.

 

이 지기스문트.가 스웨덴애걸랑. 얘가 오스트리아와 후계자전쟁할때 내세운 명분에 자기가 킹되면 에스토니아를 스웨덴에서 폴리로 준다했걸랑. 리보니안 전쟁으로 스웨덴이 에스토니아에 아래 리보니아땅까지 다 먹은겨. 폴리는 리보니아 아래 찔끔 먹은거고. 덴마크는 옆에 섬 갖고간거고.

 

 

그러다 스웨덴 킹 아빠가 죽은겨. 얘가 스웨덴 킹이 돼. 지기스문트가. 

 

 

After Sigismund had been crowned King of Sweden on February 19, 1594, he decided that no Parliaments (riksdagar) could be summoned without the King's consent. Despite this, Charles summoned a Parliament at Söderköping in autumn 1595, at which he managed to get his will through. The Duke was appointed Regent with "the advice of the Council", meaning that he was to govern Sweden together with the Privy Council during the King's absence from the Realm.[1] Soon afterwards, the nobility of Finland, led by the Sigismund-appointed Governor, Klaus Fleming, rejected these decisions. They sympathised with the King and considered Charles a rebel. As a counterattack, Charles instigated a rebellion against Fleming, the Cudgel War, among the farmers in Ostrobothnia

 

이 지기스문트3세.가 대관식을 하고 스웨덴이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유니온에 들어온거야. 이 유니온 체제란건. 킹만 하나이지 그 각각의 나라들은 행정부입법부사법부 가 있는겨. 독자적으로. 헌데 얘가 자기 동의없인 스웨덴 의회도 소집하지 말라 하는겨. 얘가 바싸 가문이걸랑. 헌데 오육년동안 폴란드 있으면서 얘가 정체성이 야기에워쪽으로 기운거야 이게. 아마 곧 에스토니아에 리보니아까지 얘가 스웨덴으로 부터 그냥 줄지도 모르는겨.

 

Charles IX, also Carl (SwedishKarl IX; 4 October 1550 – 30 October 1611), was King of Sweden from 1604 until his death 

 

나중 스웨덴 킹이 되는 카를9세. 구스타브 바싸의 막내아들이야. 형 요한3세 킹보다 13세가 어려. 엄마가 같아. 구스타브보다 스무살 어린 세번째 부인이야. 54세에 낳은 아들이야. 엄마는 바로 죽어 얘 낳고. 지기스문트3세의 막내삼촌이야. 16세가 많아. 이사람이 Duke of Södermanland 쇠데르만란드.의 공작이야. 스톡홀롬 바로 아래여. 

 

18세엔 배다른 큰형 에릭14세.에게 반란도 햇어. 다음 형 요한3세.하곤 그럭저럭. 하튼 사람이 쎄. 헌데 꼬라지보니 저 조카 지기스문트가 스웨덴을 폴리에 바칠기센겨 이게. 이사람이 자체적으로 의회를 소집하는겨 Riksdag 팔리어먼트가 얘들말로 릭스다크.여. 이건 영주들 모임이야. 이게 나중 하원이 되는거고. 카운슬 Council 이란게 고급귀족 자문단이야. 이게 상원이 되는겨. 이런 프레임이 똑같아 유럽이. 

 

카를9세가 멋대로 의회 소집하고. 카운슬의 동의하에 이사람이 리전트. 섭정을 하는겨. 조카 지기스문트가 벙 찌는거지.

 

저때 핀란드 지역이 지기스문트.의 사람들인거야 귀족들이. 이중에 대표가 Klaus Fleming 클라우스 플레밍.이야. 카를9세가 핀란드 농민들을 부추기는겨 클라우스 플레밍 애들을 기죽이려고. 이게 커즐 워. 라는 곤봉전쟁이야. 1596년. 더하여 이전세대 바싸부터 징집을 시작했걸랑. 마을의 열명이 한명의 군인을 먹여살리는 세금제도 도 도입해. 스웨덴에서는 이전 덴마크와의 내전이 많았고 칼마르 이후에 스톡홀롬 블러드배쓰.사건에 그냥 스웨덴 귀족들을 초대해서 다 죽여버린 경험에서 스웨덴은 정체성이 생겨. 그러면서 자기들 스스로 군인들이 되고 세금도 자발적으로 내는겨.

 

헌데 핀란드.는 이런 정체성이 생길수 없어. 쟤들은 남이걸랑. 세금이 많아지는거에 대한 반발에 전쟁 징집에 살기 힘든거야. 자기들 스스로 한 것일 수도 잇어. 여기에 카를9세가 걍 즐긴거일 수도 있고. 저걸 핀란드 클라우스 플레밍이 진압을 해. 농민들 이삼천명이 죽어.

 

그리고 이어서 바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지기스문트.가 병력을 데리고 스웨덴으로 쳐들어오는게. 지기스문트에 대항한 전쟁 1598-99년.이야. 이걸 카를9세들이 이기는거야. 당근 말야 아빠 구스타브 바싸 이후로 킹이 두형에 다음 킹 지기스문트지만 2대가 갓지난거야. 이전엔 덴마크 속국이고 아 듣보잡 폴란드리투아니아 유니온일 수가 없어 스웨덴 입장에선. 저러다 쟤들 수하로 들어가면 또 과거의 되새김이걸랑.

 

Sigismund was officially deposed from the throne of Sweden by a Parliament, Riksdag, held in Stockholm on July 24, 1599.[1] He was given six months to say whether he wanted to send his son. Prince Ladislaus of Poland, to Sweden as his successor, under the condition that the boy would be brought up in the Evangelical faith. Otherwise the Estates would look for a new king.

 

릭스닥.에서 공식적으로 폐위시키고. 지기스문트한테 니 아들을 보내고 싶으냐 스웨덴킹으로. 대신 프로텐스탄트 로 키울거야 우리가. 폴리는 카톨릭이야. 여기에 답이 없어. 

 

In February 1600, Duke Charles summoned the Estates of the Realm to Linköping. Since Sigismund had not provided a reply, the Estates elected Duke Charles as King Charles IX of Sweden. The consequences for those who had supported Sigismund were devastating. The most prominent among them were killed by the new King, in what was called the "Linköping Bloodbath".  

 

공작 카를.이 킹이 되는겨. 여기에 불끈 지기스문트.가 다시 스웨덴과 전쟁을 해야해. 저긴 자기꺼걸랑 얘 눈엔.

 

 

 

The Polish–Swedish War (1600–11) was a continuation of struggle between Sweden and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over control of Livonia and Estonia, as well as the dispute over the Swedish throne between Charles IX of Sweden and Sigismund III of Poland.  

 

이게 서기 1600-11년 의 폴란드 스웨덴 전쟁이야. 얘 선거 공약이 스웨덴이 리보니안 전쟁으로 챙긴 리보니아 에스토니아를 폴리에 주겠다 했걸랑. 여기가 자기들 머리 위야. 더하여 본심은 스웨덴 킹자리고. 서로 보합으로 끝나면서 진전이 없어 이건.

 

이 후에 말야. 1618-48년 독일 30년 전쟁이 터질때. 폴란드리투아니아.가 스웨덴을 치는겨 이게. 이 지기스문트3세 죽기 전까지. 즉 자기들은 합스부르크의 로마 카톨릭이고 저건 종교전쟁이고 스웨덴은 프로테스탄트고 이걸 빌미로 쟤들도 카톨릭에 합세하면서 쓰잘덱없이 스웨덴을 들 쑤시는겨.

 

 

이 폴란드 리투아니아.는 애초 목적대로 스웨덴과 원래 힘을 합쳤어야해. 헌데 저 지기스문트 를 데려와서. 정반대로 스웨덴과 적이 된거야 얘들이.  멍청한 이들이야 이게. 아래엔 오스만. 오른쪽엔 러시아. 위에선 뜬금포 스웨덴을 적으로 만들어. 여기에 나중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 힘이 더하면서 왼쪽 아래서 쳐들어오고. 

 

얘들은 지도상에서 지워져야 햇어 그래서. 

 

얘들은 아주 죽으려고 작정한 애들이야. 자기들 민들을 죽이려고 작정한 애들이야. 그래서 사라졌어 저게. 그리고 지금  찔끔 나라가 된겨 

 

리더 란게. 작정을 하는겨 지금 21세기에도. 자기들 민들을 죽이려고. 자기들 나라를 죽이려고. 이념에 미쳐서. 망상에 미쳐서. 그러면서 정의여 민주여.

 

참 비참한거지. 세상에 저런 애들이 있을 수가 있다니 말야.

 

 

 

The Åbo Bloodbath (SwedishÅbo blodbad) of 10 November 1599 was a public execution in the Finnish town of Turku (Åbo), then part of the Kingdom of Sweden, in the context of the War against Sigismund and the Club War. Sweden was by then in the final phase of a civil war, with one faction supporting king Sigismund III Vasa, who also was king and Grand Duke of Poland-Lithuania, and another faction supporting duke Charles of Södermanland, the later Charles IX, Sigismund's paternal uncle. After winning the upper hand in the dispute, Charles crushed the last resistance to his rule, particularly in Finland, while Sigismund had already retreated to Po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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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 블러드배쓰. 곤봉전쟁과 이어 바로 지기스문트전쟁까지 1596-99. 3년간 전쟁하면서. 저때 핀란드 귀족들이 농민들 죽였고 지기스문트 편을 들었걸랑. 승리하고 저들을 재판하고 사형판결을 해. 14명이 사형을 당해. 아보 광장. 아보가 지금 핀란드 투루크.고 헬싱키 왼쪽 해변도시야. 클라우스 플레밍.이 이때 죽어.

 

The forces opposing Charles in Finland were led by Arvid Stålarm and Axel Kurck (Kurk), who both became Charles' prisoners after the surrender of Åbo castle and further strongholds.   

 

저때 주도자 아비드 스탈람. 알렉스 쿠륵.은 걍 살아남아. 사형판결 받았지만.

 

위대한 조선 에서는. 넌 왜 그랜느뇨 왜 반역이뇨 고문  하다가 다들 고문받고 찢어죽임질 당했을텐데 말야.

 

이 오백년 조선은 정말 비열한 애들이야 이게.  힘없는 사람들 연일 고문. 증거는 소문. 대부분 고문 당하는 중에 죽는겨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곤.  일본 오면 바로 토껴. 중국들 오면 바로 토껴. 

 

그리곤 또 걍 일본한테 걍 줘.

 

그리곤 자랑스런 저항의 역사 독립운동. 중국땅에서

 

 

세상에 말야. 정말 저렇게 치사하고 추악하고 주작 거짓의 역사 도 없지만 말야. 저따위 로 주작질 해석하는 사가들도 세계사학자들엔 없어. 오직 싀안하게 여기만 저런 저들이 영웅놀이하면서 천국이 된겨 이게 지금.

 

 

The Linköping Bloodbath (Swedish: Linköpings blodbad) on 20 March 1600 was the public execution by beheading of five Swedish nobles in the aftermath of the War against Sigismund (1598–1599), which resulted in the de facto deposition of the Polish and Swedish King Sigismund III Vasa as king of Sweden. The five were advisors to Catholic Sigismund or political opponents of the latter's uncle and adversary, the Swedish regent Duke Charles.

 

린셰핑 블러드배쓰.  린셰핑도 큰 도시고. 쇠데르만란드 서남부 내륙에 잇어. 스웨덴 코트에서 지기스문트 반란한 사람들 재판하고 죽이는겨. 그래봤자. 다섯명 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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