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식
죄.란게 저마다의 져스티스.라는 잣대를 기준으로 그에 반하는걸 죄.라고 한다면.
신 더갓.의 이름으로 그야말로 보편적인 잣대.를 져스티스.라고 하고. 이건 종교들마다 서로 다른 져스티스.를 디리 미는거고. 이 조선의 땅에선 스텝의 주나라가 만들어서 황하에 뿌리고 장강을 좀 더한 공자가 만든 져스티스를 바닥에 드리미는거지만서도
저 져스티스.를 로 Law 라는 걸로 드러내서 이것에 반하는게 죄.다 하는거걸랑. 해서 저런 것으로 죄의식.을
느끼
는건데 말이지.
천안함 연평도 유족들을 불러들여서리. 그 앞에다가 . 그 당사자들은 자기의 사람.이 북조선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다고
생각 인식
을 하고 있는 그 당사자들 앞에서. 그 살인마의 상징과 반갑게 손잡고 함박웃음 짓는 이미지.들을 보여주는 그 마음이랑 말야.
같은 장면으로. 호국영령들이란 이들의 곳.에서. 저 소리없는 령들 역시. 자기 땅을 지키다가. 누구로부터? 역시나 저 살인마 인민 놀이 하는 저 그야말로 살인마 집단.을 상대하다가 죽은 이들의 곳에서 말이지
그 살인마 집단.의 이름을 들먹이고. 그 령들의 군.의 바닥 기초.가 저 살인마 집단.에 속해서 포상받아 간부를 지낸 한 이름을 대면서 그 이름으로 시작한 것이 령들의 군.의 시작이다. 즉 그 이름. 그 살인마 들의 하나의 이름.이 결국 저 령들의 군.의 시작.이다 라고 논리전개가 되지 않겠어? 해서 저따위 애에게 이땅에선 서훈을 줘야 하느니 마니.
저게 다 똑같은 생각. 마음의 연속인데. 저런 이들이 이땅빠닥에 반 이상을 차지한다는거걸랑.
문제가 되는 듯 하니. 서훈 주는건 일구사오 팔이오 이전.의 행적만 따집시다. 일구사오 팔이오 이후의 행적은 따지지 맙시다. 걍 주고 싶어 환장 하는 저 마음들
국가 서훈이란건. 그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는 이들에게 수여 하는 거야. 그 국민들 전체의 마음을 대신해서 주라는거 아니겠어? 여기서 그 주니 마니.의 기준은 그 국가의 정체성이야.
쟤.는 이 나라 한국.의 정체성을 깨부수기 위해 쳐 내려온 이들을 상징하는 인간 아니겠니?
이 나라 한국.의 정체성.이 조선 이니?
저 반이상의 무리들이. 말하고자 하는것. 역시 정체성의 문제야. 오직 가장 거대한 천장.은 일본이야 또한.
한국의 정체성이 반일본이야 쟤들에겐.
반일본 이라는 정체성.이 이땅에선 가장 높은 잣대라는 거지. 그 잣대에선. 북조선과 남조선은 하나라는 거야 저게.
북조선과 남조선의 정체성이 같다는거야 저게. 저 바닥의 마음은.
북조선이 쳐 내려와서 수만 수십만을 죽인건. 친일 적폐들을 죽여서 괜찮다는건가? 그에따른 컬레터럴 데미지. 부수적 죽음이라 포용하자는 건가?
북과 남은. 시작 부터가 정체성이. 아주 매우 달라.
저 두 집단.과 나라.는 전혀 다른 정체성이야.
어떻게 자기들 정체성을 죽이고자 하는. 그 정체성을 엎고자 하는. 저 상징에게. 국가의 훈장을 줄 생각을 할 수가 잇니.
더 가서. 인간적으로 말이지. 인간이라면.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생각이 있는 인간이라면.
살인자.의 상징.을. 피살자.의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긍정적으로 말 할 수 있냐 말이지. 그따위 이미지들을 선전.을 할 수가 있냐 말이지.
저게. 고대 인간들. 중세 인간들. 조차도. 저럴 수는 없는 거걸랑.
말이 더 많아지니, 참 이상하군요. 유족 한분만 기분이 안좋으셨나보죠? 다른 유족분들은 즐거워하시던데요. 이해가 안되는군요.
저게 그래서 거짓말이 아냐 쟤들이. 쟤들이 사탄 이 아냐. 쟤들이 악마 가 아냐. 쟤들은 쟤들이 참 정의로운 그야말로 진보적인 그야말로 위대한 애들인 줄 알걸랑.
.
문제는 저놈의 정체성.에 대한거야 역시나.
이 조선 오뱅년.의 역사.를 시안하게 해석하며 과장하고 위대하다 해대면서리 발생하는 겨 저게. 저 세뇌.를 어찌할 수가 없어. 여전히 저런 프로가 도배를 하고 서점은 저런 책들로 위에 진열이 되고.
거짓된 해석의 거짓된 감정으로들 거짓된 심판질과 거짓된 자존질들을 하는거지 계속.
죄의식이 없어 그래서.
죄란것도 없지만.
고통만 있을 뿐인데 말야.
대개들 쟤들은 말야. 뒈지기 직전까지도 저런 마음으로 마지막 숨을 거둬.
신.이란 건 없어.
어쩌면 말야. 진짜 죄의식을 갖고 그 죄의식 속에서 몸부림쳐서 죽는 것보다 그래서 낳은 삶들 일거야. 현세를 사는 동안은.
.
안타까와 할 것도 없지. 쟤들과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아 헌데 타자들의 모든 죄.는 같이 공유되고 있다니. 요건 아직 파보질 않아서리. 저런 저들의 일명 죄들과 죄의식 겪지 않은 죄들에 상관 없는 나.들이 책임이 있는건가. 같이 죄인 인건가. 하는 그리스도 해석은 생각하기 구찮고.
해서. 그리 분노할 것도 없어. 저런 일들에 대해서. 머 어쩌겄어. 아 어찌할 수도 없어 저런 집단 무의식. 주작되서 오뱅년 이상 육뱅년 동안 쌓여온 저런 감정의 두께는. 저런게 유럽외의 대부분 나라들의 현상이걸랑.
.
머 어쩌겄어?
아 헌데 그 당사자들. 유족들이나. 령들의 후손들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긴 하겠어.
사랑하래. 아가페 하라. 나를 아가페 하는 상대를 아가페 하는건 아가페가 아냐. 나를 적폐라고 생각하며 온갖 추악한 짓들을 가하는 그 소위 정의를 아가페하라. 지저스 님은 진짜 어드래 저따위 말씀을 창조를 하셨는지. 아 증말 음청나셔 이 지저스.
아가페 해.
조선.이란 두글자.가 가장 아가페 하기 힘든 두글자인데 말야. 이걸 아가페 하게 되면. 엘리쉬움 에 직행하는겨 이게. 킹덤에 가는겨. 하늘의.
그래서 이땅에 태어난, 어쩌면 가장 큰 기회 일 수가 있어. 그래서 그야말로 이땅의 민들이 선민인겨. 하느님이 택해주신겨.
갑자원 시즌이구만. 매년 업데이트되는 영관.은 너에게 빛난다.
영광 번영 할대 영.이란 글자는. 갑골에 말야. 저게 꽃이 막막 우거져 피는 형상이야. 무성한 꽃이야.
.
얘네 올해도 우승이네.
이 조선들의 땅빠닥엔 저런 문화가 없잖니. 그러니 애들에게 반일감정만 심는겨. 왜냐면. 저렇게 못 놀걸랑. 쟤들도 저런 시작이 메이지때 시작한겨 저런걸 저런 문화가. 이 극똥빠닥이 저런게 없었걸랑. 지들만의 하렘에서 있는 이들만 탱자탱자 놀면서 적폐놀이해대다가, 일본은 그래도 에도때 쫌 깨이고.
사교문화라고 굳이 언급을 한다면 말야. 저게 살롱.에서 시작한거걸랑. 프랑스 살롱 이란게. 이탈리아의 파투르누스의 클리엔스. 패이트론 후원받는 애들에서 각 이태리 코트.가 음악과 미술과 예술로 놀걸랑. 이게 그 영지 시민들에게 심어지는거고.
저게 알프스 넘어서 살롱.이 되는겨. 여자 중심으로 저런 문화가 형성이 되면서 모여서 정보교환하면서 노는겨. 춤추면서. 음악연주하민서. 저런게 또한 민들에게 내려가는거고. 발자크 의 프랑스 파리만 해도 4백개였다고 쟨 쓰고.
저런게 유럽대륙에 다 스미는거야. 그리고 클럽 문화가 생기는겨 남자들 중심으로. 영국애들 신사클럽이 유행하는거고.
저런것이 대표적인게 프리메이슨이고. 먼 프리메이슨이 거창한 그림자정부 짓이 아니고. 모차르트 라 봤자 저따위 프리메이슨 클럽지부에 악보그려주고 연주해주는것 뿐이고.
저런게 메이지때. 일본애들이 외국 애들 오면서 저런걸 배우는겨. 해서 얘들이 코트 차원에서 사교관을 맹글어. 이름을 까먹었는데. 유럽애들 말한데로 의복 차려입고 음악 뻬껴오고 외국애들 초대를 하는겨. 그거 본 외국애가 남긴 글과 캐리커쳐가 있어. 야 저 일본애들 저거 옷 입힌게 마치 원숭이 같어 크크큭. 해대민서. 저따위 야구도 저때 들어가는거고. 야구 용어는 마사오카 시키.가 맹글고 쟤가 맹근 말을 우리넨 한글발음으로 몰래 쓰는거고.
.
.
The Twelve Years' Truce was the name given to the cessation of hostilities between the Habsburg rulers of Spain and the Southern Netherlands and the Dutch Republic as agreed in Antwerp on 9 April 1609 (coinciding with the Royal Decree of Expulsion of the Moriscos).[1]
서기 1609년.에 네덜란드와 스페인 합스부르크.가 12년 휴전.을 해. 이게 휴전 조약.에 딱 찍힌겨. 12년. 즉 12년 후엔 다시 전쟁의 암시가 있는겨 이게. 독일 30년 전쟁으로 다시 시작을 하는거고.
네덜란드 80년 전쟁.이 1568-1648. 30년 전쟁이 1618-1648. 즉 저 조약 맺고 9년만에 다시 하는건데.
80년 전쟁.에서 가장 큰 분기점.은 안트베르펜 함락 1585년.이야. 15년 지나서리. 스페인이 저길 먹어. 이 전해에 조용 윌리엄이 암살을 당하고. 잉글랜드 더들리.가 참전을 하고. 3년 후 1588년.에 스페인 아르마다.로 스페인이 참패하면서 기세가 꺾이면서 잉글랜드와 함께 네덜란드가 거의 다 뺏긴 네덜란드를 다시 회복을 해.
The war in the Low Countries reached a stalemate in the 1590s. After the fall of Antwerp in 1585, Spain's Philip II ordered Alexander Farnese to direct his military actions first towards the failed campaign of the Spanish Armada, then against France to prevent the succession of Henry IV, a Protestant. In the following years the Army of Flanders was entirely on the defensive. Unable to sustain the cost of a war on three fronts, Philip II was forced to declare a suspension of payments in 1596. Spain's predicament was adroitly used by Stadtholder Maurice. In a series of campaigns, the Republic's army surprised Breda in 1590, took Deventer, Hulst and Nijmegen the following year and captured Groningen in 1594. By that stage the Army of Flanders had lost almost all its strategic positions north of the great rivers.[4]
프랑스에선 앙리4세.가 이름뿐인 킹을 해. 앙리3세가 암살을 당한게 서기 1589년.이야. 파리시민들 이삼십만이 촛불을 들면서 위그노 앙리4세를 거부해. 애인 가브리엘 데스트레.가 그깟 종교가 머냐 카톨릭으로 개종해.라고 부추겨.
Paris vaut bien une messe ("Paris is well worth a mass") 파히 보 비옝 윈 메쓰. 파리는 미사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 하민서리 카톨릭 개종한게 1593년.이야. 다음해에 샤르트르 성당.에서 대관식을 해. 즉 앙리3세 가 죽고 5년만에 킹을 하는겨. 80년 전쟁 중이던 스페인 펠리페2세.가 쟬 안믿어. 앙리4세도 자긴 스페인의 퍼핏이 아니라며 여전히 전쟁해. 이게 펠리페2세.가 1598년 죽으면서 프랑스 종교전쟁 36년. 1562-98. 이 끝나는거야. 스페인은 1588년 해전을 대패하고 네덜란드땅 다시 뺏기고 프랑스 종교전쟁에도 관여하는 중인겨. 저와중에 저지대에선 브레다. 디벤터. 헐스트. 니멩엔. 그로닝엔.을 다 뺏긴겨 이전에 다 갖고온걸.
After the accession of Philip III in Spain and of the Archdukes Albert and Isabella in the Habsburg Netherlands in 1598, the Army of Flanders tried to regain the offensive against the Dutch Republic. While it met with a tactical defeat in the Battle of Nieuwpoort on 2 July 1600, it did succeed in its strategic goal to repel the Dutch invasion of Flanders. The lengthy Siege of Ostend (1601-1604) amply demonstrated the balance of power. Both sides poured enormous resources into the besieging or defending a town that was reduced to rubble. Ambrogio Spinola, who had succeeded Archduke Albert as commander in the field, eventually captured the town on 22 September 1604, but only at the price of accepting the loss of Sluis.
펠리페3세.가 즉위해. 20세여. 1598년. 네덜란드의 합스부르크 짱.은 펠리페2세.의 배다른 누나. 카를이 결혼전에 상인딸에서 낳은 파르마.의 마가렛.이었다가. 이 여자는 은퇴를 해. 알바공작이 와서리 막 진압하는걸 반대하지만 힘이 없어. 이 자리를 펠리페3세.의 큰누나 이사벨라.부부.가 맡은겨. 죽은 돈 카를로스.바로 아래 여동생이야. 신랑은 알베르트 오스트리아 대공작.이야 앤 카를 동생 페르디난트 황제의 핏줄이고. 플랑드르 군대.하면 합스부르크여. 즉위하고 다시 재정비해서 네덜란드를 재차 공격을 해. 뉴포트 전투 1600. 오스텐드 포위. 여기 둘은 벨기에땅 끝 해변이야. 네덜란드가 여기도 뺏았단거야. 뉴포트.는 패하고 오스텐드.는 겨우 갖고 와. 슬뢰스.는 뺏겨. 여긴 바로 위 네덜란드 질란드(제일란트) 맨 서쪽 섬이야. 서기 1604년.
Meanwhile, Habsburg diplomacy had managed to disengage from two fronts. In 1598 Henry IV and Philip II had ended the Franco-Spanish War with the Peace of Vervins. Six years later, James I, Philip III and the Archdukes concluded the Anglo-Spanish War (1585–1604) with the Treaty of London. Together, these treaties allowed the Habsburgs to concentrate their resources on the war against the Dutch in the hope of a knock out blow. The following year, Spinola seized the initiative, bringing the war north of the great rivers for the first time since 1594. Suddenly the Dutch Republic had the enemy threatening its heartland.[5] By 1606, the Spanish army had captured Oldenzaal, Lochem, Lingen, Rijnberk and Groenlo despite the efforts of Maurice of Nassau. They did not, however, keep the Republic's allies from continuing their material support. Moreover, Habsburg successes in the Low Countries came at a heavy price. The Spanish did not deliver their knock out blow they had hoped for.[6] Furthermore in 1605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made serious inroads into the Portuguese spice trade, by setting up bases in the Moluccas.[7] These advances signaled a serious threat that the conflict might spread further in the Spanish overseas empire. On 9 November 1607 Philip III announced a suspension of payments. The balance of power had led to a balance of exhaustion. After decades of war, both sides were finally prepared to open negotiations.[5]
서기 1606년 올덴잘(오버아이셀 지역) 로헴(겔더란드) 링엔(니더작센) 라인베르크(북베스트팔렌) 그룬로(겔더란드) 를 스페인이 다시 뺏어. 저 도시들이 지금 네덜란드와 독일의 경계 부근이야.
네덜란드 80년 전쟁이라는게. 홀란드.의 두 백작 에그몬트.와 필립.의 죽음과 동시에 시작이 된거지만. 조용 윌리엄.의 의도는 17개 주.를 목표로 햇걸랑. 지금 벨기에 포함하고 룩셈베르크에 접경 프랑스아의 아르트와 까지. 이게 7개 밖에 못 뭉친겨. 카톨릭의 무의식은 쎄. 저기서도 홀란드.와 질란드 우트레흐트.만 윌리엄꺼지 나머지 네개도 위태위태했걸랑. 이것들도 1588 아르마다 이후에야 제대로 들어온겨. 1585 안트베르펜.을 스페인이 뺏은게 아주 결정적으로 나머지들은 카톨릭 스페인으로 남은거고. 아르마다 패배 전까진. 프리지아 해변과 홀란드 섬.만 남았던거야 네덜란드 입장에선. 오직 지리적인 잇점으로. 여긴 강줄기들 바닥에 해수면 뚝 세운 곳이걸랑. 여긴 뒤에 태양왕 루이도 못뺏어. 오직 저기만 남은것에서 잉글랜드애들 도움으로 저 7개를 다시 갖고 왔다가 1607년 즈음에 외곽 경계에서 스페인이 다시 뺏아간 것 뿐이야. 결국 저기가 국경이 된겨. 네덜란드의 7개 주의 국경은 저때 잉글랜드 애들이 만들어준거야. 그리곤 둘이 인도양에서 또 피터지게 서로 전쟁하는거고. 은혜는 은혜고,
지금 네덜란드는 킹덤.이고. 지금 킹.이 시작 조용 침묵 윌리엄.의 나싸우 오렌지 가문이여.
저 상황에서 답보상태인데다, 스페인 합스부르크.는 특히나 돈이 말리는거야. 펠리페 들은 디폴트선언을 다섯번을 해. 용병에 줄 돈들이 마르고. 더하여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포르투갈의 배들을 약탈하고 인도양으로 진입을 하는겨. 더 가면 스페인의 식민지들이 위험해. 네덜란드 땅에서의 전쟁을 휴전하는게 서기 1609년의 12년 휴전.이야.
이걸로. 국제적으로는. 네덜란드.가 인정이 된거야. 물론 스페인은 인정을 안해. 허나 다른 국가들은 네덜란드.를 저때부터 인정을 하고 각종 조약을 맺는거고. 스페인으로부터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게. 30년 전쟁 끝나고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는게. 네덜란드 공화국.은 공식적으론 1588년. 모리스 때부터 시작으로 봐.
The Dutch–Portuguese War was an armed conflict involving Dutch forces, in the form of the Dutch East India Companyand the Dutch West India Company, against the Portuguese Empire.
네덜란드 포르투갈 전쟁. 1601-1663. 바다에서는 12년 휴전 전에 포르투갈.이랑 인도양에서 전쟁을 시작했어. 이미 포르투갈은 1580년 스페인에 들어왔지만, 유니온이야. 유니온 이란건. 킹.만이 겸임을 하는거지 각 킹덤의 기존 지도체제.는 유지가 되는거야. 영국 경우는 의회.가 스콧.이나 아일랜드.에 유지가 되었던거고. 이 의회.도 합치면서 한 나라가 된거고.
포르투갈.은 의회가 없걸랑. 여긴 걍 코트. 스페니쉬 코트레스.가 있던겨. 쟤들 조정.은 그대로 가는거고 자기들 예산계획 집행도 독자적으로 하는거고. 물론 스페인 입김이 들어가겠고.
Dutch and British interest fed by new information led to a movement of commercial expansion, and the foundation of the English East India Company, in 1600, and Dutch East India Company (VOC), in 1602, allowing the entry of chartered companies in the so-called East Indies.
잉글랜드.는 서기 1600년에 동인도 회사. 네덜란드는 서기 1602년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기존의 회사들이 엠엔에이해서 카르테스.를 받은겨. 영국은 저기에 킹덤차원에서 또한 투자를 하는거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이게 아주 공화국의 직영으로 움직이는겨.
1601년에 인도네시아 반탐.에서 처음 전투가 벌어지고 네덜란드가 이겨. 그러다가
At dawn of February 25, 1603 three ships of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VOC) seized the Santa Catarina, a Portuguese galleon. It was such a rich prize that its sale proceeds doubled the capital of the VOC. The legality of keeping the prize was questionable under Dutch statute and the Portuguese demanded the return of their cargo. The scandal led to a public judicial hearing and a wider campaign to sway public (and international) opinion. As a result, Hugo Grotius in The Free Sea (Mare Liberum, published 1609) formulated the new principle that the sea was international territory, against the Portuguese Mare clausum policy, and all nations were free to use it for seafaring trade. The 'free seas' provided suitable ideological justification for the Dutch to break Portuguese monopoly through its formidable naval power.
서기 1603년.에 네덜란드가 포르투갈 겔리온.이 아니라 캐럭선이야. 이걸 포획해. 당시 이 회사.의 자본금의 두배되는 값어치야 선적물이. 십년전에 잉글랜드가 아소리스 부근에서 똑같이 겔리온 잡아보니 잉글랜드 킹덤 예산의 반이었고. 그래서 동인도회사를 서로 만들어서 진출한건데. 이 사건이 아주 결정적인 60년 전쟁의 도화선이 돼.
국제 해양법.이란게 저때 시작이야. 서기 1600년 초에. 포르투갈 배들을 포획들 하면서. 저건 잉글랜드애들이 전쟁을 내세워서 아소리스 바다에서 약탈한거랑 달라. 산타 카타리나.는 지금 싱가폴.에서 네덜란드가 포획을 한겨. 포르투갈은 달라 하고 네덜란드는 주고 싶지 않은거야.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과 전쟁 중이었고. 포르투갈.도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단거야. 그래서 전쟁 중이니까 이건 전쟁이다 저 먼곳에서도. 저 포획물이 어마어마하니까 네덜란드.는 주고싶지 않어. 논리를 만들어야 해. 모럴.상 꺼림직하걸랑.
Mare Liberum (or The Freedom of the Seas) is a book in Latin on international law written by the Dutch jurist and philosopher Hugo Grotius, first published in 1609. In The Free Sea, Grotius formulated the new principle that the sea was international territory and all nations were free to use it for seafaring trade. The disputation was directed towards the Portuguese Mare clausum policy and their claim of monopoly on the East Indian Trade. Grotius wrote the treatise while being a counsel to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over the seizing of the Santa Catarina Portuguese carrack issue.[1][2]
서기 1609년. 산타 카타리나.를 포획하고 6년 후에 나온 책이야. 네덜란드 법학자. 헤그 더 그로트.(영어 휴고 그로시어스).가 마레 리베룸. 자유의 바다.라는 프리씨 개념의 책을 출판해. 자기 국가 일정 영해 외의 바다.는 자유의 바다.라는거야. 그래서 자유롭게 무역할 수 있다. 저게 그 이면에는. 포르투갈아 저긴 니덜 나라도 아니고 니덜만의 바다가 아닌데 왜 니덜만 저 바다를 사용해야 하고 다른 나라들 무역도 못하게 하는가. 이건 자연법이고. 니덜은 보편적인 자연법을 어겼기때문에 우리가 그 배를 포획한 사건이 발생했다.
라고 말하는거걸랑. 저걸 또한 스페인 에게도 말하는거고. 서인도제도.에 카리브해도 모든 나라들이 다니면서 자유롭게 무역을 할 수 있다. 라는겨.
바다.에 대한 개념.이 서기 1600년 까지. 이게 공해.란 개념이 없었어. 바다.는 누구나 다니는 곳이야. 한자동맹.이란건 얘들이 바다를 막은게 아냐. 해적 방지용이고 자기들 정보교류에 포트별로 창고 운영하는거걸랑.
바다.에 대한 개념.이 서기 1600년.에 완전히 바뀐거야.
The Ancient Greeks called the Mediterranean simply ἡ θάλασσα (hē thálassa; "the Sea") or sometimes ἡ μεγάλη θάλασσα (hē megálē thálassa; "the Great Sea"), ἡ ἡμέτερα θάλασσα (hē hēmétera thálassa; "Our Sea"), or ἡ θάλασσα ἡ καθ'ἡμᾶς (hē thálassa hē kath’hēmâs; "the sea around us").
The Romans called it Mare Magnum ("Great Sea") or Mare Internum ("Internal Sea") and, starting with the Roman Empire, Mare Nostrum ("Our Sea"). The term Mare Mediterrāneum appears later: Solinus apparently used it in the 3rd century, but the earliest extant witness to it is in the 6th century, in Isidore of Seville.[6][7] It means 'in the middle of land, inland' in Latin, a compound of medius ("middle"), terra ("land, earth"), and -āneus ("having the nature of").
바다.란건 지중해 밖에 없었어. 그리고 중세 지나면서 북해. 발트해.에서 북 게르만 애들이 다닌건데. 저 바다 우리꺼. 이런 관념이 없어. 덴마크 애들이나 사운드 해협에서 삥뜯은겨.
지중해.가 고대그리스에서 탈랏사. 바다야. 또는 메갈레 탈랐사. 큰 바다. 이게 로마에 와서. 제국을 만들면서 마레 노스트룸. 우리의 바다.란 말이 나온겨. 이걸 저 그리스어로 바꾼거일 뿐이고. 지중해 란건 6세기에 나오는거고.
자유의 바다. 공해 개념이. 탐험의 시대.이후 백년만에 나오는겨 이게. 네덜란드.와 잉글랜드.가 뒤늦게 저길 참여할 명분으로.
저사람이. 저건 내츄럴 로. 자연법. 이라고 해. 이건 인간의 이성이 필요가 없어. 보편적인겨 신이 준겨 당연한겨. 이것과 대비되는게 소위 실정법. postive law. 이건 posit 포짓. 내미는거야 억지로. 자기 주장하기 위해서. 이건 어떤 시대와 장소.에 적용하기 위한 법.이야. 이건 보편적인게 아냐. 중국은 실재법.이라 하고. 우리넨 일본들 따라서 실정법 하는겨. 이 법률용어도 전부 일본말이야 이게. 우리네는 말야. 이 말 하는걸. 책보는 것도. 일본말.이 없으면. 이땅빠닥의 모~든 책들이 없다고 보면돼. 우리넨 완전히 일본의 사유의 틀.속 저 구석탱이.에서 사는걸로 보면 돼.
.
바다.도 개념이 없었어 조선이던 이 극똥빠닥은. 주원장이 바다 금지여. 조선도 바다금지야. 바다가 먼지 몰라.
그리곤 바다 지명으로 싸워. 쟤들은 북해.란건. 오직 대륙 프랑스 독일의 입장이야. 네덜란드는 프리지아해.여. 영국애들에겐 동해여. 노르웨이에겐 서남해여. 야 쟤덜이 저게 북이냐 동이냐 남이냐 머 저따위 말로 싸우냐.
별 조아무것도 안한애들이 저딴 허섭한걸로 싸움질 하는겨 민족 해대민서.
가위바위보를 하던가. 관시미가 없다.
.
저 법사상을 근거로. 네덜란드.가 당당하게 고개 들고. 우리도 할껴. 라고 가는거야. 기득권인 포르투갈에 스페인이 저건 먼 개논리여 하면서 막는거고. 이때부터 벌어지는 전쟁이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전쟁에. 곧이어서 다시 잉글랜드와 스페인 전쟁이야. 잉글랜드 스페인 의 이전 전쟁은 지들 나라해변 쳐들어가는거고 거기서 배 약탈하는것.에서 끝난거고. 이다음부터는 동인도회사.가 인도양으로 가는겨.
인도 인도네시아에 진출하는건. 그래서. 네덜란드가 먼저여 저게.
인도에 진출하는게 포르투갈 다음에, 당연히 스페인은 사라고사조약으로 맬러커즈 스파이스제도를 넘지못하고.
영국이 아니라. 네덜란드가 먼저 인도에 자리를 잡는거야. 영국은 이 다음에 오는거고.
저게 서기 1600년 시작이야. 포르투갈이 바스코 다가마 이후 딱 백년 만에 지는겨. 스페인도 함께 지는거고. 네덜란드와 영국의 시대를 여는게 서기 1600년이야. 이게 월드워까지 가는겨 이 인도양은. 저 둘의 시대로.
서기 1665년.경의 동남아시아.의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포르투갈.은 인도 고아.와 중국 마카오.고. 네덜란드.는 인도 해변과 스리랑카.에 팩토리들을 저리 둔거야. 말라카. 여기가 말레이지아 괄라룸푸르 바로 아래 해변도시야. 자바섬의 자카르타. 맬러커즈 스파이스 제도에 암보비나. 일본 데지마.
저 인도네시아.는 저 이후 2백년 걸쳐서리 완전히 대부분 모든 땅이 네덜란드.로 들어오는겨 월드워 1차 직후까지.
The Kingdom of Middag (Chinese: 大肚王國; pinyin: Dàdù Wángguó) was a supra-tribal alliance located in the central western plains of Taiwan in the 17th century.
Spanish Formosa (Spanish: Formosa Española) was a small colony of the Spanish Empire established in the northern tip of the island known to Europeans at the time as Formosa (now Taiwan) from 1626 to 1642. It was conquered by the Dutch Republicduring the Eighty Years' War.
The island of Taiwan, before World War II and until the 1970s also commonly known as Formosa, was partly under colonial ruleby the Dutch Republic from 1624 to 1662.
The Kingdom of Tungning (Chinese: 東寧王國; pinyin: Dōngníng Wángguó; Pe̍h-ōe-jī: Tang-lêng Ông-kok) or Kingdom of Formosa was a government that ruled part of southwestern Formosa (Taiwan) between 1661 and 1683.
타이완. 이란 대만.은. 가장 역사가 없는나라여 여기가. 중국어 다두. 영어 밋다그 킹덤. 한글독음 대두왕국. 저건 중국 본토 맞은편 중간에 짝은 지역이야. 스페인 네덜란드가 왔을때 있어서 대두 왕국 해주는겨. 걍 트라이브. 부족이여. 이들은 중국도 관심이 없었어. 몰라 여긴. 그러다가. 서기 1624년 과 1626년.에 네덜란드.가 남쪽해변. 스페인이 북쪽해변으로 자리를 잡고. 1642년에 네덜란드가 북해변 스페인을 몰아낸거야. 그리곤 1662년.에 정성공 한테 쫓겨난겨. 이 정성공의 정씨들이 동녕왕국.이름으로 끽해야 22년 있던거고. 정성공이 엄청난겨 이게. 얜 나가사키.에서 꼬마시절 보낸 인간이여 일본애들이 배운 서양을 얘가 익혀서리 명나라 가서 뜬금포 국뽕 쳐먹고 명나라 정체성을 갖고서리 청나라랑 싸우다가 사라진거야.
가오슝.은 아래 네덜란드가 만든 도시고. 타이페이.는 북쪽 스페인이 만든 도시고.
그리고 저 대만 이란곳은. 2백년 후에. 오키나와 사람들 온걸 저 원주민들이 죽이고. 이때 사이고 다카모리.들이 정한론.으로 조선 치자는걸 오쿠보 도시미치.가 대신 저 오키나와인들 피살이유로 대만 치는 정대론.을 만들어서 대만을 치러가고, 청나라는 힘다 빠졌을때고, 이때 오히려 애매한 오키나와 위치.가 확실히 일본으로 들어오고 말야. 대만도 일본이 메이지때 먹는겨. 저 대만의 역사.는 장개석 오기전 까지. 저건 역사가 없는겨.
대만은 아주 확실하게 미국에 붙어야해. 아예 미국에 파는게 나아. 하와이 킹처럼. 아 이 하와이 킹이 머리가 최고 좋았어 얜.
'세계史' 카테고리의 다른 글
95. 젊은 베르터의 슬픔2. 대심문관 (0) | 2019.07.02 |
---|---|
94. 젊은 베르터의 슬픔 ft.작센 바이마르 프쉬케 (0) | 2019.07.02 |
93. 호밀밭에서 붙잡아주기 (0) | 2019.06.29 |
유럽사184. 북서항로 북동항로 NWP & NEP (0) | 2019.06.27 |
유럽사183. 코사크의 시베리아 정벌. 아니키 스트로가노프 (0) | 2019.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