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

 

결국 말야. 민주화 라는 것의 결과물.은 조선이었던거지. 

 

원붕이 이야기도. 일본보다는 조선이란거야. 

 

원붕이들이 남조선을 쳐내려와서 인민놀이하면서 수만을 인민재판으로 쳐죽이고. 수십만을 쳐죽인건.

 

친일 적폐를 쳐죽여서리 괜찮다는 건가. 으문이 드네 그랴.

 

일본짓은 사과하라. 원붕이는 일본들에 반대했으니 평가해라. 비록 일본적폐때메 생긴 부작용이니라

 

자기들 말에 시비거는건 가짜뉴스니라 아가리 닥쳐라

 

적폐에겐 자유가 없나니 우리 조선인에게만 자유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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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심리가 재민는건데. 조선아이가 청나라 홍타이지 대관식가서도 에헴뻣대걸랑. 참 싀안한거걸랑 저런 허영심이란게.

 

왜 저리 일본 열폭질이 심하냐면 말야. 조선오뱅년 애들이. 자기들의 소중화라며 공자의 직계라며 기자조선을 이은 주나라를 떠받드는 진짜 문명인이란 자부심이 오뱅년이걸랑. 태종은 삽혈동맹으로 피나눠마시며 맹세를해. 자식은 유부녀 강간을 해대. 저따위의 글판이 떡하니 지금도 걸려있고. 

 

이건 머 하나부터 열까지. 그야말로 야만의 극치인데.

 

아 헌데 말야. 왜놈 일본에게 당한겨 삼사십년을. 갈리아는 사백년을 지배당하고 이베리아반도는 팔백년을 무슬림에 당했어도. 저따위 열폭질은 없는데 말야.

 

 

위대하고 위대하신 그야말로 세상의 최고 의 조선 의 선비님들이. 그야말로 오랑캐. 일본.에게 당한겨. 

 

주작질한 허영이 이게 어마어마한 자부심을 만들어. 헌데 실재가 없으니 저따위 자부심을 떠받드는 힘은 공허할 뿐이걸랑. 저기에 대한 반동으로 일본에 대한 분노가 삼사십년을 지수화되서리 오히려 저 오백년 팔백년의 마음보다 수백배 커진거야. 완전한 감정의 주작질인데 저게. 이 열폭질이란게 자기반성없는 열폭질이 이게 싸이키를 죽이면서 그 생명과 그 집단을 퇴화시키는거걸랑. 

 

조선이냐 일본냐.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겨. 이 조선이 지금 저 북조선.으로 재탄생한것일 뿐이고.

 

북조선에 살래 일본에 살래. 이런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다고 쳐.

 

넌. 너는. 어디가서 살래? 죽을 수도 없어. 꼭 북조선 아니면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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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말야. 자기가 알아. 너의 깊은 무의식은 알아. 

 

물론. 자기 탐색 없는. 잣대가 허섭한 애들에겐. 말도 안되는 질문이냐며. 

 

 

다 거짓이고 다 허상이야 저딴 짓은. 

 

이제서야 역사의 순리대로 가는거야 저게. 너무 빨리왔걸랑 이 땅은. 문명의 땅이, 세계에서 그나마 앞선던 서기 1100년전의 문명이. 조선이란 오뱅년의 지독한 야만으로 지워지고 야만 그자체가 되버린 땅이 갑자기 로마를 덮어씌웠어 이게.

 

이 부작용이야 지금은. 

 

중남미 애들처럼. 아프리카애들처럼. 순리대로 가야되는거지. 저렇게들 서로 죽이고 죽이면서. 다시 시작하는거야 답없는. 과연 유럽중세천년의 과정을 익힐수나 있을까.

 

 

아이들이 정말 불쌍해 이땅 아이들이. 

 

쟤들은 대체 뭔 잘못이 있길래 저따위 이념놀이 땅빠닥에서 살아가야 하니 그래. 

 

저따위 열등감에 쩌들은 어른애들 때메, 왜 백지상태의 아이들이 야만의 세월을 살아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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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땅의 시작을 보면. 

 

The Salian Franks, also called the Salians (LatinSaliiGreek: Σάλιοι Salioi), were a northwestern subgroup of the earliest Franks who first appear in the historical records in the third century. 

 

프랑크.라는 말이 3세기.에 등장하는 말이야. 살리안.이란 말도 이때 같이 등장해.

 

프랑크.를 두 개로 나누는겨. 살리안 프랑크.와 리푸아리안 프랑크. 프랑크.란 말이 전체집합이야. 살리안.이 프랑크의 부분인겨. 이 두 부족을 나누는건 뫼즈 강 Meuse 이야. 뫼즈강이 베르됭 지나고 우상향 벨기에 지나서리 라인 하류에 닿을때 이 안쪽이야. 뫼즈강 바깥쪽애들이 리푸아리안 프랑크야. 해서 얼핏보면 동과 서로 보이는겨.

 

 

Like the other Franks in this period, the Salian Franks were a Germanic people living near the river Rhine, which had long been a militarised border. The Salians, unlike other Franks, first appear living inside the Roman Empire, living in the Rhine delta in the modern Netherlands. In modern works they are frequently contrasted with their neighbours to the east, known as the Rhineland or Ripuarian Franks, who eventually held the Roman city of Cologne, in modern Germany.  

 

이들 프랑크.는 3세기 로마때 로마 경계선 안쪽에 있던겨. 즉 로마를 알어. 살리안은 라인강 하류쪽에 있던거고 리푸아리안.은 라인강 중류쪽에 있던겨. 쾰른.에 닿아서 살았단거고. 해서 이들 중심지역이 벨기에.와 그 부근인거야. 

 

살리안.과 리푸아리안.이란 프랑크.는 더 오른쪽 아이셀강.에서 넘어온걸로 봐. 이 오른쪽에 작센.이 있었던거고. 

 

아이셀강.에서 서남진 하면서 라인강 건너서 로마 안에 있다가. 프랑크 킹덤.을 세운거야. 서로마 망하고. 메로빈지언.의 시작이야. 

 

이들이 아우스트리아. Austrasia (동쪽땅) 뉴스트라시아 네우스트리아 Neustria(서쪽땅) 으로 행정구역 정하면서 넓히는겨. 그러면서 서쪽의 켈트(갈리아)와 동쪽의 게르만을 점령하면서 봉건주의.를 시작해. 땅을 주고 임대차계약 맺으면서 더치령.으로 가는겨.

 

stem duchy (GermanStammesherzogtum, from Stamm, meaning "tribe", in reference to the Germanic tribes of the FranksSaxonsBavarians and Swabians) was a constituent duchy of the Kingdom of Germany at the time of the extinction of the Carolingian dynasty (the death of Louis the Child in 911) and through the transitional period leading to the formation of the Holy Roman Empire later in the 10th century.  

 

스템 더치. 줄기 공국령. 독일땅.의 더치.가 서기 911년. 10세기 시작에. 지역으로 구분을 해. 로타링기아 스와비아(슈바벤) 바바리아 작센 프랑코니아. 이 다섯지역.에 게르만 부족.이 크게보면 프랑크. 작센. 바바리안. 스와비안. 이 네부족이란거지. 

 

샤를마뉴 손자 삼형제가 땅 나누고. 이 동쪽은 장남 로타르.의 마지막 핏줄이 루이 더 차일드.여. 둘째 루이 더 게르만.의 핏줄도 끊긴겨. 왼쪽의 대머리샤를.의 핏줄도 끊겨. 해서 왼쪽은 카페.애들이 들어서고. 

 

 

서기 911년을 기준으로 스템 더치 stem duchy 의 지배 집안들이 바뀌는거야. 

 

뚱땡이 샤를(샤를3세).이 경건루이.다음으로 다시 동서를 합친 진짜 황제가 되지만. 이 사람때 바이킹 롤로.가 파리를 포위하는겨. 얘때 노르망디.를 주고 평화를 구걸한거걸랑. 또 정부인이 자식없이 죽고 애인 자식을 후계자로 두려는겨. 얜 배스타드.걸랑. 샤를을 내 쫓고 이탈리아 스폴레토의 기 guy 가 황제를 해. 다음에 샤를의 방계 루이 더 차일드.의 아빠가 황제자릴 되찾고. 이 황제자리는 프로방스.의 보소.에게 가는겨. 루이 더 차일드.는 그냥 게르만의 킹. 자리에서. 원래가 카린티아 공작이걸랑. 카린티아. 하면 걍 오스트리아의 남부야. 카르니올라.와 헷갈리믄 안돼 카르니올라.는 훨 나중에야 마크에 공국이 되는 베네치아 동쪽 해변이야. 루이 더 차일드.때 오는애들이 헝가리 마갸르족 이걸랑. 얘들 막다가 죽으면서 찰스 자식들인 카롤링거.가 막을 내리는건데.

 

저러면서 황제 대공위 시대가 오는겨. 저걸 정리한게 작센의 오토1세 황제야.

 

작센의 오토1세.가 다시 재정벌하면서. five stem duchy 다섯 종족 공작령.이 피갈이를 하는겨. 해서 이전.을 older 올더. 이후를 younger 영거. 구부족 신부족.으로 나눠. 

 

 

프랑크 킹덤부터는. 리푸아리안프랑크 살리안프랑크 는 지워지는겨. 걍 둘다 프랑크야. 

 

작센.은 프랑크 킹덤 말기에야 소피핀 아빠 카를마르텔.이 프랑크 킹덤.의 코티즌. 코트의 행정관료 자격으로 정벌을 시작한거야. 작센은 이때 프랑크.에 하미지 하는거고. 아들 샤를마뉴.때 다 통일을 하고 정식 황제관 서기800년에 쓰고 다시 분열한걸 아들 경건루이.와 삼형제자식들이 같이 다시 재통일하다가 루이 죽고 삼형제가 나누고. 루이 더 차일드.때 찰스 자식들이 사라진건데.

 

작센족의 오토1세 황제.가 서기 962년. 저 전국시대를 다시 점령을 한겨. 이때 다섯 더치.가 신구세력이 바뀌는거야. 

 

1.

프랑코니아.는 

 

The Conradines or Conradiner were a dynasty of Franconian counts and dukes in the 8th to 11th Century, named after Duke Conrad the Elder and his son King Conrad I of Germany.  

 

콘라드.들이야. 시작이. 여긴 샤를마뉴 이후에 들어온겨. 프랑크족.이 직접 듀크.가 돼. 그리고 오토1세.가 재점령하면서 여긴 자잘하게 쪼개. 여기에 마인츠. 슈파이어. 보름. 헤쎄. 투링기아 서부.가 있어. 여기가 라인강에 마인강 접하는 곳으로 라인 팔라틴.의 도시들 세력이 되는거야.  

 

오토 1세 황제.가 자기딸을 이 프랑코니아.의 콘라드.와 결혼을 시키는겨. 이 콘라드.들은 작센 오토에 하미지.를 하고 저 쪼개진 도시들의 로어드.로 또한 지내는거고.

 

Werner V (c. 899 – c. 935) was a Rhenish Franconian count in the NahegauSpeyergau and Wormsgau. He is one of the earliest documented ancestors of the Salian dynasty that provided German kings (Kings of the Romans) and Holy Roman Emperors from 1024 to 1125.

Werner's origins have not been conclusively established: his ancestor presumably was Werner IV (also called Walaho), who appeared as a count in the Wormsgau about 840 and was married to Oda, a daughter of the Robertian count Robert III of Worms.  

 

베르너5세.가 살리안 가문.의 시작이야. 예전 살리안 프랑크.의 살리안이야. 이사람 부인이. 로베르.들이야. 로베르.들은 프랑크 킹덤에서 코트 귀족들이여. 이 로베르의 핏줄이 프랑스땅 카페.를 여는 위그대제.여. 베르너5세의 부인.의 핏줄직계가 위그카페들이 되는겨. 이사람 아들이 콘라드 더 레드.야. 이 레드 콘라드.가 오토1세의 딸과 결혼하면서 로렌 공작.이 돼. 이사람이 일찍 죽으면서 로렌 공작령이 오토의 동생 부르노.에게 갔다가 저지대 고지대 로렌.으로 나뉘는거고.

 

이 레드 콘라드.와 오토딸.의 자식이. 오토의 작센 4대황제하고 끊겨서 다음 황제하는 콘라트2세.여. 살리안 조.를 가는거야. 작센의 오토.에 하미지 하고 결혼으로 결합했다가 이들이 작센을 이어서 살리안 프랑크.가 다시 잡는거야.

 

 

작센족.은 원래부터 아이셀강.을 사이에 두고서 프랑크.와는 웬수여. 이 프랑크가 아이셀넘고 라인강 넘어서 로마시대를 산거야.

 

그리곤 프랑크.가 킹덤하고. 말에 여기에 하미지 하면서 들어갔다가 오토때 프랑크를 먹은거걸랑. 그러다가 다시 결혼으로 또 프랑크.에게 넘긴겨. 작센.족이 이게 용납이 안되는겨. 작센족이 다시 반란을 하는거야 살리안 조.에.

 

이때가 하인리히4세 황제때야. 카놋사의 길. 교황에 눈빨속 무릎꿇은게 저 작센애들때문에 위태위태하걸랑. 다시 저 작센을 재점령하고 로마 다시가서 교황 감금하고 새교황내세워서 대관하고 간겨 살리안의 하인리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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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랑코니아 지역의 프랑크였던 콘라드들의 살리안 조.는 역시 4대 황제.하고는 역사에서 사라지는겨. 프랑크라는 이름과 함께. 프랑코니아 지역 대부분.이 바바리아 땅이 되는거고.

 

서쪽에서는 프랑크가 대머리샤를.의 자식들이 이어받은 프랑크였다가. 위그대제의 자식인 위그카페.의 카페들.이 로베르.들이었걸랑. 프랑크 킹덤때 귀족. 이들이 카페 이후 계속 근대까지 왔던거야. 프랑스.는 프랑크.의 나라였어 그래서 프랑스.란 이름이 아주 정확한겨. 독일땅은 살리안.을 마지막으로 사라진거고. 독일땅은 그럼 누가 어느 게르만 민족이 지배를 한건가.

 

 

 

 

2. 

스와비아(슈바벤)은 알레마니 Alemanni 게르만들이 지배하면서 프랑크에 하미지를 해. 듀크.도 받아. 같은 이름 콘라드 Conrad 가 나오는데. 이 콘라드.는 저 프랑코니아 콘라드 들이 아냐. 오토1세 황제가 이름만 준거야. 얘들이 누군지 몰라. 이들이 오토때 30년 해. 982-1012

 

그리고. House of Babenberg. 바벤베르크 가문.이야. 여긴 Bamberg 밤베르크. 프랑코니아 지역이 시작이야. 지금 바바리아 땅이야. 바벤베르크 가문이 1012-1038 20여년 하다가 자잘하게 쪼개지는겨. 이 슈바벤 지역은 로마때 게르마니쿠스 리멘스.라는 장벽이 있던 검은숲 지역이야. 여기가 독일땅에서 가장 이상한 지역이 돼. 이전 농민전쟁 썰. 자잘한 주교령에 수도원령에 영주들이 산재한 곳이야. 헌데 또한 독일은 이 땅 인간들이 만든거걸랑. 여기가 독일땅의 카오스의 에너지를 생산해냈던 것인거지 후대와서 보면.

 

바벤베르크. 가문이 만든게 오스트리아.여 

 

Leopold I (also Luitpold; c. 940 – 10 July 994), known as the Illustrious (Germander Erlauchte), a member of the House of Babenberg, was Margrave of Austria from 976 until his death.[1] He was the first margrave of the Babenberg dynasty which ruled the March and Duchy of Austria until its extinction in 1246.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1세. 서기 976년.에 오스트리아 후작.이 처음 되는겨. 이사람 자식들이 짧게 저 슈바벤 지역의 듀크.를 했던거야. 서기 1246년까지 270년.간을 오스트리아를 지배해. 그러면서 또한 바바리아.도 잠깐 같이 듀크.를 했던거고. 

 

오스트리아.는 저 바벤베르크 가문 때에 듀크. 공작의 공작령이 되고. 이 가문이 끊겨서 후계자 전쟁때 스위스땅의 합스부르크 루돌프.가 저길 먹으면서 오스트리아 공작.이 되고 1278년. 백년 후에 대공작령이 되는건데. 그러면서 합스부르크 세상이 되고. 이 바벤베르크 가문도 역사에서 사라져.

 

 

바벤베르크.는 로베르들. 즉 프랑크 코트 사람들의 후손 또는 바바리안. 즉 바바리아땅의 게르만부족 후손으로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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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벤.에서 바벤베르크.가 3대 20년 짧게 하고. 이후 60년을 6개 가문이 듀크를 나눠서 하는겨. 그리고 가문을 이룬게 호헨슈타우펜 가문이야. 

 

Frederick I (c. 1050 – before 21 July 1105) was Duke of Swabia from 1079 to his death, the first ruler from the House of Hohenstaufen (Staufer).  

 

호헨슈타우펜 가문.을 만든 사람이 슈바벤 공작 프리드리히1세. 이전에 이지역 카운트 백작의 자식이야. 이사람 부인이 당시 살리안 조. 황제가문의 여자야. 

 

 

 

장미의 전쟁.이란게. 서기 1327년 무대인데. 저사람이 공작이 되는게 1079년. 저때가 하인리히4세. 카놋사 로드.가 1077년. 한창 교황이랑 세속권력으로 역시나 전쟁할때야. 서임권을 핑게로. 이게 1327년 아비뇽 교황정인 250년간 계속하는겨 이게. 이건 오토1세 이후부터 계속되어왔던거고. 교황과 황제의 전쟁은 아주 중세 천년 지긋지긋한겨 이게. 

 

황제.도 권력 자체가 불안한거야. 교황.이란 권력이 막강한겨. 영주들이 세속권력전쟁을 교황 과 같이 하는겨. 교황 대 안티교황.이 있듯이. 킹 대 안티킹.이 있는겨. 이걸로 세속의 권력이 바뀌면서 또한 가문들이 갈리는거야. 저 슈바벤.이 특히나 저기에 휘둘린겨. 저때 슈바벤 공작 프리드리히1세.가 하인리히4세 편을 들면서. 이들이 작센족 반란을 진압하고 이사람이 공작.에 오르고. 호헨슈타우펜 가문.을 창립을 한거야. 이들이 살리안 조.가 끊기고 호헨슈타우펜의 황제를 삼대.에 걸쳐 하는겨 붉은수염 1세.와 아들 하인리히 6세.에 이아들 프리드리히2세 황제.

 

 

이 호헨슈타우펜 가문이. 기벨리니.가 되서리. 바바리아의 벨프 가문.인 괼피.와 권력 다툼을 하는게 괼피 기벨리니.의 시작이야. 여기서 괼피가 지고. 이 진 괼피가 교황과 손잡고 기벨리니랑 전쟁하는게 이탈리아의 괼피 기벨리니 내전에 프랑스 앙주 샤를이 내려오면서 나폴리를 먹는겨.

 

 

중세 하이미디벌 절정.은 저시대에 저 괼피 기벨리니에서 나오는거야.

 

신곡의 단테.가 저 현장 한 가운데에 있는겨. 그리고 쓴게 신곡 이야. 서기 1300년 이야기여.

 

괼피 기벨리니 내전 중에 레반트 아코 함락이야. 레반트 십자군 200년이 끝났어. 교황이 프랑스 코트애들에게 싸다구를 맞아. 그리고 아비뇽교황정이야. 단테 신곡 직후여.

 

템플 기사단. 오백여명을 체포하고 수십명 고문해서 죽고 기사단장 자크 드몰레 화형시키는게 저 직후여. 푸코의 진자. 이야기의 시작이야. 모~든 저 이후 컬트이야기의 원조님이야 템플러 성전 기사단이.

 

장미의 이름 서기 1327년.이 저때 이야기야. 이단놀이가 아주 극성할 때야. 프로테스탄트들의 마녀사냥 이전의 마녀사냥 시작이 저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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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샜고.

 

호헨슈타우펜 가문이. 프리드리히2세 황제 죽고. 슈바벤 공작도 곧 내려오고. 이 슈바벤(스와비아)은 이후 걍 끝까지 자잘한 주교령에 수도원령에 백작령들로 산재하면서 프러시아 킹덤까지 온겨.

 

 

3. 

바바리아. 여긴 이전 썰 보이이. Boii 라는 갈리아(켈트) 땅이여. 오른쪽 위 보헤미아의 숲.에서 온듯하고. 이들은 여기 걍 계속 있다가 여기에 다양한 게르만 부족들이 와서 같이 섞여 살은거야. 프랑스랑 비슷한겨 냄새가. 보헤미아.나 바바리아.나 어원이 저 보이이.에 있어.

 

Garibald I (also GarivaldLatinGaribaldus; born 540) was Duke (or King) of Bavaria from 555 until 591.[1] He was the head of the Agilolfings, and the ancestor of the Bavarian dynasty that ruled the Kingdom of the Lombards

 

여긴 시작이 가리발트1세. 서기 555년. 아기롤핑.조.를 시작해. 이사람은 프랑크.는 아니고 다른 게르만부족으로 보고 프랑크에 저리 하미지 한걸로 봐.

 

The Agilolfings were a noble family that ruled the Duchy of Bavaria on behalf of their Merovingian suzerains from about 550 until 788. A cadet branch of the Agilolfings also ruled the Kingdom of the Lombards intermittently from 616 to 712. They are mentioned as the leading dynasty in the Lex Baiuvariorum (c. 743). Their Bavarian residence was at Regensburg

 

이들이 230년 바바리아 공작.을 하다가. 샤를마뉴. 찰스들이 직접 지배해. 공작겸임하면서. 루이 더 차일드.에 끝나고. 작센 오토들.에 갔다가 살리안조.가 또한 직접 지배하고. 이게 벨프.로 가는겨.

 

The Elder House of Welf (known as Rudolphins in Burgundy)[1][2] was a Frankish noble dynasty of European rulers documented since the 9th century. Closely related to the Carolingian dynasty, it consisted of a Burgundian and a Swabiangroup. It has not been definitively clarified, however, whether the two groups formed one dynasty or whether they shared the same name by coincidence only. While the Elder House became extinct in the male line with the death of Duke Welf of Carinthia in 1055, his sister Kunigunde married into the Italian House of Este and became the ancestor of the (Younger) House of Welf.  

 

 Welf IV was the son of Welf III's sister Kunigunde of Altdorf and her husband Albert Azzo II, Margrave of Milan. In 1070, Welf IV became duke of Bavaria.  

 

이 벨프.는 구벨프.와 그냥 벨프.로 나눠. 이들은 부르고뉴.와 스와비안.이 혼합된 게르만이야. 9세기에 시작해서 카린티아 공작.을 끝으로 서기 1055년.에 한번 가문이 죽었어. 이 벨프(괼피)가 역사가 깊어. 대머리 샤를 죽고 프랑스 남부에 고지대 저지대 부르코뉴 킹덤이 루돌프.와 보소.로 세워질때 루돌프.가 이 벨프(괼피)가문이야. 부르고뉴 백작령의 조상님이셔 이 부르고뉴 괼피가. 구벨프가 끊기고 여기 딸.이 이태리 에스테 가문.에 시집가서 신벨프. 진짜 괼피가문.을 만든겨. 여자 핏줄로. 에스테 가문.의 방계야. 

 

에스테 가문이. 15세기 되면 페라라 모데나 레쬬.의 로어드에 공작 승격도 되고. 체사레 보르자 여동생이 시집도 가는 그 에스테여. 이 에스테 가문.도 에드워드기본.은 로마에서 이사온 사람들로 보는데 현대 사가들은 그리 안봐. 걍 프랑크로 봐. 즉 벨프.도 걍 프랑크 남자집안에 독일땅 고지대 게르만인 게르만이여.

 

Welf I (c. 1030/40 – died 6 November 1101, PaphosCyprus) was Duke of Bavaria from 1070 to 1077 and from 1096 to his death. He was the first member of the Welf branch of the House of Este. In the genealogy of the Elder House of Welf he is counted as Welf IV.  

 

(신)벨프.의 시작이 바바리아의 벨프1세. 다음 벨프2세.이어 두아들이 듀크.를 하고. 살리안 조. 다음 황제 경쟁에 패해서 바바리아 공작.을 뺏겨. 호헨슈타우펜.과의 전쟁에서. 호헨슈타우펜이 저 공작령을 오스트리아의 바벤베르크 레오폴트.에게 준거야. 이걸 다시 호헨슈타우펜의 프리드리히1세 황제.가 돌려주는겨 벨프의 사자공 헨리에게. 헌데 이 둘이 싸우는겨. 괼피 기벨리니.의 1차전 2차전.이 저리 생긴거야. 이태리가서 3차전하는거고.

 

The Siege of Weinsberg took place in Weinsberg, in the modern state of Baden-WurttemburgGermany, which was then part of the Holy Roman Empire. The siege was a decisive battle between two dynasties, the Welfs and the Hohenstaufen. The Welfs for the first time changed their war cry from "Kyrie Eleison" to their party cries.[4][5] The Hohenstaufen used the 'Strike for Gibbelins' war cry  

 

바인스베르크 포위. 여기가 지금 바덴뷔르템부르크. 예전 스와비아.의 지금 스테이트. 주 이름이야. 살라딘 4대 끝나고 로타르2세 죽고. 황제경쟁을 벨프.와 호헨슈타우펜.이 하는겨. 바바리아와 스와비아가. 

 

벨프.들은 원래 전쟁 함성이 퀴리 엘레손. 영어 퀴어리 일레이선. 퀴리오스.여 신이시여 자비를 주소서. lord, have mercy. 에서 자기들 이름 벨프.로 바꿨다. 호헨슈타우펜은 Waiblingen 바이블링엔. 바인스베르크 전투 근처여. 다 슈바벤 지역들이야. 바이블링엔.이 이탈리아로 가서 기벨리니.가 된거야. 서기 1140년 12월. 저 전투.가 괼피 기벨리니.의 시작이야. 이때 상대가. 바바리아는 존심 헨리.(Henry the Proud) 이고. 스와비아 호헨슈타우팬은 콘라트 3세.여. 

 

 

 

Lothair II or Lothair III[a] (before 9 June 1075 – 4 December 1137), known as Lothair of Supplinburg, was Holy Roman Emperor from 1133 until his death. 

 

오토 4대. 살리안 4대. 죽고. 황제 오른이가 수플링부르크.의 로타르. 4년 재임. 작센 오토.의 먼 자식이여. 이사람의 유일한 딸.이 바바리아의 존심 헨리(하인리히)에게 시집을 가. 작센 공작령을 이 여자로해서 바바리아.가 갖고 가는거야. 

 

로타르.가 죽고. 사위가 황제를 오르는걸. 공작들이 반대하고 선거로 뽑은게 호헨슈타우펜.의 콘라트3세. 콘라트.가 작센.을 아스카니아 가문.에게 주겠다고 해. 이들이 합세해서 공격을 하는겨. 이겨. 

 

Exasperated at the heroic defence of Welfs, Conrad III had resolved to destroy Weinsberg and imprison its defenders.[7]However he suspended the final assault after a surrender was negotiated, in which the women were granted the right to leave with whatever they could carry on their shoulders.

Together the women left their possessions, and lifting their husbands onto their shoulders, headed out of town. When the king, or emperor, saw what was happening he laughed and accepted the women's clever trick, saying that a king should always stand by his word.[8] This story became known as the "Loyal Wives of Weinsberg"  

 

여기서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 콘라트.가 바인스베르크.를 파괴하려해. 성안의 여자들에게 선택권을 줘. 여자들이여 당신들이 어깨위에 짊어지고 나오는 건 뭐든 당신들 꺼다. 여자들이 모든 재산을 다 버리고 자기들 남편들을 짊어지고 나온겨. 콘라트.가 웃으면서 자기 약속을 지켜. 바인스베르크.의 충절의 부인들. 이게 소설과 영화로 뒤에 나와.

 

 

 

괼피와 기벨리니.가 로타르 황제 죽고. 1137년. 이들이 십년 이상을 싸우는거야. 존심 헨리.도 죽고. 이 아들이 유명한 사자공 헨리.여. 콘라트.가 계속 얘도 상대하는겨. 작센을 받은 아스카니아 가문 곰 알베르트.도 작센에서 쫓겨나고 사자공 헨리.가 작센을 되찾아. 바바리아.는 뺏아서 오스트리아의 바벤베르크 가문.에 준거여. 이것도 사자공 헨리.가 나중에 프리드리히1세 황제 한테서 다시 받아. 즉 사자공 헨리.가 작센에 바바리아 공작 까지 받는겨. 

 

 

콘라트3세.는 벨프.랑 전쟁하다가 . 십자군 2차.에 가. 여기서 개고생하고 다시 오고. 황제관은 못써. 로마가서 황제관 안쓰면 황제가 아녀. 조카. 즉 형의 아들.인 붉은수염 프리드리히1세.가 황제가 되는겨. 호헨슈타우펜 가문이. 그리고 벨프.랑 화해할라고 이사람이 사자공 헨리.에게 바바리아.를 다시 준거야. 

 

붉은수염 바바로사 프리드리히가. 롬바드리아 자잘자잘한걸 점령길에 사자공 헨리에게 지원요청을 해. 얜 이때 이걸 쌩까고 예루살렘 순례길에 다녀와. 바바로사.가 실패하고 돌아와서리 사자공 헨리.가 괘씸한거야. 저거 은혜 모르는. 사자공의 작센땅 넓힌걸 다 뺏고 바바리아에서도 쫓아내. 아웃로. 무법자로 선언하고. 괼피 기벨리니.가 2차 전쟁하는겨 독일땅에서. 결국 조약맺지만 헨리는 거의 모든 땅을 다 뺏기고 죽어. 

 

벨프가문이 저때 끝난겨 작센.과 바바리아 에서. 작센.은 아스카니아 가문이 갖고가고. 바바리아.는 비텔스바흐 가문이 갖고 가는겨. 

 

 

괼피 기벨리니.가 콘라트3세 대 존심헨리 부자 십여년.에 다음 바바로사와 사자공 헨리.로 두번을 저기서 하고. 이게 바바로사 손자 2세황제.때에 이탈리아에서 아주 본격적으로 괼피 기벨리니 내전을 한거야. 뜬굼없이.

 

 

 

House of Wittelsbach. 서기 1180년 부터. 20세기 초까지. 바바리아.는 이 비텔스바흐 가문이 7백년 이상을 갖고간겨. 뮌헨.이 다뉴브 강 아래여. 로마.경험이 있는 독일은 이들이 중심을 잡아준거야. 1250년에서 1500년 250년을 잠시 쪼개지다 다시 뭉쳤어. 유일해 이런건. 이 바바리아.의 비텔스바흐.가 독일땅 정체성의 핵인거야.

 

호헨슈타우펜.의 여자 피가 저리 들어가. 슈바벤.은 자잘자잘하게 계속 쪼개지다 말어. 헌데 또한 이 슈바벤.에서 티나온게 호헨졸레른 가문이야. 얘들이 이어받은게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고. 이들이 프러시아를 만들고. 프러시아.란 이름으로 독일을 통일한겨. 이 슈바벤.이 아주 독특한 지역이야. 

 

 

4. 

작센. 지금 독일 지도에서. 유일하게 저 넷 올더스템 다섯 영거 스템.에서 이름이 스테이트.로 남은. 그것도 세개. 니더작센 작센안할트 작센.으로 남은게 이 작센족의 작센.이야. 엘베강을 따라서. 

 

프랑크 킹덤 말에 하미지 하고. 이전엔 올더 작센.이 있다가. 이후에는 영거 작센.이 오토들이야. 나중 파울러 헨리 아들 오토.가 황제하는. 가장 쎈겨 이들이. 살리안 조.가 4대 할때도 반란하고. 오토 다음에 Billung, Supplinburg 빌룽. 수플링부르크 가문들이 이어받고. 끊겨서 시집간 딸로 바바리아 벨프.가 받다가. 아스카니아의 곰 알베르트.가 받고. 다시 벨프 사자공이 뺏다가. 이게 다시 아스카니아 가문.으로 가는겨. 

 

House of Ascania 1180-1422.

 

Wittenberg. Mölln. Lauenburg. Ratzeburg 아스카니아 가문이 공작이 되고, 백년 후에 너댓개로 공작령들이 분할해. 비텐베르크.가 선제후권을 갖는 공작령.에. 묄른 공작 라우엔부르크 공작 라체부르크 공작.

 

이후에. 비텐베르크.는 House of Wettin 베틴 가문.이 1422년 부터 갖고가. 그리고 바로 알베르트 계열.과 에른스트 계열.로 나뉘고. 에른스트.가 비텐베르크.에 거점을 둔 선제후권 공작이고. 루터 스폰했던 형제들에 자식에. 슈말칼덴 전쟁.으로 오른쪽 알베르트 계열 공작 모리스.가 비텐베르크.를 뺏고 선제후권을 갖고오고. 이 두 계열이 십여개 공작령으로 쪼개져 나가면서 엘베강까지 무수수한 땅을 이 베틴의 작센들이 지배를 하는겨. 아스카니아 가문의 라우엔부르크 공작령도 같이 낑기는거고. 이 베틴의 작센이 20세기 까지 킹덤으로 오는겨.

 

 

 

 

Henry was the founder of Munich (1157; München)[1] and Lübeck (1159);[1] he also founded and developed numerous other cities in Northern Germany and Bavaria, a.o. AugsburgHildesheimStadeKasselGüstrowLüneburgSalzwedelSchwerin and Brunswick. In Brunswick, his capital, he had a bronze lion, his heraldic animal, erected in the courtyard of his castle Dankwarderode in 1166 — the first bronze statue north of the Alps. Later, he had Brunswick Cathedral built close to the statue.  

 

헨리 더 라이언. 사자공 헨리. 벨프 가문.의 마지막. 작센 공작 아빠거 다시 먼저 찾고. 바바리아.는 바바로사.가 주고.그리곤 다시 바바로사.에 쫓겨나서리 대부분 땅 뺏겨도 몇몇 도시에서 이어가걸랑 

 

이사람이 뮌헨.을 만든 사람이고. 뤼벡.을 만들어. 한자동맹의 중심이야 뤼벡이. 저 작센땅 북쪽 독일의 여러 도시들을 이사람이 만든거란 일으킨거야. 이전에 채식본.썰할때 화려한 채식본.이 이사람때께 유명한거고. 중세 유럽은 이 채식본.의 책들이 엄청난겨 이게. 수만권이 저 화려한 채식본으로 되어있어 책들이.

 

The Electorate of Brunswick-Lüneburg (GermanKurfürstentum Braunschweig-Lüneburg) was an Electorate of the Holy Roman Empire, located in northwestern Germany. It was colloquially known as the Electorate of Hanover (GermanKurfürstentum Hannover or simply GermanKurhannover), after its capital city of Hanover. For most of its existence, the electorate was ruled in personal union with Great Britain.  

 

브룬스위크 뤼네부르크 선제후.가 18세기 백년인데. 여기가 하노버 가문의 하노버.여. 이 하노버 가문이 영국 스튜어트 마지막 앤 Anne 이 죽고. 영국 킹이 되서리 2백년 빅토리아 여왕까지.의 가문이 이 하노버여. 이들이 벨프 가문. 괼피여. 

 

패배한 괼피.지만. 이들이 또한 지금 독일을 맨들고. 북해넘어 영국을 만든거야. 

 

작센.들이 독일에 이름 남기면서. 또한 잉글랜드의 색슨족이 되서리 영어를 만들고 노르만들을 색슨화해서 영국을 만들고.

 

이런 독일을. 저 아무것도 아닌듯 검은숲 지역 호헨졸레른 가문이 엘베강으로 넘어가서, 아스카니아 가문이 만든 브란덴부르크.를 받아서리 오데르강을 넘어가서 프러시아를 차지하고 프러시아 킹덤으로 독일을 통일을 해. 

 

이 독일땅은 가장 활력있었던 곳이야 이게. 1800개 영지들의 영주들이 가문의 이름으로 엄청난 경쟁을 한겨. 이게 지금의 독일이 돼.

 

괼피 기벨리니 전쟁의 시작 1140년 바인스베르크 전투. 로얄 부인들. 16세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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