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다음의 터닝포인트 진화는 역시나 또한 언어인가.

 

이 언어란게. 이게 시안한거야 이게. 

 

아 세상 모든 언어를 함 보이까는

 

인간은 언어로 다음의 태초를 만드는건데. 또한. 

 

외계인으로 가는 단계야 또한 언언데.

 

다른 언어를 망그러야 하는데..

 

아 대가라파...

.

 

The War of the Polish Succession or the Habsburg-Polish War[1] took place from 1587 to 1588 over the election of the successor to the King of Poland and Grand Duke of Lithuania Stephen Báthory. The war was fought between factions of Sigismund III Vasa and Maximilian III, with Sigismund eventually being crowned King of Poland and Grand Duke of Lithuania. Two major battles of this conflict included the Siege of Kraków, in which Maximilian III failed to capture the capital of the Commonwealth, and the Battle of Byczyna, in which Maximilian was forced to surrender. Sigismund's victory was significantly the doing of Chancellor and Hetman Jan Zamoyski, who stood behind both the political intrigue and the military victories of this conflict.  

 

폴란드 리투아니아(폴리)의 킹이자 대공작.이 끊겼어. 퀸의 여동생 자식인 (킹 되는) 지기스문트3세.와 신성로마황제 막시밀리언2세.의 셋째아들 오스트리아 대공작 막시밀리언3세.의 전쟁. 지기스문트 3세 바사.가 킹이 되는데

 

Jan Sariusz Zamoyski (LatinIoannes Zamoyski de Zamoscie;[1] 19 March 1542 – 3 June 1605) was a Polish noblemanmagnate, and the 1st ordynat of Zamość. He served as the Royal Secretary from 1565, Deputy Chancellor from 1576, Grand Chancellor of the Crown from 1578, and Great Hetman of the Crown from 1581.  

 

얀 사리우스 자모이스키. 이사람이 챈슬러 이자 헷맨. 챈슬러 란건 폴란드 내각에서 수상자리야. 그랜드 챈슬러. 헷맨. Hetman 이 16세기에 처음 시작인데. 폴란드 총 사령관이야. 프랑스식 그랜드 마샬.이고 류트넌트 제너럴.이여. 

 

이 폴란드.는 Pospolite ruszenie (Polish pronunciation: [pɔspɔˈlitɛ ruˈʂɛɲɛ], 군대를. 포스폴리테 루셰녜.라는 귀족 중심으로 된 상비군 성격의 군대가 있었다고 했잖오. 이게 폴리.를 중세 최강의 카먼웰스.로 만들은건데. 

 

The Polish title Grand Crown Hetman dates from 1505. The title of Hetman was given to the leader of the Polish Army and until 1581 the hetman position existed only during specific campaigns and wars. After that, it became a permanent title, as were all the titles in the Kingdom of Poland and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이를 리더하는 이를 (그랜드 크라운) 헷맨. 1505년 부터. head man 헤드맨.의 폴리쉬야. 전쟁때만 임명했다가 정식 용어가 되는겨. 이 중에. 저사람. 얀 자모이스키.가 최고의 헷맨.이야. 

 

이전에 리보니안 전쟁. 이반4세가 오는걸 덴마크 스웨덴이랑 같이 막아 이길때 이때 이사람은 20 전후여. 

 

폴리.는 16세기에 접어들면서. 가장 큰 국제적 분쟁이 일어나는 곳이. 리보니아 지역과 이 오른쪽 잉그리아, 저 아래 몰도바. 여.

 

리보니아.는 지금 에스파니아.와 라트비아.여. 이 오른쪽이 잉그리아 지역이고 이 안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이고. 핀란드만.이고. 러시아.가 유럽과의 연결통로.가 오직 이 핀란드만.을 통한 발트해 외에는 없어. Swedish–Novgorodian Wars were a series of conflicts in the 12th and 13th centuries  류릭이 오고 노브고로드 위에 세우고. 스웨덴도 킹덤체제 갖추면서 이 둘이 12세기 13세기에 잉그리아를 사이에 두고 전쟁들을 하는거야. 그러다가. 몽골와서 러시아는 주춤하고 스웨덴은 덴마크로 들어가고 조용해지다가 다시 전쟁이 나는겨 이 잉그리아.를 무대로. 이때는 이제 왼쪽 리보니안 십자가 국가가 선 상태에서 병행해서 리투아니아가 들어와 대공국으로 자리잡은 상태걸랑. 여기가 또한 월드워까지 가는거야.

 

리투아니아.라는 나라는. 서기 1429년. 가장 커. 비타우타스와 야기에워 있을때 땅이 90만제곱이 넘었어. 리투아니아만. 폴란드 보다 더 넓어. 아래 우크라이나땅이 리투아니아에 하미지 하는거고. 이게 이반3세.와 손자 이반4세.가 몽골 내쫓고 짜르 선언하면서 다시 왼쪽으로 오면서, 이전 류릭.의 키예프 루스 시절의 땅을 갖고 가려는겨. 

 

몰도바. 지역은. 아래 오스만이 쳐올라올때걸랑. 왈라키아.는 드라큘라 캐릭 블라드3세. 죽고 직접 편입못하고 하미지.만 하는거고 오스만에. 왼쪽 세르비아에 보스니아에 헝가리 동쪽까지 다 먹은 상태에서. 폴리.가 이제 오스만을 상대하는데 여기 낑긴 곳이. 몰도바. 인거야. 또한 몰도바.에 역시나 헝가리.도 역시 눈독을 들여. 몰도바.가 흑해에 접하는겨. 바다야. 여기가 요충지야. 오스만과 헝가리와 폴리.가 이 몰도바에서 계속 전투하는겨 이게.

 

여기서 폴리.의 헷맨.이 저 폴란드(리투아니아) 후계자 전쟁에서 지기스문트3세.를 킹에 오르게 한. 얀 자모이스키.인거야. 이사람이 전투경험이 별로 없어. 그런데 아주 습득력이 빨라. 폴리.가 보스니아 전쟁에 이후 러시아 대항 전투에 몰도바 전투.를 모두 지휘하는게 이사람이야. 당대 최고의 지휘관이야 이사람이. 반면에 저 킹.이 되는 지기스문트.가 이사람을 역시나 어려워하는겨. 얘가 폴란드에 기반이 약하걸랑. 전투중인데 병참과 병력지원을 코트에서 제대로 안해줘. 그래도 이겨 저사람이. 그러다 은퇴를 하는건데.

 

저 지기스문트3세.라는 폴리 카먼웰스.의 킹.이 아주 멀리 보면 말야. 결국 나중에 폴란드 리투아니아.라는 두 나라이름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걸랑. 주위 세국가가 나눠먹고. 그러다 월드워 끝나고 지금 저렇게 덩그러니 남았지만.

 

이 시작이 저놈의 지기스문트3세.이고 저당시 코트의 귀족..들이야 이게. 

 

저 어마어마한 폴란드 리투아니아.가 저당시 저 리더 ..들 때문에. 2백년후에 지구상에서 지워지고. 지금 저리 개떡같은 나라가 된거걸랑 이게. 

 

이...의 가장 큰 잘못 역시 말이지. 이념이여 이념. 

 

 

인간이. 이념에 미치잖니. 특히나 리더..들이 이념에 환장하면 말야. 그 나라는 성장동력을 화악 잃는겨. 얘들처럼 지구상에서 나라 이름 자체가 지워지기도 하고. 그리스처럼 지금 저따위 그리스가 되는겨 이천년동안 남의 나라 노예가 된거걸랑 저놈의 그리스도. 데모스.라는 이념에 미치고. 소크라테스 같은 ..애들 천지였걸랑 저때 그리스가.

 

 

지기스문트3세의 가장 큰 문제는. 오른쪽 러시아.가 오쏘독시. 인데. 자기가 로마 카톨릭.이라고. 여길 오소독시.를 지우고 카톨릭으로 만들겠다고, 정치적으로 혼란한 저 러시아.를 쳐들어간거야 얘들이. 

 

The Lithuanian–Muscovite War encompasses three raids by AlgirdasGrand Duke of Lithuania, to the Grand Duchy of Moscow in 1368, 1370, and 1372. 

 

Vedrosha (1500) Siritsa River (1501) Mstislavl (1501) Pskov (1502) Lake Smolino (1502) Smolensk (1502)

 

리투아니아.가 모스크바.와 전쟁할때도 이미 14세기 중반엔 헝가리의 앙주 루이부터 여긴 폴란드와 하나야. 폴리.와 러시아.의 전쟁은 서기 1368년 부터 월드워까지 6백년을 한거야 얘들은. 아주 극렬하게. 

 

러시아 이반.들이 올때 역시나 자기들은 오소독시.요 니덜을 정화시킬지니. 하다가 결국 맛탱이가 간거고. 해서 시베리아만 개척을 한거고. 이 짓을 지기스문트3세.가 한거야. 이 앤 특히나 더 위험할때걸랑.

 

왼쪽엔 지 핏줄 스웨덴이랑 전투해야하고. 아래엔 몰도바 중심으로 오스만에 타타르에 헝가리들도 간섭하고.

 

그 와중에 이 앤 저 러시아 혼란한 와중을 틈타 오소독시 지우고 로마 카톨릭 하자고 뎀빈겨.

 

이 ..가 말야. 폴란드 리투아니아.의 에너지.를 그냥 확 꺼버린 ..야 이..가. 

 

더하여 저 당시의 귀족들. 결국 같어. 킹.과 리더들은. 누구 하나에 책임을 돌릴 수 가 없어. 

 

리더.가 이념에 환장하면. 정말 그 후손들은. 끔찍한 고통들을 당하는거야 이게. 

 

저 당시..들은 죽으면 그만이고. 저 피해를 이삼백년 후에 아주 극심하게 보는거걸랑.

 

 

 

 

아 끔찍한거야 이게.

 

적폐놀이 한답시고. 아주 걍 기업을 아작을 내 아작을. 미래기술도 아작을 내고. 자영업자들도 아작을 내고. 일본애들 지디피대비 부채비율이 2백퍼.가 넘걸랑. 야 우리 위대한 조선민국이 왜 40퍼.를 잣대로 돈을 못뿌리게 하냐 이거야. 저 일본 ..들도 마음껏 빚을내서 2백퍼인데. 이 위대한 조선은 왜 40퍼.에 벌벌떠니. 부채 걱정말고 막막 빚 내서 막막 뿌려 인민놀이 하면 얼마나 인기가 많아지는데. 

 

나이지리아. 부채비율이 40퍼야. 세계 대부분 애들 부채비율이 사십퍼야. 국력이 쎄고 걔들 돈의 가치가 그래서 높기 때문에 일본이든 미국이든 지디피 대비 수배의 부채비율도 감당하는거다

 

우리 이니님께서 40퍼에 연연하지 마시랍니다. 저게 경제 부총리가 하는 말이야. 우리 이니님이  먼 경제학 마스터냐. 저게 소위 선민의식에 빠진거걸랑. 자기가 무슨 신의 선택. 민심이 천심이여 아 자기도 하늘님께서 보우해줄꺼야 내말이 다 맞아 내 선택이 맞을껴. 완전한 한무당짓을 하는거걸랑.

 

아무런 실재적 사고가 없어.

 

망해 이나라.

 

Jogaila  later Władysław II Jagiełło(c. 1352/1362 – 1 June 1434) was the Grand Duke of Lithuania (1377–1434) and then the King of Poland (1386–1434)  

 

요가일라.가 헝가리 앙주 루이.와 결혼을 해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유니온으로 가고. 나중 카먼웰스가 되지만. 이때부터 야기에워 가문.의 시대야. 

 

2백년이 흘렀어. 지기스문트1세.가 죽고. 아들 2세.가 죽었어. Sigismund II Augustus (PolishZygmunt II August; 1 August 1520 – 7 July 1572)  아들만 하나에 다 딸들이었어. 서기 1572년. 누나와 여동생들이 세나라 퀸이야.

 

Isabella Jagiellon (Hungarian: Izabella királyné; Polish: Izabela Jagiellonka; 18 January 1519 – 15 September 1559) was the oldest child of Polish King Sigismund I the Old

 

Catherine Jagiellon (PolishKatarzyna JagiellonkaSwedishKatarina JagellonicaLithuanianKotryna Jogailatė; 1 November 1526 – 16 September 1583) was a Polish princess and the wife of John III of Sweden.

 

Anna Jagiellon (PolishAnna JagiellonkaLithuanianOna Jogailaitė; 18 October 1523 – 12 November 1596) was Queen of Poland and Grand Duchess of Lithuania from 1575 to 1586.   

 

이사벨라 야기에워.는 동헝가리의 사포야이 야노스.에 시집가. 사포야이 야노스.가 가운데 다뉴브강을 기준으로 페르디난트1세 황제와 헝가리킹을 두고 서로 킹킹하는겨. 얘때를 동헝가리.라고 후대에 작명해. 얘들은 오스만에 하미지 하는거고.

 

캐서린 야기에워.는 막내딸이야. 스웨덴의 요한3세. 스웨덴 독립한 구스타브 바사.의 아들이여. 여기서 나온 사람이 폴란드 후계자 전쟁 승자 지기스문트3세 바사.여. 즉 얜 스웨덴 킹 해야할 놈이 아빠 살아있을때 여기 선거 개입해서 킹을 하고 나중에 아빠 죽고 스웨덴도 내가 킹.하다가 뜬굼없이 스웨덴과도 전쟁을 하게되는겨 이게. 얘가 아주 폴란드 리투아니아.를 아작을 낸 인간이여.

 

안나 야기에워. 캐서린의 언니여. 이여자가 아빠 지기스문트1세.를 잇는거야. 헌데 폴리 셰임 Sejm . 의회가 킹을 선거로 뽑는데 이여자.를 원래 킹으로 뽑지 않았어. 여자라서 부담이 되는겨. 여기에 유럽의 군주들이 서로 후보로 나서는게 시작이었어. 세임.에서 폴란드 킹.으로 뽑은 사람이

 

Henry III (19 September 1551 – 2 August 1589; born Alexandre Édouard de FrancePolishHenryk WalezyLithuanianHenrikas Valua) was King of France from 1574 until his death and also King of the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from 1573 to 1575. Henry was the thirteenth king from the House of Valois, the sixth from the Valois-Orléans branch, the fifth from the Valois-Orléans-Angoulême branch, and the last male of his dynasty.  

 

프랑스.의 나중 앙리3세.여. 메디치의 카테리나.의 세아들이 프랑스 킹들이 되는데. 프랑수아2세. 스콧 마리.의 신랑이 바로 이질걸려 죽고. 샤를9세.도 자식없이 결핵으로 죽고. 막내 앙리가 폴란드 킹.되었다는 소식으로 폴란드로 가다가 자기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빠꾸를 해서리 프랑스 앙리3세.가 되는겨. 세앙리의 전쟁.의 앙리. 종교전쟁 여전하고. 결국 수도사.가 인사한답시고 기습 암살로 죽지만.

 

폴란드.가 다시 선거를 해야해. 세임에서. 얘들이 이때 신성로마황제 막시밀리언2세.를 킹으로 선언을 해. 이걸 반대하는거야. 합스부르크에 엮이기 싫은겨. 그리고 안나 야기에워.를 앉히고. 결혼 상대.를 찾은게 

 

 

Stephen Báthory (27 September 1533 – 12 December 1586) was Voivode of Transylvania (1571–1576), Prince of Transylvania (1576–1586), from 1576 Queen Anna Jagiellon's husband and jure uxoris King of Poland and Grand Duke of Lithuania (1576–1586)  

 

스티븐 바토리. 이사람이 트랜실베니아.의 보이보드.여. 헝가리(보헤미아)도 야기에워가문 루이2세.가 오스만이랑의 모하츠전투 1526에 죽고 끊겨서리. 사포야이 야노스.가 페르디난트1세와 킹 다툴때. 이 사포야이.는 트랜실베니아.의 보이보드.였어. 결국 얘가 다뉴브 오른쪽까지 다 지배를 한거야. 오스만에 하미지를 하고. 

 

The Voivode of Transylvania (GermanVojwode von Siebenbürgen;[1] Hungarianerdélyi vajda;[1][2] Latinvoivoda Transsylvaniae;[1][2] Romanianvoievodul Transilvaniei)[3] was the highest-ranking official in Transylvania within the Kingdom of Hungary from the 12th century to the 16th century.  

 

트랜실베니아.란 곳은 헝가리의 오른쪽. 루마니아 안에. 카르파티안 산맥이 휙 돌아 감싼 지역이야 왼쪽에. 여기도 헝가리 땅인겨. 즉 원래 헝가리.는 지금 지도상. 루마니아 왼쪽까지여야해. 4백년이 헝가리땅이었어.

 

사포야이 야노스.가 동헝가리 할때. 여기까지 포함을 한거야. 훨 넓어. 스티븐 바토리.가 여기의 짱 보이보드.야. 역시나 동헝가리 사포야이.와 그 자식에게 하미지 하는거고. 이들은 오스만에 하미지를 했걸랑. 얜 오스만의 영주여. 그래서. 얘가 보이보드 하자마자. 따로 프린스.라고 한겨. 작은 독립 군주.라고 자처를 한거야. 이 상태에서 폴란드 안나 야기에워.와 결혼을 한거고. 그래서 얘가 트랜실베니아.에 더하여 폴란드 리투아니아.의 군주.가 된건데.

 

이 사람이 정치를 잘했어. 당시 오스만이 모하츠 1526에 다뉴브 타고 바로 올라가서 비엔나 포위. 1529를 술레이만이 하고 다시 밀려서 헝가리 가운데 다뉴브강 사이를 두고 합스부르크와 전쟁이걸랑. 이게 일단란 되는게 역시 술레이만이 막사에서 죽는 1566 시게트바 전투.여 위대한 크로아티아 즈링스키.나오는. 그리고 휴전하고. 롱 투르크 전쟁(13년전쟁)을 다시 하다가 사포야이 야노스.의 핏줄 끊기고. 합스부르크와 오스만은 헝가리 동쪽의 트랜실배니아 왈라키아 몰도바.를 사이에 두고 계속 전쟁인거걸랑. 

 

The Long Turkish War or Thirteen Years' War was an indecisive land war between the Habsburg Monarchy and the Ottoman Empire, primarily over the Principalities of WallachiaTransylvania and Moldavia.[4] It was waged from 1593 to 1606 but in Europe it is sometimes called the Fifteen Years War, reckoning from the 1591–92 Turkish campaign that captured Bihać.  

 

이때 폴란드 킹이 되는 스티븐 바토리.가 오스만.과 신성로마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했어. 그러면서 러시아 이반4세 테러블.이 리보니안 전쟁 오는걸 연합군으로 막은거고.

 

스티븐 바토리.가 병걸려 죽어. 1586년. 나이 53세. 10년 킹하다가. 폴란드 후계자전쟁 1587년.은 이때야. 

 

얀 자모이스키.가 당시 실세야. 안나 야기에워.의 자매 동생 캐서린 야기에워. 스웨덴 퀸.의 자식 지기스문트3세 바사.를 폴리.의 킹에 올려. 

 

Sigismund III Vasa (PolishZygmunt III WazaSwedishSigismundLithuanianŽygimantas Vaza; 20 June 1566 – 30 April 1632N.S.), also known as Sigismund III of Poland, was King of PolandGrand Duke of Lithuania and monarch of the united Polish–Lithuanian Commonwealth from 1587 to 1632 as well as King of Sweden and Grand Duke of Finland from 1592 until his deposition in 1599. 

 

지기스문트3세 바사.가 서기 1587년. 21세.에 킹이 돼. 

 

John III (SwedishJohan IIIFinnishJuhana III) (20 December 1537 – 17 November 1592) 

 

아빠 스웨덴 킹. 구스타브 바싸.의 차남. 즉 장남은 먼저 킹하고 에릭14세. 동생 요한3세.가 55세.에 죽어. 지기스문트.가 폴란드 킹 오르고 5년 후에. 어마 캐서린 야기에워.는 먼저 죽었어(1483). 요한3세 킹이 새장가를 가서 아들을 낳았는데 얘가 세살인겨. 배다른 동생이야. 지기스문트3세.가 저 스웨덴 킹도 내자리.라고 요구하는거야.

 

The Russo-Swedish War of 1590–1595 was instigated by Boris Godunov in the hope of gaining the territory of the Duchy of Estonia along the Gulf of Finland belonging to Sweden since the previous Livonian War

 

리보니아 전쟁.이 1558-83 이었고. 이반4세.가 쳐들어온걸 연합해서 막고 나눠갖고. 스웨덴과 폴란드가. 덴마크.는 섬 하나 차지하고. 그리고 다시 러시아.에서 또 쳐들어 오는거걸랑 리보니아.의 지금 에스토니아땅 스웨덴이 리보니안때 차지한. 갖으려고. 이 전쟁 와중에 요한3세가 죽은거야.

 

저 때 지기스문트3세.가 스웨덴 킹자리를 요구해.

 

The war against Sigismund (SwedishKriget mot Sigismund) was a war between Duke Charles, later King Charles IXand Sigismund, King of Sweden and Poland. Lasting from 1598 to 1599, it is also called War of Deposition against Sigismund, since the focus of the conflicts was the attempt to depose the latter from the throne of Sweden. The war eventually resulted in the deposition of Sigismund, with Duke Charles taking over the government and later also acceding to the throne. 

 

지기스문트 반대 전쟁. 이때 스웨덴.의 중심은 나중 되는 스웨덴의 카를9세. 구스타브 바사.의 막내쯤 아들이여. 삼촌이 막은겨. 즉 구스타브 바사.의 세아들이 킹이 된겨 스웨덴은. 

 

폴란드.의 세임 귀족애들도 저 전쟁을 찬성하는겨. 얘들이 바보가 되어버린게. 처음 지기스문트.를 킹으로 뽑은건 스웨덴과의 관계개선이 되겠다. 또는 쟤가 킹하면 스웨덴도 우리편. 이란 생각에서 쟬 뽑은거걸랑. 헌데 우습게도 스웨덴이랑 전쟁을 하게되면서라도 먹고자 한거야 이게.

 

먹어야 할 나라가 있고. 선을 긋고 동맹국을 유지해야 할 관계가 있걸랑. 얘들은 이런 대갈빡이 없는겨 이게. 지들이 스웨덴을 먹으면 결국 덴마크 엮이고 브리튼 엮이는걸 전혀 몰라. 촌놈들이 카먼웰스 어쩌고로 갑자기 선진국이 된 것에 으쓱하고 저짓 하는거걸랑. 이 역사와 전통이란건 정말 무시를 못해 이게.

 

저때부터 말야. 뜬금포로 스웨덴도 적이 되는겨. 아 오른쪽 러시아.도 적이 되지. 아래 오스만도 적이 되지.

 

이 폴란드 리투아니아.는 저 지기스문트3세.와 저때의 귀족 ..들이. 완전히 자기땅의 현재와 미래를 죽이려고 작정을 한거야 저때부터. 

 

아 이걸로 몇개 전쟁들 정리된걸로 치자.

 

 

 

An unsuccessful attempt on the life of the king was made on 15 November 1620. It occurred on Sunday at 9 in the morning when the monarch was to attend mass in St. John's Archcathedral in Warsaw.  

 

1620년.에 지기스문트3세 암살실패. 

 

Michał Piekarski (Polish pronunciation: [mixaw piɛkarski]; before 1597 – 27 November 1620), also known as Michael Piekarski, was a Polish petty nobleman and landowner, who attempted to assassinate king Sigismund III in 1620.  

 

일요일 아침 미사. 바르샤바 성당에서. 미카엘 피에카르스키. 귀족인데. 이사람은 칼뱅이야. 지기스문트는 로마카톨릭이고. 전쟁 해머.가 지금 망치.를 키운거고. 저걸로 두번 찔렀는데 치명적이지 않은거지. 살았어. 저사람은 목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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