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이란건 말야 음..........................진짜 있어 이게 융할배식의 심리작용뿐만아니라 진짜 있는건데 이게     

 

이건 천기누설이겠다 그야말로.

 

프로이트 니 칼융 이니. 뜬굼포 20세기 인간들을 정신병자들로 둔갑을 시킨건데.

 

꿈으로 어쩌고 저쩌고. 걍 꿈 갖고 놀아. 꿈이 먼 대단한 인생 만병통치약으로 다루는 인간들이 해대는 세상이 되었는데. 걍 하나의  사소한 팁일 뿐이야. 꿈을 푼다고 니 문제가 달라지지 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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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의 시대. Age of Discovery. 대항해시대 로 일본애들이 번역해서 잘못쓰고 있는. 탐험의 시대에 말야. 포르투갈.이 2백년 준비하고 사이 백년만에 세우타 1415냐. 그리고 1499 바스코다가마.로 인도로 가는데. 이 직전에 스페인 스폰으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만지고. 그야말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세상이 되었걸랑. 그러다 1580 에 포르투갈을 펠리페2세가 먹으면서 포르투갈의 물자가 네덜란드에 오지를 못해 네덜란드 독립전쟁 싫다고. 잉글랜드와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트레져. 인도에서 오는 그야말로 보물선들을 약탈을 하걸랑. 

 

한편으론 이들이 다른 길을 뚫는겨. 이게 북서항로와 북동항로야. 북극해 Northern Sea 를 통해서 베링해.를 지나 아시아로 가는길이야. 물론 말야 여기 길에 이름에 섬들도 나중에야 작명이 되는거고. 저긴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걸랑.

 

모든건 킹덤 차원에서 벌어진겨 저건. 코트.가 주도를 한거야. 이들 리더들의 스폰으로 정책으로 저걸 다 한겨. 포르투갈의 인도행은 우연이 아냐. 포르투갈 킹덤차원에서 2백년 걸쳐서 계획을 잡고 투자를 한거야 이건. 다른 모든 탐험도 마찬가지야. 남들은 코트에서 적폐놀이하면서 지들만의 하렘천국서 공맹놀이 주역놀이 할때 쟤들은 저리 살았던거지.

 

푸코의 진자.가 음모론의 백과사전이지만. 저 음모론의 바탕은 말야. 미신이걸랑 저게. 쟤들은 저 미신놀이를  고차원적으로 한겨. 움베르토 에코.가 푸코의 진자.를 미신놀이 나뽀 음모놀이 나뽀.만을 위해 저걸 쓴게 아냐. 저 유럽애들은 저따위 미신놀이를 통해서 또한 저게 근대문명을 만든겨. 저런 고차원의 미신의 진짜 리앨리티.를 찾다가 이야기가 나오고 문물들이 우연찮게 발명들이 된거걸랑.

 

주역.이란게 아주 대표적인 미신놀이야. 이 주역이란건 조오온나게 쓰레기걸랑 이게. 이게 아마 기원전 오육백년전. 공자 이전껄로 보걸랑. 노자 도덕경 나온 묘에서 또한 저 주역 쓰여진 비단도 나온거걸랑. 저게 가장 오래된겨.  미신이야 이게. 저따위 미신놀이를  오백년 내내 코트에서 하는겨 어떤 이들은. 아무런 발전이 없어. 완전히 한무당의 나라가 된겨 이게. 

 

쟤들은 먹고사니즘.에 더하여 말야. 저 바닥은 또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색이야. 황금양모피가 어딘가 있을껴. 아르고호 의 종착지가 어딘가 있을껴. 저 진자.의 끝 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분명 어디서 배후놀이를 할껴. 언노운 수피리어즈 Unknown superiors 미지의 초인들의 사는 세상이 어딘가 있지 않을까. 지구는 속이 빈 지하세계애들이 지배하는겨 어딘가 저 지하세계로 가는 통로가 있을껴. 

 

이따위 호기심도 분명히 바닥에 잇걸랑 저게. 저게 근대 유럽애들의 가장 재밌는 이야기들중에 하나야. 저걸 걍 갖고 논겨 쟤들은. 완전히 살아 움직인 인간들이야. 이 극똥 빠닥의 공동묘지 지배자 들과는 살아온 역사가 달라. 중세천년 초기는 미개했던 게르만이 천년을 활발히 배우고 익힐때 극똥빠닥의 조선들은 이전 천년문명을 지우개질하곤. 쟤들이 더 날라다니며 여기저기 움직이며 동시에 사유할때, 지들만의 하렘속에서 적폐놀이 소인배놀이 손가락총질 하면서 완전히 미개인이 된거걸랑. 이 조선 인간들이 그래서 지금. 세상 빠닥에서 가장 무식한겨 이게.

 

대가리가 깨져도 조선인겨. 사람이름이 이념의 대명사여. 대가리가 깨져도 지들만의 이념인겨 어설픈 이념. 

 

게르만나라들 가서리 순방 효과를 거뒀대. ㅋㅋㅋ. 쟤들 의회가서. 착한 맘의 평화를 지니면 평화가 옵니다. 아  대단한 업적을 남기신겨. 야 북조선 티비도 저정도 까지 미개하진 않을텐데 말야. 그래도 대가리가 깨져도 조선인겨.

 

국제적 시선에서 보면. 정말 너무나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한 짓인거를 당사자들은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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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서 north pole 노어쓰 폴.이 북극점.이야. 지리적인 북. 트루 노어쓰. 진북이여. 마그네틱 북은 자북.이고. 인억세서블한 북.은 진자북.이여. 이전 썰. 북극점에서 천키로 떨어진거로 봐. 

 

Balthymetry 발띠메트리.는 수심.이야. 베링해협이라는 아시아와 알래스카 사이는 말야 수심이 얕은겨 이게. 

 

 

북서항로.나 북동항로.나 결국은 만나는 점이 베링헤협이야. 초창기엔 이걸 몰라. 저 해안선도 18세기되서야 그려지는겨 수많은 목숨을 잃고서리. 

 

저길을 가는 이들의 중심은 영국과 네덜란드여. 북동항로는 러시아가 중심이 되지만 이 길도 네덜란드와 덴마크 인간들이여. 러시아 슬라브애들은 바다를 잘 몰라. 

 

영국과 네덜란드.가 스페인의 뒤를 이어서리 대서양과 태평양을 헤집으면서 스페인과 전쟁을 하고 이 둘도 서로 전쟁을 하면서 탐험의 시대 후반전에 뛰어들지만. 한편으로는 저 위의 길을 뚫는게 이들이야. 

 

다른 세계가 저기에 있다. 라는 전제와.

 

보다 빠른 항로가 있다. 라는 가정으로 가는거지. 지구가 둥그니까. 저리 아래로 삥 둘러서 가는 것보다 위로해서 바로 아래 내려가면 훨빠를거란 생각이 든거야. 스페인 포르투갈은 이 필요성을 느낄 필요가 없어. 오직 영국과 네덜란드.만 분발심 조바심이 난거야. 프랑스조차 신대륙에 관심이 없어 루이14세는 대륙땅 넓히는게 더 나은겨 해서 전쟁  한거고. 오직 저 두나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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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tus Jonassen Bering (baptised 5 August 1681, died 19 December 1741),[1][nb 1] also known as Ivan Ivanovich Bering,[2] was a Danish cartographer and explorer in Russian service, and an officer in the Russian Navy  

 

비투스 요나센 베링. 비투스 베링. 베링해 베링해협.의 베링.이여. 베링해협 위.는 Chukchi Sea 축치 해.라고 해. 축치족의 축치반도. 배링해.는 아래야. 캄차카 반도.정도 까지고 이 아래가 태평양이야. 

 

The First Kamchatka expedition was commissioned in December 1724 by Peter I of Russia to explore the northern part of the Pacific Ocean and confirm the presence of the strait between Asia and America. It was the first Russian naval scientific expedition,[1] and was followed in 1732 by the Second Kamchatka Expedition.  

 

비투스 베링.은 덴마크 사람이여. 러시아 해군이 되서리 캄차카 탐험을 해. 표트르대제.때 시작.위대한 인간이야 이 인간이. 표트르.가 1725년.에 죽어. 탐험 출발시키고 죽은겨. 1차 캄차카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육지로 가는거야. 말과 썰매를 타고. 오호츠크. Okhotsk. 까지 가. 축치의 서남쪽. 오호츠크 해.가 이 러시아 동쪽 오호츠크.에서 캄차카반도 안의 바다야. 오호츠크.에서 작은 배를 타고 반도 지나서 위로 가는겨. 배링해 위를 지나 축치 해.까지 가는거야. 알라스카.는 닿지 않아. 

 

 

 

서기 1690년대에 축치반도까지 온겨. 그리고 이후에 여길 계속 보내. 축치반도가 끝이고 넘어가 바다란걸 알게돼. 비투스 베링.을 보낸건 저 바다로 가보라는거지 머가 있나. 표트르가.

 

베링해.를 지나 해협 지나 축치해.를 찍은 해가 서기 1728년.이야. 즉 베링해협을 처음 배로 닿은걸로 봐.

 

비투스 베링.은 해군의 자격으로. 페테르부르크.에서 육로로 오호츠크.까지 가서리 저기서 보트들을 타고 갔다가 다시 오호츠크.로 복귀해서 큰배를 만들어서 저리 간거야.

 

The Great Northern Expedition (Russian: Великая Северная экспедиция) or Second Kamchatka expedition (Russian: Вторая Камчатская экспедиция) was one of the largest exploration enterprises in history, mapping most of the Arctic coast of Siberia and some parts of the North America coastline, greatly reducing "white areas" on maps. It was conceived by Russian Emperor Peter I the Great, but implemented by Russian Empresses Anna and Elizabeth. The main organiser and leader of the expedition was Vitus Bering, who earlier had been commissioned by Peter I to lead the First Kamchatka expedition. The Second Kamchatka Expedition lasted roughly from 1733–1743 and later was called the Great Northern due to the immense scale of its achievements.

 

표트르 대제.가 죽고. 다음엔 페테르부크크.에서 배로 항해를 보내는거야. 시베리아 끝의 축치까지 간건 코사크들 앞세워서 육로로 간겨. 해안선을 그려야 해. 그리고 저 광활한 시베리아에 무엇이 있는가를 파악해야 하는겨. 코트에서 대규모로 학술단체를 보내는겨 이게. 이걸 제2차 캄차카 탐험.이라고도 하고. 아예 위대한 북쪽 탐험.이라고 따로 해. 

 

With over 3,000 people directly and indirectly involved, the Second Kamchatka Expedition was one of the largest such projects in history. Its cost, completely financed by the Russian state, reached an estimated 1.5 million rubles, an enormous sum for the time; roughly one sixth of the income of the Russian state in 1724  

 

러시아가 말야. 표트르 대제 때에서야 유럽을 갖고오는겨. 서기 1700년.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애들은 2백년이 늦은겨. 조바심이 나서 미치는겨 이게. 러시아는 이 표트르 부터 만든거야. 코사크 들이 만든 시베리아.가 광활한 사유의 터가 되고 재료가 돼. 이게 러시아 르네상스 19세기를 만든겨. 여기서 티나오는 인간이 카라마조프.의 도스토예프스키.여

 

아 도스토예프스키.  위대한 인간 정말. 카라마조프 형제들. 아 정말 뾰오오옹갔다 저거. 

 

저 2차 탐험에 3천명이 직간접 관여하다. 돈이 150만 루블. 당시 러시아 재정의 육분의 일. 

 

러시아 란 나라가. 정말 인민놀이 만 없었다면 말야. 그야말로 우대한 국가가 되었을껴 저게. 

 

 

 

This undertaking, lasting from 1728 to 1730, was led by the Danish captain Vitus Jonassen Bering (1681–1741), an officer in the Russian imperial navy since 1704. In the ship St. Gabriel, which had been built at the outlet of the Kamchatka River, Bering made two voyages northeast in successive years (1728 and 1729), and at one point reached 67 degrees north, from which point the coast no longer extended north. He failed to reach North America in either trip, due to adverse weather. Despite the new knowledge about the northeast coast of Siberia, Bering's report led to divisive debate, because the question of a connection with North America remained unanswered. This prompted Bering to propose a second Kamchatka expedition.  

 

비투스 베링.이 1차 탐험하고. 다시 오호츠크에 와서 큰배를 만들어. 이전 보트.로는 못간겨 저길. 그리고 다시 출발해서 저때 베링해 지나 해협 지나 축치해.를 닿고 1728년. 섬들을 발견을 하지만 북미를 못가. 알래스카.를 이때 못 만져. 북미를 확인을 못한거야. 베링.이 러시아 코트.에 2차 캄차카 탐험.을 제안을 해.

 

해서 저 두개를 다 더해서 그레이트한 북쪽 탐험.이라고도 해. 표트르대제.가 기획한.

 

 

The two Pacific divisions of the expedition, led by Martin Spangberg and Vitus Bering, left St. Petersburg in February and April 1733, while the academic group departed on August 8, 1733. 

 

배 두개로 출발해. 페테르부르크.에서. 이건 배로 가는겨. 1차는 육로로 갔던거고. 연구 학자들과 같이 간거야. 비투스 베링.과 마르틴 스판베르크. 이사람도 덴마크 사람이여. 러시아 공무원이 된. 서기 1733년.에 3월 8월 따로 출발을 해.

 

They reached Yakutsk in September 1736. Almost all the members of the two Pacific divisions of the expedition had gathered there in the meantime, and as a result, Gmelin and Müller experienced difficulties in locating accommodation. 

 

레나 강. 야쿠츠 들의 도시. 중상류.의 야쿠츠크.에서 두 배가 만난게 1736년 9월. 3년 걸린겨 저기까지 간게. 그만큼 항해가 어려운겨 저게.

 

In June 1741, the St. Peter and the St. Paul set sail from Petropavlovsk. Six days later they lost sight of each other in a thick fog, but both vessels continued to sail east.  

 

그리고는. 서기 1741년. 즉 저 이후 4년 후야. 캄차카 반도에서 출발한거야. 북미 찾으러. 저 두 배가 배링해협 지나서 여기로 오고 몇년지나서 재시작을 한거지. 이때 발견하는게 알라스카.야 이때부터 알라스카.는 러시아께 된겨. 그리고 돌아가 한 배는 러시아로 다시. 베링 배.는 풍랑 만나서 캄차카 반도의 섬에 닿고 여기서 죽어. 이 섬이 베링 섬.이 돼.

 

베링.이 처음으로 북미 서쪽을 본 사람으로 보고. 옆의 배 선장.이 처음으로 땅 밟은 사람으로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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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hail Spiridonovich Gvozdev (Russian: Михаи́л Спиридо́нович Гво́здев) (1700-04 — after 1759) was a Russian military geodesistand a commander of the expedition to northern Alaska in 1732, when the Alaskan shore was for the first time sighted by Russians.[1][2]  

 

이 전에. 1차 탐험하고. 오호츠크에 있던 해군 잔류병력이. 자기들 끼리 따로 알라스카.를 다녀온걸로도 봐. 이것도 코사크.들이 다녀온겨 알라스카 해변을. 공식적으론 안쳐. 

 

Another European contact with Alaska occurred in 1741, when Vitus Bering led an expedition for the Russian Navy aboard the St. Peter. After his crew returned to Russia with sea otter pelts judged to be the finest fur in the world, small associations of fur traders began to sail from the shores of Siberia toward the Aleutian Islands. The first permanent European settlement was founded in 1784.  

 

2차 탐험대.의 베링.들이 알라스카.를 가서. 저기의 해달.모피.가 최상품인걸 확인하고 돌아오고. 시베리아의 모피상들이 이후 알래스카 섬들과 모피거래를 하고. 서기 1784년.에 정착을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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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rait of Anián was a semi-mythical strait, documented from around 1560, that was believed by early modern cartographers to mark the boundary between North America and Asia and to permit access to a Northwest Passage from the Arctic Ocean to the Pacific. The true strait was discovered in 1728 and became known as the Bering Strait. The Strait of Anián had been generally placed nearby but sometimes appeared as far south as California  

 

저 베링해협.의 존재여부.가 베링.이 갈때까지 의문이었어 유럽에. 이론상으로는 시베리아.와 북미가 이어져 있을텐데. 두 대륙이 이어진건가 아니면 사이에 바다가 있는건가. 이걸 서기 1732년. 1741년.에 확인을 한겨. 

 

저기를 원래는. 마르코폴로.의 중국에 지명을 따서. 아니안 해협.이라고 작명을 한게 보여. 서기 1560년. 아메리카 작명한 독일 지도학자 발트제뮐러.가 저리 작명을 햇어. 2백년 만에야 이게 확인이 되고. 베링 이름따서 베링해협.으로 된건데.

 

저긴 먼저 말야. 펠리스 나비다드 할때. 바라 데 나비다드. 거 멕시코시티. 왼쪽 해변. 저런데서 코르테스.의 해군애들이 먼저 올라가 보걸랑. 얘들이 이걸 발견했다고도 하는겨. 헌데 대게 보믄 이게 지금 캘리포니아 까지나. 그 위 와싱턴 해변.으로 끽해야 보이걸랑. 

 

 

저 소식을 듣고. 그래서 스페인이 가만히 못있는거지. 야 그거 우리가 이미 코르테스 때 부터 찜한겨. 그리고 부랴부랴 막 요새도 세우려 하고. 헌데 저러면서 서기 1800년 지나고 스페인은 나폴레옹에 짜지고 거대한 가운데 미시시피강 왼쪽의 루이지애나도 나폴레옹이 미국에 팔고. 멕시코애들에게 다 뺏기고 하면서 미국이 저 알래스카를 러시아에서 사면서 끝나는건데.

 

 

저러면서 말야. 이 북동항로. The Northeast Passage (abbreviated as NEP) 는 수시로 가지만. 인도까지 가는데 경제성이 없는겨. 걍 탐험로의 의미만 가져.

 

The Vega Expedition (SwedishVegaexpeditionen) of 1878–1880, named after the SS Vega and under the leadership of SwedishFinnish explorer Adolf Erik Nordenskiöld, was the first Arctic expedition to navigate through the Northeast Passage, the sea route between Europe and Asia through the Arctic Ocean, and the first voyage to circumnavigate Eurasia.[1] Initially a troubled enterprise, the successful expedition is considered to be among the highest achievements in the history of Swedish science.    

 

베가 탐험. 19세기 말에. 핀란드 사람 아돌프 노르덴스퀠드.가 처음으로 저길로 세계일주를 해. 스웨덴 칼마르 부근에서 출발해서 2년 걸려서리 한바퀴돌아서 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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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rthwest Passage (NWP). 이 북서항로.는 이야기가 전혀 달러. 북동 북서.의 기준을. 영국으로 봐. 북극해.를 위에서 볼때 오른쪽과 왼쪽이걸랑. 어차피 관문은 베링해협.이야. 

 

지도상 보면. 저 왼쪽 허연게 허드슨만.이야. 이 만 위에가. 카나다 북부와 그린란드 사이가. 모두 자잘한 섬들이야. 허드슨 만 위의 섬이 Baffin Island  배핀섬.이야. 50만 제곱키로. 한반도 두배반.이고.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큰섬. 

 

배핀섬과 그린란드.의 사이로 가는겨. 헌데 말야. 이쪽길은 다 얼음인겨 이게. 배로 여길 못가. 그래도 여길 무수수한 인간들이 가는겨 이게.

 

저 북동항로.도 말야. 러시아가 저리 가기 전에. 바이킹때 노르족이 또한 가고. 탐험의 시대에 네덜란드 덴마크 영국 인들이 무수수한 시도를 하다가 죽거나 되돌아오걸랑. 이걸 러시아가 표트르 대제의 코트.에서 후원해서 저게 성공을 한겨. 

 

이 북서항로.도 무수수한 시도를 해. 다 실패해. 죽거나 실종되고.

 

Nunavut French: [nynavy(t)]Inuktitut syllabics ᓄᓇᕗᑦ [ˈnunavut]) is the newest, largest, and most northerly territory of Canada. It was separated officially from the Northwest Territories on April 1, 1999, via the Nunavut Act[9] and the Nunavut Land Claims Agreement Act,[10] though the boundaries had been drawn in 1993. The creation of Nunavut resulted in the first major change to Canada's political map since incorporating the province of Newfoundland in 1949.

 

캐나다.는 행정구역.이 10개의 프라빈스(주).와 3개의 테리토리.여. 퀘벡과 오른쪽 대서양 마리팀 네개 주들.과 왼쪽 아래 다섯개 주들.이 프로빈스.고 허드슨만 옆에 북부.가 세개의 테리토리.야. 누나부트. NU. 노쓰웨스트 NW. 유콘 YK. 

 

이 누나부트. 테리토리.가 2백만 제곱키로의 땅이야. 허드슨만 왼쪽. 배핀섬까지. 여기가 자잘한 섬들이지만. 이곳이 얼음들이걸랑. 여길 통과하는걸 못하는겨.

 

Franklin's lost expedition was a British voyage of Arctic exploration led by Captain Sir John Franklin that departed England in 1845 aboard two ships, HMS Erebus and HMS Terror. A Royal Navy officer and experienced explorer, Franklin had served on three previous Arctic expeditions, the latter two as commanding officer. His fourth and last, undertaken when he was 59, was meant to traverse the last unnavigated section of the Northwest Passage. After a few early fatalities, the two ships became icebound in Victoria Strait near King William Island in the Canadian Arctic, in what is today the territory of Nunavut. The entire expedition, comprising 129 men, including Franklin, was lost.[2]  

 

영국의 존 프랭클린.이 영국 해군 장교야. 나이 60 되서리. 배 두척.에 129명 선원 데리고 저길 간겨. 서기 1845년.에. 이들이 모두 실종이 돼. 영국에 아주 충격인거야 이건. 이미 북동항로 베링이 개척하고 백년이 지난겨. 이들은 여길 가는게 베링해협말고 더 빠른 길 있나 찾으러 가는거걸랑. 

 

사람들이 저 프랭클린들 찾으러 떠나는겨 또.

 

Sir Robert John Le Mesurier McClure CB (28 January 1807 – 17 October 1873) was an Irish explorer of the Arctic who in 1854 traversed the Northwest Passage by boat and sledge and was the first to circumnavigate the Americas 

 

After he returned from the first Franklin search expedition, a new search expedition was launched in 1850, commanded by Richard Collinson on HMS Enterprise and McClure as his subordinate, given command of HMS Investigator. The ships sailed south on the Atlantic, navigated through the Strait of Magellan to the Pacific Ocean assisted by the steam-sloop HMS Gorgon. Collinson and McClure became separated and had no further contact for the rest of their respective journeys.

Investigator sailed north through the Pacific and entered the Arctic Ocean by way of Bering Strait, and sailing eastward past Point BarrowAlaska, to eventually link up with another British expedition from the northwest. 'Investigator was abandoned to the pack ice in the spring of 1853. McClure and his crew undertook a sledge journey and were rescued when they happened upon a party from HMS Resolute—one of the ships commanded by Sir Edward Belcher, who sailed into the Arctic region from the east. Subsequently, he completed his journey across the Northwest PassageResolute itself did not make it out of the Arctic that year; it was abandoned in ice, but later recovered.  

 

존 맥클루어. 아일랜드 인간이야. 서기 1854년.에 최초.로 저 북서항로.를 통과를 해서 영국에 와. 

 

실종된 프랭클린들 찾으러 갔다가 돌아와. 저길은 안돼. 마젤란 갔던 남미아래로 해서리 배링해협으로 들어가는겨. 이미 백년 전에 여긴 러시아때문에 알아. 즉 저기는 배타고 지나갈수가 있는겨. 헌데 그다음부터 는. 얼음땜에 못가. 여기가 뱅크스 섬. 누나부트 왼쪽의 노쓰웨스트.의 섬이야. 배를 버리고 썰매로 가는겨. 서기 1850년 출발해서 저기간게 서기 1853년.이야. 여기서 우연히 반대편에서 오는 에드워드 벨처.와 만난거야.

 

에드워드 벨처.는 저때 여름이걸랑. 저기까지 탐사대가 온거야. 맥클루어.와 만나고 같이 가다가. 도저히 맥클루어.가 왔던 길을 못뚫어. 다시 갇히는겨 얼음에. 맥클루어랑 같이 돌아오는겨. 맥클루어.가 그래서 최초로 저 북서항로.를 통과한 사람으로 봐. 배를 버렸다고 기소도 당하다가 정상참작되고 오히려 영웅대접받는겨.

 

Roald Engelbregt Gravning Amundsen (UK/ˈɑːmʊndsən/US/-məns-/;[2][3][needs Norwegian IPA] 16 July 1872 – c. 18 June 1928) was a Norwegian explorer of polar regions and a key figure of the Heroic Age of Antarctic Exploration. He led the first expedition to traverse the Northwest Passage in 1906 and the first expedition to the South Pole in 1911. He led the first expedition proven to have reached the North Pole in 1926.[4][5] He disappeared while taking part in a rescue mission for the airship Italia in 1928.  

 

저 북서항로.를 최초로 자력으로 통과한 사람은 그래서 로알 아문센.이 되는겨. 서기 1903년에 출발해서. 저길 지나간거야. 서기 1905년 12월에 알라스카.에 닿아서리 타전을 한겨 자기나라 노르웨이에. 헌데 저 해 이미 6월에 노르웨이.가 스웨덴에서 나와서 독립을 한겨. 이 노르웨이.가 덴마크.에 스웨덴.에 유니온 이라지만 크누트. 아니 카누트 부터 해서리 9백년 만에야 제대로 저때 독립을 한겨. 그리고 나서리 바로 아문센.이 저 축전을 보낸거고. 노르웨이.에게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었던거고. 아문센은 당연히 저런걸 나중에 와서야 아는겨.

 

 

저 북서항로.는 저렇게 20세기.와서야 뚫린거야.

 

MS Nordic Orion is a Danish bulk carrier registered in Panama City. A coal and ore carrier, Nordic Orion has a capacity of 75,603 tonnes deadweight (DWT). It was built in 2011 by Oshima ShipbuildingNordic Orion has an ice-strengthenedhull[2], and it is notable for being the first large sea freighter to transit the Arctic Northwest Passage.[3][4][5][6] It is owned and operated by Nordic Bulk Carriers.[3]  

 

노르딕 오리온 호. 덴마크 벌크선.인데. 서기 2011년.에 캐나다 벤쿠버. 서쪽해변이야. 여기서 핀란드로 가는 석탄 벌크.를 북서항로.를 이용한겨. 

 

Nordic Orion started its voyage from the Port Metro VancouverCanada on 6 September 2013 carrying a cargo of 73,500 tons of coking coal.[7] The ship completed its voyage through the passage on 27 September stopping at NuukGreenland[2] and reached its destination, the Port of PoriFinland on 9 October 2013  

 

9월 6일에 출발해서 10월 9일. 한달 걸려서 핀란드에 간거야. 이 항로는 아주 최고의 항로야. 배가 드레드웨이트. 총 실을 수 있는 화물량.이 큰거야 이게. 선적무게가 크다는건 그만큼 얼음을 깨고 나갈 힘이 있다는거지. 아주 획기적 항로가 된겨. 중국에서 가장 눈독들이는 항로가 돼 이때부터.

 

환경님들은 얼음 다 깨부셔서. 저 적폐놈들 하는거고.

 

 

저 북서항로 북동항로.가 탐험이 되고 해안선이 그려질때까지 무수한 유럽 인간들이 죽은겨.

 

아 쟤들 말야  엄청난 인간들이야.

 

쟤들 저럴때. 이 위대한 조선 오뱅년은. 말을 말자 말을 말어. 이 핏줄이 지금도 여전한거고.

 

걍 가만히 그리 이념놀이나 쳐 해대면서. 서로 죽이고 죽으면서. 걍 없어져라 이 조선. 대가리가 깨져도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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