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2세의 호헨슈파우펜 가문 시절 신성로마제국.이 가장 넓었을때인데. 오른쪽 헝가리 킹덤. 폴란드 킹덤.과 경계고. 왼쪽 프랑스와는 베르됭 조약 하는 베르됭 베흐덩. Verdun. 그 오른쪽 메쓰 Metz. 그 오른쪽 길게 찐한 노랑.이 알자스 Alsace 여. 여기 스트라스부르.있고. 이게 다 독일땅이었던겨 원래. 리옹 Lyon 도 독일땅이었고 말야. 아래 연한 노랑 프로방스.에 왼쪽 삐쭉 나온 Vivarois 라는 곳이 지금 Viviers 비비예.로 아를 Arles 위야. 여기를 Auvergne 오베르뉴 지역이라하고 지금 이 레지옹이 오베르뉴 론 알프. 레죵의 서쪽인데 여까지도 독일땅이었던거야.
Meuse 뫼즈강.에 접한 베르됭.에 그 아래 죽 내려서 프로방스와 같은 연한 노랑인 부르고뉴 카운티.에 리옹.에. 즉 뫼즈강에 손강에 혼느강(론강) 오른쪽은 원래 다 독일땅인겨. 더하여 혼느강 왼쪽 비비예.까지도. 이걸 독일애들이 다 뺏긴거야. 결정적으로 월드워 1.2.로
리옹 Lyon 이 손강이 지중해로가는 혼느강(론강)과 만나는 경계야. 이게 로마때 Lugdunum 루그두눔.이란 도시고 갈리아로 가는 전초기지야. 가장 중요한 도시야. 저 리옹. 바로 아래 도시가 Vienne 비옌. 이야. 이 비옌.에서 옆아래로 비스듬히 연한 붉은 지역. 프로방스 위.에 Dauphiné 도피네. 라고 써있어.
프랑스.의 세자. 킹의 후계자.를 도팽. Dauphin 할때. 이 말의 시작이 저 지역이야. 프랑스의 도팽.에겐 도피네.를 먼저 주는겨. 스페인은 아스투리아스. 잉글랜드는 웨일즈.
Príncipe de Asturias 프린시페 데 아스투리아스. 웨일즈의 프린스. 이건 고대로마 Princeps 프린켑스.에서 온겨. 아우구스투스.가 처음 타이틀이 이거야. 로마 시민들 중 주민번호 일번.이야.
아스투리아스.는 카스티야.의 시작이야. 웨일즈.는 잉글랜드의 헨리7세가 정통성을 웨일즈.로 갖기로 하거 이걸 취한겨 시작이. 신성로마.는 예비 후계자에게 주는 타이틀이 게르만의 킹.이야. 단지 이건 타이틀이야. 게르만 루이.를 취하는겨. 샤를마뉴의 둘째 아들. 더하여 게르마니쿠스.란 로마가 부르던 자기들이름이고. 여기에 로마의 킹.이란 닉도 부여하고.
프랑스.는 이게 달라. 저 도피네. 땅의 임자. 인 도팽.을 후계자 자리가 받아.
Dauphin of France (French: Dauphin de France [dofɛ̃ də fʁɑ̃s]), originally Dauphin of Viennois (Dauphin de Viennois), was the title given to the heir apparent to the throne of France from 1350 to 1791 and 1824 to 1830.[1] The word dauphin is French for dolphin. At first the heirs were granted the County of Viennois (Dauphiné) to rule, but eventually only the title was granted.
원래 이름이 비옌느와.의 도팽.이야. 비옌. 지역의 도팽이란겨.
여기가 서기 1000년경에 카운티.로 시작해서. 알봉 Albon 가문이 시작하다가.
Humbert II de la Tour-du-Pin (1312 – 4 May 1355) was the Dauphin of the Viennois from 1333 to 16 July 1349. He was a son of the Dauphin John II and Beatrice of Hungary. Humbert was the last dauphin before the title went to the French crown, to be bestowed on the heir apparent.
투 드 팽 가문.의 암베르.가 마지막 이야. 이 사람이 터키땅에 십자군 명목으로 전쟁하러 가고 해변도 갖고 오지만. 빚이 많이 생겨서리 자기 땅 비옌.의 운영이 안되는겨. 이걸 나폴리 킹덤. 교황정. 등등에 막막 매물로 내놔. 자기 자식이 죽고 세속에 관심이 없어져. 수도원에 들어가기로 한거야. 이걸 프랑스 킹덤에서 사는거야. 걍 준거야 공짜로.
프랑스.의 필리프 6세.에게 넘겨. 발루아의 시작. 그러면서 조건을 거는거야. 자기 땅은 자기들의 스태튜트. 고정법이 있걸랑. 자치법이. 이거에 따라서 다스려야 하고. 세금도 많이 걷지 말라는거야. 즉 이땅만의 주권을 인정해달라는겨. 그래서 꼭 반드시 이름.을 지워서 다른 지역에 합병하면 절대 안된다 하는겨. 이걸 수락을 해.
- Charles I of Viennois (1338–1380), also king of France as Charles V, Dauphin of Viennois, Count of Diois and Valentinois, Duke of Normandy, ruled the dauphinate as the first Dauphin of France (1350–1364) and ruled the dauphinate as king of France (1364–1368)
그래서 이 비옌.이 있는 도피네 지역.의 도팽.을 필리프 6세.가 죽는해.인 1350년.에 저 계약이 성사가 되고. 이걸 자기 손자. 장2세의 장남.에게 주고 죽은겨. 이때부터 도팽. 이 프랑스.의 후계자인 세자.가 취하는 첫 타이틀이돼.
즉 이건 정체성과 전혀 상관이 없어. 프랑스 킹.이 계약에 의해서 저 도피네.와 도팽.을 지워선 안되니고. 세금도 다른 지역대비 덜 걷히는거고. 이걸 남에게 주기도 공치사가 안되는겨. 해서 킹이 자기 후계자에게만 줄 수 밖에 없는거야. 명예직으로. 저긴 더구나 프랑스 땅이 아냐. 신성로마제국 땅이야. 즉 상위법을 신성로마에 따라야해.
도팽.이 영어로 돌핀.이야. 이 지역의 헤럴드리가 돌고래여.
이 프랑스.는 이런 것 조차도 이상한거야 그래서. 얘들이 정체성이 애매해진겨. 이게 영국과 독일 대비 문제인거야 그 속성이. 이 프랑스.란 나라는 문제가 있어 이게.
자기들 후계자가 선점 하는 상징인데. 땅은 자기들 땅이 아냐.
저 도피네. 지역에 비옌. 옆에 그르노블. Grenoble 이 있어. 여기가 프랑스 혁명 1789 의 시작이야. 파리가 시작이 아냐. 여기서 고등법원의 반기로 시작이 된거야. 얘들이 프랑스 킹덤 정체성을 처음 거부하는겨 이게. 더하여 나폴레옹이 엘바섬에서 탈출해서 알프스 넘을때 맨몸으로. 내가 황제다. 죽일테면 죽여라. 하고 소리지르며 총한방 없이 파리로 들어가기 시작하는 기세를 업은 곳이 또한 여기 그르노블.이고 도팽.의 도피네. 인거야.
프린스 프린시페 도팽. 이 킹 다음 순위고. 이들은 듀크.보다 윗자리야. 1차로 승계받는 제일순위 후계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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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지. 프린스. 라는게 저런 프린스. 말고. 이전 보믄 오렌지공 윌리엄.이니 콩데의 루이.니 이들이 프린스. 걸랑. 이땐 프랑스의 프린스 도 같은 알파벳이고 프랭스.로 발음을 해.
In several countries of the European continent, such as France, prince can be an aristocratic title of someone having a high rank of nobility or as lord of a significant fief, but not ruling any actual territory and without any necessary link to the royal family, which makes it difficult to compare with the British system of royal princes.
이런 프린스.는 킹의 후계자.가 아냐. 이건 단지 타이틀. 명함으로 대게 주는거고. 콩데의 프린스.라고 해서 콩데 땅의 영주가 아냐. 오직 종이명함일 뿐이야. 이건 단지 귀족임을 드러내고자 함이야. 이건 후계자.의 프린스와는 전혀 다른 말이야. 듀크.니 카운트.라는 귀족과도 비교할게 못돼 이건.
Prince exercising head of state's authority[edit]
Various monarchies provide for different modes in which princes of the dynasty can temporarily or permanently share in the style and / or office of the monarch, e.g. as regent or viceroy.
또한 여러 영지를 갖고 있는 군주가 대리를 두걸랑 대부분. 이들을 또한 프린스.라고 해. 얘들은 다이너스티.란 조. 승계를 하는게 아냐. 걍 대리인.이고 월급쟁이인겨.
Micronations[edit]
In the same tradition, some self-proclaimed monarchs of so-called micronations style themselves as princes:
- Roy Bates called himself Prince Roy of the Principality of Sealand
- Leonard George Casley calls himself Prince Leonard I of the Principality of Hutt River (enclave in Australia)[8]
또한 어떤 곳은. 자기가 왕이요. 하며 프린스.하는 애들도 있다는거고. 이건 걍 작은 땅의 영주야.
저들을 대게 호칭. 아너리픽 스타일.을 Lord 로어드. 하는겨. 이 로어드.란 호칭이 그래서 엄청 대단한게 아냐.
In the Russian system, knyaz, translated as "prince", is the highest degree of official nobility. Members of older dynasties, whose realms were eventually annexed to the Russian Empire, were also accorded the title of knyaz — sometimes after first being allowed to use the higher title of tsarevich
전쟁과 평화. 톨스토이.를 보면 안드레이.를 공작.이라고 할때. 러시아어로 이걸 크냐즈. 하걸랑. 이걸 영어로 마땅한게 없어서 프린스.로 번역을 한거야. 이건 러시아의 귀족층에서 가장 높은 자리들.이란거 라는게 위키영어 설명인데 저건 잘못된겨. 당시 러시아는 행정단위가 우예스트.Uyezd 아래에 볼로스트.Volost야. 우예스트.의 영주를 보이보드.하는거고 아래 볼로스트.의 영주를 크냐즈.해. 얜 우예스트의 한 곳인 볼로스트.의 크냐즈 인겨. 그래서 프린스.라 굳이 번역한거야. 공작보다 이게 끕이 훨 낮아. 물론 크냐즈.가 우예스트의 영주 일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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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무수하게 쪼개진 신성로마제국.이 자잘하게는 1800개 영지들로 쪼개진거고. 이게 의미있는 대표성있는 크기로만 400여개고. 이게 시대가 흐르면서 18세기 후반에 300여개로 줄어들다가 나폴레옹때 39개로 조정하고 이게 지금 16개 주와 도시로 되었다 고 했는데.
신성로마제국.의 행정단위.를 보면 말야. 이들이 저 수많은 영지들을 어드래 시작되고 관리했냐는 거지.
These are the five stem duchies (sometimes also called "younger stem duchies" in contrast to the pre-Carolingian tribal duchies): Bavaria, Franconia, Lotharingia (Lorraine), Saxony and Swabia (Alemannia)
프랑크.가 메로빈지언(메로빙거)로 시작해서 끊기고. 분열하고. 다음 소피핀.에 샤를마뉴.에 경건루이가 통일하고 자식들 셋이 나눠갖고 서쪽은 대머리샤를.이 카롤링거.라는 찰스의 아들들이 조.를 이루고. 이 동쪽은 다섯 더치들.이 전국시대인겨.
바바리아. 프랑코니아. 로타링기아(로렌). 작센. 스와비아(슈바벤. 알레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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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킹덤 시작이 아우스트라시아 Austrasia 가 프랑스 북부에 모젤강에 오른쪽으로 라인강 중하류에 마인강을 포함해. 독일땅에 더치.로 프랑크에 하미지 하는건 고지대 스와비아(슈바벤)이 서기 500년대 초에. 이어서 오른쪽 바바리아. 이어서 프랑크 말기에 샤를마뉴 이전에 투링기아.가 더치.가 돼.
프랑크에 하미지 하는 더치. Duchy. 공작령이 스와비아. 바바리아. 투링기아.
그리곤 프랑크. 다음이 소피핀.에 샤를마뉴야. 카롤링거. 프랑크가 해체가 된걸 이들이 다시 재통일하는겨. 전쟁하면서 새로운 세력의 새로운 더치.가 들어서는거야. 이건 카롤링거.에 하미지 하는거야. 얘들이 다시
스와비아. 바바리아. 프랑코니아. 작센. 로타링기아.
이 다섯을 다섯 줄기 공작령. 또는 young 새로운 더치.라고 해. 얘들은 이전 더치.와 구분을 해. 투링기아.도 카롤링거에 하미지 하지만. 저기서 빼. 이 투링기아.는 뒤에 작센에 들어가는겨.
지금 독일이 16개의 주.와 도시.인데. 프랑코니아.는 중부의 지역 이름으로만 써. 영호남처럼. 이게 지금 헤쎄.와 투링기아.와 그 남부지역이야.
작센.은 프랑크.때도 들어오지 않은 애들이야. 쎄. 샤를마뉴 때에나 들어온겨 얘들은. 그리고 더치.가 된겨.
샤를마뉴.의 카롤링거.도 프랑크족이고 프랑크의 살리안족이야.
스와비아(슈바벤).은 수에비.족에서 와. 이들은 저짝 엘베강 동쪽과 오데르강.의 하류에서 독일 고지대 서쪽까지 들어온겨. 여기에 또한 알레마니 Alemanni 가 있었어. 이들이 라인강 건너 알자스 Alsace 에 스위스 까지 간거고.
바바리아.는 바바리안.들이 보헤미아.까지 왔다가 왼쪽으로 넘어온 거로 봐.
프랑코니아.는 이게 프랑크.에서 이름이 변형된겨. 프랑크.가 살리안. Salian 과 리푸아리아 Ripuarian 으로 나뉜다 했잖니. 기억할리 없지만. 프랑크애들이 아이셀 강에서 왼쪽으로 라인강을 건너. 이때 하류에 있던애들이 살리안 프랑크.이고 라인강 타고 중상류로 가는애들이 리푸아리안 프랑크(라인란트 프랑크) 해. 얘들이 마인강 따라 오른쪽으로도 가는거야. 얘들이 프랑코니안.이고. 이들이 오토 대제.의 작센 다음에 황제 콘라트2세부터 카놋사의 굴욕 하인리히 4세.들이 살리안. 조 하걸랑. 얘들이 프랑코니안 인겨. 지들 뿌리가 살리안 인거고. 해서 살리안 다이너스티.라고 해.
작센.은 살리안 오른쪽에 살던애들이야. 지금 니더 작센에 작센안할트.에 작센.이란 세개 주.가 엘베강을 중심으로 있는거야. 작센족은 엘베강인겨.
로타링기아.라는 로렌.은 스와비안.들에 살리안들이 섞인거고. 경건루이 장남때부터 로타링기아.하는거고. 이 핏줄 끊기고 동프랑키아 아눌프 아들 차일드 루이.가 덧치.로 넣는겨 서기 900년. 킹덤에서 내려와.
저 다섯.이 신성로마제국.의 시작이야. 이 홀리 로만 엠파이어.란 이름은 게르만 루이.가 시작한게 아니라. 앤 걍 동프랑키아.이고. 그렇다고 오토 대제.가 만든 이름도 아냐.
Before 1157, the realm was merely referred to as the Roman Empire.[17] The term sacrum ("holy", in the sense of "consecrated") in connection with the medieval Roman Empire was used beginning in 1157 under Frederick I Barbarossa ("Holy Empire"): the term was added to reflect Frederick's ambition to dominate Italy and the Papacy.[18] The form "Holy Roman Empire" is attested from 1254 onward.[19]
초창기엔. 로마 제국. 이었어. 사크룸. 이란 홀리. 신성.이 붙은건 서기 1157년. 프리드리히 2세 대제의 할배때. 이땐 홀리 엠파이어. 신성제국. 서기 1254년. 프리드리히 2세 죽고 나서 대공위시대. 때 언급이 처음 보여.
저때가 하이미디벌. 중세의 절정.인거야. 그리고 중세후기의 시작이야. 기사들의 시대인겨 저게. 기사단들의 시대이고. 레반트 십자군 2백년이 머물기 직전.의 시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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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다섯개 더치.로 시작해서리. 샤를마뉴 서기 800년. 통일하고 황제관 쓰고. 이후 서기 1254년. 신성로마제국.이란 이름이 처음 언급되는 시절. 프리드리히 2세 죽고. 그게 저 광활한 지도야. 이때 영지가 1800개 로 보는겨.
작센.이 엘베강을 넘지 않았었어. 하이미디벌. 서기 천년.을 지나면서. 땅을 더 개간하고. 상인들이 티나오고. 부르즈아들이 생겨나고 인구가 증가하고 독일땅 1800개 영지들이 서로 저마다 경쟁을 하는겨. 엘베강을 넘어서 오데르강.까지 가는겨. 농노.는 계약이 더 느슨해지고. 땅이 넓어지고 경쟁들이 많아지니까 당연해 이건. 상인들이 더 출현해지고. 민들이 선택지가 많아져. 땅이 넓어지면 건설업이 활기를 띠는겨. 건설을 위한 제조업 공업이 확장이 되고. 여기에 화약 도 곧 티나와. 공업의 시대. 가 본격적인겨 중세 후기는. 상공업의 시대야 이게. 이게 서기 1500년 부터의 근대를 만든거야.
다섯개의 더치.로 시작한 신성로마제국.이 이젠 더이상 중세 시스템.으로 관리가 안되는겨. 이 행정체제.를 개편하는겨. 이게 막시밀리언1세. 카를5세의 할아버지.가 한 제국 리포메이션.이야.
이젠 기존 다섯 더치.내에서도 각각 쪼개져서 여러 더치들에 카운티들에 다양한 후작령이 들어서고 교회령들도 들어서고 임미디어시.하는 프리시티. 제국도시들도 산재하고. 저걸 써클.로 묶어서 일단 그 지역만의 회의체.를 만들어. 이 각 서클.의 회의체.의 대표들이 모이는게 근대의 제국회의 임페리얼 다이어트.인거야.
기존 스와비아. 바바리아. 프랑코니아.는 그대로고. 로타링기아(로렌)이 고지대라인.에 들어가고. 작센.은 커져서리 고지대 저지대.로 쪼개고. 부르고뉴.에 베스트팔렌.이 따로 서고. 바바리아에 접했던 오스트리아.가 커져서리 따로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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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후 7명으로 황제를 뽑고. 머 제국회의 다이어트.는 다 형식이고. 저런게 제대로 된 회의체도 아니고 의미가 없고 어쩌고.
그런 말들은. 다 거짓말이야 거짓말.
독일땅의 정체성.은 저런 수많은 영지를. 행정단위별로 구분하고 회의체로 모이고. 전체 다이어트.로 또 모이고. 하는 저걸로 만든거야.
이 독일이란 나라는 그야말로 엄청난 나라야.
스페인.이 저런걸 못한거야. 카를 5세부터 갑자기 커진 스페인이 국제적으로 외부에 신경쓰느라 저런 내치를 못한겨. 이것도 또한 정체성의 문제야.
정체성.이란 말을 계속하지만. 이건 매우 중요한 추상명사야. 이게 힘이야 힘. 개인의 힘이고 국가의 힘이야.
정체성이 문제가 되면. 개인은 활력을 잃어. 죽어. 국가는 망해.
독일이란 나라가 유로.의 중심이야. 유로체제.의 다양한 국가들을 묵묵하고 끈기있게 리딩하는 애들이 저 독일 수상인겨. 저 자리는 불가능한 자리야. 저 다양한 유럽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가운데 누구가 끌고간다는건 엄청난 힘이야.
저건 불가능하다고 봤걸랑. 유로라는건.
독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거야.
왜냐면. 천년 신성로마제국.을 운영해본. 운영해왔던. 그 힘.인거야.
영국.은 태생적으로 혼자 노는 애들이야. 얘들은 저런걸 해본적이 없어. 혼자서 강력하게 유럽에 맞선애들이야. 얘들은 브렉시트.를 할 수 밖에 없어 저 천년의 세월이. 괜히 나온걸까 그 밀당의 중심의 힘도 저 독일인 이유야.
신성로마제국.이란건 저 1800개 영지들의 경쟁으로 묶인 힘은 어마어마한거야.
우리가 배운 유럽사.는 다 완전한 수박겉할기야. 이걸 제대로 설명해주는 사람이. 단 하나. 도 없어.
특히나 저 독일. 역사들의 역사.의 나라야. 저 각각의 영지들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웬만한 국가의 역사 그 자체야 저게. 갓 로마를 익히기 시작한 저 허섭 야만 게르만의 중세천년의 이야기가.
이나라에서. 독일사.를 말할 수 있는 인간.은 단 하나.도 없어. 특히나.
하기사. 프랑스사 영국사 스위스사 헝가리사 폴란드사 사사사사. 단 하나 썰 할수 있는 인간도 없거니와.
우리네는 너무나 무식한겨.
우리네는 너무나 쟤들을 몰라.
그리곤. 친미 적폐. 백인우월주의. 양놈들 나뽀.
위대한 조선.
참 불쌍한겨.
저건. 재들은. 벌레야 벌레.
저런 유럽을. 포르투갈이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를 가고. 바로 일본을 가면서. 일본 다이묘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반기면서 저런 유럽을 사오백년을 적극적으로 배운겨. 데지마.를 통해서 네덜란드 황금기의 문명에 유럽이 계속 들어온거야. 이 힘으로 메이지때 쟤들 스스로 번역을 한거야. 자기들이 해석을 스스로 해서 자기들이 만든겨 일본의 근대란건.
번역이란건 말야. 이전 불경 한문 번역이 기원직후.에 안사고.등에 의해 시작이 되었고 쿠마라지바.도 한문으로 번역을 한거지만. 이 사람들은 한자 쓰는 이들이 아냐. 외국인이 번역을 한거야.
초딩애가 대학교 책을 번역할 수가 없어.
대딩이 초딩껄로 번역을 해주는겨 처음엔.
근대 서양문명의 한자 번역은 서양애들이 다 한거야 중국에선. 왜? 중국인들이 이해를 할 수가 없어 무시캐서.
일본의 일포사전.이 서기 1603년.이야. 얘들도 시작은 포르투갈.애들이 해준거야. 여기에 일본애들이 붙은겨. 이 힘이 이삼백년동안 쌓여서리 메이지때 자기들 스스로 번역을 한거야. 이 힘은 엄청난거야. 즉 이미 쟤들 사유.가 재들을 이해할 만큼이 된거야 저게. 좀 허섭하지만.
우리네는 저런 번역을. 서기 2000년 되서야 하는겨. 물론 아무도 인정을 안하지 못하지.
우리네는 일본들보다. 이 지쩍 수준이. 천년이 뒤진거야 이게. 이건 팩트야.
바닥의 무의식이 저걸 알걸랑. 차마 눈뜨고 인정하기가 싫어. 친일적폐 놀이하고 마는겨. 왜색 해 대면서.
조선 오백년.의 똥은. 엄청난거야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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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itially, there was neither a fixed time nor location for the Diet. It started as a convention of the dukes of the old Germanic tribes that formed the Frankish kingdom when important decisions had to be made, and was probably based on the old Germanic law whereby each leader relied on the support of his leading men. For example, already under Emperor Charlemagne during the Saxon Wars, the Diet, according to the Royal Frankish Annals, met at Paderborn in 777 and officially determined laws concerning the subdued Saxons and other tribes. In 803, the Frankish emperor issued the final version of the Lex Saxonum.
샤를마뉴가 다시 통일할때. 이 동쪽의 실세.는 작센인겨. 사를마뉴.의 카롤링거.는 프랑크야. 작센.은 프랑크와 이웃이자 웬수였어. 작센과의 전쟁이 가장 고된거였고 작센은 프랑크에 하미지 하지 않았어. 이전 프랑크 킹덤 시절에도 게르만 부족들은 따로 모여서 의사결정하는 협의체를 갖고 있었다. 다음 샤를마뉴시절에도 서기 777년에 다이어트.라는 회의를 해서 작센족과 다른 게르만족들에 관련한 법을 제정하였다. 서기 803년에는 작센법의 최종버젼을 공표하였다. 작센을 복속시키면서 만든 법이야.
독일은 저 작센법의 작센이야. 지금 작센이란 이름의 주.가 세개인 이유고. 작센의 오토1세.부터 신성로마제국.타이틀을 부여하는 이유야 또한. 샤를마뉴의 게르만 루이.가 동프랑키아.로 시작했지만. 진짜 통일한건 작센의 오토1세인겨.
At the Diet of 919 in Fritzlar the dukes elected the first King of the Germans, who was a Saxon, Henry the Fowler, thus overcoming the longstanding rivalry between Franks and Saxons and laying the foundation for the German realm. After the conquest of Italy, the 1158 Diet of Roncaglia finalized four laws that would significantly alter the (never formally written) constitution of the Empire, marking the beginning of the steady decline of the central power in favour of the local dukes.
회의. 라는 다이어트.를 서기 777년에 이미 해 본 기록이 있어. 샤를 마뉴일때. 아직 통일 전이야. 전쟁중이야. 그러다가. 서기 919년에 선거를 통해서 첫 게르만의 킹.을 뽑은거야. 이전에 게르만 루이에 로타르에 이 핏줄들이 끊기고 방계들 티나오고 왼쪽 대머리샤를네도 하고 이 셋이 막 엉키걸랑. 다이너스티.란 후계가 제대로 작동이 안돼. 선거로 뽑는거야. 저 다섯 더치를 중심으로. 해서 처음 선거로 된 사람이 오토 대제.의 아빠야. 이사람은 동프랑키아.의 킹.이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첫 타이틀.은 오토 대제.부터 시작을 해.
선거권을 누가 갖고 선거를 어드래 진행했다는 기록은 없는겨. 구체적 선제후들이 누군지 잘 몰라. 걍 아마도 저 다섯 더치들. 바바리아 프랑코니아 로타링기아 작센 스와비아.를 중심으로 했겄지 하는거지.
Otto I (23 November 912 – 7 May 973), traditionally known as Otto the Great (German: Otto der Große, Italian: Ottone il Grande), was German king from 936 and Holy Roman Emperor from 962 until his death in 973.[b] He was the oldest son of Henry I the Fowler and Matilda.
신성로마제국.의 실질적인 시작은 오토 대제.여. 작센가문이야. 분열된 걸 다시 통일을 한거야. 즉 게르만 루이 핏줄이 끊기고 장남 로타르.와 막내 대머리샤를.의 가문애들이 게르만의 킹.을 하기도 할때 이 협의체.가 저 다섯 게르만 더치들이었던거야. 그러면서 오토1세의 아부지 하인리히.가 게르만의 킹.을 하지만 이게 잘 안굴러 간거걸랑. 이 진압을 오토1세.가 실재적으로 다 하면서. 나중에 사가들이 신성로마제국.의 실질적인 진짜 시작 엠퍼러. 를 이 오토 대제.에게 부여해. 그러면서 다이너스티.로 다시 가. 그래도 다이어트 회의.를 해. 제국을 움직이려면.
Henry II (German: Heinrich II; Italian: Enrico II) (6 May 973 – 13 July 1024), also known as Saint Henry the Exuberant, Obl. S. B.,[a] was Holy Roman Emperor ("Romanorum Imperator") from 1014 until his death in 1024 and the last member of the Ottonian dynasty of Emperors as he had no children.
오토1세.가 아들 오토2세. 이 아들 오토3세.에서 자식이 없어. 듀크들이 모이는겨. 이때 선거로 뽑힌 사람이 바바리아 공작의 아들 하인리히2세. 이사람도 오토1세의 아버지 핏줄이야. 외가로. 해서 얘까지 오토 다이너스티.에 포함해
이사람이. king of the Romans. 로마인들.의 킹. 이란 첫 타이틀을 시작해. 선거로 당선이 되고. 이전엔 프랑크인들의 킹. king of the Franks 했던겨. 게르만들의 킹.은 있어왔던거고.
선거로 당선되서 로마인들의 킹(이탈리아의 킹). 게르만들의 킹. 이란 타이틀을 받는거고. 교황에 의해 대관식을 받고서야. 엠퍼러. 라는 황제 타이틀을 취하는거야. 교황에 의해 대관식을 못받으면 황제가 못돼. 정당성이 없는겨. 이게 호헨슈타우펜 가문의 프리드리히 2세.가 교황과 전쟁하면서 괼피 기벨리니.할때 그래서 이때부터 교황이 저 가문 자식에게 황제관 안씌워주면서 대공위 시대가 온거야.
이걸 카를5세.가 마지막으로 쓰고. 교황 대관식.은 거부하는겨 이후는. 교황은 이미 끝난겨 십자군 레반트 2백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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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he 13th century, the right to elect kings in the Holy Roman Empire was granted to a limited number of imperial princes, the so called prince-electors. There are various theories over the emergence of their exclusive election right
이 선제후.들에 의한 황제선출.은 13세기 부터로 봐. 이게 아마도 프리드리히 2세. 이후로 보는겨. 이사람 죽는 1250년.은 중요해. 이전썰.
다이너스티. 직계가 끊기면. 초창기엔 다섯 더치.들이 선거를 했던거고. 대관식이 절대적이야. 교황의 입김이 가장 쎈겨. 특히나 레반트 십자군 시작 서기 1100년 전후부터는 교황 파워가 짱이야. 이 레반트 십자군 2백년이 교황시대야. 유럽대륙을 휘어잡은. 아젠다.를 주도한거걸랑 시대의. 서임권도 이때 확실히 다 뺏어온거고. 십자군 패배로 깨갱 아비뇽이지만
붉은수염 프리드리히1세.가 십자군 젊을때 다녀오고. 황제되서 다시 갔다가 원정길에 죽어 아마 심장마비로. 이때 아들이 하인리히 6세야. 아들이 프리드리히 2세인데. 하인리히.가 나이 32세에 죽는겨. 이때 아들이 세살.이야.
다이너스티. 핏줄이라고 무조껀 황제가 되는게 아냐. 형식적으로라도 회의체를 운영을 한거야. 정당성이 없으니 걍 자식을 뽑아주는거걸랑. 프리드리히2세.가 세살이야. 얠 안뽑는겨.
Otto's election pulled the empire into the conflict between England and France. Philip had allied himself with the French king, Philip II, while Otto was supported at first by Richard I, and after his death in 1199 by his brother John.[13]
바바리아와 작센 공작 사자공 하인리히.의 아들 오토.와 스와비아.의 필리프.가 후보로 나오는거야. 사자공 하인리히.는 Welf 벨프.가문이고 필리프.는 호헨슈타우펜 가문이야. 이사람이 죽은 황제 하인리히 6세.의 동생이야. 즉 프리드리히 2세.의 작은 삼촌. 이 벨프가문과 호헨슈타우펜 가문이 웬수야. 이 벨프.가 이태리의 괼피.가 되는겨. 교황파가 되는거고. 호헨슈타우펜.의 기벨리니.라는 황제파와 내전하는거고 이후에.
신성로마 황제자리.는 잉글랜드 프랑스.도 영향력을 행세하는겨 선거에. 당시 잉글랜드 헨리2세.의 앙주제국이여. 프랑스 필리프2세.는 자기땅 다 뺏긴겨. 둘이 앙숙이야 특히 이때부터.
이걸 벨프가문이 이겨. 오토.가 오토4세 황제가 되는거야. 얘가 교황과 안친해. 교황이 파문을 시켜. 당시 교황 힘이 쎈걸 몰라 쟤가. 그리고 이 교황 힘으로 황제가 되는게 시칠리아 킹. 프리드리히 2세.야 얘가 세살에서 다 큰거야.
유럽은 또한 이 프리드리히2세.가 만든거야. 얘가 제일 멋진 황제 중에 하나야.
교황이 얠 전적으로 만들어준겨. 십자군 가라고. 아 헌데 질질 끌고 말이지. 걍 겨우겨우 억지로 가서리. 이사람은 시칠리아에서 아랍어도 하고 무슬림을 코트에도 쓰는 인간이걸랑. 완전히 열린 인간이여 이 인간이. 가기싫은거 저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 황제만들어줬다고 하도 해대고. 할수 없이 가서리. 살라딘 조카.랑 놀고 온거야. 걍 악수만 하고. 예루살렘 구경갈겸. 예루살렘 모스크에서 기도 나팔 울릴때 자기 부하애들 중 무슬림 애들은 바닥에 엎드려서 기도하고. 자긴 멀뚱하니 걍 서있고. 그걸 본 협상당사자 아유비드 애들이 참 시안한 프랑크일세 하는거고.
교황이 열받아서리 나폴리땅 다 뺏고. 프리드리히는 터벅터벅 와서리 다시 회복하고 아예 이탈리아 다 먹으려고 하면서 롬바르디아.는 동맹으로 뭉치고. 해서 괼피 기벨리니 교황파 황제파 내전하다가 1250년에 죽걸랑.
그리곤 대공위 시대에. 교황은 카페앙주 불러서리 나폴리 시칠리아 먹으라 하고. 이딴 이야긴 이전 다 한거고.
해서. 정식으로 7명 선제후.가 황제를 선거로 뽑은게 13세기.부터 라고 하는데. 이게 정확히 누구부턴지 몰라.
저 오토4세 부터냐. 아니면 프리드리히2세 죽고 다음 황제들 부터냐. 하튼 이때부턴겨. 저 1250년 전후.
저때 대교구에서. 마인츠 쾰른 트리어.의 세 대주교. 속세영주들 중 보헤미아. 작센. 라인팔라틴. 브란덴부르크.
해서 총 7명인데. 그러다가 나중에 바바리아.에 하노버 들도 추가가 되고.
일단 저때가 말야. 레반트 십자군 후반이고 여전히 교황이 가장 힘이 쎌때야. 그래서 대주교령 이름으로 세 자리.나 갖는거야. 대관식의 파워도 있고. 저건 시대의 힘이야. 저걸 황제쪽이 바로 바꾸려해도 차마 못바꾸는겨 기분나쁘지만. 그러다 저 쾰른.인가 자격을 상실시켜 핑게만들어서. 저기가 다 고대 로마때 군단 도시들이야 대주교땅이.
보헤미아.는 유일하게 당시 킹덤.의 자리야. 킹덤. 아치더치. 이런건 나중에 하고. 말길어져서.
나머지 작센 라인 팔라틴. 브란덴 부르크.가 저 서클.들을 고려해서 나온겨. 브란덴부르크.는 베를린 쪽이야 이 베를린.은 13세기 시작할때 만든도시여 이게. 엘베강 너머서 완전히 촌구석이여. 부르크.여 마그레이브.이고. 개척도시여 중세 후기에. 슬라브애들 몰아내고. 이 브란덴부르크.는 아스카니아 가문이 시작한겨. 얘들은 작센 방계야. 저지대 작센 서클의 중심이야. 나중 이걸 호헨졸레른 가문이 받아서리 이들이 프러시아 킹덤을 만들고 독일 제국을 만들어. 이 호헨졸레른은 본적이 스와비아.여. 즉 나중엔 스와비아의 대표성도 갖는겨.
라인 팔라틴. 선제후.는 라인강 강줄기를 따라서리 길게 늘어진 강변 도시들을 대표하는겨 지도를 보면. 여기가 자유도시들이 많은거야.
세속 선제후들 네명이. 저게 걍 신성로마 제국 전체를 대표해 저 서클들 각각을.
Initially the 1500 Diet of Augsburg set up six Imperial Circles as part of the Imperial Reform:
- the Bavarian Circle
- the Franconian Circle
- the Saxon Circle
- the Swabian Circle
- the Upper Rhenish Circle
- the (Lower Rhenish-)Westphalian Circle
이것 역시 다이어트 제국회의.에서 나온거야. 서기 1500년.에 스와비아 바바리아 프랑코니아 작센. 그대로 갖고 간겨 이전 다섯 더치.구역 중심으로. 저땐 부르고뉴.의 마리께 안들어온거고. 로타링기아.를 고지대 라인. 저지대 라인(베스트팔렌)으로 나눈거일 뿐이야. 여기에 부르고뉴의 마리.껀 아직 안들어온거고.
Originally, the territories held by the Habsburg dynasty and the Electors remained unencircled. In 1512 the Diet at Trier and Cologne organized these lands into three more circles:
- the Austrian Circle, including the Habsburg territories inherited by Maximilian I
- the Burgundian Circle, including the patrimony of Maximilian's late wife, Mary of Burgundy
- the Electoral Rhenish Circle, including the ecclesiastical Electorates of Mainz, Cologne and Trier, and the secular Electorate of the Palatinate.
Also, the Saxon circle got divided into:
- the Lower Saxon Circle
- the Upper Saxon Circle, including the Electorates of Saxony and Brandenburg
막시밀리언이 시작한겨. 부르고뉴 마리,껄 뒤에 포함을 시키고 이때 자기땅 오스트리아.를 서클로 빼는거고. 고지대 저지대 라인.에서 선제후권 있는 라인강 서클.을 따로 빼. 그리고 작센.을 고지대 저지대.로 나누고.
1800개 영지를 저리 나누고. 저 서클 별로. 또 서로들 각각 다이어트.를 하는거야. 그 결과물로 임페리얼 다이어트.로 갖고 가고. 그 지시사항을 자기 서클 다이어트.에서 공유하고 회의를 해.
Reichskreise
라이히스 크라이즈. 제국의 서클. 이라고 해. 저 신성로마제국의 행정단위.를. 크라이스.가 원.이야.
토론하고 협의하는게. 서기 777년 부터야. 선제후들이 선거로 황제를 뽑는게 서기 919년 부터야. 다이너스티.로 세습으로 걍 쉽게 되는게 아냐 황제가. 선거운동을 해야 하고 정강 발표해야 하고 공약 만들고 로비도 해야해. 카를5세가 합스부르크 핏줄로 그냥 된게 아냐. 프랑수아1세와의 선거전이 대륙을 흔들어. 이때 카를이 뿌린 돈이 을마냐. 하튼 상상을 초월해.
아우크스 부르크 다이어트.가 자주 보이는데. 저 서클.도 막시밀리언의 저 회의때 나온거고. 카를5세의 루터들과의 토론에 루터들의 아우크스부르크 기념일도 여기고. 나중 카톨릭과 루터들이 합의를 보는 다이어트.도 여기야.
이 제국회의.가 가장 자주 열린곳이 아우크스부르크.여 여기가 고지대 중간에 있어.
저걸. 공식적으로 777년 부터 확인이 되고. 919년에도 보이고. 저게 제국 회의.라는 임페리얼 다이어트.의 시작이야. 이게 천년이 넘은겨. 선제후에 의한 선거만이 아냐. 이들이 수시로 모여 1800개 영지들을 대표하는 이들이. 각각의 서클에서도 모이고.
근대 직전부터.는 제국회의에 직접 참여하는 이들이 서클 대표자들에 선제후들에 더하여. 임미디어시.의 프리시티들.의 시장들까지 참석을 하는거야.
저게 독일의 힘이었어. 독일의 정체성은 저기서 나왔어. 저게 유로를 이끌어가는 독일의 힘이야.
저 천년의 힘은. 어마어마한겨.
독일은 간단한 나라가 아냐. 독일이 하니까 우리도 합세. 독일이 골고루 지역균형 경제 우리도 저리 합세.
코메디야 코메디.
염치가 없는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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