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야기를 훨 뒤에 해야 하는데 말야. 이 미국이란 나라.는 이해하기가 또한 가장 어려운 나라야. 아니, 유럽 나라들 모두가 말야 이해하기가 아주 어려워. 이건 누구나 쉽게 말할 수가 없어. 서양사가 애들도 유럽사를 일관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극히 적어.

 

특히나, 우리네는 전~혀 몰라. 우리네는 말야. 조선사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광인효현숙경영정순헌철고. 요것만 달랑 제각각 보면 돼. 각각애들별로 먼 사건이 일어났는가. 세상 역사 중에. 가장~ 간단한게 이 조선빠닥 역사야 이게. 얘들이 이전 1500년 역사를 모~두 지웠걸랑. 달랑 고려때 쓰여진 삼국사기 삼국유사. 조선때 얘들이 모두 태우고 지들 시선에서만 요약정리한 고려사. 요것 달랑 보면되는겨 걍. 또한 조선사.라는게 이전 1500년을 다 지워서리. 연관관계가 전혀 없어. 결국 이땅빠닥 2천년 역사 중에. 남은 것은 쟤들 5백년 이야기. 요거 하나야. 요것만 걍 보면 돼.

 

아~~주 단순해 이 조선사는. 일관된 맥락은 단 하나. 오백년간 상대는 소인배 적폐. 지들은 군자. 정의. 하면서 상대 찢어죽여온 오백년. 일본 중국 쳐들어오면 도망다니고 천자님 나라 도와줘 잉~. 중국 스텝에겐 마빡을 땅빠닥에 쳐박고 주위 민들은 오왕오왕. 내 임금아 우리두고 니 혼자만 도성에 들어가냐 이 개새꺄. 실록 기록이야. 하민서리 민초들은 노예로 잡혀가고 압록강 너머는 도망나온 조선 민들이 강 못건너서리 백골이 수북히 쌓이고. 건너오는거 도와주면 조선왕에게 찢어 죽임질 당할테니 못건너오게 하고. 38년 만에 도망나온 안단 이란 조선인은 조정 코트에서 잡아서리 청에 넘기고. 그러다 일본에게. 가져 갑쇼 잉~ 하고 걍 주고. 

 

 

저게 끝이야. 머 더 드갈게 없어 저게. 오직 자폐로만 살아온 조선이라 다른 나라와의 교류가 없어. 중국의 노예나라라서 중국 왕조사만 비교하면 끝이야. 조오온나 간단한겨 우리네 역사란게 말이지.

 

그래서. 뇌 구조가. 단순한겨. 선동하기 쉬운거고 이게. 

 

일본사 조차. 그래서 이해 할 수 있는 뇌구조가 안되는거야. 헤이케 모노카타리.가 서기 1200년대 초야. 명작이다 이거. 여기에 이전 66여개 나라가 있었다. 하걸랑. 쟤들은 천여년이 60개 이상의 나라들이 경쟁을 한겨. 얘들 역사가 그래서 어렵걸랑. 우리네가 일본사.를 이해하는 애들이 그래서 전혀 없는겨. 하나의 율령국을 이해하려면. 다른 60개 나라를 역시 동시에 봐야 하걸랑. 얘들은 여기에 병렬적으로 중국사를 볼 뿐이고. 이 뇌구조 자체가 유럽 모드.가 된겨 얘들이. 이 구조로 조총 들어올때부터 또한 유럽이 들어온겨. 유럽을 알게 된게 사오백년이여. 메이지때 정리를 할 뿐이야.

 

 

 

이 뇌구조 자체가. 아주 단순한 나라가 된거야 우리네가. 여전히 일본애들을 왜놈 일본. 이외는 없는겨 이게. 이땅 반 이상이. 일본사를 전 혀 몰라. 일본애들을 전혀 모르고. 조선사 너무나 단순하걸랑. 조온나게 위대한 조선인줄 아는겨. 왜냐면. 이 뇌구조로. 일본사 저 복잡한 듯 보이걸랑. 이해를 못하니. 걍 친일 적폐. 하고 마는거야.

 

하물며 말이지. 유럽사를 어찌 알수가 있누. 조선사 보듯 하는거야. 헨리8세땐 먼일있고. 엘리자베스.때 먼일 있고. 그때는 누구가 있었고. 걍 단순한 나열이야 몇글자. 한편 프랑스 루이6세.는 누구고 먼일있고. 루이 16세는 나쁜놈. 그래서 위대한 프랑스 혁명. 

 

전혀 맥락이 없어 저게. 해서 하나 하나 물고 늘어져 보면. 다들 이노믜 나라 저노믜 영지에 얽히고 섥혀서리 제대로 이해하려니 대갈이 빠개지는겨. 에이 걍. 조각조각 나라들. 왕조와 이름만 알고 말어. 그 이상 알려고 하지마.

 

해서 말야. 이땅빠닥 애들이. 저들중 어느 왕조사 하나 썰 풀려 하려는 듯 잘난체 함시롱 글을 써대다가. 함 깊게 파보고파도. 한 나라의 한 왕조.만. 안되걸랑 저게. 깊이 있는 분석이. 한 사람.의 배후 조차 수많은 인과의 숲이 있는겨. 저걸 파보다가 뇌가 얽혀서리 멍해지는겨 저게. 대충 쓰거나 포기 하고 말어.

 

조선 오백년은 정말 너무나 끔찍한거야 이게. 자기들의 편리를 위해서 자폐적으로 살아온 그 여파들이. 그 집단무의식의 후손들을 바보 뇌구조로 만들어버린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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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유럽의 절정이 미국이야. 미국사란게 단지 1776년 7월 4일.이 아냐. 이때까지의 유럽사.더하기 이때부터의 미국사.가 전체 미국사야. 즉 유럽의 저때까지 이야기를 모르고선. 미국을 이해할 수 없는겨.

 

 

사람이란건 교육의 산물이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과 윤리학.의 대전제야. 이건 항진명제야. 

 

사람이란건 그 이전 문명사.의 쌓임에서 뻗은 한 가지.의 끝자락일 뿐이야. 한자.로 후예.라고 하는겨 한자 뜻이 갑골문이.

 

예. 가 겨레.여. 예.라는 한자가 옷 글자야. 옷자락 끝이야. 저걸 우리네는 겨레.하고 한겨. 

 

인간은 그 이전 사람들의 옷자락.의 끄트머리 일 뿐이야. 여기서 옷.이란건 문명사가 젖은 무의식.이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전하는겨. 교육이란게 학교가서 배우는게 전부가 아냐. 태어나서.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그 부모 로 부터 이어지는겨. 일상의 언어와 태도들로 배우는거야 인간은. 이 인간의 사고방식.은 그래서 절대 부모.를 벗어날 수가 없는겨 이게. 그 바닥의 수천년의 사람들의 정신사.를 벗어날 수 가 없어. 

 

태아.도 꿈을 꿔. 

 

쟤들 유럽애들은 저 복잡한 인과의 숲의 역사를 말야. 태어날 때 부터 본격적으로 습하는겨. 부모와 동네와 그 사람들로 부터. 말 소리 하나 주위 풍경 사람들 냄새. 이걸로 그냥 자연히 습하는거야 이게.

 

 

우리네 역시. 어릴때 부터  테레비는 위대한 조선. 늙다리들은 도포자락 입어대고 에헴 해대고. 조선 조선 민족 백의 민족. 저항의 역사. 일본 개개끼. 이런걸 주위 인간들과 테레비와 문화와 것들로 아주 세뇌.가 되는겨. 

 

지들 정의.만 정의가 되는거고. 지들의 역사.만 위대해 보이는거고. 상대는 괴물.인거고. 지들 이념의 집단은 억울한 집단이고 정의로운 집단인거고. 

 

정신병만 만드는겨 저게.

 

저런 걸 털어버리고 말야. 벽을 걷어치워. 세상에 벌어진 일들은 다 이해할 수 있어. 이건 항진 명제야. 신이 있는가 없는가 이건 몰라. 믿음 이란 억지 명사를 끌어내야 해. 헌데 인간의 얽히고 섥힌 이야기.는 아무리 복잡해도 이해할 수 있어. 이건 믿음 이란 말이 필요가 없어. 이건 확신을 가져. 글만 읽을 수 있는 능력이면 어느 누구 도 모두 가능해. 짐처럼.

 

항진명제야 이건.

 

벽이 있으면. 못해. 아무리 하려 해도. 온전함 이란 추상명사.가 가장 최고의 신이야 저게. 지금까진. 짐이 만드신 말이야. 아 짐께선 위대한겨 이게. 이 이상의 또는 다른 명사.가 멀까.를 고민해야 하겄지만.

 

 

 

일본은 엄청난겨. 겐지모노카타리. 보고 뿅 갔다 진짜. 저게 세계 최초.의 장편소설이야. 이건 정확해. 고대그리스 로마 빼고. 서기 천년이여 저게. 1500-2000페이지여. 음청난겨 저거. 내용 자체도 최고의 로망스여. 저건 세계 최고책들 탑 백에 쳐 넣어야 해. 저걸 영어로 맛을 쟤들은 제대로 몰라. 헤이케 모노카타리.도 쟤들식 기사소설이여 저게.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라이브러리 해봤자 롤랑의 노래 엘시드의 노래.는 시 일뿐이고. 소설은 끽해야 15세기여 오래된게. 돈키호테.는 최초의 근대 소설.이란 근대 딱지를 붙일 뿐이야. 영어로 된 소설이라봤자 아서왕의 죽음 15세기여 시작이.

 

일본애들이 저게 엄청난겨. 헌데 저걸 쟤들 스스로는 잘 몰라. 쟤들만의 글로 만요집에 고금화가집.의 수천편을 썼어. 이 시모음 조차도 게르만애들이 못따라와. 시기와 물량과 품질이. 

 

이전 또 일본 기사 번역한거에. 일본 학자랍시고. 일본애들 연호 를 아베가 만요집에서 갖고온다 저거 국수주의다 중국보다 낫다고 자위하려는거다.

 

일본애들은 있잖냐. 자기들이. 중국 보다 조오온나게 후진줄 알았어 에도 막부 말까지. 조선도 중국 수준인줄 알았어 에도까지. 저 거대한 천장이. 메이지때 깨진겨. 쟤들도 놀란거야. 중국이 이리도 후진겨 이거? 어드래 베이징이 똥천지에 개돼지가 똥을 처먹는겨 저거? 조선에 대한 환상은 임란때 깨지기 시작한거고. 얘들도 한양 입성할때 놀래. 한강 넘어갈때 눈치 보면서 건넜걸랑 기습이 있을 줄 알고. 한양도성은 한강이 거대한 방패막이걸랑 저게. 아~~무도 없어. 남대문 들어가는데. 아~무도 없어. 동대문에 가토가 들어가는데 역시 아~무도 없어. 어찌 이럴수가 있나? 쟤들 어록이야 저게. 임란때 한양 들어갈때. 이건 말도 안되는겨 진짜.

 

 

중국 조선에 대한 한심한 환상이 메이지때 깨진겨. 청일전쟁. 얘들에겐 이건 기적이여 기적. 상상을 못한겨 이긴게. 헌데 지도부애들은 당연히 이길꺼라 생각했걸랑. 직접 중국을 보고. 놀란겨 얘들이. 너무나 후져서. 또한 조선. 반도인.이란 소리가 메이지때 나온겨. 어찌 저럴수가 있지? 얘들이 놀래. 헌데 이 시선이 그대로 역시나 쟤들이 조선민국을 바라보는 시선인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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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남북전쟁.은 얘들이 서로 얘기는 안하지만 말야. 이긴 애들이나 진 애들이나. 조온나게 쪽팔린게 이 남북전쟁이야. 

 

남부.입장에선 말야. 정말 피가 끓는겨 이건. 양키.들은 웬수중에서도 웬수야. 특히나 마지막엔. 양키에겐 영웅이겄지만. 그 이전 글에 마칭 뜨루 조지아.의 셔먼.이 조지아 입성해서 관통하면서 갈때의 양키애들 승리의 노래여 그게. 저걸 일본가 받아서리 동경절.만들고 우리네는 독립군가를 만들어. 이걸 애국가로 쓰려했대 ㅋㅋㅋ. 한미일.은 하나의 나라야.

 

scorched-earth policy is a military strategy that aims to destroy anything that might be useful to the enemy while it is advancing through or withdrawing from a location. Any assets that could be used by the enemy may be targeted, for example food sources, water supplies, transportation, communications, industrial resources, and even the local people themselves  

 

셔먼.이 말야. 조지아 입성하면서 조지아를 다루는 전략이. 스코치드 어쓰.여 이전에 폴란드리투아니아.애들이 튜튼 십자군 굶기기 전쟁 할때 언급했었던. 데스몬드 반란 진압할때 엘리자베스1세때도 언급된. 저건 포위 siege 할때 쓰던 거걸랑. 주위의 병참. 보급을 다 태우고 깨부셔서리. 항복을 받겠다는겨 저건.

 

북군의 셔먼.이 테네시.에서 내려오면서 조지아.를 다 태우는겨. 

 

The Battle of Atlanta was a battle of the Atlanta Campaign fought during the American Civil War on July 21, 1864, just southeast of Atlanta, Georgia. Continuing their summer campaign to seize the important rail and supply center of Atlanta, Union forces commanded by William Tecumseh Sherman overwhelmed and defeated Confederate forces defending the city under John Bell Hood. Union Maj. Gen. James B. McPherson was killed during the battle. Despite the implication of finality in its name, the battle occurred midway through the campaign, and the city did not fall until September 2, 1864, after a Union siege and various attempts to seize railroads and supply lines leading to Atlanta. After taking the city, Sherman's troops headed south-southeastward toward Milledgeville, the state capital, and on to Savannah with the March to the Sea.  

 

애틀란타.가 7월에서 9월. 50여일간 전쟁이야. 남군은 테네시.에서 계속 내려오는겨. 가장 중요한게 철도여. 셔먼애들은 막히면 그냥 우회해서 계속 내려가는거고. 남군애들은 내려오는 애들 막으려고 같이 내려가서 진을 치는거고. 북군이 전력이 탁월한겨 저게. 그러다가 애틀란타 에서 결정적으로 부딪힌건데. 저게 9월2일.에 함락이 된거야. 

 

The Battle of Gettysburg (locally /ˈɡɛtɪsbɜːrɡ/ was fought July 1–3, 1863, in and around the town of GettysburgPennsylvania, by Union and Confederate forces during the American Civil War. The battle involved the largest number of casualties of the entire war and is often described as the war's turning point.[12][13] Union Maj. Gen.George Meade's Army of the Potomac defeated attacks by Confederate Gen. Robert E. Lee's Army of Northern Virginia, halting Lee's invasion of the North.

 

남북전쟁.은 이전해 7월초에.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로버트 리.가 패하면서. 이때 이미 대세는 끝난겨 이게. 게티스버그.가 버지니아 넘어서 바로 펜실버니아 주.에 있는 남쪽접경지여. 여기서 패하고 끝난겨 이게. 각각 2만명 이상씩이 사상자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애틀란타 시민들이 사망자 명단 보면서 우는 장면이 저 전투걸랑. 저 이후 일년 지나서리 셔먼이 내려오는겨 위에서.

 

 

Sherman's March to the Sea (also known as the Savannah Campaign or simply Sherman's March) was a military campaign of the American Civil War conducted through Georgia from November 15 until December 21, 1864, by Maj. Gen. William Tecumseh Sherman of the Union Army.   

 

얘가 동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싸그리 태우는겨. 저때 스코치드 어쓰. 를 썼던거야. 애틀란타 함락되는 날.이 멜라니 애기 낳고 바로 밤에 레트.가 마차 구해서리 벗어나서 얜 참전하러 가고 스칼렛은 욕 퍼붓고 혼자 끌고 타라 가고. 이 타라.가 애틀란타 바로 밑이야. 저 작전이 11월 15일 에서 12월 21일 까지였다지만. 걍 저때부터 다 태우기 시작한거야 저.들은.

 

남군의 로버트 리.는 버지니아 위로 해서 펜실베니아로 갈땐 말야. 저때가 늦봄에 여름이걸랑. 농작물 절대 건들지 말고. 태우지 말고. 저거 다 우리 미국인들이고 민들 소유다. 엄명을 내리걸랑. 약탈하지 말라. 보급품만 챙겨라. 

 

저 남부 사람들은. 기사도에 절절한 사람들이야. 재들은 스스로를 카발리예.라고 불러. 이게 돈키호테 스페니쉬 카바예로. 기사여. 

 

There was a land of Cavaliers and Cotton Fields called the Old South ... 

영화 시작하자 마자 자막이 나와. 카발리예들과 목화밭, 올드 싸우쓰.로 불린 땅이 있었다...

 

 

Look for it only in books, for it is not more than a dream remembered, a Civilization gone with the wind ...

 

그곳을 책들에서만 찾아들 보거라, 왜냐하면 기억속의 꿈 뿐 그이상은 아니다, 바람과 함께 가버린 어떤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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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선

 

 

And if we folks have a motto, it's this: 'Don't holler--smile and bide your time.' We've survived a passel of things that way, smiling and biding our time, and we've gotten to be experts at surviving. We had to be. We've always bet on the wrong horses. Run out of France with the Huguenots, run out of England with the Cavaliers, run out of Scotland with Bonnie Prince Charlie, run out of Haiti by the niggers and now licked by the Yankees. But we always turn up on top in a few years. You know why?"

 

우리네들은 어떤 한 좌우명이 있어. 이건데. 살아남은겨. 최고로 살아가는거고. 울면서 소리지르지 말아라...웃어라 그리고 너의 시대를 관찰하며 조용히 기회를 노려라. 우리는 많은 일들 속에서 살아남았단다 그런 식으로, 웃으면서 시대를 참아내면서, 그리고 우리는 생존의 전문가가 되어버렸단다. 우리는 그래야 했다. 우리는 언제나 베팅해왔었다 패하는 말들에. 프랑스에서는 위그노들 편들다가 나왔고, 영국에서는 카발리예들 편들다가 나왔고, 스콧에서는 보니 프린스 찰리 편들다가 도망나왔고, 아이티에서는 깜뎅이들에 쫓겨 나왔고, 지금은 양키들에게 발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몇년 안가서 항상 최고자리로 서왔어. 너 왜그런지 알겠어?

 

 

 

저 말에 유럽사가 찐하게 스민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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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이 만으로 딱 4년이야. 셔먼의 조지아 불태우기.이후 사개월 만에 항복선언을 하고 끝난거지만. 쟨 저걸 할 필요가 없었던겨 저게. 조지아.가 길목이걸랑. 그 위로 산맥 동쪽으로 버지니아에 있는 남군 병참 보급을 차단하겠단 전략이걸랑. 조지아 철로를 통해서 왼쪽 남부주에서 보급을 받아서도 저리 가는거고. 애틀란타 철도.가 핵심이 된겨. 더하여 사바나 까지의 조지아 동남쪽 항구들을 차단하겠다는거고. 

 

남부군은 저런 짓은 하지 않은 거걸랑. 

 

그래서 어쨌거나 셔먼의 저 짓으로 더 빨리 항복을 받아냈다 할수도 있지만. 오바야 그런 해석은. 이미 이 전에 께임은 다 끝난겨. 오히려 이후의 남부 사람들의 증오만 더 키운거지. 

 

Lee told the Committee, "...every one with whom I associate expresses kind feelings towards the freedmen. They wish to see them get on in the world, and particularly to take up some occupation for a living, and to turn their hands to some work." Lee also expressed his "willingness that blacks should be educated, and ... that it would be better for the blacks and for the whites." Lee forthrightly opposed allowing blacks to vote: "My own opinion is that, at this time, they [black Southerners] cannot vote intelligently, and that giving them the [vote] would lead to a great deal of demagogism, and lead to embarrassments in various ways."[149][150]  

 

로버트 리.가 증언한 말이야. 나와 같이 한 모든 사람들은 해방된 사람들. 흑인노예들에 대해 친절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 사람들(남부인)은 그들(흑인들)이 세상에서 진보해 나가길 보고 싶어 한다. 특히나, 생계를 위해 어떤 직업이라도 취하길 바란다. 그래서 그들이 다른 일들로 직업전환이 되기를. 리는 또한 말했다 그의 의지를. 흑인들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그리고, 그게 흑인들과 백인들 모두에게 더 좋을 거라고. 리는 흑인들에게 투표권 부여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했다. 내 자신의 의견은, 지금 시대엔, 그들(남부 흑인들)은 이성적으로 투표할 수 없다, 그들에게 투표권을 주는건 결국 무수한 선동만 낳을 뿐이고 여러방식으로 혼란만 자초할 뿐이다.

 

저게 로버트 리. 장군 개인만의 의견이 아냐. 저게 남부 사람들의 대부분 생각이었어.

 

 

저게 맞어 저게. 저 후유증의 쌓임이 지금 미국의 아주 해결할 기 힘든 문제가 된겨 저게. 민주당 애들은 저기에 포퓰리즘으로 대변할 뿐이야. 

 

아프리카 흑인들은. 특히나 문명이 전혀 없었어. 저들은 대부분 사하라 이남.이야. 여긴 포르투갈 세우타 1415년.이후에나 세상에 드러나는거야. 이전엔 무슬림.들이 북아프리카에서 내려가서 저들을 노예사냥해서 노예장사를 한 것일 뿐이고 무슬림 출현이후 8백년동안을. 

 

유럽에 흑인노예들이 오는건 저때 부터해서리 네비게이터 헨리시절에 카베보르데. 서아프리카 끝.까지 가면서 저때부터 전투하게 되는 흑인 원주민들 부터야. 포로들을 노예로 포르투갈로 델꼬가는겨. 

 

사하라이남.은 페니키아 고대그리스로마.때도 저긴 몰라. 중세 천년도 저긴 암흑이야. 세계 지도 그릴때도 저긴 전혀 몰라. 이븐 바투타. 모로코 마리니드 때 14세기에 이사람이 사하라 잠깐 너머 다녀오고 쓴 것 부터 알게된겨 저게. 인류사에서. 

 

저들은 인류 문명사. 수메르 기원전 6500년 이후부터도. 아무런 문명이 없었어. 세상에서 가장 뒤처진 곳이야. 에티아피아 빼고. 에티오피아.는 엄청난 나라야 여기가. 얘들 역사도 어마어마한겨.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가장 비난받는게 말야. 흑인들을, 백인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들.로 묘사한거걸랑. 그것에 만족하는 흑인들.로 묘사를 하고. 

 

차갑게 봐야해. 저게 맞아. 저 안에서 흑인들은 문명을 배워가기 시작한거야 저게. 저때가 되서야.

 

 

The Auxilia (Latin, lit. "auxiliaries") were introduced as non-citizen troops attached to the citizen legions by Augustusafter his reorganisation of the Imperial Roman army from 30 BC  

 

아욱실리아. 조동사 할때 오그질리어리.여. 보조군단병들. 이야. 로마 아우구스투스.때 만든 이민족들. 특히나 게르만 갈리아족.들에게. 너희들 로마군단병을 하면. 로마 시민권.을 주마. 로마는 병역이 징집이 아냐. 전쟁날때 각 구역별로 추첨해서 그 지역 시민들이 일년 단위로 복무를 한거걸랑. 얘들에게 군대는 명예 그 자체야. 이들의 정체성.은 엄청난거야. 제국이 커지면서 방위를 위해 군체제를 개편하는겨. 이민족을 쓰는겨 저때. 

 

로마 시민권.이란건 귀한거야. 로마 시민.이란건 그만큼 문명인의 자격이 있다는겨. 게르만 갈리아.는 원시족이여 쟤들은.

 

Significant development of the Auxilia appears to have taken place during the rule of the emperor Claudius (41–54 AD).

A minimum term of service of 25 years was established, at the end of which the retiring auxiliary soldier, and all his children, were awarded Roman citizenship.[41]   

 

클라우디우스. 때엔 의무복무가 25년이야. 이걸 마쳐야 시민권을 줘. 자식들에게도 다 주는겨. 저 의미는. 25년을 직접 군대에서 로마를 배워야 원시에서 문명으로 거듭난다는 거야 저건. 단지 고마와서 주는게 아냐 시민권을. 강제로 징집하는게 아냐. 자발적으로 하는겨. 자발적으로 해야 해 군인이란건. 전쟁이란 기세싸움이야. 정체성 망치는 군인은 적과 다름이 없어. 로마가 전쟁만 하면 승리하는 이유야 사상자가 거의 없었어 한창때의 로마는. 로마가 망한건 저 시민권을 걍 로또식으로 뿌린 카라칼라 때 망한겨. 로마 시민이라는 정체성이 사라진겨. 저 이전의 로마인과 이후의 로마인.은 달라.

 

 

저런 게르만 갈리아 조차. 페니키아 지중해 기원전 1200년.의 해변을 알아. 이후 고대 그리스.에 고대 로마.를 침입해 들어가 전쟁하던게 쟤들이야. 저 천년의 간접 경험이 저들에게 있어. 그리고 로마제국에 편입이 되서리 25년이라도 해야 문명을 이해할까 말까야. 결국 얘들이 저 이후 사백년 로마를 익혀서리 로마를 망 시키고 주인이 된거걸랑. 그리곤 자기들의 언어와 사유로 중세 천년을 시작하는거걸랑. 

 

아프리카 저 사하라 이남의 흑인들은. 저런 것 조차도 없는거야. 

 

 

그냥 걍 인간은 평등하다. 다들 같다. 서로 같은 자격으로 살자. 맘껏 누려라.

 

The Emancipation Proclamation, or Proclamation 95, was a presidential proclamation and executive order issued by United States President Abraham Lincoln on January 1, 1863. It changed the federal legal status of more than 3.5 million enslaved African Americans in the designated areas of the South from slave to free.  

 

남북전쟁 기간.에 아브라함 링컨.이 일명 노예해방선언.을 하는겨. 노예들은 자유다. 라고 하지만. 저건 링컨 이 쓴 말이지만. 이맨시페이션. 이란건. 라틴어여 자산. 재산.이 명의가 바뀐겨 이건. 노예에서 벗어나다. 자유 가 아냐. 노예.를 벗어난겨. 노예를 벗어나면. 자유인. 이야?

 

프리덤. 프라이하이트. Freiheit 란건. 문명인.이라는 시빌리언. Civilian. Citizen. Citoyen. 시티즌. 시톼옝. 의 프리덤.일 뿐이야. 문명속에서 야만이 프리해지면. 문명이 죽어 야만의 프리.에 

 

아브라함 링컨.이란 이는 양키들에게나 위인 영웅이지. 남부애들에겐 사탄이야 저건. 

 

쟤가 지금 미국의 문제.를 저때부터 만들기 시작한거걸랑. 

 

얘들은 제대로 했어야 했다면. 아프리카 흑인들에게 돈을 얼마 보상해주던가 하고. 아프리카.로 다들 보냈어야 해. 그게 흑인들을 위하고 백인들을 위한거야. 

 

 

Around 52 people are murdered in South Africa every day.[12] The murder rate increased rapidly in the late-1980s and early-1990s.[13] Between 1994 -2009, the murder rate halved from 67 to 34 murders per 100,000 people.[14] Between 2011-2015, it stabilised to around 32 homicides per 100,000 people although the total number of lives lost has increased due to the increase in population.[12] There have been numerous press reports on the manipulation of crime statistics that have highlighted the existence of incentives not to record violent crime.[15] Nonetheless, murder statistics are considered accurate.[16] In the 2016/17 year, the rate of murders increased to 52 a day, with 19,016 murders recorded between April 2016 to March 2017.[17] In 2001, a South African was more likely to be murdered than die in a car crash.[18]  

 

The country has one of the highest rates of rape in the world, with some 65,000 rapes and other sexual assaults reported for the year ending in March 2012, or 127.6 per 100,000 people in the country.[22][23] The incidence of rape has led to the country being referred to as the "rape capital of the world".[24] One in three of the 4,000 women questioned by the Community of Information, Empowerment and Transparency said they had been raped in the past year.[25] More than 25% of South African men questioned in a survey published by the Medical Research Council (MRC) in June 2009 admitted to rape; of those, nearly half said they had raped more than one person.[26][27] Three out of four of those who had admitted rape indicated that they had attacked for the first time during their teenage years.[26] South Africa has amongst the highest incidences of child and baby rape in the world.[28]  

 

저게 남아프리카 공화국.이걸랑. 얘들이 지 20. G 20 에 유일한 아프리카 가입국이야. 그나마 제일 잘 사는겨 아프리카에서. 경제규모로 나이지리아 다음 2위야. 나이지리아.는 지디피는 높지만 최빈자들이 반가까이야. 끔찍해. 남아공의 범죄율. 매일 52명이 살해가 돼. 서기 1994년 부터는 죽 더 올라가다가 찍고 내려온겨. 그러다가 다시 증가 추세. 세계 10위. 다 중남미에 아프리카. 강간율 최고. 

 

1994년.이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되고 쟤들만의 공화국 설때야. 지금도 심심하면 외국인 살해 폭력 . 물론 흑인님들이 하는거지 지들 세상이니까. 기사들 보믄 소말리아 등에서 온 무비자 흑인애들 상대하는겨. 얘들은 말야. 똥남아도 그렇고. 이들은 지들보다 못하다 여기는 애들에겐 더 인종차별해. 그것도 대놓고. 그리곤 백인이 인종차별 한다 해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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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프리카는 죽음의 땅이야.

 

예전에 신문에 미쳤을때. 처음 항상 보는게 국제면이야. 세상은 참 끔찍하더만. 특히나 말야. 아프리카에 중남미. 지옥이야 저긴. 이땅빠닥 애들은 국제면에 관심이 없어서 먼말인지 모를텐데.

 

 

인권 부당 어쩌고 인종차별 싫으면. 니덜 뿌리들의 나라로 가면 돼. 

 

안가.

 

무슬림애들도 똑같아. 차별당하는거 같어? 니덜 나라로 가 그럼.

 

안가.

 

 

 

그럼 쟤들 문명을 배우던가 바닥바닥을.

 

안해. 

 

양키껄 왜 배워. 적폐들껄 왜배워. 우리네 뿌리가 있고. 우리네들을 학살한 애들인데 우리네 위대한 민족들을 괴롭힌 애들이고. 보상해 보상. 안가 안해. 

 

 

Martin Luther King Jr. (January 15, 1929 – April 4, 1968) was an American Baptist minister and activist who became the most visible spokesperson and leader in the civil rights movement from 1955 until his assassination in 1968. Born in Atlanta, King is best known for advancing civil rights through nonviolence and civil disobedience, tactics his Christian beliefs and the nonviolent activism of Mahatma Gandhi helped inspire.    

 

Malcolm X (1925–1965) was an American Muslim minister and human rights activist who was a popular figure during the civil rights movement. He is best known for his controversial advocacy for the rights of blacks; some consider him a man who indicted white America in the harshest terms for its crimes against black Americans, while others accused him of preaching racism and violence.  

 

마틴 루터 킹. 말콤 엑스. 조오오온나게 후진애들이야 그래서 쟤들이. 먼저 말야. 니덜 스스로 정신차리고 좀  시티즌 다운 시티즌이 되자. 우리 흑인들이여! 군대에 적극적으로 갑시다! 했어야 해

 

로마애들이 정말 똑똑한겨 슬기로운거고. 가장 문명을 습득시키기 좋은건. 군대여 군대. 쟤들은 군대 다녀온 흑인애들에겐 대하는게 달라 그래서. 

 

 

흑인이나 황인들이 문제가 머냐면. 쟤들 이야기들을 배우겠다는 것 자체가 거부감이 있걸랑. 색깔이 다르걸랑. 먼가 어색한겨. 게르만 갈리아 를 내가 왜배워? 로마 그리스 를 내가 왜배워? 레반트를 내가 왜배워? 뿌리가 전혀 다른데.

 

이 태생적으로 이질감.이 찐한겨 이게. 이게 가장 커다란 벽이야.

 

 

우리네 아시아.특히 이 동아시아.가 참 슬픈건 말야. 인도 역사도 어마어마 하걸랑. 인도네시아도 벵갈만 오른쪽 미얀마 태국 라오스 베트남. 여기도 만만 찮아 이게. 중남미 애들에 비하면 말야. 아시아 대비 쟤드른 미개 그 자체걸랑. 

 

헌데. 중남미 애들 조차. 아시아.를 향해서 눈찢기 놀이 비하놀이를 하걸랑.

 

헌데 저게 팩트여. 쟤들에게 비하 당할 정도로 아시아인들이. 조오온나게 후져진겨.

 

콜럼버스 1492년 부터 쟤들은 문명이 시작된 거걸랑. 3백년 피터지게 당하면서 그속에서 습득하고. 언어 자체가 스페니쉬에 포르투갈어.가 되면서. 쟤들이 아시아를 앞선겨. 지쩍 수준이. 스페니쉬 포르투기즈.로 유럽 이야길 쟤들은 쉽게 습득을 하게 된거걸랑. 서기 부터만 따져도 말야. 1500년 늦은 애들이 500년 만에 앞선거야 아시아를. 

 

우리넨 아프리카 흑인보다 못해. 비슷한 지쩍 지능 수준인데. 쟤드른 유쾌하기나 하걸랑. 춤추며 노는 애들이야. 더하여 신체적 우월감이 있기도 하지 저 깜뎅이들은.

 

우리넨. 일본와 양키.의 보호덕으로. 지금 이나마 이렇게 살아온겨. ㅋㅋㅋ. 아 눈물때리지.

 

 

요즘 미드랑 양키 영화도 못봐주겠더만. 베네치아 이야기에 도제와 딸이 흑인이고. 하와이 파이븐가는 아시안들이 정의로운 슈퍼캅에. 흑인이 스파이더맨에. 어색하지 저게 집중이 안돼 집중이. 그런다고 평등해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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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 주.가 애팔래치안 산맥 동쪽에서 독립을 해. 1776년.

 

그리고서리. 산맥을 넘는겨. 이 산맥넘어서 오대호 아래는. 프랑스 땅이야. 이걸 뉴 프랑스.라고 해.

 

New France (FrenchNouvelle-France) was the area colonized by France in North America during a period beginning with the exploration of the Gulf of Saint Lawrence by Jacques Cartier in 1534 and ending with the cession of New France to Great Britain and Spain in 1763 under the Treaty of Paris (1763).    

 

뉴 프랑스. 1534-1763. 자크 카티예.가 발견한 연도부터 지들은 시작 이라고 해. 정착은 70년 후인 1600년 지나서야 성공을 해. 정착을 지금 미국 맨 북동쪽 끝 메인.주 끝 노바스코샤. 뉴 브린즈윜.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 라는 지금 더 마리팀 The Maritimes, also called the Maritime provinces (FrenchProvinces maritimes) or the Canadian Maritimes, 에서 시작하는겨. 해안들. 해서 지금 여긴 캐나다 땅이지만. 프랑스어.도 같이 쓰는 이유야. 

 

저기부터. 세인트로렌스 강을 따라서 오대호 쪽으로 쑥 들어와서리 퀘벡. 몬트리올.에 정착을 하는겨 저 이후에. 그리고 더 내려와서리 오대호를 계속 타고 내려가다가 그 브이자 V 형상인. 오하이오 강.과 미시시피가 만나는. 일리노이. 인디아나. 까지 뉴 프랑스. 가 되는거고. 얘들이 미시시피강을 따라서 계속 내려가서리 루이지애나 까지 가는겨 멕시코만까지. 즉 브이짜 형상이 쑥 더 내려간거야 루이지애나 해변 끝까지. 이게 뉴프랑스야. 1763년도까지의. 

 

이때 오른쪽은 13개주.의 애팔래치아 동쪽 해변 조지아까지.의 아주 짝은 미국 일 뿐이야. 왼쪽은 미시시피강 서쪽으로 저게 다 스페인땅인겨. 인디언땅외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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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600, a trading post was established at Tadoussac, but only five settlers survived the winter.[11] In 1604, a settlement was founded at Île-Saint-Croix on Baie François (Bay of Fundy), which was moved to Port-Royal in 1605.[11] It was abandoned in 1607, re-established in 1610, and destroyed in 1613, after which settlers moved to other nearby locations, creating settlements that were collectively known as Acadia, and the settlers as Acadians.[11]    

 

더 마리팀.에 메인주 북쪽 까지.를 아카디아.라고 해. 여기 정착을 성공했다는거지.

 

 

European exploration of the region began with French-Canadian voyageurs in the 17th century, followed by French missionaries and French fur traders. French-Canadian explorer Jean Nicolet was the first recorded European entrant into the region, landing in 1634 at the current site of Green Bay, Wisconsin   

 

In 1608, King Henry IV sponsored Pierre Dugua, Sieur de Mons and Samuel de Champlain as founders of the city of Quebec with 28 men. This was the second permanent French settlement in the colony of Canada.[13][14][15] Colonization was slow and difficult. Many settlers died early because of harsh weather and diseases. In 1630, there were only 103 colonists living in the settlement, but by 1640, the population had reached 355.[16]  

 

퀘벡에 몬트리올. 정착 하고. 오대호 갔다가 더 들어가 내려가서리 그린 베이.에 닿은게 1634. 여기사 위스콘신. 오대호에서 쑥 들어온 만.이고 여 아래가 시카고여. 하튼 또한 저리 정착시도 하고 탐험하면서 많이 죽었다는거고 또한. 

 

 

In 1682, René-Robert Cavelier, Sieur de La Salle explored the Ohio River Valley and the Mississippi River Valley, and he claimed the entire territory for France as far south as the Gulf of Mexico.[27]   

 

위스콘신 1634년 다음 50년 후 1682.에 걸프만 까지 간겨. 이게 미시시피강 하류야. 루이지애나. 점을 찍고 이후 여기에 요새를 새워.

 

이 프랑스.는 그래서. 오대호.와 오하이오강.과 미시시피 하류.에 요새들을 세우는거야. 오른쪽 영국.이 못오게. 더하여 인디언들 방어용.

 

The Beaver Wars, also known as the Iroquois Wars ' or the French and Iroquois Wars, encompass a series of conflicts fought intermittently during the 17th century in eastern North America.  1629–1701  

 

 

프랑스.가 저렇게 들어오는 주 이유는. 모피.여. 이건 옷의 역사.를 봐야 하는데. 일단 말야. 면직.은 방한용이 못돼. 이건 여름에 입는거고 고급진거걸랑. 멋 부림이야. 추위를 막는게 fur 퍼. 라는 짐승 털로 된 가죽이야 이게. 러시아.가 시베리아 횡단을 하는 가장 큰 목적이 이 짐승털이야.

 

프랑스애들이 이걸 저 지역에 들어가면서 만나는 인디언들과 거래를 트는겨. 인디언들이 유럽애들에게 모피를 팔면 이익이 돼. 멀 받았냐 얘들. 돈은 필요없을텐데. 이게 인디언들 끼리 경쟁을 하는겨. 여기에 프랑스 와 영국 이 끼는거고.

 

이 프랑스와 영국은 13세기 헨리2세부터 웬수여 웬수. 북미땅에서도 대리전을 하는겨. 남북전쟁 이란것도 말야. 이게 거시적으로 보면 북부라는 영국과 남부라는 프랑스 전쟁 으로도 볼수가 잇어. 좀 과하지만. 남부 편은 영국이었지만. 헌데 영국이 적극적으로 남부를 도와주진 못해.

 

인디언들 끼리 모피 경쟁으로 전쟁을 하는게 비버 전쟁이야. 수달 모피.이름 따서리. 여기에 뒤에 프랑스와 영국이 배후에 있고. 서로 합의 보고. 저게 70년간 산발적으로 인디언들 전쟁이 일어났다는거지.

 

 

 

 

The French and Indian War (1754–1763) pitted the colonies of British America against those of New France, each side supported by military units from the parent country and by American Indian allies. At the start of the war, the French colonies had a population of roughly 60,000 settlers, compared with 2 million in the British colonies.[4] The outnumbered French particularly depended on the Indians.  

 

프랑스와 인디언 전쟁. 아직 미국 독립 전이야. 13개 주.가 애팔래치안 동쪽이야. 이 서쪽이 뉴 프랑스여. 브이짜 형상.

 

이때 말야. 향후 독립할 미국땅에서. 얘들도 이미 애팔래치아.를 넘기 시작해. 각 주들 마다 경쟁을 하는겨. 자기가 확보한 땅이 자기 주 땅이야. 얘들은 주 자체가 하나의 나라야. 가장 먼저 시도하는게 버지니아야. 얘들이 산맥 넘어서리 땅을 확보를 하고 영국 본토에 허가를 받아야 하는겨. 저길 어드래 누구 명의로 어떻게 해야 할지.

 

하튼 그러면서. 산맥 넘으면서리 프랑스 애들이랑 만나면서 전쟁이 되는겨 이게. 헌데 뉴프랑스. 저 애팔래치아 넘어서 위스콘신 미시간 일리노이 인디아나.에 산맥 서쪽 기슭은 프랑스 정착민들이 6만명이야. 산맥너머 미국 될 영국 거주민들은 2백만명이야. 프랑스 애들은 뉴프랑스 하지만 인디언들 하고 친해. 얘들이 애들이 이상해서리 친목을 잘하걸랑. 인디언들이 프랑스 편에 주로 서서리 영국 정착민들과 전쟁하는겨.

 

이 직후에 동시에 터지는 전쟁이 7년 전쟁. 1756-1763 이야. 거대한 국제전이야. 이 중심이 또한 영국과 프랑스여. 

 

 

The War of Jenkins' Ear (known as Guerra del Asiento in Spain) was a conflict between Britain and Spain lasting from 1739 to 1748, with major operations largely ended by 1742.    

 

The War of the Austrian Succession (GermanÖsterreichischer Erbfolgekrieg, 1740–1748) involved most of the powersof Europe over the issue of Archduchess Maria Theresa's succession to the Habsburg Monarchy.   

 

The Seven Years' War was a global conflict fought between 1756 and 1763    

 

젠킨스.라는 사람이 이른바 재벌 상선 회장이야. 아래 서인도제도 스페인땅에 밀무역하다 걸려서리 스페인애들한테 잡혀서 귀를 짤렸다고 해. 팩트인지 아닌지 분분해. 하튼 이걸로 영국 코트가 열받아서리 스페인이랑 전쟁해. 이게 젠킨스의 귀 전쟁. 아직 독립 전이야. 이때 스페인이 이기고 영국을 북미대륙에 가둬.

 

이것과 같이 터진게 오스트리아 후계자 전쟁.이야 합스부르크 남자가 끊겨. 저긴 살리크 법이야. 마이라 테레사. 공작부인이 이어받게 하냐 마냐. 여기에 역시 영국 프랑스.가 상대야. 영국이 이겨. 

 

그리고 나서. 국제전인 7년전쟁을 또한 영국 프랑스. 중심으로 해. 북미에선 프랑스가 인디언과 연합해서 영국이랑 싸우고. 저걸 영국이 이기는겨.

 

 Following French defeat in the Seven Years' War, Spain gained control of the territory west of the Mississippi and the British the territory to the east of the river.[3]      

 

프랑스 인디언전쟁.에 7년 전쟁.을 영국이 승리하면서. 북미땅의 뉴 프랑스.가 영국으로 들어온거야. 1763년. 아래 루이지애나.는 스페인에 들어가고.

 

아직 미국 독립 전이야.

 

저때 프랑스.가 루이 15세야. 5세에 킹이 되서리 60년 재임을 했는데. 재임 말기걸랑 저 7년 전쟁이. 그리고 루이 15세가 죽고. 아들 루이 16세가 오르고. 프랑스 대학살 1789년.이걸랑.

 

프랑스.는 저 1763년 7년전쟁 패배가. 가장 커 이게. 이 원흉은 이전 루이14세 태양왕 루이 이고. 얜 전쟁에만 안 미쳤으면 프랑스가 저리 되진 않았을까. 이때가 루소.와 볼테르.의 시대인겨. 프랑스.가 맛이 가고서리. 루이 16세가 짱돌을 맞은겨 걍. 저 미국 땅을 다 뺏기고. 캐나다 지역 뉴 프랑스도 다 뺏긴겨 저때.

 

The Louisiana Purchase (FrenchVente de la Louisiane 'Sale of Louisiana') was the acquisition of the territory of Louisianaby the United States from France in 1803. In return for fifteen million dollars, the U.S. acquired a total of 828,000 sq mi (2,140,000 km2; 530,000,000 acres). The treaty was negotiated by French Treasury Minister François Barbé-Marbois (acting on behalf of Napoleon) and American delegates James Monroe and Robert R. Livingston (acting on behalf of President Thomas Jefferson).    

 

헌데 아 드뎌 나폴레옹. 이 나폴레옹.이 유럽을 휘저을때. 얘가 스페인 원정을 하고 스페인도 손에 넣어. 그러면서 말야. 저 스페인의 북미에서 미시시피강 왼쪽 부터 로키산맥 오른쪽 까지. 이게 프랑스 땅이되는겨. 이게 거의 미국땅 삼분의 일이 넘어. 이걸로 나폴레옹이 북미를 다 먹으려 했다가 이게 안되는거지. 나폴레옹.의 프랑스.는 해전에 약하걸랑. 바다가 안돼 나폴레옹은. 저걸 독립한 미국 애들이 눈치를 채고. 저 골치아픈거 우리한테 파쇼. 프랑스가 당시 재정이 말랐걸랑 또한. 돈이 없어서리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을 했던겨 이건. 전쟁 승리 보상금을 프랑스가 챙길라고. 이걸 미국애들 로비.에 나폴레옹이 넘어가서리 저 거대한 땅을 미국에 파는겨. 서기 1803년. 

 

 

미국애들이. 13개 시작할땐 1776년. 애팔래치아 오른쪽만 이었다가. 이전에 영국이 프랑스 인디언전쟁.에 7년전쟁으로 뉴프랑스.를 영국이 먹을 때. 미국독립은 동쪽인거지. 뉴프랑스의 영국땅은 독립한게 아냐. 이건 영국꺼야.

 

미국애들이. 오대호 포함 아래. 오하이오와 미시시피사이 브이짜. 위스콘신 미시간 일리노이 인디아나 해서 동쪽경계까지 또 받아내는거야 영국 크라운에서. 오대호 위 퀘벡은 당근 여전히 영국땅이고. 

 

그리고서리. 나폴레옹 한테 돈 주고. 미시시피 서쪽에서 로키 동쪽 까지 먹은겨. 1803년에. 독립하고 30년도 안되서 애팔래치아 산맥넘어 로키 까지 미국땅이 된겨 그래서. 군데 군데 인디언 거주지 있는거고.

 

 

그런데 말야. 나폴레옹이 유럽 휩쓸고서리 할때 스페인 포르투갈이 무력해졌걸랑. 이 빈틈을 이용해서리 중남미가 독립을 하는겨. 멕시코 애들이 각각 세갠가 해서리 리퍼블릭을 세우고. 얘들이 말이지 캘리포니아까지 원래 스페인 땅이었던걸 멕시코들이 먹는겨 여길. 더하여 뉴멕시코주에 텍사스. 얘들은 스페인이 개척한 땅을 독립했다고 여까지 다 처먹은겨.

 

그러면서 특히나 텍사스를 사이에 두고 저게 자기들 땅이다 멕시코가.하고. 그러면서 결국 미국이랑 멕시코랑 전쟁할 수 밖에 없는겨.

 

 

 

 

The Mexican–American War,[a] also known in the United States as the Mexican War and in Mexico as the Intervención estadounidense en México (United States intervention in Mexico),[b] was an armed conflict betwee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Second Federal Republic of Mexico from 1846 to 1848.  

 

이게 1846-48. 멕시코 아메리칸 전쟁.이야. 미국이 이겨. 즉 미국이 40년 전에 나폴레옹에게 거대한 루이지애나 란 이름으로 미시시피 서쪽과 로키 동쪽을 다 받고. 아래 경계를 두고 독립한 멕시코.랑 싸워서 이기는겨. 그러면서 이때 캘리포니아.가 미국께 된겨. 

 

The California Gold Rush (1848–1855)   

 

그러면서. 바로 캘리포니아 골드 러쉬.가 터진겨. 캘리포니아 동쪽 산맥인 시에라 네바다.에 금이 터진 소문으로. 

 

 

남북전쟁.이란게 말야. 멕시코 전쟁 다음 13년 후에 터진겨. 저들은 저때 같이 싸운거걸랑. 1776년 독립전쟁을 같이 한 후손들이고. 해서 남북전쟁 때 남부의 멕시코 전쟁 참전한 이에겐 관대하기도 했던겨 양키들이. 같이 참전했던 애는.

 

 

하튼 그리고서 터진게 남북전쟁인데.

 

나중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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