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rald had come to America from Ireland when he was twenty-one. He had come hastily, as many a better and worse Irishman before and since, with the clothes he had on his back, two shillings above his passage money and a price on his head that he felt was larger than his misdeed warranted. There was no Orangeman this side of hell worth a hundred pounds to the British government or to the devil himself; but if the government felt so strongly about the death of an English absentee landlord's rent agent, it was time for Gerald O'Hara to be leaving and leaving suddenly. True, he had called the rent agent "a bastard of an Orangeman," but that, according to Gerald's way of looking at it, did not give the man any right to insult him by whistling the opening bars of "The Boyne Water." The Battle of the Boyne had been fought more than a hundred years before, but, to the O'Haras and their neighbors, it might have been yesterday when their hopes and their dreams, as well as their lands and wealth, went off in the same cloud of dust that enveloped a frightened and fleeing Stuart prince, leaving William of Orange and his hated troops with their orange cockades to cut down the Irish adherents of the Stuarts.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시작에 나오는 스칼렛 아빠 제럴드.가 왜 미국 조지아로 왔는가 하는거걸랑. 다른 아이리쉬 들 처럼 무일푼으로 온겨 옷만 걸치고. 제럴드의 아일랜드 동네 미드 Meath County 는 오렌지맨 들이 악마여. 오랜지애들과 말다툼하다가 총으로 쏴죽이고 바로 도망온거걸랑. 이들은 제임스파야. 제임스의 스튜어트 지지파야.
run out of England with the Cavaliers, run out of Scotland with Bonnie Prince Charlie
스칼렛의 외할머니가. 우리네 집안 가훈이다 얘기하면서. 스칼렛의 엄마네 아빠네 이야기를 같이 하는거걸랑. 그중에. 항상 잘못 베팅해왔다 우리네들은. 하면서 그예를 든데 잉글랜드에선 카발리예들.편을 들고 스콧에서는 보니 프린스 찰리.편을 들다 도망오다.
카발리예.나 보니 프린스 찰리.나 같은 말인데. 저게 영국의 역사의 한페이지야 17세기 지나면서. 엘리자베스1세 다음 제임스1세.가 죽고나서의 영국 내전 이야기걸랑. 아들 찰스1세.가 카톨릭 다시 세우려다 의회파랑 내전을 하고. 이때 등장하는게 의회파.의 올리버 크롬웰.이야. 얜 독실한 퓨리튼. 청교도여. 이런 애가 권력잡으면 무서운겨. 얘가 찰스1세. 목을 짤라.
찰스1세.의 두 아들이. 찰스2세.와 제임스2세(스콧 7세)
Charles I (19 November 1600 – 30 January 1649)
Charles II (29 May 1630 – 6 February 1685)[c] was king of England, Scotland and Ireland. He was king of Scotland from 1649 until his deposition in 1651, and king of England, Scotland and Ireland from the restoration of the monarchy in 1660 until his death.
찰스1세.가 1649년.에 죽어. 올리버 크롬웰 에게 목짤리는겨. 아들 찰스2세.가 스콧.의 킹을 이어가. 19세. 잉글랜드 의회파 입장에선 쟤도 몰아내야해. 2년 후 1651년. 쫓겨나서 프랑스로 망명가는 겨.
즉 영국 내전.이란게 1651년.에 끝나는겨. 그러다가 9년 후인 1660년.에 다시 영국 킹으로 복귀를 하는거야. 이후 1685까지 킹을 하다가 죽고. 동생 제임스2세.가 킹하다가 3년만에 1688 명예혁명으로 쫓겨나고. 이때 제임스2세.의 큰딸 신랑이었던 네덜란드의 오렌지 윌리엄.이 의회에 말 잘듣겠슴둥 선서.하고 영국 킹이 되는겨 1689.
오렌지 윌리엄.이 네덜란드 건국한 나싸우의 침묵 더 사일런트 윌리엄.의 증손자야. 동시에 엄마쪽으로 찰스1세.가 외할아버지야. 마리2세.와 사촌이야. 오렌지가 1702년에 죽어. 마누라는 자식없이 먼저죽고. 이자릴 마리2세.의 여동생 앤. Anne 이 받다가 12년 후에 죽어. 1714. 이때부터 하노버 가문.의 조지들에 빅토리아 여왕까지 서기 1901년. 2백년을 하노버 가문이 다스린거야 영국을. 영국의 미국 정착 성공 로어노크.는 튜더.의 마지막 엘리자베쓰가 시도하다 실패한거고. 제임스 타운.이라는 스튜어트 가문.의 제임스.가 시작해서리. 마리2세의 오렌지 윌리엄.이 1688 이후 앤 1714.까지 스튜어트 가문이 잉글랜드에선 백년 하고 진거고. 이후 하노버.의 조지들 부터 젠킨스의 귀전쟁 스페인.에 졌지만 바로 오스트리아 계승 전쟁에 미국내 프랑스 인디언과 맞선 전쟁에 바로 대규모 국제전인 7년전쟁에서 영국.이 프랑스.를 압도하는겨 이때부터.
프랑스 루이 14세.가 칠땡.을 살아 77세. 재임이 72년. 1715.까지. 앤.이 죽는 스튜어트 가문과 함께한겨.
루이 14세.가 하도 오래 살아서. 아들도 죽고 손자 루이 15세.가 이어받아서 얘도 똑같이 다섯살에 올라서리 60년을 재임해. 프랑스.는 저 루이 15세 때에 다 끝난겨 저게. 저 지점이 웃긴건데. 왜 저리 되었냐는거지. 프랑스도 같은 종교전쟁인 위그노전쟁 질기게 하다가 앙리4세가 낭트칙령 했지만 그래서 공존을 꾀했지만 암살당하고. 루이13세가 받아서리 살벌하게 위그노를 조지걸랑. 정의 the Just 의 이름으로. 위그노들이 네덜란드에 도망가고 북미 조지아 남쪽 지금 플로리다.인 잭슨빌.로도 간겨. 이때부터 프랑스 위그노들은 이쪽으로 들어와. 그리고 루이 14세. 얜 걍 전쟁을 위한 전쟁에 미친애야. 루이 13세가 1610 취임이고. 루이 14세.가 1643-1715 재임 이야. 루이 13세가 위그노들을 다 내쫓고 이들이 북미 남쪽해변으로 가는겨. 루이 14세가 유럽 바닥을 다 훑어. 이때 또한 전쟁 피해서 프랑스와 독일땅 사람들이 북미대륙으로 간거야. 이들이 북미의 영국땅 식민지로 스민겨.
미국이란 나라는. 루이 13세와 루이 14세.가 만들어준거야 ㅋㅋㅋ.
뉴프랑스.라는 카나다 마리팀.의 북동쪽 해변은 왕정 차원에서 정식으로 데려가는 사람들이고. 이게 전혀 달라.
더하여. 영국 내전이야 잉글랜드 내전. 올리버 크롬웰의 의회파가. 찰스 1세를 목짜르고. 스콧의 찰스2세.는 도망다니다 다시 왕정 복귀하지만 다시 명예혁명으로 동생 제임스2세.가 도망다니고 오렌지 윌리엄에 대드는거걸랑. 이들을 jacobite 재코바이트. 자코바이트. 제임스2세.의 후손들이란 거걸랑. 보니 프린스 찰리.가 제임스2세.의 손자야. 얘 아빠가 역시 재코바이트.의 중심인거고. 정작 영국의 킹.은 제임스2세의 큰딸 앤 Anne 이지만 의회가 권력을 잡아서리 힘이 없는거고.
재코바이트. 제임스.가 야코보. 야곱. 산티아고. 다 같아.
메이플라워 호 필그림들 백여명은 1620. 퓨리튼들이걸랑. 청교도. 이들은 제임스1세 말에 앵글리카니즘 피해 미국으로 들어오는거고. 이들은 플리머스 컴퍼니. 소속으로 메사추세츠 의 플리머스. 북쪽이야. 이 퓨리튼 들이란건 엘리자베스 때 생긴겨. 이들은 카톨릭도 싫지만 앵글리카니즘.도 싫어. 그러다 올리버 크롬웰.이 정권 잡는 내전 시기에 정점을 찍는거야. 올리버 크롬웰.이 퓨리튼 이란건 그만큼 저당시 퓨리튼 들이 크롬웰 이란 인물을 만들 정도로 세가 확장이 된거걸랑. 이들이 또한 북미의 퓨리튼들이 메사추세츠.에 정착한 소식을 듣고 저쪽으로 간거야. 이들이 뉴잉글랜드.라는 여섯개 주를 만든겨. 상대적으로 아래론 안간겨 퓨리튼들은.
순결 하니까. 흑인 문제. 자체도. 이념적으로 들어간거야. 실재적 사고가 없어. 무수한 인과의 숲을 보지 않아. 걍 나쁜겨 지들 시선에선. 얘들이 일으킨게 남북전쟁이야.
올리버 크롬웰.이 특히나 순결 따지걸랑. 얘가 아일랜드 사람들한테는 악마중에 악마야. 아일랜드가 카톨릭이 찐하걸랑. 찰스 1세 목아지 짜르고. 아들 찰스 2세 지지파 죽이러 아일랜드로 가는겨
Total excess deaths for the entire period of the Wars of the Three Kingdoms in Ireland was estimated by Sir William Petty, the 17th Century economist, to be 600,000 out of a total Irish population of 1,400,000 in 1641.[90][91][92] More modern estimates put the figure closer to 200,000 out of a population of 2 million.[93]
세 킹덤의 전쟁. 킹은 하나지만 킹덤은 아일랜드 스콧 잉글랜드 걸랑. 저기서 킹.은 찰스 1세.여. 잉글랜드 내전.을 저리 또한 불러. 이때 올리버크롬웰.이 아일랜드인을 전체인구 140만 중 60만명을 죽이다. 또는 2백만중 20만을 죽이다. 걍 인종 청소를 한거야.
로마 카톨릭.은 추하고 마녀사냥이고 악이다. 하면서 프로테스탄트니 앵글리카니즘이니 퓨리튼 들은 선한 줄 알잖냐. 개소리 중에 개소리야 그게.
특히나 아일랜드.는 카톨릭이야. 퓨리튼들에 쫓기고. 앵글리카니즘에도 쫓기고. 이들이 제임스의 자식들 찰스들과 제임스2세.의 자식들을 지지하는겨 그래서. 퓨리튼이나 이후 오렌지 윌리엄은. 의회파.의 꼭두각시일 뿐이야. 이게 의회파. 대 왕정파. 싸움이 된거야. 찰스2세.가 잉글랜드에서 쳐들어올때 스콧에서 쫓겨나기 전까지.와 왕정 복귀. 1660. 하고 동생 제임스2세.가 명예혁명 1688. 28년간은 잠잠 했다가 오렌지 세우고 다시 내전 하는겨. 이게 하노버가문 조지1세.가 설때서야. 1714. 잠잠해지는겨. 제임스 1세.가 죽고 아들 찰스1세.가 즉위하고 말년부터 내전이지만. 제임스1세가 죽은 서기 1625년 부터 영국은 불안하기 시작한거야. 이게 백년 걸린거야. 앵글리카니즘과 카톨릭을 피해서 퓨리튼.들이 간거고. 이들 따라 퓨리튼 들이 아예 더 찾아 들어가서리 뉴잉글랜드.를 만든거고. 올리버 크롬웰의 퓨리튼에 쫓기고 의회파에 쫓긴 이들이 버지니아 아래쪽으로 간겨 이게. 더하여 의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보내는거고. 하노버 가문 조지1세 부터도 저길 보내지만. 이미 이 전에 그 바닥이. 남과 북이 태생적으로 웬수사이야
흑인노예 해방.이란건 걍 방아쇠 당긴 거일 뿐이야 저건. 전쟁이란건 그 집단 내에서 쌓이고 쌓인 감정들의 부딪힘이걸랑. 단지 하나의 이슈.만으로 인간사를 보는 건 얄팍한겨.
영국의 저러한 상황에서 남과 북으로 초기에 스며드는거고 잉글랜드 스콧 아일랜드 인들이.
루이13세에 도망나온 프랑스 위그노들이 남부로 가. 루이 14세의 유럽 전역 전쟁 질을 피해 더러워서 피한 독일땅 사람들과 프랑스 사람들이 북미로 들어가는겨. 이 프랑스 인들은 뉴프랑스 로도 가는거고.
그래서 말야. 1763년.에 프랑스가 북미의 뉴프랑스.를 영국에 넘길때 프랑스 인디언 전쟁.과 7년전쟁.의 패배에서. 저때 뉴프랑스.의 정착민들은 6만명. 산맥너머 잉글랜드 정착민들은 2백만명. 이란건. 뉴잉글랜드의 퓨리튼들에 남부의 위그노들과 아일랜드 스콧의 제임스 지지파들에. 주로 미들지역. 여기가 뉴욕 맨하탄.이고 와싱턴 도시에 매릴랜드 델러웨어.걸랑. 여기에는 앵글리카니즘에 쫓겨난 카톨릭들이 오는겨. 네덜란드인들 스웨덴등 북유럽 인들도 들어오고. 더하여 뉴프랑스.라는 북동쪽 입구는. 추워 이게 날씨가. 세인트로렌스 강으로 들어가서 퀘벡 몬트리올. 아 찾기도 힘들고 추워. 다들 동부 해변으로 들어오는겨. 더하여. 영국.은 섬나라야. 얘전 앙주 제국 의 향수가 있어. 브리타뉴.도 확실히 프랑스로 가고. 정권 차원에서 대륙이 그리운거야. 저길 킹덤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카리타스.를 주면서 보내는겨 민들을. 자기 땅. 이라는 명분.을 얻어야 해. 이건 정착민.이 명분이야. 아무도 없는데 걍 저기 내땅. 내나라땅 할수가 없어.
체사레 보르자 아빠 알렉산더 6세교황.의 권위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인터 크라이테라.라는 교황 칙령으로 세상을 나눠갖았느니. 따로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경도를 걷느니. 저건 전혀 의미가 없어. 이미 교황은 레반트 십자군 끝나면서. 얘 권위는 땅에 떨어진겨. 프로테스탄트 티나오면서 더 밟힌거고. 저 두나라가 주재자도 아니고. 먼저 가서 깃빨 꽂고 사람들 정착시키는게 먼저야. 영국이 적극적으로 뛰어든겨 이게. 프랑스.는 이걸 상대적으로 안한거야. 감정에 미쳐서 위그노 쫓아내기 바쁘고. 루이 14세는 전쟁하기 바쁘고. 북미 먹을 바엔 대륙 땅을 넓히지 저길 왜가 하는겨.
영국은 말야. 그래서. 저길 투자를 무지 한거야. 로어노크 섬 보냈다가. 오년만에 걍 가보니 다 죽었어.
국가 차원에서 보급을 해주지 않으면. 살 수 가 없는거야. 제임스타운 정착 이 성공한 이유야 이게. 이때부터 말야. 영국에선 저기에 투자하는겨. 저 황량한 해변과 들판과 산속에서. 맨 몸으로 문명을 만들 수가 없어. 그건 원시를 다시 시작하는거야. 이건 시간이 무지 오래 걸리는겨 이게.
식량. 옷. 가구. 가축들. 이걸 영국 땅에서. 1607년 제임스 타운. 이후에 백년을 보낸거야 이건. 얘들이 백년 투자한겨.
저건 영국 킹덤 차원에서 만든거야. 초기엔 피난민들이 정신없이 와서리 그냥 버팅기며 산거고. 크롬웰이 정권 잡고 10년 가까이는 크롬웰들이 퓨리튼들 챙길꺼 아니니. 이들이 적극적으로 중반부터 가고 지원도 했겄지만. 다시 크롬웰 내려오고. 왕정 복귀할때. 1660-1688. 찰스2세 복귀와 제임스2세 내려오기전 때는 또 자기 재코바이트. 제임스들 북미간 애들 역시나 챙겨줬을 꺼고. 1715 이전엔 또 내전 하다가. 앤. 시절이지만. 이후 하노버 가문의 조지들이 또한 북미에 적극 물자를 보내는겨 이게.
저긴 영국입장에서. 시장으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던 곳이야.
스페인의 중남미는 달라. 여긴 금덩어리들이 있었걸랑. 더하여 말야. 기존 나름 아즈텍 잉카 마야 들이 있었어. 이들을 엔코멘데로 가 부리고. 이거 바이스로열티.체제로 행정체제에 편입하면서 얘들은 저기 뽑아먹는겨. 본토 사람들이 정착하고 개간하는게 아니라. 여긴 그야말로 거대한 시장이야. 가지고 내다팔 1차 산업들도 거대하고.
북미는 자기들이 캐내서 자기들 입에 넣기 바쁜겨 초기 백년은. 담배에 모피.나 본토에 줄까.
영국 입장에선 말야. 북미에서 이제 투자한 걸 뽑아먹을 때 쯤. 날라간겨 저게. 1776년. 이게 170년 된겨 시작부터. 이제 막 좀 갖고 올거 없을까 할때 쟤들이 독립하겄슈 한겨. 황당한겨 영국입장에선.
그리곤 이후 백년 안되서 남북전쟁 터진거고.
할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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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glish Civil War (1642–1651) was a series of armed conflicts and political machinations between Parliamentarians ("Roundheads") and Royalists ("Cavaliers") over, principally, the manner of England's governance. The first (1642–1646) and second (1648–1649) wars pitted the supporters of King Charles I against the supporters of the Long Parliament, while the third (1649–1651) saw fighting between supporters of King Charles II and supporters of the Rump Parliament. The war ended with the Parliamentarian victory at the Battle of Worcester on 3 September 1651.
잉글랜드 내전. 1642-51. 명예혁명 1688 로 가기 30년 전이야 이게. 영국 정체성의 중심.은 잉글랜드잖니. 이 잉글랜드.가 결국 세상을 지배하고 앞으로도 이게 세상을 지배하는거걸랑. 프랑스와 전혀 다른게 말야. 결국 이 내전의 힘이야. 얘들은 7왕국 체제.에서 알프레드 대왕님이 내전하면서 묶어주고. 정복왕 윌리엄이 노르망디에서 건너와서 한번 더 묶고. 다음 내전이 백년 전쟁 패배 후에 요크 랑 랭카스터.가 장미전쟁하면서 이걸 튜더.의 헨리7세가 묶걸랑. 튜더의 헤럴드리가 멋진겨. 랭커스터의 붉은 이파리로 요크의 흰 이파리를 감싼거걸랑. 이 후에 저 내전으로 잉글랜드.는 정체성을 아주 공고히 한거걸랑. 저기서 의회파가 중심을 확 잡는거야. 이 팔리어먼트.는 1215 앙주 제국 망하면서 생긴거고. 실지왕 존.이 땅 뺏기면서 영국을 만든겨 ㅋㅋㅋ. 어찌보면 팔리어먼트.의 4백년간의 투쟁의 승리여 저게. 원탁의 기사의 원탁들이 이긴거야 이게. 이게 영국의 힘이야.
프랑스.는 저걸 안한거야. 얘들은 정체성이 애매한겨 지금도. 얘들은 상대적으로 후져. 영국은 카이사르 부터 로마를 알았고 그 이전엔 원시 야만이걸랑. 프랑스 갈리아.는 페니키나 기원전 1200년 부터 남부 해변에서 시작한겨. 갈리아 애들은 고대 로마 약탈을 한적도 있어 기원적 300년 이전에. 카이사르를 잉글랜드보다 찐하게 만난 이들이야. 고대 로마를 직접 겪은 애들이야. 헌데 얘들은 조온나게 후져진게 지금 저 나라는. 자유니 평등이니 하면서 별 이민족애들이 문명인 대접받으면서 참 시안한 놀이 하는거걸랑. 가장 후진 영화제가 깐느 영화제여. 저 영화 작품들은 볼께 없어. 우쭈쭈 영화제여 저게.
프랑스 대학살 1789.가 그래서 나온겨. 6.8 혁명 어쩌고. 다 걍 폭동이여 폭동. 월드워 원 투.도 자기들 힘으로 해결못해. 저 육팔은 저 분위기에서 나온겨 걍 1789의 재현일 뿐이야.
잉글랜드.는 말이야. 저건 여자들이 만든 겨 저게. 이전 봤던. 앤 불린. 레이디 제인 그레이. 스콧 마리. 처형 당할때의 저들의 스피치. 그 말들이 말이지. 위대한거야 저건. 너무나 찐한 말들이야 진짜. 저 세 여자.는 위대한 여인들이야. 영국 이란 나라는 엘리자베쓰.가 저 세여인의 정신을 받아서리 스콧까지 정체성을 심은겨. 스콧 마리의 아들 제임스1세.를 만든건 엘리자베쓰야. 제임스1세. 평가를 못받걸랑. 바보 제임스라고 해. 헌데 영국은 이 바보가 만든겨.
제임스1세.(스콧 6세)는 진짜 애매한 입장이야. 엄마 스콧 마리.가 쫓겨난 상태에서 잉글랜드에서 포로아닌 포로가 되면서 있을때 한살.에 킹이 된거걸랑. 섭정 을 하는거지.
James VI and I (James Charles Stuart; 19 June 1566 – 27 March 1625)
Mary, Queen of Scots (8 December 1542 – 8 February 1587)
엄마 스콧 마리.가 잉글랜드에서 죽을때 제임스가 21세여. 엘리자베쓰는 스콧마리.의 숙모뻘이야. 제임스.는 손자뻘이야. 엘리자베쓰 아빠 헨리8세.의 누나 마가렛.이 스콧 마리.의 친할머니여.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외할머니.가 헨리 8세 여동생 마리 튜더.여 마리 튜더.가 앤불린 데리고 프랑스 루이12세 에 시집갔다가 바로 과부되고 와서리 서퍽 공작에 재혼해서 낳은 거걸랑.
엘리자베쓰.가 스콧마리를 죽였다 어쩌고 하는데. 저때 엘리자베쓰 나이가 54세여. 처녀여. 당근 제임스1세.를 후계자로 염두해야해. 저게 졸 애매한겨. 스콧마리를 죽여서 아들 제임스1세.가 이어가게 해? 이거 의사결정하기 애매한겨. 자기 엄마 죽인 애들을 저때 제임스가 나이 스물이 넘었어. 엄마를 죽인겨 친엄마를.
이 조선 빠닥같으면 연산군님 께서 다 아작을 낼 판에 말야.
연산군.과 제임스1세.의 이 차이가. 영국과 조선이란 미개집단의 차이야.
우리네는 연산군의 자식들인거야 이게. 노무현을 죽인 적폐. 저 친일적폐 다 죽여. 니덜이 연산군의 자식들인겨.
쟤들은 안그래 저게. 저 제임스1세.는 위대한 인간이야. 더하여 앤불린. 레이디제인그레이. 스콧마리. 아 정말 위대해 그 죽음의 장면은. 저건 정말 소설속에서 없는 장면이야 저건. 저런 정신이 영국과 유럽애들에게 있어. 저게 아가페야. 중세 천년 간 쌓인 기사도와 그리스도.가 저들에게 저리 스민겨.
저 그림자.를 아마 엘리자베쓰.가 제임스에게 드리워진 저걸. 엘리자베쓰가 다스리게 해준 걸꺼야.
제임스1세.도 스콧에선 꼭두각시야. 엄마 마리.가 쫓겨나듯이. 저 프레즈비테리언. Presbyterian. 존 녹스.가 칼뱅 한테 배워서 만든 장로교. 스콧은 얘들 세상이걸랑.
이 꼬마애가. 정서적으로 문제일 수 밖에 없어. 아빠 헨리 단리.란 이는 폭사 당한 애고. 엄마는 쫓겨났고.
섭정받으면서 클거 아닌감.
He fell from favour when Frenchman Esmé Stewart, Sieur d'Aubigny, first cousin of James's father Lord Darnley and future Earl of Lennox, arrived in Scotland and quickly established himself as the first of James's powerful favourites.[25]
Lennox was a Protestant convert, but he was distrusted by Scottish Calvinists who noticed the physical displays of affection between him and the king and alleged that Lennox "went about to draw the King to carnal lust".[24] In August 1582, in what became known as the Ruthven Raid, the Protestant earls of Gowrie and Angus lured James into Ruthven Castle, imprisoned him,[c] and forced Lennox to leave Scotland. During James's imprisonment (19 September 1582), John Craig, whom the king had personally appointed Royal Chaplain in 1579, rebuked him so sharply from the pulpit for having issued a proclamation so offensive to the clergy "that the king wept".[30]
After James was liberated in June 1583, he assumed increasing control of his kingdom.
제임스.가 에스메 스튜어트. 라는 프랑스 남자에게 빠져. 아빠 단리.와 사촌간이래. 24세 연상이야. 얘가 정서적으로 메마른걸 저 사람에게서 찾는겨 이게. 삼촌뻘이야. 레녹스 백작.을 줘. 코트의 프레즈비테리언 존녹스 후예들이 역겨워하는거지. 1582년. 16세때에 러스벤 Ruthven. 가문 애들이 자기네 킹을 감금하고 꾸짖는겨. 얘가 일년을 감금당해. 그리고 교회에서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비난을 하고. 울어 제임스1세가.
그리고서. 풀려나고. 4년후에 잉글랜드에선 엄마 스콧마리.가 처형당한겨.
자기는 프레비즈테리언 애들에게 공개적으로 욕먹고. 엄마는 저들에게 쫓겨나서 잉글랜드 앵글리카니즘 애들에게 처형당해.
그리곤. 엘리자베쓰.를 이어서리. 그레이트 브리튼과 아일랜드.의 제임스1세.가 된겨. 그레이트 브리튼.이란 타이틀은 잉글랜드 코트에서도 반대해. 스콧애들도 싫어해. 자기가 스스로 쓴거야 저건.
제임스1세.란 인간이 그래서 말야. 어려운겨 그 내면을 디다보는게. 이사람은 아기때 엄마 스콧마리.는 로마 카톨릭.인겨. 카톨릭 세례를 받아. 헌데 스콧은 프레즈비테리언. 장로교야. 잉글랜드는 앵글리카니즘. 성공회야. 다들 프로테스탄트지만. 이걸 다 인정해. 로마 카톨릭에 대한 처벌이 가혹하다고 완화시키고. 오히려 말야. 킹 입장에서. 킹이 모든 교회의 헤드. 수장이란 타이틀.이 나음을 알아.
The Gunpowder Plot of 1605, in earlier centuries often called the Gunpowder Treason Plot or the Jesuit Treason, was a failed assassination attempt against King James I by a group of provincial English Catholics led by Robert Catesby.
그러다. 화약 음모.란 사건이 터져. 카톨릭 애들입장에선. 제임스가 자기들 편을 들 줄 알았걸랑. 아닌겨. 암살 하려고 해. 이때부터 제임스1세.가 카톨릭에 반감을 가져. 가혹하게 대해. 집권 초기야 저게.
제임스 저거 바보 하걸랑. 엄마 마리 이야기도 잊은 인간. 지금 영국은 저 제임스1세.가 만든거야. 이 배후엔 엘리자베스.가 있었음에 틀림이 없어.
문제는 말이지. 제임스1세가 죽고나서. 자식부터인겨 이게. 찰스1세.
얘가. 카톨릭.이야.
이게 웃긴겨. 스콧 마리.의 복수.를 손자.가 하려는 거야 저건. 스콧 마리. 이야기는 저게 정말 찐한겨. 당사자들에겐 저건 한이 맺힌겨. 저걸 제임스1세.는 털어내버렸어. 헌데 웃기게도 이 이야길 담은 사람은 마누라 덴마크.의 안나. 앤 이야
Anne of Denmark (Danish: Anna; 12 December 1574 – 2 March 1619) was Queen consort of Scotland, England, and Ireland by marriage to King James VI and I.[1]
덴마크의 앤.은 덴마크 킹 프레데릭2세.의 딸이야. 동생이 크리스티안 4세 킹.이고. 전형적인 프로테스탄트여. 증조할아버지 프레데릭1세.가 조카 크리스티안2세.를 쫓아내고 프로테스탄트.를 심었걸랑. 쟨 경제정의 실현한다미 대기업 죽이고 영세업자 살리자 하다가 경제 개판 만들어서 쫓겨났다했잖오. 카톨릭세력으로 다시 권력잡으려다 쫓겨나고.
이 여자가 말야. 제임스와 결혼한게 1589년.이야 15세. 제임스 23세. 제임스.가 다른 여자들에게 관심이 없었어. 레녹스 백작에게 동성애를 느낀건지. 하튼 말야. 스콧 마리 1587년 죽고 2년 후에 결혼한겨.
이여자가. 자기의 프로테스탄트.에 강한 회의감이 드는거야. 더하여 말이지.
In the spring of 1590, James VI returned from Oslo after marrying Anne, daughter of the King of Denmark-Norway. The Danish court at that time was greatly perplexed by witchcraft and the black arts, and this must have impressed on the young King James. The voyage back from Denmark was beset by storms.
제임스.가 앤.이랑 결혼하고 노르웨이땅 오슬로.에서 배를 타고 오는데 봄에. 강한 폭풍을 만나서리 위험했걸랑.
The North Berwick witch trials were the trials in 1590 of a number of people from East Lothian, Scotland, accused of witchcraftin the St Andrew's Auld Kirk in North Berwick. They ran for two years and implicated over seventy people. These included Francis Stewart, 5th Earl of Bothwell on charges of high treason.
노쓰 버윅 마녀재판. 에딘버러 들어가는 포쓰 만. Forth 입구여. 여기서 마녀가 제임스1세 못 오게 폭풍을 만들었단 거지. 여자들을 죽여 재판을 하고. 저게 말야. 프레즈비테리언.들이라는 장로교 들이걸랑.
고문 열라게 하는겨. 제임스 1세.와 마누라 덴마크.의 앤.이 저걸 보는겨.
마녀사냥.은 카톨릭께 아냐 저게. 본격적인 마녀사냥 살해질들은. 프로테스탄트들이야. 이전 썰.
기가막힌겨 제임스 1세와 앤 입장에선. 미개한겨. 르네상스 시대야 유럽은. 저게 먼 짓인겨 저게.
저걸 덴마크.의 프로테스탄트.와 스콧.의 프레즈비테리언 들이 공동으로 조사해서 마녀를 잡았단 거걸랑.
더하여. 덴마크.의 앤.이 보기에 자기 시엄마.가 앵글리카니즘.에게 죽은겨. 저건 부당한겨 진짜. 스콧마리.는 억울해 저건. 카톨릭.이란 이유로 죽은겨 정치적 이유로. 어드래 말야 기사도 의 나라 인간들이 여자를. 그것도 퀸.을 죽이냐 말이지.
제임스1세.가 건파우더 음모.를 겪기 전이고. 잉글랜드 킹이 되기 전이야.
Charles I (19 November 1600 – 30 January 1649)
찰스 1세.를 저 이후 10년 만에 낳은겨. 1603년에 제임스는 잉글랜드 킹 겸하는거고. 얘를 엄마 덴마크.의 앤.이 카톨릭.으로 키우는겨. 당근 세례는 장로교 세례를 받을 수밖에 없어. 아이들은 퀸.이 키우는 거걸랑. 이 여자가 스콧 마리.이야기를 심는겨 어릴때. 앤.은 프로테스탄트를 버리고 카톨릭과 친해져. 코트에선 그래서 앤.보고 무신론자라고 욕질을 해.
이 찰스1세.가 로마 카톨릭이 되는겨. 이게 아주 웃겨. 이건 엄마가 심어준겨.
제임스1세.가 죽고. 찰스1세.가 카톨릭을 갖고 오는겨 1625년 나이 25세에 킹이 돼.
Henrietta Maria of France (French: Henriette Marie; 25 November[1] 1609 – 10 September 1669) was queen consort of England, Scotland, and Ireland as the wife of King Charles I. She was mother of his two immediate successors, Charles II and James II and VII.
즉위하는 해.에 결혼을 프랑스 앙리4세.의 딸 앙리에타 마리.와 하는겨.
앙리4세.가 위그노전쟁의 위그노 나바라.의 잔.의 자식이고. 종교전쟁 화해할라고 카트리나의 딸 마가렛과 결혼하는 주간에 성 바르텔레미 학살도 하면서 파리 잃을 수 없다느니 하고 카톨릭 개종.하걸랑. 딸 마리.가 아주 독실한 로마 카톨릭이야. 이여자랑 찰스1세가 결혼한겨.
이 여자 자식들이 찰스 2세.와 제임스2세여. 당연히 로마 카톨릭이 스미는겨.
Maryland 미국 매릴랜드.가 버지니아 바로 위여. 카톨릭 사람들이 프로테스탄트 피해서리 여길 들어오고. 여기 이름을 프랑스 앙리4세의 딸 마리.를 따서 매릴랜드.라고 해. 여긴 앵글리칸과 프레즈비언.이란 프로테스탄트.를 피해 온 영국땅의 로마카톨릭 사람들이 오는겨.
프로테스탄트 앵글리카니즘의 의회파.가 난리가 난겨 이거. 아 또 카톨릭이여? 다시 피의 마리가 재림하시는겨?
찰스1세.가 원래 저정도까진 아니었걸랑. 헌데 아빠 제임스1세.가 의회파에 당하는 듯 보이는 거야. 아무것도 할수 없는겨. 자기 시선에선 의회애들이 거대한 벽이야. 여기에 할머니 일들도 떠오르는겨. 의회.를 죽여야 해 얘 입장에선. 저기에 대항 할 힘은 카톨릭 세력들인겨 바닥에 엎드리고 있는.
그게 저 내전.인거야. 잉글리쉬 시빌 워. 1642-1651.
Lord Protector (pl. Lords Protectors) is a title that has been used in British constitutional law for the head of state. It is also a particular title for the British heads of state in respect to the established church. It is sometimes used to refer to holders of other temporary posts, for example, a regent acting for the absent monarch.
Parliamentarians ("Roundheads") and Royalists ("Cavaliers") over, principally, the manner of England's governance
프로테스탄트 의회파를 라운드헤드. 찰스의 로마 카톨릭 왕정파를 카발리예.
The Whigs were a political faction and then a political party in the parliaments of England, Scotland, Great Britain, Ireland and the United Kingdom. 1678
The Tories were members of two political parties which existed sequentially in the Kingdom of England, the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later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from the 17th to the early 19th centuries. The first Tories emerged in 1678 in England,
라운드헤드.가 휘그.가 되고 이들이 자유당이 되고. 자유민주당. 사회민주당.에서 노동당.이 되는겨.
카발리예.가 토리.가 되고 이들이 보수당이 되는겨.
노동당.의 시조님이 올리버 크롬웰.이란 애고. 이게 진보적 애들의 원래 공통점이야. 사람들 죽이는거 좋아하면서 인꿘 챙기며 정의 놀이하는게. 이건 모든 세계사의 공통이야.
미국 남북전쟁.을 시작한건. 북부애들이고 얘들이 지금 민주당이야. 섬터 요새.를 남부애들이 먼저 쳤다고 쟤들이 시작한게 아냐. 지금 민주당애들이 시작해서리 남부를 다 불태우고 약탈한게 민주당이란 소위 진보야.
라운드헤드. 의회파애들이 머리를 짧게 치는겨 바가지머리로 똥그랗게.
카발리에. 카바예로. 기사여 얘들은. 저걸 한글로 어드래 번역했냐 .. 어찌 번역한게 하나 없냐 저건. 기사당.이야. 둥근머리 원정당.
騎士党(Cavaliers)とは、イングランド内戦期から空位期、王政復古期(1642年 - 1680年)にかけ、イングランド王チャールズ1世・チャールズ2世父子に忠誠を誓い支持した人々を指す用語であり、敵対者である議会派(円頂党)
일본애들은 참 똑똑해.
기사야 기사. 기사도의 기사. 돈키호테들이야. 기사도와 그리스도를 함양한겨.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영화 시작에서 카발리예들.의 땅 이라할때의 저게 기사들의 땅이었다는겨. 기사들이 왕과 함께 하는겨. 저걸 단지 군주제 나뻐. 이리 보는겨. 역사의 후퇴란겨. 진보가 아냐. 진보적 인간이 되서리. 사람들 학살을 해야 진보인거지.
올리버 크롬웰,이 인간들 학살을 하고 말야. 얘 타이틀.이 로어드 프로텍터.야. 이걸 호국경 번역하걸랑.
護国卿(ごこくきょう、英語: Lord Protector)は、イングランド王国において王権に匹敵する最高統治権を与えられた官職。敬称は殿下(His Highness)。特にイングランドの清教徒革命(イングランド内戦)後に成立したイングランド共和国における国家元首としての官職を指すことが多い。
護國公(或譯護國主,Lord Protector),是英格蘭貴族(常為攝政王)或國家元首有時會持有的一個頭銜。亨利六世時的貝德福德公爵、愛德華七世時的第一代薩默塞特公爵愛德華·西摩都曾擔任過護國公。
ピューリタン(英語: Puritan)は、イングランド国教会の改革を唱えたキリスト教のプロテスタント(カルヴァン派)の大きなグループ。市民革命の担い手となった。日本語では清教徒と訳される。
일본분들이 호국경. 하셔서 호국경 하는겨. 중국분들은 존심있으셔서 호국공. 호국주. 하시고. 퓨리튼.을 청교도.라고 일본에서 번역한건데 말야. 일본애들이 이제야 저렇게 카타카나.로 그냥 다 쓰는거걸랑. 이게 가장 합리적이야. 굳이 한자로 번역할 이유가 없어 유럽 모든 말들을. 모두 걍 발음 나는데로 쓰는게 가장 좋은겨. 일본애들이 똑똑한겨 저게. 우리네는 저런 인식을 전혀 못하는데. 번역을 조작질 해서 하면서. 전혀 다른 뜻의 단어가 되어버리걸랑. 이건 아주 심각한거야. 일본애들이 이 문제를 알고 카타카나.로 그냥 소리발음으로 단어를 쓰는겨. 넘어가고.
저애가. 찰스1세. 모가지 짜르는 1649년 까지를. 잉글랜드내전 에서 따로 떼내서. 따로 청교도 혁명. 퓨리튼즈 레벌루션. 이라고 해 댔는데. 이젠 이따위 말은 안써
清教徒革命またはピューリタン革命(せいきょうとかくめい/ピューリタンかくめい、英語:Puritan Revolution または Wars of the Three Kingdoms)
다 저런 말이 메이지때 일본애들이 메이지이전 백년 전에 프로테스탄트애들이 쓴 유럽사를 보고 서사한걸. 우리네는 지금 저 일본애들의 저당시 번역을 몰래 한글화해서 가르치는거걸랑. 쓰지 말어 저따위 개쓰레기 말은.
The Wars of the Three Kingdoms,[b] sometimes known as the British Civil Wars,[c][d] formed an intertwined series of conflicts that took place in the kingdoms of England, Ireland and Scotland between 1639 and 1651
세 킹덤의 전쟁들. 이란건 잉글랜드 내전 2년 전에 잉글랜드를 벗어난 것 부터. 찰스 죽이고 스콧의 아들찰스2세 내몰고 까지의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스콧랜드 까지를 저걸로 규정하고 저걸 브리튼 내전들.이라고 따로 쓰는데. 걍 잉글리쉬 내전.으로 같이 봐.
Gentles 2007, p. 3, citing John Morrill, states, "there is no stable, agreed title for the events.... They have been variously labeled the Great Rebellion, the Puritan Revolution, the English Civil War, the English Revolution and most recently, the Wars of the Three Kingdoms."
프로테스탄트 빠는 애들은 그레이트 리벨리온. 레볼루션. 쓰는거지. 이렇게 안보면 그건 역사를 부정하는거고 홀로코스트 부인법 처럼 칠년 이하 징역 때려야 한다는거지.
참 저따위 발상은. 공산당 들이나 저따위 질을 할까.
똑같이 말야. 육이오. 일으킨 북조선을 찬양하거나 북조선 들의 이야길 동조하거나 남한이 일으켰다 등 하거나 북조선 애를 위인 한다거나. 똑같이 만들어 저들도 역사부인법으로 7년이하 징역 때리도록.
어떻게 반나치법 홀로코스트부인법.을 자기들 저것에 비유를 하지? 저것도 정작 만든 프랑스 애들조차 쪽팔리다고 위헌판결 나고. 미국애들조차 하지 않는 걸. 소위 진보란 들조차 저건 나치 들과 머가 다르냐 하는 저따위 법을 근거로 대는건 대체 멀까 이유가.
프로텍터. 란건 잉글랜드 에서 섭정을 프로텍터.라고 해왔어. 이 호칭을 올리버 크롬웰.이 걍 쓴겨. 얘는 이걸 쓰면서 정작 킹을 안둔겨. 영국사에서 유일하게 찰스1세 죽이고 찰스2세가 왕정복귀되는 1660. 11년간 킹이 없는겨. 올리버 크롬웰.이 병걸려 뒈져. 나이 60에.
Oliver Cromwell (25 April 1599 – 3 September 1658)
Richard Cromwell (4 October 1626 – 12 July 1712) was the second Lord Protector of England, Scotland and Ireland.
얘 아들이 리차드. 얘가 승계하는겨. 어느새 다이너스티.를 하는거지. 진보란 들은 항상 이따운겨 이게. 아빠 죽을때 나이가 32세야. 얘가 의회에 힘이 없걸랑. 대거 왕정파.와 장로교애들을 진입시켜. 장로교 애들은 잉글랜드에선 듣보잡이고. 여기서 내전이 생기는겨.
George Monck, 1st Duke of Albemarle, KG (6 December 1608 – 3 January 1670) was an English soldier and politician, and a key figure in the Restoration of the monarchy to King Charles II in 1660.
조지 몽크. 이 사람 인생이 파란만장한데. 아빠가 역시 의회 의원인데 억울하게 죽걸랑. 복수를 해. 웬수를 암살을 하고 외국으로 도망다니면서 용병하다가 전쟁들 참여하고 들어온건데. 그리곤 저 내전에 참전할때 아일랜드 도 가지만 아일랜드인들과 안싸워. 타협을 해. 그리고 찰스.를 크롬웰이 목짜르고. 다음 스콧에 찰스2세.를 치러 갈때 이사람이 주축인거야. 즉 올리버 크롬웰이 권력잡고는 군권을 조지몽크.가 쥔겨.
올리버가 뒈지고서. 다시 내전양상이걸랑. 모든 의사결정의 힘이 조지몽크 에게 있었어. 조지 몽크.가 그동안의 크롬웰들의 짓에 회의감을 느껴. 카발리예. 왕당파.의 손을 들어주고 쫓겨난 찰스2세.를 킹 자리로 앉히는겨. 1660. 이후로 1685. 죽을때 까지. 킹하고. 다음 동생 제임스 2세가 1688.에 또 쫓겨나는겨.
찰스2세.는 조지몽크.가 앉혀준겨. 조지몽크.가 그렇다고 열렬한 왕당파가 아냐. 오직 영국을 위해서 한 짓이야. 자기가 올리버 자리를 차지해도 됐어. 안한겨 이걸. 찰스2세.가 그렇다고 카톨릭 이지만 프로테스탄트 탄압을 못해 노골적으론. 아빠 목을 짤렸지만. 복수 할 힘이 없거니와. 조지 몽크.가 그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Charles was one of the most popular and beloved kings of England,[1] known as the Merry Monarch, in reference to both the liveliness and hedonism of his court and the general relief at the return to normality after over a decade of rule by Cromwell and the Puritans.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킹들 중에 하나야. 아빠 목까지 짤른 이들을 다 품은겨. 얘가 25년을 자리잡아. 군주자리를 회복했어. 다시 복수를 해도 돼. 안한겨 그딴짓.
쟤들은 엄청난 애들이야. 이 영국 이란 곳은. 제임스 1세. 찰스 2세. 그 선대의 앤불린 레이디제인그레이 스콧마리. 어마어마한 사람들이야.
이 조선 땅빠닥에선. 상상을 할 수가 없는 겨 저런걸.
오직 복수.
세상에 말야. 이전 정권의 킹들을. 지 주군님이 죽은건 적폐때문이라며 . 이전 킹들 두명을 깜빵에 쳐넣는 건. 이 곳 밖에 없어. 저런게 미개한 중남미에 동남아에 아프리카에서 또한 벌어지는 일이지만.
쟤들은 그런 짓을 안해. 저게 문명의 힘이야.
조지 부시 아빠와 클린턴은 웬수야. 떠나는 부시.가. 난 당신이 행복하길 바란다. 난 당신을 지지한다.라며 손편지를 줘.
오바마와 트럼프.는 웬수야. 트럼프는 오바마 욕질 햇어. 그런 트럼프.가 오바마의 손편지를 받고 졸라 땡큐 하는겨 고맙다고.
트럼프.가 당선될때 말야. 얼마나 언론의 비하질을 당했는지 아냐. 저 민주당 들이 장악한 언론이 카메라 조작질에 힐러리 연설장 사람 적은걸 꽉찬듯 카메라 잡고. 트럼프 연설장은 사람없는 듯 내보내고. 편협한 대선이었어 저게. 트럼프에겐 힐러리가 웬수여. 힐러리를 깜빵에 쳐 넣을 수도 있었어. 안해 그런짓.
그 바닥은. 저 영국 정치가들의 이야기가 스민겨 저게.
The Exclusion Crisis ran from 1679 through 1681 in the reign of King Charles II of England, Scotland and Ireland.
익스클루젼 크라이시스. 배제 위기. 찰스2세가 관용의 정치를 해. 헌데 찰스2세가 브라간사 가문의 캐서린.하고 결혼했는데 이여자가 유산을 세번해. 아이가 없어. 자식들이 열명이 넘는데 다들 미스트리스. 애인들에게서 낳은겨. 배스타드. 안적법 자식들이야. 찰스 나이가 50이 다 되가고. 이 후계권이 동생 제임스2세.에게 가게 생긴겨.
라운드헤드.였던 의회파애들이 조지몽크 때메 20년을 엎드리고 살은거걸랑. 헌데 제임스2세.가 또한 카톨릭이란 소문이 자자한겨. 엄마 마리.의 자식이걸랑 또한. 찰스2세는 품이 넓은 듯 보이던데 쟨 위험하단 말이지. 라운드헤드 들이 제임스2세와 그 자식들의 후계권을 배제하는 법안을 제출을 해. 세번을. 얘들을 이때부터. 라운드헤드.란 딱지를 떼고. Whig 휘그.당이라고 해. 1678. 여기에 맞서서 카발리예.를 버리고 Tory. 토리.당이 되면서 저걸 막아.
제임스2세.가 킹이 돼. 그리고 3년후에 결국 휘그.애들에 의해서 쫓겨나는겨. 토리들이 진거야. 휘그애들이 데려온게 침묵 윌리엄 증손자 오렌지 윌리엄.이야. 1688 명예혁명. 이게 별게 아냐 . 의회파 휘그들이. 너 이 네덜란드 촌놈들 잘 들으라우. 여긴 의회의 나라야. 우리 의원들 말 잘 들어라 잉? 하면서 큰소리로 읽어 협박하듯이. 여기에 오렌지 윌리엄이 선서.를 하는겨. 그리고선 다시 쫓겨난 토리.들이. 제임스2세.와 자식들 중심으로 재코바이트.가 되서리 국내외 에서 제임스들이 되서리 싸우는겨. 제임스2세의 손자.가 그래서 보니 프린스 찰리.이고.
명예혁명.이란건 휘그가 한겨. 토리.가 패했지만 저기에 또 들어가. 오렌지 죽고 처제 앤.이 퀸.하고. 다음 하노버 가문이 2백년 하는겨. 저기서 토리와 휘그가 그래도 의회에서 경쟁을 하는겨. 저게 영국사야.
The Battle of the Boyne (Irish: Cath na Bóinne IPA: [ˈkah n̪ˠə ˈbˠoːn̪ʲə]) was a battle in 1690 between the forces of the deposed King James VII and II of Scotland, England and Ireland and those of Dutch Prince William of Orange who, with his wife Mary II (his cousin and James's daughter), had acceded to the Crowns of England and Scotland[b] in 1688.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제럴드.가 오렌지랑 술집에서 싸울때. 제럴드.는 카톨릭이고. 카발리예.이고 그래서 왕당파에 제임스파야. 아일랜드는 올리버 크롬웰.은 세상에서 가장 머중에 머야. 히틀러보다 더 머야 ㅋㅋㅋ. 얘들은 크롬웰 이름이 가장 쌍욕이야. 저기서 언급된 보인 전투. Boyne 이 미드 카운티여. 더블린 위의 해변이야. 1690년. 명예혁명에 쫓겨난 제임스2세.병력을 오렌지 애들이 와서 진압하려는겨. 예전엔 올리버.가 웬수였는데. 이젠 오렌지 윌리엄.의 저 오렌지 놈들이 또한 웬수인겨. 이 오렌지.들이 오렌지 윌리엄이 13년 만 영국 킹 하고는 자식없이 죽은거걸랑. 그리고 앤.에 하노버의 조지들인데. 저 땅에 백년이 지나서도 오렌지들이 있는겨 제럴드.의 미드 땅에. 명예 혁명 이후의 영국은 결국 오렌지들인겨 상징이. 오렌지 윌리엄이 자식없이 죽었어도. 오렌지를 만든 애들이 하노버도 세운거걸랑. 감히 오렌지.들이 제임스들을 놀리는겨. 제임스.는 하노버가 서고 끝난겨. 하노버 때 다시 반란을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어. 하노버가문때 제임스 재코바이트 중심이. 보니프린스 찰리.여.
이 재코바이트.란 제임스.가 시안하게 말야. 프랑스 가서. 자코뱅.이 된겨. 여긴 거리 이름이 자코뱅.이걸랑. 제임스.의 불어발음인데. 저 제임스와 상관이 없어 이게. 성서의 제임스 야코보야.
스칼렛.의 아빠 제럴드.가 저 카발리예들이고 제임스들이었던겨. 아일랜드 인이지만. 이들은 이때 기사도의 기사가 된거야. 이들이 이때 처음으로 찰스와 제임스 라는 스콧 출신 잉글랜드 에 소속감 정체성을 갖게 된겨. 이 크기가 남아서 북아일랜드.가 브리튼에 남은거야.
프랑스에서 쫓겨난 위그노들과 아이티에서 쫓겨난 로마 카톨릭 프랑스와 프랑스 1789 대학살 십여년 기간에서 도망나온 귀족들이 남부로 들어가서 또한 카바예로 카발리에.가 되서리 브리튼에서 쫓겨난 카발리예들과 손을 잡는겨.
이 카발리예들이 뉴잉글랜드의 올리버 크롬웰 후손 양키들에게 무참히 짓밟힌게. 남북전쟁이야.
아 이거 오늘 다 마무리 하려했는데. 또 못하네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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