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학생 "난 중국인 아니다" 글 파문…中 "처형하라"
기사입력 2019.06.13. 오전 11:57
Fratricide (from the Latin words frater "brother" and cida "killer," or cidum "a killing," both from caedere "to kill, to cut down") is the act of killing one's brother.
프라트리사이드. 형제살해. 프라테르.가 형제.야. 멘디컨트 수도사들 할때. 이들을 프라이어 friar 하걸랑. 프란체스코 도미니크 카르멜라이트. 이들은 몽크.가 아녀. 프라이어.여. 형제들이 몰려다니면서 설법하는 이들이야.
이 형제살해.라는게. 오스만술탄시대 아주 극심하걸랑. 유럽엔 이런게 없어. 고대 로마때. 카라칼라.가 자기 동생 게타.를 죽인 것.외엔 이게 이후로도 없어이게. 세세하게 더 찾아봐야 겄지만. 유럽엔 이런 일이 거의 없어. 카라칼라.도 아빠 세베루스.가 공동황제로 임명한걸 거부하고 동생을 죽인거걸랑. 얘가 로마.를 망시킨거야. 시민권 남발하면서. 얘도 파르티아 정벌길에 근위대애들이 죽여 기도하는걸.
There are many recorded fratricides in Persia, the most famous of which involving Cyrus the Great's sons Cambyses II and Bardiya, the former killing the latter. There are also stories about the sons of Artaxerxes I, Xerxes II, Sogdianus, and Darius II, all of which concern competition for the throne. In addition, there were many fratricides recorded during the Parthian and Sassanid Empires.
그리스와 전쟁한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제국.도 이런게 아주 흔해. 키루스의 아들 캄뷔세스2세.가 바르디야.를 죽여. 아르탁세르시스1세. 세륵시스2세. 소그디아누스. 다리우스2세. 모두 페르시아제국 때 킹들이야. 이 아들들이 다 저래. 자기도 그랬고. 또한 다음 파르티아.와 사산 도 그래. 얘들 다 페르시안 언어족 애들이야.
세륵시스.를 크세르크세스. 발음 하는건. 이건 일본애들 발음이야. 세상에 없어 이따위 단어는. 영어 썩씨즈. 앗턱씨즈.
Mehmed I (1379 – 26 May 1421)
메메드1세.의 아빠 술탄 바예지드1세.가 티무르제국 티무르와 앙카라 전투에서 패하고 포로잡혀가서 죽은다음에 내전을 십여년 하걸랑. 형제들끼리. 이 후엔 삼촌도 끼는거고. 비잔틴도 합세하고. 이후부터 술탄에 오르면 형제들을 다 죽여.
메메드1세의 아들 무라드2세.가 술탄이 되고, 자기 동생들 세명을 죽여.
이 아들이 메메드2세.야. 비잔틴 망.시킨. 얘도 아래 두 동생들 다 죽여. 두번째 복귀하곤.
다음 바예지드2세.는 이짓 안해. 자기 배다른 동생.이 병력을 지휘해. 이게 더 웃겨진게.
다음 셀림 1세
Selim ordered the exile of Bayezid to a far away "sanjak", Dimetoka. Bayezid died immediately thereafter.[8] Selim put his brothers (Şehzade Ahmet and Şehzade Korkut) and nephews to death upon his accession in order to eliminate potential pretenders to the throne.[citation needed] His nephew Şehzade Murad, son of the legal heir to the throne Şehzade Ahmet, fled to the neighboring Safavid Empire after the support meant for him failed to materialize.[9] This fratricidal policy was motivated by bouts of civil strife that had been sparked by the antagonism between Selim's father and his uncle, Cem Sultan, and between Selim himself and his brother Ahmet.
자기 형제들은 물론이거니와. 아빠가 안죽인 동생. 즉 삼촌의 자식 역시 도망가고. 자기 형제 두명 죽이고 그 자식들도 죽이고.
그다음 위대한 술레이만
An early description of Suleiman, a few weeks following his accession, was provided by the Venetian envoy Bartolomeo Contarini: "The sultan is only twenty-five years [actually 26] old, tall and slender but tough, with a thin and bony face. Facial hair is evident but only barely. The sultan appears friendly and in good humor. Rumor has it that Suleiman is aptly named, enjoys reading, is knowledgeable and shows good judgment."[16] Some historians claim that in his youth Suleiman had an admiration for Alexander the Great.[17][18]
얘가 25세에 술탄이 되었어. 역시나 베네치아 시아이에이.가 보고하길. 키크고 얄쌍하고 터프하고 가늘고 얼굴 윤곽제대로고. 친밀해 보이고 유머러스하고. 독서, 아는거 많고 판단력 좋고. 알렉산드로스.에 빠졌다고 하고.
얜 남동생 하나있었는데 어릴때 죽었어. 형제살해.를 하고싶어도 못해.
.
술탄이 되서 형제들을 죽이는 거에 더해서. 아빠가 술탄일때 미리 죽여. 혹시나 후계에 걸리적 거릴까봐. 술레이만이 그짓을 해
Şehzade Mustafa Muhlisi (Turkish pronunciation: [ʃehzaːˈde mustaˈfa muhliˈsi] 1515 – 6 October 1553) was the eldest son of the Ottoman Sultan Suleiman the Magnificent and his chief consort Mahidevran Sultan. He was the prince-governor of Manisafrom 1533 to 1541, of Amasya from 1541 to 1549 and of Konya from 1549 to 1553. Şehzade Mustafa was the heir apparent to the Ottoman throne and a very popular prince among the army prior to his execution, by order of his father, which he later regretted.
술레이만.의 자식들이. 여섯 중에 넷.이 장성을 해. 술레이만.이 시게트바 전투 직전 막사에서 걍 죽었걸랑. 전장에서.
얘 아들 중에 무스타파.가 있었어. 뒤 셀림2세 되는 애 보다 형이야. 얘가 걸출한 인물이야.
The Austrian ambassador Busbecq would note "Suleiman has among his children a son called Mustafa, marvelously well educated and prudent and of an age to rule, since he is 24 or 25 years old; may God never allow a Barbary of such strength to come near us", going on to talk of Mustafa's "remarkable natural gifts"
오스트리아 대사.가 무스타파.란 인물을 나이 이십대.때 보고서리. 놀란겨. 인물이 너무나 너무나 훌륭해. 오 신이시여 저따위 야만의 인간들에게 저따위 인물을 내리시다니. 놀랍도록 천부적 재능들을 지닌 인간.으로 보고를 해.
술레이만.이 지 아들 저 무스타파.를 죽이는겨 혹시나 지자리 넘볼까봐. 죽이고서 후회를 해. 그리고 역시나 다음 셀림2세.가 지 형제 남은 애들이랑 싸워 죽이고.
Selim died in 1574 and was succeeded by Murad, who began his reign by having his five younger brothers strangled
아들 무라드3세. 즉위하자 마자. 걍 지 동생들 다섯을 죽여. 법칙이 있어 이럴땐. 항상 비단 끈으로 목을 쫄라서 죽여.
Mehmed III remains notorious even in Ottoman history for having nineteen of his brothers and half-brothers executed to secure power.[2][3] They were all strangled by his deaf-mutes.
다음 아들 메메드3세. 얜 19명의 자기 형제들을 죽여. 가장 유명한 애야.
지금 띄엄띄엄이 아니라 계속 연속된 술탄들 이야기야.
저앤 그리고 자기 자식도 죽여.
Ahmed I (Ottoman Turkish: احمد اول Aḥmed-i evvel; Turkish: I. Ahmed; April 1590 – 22 November 1617)
다음 아메드1세. 아 애비가 19명 죽인거에 쇼크를 먹어. 저짓을 안해. 그래서 말야 글을 보믄
. The largest killing took place on the succession of Mehmet III when 19 of his brothers were killed and buried with their father. The aim was to prevent civil war. Reflecting public disapproval, his successor Ahmed I abandoned the practice, replacing it with life imprisonment in the Kafes, a section of the Ottoman palace.
아메드1세.가 저런 짓을 안하고. 종신형.으로 바꾸다. 이때부턴 안죽이고 가두는거야. 그럼 마치 안죽인듯?
A factor in Mustafa's survival is the influence of Kösem Sultan (Ahmed's favorite consort), who may have wished to preempt the succession of Osman, Ahmed’s first-born son from another concubine. If Osman became Sultan, he would likely try to execute his half-brothers, the sons of Ahmed and Kösem. (This scenario later became a reality when Osman II executed his brother Mehmed in 1621.[3]) However, the reports of foreign ambassadors suggest that Ahmed actually liked his brother
아메드1세의 동생이 무스타파.가 있어. 이사람은 안갇히고 그냥 살아남은겨 형수 애정으로. 헌데 아메드1세.의 아들 술탄후보 오스만2세.가 또 자기 형제 죽이기 짓을 할거 같어 애 성정을 보니. 진짜보니까 오스만2세 가 지 동생을 죽였어.
오스만2세.는 자기의 예니체리 근위대애들한테 죽어.
그리고 무스타파.가 잠시 하고. 아메드1세.의 살아남은 자식들이 이어받아. 그러면서 저 형제 살해.가 점점 사라지게 돼.
저런건 말야. 유럽엔 없어.
자식 죽이는 이야기도. 없어.
펠리페2세가 아들 카를로스 를 죽였다는건 네덜란드 독립전쟁하면서 선동질 선전질 해대던 프로테스탄트의 주작이야.
피의 마리.는 자기 동생 엘리자벳을 죽이지 않아.
엘리자벳은 스콧마리. 자기 조카.를 죽인게 아냐. 죽일수가 없어 국제정세상 스페인때메. 다 잘못된 후대의 해석이야.
저런 짓이 흔한게. 저놈의 이슬람.이고.
조선이야 조선. 조선 오뱅년.
정은이가 지 형 독살 시켜 죽이는거며. 21세기 대낮에. 그리고 지 고모부 죽이는거며.
조선이 그랬걸랑. 자기 형제. 자기 배다른 애미들 연산군이 쳐 밟아죽이걸랑. 이 연산군이란 애가 조선의 상징이야. 남들은 조선의 킹들 중 논외로 치려하지만 저게 저게 조선이야 저게. 지 자식들 죽이고. 저게 일일이 사례를 들기 구찮아 저 더럽고 추악하고 역겨운 조선사. 영조라는 애가 지 아들 쳐죽이는거 하며.
저따위 애들끼리 서로 형제요 하는겨 그래서.
저따위 정은이 를 위대한 백두대간 위대한 위인입네 하는 애들이 이땅빠닥에 있다는게 신기한게 아니라. 그게 당연한거야. 저 오뱅년의 피야 피. 이 더럽고 추악하고 역겨운 피.
나는 말야. 조선인이 절대로 아냐.
저 여자애가. 나는 중국인이 아니야. 하는건 과거 중국인의 정체성을 나는 거부하겠다는거야. 그러니까. 중국인들은 사형을 시켜야 한대. 중국인이란 정체성을 거부하다니.
우리네는 . 나는 조선인이 아냐. 하면 조선의 정체성을 거부하면. 이건 머 친일적폐가 되는거니? 갑자기?
저게 똑같은 구조야. 저 중국들이랑 말야. 저 중국인이 아니라고 다들 쳐 죽여한다고 몰리는 애들이나.
저게 다를바가 없는거야 저게.
난 그렇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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